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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사랑하시는 교회 ( 계3:7-13 )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어떻게 할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알기를 원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받은 교회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라고 한다. 이 교회는 사랑으로 시작되었는데, 사연이 있다. 나탈리우스2세가 형이 죽은 줄 알고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형을 생각해서 도시의 이름을 빌라델비아라고 지었는데 필리아=사랑 과 아델포스=형제 라는 합성어로 ‘형제사랑’이라는 이름이다. 그러데 형이 살아서 돌아왔다. 사람들은 니가 형을 죽이고 왕이되라고 했지만, 이 자리는 형의 자리라고 왕위를 사임했다는 이야기이다.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데. 이런 지도자가 많이 나오기 원한다.
빌라델비아가 이렇게 사랑으로 시작했다. 빌라델비아의 특징이 2가지가 있는데, 늘 지진이 많이나서 일곱교회 중에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있다. 늘 황폐하고 폐허가 돼서 날마다 집을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날마다 집이 허물어지니까 또 나가고, 지진이 심한정도가 아니고 지진의 도시처럼 내일을 바라볼 수 없는 환경가운데 있다. 또 포도가 많이나서 술의 신 ‘바카스’신을 섬기고 늘 술이 우상이다. 힘든 사람들이 술에 쩔어 산다. 바울의 친척 누기오가 전도해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세워졌다. 소아시아의 어떤 교회보다도 빌라델비아 교회가 믿음의 보루로서 너무 모범이 되는 교회가 된 것이다. 이 교회는 다른 교회가 다 흔적이 살아진데 비해 지금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24개 교회이상에 1000명의 신자가 남아있고 그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1. 다윗의 열쇠로 열린문의 축복을 받은 교회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우리는 항상 그 교회에 맞게 주님이 자신을 소개해 주신다. 늘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고 하셨는데, 빌라델비아 교회에 거룩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 주셨다. 대단한 칭호이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 주셨는데, 다윗의 열쇠는 이사야 22:22에 보면 “내가 또 다윗의 집에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에서 유래됐다.
셈나라는 불의한 청지기에게 열쇠를 주었더니 나라를 말아먹었다. 그래서 엘리아김이라는 선한 청지기에게 열쇠를 맡겼다. 왕의 열쇠, 다윗의 열쇠는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대단한 열쇠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도 불의한 왕이 왕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 선한 왕이 왕이 되면 그 나라가 흥한다.
두바이를 가보니까 두바이는 사막의 나라고,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또 중동지방은 가난하기 짝이 없는데 그 나라가 10년 만에 현대 건축이 다 들어서서 현대 건축을 보려면 프랑스를 갈 필요 없이 두바이를 가야하고. 사막에 스키장을 만들어놓고, 못 하는 일이 없다. 누가 이 나라 왕인가 하면, 쉐이크 모하메드. 쉐이크 모하메드는 옥스퍼드를 나온 똑똑한 사람이었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독재를 했다. 이 세상에 최고의 리더는 이타적인 독재자라는 생각을 했다. 건축허가 하나를 받으려고 해도 몇 년이 걸리는데, 10년 만에 현대 건축을 지은 것은 왕이 허가를 하면 다 지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 사람이 똑똑한데다가 너무나 국민을 사랑하니까 이런 왕이 우리나라에도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땅에서도 엘리아김처럼 이런 리더쉽을 가지면 나라가 참 부강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가장 약하고 힘이 없는 이 교회에 하나님은 가장 실력 있는 분으로 권세를 가지고 나타나신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의 열쇠로 나타나 주셨다. 거룩한 것과 다윗의 열쇠와 연결이 되는데, 다윗의 열쇠는 창세기부터 유다와 다윗과 예수그리스도. 중요한 구속사적인 이름이다.
유다는 야곱의 열두아들 중 넷째이다. 가장 훌륭한 아들은, 우리가 생각할 때 요셉인데 가장 찌질한 아들이 유다이다. 이 사람은 동생 요셉을 팔아먹고 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첫째아들, 둘째아들 죽고 신전창기와 놀아났는데 신전창기가 며느리 다말이었던 것이다. 무엇하나 내놓을 것이 없는 죄로 점철된 죄의 기록부에 올라갈 유다이다. 역사서에 들어와서 다윗은 맨 처음에 잘나가는 것 같았다가 나중에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살인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런 결과로 인해서 그 후에 그의 아들들이 또 역시 살인하고 간음하고 가장 믿었던 아들, 아끼고 잘났던 압살롬이 반역하고, 아도니아가 반역하고 이런 기막힌 슬픔의 인생을 살았는데 그게 자기 삶의 결론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이 다윗의 열쇠가 무엇이겠는가? 무엇을 의미하나? 내가 나의 죄를 볼 적에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내가 주 앞에서 보니까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이 교회에 나타나주셨다. 힘도 없고 능도 없는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황폐한 빌라델비아에서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다. 거기에서도 내 죄만 바라보면서 내가 티끌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눈물로 침상을 적시고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해달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그렇게 주님만 바라본 것.
‘아주 잘했다, 하나님께서 니가 나만 바라봤기 때문에 내가 너를 위해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신 것이다. 8절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모든 열린 문을 두었으니까 못할 일이 없는 것이다.
내 죄를 바라보면서 눈물로 침상을 적시는 자는 예수님이 내 앞에 다 열린 문을 놓아두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열린 문은 일차적으로 항상 복음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말한다. 내 인생의 목적이 복음전도가 되고 복음의 문을 열려고 결정을 하면 안 열릴 문이 없다 이 말이다. 다윗처럼 유다처럼 험한 인생을 겪게 되면,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로 들어오게 되면 내 인생의 목적은 복음전하는 것 외에는 아무 목적이 없어지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럴 때에 우리는 열린 문에 앞서서 닫힌 문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 맨 처음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모든 문이 활짝 열렸는데 죄가 들어와서 그 다음에는 모든 문이 닫혔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굽이굽이마다 온갖 종류의 닫힌 문 때문에 우리는 인생이 힘든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 내가 도저히 열 수 없는 닫힌 문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나. 너무나 걱정되는 문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 닫힌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 계시다고 하신다. 내가 열린 문을 네 앞에 두었다고 하신다. 이것을 다윗의 열쇠로 열어주시는 분이 계시다고 한다. 주님은 우리의 닫힌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어떻게?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열어 주셨다. 다윗의 열쇠는 한마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것은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것 밖에 없다.
다윗의 열쇠 = 십자가. 십자가는 모든 것을 열 수 있는 만능열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닫힌 문을 열 수가 있는데, 우리는 다윗의 열쇠로 내가 지금 지옥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 열쇠로 부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민, 근심을 다 열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 천국문이 활짝 열려 있다. 복음의 문이다, 그래서 이제 내가 복음을 전하려고 생각을 한다면 취업의 문도 열리고, 학업의 문도 열리고, 결혼의 문도 열리고, 사업의 문도 열리고, 질병의 문도 열릴 줄로 믿는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로마와 아시아 사이에 연결된 중요한 통로에 있기 때문에, 황폐한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서 복음 전할 자신의 입지적인 조건을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걸 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나를 여기 두셨구나’. 라고 생각해서 복음의 문이 열려지게 하겠다고. 고린도후서 2:12 “내가 드로아에 이르매 주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항상 “주님, 복음의 문을 열어주시옵소서”. 복음의 문이 열리기 위해서 내가 직장도 가야하고, 결혼도 해야되고, 진정한 생각을 해야지 우리는 돈 주면 내가 복음 전한다니까, 건강주면 복음 전한다니까 이러면 앞뒤가 틀려서 안된다. 먼저 복음전하기 위해 기도할 때 모든 문이 열려질 줄 믿는다. 영혼구원을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가장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주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오신 것이다. 나의 죄를 보는 것이 가장 거룩한 것이고, 가장 진실한 것이다. 점도 없고, 흠도 없고, 티도없고 행위가 거룩한 것이 아니고 나의 죄를 보는 사람이 가장 거룩하고 진실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 거룩하고 진실한 사람만이 내 죄를 보면서 울면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면 열리지 않을 문이 하나도 없는 줄을 믿는다. 내 얘기하네, 그렇게 생각 되시는가? 그렇게해서 내가 복음의 문을 열려고 늘 생각하고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러면
2. 사랑의 징표를 보여주시는 교회
내가 너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면 징표를 보여 주신다.
9절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우리가 지금까지 여섯 교회째를 보면서 얼마나 유대인들이 교회를 괴롭히는 줄 아시죠. 이번에 큐티할 때도 유대인의 간계가 얼마나 무섭고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제일 훼방꾼 노릇을 하고 그랬는데,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어떤 축복을 주셨는가 하면 괴롭히던 유대인 몇이 와서 이 교회에 등록하고 영접했다고 한다. 할렐루야. 다음주 전도대회에 여러분들 괴롭히는 그 사람이 와서 등록하고 영접할 줄로 믿는다. 놀라운 기적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기세등등하고 그렇게 못살게 굴던 자들이 돌아온 것이다. 이런 축복을 주셨다.
유대인의 간계는 바울도 생명을 내놓고 기도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유대인은 믿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안믿는 자이다. 쉽게 생각하면 유대인은 바울의 동족이다. 친척, 동족, 부부, 가족을 유대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계시록 교회도 유대인이 힘들고 제일 힘든 사람이 같이 믿는 사람이다.
큐티를 하면서 보니까 안 믿는 사람은 ‘큐티가 뭐에요?’ 이렇게 물어보는데 믿는 사람이 큐티하는 것을 가장 비판한다. ‘왜 너는 남들 안하는걸 하려고 해?’ 이렇게 얘기했다. 또 장로님 가정에 시집와서 힘들었다고 하면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유교적 관점으로 부모님은 존경을 받아 마땅한데 어떻게 힘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장로님, 권사님 가정이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면 제일 듣기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바로 장로님, 권사님이다. 불경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성경에서도 유대인들이 힘들게 한다고하는데 믿는 부모, 배우자, 믿는 구역식구가 얼마든지 나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이웃집아줌마가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느다. 눈만뜨면 내 옆에 바라다보이는 그, 그녀. 부모님, 자식들. 좀 안봤으면 좋겠는데. 그런데다가 힘든데 그분이 예수까지 믿고 굉장한 직분을 가졌다고 하면 눌리는게 있고 더 힘든 것이다.
그당시 서아시아에 교회는 이방인으로 예수를 믿기 시작하니까 다윗과 솔로몬으로 내려오던 예루살렘, 이스라엘 공동체는 선민의식이 대단하고 그곳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이 볼 때에 빌라델비아 교회가 얼마나 무시가 되겠는가, 저절로 무시가 되는 것이다. ‘누구 앞에서 문자를 써? 큐티 좋아하네?’ 이러는 것이다. 큐티한다는 사람 다 이상하다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 때문에 큐티 못하면 안된다.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다음번에 다시 본문 볼 때 지난번에 잘못 해석했다고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다. 염려하지 말라. 성경 보는게 위험해서 성경 보지말라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 간계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험을 참고 주예수를 섬기는 것이다. 사도행전 20:18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그러니까 유대인의 간계 때문에 바울이 눈물을 흘렸고 거기서 겸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을 생각할 때 유대인들이 또 ‘자기가 겸손하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굉장히 교만하다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어떻게 자기 입으로 겸손하고 온갖 겸손과 눈물과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을 원어로 보면 바울의 겸손이 아니고 ‘주를 위한 섬김과 주를 위한 눈물’인 것이다. 주를 섬긴 겸손과 주를 섬긴 눈물인 것이다. 이렇게 섬겼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영접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인 복음증거의 열매를 기가막히게 나를 괴롭히던 유대인에게서 얻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최고의 증거라는 것이다. 내가 헌금하고 찬양하고 좋은 옷입고 와서 아름다워라 할렐루야 은혜가되네 나는 교회오는게 너무 사랑스러워 저 사람을 봐도 사랑스럽고 이것도 좋지만 나를 향한 주님의 최고의 사랑의 징표는 내 원수가 예수믿는 것이다.
다시 읽어보면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원수가 내 앞에 와서 절하고 예수를 믿게되면 사람들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하리라.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줄 알게하리라. 주님의 최고의 사랑의 징표는 길가던 사람 전도할 수도 있지만, 내 집의 원수 전도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의 징표인 것이다.
평생을 안 믿을 수도 있다. 최고의 상급을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나를 비웃고 때려도 낙심 말고 ‘온몸과 마음으로 복음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처럼, 이런 삶과 고백을 가장 사랑하시는 주님인줄을 믿는다. 내가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닫힌 문을 열었더니 다음 주일이 전도주일인데 우리가 닫힌 문들을 열린 문으로 데려와야 한다. 여러분들의 눈물의 간증이 있어야 되고 가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여러분들이 여셔야 되는 것이다. 눈물의 간증을 가지고 가서, 한번만 와보라고 그럼 열려있다고 하니까 닫혔나 열렸나 시험해 보시기 바란다. 가서 한번 전도해보세요.
3. 사랑의 행위를 하게 하시는 교회
8절 후반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적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미클란이라는 형용사이고 영어로는 ‘micro'가 된다. 가장 작은 것을 의미한다. micro bus는 가장 작은 버스이고 micro gm은 1/100 gm이고 micro film은 가장 축소된 필름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big power가 아니고, grand power가 아니고 micro power인줄 믿는다. 우리는 적은 능력이 나와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가 될 줄 믿는다. 이 교회의 교인들이 분, 재산 등 아무것도 내세울 하나도 없고 찌질하다. 그런데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분들은 너무나 부족한게 많은가? 다른 사람에게 내놓을 능력이 아무것도 없는가? 그래서 너무 챙피한가? 두려운가? 그렇다고 낙심하고 좌절할 것인가?
하나님은 늘 연약한 나를 통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나를 통하여서 큰일을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신 것이다. 엔그리엄로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분은 한번도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넌 이걸 할 수 있어. 좀더 열심히 노력해야해. 넌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 네가 키워온 배경은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 구비되어 있어.‘ 하나님은 이런 이야기를 한번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내 모습 그대로 쓰신다는 것이다. 니가 적을수록, 연약할수록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이다.
내가 자꾸 크려고 노력하라고 주님은 말한 적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만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엄청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또 어떤 행위가 있냐면 10절에도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그러니까 말씀을 지킨 것이 아니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 사랑의 행위에는 인내가 따른다. 그냥 인내가 아니라 말씀을 따라 인내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을 하게 하셨다. 어떤 것을 인내를 하게 하셨을까?
유대인의 간계로 주님을 섬길 기회를 주셨다. 적은 능력으로 섬긴다는 것은 내 자신이 둘로스, 새 한 마리의 값도 안되는 것으로 여기고 현재형으로 어떤 일이 와도, 누구를 만나도, 어떤 직장이라도, 어떤 지위를 가지고도 주님을 섬기는 인내가 이 교회에 있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간계를 통하여서 계속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이 오는 것은 굽신거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보잘것 없는 것을 알고 저절로 숙이는 것이다. 이것이 적은 능력이다. 바울처럼 강팍한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들의 간계로 인하여서. 유대인의 간계가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로 센 것이다. 집안식구들이 같이 사는데 살 소망이 끊어졌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보면 살 소망이 끊어지고, 남편과 시누이 올케를 봐도 살 소망이 끊어지고, 자식을 봐도 살 소망이 끊어지고. 안 볼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죽을 수고 없고, 살 수고 없고. 오죽하면 사도바울이 살 소망이 끊어졌겠는가.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가장 사랑의 행위인 줄 믿는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최고의 기도는 ‘불쌍히여겨주시옵소서’이다. 이게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사도행전 20:22에 보면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유대인의 간계가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 간다고 한다.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절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지금 가는 것이다. 24절’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렇게 복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사랑의 행위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자식을 봐도 복음, 남편을 봐도 복음, 시부모를 봐도 복음, 장인장모를 봐도 복음 전할 마음만 생기면 말씀을 지키고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사랑의 행위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줄 믿는다.
적은 능력인가? 참으로 저야말로 적은 능력 아니겠는가? 90년 코스타 처음 갈 때에 서리집사고, 30대 후반의 과부이고,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정 부모님이 목사인 것도 아니고 교계에서 백은 하나도 없고 게다가 무시받는 과부이고 신학을 하나도 안한 서리집사가 가서 첫날 첫 시간에 강의를 할 때 복음의 문이 열려서, 첫 날 첫 시간에 모든 청년들이 일어나 예수를 영접한 것이다. 제가 지금도 기억한다. 처음 갔는데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런데 너무나 적은 능력이지만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줄을 나타내주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얘를 사랑한다‘ 이렇게.
그래서 저는 그 때 이런 기도를 참 많이 했다. 사실은 시집살이도 힘들었지만 갑자기 남편이 천국 간 사건은 세상적으로 굉장히 수치스러운 사건이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했냐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다 못해 편애하신다고, 주님은 나를 어찌하여 이렇게 편애하십니까?‘ 이렇게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를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남편도 가고 너무 힘들고, 세상사람 보기에 고아와 과부를 제일 불쌍히 여기라고 하셨는데. 여러분들이 부도가 나도 ’나를 왜 이렇게 편애하십니까‘ 이렇게 기도해라. 자식이 속을 썩여도,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질병이 걸려도 ’하나님 나를 왜 이렇게 편애하십니까?‘ 이렇게 기도해라.
편애가 무엇인가? 너무나 편집증적으로 애정을 가지시고 주님께서 나에게 달려드시는 사건이다. 30대 과부가 절절이 기도를 하니까 얼마나 기가막히겠는가. 제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석사/박사학위 소지자들 앞에서 박사도 아니고 신학도 안한 사람이 가서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님은 복음의 문을 열어주신 줄 믿는다. 내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을 듣고 지키고, (고난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려면 낙망하고 힘들고 왜 이런 사건이 나에게 왔냐고 불평하는게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는 것이다.) 제가 너무나 주님을 증거했다. 복음을 전하는 것에 나의 모든 인생이 쓰여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님이 이걸 다 보셨다는 것이다.
4.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은 교회
11절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유대인이 와서 영접을 했다. 그 중에서 아까도 말했던 대제사장이나 특별히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영접을 한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와서. 그리고 등록을 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감독이 너무 기가막히지 않겠는가. 이 무시찬란한 이 교회에 와서 대통령, 로마의 황제가 영접을 했다고 생각할 적에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이것이 생명의 면류관이 아니고 자랑의 면류관, 세상의 면류관이 될 수가 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이런 것처럼 하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 축복까지 주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와 사람은 구원과 복음 때문에 한결같은 사람인데 이 명령까지 주신 것이다. 너무나 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시는 분은 ‘니가 어떤 사람을 전도했다고 해도 너는 그 면류관을 뺏기면 안된다. 사단이 들어가서 면류관을 뺏기면 안된다’하는 말씀이다.
이게 너무 맞는 말씀이다. 제가 그때 코스타에 가서 청년들이 복음을 영접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전도사님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겠다고 그러면서 뭐라고하냐면, ‘김양재 집사가 교만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이렇게 머리를 안수하고 기도했다. 나는 집사인데 와서 이렇게 영향을 끼쳤는데 전도사가 돼서 강단에 서지도 못했기 때문에 저를 위해서 해준 기도이기도 하겠지만 굉장히 저 때문에 기분이 나쁘시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빙자해 기도 해주셨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만 맞다. 본인이 생각해도 저 젊은여자가 나중에 큰일나면 어떻하나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우리는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두려워하라’는 말씀처럼 항상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니가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어주시고 사랑의 징표를 주셔서 유대인 중의 몇이 돌아왔다. 다 돌아오지 않았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죽었지만 지금까지도 안 돌아왔다. 다 돌아오지 아니하고 몇이 돌아온다고 했다. 저는 사도바울선생님의 수준같이 안 되니까 제 남편이 돌아오고 제 옆의 사람들이 많이 돌아온다. 저는 수준이 좀 낮아서.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수준이 높으면 천국 갈 때까지 안 돌아올 수도 있다. 수준이 낮은 사람은 빨리 돌아온다.
그러니까 이래도 저래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 자체가 상급이 돼서 걸어가는 사람은 문제가 되지 않을 줄 믿는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신 줄 믿는다. 그러니까 절망하지도 마시고, 교만하지도 마시고, 열등감을 느끼지도 마시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랑 받으시는 그 태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5.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상급과 축복
3가지의 축복을 주셨다.
1)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신다.
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마지막 시험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키시겠다고 하시는데,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겠다는 것은 시험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험을 쳐서 점점 성숙한 부분의 분량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시험이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연단하니까. 그런데 어떤 축복을 주시는가 하면 시험이 오지만 인내의 말씀을 자꾸 지키게 되면 시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제가 남편이 죽는 시험, 자녀의 시험 다 있어도 그냥 기도하면서 눈물로 기도하고가지만 시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큰 복음의 문이 열려지는줄 믿는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신다. pass되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는 천국으로 pass(통과)가 되는 것이다.
2)기둥이 되게 해주신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 같은 일꾼이 되게 해주신다.
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특별히 빌라델비아 교회와 관련해서 이 지역은 지진이 많은 교회가 돼서 늘 흔들린다. 흔들리니까 사람들이 늘 집 밖으로 나가다니는데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하는 이 축복을 주셨다. 순종하는 우리를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주신다고 약속을 해주셨는데 내가 요동하지 아니하고 황폐한 이곳에서 기둥이 되어서 절대로 요동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남편들도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아내들도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자녀들도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란다.
기둥 같은 일꾼, 요동했지만 우리의 모든 식구들은 기둥이다. 남편도 기둥이고 아내도 기둥이고 다 기둥인 것이다. 제가 혼자 되서 기둥 같은 일꾼으로 혼자 주님의 일, 교회의 일을 하려고하니까 남편이 없는 사람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어디에도 낄 수가 없다. 교회 행정에도 아무데도 낄 수가 없고 참과부가 되어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발 씻겨주는 일만이 저에게 맡겨진 것이다. 디모데전서 5장보면 굉장히 기분 나쁘지만 그 일을 하는 것이 과부에게 주어졌다. 과부는 과부의 주제를 알고, 그것을 당연하게 알고 가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있어야 교회에서도 공식적인 일을 맡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별꼴이야’ 하시지만 그게 별꼴이다. 남편이 없으면 일을 하는데도 불편한 것이다. 여자가 혼자 와있으면 다 불편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 남편이 바람을 피우건, 돈을 못벌건, 병으로 누워있건, 집에 누워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둥 같은 남편인 것이다.
나를 마음대로 주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둥 같은 남편인 것이다. 오죽하면 기둥서방이라고 하겠는가. 기생도 기둥서방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이혼하고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냥 부부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없는 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고 사람을 살리고 들어나지 않는 적은능력으로 가서 말씀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지킬 때 하나님은 저같이 쓰시는 줄 믿는다.
그러면 ‘목사님은 알려져서’이러지만 알려져서 좋은게 무엇이 있나. 남들에게 들어나지 않게 몇 명을 섬기다가 가나, 저처럼 섬기다가 가나 고생만 하는 거지 천국은 똑같이 갈 것 아니겠는가. 정말 저는 고생만 하는거다. 여러분들은 목자, 부목자 몇 명만 섬기면 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우리들교회에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기둥 같은 일꾼이 너무나 많은 줄 믿는다.
가치관이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교회에 분란이 없는 것이다. 모두 자원하는 마음으로 다 기둥 같은 일꾼이 되는 축복을 우리들교회에, 빌라델비아 교회에 허락하신 줄 믿는다. 제가 과부가 아니면 이런 설교를 하겠는가? 남자 목사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자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이 때를 대비하여 저를 과부가 되게 하신 줄 믿는다.
머리에 순서, 질서, 인격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 중에 질서가 가장 위대한 것이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인 것이다. 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치고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의 위치를 지키면 오늘날 저같은 사람도 되게 할 수 있다는 모델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줄 믿는다. 그때 정말 제가 나서지 않아서, 어떤 일도 맡아본 일이 없다. 앉으나 서나 집에서 힘든 사람들 살리고, 이혼당한 사람들 살리고 자살하겠다는 사람 살리고...이게 진짜 일 아닌가. 어디가서 맨날 ‘장’자리 맡아서 하려니까 인생이 슬프고 외롭고 헛헛하고, 맨날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니까 점점 더 추해서 점점 매력이 더 없어지는 줄 믿는다. 당당하게 있으면 다 멀리에서도 찾아오는 줄 믿는다. 그래서 기둥 같은 남편과 기둥 같은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기둥 같은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
3) 공동체의 축복
12절 후반부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새 예루살렘을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유대인들의 공동체인 예루살렘 교회는 너무 갖은 죄가 범해지고 있었다. 사랑이 없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이 내려왔다. 그래서 천국 공동체의 축복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예수님의 이름을 그 기둥위에 써주시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천국 공동체의 새로운 축복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예수님의 이름을 써가는 것이다.
오늘은 낙망에서 희망의 예수님으로 써가고, 내일은 슬픔에서 위로의 주님을 서로 나누고, 고통에서 희락의 주님으로, 추함에서 아름다움의 주님으로 날마다 사랑하시는 공동체에서 주님의 새로운 이름을 날마다 써가게 하시는 축복을 주셨다 이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목장을 경험하는 것이다. 오늘은 아름다움을 알고, 또 내일은 희망의 주님을 알게 되고, 모레는 위로의 주님을 알게 되고 그래서 날마다 새롭게 새롭게. 아까 시크릿 가든 영상을 보면 하지원과 현빈이 꼭 예수믿을 것 같다. 이 영상을 꼭 keep(보관)했다가 누가 전도를 해서 주는 일이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 우리들교회 국수먹으로 오는 현빈과 하지원.
우리의 황폐한 닫힌 문은 그냥 교회를 다닌다고 황폐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이 닫힌 문은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영적으로, 다 닫힌 황폐한 문이들이 각자 다 있다. 누가 나를 괴롭게 해서, 시어머니가 힘들게 해서, 돈이 없어서, 이래서도 우리가 황폐하겠지만 내 마음이 황량하면 누구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쉴라월쉬라고 텔레비전 토크쇼 진행자이고, 가수이고, 작곡가이고, 저술가이고, 전 미국 크리스찬연합회의 인기강사이다. 그런데 이분이 외형적으로 볼 때 잘나가는 PD이고 CBN에서방영하는 인기 프로그램의 공동사회자였다. 주말에는 이곳저곳 강의를 다니면서 노래도 하고 책도 썼다. CBN의 스텝들이 다 내 사무실로 찾아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기도부탁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그렇게 위로해주고 해결해주었는데 정작 내 자신은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일을 너무 잘 감당하고 남을 잘 돌볼 줄 아는 가장 강한 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존재라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하나님과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이기를 필사적으로 원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다 잘되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나는 외롭고 두려웠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미쳐가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에게 이것이 유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성장기 동안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나도 아버지처럼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병과 싸워야하는 사람의 수치심을 느끼면서 회사에 휴가를 요청하고 혼자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고 가장 외롭고 황폐한 심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 생활한지 한주 두주가 지나가면서 그곳의 환자들이 참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들도 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단지 불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겪는 어쩔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병원에 입원중인 한 목회자는 자신이 교인들에게 더 이상 줄 것이 없다는 이유로 괴로워서 들어왔고, 또 한 선생님이 자기가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는 것 때문에 희망을 상실했다.
나는 어떠한가. 쉴라월쉬는 버지니아에 있는 사무실에 이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달았다고 편지가 무릎까지 쌓였는데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고 사랑받지 않고 있다고 뼈에 사무치도록 느낀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을 수 있지만 또 반대로 우리의 두려움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내어 쫓을 수가 있다.
차라리 끔찍한 죄를 고백해야 할 입장이었다면 오히려 편했을 것인데, ‘그저 나는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한 사람, 나는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 나는 가장 선한 순간에도 부족했고 아무리 선해진다고 해도 나는 부족할 것이다’ 이 생각이 계속 나를 황폐하게 만드는데 하나님은, 그리스도는 충분하시고 그분은 나를 완전히 사랑하시고 그림자까지도 사랑하시는데,
어느 날 환자들과 간호사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도중에 정말 주님이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너는 사랑받고 있다’하는 음성이 들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적인 해결이나 구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평안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은 나를 택하신 하나님께 보답하는 차원에서 내가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노력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내 자신이 무한히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내 힘을 전부 투자해서 일에 몰두했었는데 지금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갓난아기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것 같았는데
그토록 자기가 무가치한 존재라고 처음으로 느껴지는 순간 내가 그토록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는 것이다. 내가 무가치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고 있는가 이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권리를 다 몰수하셨다고 느끼는 순간 그분이 나를 완전히 환영하고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어떤 상담자가 그랬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문제에서 당신을 구해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당신 안에 거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제거하는 편을 택하지 않은 것은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나는 해결을 갈망했지만 그분은, 그분과 나 사이에 관계를 주셨다고 한다.
나는 구조를 갈망했지만 그분은 황폐한 속에서 함께 하는 교제를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단순히 두려움을 제거하셨다면 나는 또 남은 인생 동안에 그 두려움이 언제올까 또 두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축복은 쌀과, 밥과 이런 것을 주신게 아니라 그 황폐한 속에서 적은 능력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이 상급을 주셨다. 그러니까 어떠한 경우에서도 내가 주님과 손을 붙잡고 갈 때에 가장 이 땅에서, 지상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와 성도가 되실 줄 믿는다.
문제해결이 아니고 내가 진정 지금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하나님과 손을 놓지 않고 가는 것, 이것을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시는 줄을 믿고 여러분들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말씀을 맺겠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는 시작부터 그 형제의 사랑, 이 세상 사람이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그 형제사랑을 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열린 문의 축복을 허락하신다. 사랑의 징표를 허락하시고, 사랑의 행위를 허락하시고 면류관을 빼앗지 않게 하신다. 축복은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 같은 일꾼이 되게 하시고 새 예루살렘의 교제를 허락하시고, 날마다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게 하시는 줄을 믿는다. 우리 열린 천국문 들어가서 주와 함께 사는 우리가 되시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모든 닫힌 문을 다윗의 열쇠로 열게 해달라고 우리의 VIP들을 위하여서 정말 주님의 다윗의 열쇠가 되셔서 그들의 닫힌 문을 열어달라고, 다음 주일에 전도대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여러분들의 VIP 가족의 식구들, 모두를 위해서 우리가 오늘 눈물로 기도하시는 시간을 가지시겠다.
아버지 하나님, 가장 연약하고 황폐한 빌라델비아 교회에 아버지 하나님, 다윗의 이름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 참으로 거룩하고 진실하다는 것은 내 죄를 보는 것이고, 아파하는 것이고 아버지하나님 눈물을 흘릴 수밖에 나의 이 죄덩어리 인생을 보면서 아파하는 것이 가장 거룩하고 진실한 것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주님 오늘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열린 문을 내 앞에 두었다고 하셨사온데 우리의 VIP를 찾아가게 하시고 나에게 베풀어주신 아버지하나님 다윗의 열쇠를 간증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적은능력을 가졌고 누구 앞에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내가 말씀을 지켰고 낙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더니 주님 우리에게 주신 유대인의 간계, 가장 힘든 내 식구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우리가 생명의 면류관을 뺏기지 않게 도와주시고 내게 허락한 환경을 굳게 붙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시험이 와도 아버지하나님 시험이 시험이 되지 않게 하는 축복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버지하나님 성전에 기둥 같은 일꾼이 되어서 아버지 참으로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의 축복 속에서 날마다 고통가운데 희망의 새 예수님 이름을 아버지하나님 추함에서 아름다움의 새로운 예수님의 이름을 날마다 써가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제 다음주일 전도주일을 통하여서 아버지하나님 죽어가는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내 가장 가까운 식구들을 인하여서 모든 겸손과 눈물로 아버지하나님 주께로 인도한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복음을 위하여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고백으로 저희들에게 사랑의 행위가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징표가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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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 힘으로 해보려고 발버둥치는 연약한 내 모습을 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열린 문의 축복을 받는 교회라고 하시는데, 그 무엇보다 복음의 문을 먼저 열기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하는데...아직 너무나 수준 낮은 믿음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주앞에서 버러지만도 못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경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내 죄때문에 애통하며 갈 때, 내 모습 그대로 주께서 연약한 나를 들어 쓰실 줄 믿습니다. 적은능력, micro power를 가지고 주님의 큰 뜻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어떠한 황폐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 손 놓지 않고, 주님 손 붙들고 나아가는 우리목장 식구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혜빈: 엄마와의 관계 속에 갈등이 있다. 엄마가 아빠를 내려놓지 못하고 말한마디에 기대하고 실망하신다. 모든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고, 내말은 듣지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시고 대꾸하지 않으면 또 마음상해 하신다. 토요일에 늦게들어온 문제로 다투었다. 일주인간의 스트레스를 풀 시간이 필요한데, 너무 힘들다.........
<기도제목: 엄마가 모든 것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이성(남자) 잘 분별할 수 있도록>
신자: 화요일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필 직업상담사 옆자리라 왜 직업을 가지고 일을 안하느냐고 자꾸 여쭤보셨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비전이 있는데, 그쪽일은 학교졸업장이나 다른 일 경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아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고민이 됐다. 아픈 것에 대해 왜 아픈 것일까 묵상하는 것이 있다.
<기도제목: QT,기도, 예배잘 드릴 수 있도록, 가족의 건강 위해, 말씀으로 모든 것 받아들일 수 있게, 빨리 건강 회복하도록, VIP 친구 현진,재희 구원받을 수 있도록>
지인: 그동안 힘들었던 직장생활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했다. 황폐한 환경가운데 생활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모든 일에 감사가 없었다. 지금 주어진 이 시간동안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원한다. 양육교사 훈련받는 동안,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붙어있는 적용을 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완벽한 세팅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평온해졌고, 무엇보다 먼저 복음의 문을 열 수 있기 바란다.
<기도제목: 낮과 밤이 바뀌고 게을러졌는데 시간관리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나의 VIP 채원, 정선, 수정언니 구원할 수 있도록>
남호: 친구 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으셨다. 전화통화 했던 것보다 막상 가보니 심각한 상황이었다. 끝까지 같이있고, 위로해주고..사람이 어떤말로 위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어머님 데려다드리면서 이슬비를 전해드렸다. 그것밖에 할 수 없어 드렸는데, 지금까지 위로했던 것이 전도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실까봐 걱정된다. 이번주에 꼭 교회오셨으면 좋겠다.
<기도제목: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친구 윤정 아버님 완쾌 위해, 이 사건이 이 가정의 복음의 통로 될 수 있도록, 가족의 구원을 위해, 집에 있는 시간동안 엄마와 즐거운 시간 가질 수 있도록>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 나눔을 할 때, 메모를 하지 못해서 때늦은 기억을 되돌리며 쓰느라 자체 편집이 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 것 이해해주세요~ *^_^* 이번주부터는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겠어염 ㅋㅋ 죄송!
다가오는 전도주일이 생일이라 날짜를 볼때마다 기쁘기도 하고 찔림이 오기도 하네요. 모두 지혜롭게 준비해서 풍성한 열매 맺는 전도주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목장식구들 너무 보고싶고, 함께하지 못한 선교자매에게도 동일한 은혜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주일에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