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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 (계3:1-6)
오늘 제목이 ‘깨어라’인데, 저는 아들 깨우다가 반평생이 다갔음. 선천적으로 잠은 어떻게 할 수 없는구나 했는데 요즘 약간 깨어났다. 희망을 가시세요. 이건 선천적으로 안되는거야 해도 하나님이 일곱영의 성령님이 만져주시면 잠도 깰 줄 믿습니다. 아까 유아세례 받은 분도 정말 안타깝지만 그런 병도 다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은 실수와 죄악의 자리에서도 한가지 주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칭찬해주시고 상급으로 구원을 주신다. 창세기를 통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얼마나 형편없고 찌질했지만 그들의 자격과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100전 99패 했어도 1승의 겨자씨만한 믿음 때문에 그들을 다 믿음의 조상으로 찬란히 올린 줄 믿습니다. 마지막의 1승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선한 것이 하나 없어도 긍정의 눈으로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이 사데교회를 향해서 얼마나 인색하신지 모른다. 사데교회는 요만큼도 선한 것이 없다. 오늘 제목이 깨어라이다. 일깨어라. 왜 그러실까?
1. 사데교회는 살았으나 죽은자이다.
1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노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자칭은 살아있는 교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그 도시의 양심이고 정의 일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하나님도 칭찬해주셔야 하는데 죽었다고 하신다. 본인은 살았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신다. 나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이렇게 다르다. 오늘 이것을 잘 들으셨으면 좋겠다. 이 사데교회에는 다른교회에서 있었던 칭찬한마디도 없이 책망으로 시작된다. 주님은 야단치려면 꼭 칭찬을 훨씬 많이 하시는데 어디하나 취할 것이 없어서 책망만 하고 계신다. 겉은 아름답게 꾸몄지만 속은 #50026;어있는 시체라는 것이 주님의 진단이다. 사데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아보자.
서머나 동쪽 85km이고 두아드라 남쪽 약 48km지점에 전략상 요충지로서 이 도시는 수직으로 된 암벽위에 있다. 수직으로 된 암벽에 누가 올라가겠는가. 난공불락의 자연요세이다. 특별히 사데는 그곳에서 나는 사금으로 말미암아 전설적인 부의 상징이 되었다. 모직물과 염색공업이 성행해서 양털과 의복의 염색은 사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화려한 의복하면 생각나는 곳이 사데인 것이다. 그래서 옷으로 주로 이야기하신다. 흰옷 입은...등등. 상공업의 흥행은 사데를 쉽게 부요하게 해주었고 사치스러웠고 그러면서 속으로 부도덕하고 위대한 어미니라는 키빌레 여신을 섬기는 제사의식이 방탕하고 부도덕했지만 도시전체는 아주 세련되고 교양있고 멋있는 도시였다.
마귀가 주는 시험 3가지가 있다.
1.핍박의 시험 : 서머나교회가 이겼다.
2.이단의 시험: 에베소교회가 이겼다.
3.안일함의 시험: 사데교회가 졌다.
루터가 밤에 기독교인 박멸작전을 보여주는 꿈을 꿨는데, 첫 번째 사단이 사막을 가는 기독교인에게 사자를 집어넣었더니 사자앞에서도 찬송을 하고 가더라. 그래서 실패했다. 또 두 번째 바다를 항해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푹풍을 줬더니, 폭풍앞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하더라. 그래서 실패했다. 세 번째 부하가 와서 나는 성공했다. 어떻게 성공했냐? 나는 한 교회를 택해서 10년동안 모든 일이 잘되고 평안하게 만들어줬다. 그랬더니 그들의 영과육이 다 #50026;어버렸다. 편안함과 안일함에서 사데교회가 무너진 것이다.
당시 다른교회들은 우상숭배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데는 그런 어려움도 없었다. 다른 지역처럼 동족인 유대인들이 와서 괴롭히지도 않았다. 교회 내 이단 반대운동도 없었다. 환란도 핍박도 시험도 없었다. 그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교회도 나가면서 환란도 시험도 핍박도 없는 형통하고 형통한 교회였다.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그게 계속된다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생각하는 그런 교회가 사데교회였다.
그래서 살았다하는 헬라어는 활기차다는 뜻이 있고, 이름에는 명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겉으로는 활기차게 명성이 자자했다. 사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대교회까지. 한마디로 모든 것이 다 잘되는데 그 위에 예수까지 믿어 좋을 뿐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예수만이 나의 삶의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가 나의 삶의 이유과 근거가 하나도 될 수 없다. 그냥 교양강좌처럼 하나 얹어 놓은 것이다. 얹어놓았는데 여기서부터 교회가 신앙의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데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절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가라사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일곱 별은 1절에서 일곱교회 사자라고 말씀하신다고 이야기했다. 성령님과 일곱교회의 사자는 정말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하는데 사데교회에 필요한 것은 교회의 사자들이 완전하신 일곱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다시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 밖에는 길이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 가운데 잘먹고 잘사는 것 같은데 영이 딱 죽어버려 교회 오기가 너무 싫은 사람들이 있다. 죄 지으려고 교회오기가 싫다.
영이 죽은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이 세상에 환경이 좋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절대로 교회 안온다. 성령님도 일곱 성령님이 도우셔야 한다. 완전하신 성령님이 가서 만져주시지 않으면 사데교회는 살아날 근거가 없다.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죄는 도덕적인, 육적인 죄가 아니고 영적인 교만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영적인 교통이 단절됐는데 교회가 너무 교양 있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난 이야기하면 ‘어느 나라 이야기 하나?’ ‘왜 저렇게 광신으로 믿지?’하고 하나도 안 통한다. 영적으로 딱 막혔다. 너희들 회개안하면 심판하겠지만 그래도 이 교회를 여전히 살리고자 붙드시는 주님의 모습으로 일곱 영으로 나타나 주신 주님이신지 믿는다. 별 설명이 없었지만 일곱 영이 나타나신 이 교회는 성령님의 도움이 아니면 전혀 일어날 수가 없는, 인간의 힘으로는 안되는 교회이다. 그래서 깨어나라고 하시는데, 뭐라고 하시냐면 살았으나 죽은 자이기 때문에
2. 이 교회에서 온전한 행위를 하나도 못 찾았다
2절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2절에 두 개의 명령이 나온다. 너는 일깨우라. 긴장을 하고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두 번째는 죽게 된 것을 굳게하라. 쉽게말하면 죽으려고 하는 남아있는 것들을 강하게 하라.
죽으려고 한다에서 이것은 미완료 과거형으로 이것이 기록되는 순간에도 죽는 상태가 계속되고 가고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데 아직 죽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서 죽지 않도록 격려를 하고 촉구를 하라는 것이다. 죽음이 무엇인가? 살아있으나 죽은자로다고 하는 것이, 너무 잘먹고 잘사는데 죽었다고 하신다. 영적인 죽음이 어떤 의미의 죽음인지 알아야 하는데, 1절에도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하신다. 주님은 어디나 너를 안다고 하신다. 핍박도 알고 행위대로 갚아준다고 하신다. 죽은 행위인지도 알고 갚아준다고 하신다. 원어에는 행위들(works)로 복수형태로 기록하셨다.
행위를 안다고 하셨으니까 사데교회에 행위가 있는 것이다. 사데교회는 하는 일이 아주 많았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교회로서 갖추어야 될 것을 다 갖추었다. 갖추지 않고는 살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잘 모이고, 열심히 모였고, 많이 모였고, 예배도 잘드리고, 아름다운 찬양이 있고, 경건한 기도가 있고, 훌륭한 봉사가 있고, 좋은 세미나가 있고, 프로그램이 있고, 양육이 있고 모든 것을 다 갖췄다. 돈이 많아서.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누가보아도 살아있는 교회라고 생각할 그런 교회였다. 사데교회가 주님 보시기에 행위가 전혀 없는 교회가 아니고 이런 기가막힌 행위와 행동들로 유명해진 교회였다. 사데교회 하면 명성이 났다. 명성이 너무 유명한 교회이다. 이런 유명한 교회가 지구상에 지금 1/7이 있다는 것이다. 잘 분별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거기에 온전한 행위가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우리는 가슴을 여미고 들어야 한다. 요즘 계시록하면서 초대교회에 얼마나 핍박이 많았는지 알았다. 그때는 핍박을 받으니까 오직 주님만 붙들고 하나님만 예배하면서 가는데 드디어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이 됐다. 그러니까 예수믿는게 너무 편해졌다. 로마는 전세계를 지배하고 돈이 많았다. 예수믿는게 편해지니까 싸울 대상이 없어졌다. 그후부터 교회에 가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로마의 교회는 초대교회의 기가막힌 믿음의 교회에서 중세의 암흑시대로 가게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많은 교회를 세웠다. 많은 교회를 건축했다. 유럽에 가보니까 리텔에 갔을 때 각 도시마다 제일 좋은 장소에 제일 높은 건물이 성당이다. 어떤 건물을 지어도 성당보다 높으면 안되어 고도가 정해져 있다. 그 화려 찬란함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피렌체를 가도 두오모가 있고 밀라노를 가도 두오모가 있고 로마에도 있고, 얼마나 크게 지었는지 그 동네 주민들이 다 올 수 있도록 곳곳에 크게 교회를 지었다. 크게 지을 뿐만 아니라 대리석을 깎아서 돌로 로코코, 바로코, 고딕 등 갖은 양식으로 깎아질렀고, 금으로 만들었고 파이프오르간이 멋있고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 벽화를 그렸고 들어가면 찬양이 너무 멋있게 그레고리안 찬트의 단선율로 너무 경건하다. 거기 가 있으면 너무 훌륭한 찬양에 훌륭한 예술품에 압도되어서 제사장들은 화려한 금박이 있는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홀을 차고 있으면 압도가 되는 그런 교회를 유럽 곳곳에 지어놨다.
교회 짓는 경쟁이 벌어져 재정을 충당하려고 면죄부를 팔았다. 헌금을 하면 죄가없다.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에 네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 이렇게 하나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구원의 복음을 이렇게 형편없이 사고팔고 하면서 악을 저질렀다. 이렇게 교회를 지으면서 모든 건물은 교회보다 낮아야 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굉장히 섬기는 것 같으면서 성경을 읽지 않았다. 성경은 좌물쇠로 채워서 사람들에게 보이기만 해놓고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도록 좌물쇠로 채워놨다. 성경을 가지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하나남의 말씀으로 읽혀야겠다 하면 다 이단취급을 해서 처형했다.
이 모습이 바로 사데교회였다. 겉모습이 너무 화려하고 찬양, 기도 모두 경건하게 주문외우 듯이 했다. 결국 중세교회는 타락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돈이 너무 많아서 천년대의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갖은 중세의 악이 행해져서 고아원이 나오고 낙태가 나오고 병든 신앙생활이 겉모습은 좋게 보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건물, 많은 헌금, 직분...교회가려면 좋은 옷 입고 교회 가야하고 또 전부 모자 경쟁을 하면서 교회를 간다. 누가 어떤 모자를 썼는가? 깃털을 어떤 깃털을 썼는가?
그때부터 감격이 식어지기 시작했다. 짜증스러운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끌려서 교회를 가는데 남들 앞에서도 기쁜척하고 은혜스러운 척 할 뿐이다. 그래서 점점 스스로 허탈해졌다. 주님은 이 사데교회에게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죽어가는 것이다. 이땅에 빛을 들고와서 비쳐줘야 하는데 등불이 점점 꺼져가서 암흑시대라고 한다. 너는 죽어가는 사람이다 라고 정확하게 진단을 하신다. 모든 일을 하는데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들만 하고 있었다. 지금 여러분들의 예배는 어떤가? 어쩔 수 없이 끌려와 짜증이 납니까? 내가 왜 여기 왜 와서 앉아있는가 이 생각이 드는가? 짜증나면 여기와서 앉아있겠어 하겠지만 짜증나는 사람도 5명쯤은 있는 것 같다. 그러면 그들의 살 길은 무엇인가?
3. 회개하라.
3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생각하라고 했다. 기억하라가 더 보편적인 의미이다. 기억하라는 어떻게 받았으면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맨 처음에 구원의 복음을 받았는지 기억해 내라. 사데교회가 어떻게 개척이 되었는지 기억하라. 구원의 복음을 생각하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받았는지 처음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깨어라’는 결국 회개하라는 말이다.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했는데, 지키다는 순종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들이 받고 들은 복음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것은 회개하는 자세에 있어 중요하다. 회개하려면 말씀을 듣고 돌이켜 순종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않으면 도적같이 주님이 임한다는 것은 심판의 주님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준비된 사람은 어떤일이 와도 구원이 되지만 도적같이 임한다는 것은 구원과 심판의 의미로서 심판의 의미가 강하다. 그런데 사데교회가 천연암반으로 수천년의 영광을 누리고 있었지만, 사데라는 도시도 두 번이나 함락된 적이 있다. BC6세기경 로마의 전신으로 전 세계를 주름잡던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조그만 도시 사데 하나를 점령 못해 물리치러 왔다. 그런데 깎아지른 암벽을 보니까 기가 막힌다. 그래도 2주 동안 진을 치고 있었다. 사데의 한 병사가 꼭데기에서 졸다가 투구를 떨어뜨렸다. 그 병사가 비밀통로로 투구를 주워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비밀통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령관에게 알려서 비밀통로로 올라갔더니 모두 다 잠을 자고 있었다. 그래서 함락을 해버렸다. 그 이후 200년 후에 안티오쿠스 대제시대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함락 당했다. 두 번이나 함락 당한 적이 있다. 한번 함락을 당하면 무너지는 게 시간문제다. 아무리 난공불락의 성도 잠을 자면 끝인 것이다. 천연 요세도 잠을 자면 끝인 것이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안심할 때 살았다 하나 실상은 졸고, 죽은 것 같은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두 번 함락되고 지진까지 나고 폐허가 되다시피 한 상태가 와서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의 도움을 받아 다시 세워지게 된 것이다.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에는 사데도시는 죽었다가 살아나서 다시 번영하게 된 때이다. 예전의 일들을 잊어버리고 다시 천연 요세가 되어 무풍지대가 되니까 다시 예전의 나태가 몰려와서 이렇게 성경에 등장하고 그 후 사데는 폐허가 되었다. 영적으로도 초대교회의 핍박의 시절을 생각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도적같이 이르러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이고, 사데교회에도 그런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천국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와 같다고 생각한다. 천국은 기다림과 연결되는데 똑같이 열 처녀가 기다렸지만 다섯은 기름을 준비했고 다섯은 기름이 없는 것이다. 기름이 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기름준비이다. 같이 예배드리고, 큐티를 하고, 목장을 참석해도 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이 왔을 때 한 사람은 해결이 되고, 한 사람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자기 죄를 보는 것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고 집안일을 제쳐두고 전도하러 나가는 것이 준비가 아니다. 신앙은 상식적이고 인격인 것이다.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가정에서 존경과 사랑을 이루는 것이주님을 기다리는 올바른 준비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나 올바르게 준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이 더디 오시는 것이다. 미련한 처녀들이 나중에 ‘신랑이로다’ 할 때 기름이 없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나누어 달라고 할 때, 그것은 겸손하게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때는 나누어 줘도 안되는 것이다. 절대로 나눠줄 수 없다. 잘 들으셔야 한다. 우리가 육신의 신랑이 잘생기고 돈 많아서 좋아서 안주하고 있다가 그 신랑이 바람을 피고 부도가 나면 전부다 원망과 낙심으로 꺼져갈 수밖에 없다. 이 미련한 처녀들은 준비는 안하고, 유명한 교회를 다녔는데 사건이 나면 말씀이 안 깨달아 진다고 떼를 쓰는 것이다. 다른 처녀들은 말씀의 기름, 회개의 기름을 준비했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와도 해결할 수 있는데, 이럴 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끊어줘야 한다.
미련한 처녀들은 돈도 많고 지위도 높았을 것이다. 돈 많고 지위 높다고 슬기로운 처녀가 욕심 때문에 끊지 못하면 안된다. 돈과 지위가지고 그러면서 믿음 없는 사람은 믿음 있는 내가 끊어줘야 인생에 대해 심각해지는 것이다. ‘돈도 많고 지위 높은데 예수 안믿어서 결혼안해’ 그러면 그 사람이 조금 인생에 대해 심각해 진다. 이런 역할을 슬기로운 처녀가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믿음이 없어서 끊었다는 그것 때문에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못한다. 그 사람이 돈이 너무 많아서 내가 자꾸 기웃거리는 것이다. 구원은 개인구원이다. 같이 못 가는 것이다. 딱 끊어줘야 지금 이땅에서라도 정신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기 위해서 ‘보라, 신랑이로다’ 하는 사건이 찾아오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이땅에서 도적같이 임하시는 것이 인간적인 시각을 끊어주시는 사건인 것이다. 구원은 개인구원인 것이다. 누구따라서 못 가는 것이다. 내가 나눠줘서 마지막에 갈 수 있는게 아니다. 냉정해 보이지만 끊어야 될 것이 있다. 불신교제도 끊어야 되고, 뇌물도 끊어야 되고, 냉정해 보이지만 끊어야 된다. 돈이 싫고 지위가 싫은 사람이 이땅에 예수님 때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이 내가 뭔가 잘 살았구나, 나의 학벌과 돈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어마어마한 사명이 믿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사데교회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전혀없다. 교회가 완전히 세상이다. 너무 화려한 교회가 세상이 들어가 예수이야기를 하면 손가락질을 하는 교회가 사데교회이다.
미련한 처녀들은 같은 행동을 해도 때를 못마춘다. 자기가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니까, 나눠달라고 떼를 쓰고, 천국 문이 닫히니까 항변을 한다. ‘나는 할 일 다했다’, ‘내가 기다리다가 잘 수도 있지’, ‘내가 전도를 해서 불신결혼을 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 사람을 구원받게 하겠느냐’, 그렇게 항변하고 외치고 부르짖는다. 술 마시는 사람도 다 ‘내가 너 때문에 술 마신다’, 바람피우는 사람도 다 ‘내가 너 때문에 바람피운다’, ‘니가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바람 피우겠느냐’, 이게 다 항변이다.
끝까지 미련한 처녀들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 내가 잘못 했습니다’ 이러지 않는다.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가 아니라 ‘나눠줘. 하나님 왜 문이 닫혔습니까? 열어주소서’ 이것만 한다. 환경을 열어달라고 부르짖는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어?’ 이것이 도적같이 오는 주님이 심판인 것이다. 사데교회에 있다가는 다 그런다. 심판이 무엇인지 아시는지? ‘왜 나한테는 말씀이 안들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한테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게 저주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언어이다. 전혀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 교회를 다니는데 죄도 모르고 회개도 모른다. 맨날 달라는 것 밖에 모른다. 그래서 회개가 없다.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언제나 생각지 않은 일이 올수도 있고, 더디 올 수도 있고 신랑오시는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눈앞에서 문이 닫혀도 회개가 없고 원망만 한다. 오늘 본문은 종말의 때에 섬김의 문제보다 개인의 구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남편하고 관계가 너무 안 좋다. 냉정한 관계 속에 있는데 사람들에게는 교양 있게 관계가 좋은 척 한다. 회칠한 무덤처럼. 어쩌다 부인이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으니까 갑자기 가서 다정하게 ‘여보’한다고 하면 부인이 아는 척 하겠나? 우리는 신랑 오실때를 대비해서 미리 잘해야 한다. 사데교회에서 있다가 어떤 사건이 나서 ‘주님, 나 좀 도와주세요’ 이러면 아는 척을 못한다. ‘평소에 나 없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했잖아’ 하고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모르노라’ 하신다.
똑같은 사건에서도 말씀이 있으니까 오늘 청년부 주보를 보니까 목자인 자매가 황반변성이 돼서 점점 시력이 없어진다고 한다. 이 자매가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눈이 아픈데도 예수 믿었는데 되는 일이 없냐고 할까봐 도리어 말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 자매가 잘나가는 방송작가인데 목사님의 어록을 어떻게 드러나지 않게 대본에 쓸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사도바울처럼 눈을 멀게하셨다. 이런 사건을 너무 객관적으로 썼다.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죽어있던 저를 다시 살리시려고 증거를 보이시고, ‘고난이 축복이다’라는 목사님 말씀을 늘 들어왔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슬프지 않았다고 한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시던 아버지께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예배에 나가시고 ‘목사님 말씀이 꼭 나한테 맞는 말씀 같다’고 하는 놀라운 고백을 듣는 기쁨을 주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와서 예배를 드리니까 눈보다도 그게 기쁨이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도 구원의 사건이지 심판의 사건이 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런 인재들이 구원의 소식을 듣고 증거를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 아니겠는가. 미련한 처녀들은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열어주소서. 열어주소서.’ 하나님 뜻이면 내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할 것이고 이런 마음을 가지면 회개의 역사로 쓰시는 선물인 줄로 믿는다. 이 교회에는 ‘깨어라’에 합당한 자도 있다고 한다.
4. 합당한 자도 있다.
4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사데는 옷이 유명하니까 옷이 찬란한데, 흰 옷 입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인생의 목적이 거룩인데, 소아시아 지방에는 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옷이 얼룩이 가면 제사를 드릴 수가 없다. 염색업이 발달했지만 옷에 얼룩지지 않기가 너무 힘들다. 정결한 제사를 자기 나름대로 드릴 수가 없었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오염이었다. 그동안 두아드라나 버가모, 에베소는 몇 명의 미꾸라지가 전체를 더럽혔는데 사데교회는 전체가 더럽고 깨끗한 자는 몇 명 밖에 없다.
온 교회가 다 잘살고 환경이 좋은게 얼마나 죽은 교회가 되기 쉬운지 알아야 한다. 너도나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곳은 교육열 밖에 없기 때문에 다 똑같은 소리를 하니까 거기서 아니라고 하면 몰매 맞는 것이다. 거기서 옷을 더럽히지 않은 흰 옷 입은 몇 명 있다고 한다. 나와 함께 다니기 합당한 자가 결국 몇 명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신앙생활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너 북한에서 왔냐?’ 이런 소리가 들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지속적으로 새롭게 되고 있는데 그들은 ‘나는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그분과 동행할 수 있다. 나는 주님의 용서와 인도하심이 날마다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흰 옷 입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나는 죄인이다‘를 외치는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서 보시기 합당한 자이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도, 스데반을 돌로 죽인 사도바울도 그 죄로 인해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사역을 하면서 핍박이 올 때도 베드로는 ’나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람인데..‘, 사도바울도 ’나는 스데반을 죽인 사람인데‘, 이런 자기 죄의 인식이 주께 나아가는 합당한 자의 태도가 되지 않았나. 그렇지만 누구나 다 죄가 많아서 사도바울은 처음에는 나는 ’사도중에 작은 자‘라고 했다가, 조금 지나서는 ’성도중에 미미한 자‘라고 했다가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는 ’죄인중에 괴수‘라고 했다.
죄는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날이 갈수록 더 생각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자이다. 그래서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남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QT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욕심과 죄를 가지치기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땅 위에서 말씀을 이루신다고 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할 때,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씨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루터기를 꼭 남겨두신다. 항상 맨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있다.
5. 이기는 자의 상급이 무엇인가?
깨어서 이긴자는 어떤 상급을 받는가?
5절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흰 옷은 순결과 승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소수의 흰 옷 입은 신자가 노아 시대에는 딱 8명이 있었고, 소돔성에는 롯과 2딸 딱 3명 있었다. 엘이야 시대에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있었다. 흰 옷 입은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 같다. 우리가 집에서 흰 옷 입은 그 한사람이 되기를 축원한다. 반드시 한 사람 때문에 그루터기가 있어서 사데교회에서도 구원받는 식구들이 더할 줄을 믿는다.
이긴 자들에게 3가지 보상
1)흰 옷 입을 것: 하나님 나라로 초청되는 것을 의미
2)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억속에 있게된다는 것
3)이기는 자의 이름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신다
사데교회에는 너무나 교양이 있지만 아멘소리도 없고 절대로 사람들 앞에 나가서 예수의 이름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자기가 예수 믿는다고도 이야기 안한다.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예수의 이름을 시인했기 때문에 나도 천국에서 너를 시인하겠다고 하신다. ‘내 기억속에 있고 너를 시인하겠다’고 하신다. 흰 옷을 입고 생명책에 이름을 흐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시인하겠다고 하신다.
서머나 교회는 너무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인데, 사데교회는 실상은 너무나 부요한데 죽은 자라고 하신다. 사데교회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겠는가?
한 대학교 근처에서 붕어빵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는데, 붕어빵 리어카 하나로 굉장히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붕어빵을 잘 파는가? 물었더니 그 사람이 ‘나는 한번도 어제와 똑같은 붕어빵을 굽지 않는다’고 했다. 붕어빵을 가지고 재주를 피워봐야 얼마나 피울까 생각하는 분이 계시겠지만, 그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새로 굽는가? 그분은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붕어빵을 굽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분들에게 더 맛있는 붕어빵을 구울까? 그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에게 맞는 붕어빵을 구워야지. 그래서 입맛이 대학생들을 통해 인정이 되었고, 꼬리를 물어 단골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똑같은 것 같고 매너리즘에 빠져 교회 오기 싫은데, ‘나는 기도를 해고 어제와 똑같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 ‘내가 목장을 가도 어제와 똑같은 목장에 가지 않는다’, 나는 날마다 더 새로운 목장, 새로운 목자가 되고 새로운 선생님이 되어서 나는 새로운 것을 늘 가르치고, 기도하고, 봉사를 하겠다. 이 마음으로 남편을 위해서도 새로운 봉사, 아내를 위해서도 새로운 봉사, 모든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게 되면 살아있는 교회이다. 저도 날마다 설교를 똑같이 하는 것 같지만 다음주에도 더 새로운 영의 설교를 준비 할 것이다. 날마다 똑같은 것 같지만, 이 세대에서 다루는 사건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른데 새로운 설교를 안하겠는가.
여러분도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선교를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봉사를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목장을 하고, 초원을 하고, 평원을 하고. 할렐루야. 마음만 가져도, ‘오늘은 내가 어떻게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사람을 변화시킬까?’ 오늘은 침묵하고, 내일은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날은 중간 보이스로 가고, 이렇게 자꾸 아이디어가 생각나고 새롭게 된다.
그러면 내가 죄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주 안에서 내가 형편이 없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은 이런 생각이 저절로 나는데 잘난 사람은, 새로운 것 좋아하네. 그나물에 그밥인거지. 저 목사는 똑같은 설교만하더라 이렇게 생각한다. 맨날 똑같지, 죄인이라는거지 회개하라는거지. 맞다. 그렇지만 저는 맨날 새로운 이야기를 한다. 들리지 않는 사람은 맨날 똑같은 소리를 한다고 한다.
사데교회에는 예배가 죽었다. 경건의 모습은 있지만 능력이 없다. 사데교회가 회복하려면 예배가 살아야 한다. 예배가 사모되어야 한다.
이번에 오신지 오래되지 않은 분이 글을 남기셨다. 지방에서 올라오면서 글을 써주셨는데, 주일날만 그동안 주말부부로 살면서 오셨다. 주일 예배당에 들어오면 자유로우면서 질서있고 은혜가 넘치는 찬양팀의 찬송이 나를 맞으며 예배드릴 준비를 하게 한다. 이어서 예배가 시작되고, 유아세례가 너무 아름답다. 어디서 보지 못한 세례식이다. 왜 목사님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며 중요시하는지 이제 알았다. 목장 식구들의 자그마한 선물과 함께 축하하는 자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제 마음이 그렇다. 이어지는 아빠의 간증과 신앙적으로 그리고 세상적인 삶에서도 자녀와 하나님 앞에 책인감을 갖게 할 것 같다. 너무 좋은시간...
집사님들의 간증도 대단하시다. 어디서 저런 용기를 얻으셨는지. 조금은 다르지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나는 언제 자격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두려움도 있다. 아직은... 목사님의 찬양 ‘왕이신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순간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이어 눈물이 나온다. 사나이가. 오늘도 눈시울이 촉촉해지지만 아내 몰래 눈물을 닦는다. 오늘도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완료된다. 목사님 말씀이 이어진다.
이해되는 날은 정말 새롭게 살자는 느낌이 온다. 온 마음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졸고 있는 날은 아내의 뾰족구두 공격을 받아 멍든 날이다. 요즘은 점점 멍든 날이 줄어들고 있다. 붙어만 있으니 변해가고 있다. 말씀이 끝나면 새신자 환영회가 시작된다. 야구에서 신인왕은 한번 밖에 기회가 없다는데, 저도 새신자 환영회에 처음 참석한 기억이 난다. 그날은 바람핀 집사님들만 계셨는데 서로 지은죄를 오픈하시고 새로운 삶을 사시는 모습을 얼굴에서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우리들교회에 와서 배운 것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가자’, ‘공동체에 붙어만 있자’, ‘어떤일에도 부부가 아닌 다른 남녀가 같이 차를 타지 말자’, ‘내 죄를 보자’, ‘가정회복이 우선이다’, ‘자격이 되어야 봉사한다’, ‘모든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기억나는 것만 적었지만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주보에서 늘 헌금통계를 보면서 십일조가 전체 헌금의 60-80%를 차지하는 것을 본다. 대단한다. 목사님은 헌금설교도 안하시는데... 이유가 뭘까. 그렇지만 예배를 드리니 자연히 알게됐다. 목장예배.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고 너무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우리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두가 오픈을 하니까 목욕탕에 온 느낌을 받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 그만그만한 것 같다.
저는 우리들교회에 와서 가치관이 180도 바뀌었다. 올바른 신앙생활이 세상삶의 우선이라고, 8년 간 지방에서의 주말부부 생활을 정리하고 오늘 집으로 올라간다. 올라가서 바뀌어야 할 생활습관이 너무 많다. 차차 변할 것이다.
그러나 먼저 해야 될 2가지를 말씀드리겠다. 첫째, 수요예배를 아내와 손잡고 가기. 둘째, 몸짱 남편이 되어 아내와 데이트하기 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와 용기, 그리고 가정회복의 길을 열어주신 목사님과 우리들교회 모든 분들게 감사드린다. 마지막 날 짐을 정리하면서 아무개 집사. 할렐루야.
여기와서 보지도 않으시고 주일예배와서 이렇게 예배의 은혜를 받으셨으니까 올라오는 발걸음이 감사해서 글을 올리셨지 않겠나. 사데교회와 대조적인 글이 올라와서 사데교회가 변화되려면 말씀과 예배가 회복되어야 될 줄 믿는다. 그러면 나의 모든게 새로워진다. 오늘도 새롭게, 내일도 새롭게. 결혼생활도 새롭게, 자녀교육도 새롭게. 복장도 새롭게. 모든게 새롭게가 저절로 되니까 진정한 살아 있는 교회가 되는 줄을 믿는다.
말씀을 맺는다. 오늘 주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깨어라고 하신다. 충격적인 요법을 쓰면서 너는 살았으나 죽은자라고 하신다.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이제 너의 남은 것을 굳게 하고, 받고 듣고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하신다. 오늘 깨어난 합당한 자도 있다고 하신다. 깨어 이기는 자에게 주실 상급을 바라보면서 생명책에 이름을 흐리지 않으시고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란다. 이제 소망이 없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서 사데교회를 살리시기를 바란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지금 도적같이 임한 사건이 있는가? 해석이 안되는가? 하나님께서 내가 살았으나 죽은 자라고 하시고, 내 행위에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 일을 허락하셨다고 하셨다. 내 인생이 해석이 잘 되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음성을 듣고 이기는 자의 상급을 받게 해달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시인하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다같이 기도하겠다.
우리들교회는 이미 유명해졌다. 우리들교회가 우리가 생각해도 행위가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너는 살았으나 죽은 자이고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실까봐 두렵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아직도 미련한 자, 다섯 처녀처럼 회개가 안되고 원망을 하며 말씀이 안 깨달아지고 날마다 울며, 불며, 슬피울며 환경을 열어달라고 하는 성도들이 너무나 많이 있고 제 속에도 아직 그나마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할만큼 다했는데, 내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래서 주님이 도적같이 오셨는데, 슬퍼서 인생이 분해서 해석이 안되는 그런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일곱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들 아직 잘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드르이 인생이 해석이 되지 않고 있다.
여러분들 가운데 아직도 주님이 도적같이 온 사건 가운데서 해석이 안되서 슬피우는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이라도 이 말씀을 듣게 하신 것은 이땅에서 도적같이 오신 주님 때문에 진짜 신랑되신 예수님을 알라고 주님이 사랑하신 사건임을 알게 도와주소서.
이 도적같이 오신 사건이 여러분들의 인생의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내 인생의 결론인 것입니다.
내가 죄와 회개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망이 차는 것을 알게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내가 이 모든 삶에서 깨어나기를,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이기는 자에게 주신 상급을 받고, 흰 옷을 받고,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인 것을 알며 하나님이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아니하고 내가 너를 시인하겠다는 상급을 들고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빛을 들고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내가 도리어 살려주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깨어나기를 원합니다. 주여, 일깨워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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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의 모습이 내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내 죄를 보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환경을 열어주시라고 항변하고 떼쓰는 악이 내안에 있습니다. 지난 주 도적같이 오신 사건이 내 삶의 결론인 것을 인정하게 해주세요.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이 닥쳤을 때 말씀이 안들리고 원망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이땅에서 도적같이 임하시는 것이 인간적인 시각을 끊어주시는 사건이라고 하신다. 다시 깨어나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깊이 맺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지혜롭게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모임은 드디어 얼굴을 보게 된 임선교자매와 함께 셋이서 오붓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또 다시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고 한 주 동안의 사건들과 말씀가지고 나눔을 가졌어요.
힘든 사건 중에 있는 지체들을 체휼하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하지 못한 혜빈이와 신자에게도 동일한 은혜 내려 주시기를 바래요. 다음주에는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기를~♥
<기도제목>
선교: 해결해야 할 것들 조급한 마음 갖지 않고 기다릴 수 있도록
남자친구에게 분노하지 않고, 남자친구가 공동체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인: 말씀대로 사건 잘 해석하고, 공동체에 묶여서 양육교사 훈련 잘 받고, 고등부 잘 섬길 수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회복되도록, 신교제..*^^*
남호: 저주가운데 살지 않고, 집에 있는 시간동안 가족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동생의 비전을 위해, 동생이 하나님 만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