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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65279;
제목 : 깨어라 (요한계시록 3장 1절 ~ 6절)
선천적으로 안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일곱영의 성령님이 만져주시면 잠도 깰 줄을 믿습니다. 주님은 실수와
죄악의 자리에서도 한가지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칭찬을 하시고 상급으로 구원을 주십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형편없고 찌질했지만 그들의 자격과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100전 99패 했어도 1승의 그 겨자씨 만한 믿음 때문에 그들이 다 믿음의 조상으로 찬란히 다 올린 줄
믿습니다. 마지막의 1승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선한 것이 하나 없어도
우리에게 너무나 긍정의 눈으로 대하시는데, 오늘 사데 교회를 향해서 얼마나 인색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데 교회는 요만큼도 선한 것이 없어서 깨어라고 하십니다.
①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계 3장 1절)
여기는 ‘자칭’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그 도시의 양심이고 정의일 수 밖에 없는데 우리
주님은 죽은 자라고 하십니다. 나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이렇게 다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다른 교회에
있었던 칭찬이 하나도 없이 책망으로 시작됩니다. 겉은 아름답게 꾸몄지만 속은 시체라는 것이 하나님의
진단입니다. 사데라는 도시는 서머나 동쪽 85km이고 두아디라 남쪽 약48km 지점에 위치한 전략상 요충지로서
수직으로 된 암벽 위에 있어서 천연 난공불락의 자연 요새였습니다. 특별히 사데는 그 곳에서 나는 사금으로
말미암아 전설적인 부의 상징이었는데 모직물과 염색 공업이 성행해서 양털과 의복의 염색이 거기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상공업의 흥행은 너무나 사데를 쉽게 부유하게 만들어줬고, 위대한 어머니라는 키벨레 여신을
섬기는 제사 의식이 있었고, 방탕하고 부도덕했지만, 도시 전체는 아주 세련되었고 멋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마귀가 주는 시험이 세가지가 있는데, 핍박의 시험에서 서머나 교회가 이겼고, 이단의 시험에서 에베소
교회가 이겼지만, 오늘 이 안일함의 시험에서는 사데 교회가 졌습니다. 루터가 사단의 기독교인 박멸 작전을
보여주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한 사단의 부하는 사막을 건너는 기독교인에게 사자를 넣었지만
기독교인들이 그 앞에서 기도하고 찬송함으로 실패했고, 다른 부하는 바다를 항해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폭풍을
줬더니 폭풍 앞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해서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번째 사단의 부하는 성공했는데,
그 방법은 한 교회를 택해서 10년 동안 모든 일이 잘되고 평안하게 만들어줬더니 교인들의 영과 육이 다
썩어버렸다고 합니다. 편안함과 안일함에 사데 교회가 무너진 것입니다. 당시 다른 교회들은 우상숭배로 인해서
어려움이 겪고 있었지만 사데는 그런 어려움도 없었고, 동족인 유대인들이 와서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이 교회는 우리가 원하는 교회를 나가면서 환란도 핍박도 시험이 없는 형통하고 형통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는 예수만이 나의 삶의 이유와 근거가 하나도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데 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 나타나셨습니다. 일곱 별은 1절에서 일곱 교회의
사자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성령님과 일곱 교회의 사자는 정말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사데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 교회의 사자들이 완전하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다시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 밖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데 영이 딱 죽어버린 것입니다. 예수가 너무 싫고 교회 오기가 너무
싫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이 죽은 사람과 환경이 좋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성령님도 아니고
일곱 성령님이 도와야 됩니다. 완전하신 성령님이 가서 만져주시지 않으면 이 사데 교회는 살아날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죄는 도덕적인 죄도 아니고 육적인 죄도 아니고 영적인 교만인
것입니다. 회개 안하면 심판하겠지만 그래도 이 교회를 여전히 살리시고자 붙드시는 주님의 모습으로 일곱
영으로 나타나주신 주님인 줄을 믿습니다.
② 온전한 행위를 하나도 못 찾았습니다. (계 3장 2절)
2절에 두 개의 명령이 나옵니다. ‘너는 일깨우라’ 이것은 긴장을 하고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죽게 된 것을 굳게하라’ 인데 죽으려고 하는 남아 있는 것들을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완료 과거형태이기 때문에 이것이 기록되는 순간에도 이 죽는 상태가 계속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데 그래도 아직 죽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서 죽지 않도록
정말 격려를 하고 촉구를 하라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가 영적인 죽었다는 의미는 사데 교회가 행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많았고 갖출 것을 다 갖추고 너무나 유명한 교회였지만 거기에 온전한 행위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초대 교회는 처음에는 핍박이 너무나 많아서 오직 주님만 붙들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갔지만 드디어 314년에 기독교가 공인이 되면서 예수 믿는게 너무 편해졌습니다. 그래서 기가 막힌 믿음의 초대
교회에서 중세의 암흑 시대가 오게 된 것입니다. 이탈리아 교회들의 그 화려 찬란함 어찌 표현하겠습니까.
너무나 훌륭한 찬양과 예술품과 너무나 화려한 제사장들에 압도가 되고 그런 교회들을 유럽의 곳곳에
지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짓는 경쟁이 벌어져서 결국 재정 때문에 면죄부까지 파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구원의 복음을 이렇게 형편없이 사고 팔고 하면서 악을
저질렀습니다. 이렇게 뭔가 굉장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으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자물쇠로
채워 놓고는 사람들에게 보이기만 했고 성경을 가지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읽혀야겠다고 하면 다 이단으로
처형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뭡니까. 이게 딱 사데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 사데 교회에게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합니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빛을 들고와서 비춰줘야 하는데 점점
등불이 꺼져가서 암흑시대라고 얘기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너는 죽어가는 사람이다’라고 정확하게 진단을
하십니다. 모든 일을 하는데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어쩔 수 없이 끌려왔고 막 짜증납니까. 내가 왜 여기 와서 앉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까. 그러면 그들이 살아날 길은 무엇입니까.
③ 회개하라. (계 3장 3절)
오늘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억하라가 더 보편적인 의미입니다. 네가 어떻게 맨처음 구원의 복음을
받았고 사데 교회가 어떻게 개척이 되었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깨어라는 결국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키다는 순종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받고 들은 복음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것은 바로 회개하는
자세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가 회개를 하려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적같이 주님이 임한다는 것은 심판의 주님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가 너무나 천연 암반의
수천년의 영광을 누리고 있었지만 사데라는 도시도 두번이나 함락이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쳐들어
갔을 때 2주일 동안 진을 치다보니 사데의 병사 중 하나가 졸다가 투구를 떨어뜨렸는데, 그것을 주으러 갔다가
비밀통로가 발각되어 사데가 함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년 후에도 안티오크스 대제 시대에 비슷한
방법으로 함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난공 불락의 천연 요새도 잠을 자면 끝인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하다, 안전하다 안심할 때 살았다 하는 실상은 졸고 죽은 것 같은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데는 이렇게 두
번 함락되고 난 후 지진까지 나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는데,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는 사데 도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다시 크게
번영하던 때입니다. 그런데도 과거를 잊어버리고 무풍지대가 되니까 다시 이런 나태가 몰려와서 이제 이렇게
성경에 등장하고 그 다음에 완전히 폐허가 됩니다. 영적으로도 초대 교회의 핍박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도적 같이 이르러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이고 사데에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천국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천국을 기다렸지만 다섯은 기름을 준비했고 다섯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같이
예배를 드리고 큐티를 하고 목장에 다 참석을 해도 여러분들 가운데 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 같은 사건이 왔을 때 한 사람은 해결이 되고 안되는 것이 자기 죄를
보는 것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재산을 처분하고 살림을 제쳐두고 전도를
하는 것이 준비가 아닙니다. 신앙은 상식적이고 인격적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가정에서
존경과 사랑을 이루는 것이 주님을 기다리는 올바른 준비인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너무나 올바른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준비 제대로 하라고 지금 주님이 더디 오시는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나중에 ‘신랑이로다’ 할 때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이 없어서 나눠달라고 하면 끊어줘야 합니다. 이 미련한 처녀들은 돈도 많고 지위도
높았을 것인데 돈도 많고 지위도 높아서 그 욕심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못 끊으면 안됩니다. 돈과 지위 가지면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 있는 내가 끊어줘야 인생에 대해서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역할을 슬기로운
처녀들이 해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 구원이고 냉정해 보이지만 딱 끊어줘야지 이 땅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같은 행동을 해도 때를 못 맞춥니다. 기름 준비도 안 했고 나눠달라고 떼를
쓰고 천국 문이 닫히니까 막 항변을 합니다. 끝까지 미련한 처녀들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를 안합니다. 그저 열어주소서, 환경을 열어달라고만 합니다. 이것이 도적 같이 오는
주님의 심판입니다. ‘왜 나한테는 말씀이 안들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게 여러분들이 저주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언어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종말의 때에 섬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미리 잘해야 하는데 사데 교회에 있다가
무슨 사건이 나서 주님을 찾으면 주님이 아는 척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청년부 주보를 보면 목자인 자매의
눈이 황반변성이 되어서 점점 시력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예수 믿어서 되는 것이 없다고 할까봐 그동안
얘기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지 않으시던 아버지께서 도리어 얘기를 했더니 예배에 나가시고
‘오늘 목사님 말씀이 꼭 나한테 맞는 말씀 같다’는 놀라운 고백을 듣는 기쁨을 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와서
예배를 드리니까 눈보다도 그것이 기쁨이랍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이것이 구원의 사건이지 심판의
사건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미련한 처녀들은 열어주소서만 외칩니다. 그냥 하나님 뜻이면 내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회개의 역사로서 주시는 선물인 줄을 믿습니다.
④ 합당한 자도 있다고 합니다. (계 3장 4절)
사데는 옷이 유명하니까 흰옷 입은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거룩인데 소아시아 지방에는
우상에게 제사를 드릴 때 옷에 얼룩이 지면 제사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는 염색업이 발달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옷에 얼룩이 지지 않기가 너무 힘든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오염입니다. 두아디라나
버가모나 에베소는 몇 명의 미꾸라지가 전체가 더럽게 했는데 여기는 전체가 더럽고 깨끗한 자는 몇 명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온 교회가 다 잘 살고 환경이 좋은 게 얼마나 죽은 교회가 되기 쉬운지 아셔야 합니다.
너도 나도 교육열과 같은 똑같은 얘기를 하니까 거기서 다른 얘기를 하면 몰매를 맞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다니기 합당한 자가 몇 명 있다고 하는데 그런데서 신앙 생활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흰 옷 입은
자들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용서와 인도하심이 날마다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인식하고 그들의
삶이 지속적으로 새롭게 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죄인이다’를 외치는 사람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도,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사도 바울도 그 죄로 인해서 더
풍성한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핍박이 와도 자기 죄의 인식이 주께 나가는 합당한 자의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자신을 사도 중에 작은 자라고 했다가, 조금 지나서는 성도 중에 미미한 자라고 했다가, 죽기
직전에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죄는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죄는 날이 갈수록 더
생각나는 것이 합당한 자인 것입니다.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남은 자가 되기 위해서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큐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죄를 가지치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 위에서 말씀을 이룬다고 했는데,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할 때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씨와 그루터기로
구원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⑤ 이기는 자의 상급이 무엇인가 (계 3장 5절 ~ 6절)
흰 옷은 순결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소수의 흰 옷을 입은 신자가
노아 시대에는 8명이 있었고 소돔성에는 딱 3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아 시대에는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이 있었답니다. 흰 옷 입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흰 옷
입은 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언합니다. 반드시 한 사람 때문에 그루터기가 있어서 이 사데 교회에서 구원 받는
식구들이 더할 줄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이긴 자들에게 세가지 보상, 첫째 흰 옷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된다는 것이고, 둘째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게 된다는 것이고, 셋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데 교회가 실상은 죽은 자인데 살아나고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대학교 근처에서 붕어빵으로 성공한 사람이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한번도
어제와 같은 붕어빵을 굽지 않았다는 것처럼, 우리도 어제와 같은 기도와 목장과 봉사를 하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게 되면 살아나고 이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만 가져도
새롭게 하려는 아이디어가 생각날 텐데, 내가 죄가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주 안에서 형편없는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은 이런 생각이 저절로 나지 잘난 사람들은 ‘새로운 것 좋아하네~’하지 않겠습니까. 사데 교회가 변화되려면
정말 말씀과 예배가 회복되어야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면 나의 모든 것이 저절로 새롭게 되니까 진정한 살아
있는 교회가 되는 줄을 믿습니다.
<목장 나눔>
이번 주일에는 김민철 형제님(81또래)이 새로이 등반했습니다. 천주교 집안으로 교회 다니시는 여자친구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현재는 여자친구와 함께 우리들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짝짝짝!
목장 모임은 새로 이사한 승호 형제님의 집들이로 했습니다. 서울 시내이면서도 뒤에는 산이 있어서 풍경과
공기가 좋고, 내부는 깔끔하게 꾸며져 있는 승호 형제님의 집에서 맛있는 먹을 것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나눔을 할 수 있었습니다. ^^
▶ 질문
- 우리 안의 사데 교회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보시기 온전치 못한 부분은 무엇인가?
- 내가 회개가 잘 안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 김철주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정말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자인가 많이 회개하게 되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나는 그 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남들 앞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미뤄 왔었는데 오늘이라도 주님 앞에
가게 되면 주님이 나를 아는 체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심판의 주님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지난 주에는
소년부 아이들에게 신방 전화를 하라는 강도사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주로 미뤘었는데,
오늘 아이들을 보면서 주중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면서 그랬던 것이 많이 후회 되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추석 예배 이후로 세상 모임에 나가시는 것을 끊으셨고 어머니에게 목사님 수요 예배 말씀을 들으면서 이제
조금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고 하셨다는데 저보다 더 적용을 잘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목장
예배에서는 임창옥 간사님이 우리 가족들을 위해 수고하는 동생에게 천국 가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 동안 동생을 무시해왔던 내 안의 사데 교회 같은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 김민철
아직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되어서 성경 말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동안 나는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이
없으니 깨끗하게 잘 살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한
것도 많고 그 동안의 생각이 오만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에도 가봤지만 우리들 교회 말씀이
그래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여자친구와 함께 오게 되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아직 정확하게 교제 사실을 말씀 못
드리고 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해보지 못해서 여러 가지로 힘들지만 이번에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교회에 잘 정착할 수 있길 바랍니다.
▷ 박승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의심이 많고 교회에서 믿음이 좋아 보여도 실제
생활에서 안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가는 것이 싫어지고 예배를 중수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교회로 이끄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 천대근 목자
새로 온 여직원의 산만하고 아이 같은 행동에 많이 무시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팀장님은 그래도
이끌어가려고 하시는데 저는 배제해 버리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영적 교만인데 나의
강박증과 우울증을 직면하고 나니까 내 안의 영적 교만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고 좋게 보이고만
싶지만 실제로는 찌질하고 음란과 싸우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주중에는 목장 식구들에게 자주 전화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자꾸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게 되는 욕심이 생깁니다. 오늘 말씀도 회개가 핵심이고
회개를 하려면 내 죄가 깨달아져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살인자나 회개 안 하는
자나 마찬가지 일텐데 내 죄가 깨달아지기 보다는 내가 처한 환경으로 오히려 억울하고 생색이 날 때가
더 많습니다.
<기도 제목>
1. 박승호 형제님
- 합창단 활동을 잘할 수 있기를
- 10월 회사 행사 잘 치를 수 있도록
- 계획한 것들 잘 실천할 수 있도록
2. 김민철 형제님
- 다다음주 싱가폴 출장 가는데 준비 잘해서 잘 다녀올 수 있도록
3. 김철주 형제님
- 인간 관계에 있어서 지혜 있게 할 수 있도록
- 업무 복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 신교제 할 수 있도록
4. 천대근 형제님
- 실습교육 잘 배울 수 있도록
- 생활 예배 회복되고 내 죄와 욕심 가지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