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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제목 : 사랑하시는 교회 (요한계시록 3장 7절 ~ 13절)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어떻게 할 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희들이 좀 다 알기를 원합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받은 교회인데 여기는 오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라고 합니다. 이 교회는 사랑으로 시작하였는데, 그 유래가 아탈루스 2세가 자기 형이
죽은 줄 알고 왕위에 올랐고 도시의 이름을 ‘형제 사랑’ 라는 뜻인 빌라델비아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형이 다시 살아서 돌아오자 사람들은 동생에게 형을 죽이고 왕이 되라고 했지만 동생은 왕위는
형 것이라면서 사임을 했다고 합니다.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데 이런 지도자가 많이 나오길 원합니다.
빌라델비아는 늘 지진이 나서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 있고, 포도가 많이 나서 술신인 바카스를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바울의 친척인 누기오가 전도를 해서 빌라델비아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이 빌라델비아 교회가 소아시아의 어떤 교회보다도 믿음의 보루로서 너무나 모범이 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24개 교회와 천명 이상의 신자로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를
하나님께서 오늘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① 다윗의 열쇠로 열린 문의 축복을 주시는 사랑을 하셨습니다. (계 3장 7절 ~ 8절)
항상 그 교회에 맞게 주님이 소개를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라고 했는데,
빌라델비아에 거룩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주셨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칭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열쇠로 나타나주셨는데 그것은 이사야서 22장 22절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셈나 라는 불의한
청지기에게 열쇠를 주었더니 나라를 다 말아먹어서 엘리아김이라는 선한 청지기에게 열쇠를 맡겼습니다.
왕의 열쇠, 다윗의 열쇠는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자 없는 대단한 열쇠입니다. 그런데 불의한 이가 왕이
되면 그 나라가 망하고 선한 이가 왕이 되면 그 나라가 흥하는 것인데, 이 땅에서도 엘리아김처럼 이런 리더십을
가지면 나라가 참 부강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가장 약하고 힘이 없는 이 교회에 하나님은 가장 실력있는
분으로 권세를 가지고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다윗의 열쇠로 나타나주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거룩한 것과 연결이 되는데, 창세기부터 유다와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라는 중요한 구속사적인 이름으로 연결이
됩니다. 유다는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넷째 아들로서 가장 찌질해보입니다. 동생을 팔아먹고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아들들이 죽고 신전 창기하고 놀아났는데 그 신전 창기가 바로 며느리 다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보면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살인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런 결과로 인하여 후에 아들들도 간음하고 살인하고 가장 아꼈던 아들이 배반을 합니다. 다윗의 열쇠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나의 죄를 볼 적에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거~룩
거~룩이 아니라 내가 주 앞에서 보니까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에게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눈물로 침상을 적시고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달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그렇게 주님만 바라본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주 잘했다고 하시면서 네가
나만 바라봤기 때문에 내가 너를 위해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모든 열린 문을 두었으니 이제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열린 문은 일차적으로 항상 복음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의 목적이
복음 전도가 되고 복음의 문을 열려고 결정을 하면 안 열리는 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목적이
다윗과 유다처럼 험한 인생을 겪게 되면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로 들어오게 되고 이제 내 인생의 목적이 복음
전하는 것 외에는 아무 목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이제 우리는 열린 문을 생각하기 전에 닫힌 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맨 처음에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문이 활짝 열렸었는데 죄가 들어와서 모든 문이
닫혔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굽이굽이마다 온갖 종류의 닫힌 문들 때문에 우리 인생이 힘든 것입니다.
이 시간 내가 도저히 열 수 없는 닫힌 문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닫힌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 계시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닫힌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모든 것을 열 수 있는 다윗의 열쇠인 것입니다. 우리 앞에 천국의 문,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내가 복음을 전하려고 생각을 한다면 취업의 문도 열리고,
학업의 문도 열리고, 결혼의 문도 열리고, 사업의 문도 열리고, 질병의 문도 열릴 줄을 믿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나의 죄를 보는 사람이 가장 거룩하고 진실한 것이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면 열리지 않을 문이 하나도 없는 줄을 믿습니다.
② 사랑의 징표를 보여주시는 교회입니다. (계 3장 9절)
우리가 지금까지 여섯 교회를 보면서 얼마나 유대인들이 교회를 괴롭히는지 아시죠?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에 어떤 축복을 주셨냐 하면 괴롭히던 유대인 몇이 와서 이 교회에 등록하고 영접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다음 주 전도대회에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와서 등록하고 영접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이 유대인들과의
관계는 바울도 생명을 내놓고 기도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유대인들은 믿는다고 하면서 실상은 안 믿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부부와 친척, 가족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힘든 사람이
같이 믿는 내 옆의 사람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큐티가 뭐냐고 묻겠지만 믿는 사람이 큐티하는 것을
가장 비판하더군요. 믿는 부모, 배우자, 구역식구가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웃집 아줌마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눈만 뜨면 보이는 그와 그녀가 나를 힘들게 합니다. 거기다가 믿으면서 굉장한 직분까지
있으면 더 힘든 것입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다윗과 솔로몬으로 내려오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공동체는
선민 의식이 대단한데,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믿기 시작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얼마나 무시가 됐겠습니까.
오히려 믿는 사람들이 큐티하는 사람들을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이상하다고 하는데,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다음에 다시 본문 볼 때 지난번에 잘못 해석했다고 성령님이 가르쳐주십니다. 성경 보는 것이
위험해서 성경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 관계를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시험을 참고 주 예수를 섬기는 것 뿐입니다. (행 20:18) 유대인과의 관계 때문에 바울이 눈물을 흘렸고
겸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교만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원어를 보면 그것은 바울의
겸손이 아니라 주를 섬긴 겸손과 주를 섬긴 눈물인 것입니다. 그렇게 섬겼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인 복음 증거의 열매를 지금 나를 기가 막히게 괴롭히는
유대인에게서 얻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최고의 사랑의 징표는
내 원수가 예수 믿는 것입니다. 평생 안 믿을 수도 있고 평생 안 돌아 올 수도 있는데, 빌라델비아 교회에 이
최고의 상급을 주신 것입니다. 나를 비웃고 욕하고 때려도 낙심 말고 온 몸과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처럼 이런 삶과 고백을 가장 사랑하시는 주님인
줄을 믿습니다.
③ 사랑의 행위가 있는 교회입니다. (계 3장 9절 ~ 10절)
작다라는 헬라어로 ‘미크란’이라는 형용사입니다. 영어로는 ‘마이크로’를 의미합니다. 가장 작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빅 파워가 아니고 그랜드 파워도 아니고 마이크로 파워인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작은 능력이 나와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가 될 줄을 믿습니다. 교회 교인들이 찌질하고 신분, 재산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에게
내놓을 능력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그래서 너무 창피합니까? 두렵습니까? 그렇다고 낙심하고 좌절하실 겁니까?
하나님은 늘 연약한 나를 통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나를 통하여 큰 일을 이루시길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앤 그레이엄 로츠는 하나님이 한번도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 네가 키워온 배경은 더 잘 구비 되어 있어’라는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네 모습 그대로
쓰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작을수록, 연약할수록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만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이렇게 엄청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계 3:10) 사랑의 행위에는 인내가
따릅니다. 그냥 인내가 아니라 말씀을 따라서 인내를 해야하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인내하게 하셨냐면 유대인의 관계로 주님을 섬길 기회를 주셨습니다. 유대인의 관계를 통하여 계속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이 오는 것은 굽신거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보잘 것이 없는
것을 알고 저절로 숙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은 능력입니다. 바울처럼 강팍한 사람이 이렇게 눈물을 흘렸다고
하잖아요. 정말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유대인의 관계가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로 센 것입니다. 여러분들
집안 식구들과 같이 사는데 다 살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그냥 눈물 흘리는 것이 가장 사랑의 행위인 줄 믿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최고의 기도는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행위인 것입니다. (행 20:22~23) 환란과 결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사랑의 행위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④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 교회입니다. (계 3장 11절)
유대인이 와서 영접을 했는데 대제사장이나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와서 영접하고 등록한 것입니다.
그럴 적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감독이 너무나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이것이 생명의
면류관이 아니라 자랑의 면류관, 세상의 면류관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처럼 언제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와 사람은 구원과 복음 때문에 한결 같은 사람인데, 하나님은 빌라델피아 교회를 사랑하셔서
면류관을 빼앗기면 안된다는 명령까지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어주셔서
유대인이 몇이 돌아왔습니다. 다 돌아오지 아니하고 몇이 돌아왔습니다. 수준이 높으면 천국 갈 때까지 안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수준이 낮으면 빨리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이래도 저래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 자체가
상급이 되어서 걸어가는 사람은 그것이 문제가 안될 줄을 믿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신
줄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절망하지도 마시고, 교만하지도 마시고, 열등감을 느끼지시도 마시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으시는 그 태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⑤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상급과 축복 (계 3장 10절 ~ 13절)
첫째, 시험의 때를 변하게 하십니다. (계3:10)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겠다는 것은 시험을 없게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이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연단합니다. 시험이 오지만 이렇게 인내의 말씀을 자꾸 지키게 되면
시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남편의 시험, 자녀의 시험이 다 있어도 정말 눈물로 기도하면서 가지만
시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큰 복음의 문이 열려지는 줄을 믿습니다.
두번째, 기둥이 되게 해주십니다. (계3:12)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는 지역은 지진이 많아서 늘 흔들리니까
사람들이 집에 있지를 못하고 나가 다니는데,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순종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주신다고 약속을 해주십니다. 황폐한 이 곳에서 내가 기둥이
되어서 결코 요동하지 아니하고 남편, 아내, 자녀들이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의 축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요동했지만 우리의 모든 식구들은 기둥 같은 일꾼입니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어야 교회에서 공식적인 일을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남편이 바람을 피건 돈을 못 벌건 병으로 누워있건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둥 같은 남편인 것입니다. 나를 마음대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기둥 같은 남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의
일을 한다면서 무슨 이혼을 하고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냥 부부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자격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럼 없는 사람은 자기 주제를 알고 정말 사람을 살리고 드러나지 않는
적은 능력으로 가서 내가 말씀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지킬 때 하나님은 또 저같이 쓰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들 교회에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기둥 같은 일꾼이 많을 줄 믿습니다.
셋째, 공동체의 축복입니다. (계3:12)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유대인의
공동체인 예루살렘 교회는 너무 갖은 죄가 범해지고 있었잖아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천국 공동체의 축복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예수님의 이름을 그 기둥 위에 써주신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지 못했던 천국 공동체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예수님의 이름을 써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낙망에서 희망의 예수님으로 써가고, 내일은 슬픔에서 위로의 주님을 서로 나누고, 고통에서 희락의 주님으로,
추악에서 아름다움의 주님으로, 날마다 사랑하시는 공동체에서 주님의 이름을 날마다 써가게 하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목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장 모임>
이번 주일에는 그동안 업무 때문에 참석을 못하셨던 박명준 형제님이 목장 예배에 오셨고 이승희 목장과
조인을 했습니다. 할렐루야 ^^
박명준 형제님(81또래)은 어렸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개인 영업을 하시면서 교회에서도 여러 부서를
섬긴 경험이 있는 잘생긴 형제님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짝짝짝~!! ^^
자기 소개로 시작한 목장 모임은 각자 서로에게 궁금한 영적 질문과 육적 질문을 하나씩 적고
이미지 게임을 통해서 뽑아서 나눔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사랑의 언어’(인터넷에서 찾아보세요~)는
무엇인가를 테스트도 해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훈훈했습니다. 재미있는 방식을 통해서도
오늘 주신 말씀으로 자신의 약점과 죄를 보고 회개하는 자매, 형제님들의 나눔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도 제목>
공통 : 신교제, 신결혼 ♡
1. 박명준 형제님
- 어머니 건강
- 내외적으로 중심 잘 잡을 수 있도록
-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도록
2. 이미영 자매님
- 매일 큐티를 아침에 잘해서 말씀에 의지해서 살 수 있도록
- 이번주에 논문 초고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3. 김철주 형제님
- 회사 업무하는데 지혜롭게 잘 할 수 있도록
- 다음 주일에 회사선배 결혼식이 있는데 예배 중수 잘 할 수 있도록
4. 이승희 자매님
- 선교훈련 집중 잘하고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 훈련 받는 동안 시간 잘 누릴 수 있도록
- 하나님의 방법대로 교통사고 사건 잘 해결 할 수 있도록
5. 최서윤 자매님
- 소년부 예배에 지각하지 않도록
6. 박승호 형제님
- 다음주 금요일, 토요일 회사 행사(체육대회) 잘 할 수 있도록
7. 천대근 형제님
- 바뀐 업무에 지혜로 두려워하지 않고 잘 감당할 수 있도록
- 매일 생활 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무가치함을 잘 깨닫고 인정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