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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날
(이성훈목사님 오바댜 1:10-16)
1. 나도 원오브뎀입니다.
이 고백을 해야 됩니다.
(10절) 에돔의 죄를 한 단어로 말하면 그것이 포학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앞서 읽어드렸지만 좀 이상한 게 있습니다 11절부터 14절까지 에돔이 하는 일, 또 경고를 받는 일을 쭉 보면 에돔이 처음 한 일은 이 포학이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폭행이 아니었어요. 그냥 그들은 멀리 서 있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거기서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이제 마음에 기뻐한 것이죠. 유다가 내 라이벌 유다가 지금 망하고 있네. 있구나. 그냥 기뻐했을 뿐이에요. 그러다가 기회가되어서 성문이 열리니까 재물을 얻기 위해서 재물에 손을 댔습니다. 그리고 도망친 형제를 붙잡아서 막 칼을 휘두르고 막 잔인하게 하고 이런 거 사실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묶어서 포악이라고 지금 이름 붙이고 계신 거예요. 노아 때 홍수가 온 이유가 그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라고 했습니다. 원어로 보면 이 포학과 창세기의 포악함이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멀리 서서 구경한 것부터가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게 한 그 죄와 똑같은 것이다.
지금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죠. 그리고 그 포학이 행한 곳이 어디입니까?
형제예요.그러니 더 잔인한 겁니다. 어려울 때 남이 안 온 것은 그냥 서운하고 끝날 일일 수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나와 가까운 형제가 나의 가족이야. 나의 지체가 이웃이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오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아주 괴로운 일입니다.
( 11절) 그날 에돔은 이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
내가 멀리 섰던 날 멀리 섰던 날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멀리는 진짜로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닙니다. 맞은편입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는 맞은편이지만 심리적으로 조금 유식한 말을 쓰자면 실존적으로는 이 에돔 사람들이 너무 자기 싫어하는 그 유다를 향해서 멀리 멀리 거리를 두고 딱 거리두기를 하고 지금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예루살렘이 불타는 날 에돔이 한 일은 그냥 구경하고 불구경했던 거예요. 그런데 11절 끝에 뭐라고 하시나요?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영어로 하면 원오브뎀입니다
원오브뎀 여기서 them 이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부수고 불태우고 그것을 빼앗아가고 제비 뽑고 있는 그 포악한 말 문자 그대로 포악한 바벨론 군인들이 그들인 거예요.
이 구경만 한 에돔 사람들을 지금 그 포악한 바벨론과 똑같다.
one of them 입니다. 너희도 그들 중 하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에돔에게도 할 말은 있었을 것 같아요.
바벨론이 한 일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이 한 일이지 제가 한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냥 구경만 했을 뿐인데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변명입니다.
내가 어떻게 한 것도 아닌데요? 저는 지금 제 코가 석자여서 그렇게 남의 일에까지 간섭할 여유가 없어요.
제 삶 살기도 바빠요. 아이고 하나님 그렇게 하신 일인데 내가 형제가 어려움을 당한 일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변명을 할 때가 많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애돔을 향해서 또 그런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은 오늘 너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도 그들 중 하나다. 너도 그 포악한 바벨론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에돔이 아무것도 안 했나요? 아니에요 했어요. 칼은 안 해도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은 서 있었습니다.
어디예요? 맞은편에요.
심리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면서 거기 서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만 믿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상황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서 있었는지 어떠한 태도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시는 거예요.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목장에서 교회에서 우리의 지체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어요.사업이 기울고 건강이 망가지고 자녀가 사고를 치고 부부가 쪼개지고 이러한 고난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집 어떻게 됐대? 막 이렇게 자세히 물으면서 그 집을 위해서 같이 걱정하고 기도해 주기는 너무 잘 하죠.
그러나 그분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그분을 직접 찾아가는 일은 사실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 목자님들이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죠.
주일에 우리가 예배당에서 마주치기 쳐도 그냥 눈 인사만 하고 지나갈 때가 사실은 많아요. 아무리 믿음이 있고 아무리 섬기는 마음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냥 본성적으로 멀리 서 있는 것이 심리적으로 그냥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에겐 너무도 편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인데, 그것을 당하는 그 홀로 두기를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일이 이렇게 보이는 것이죠.
시편 38편 11절.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로도 멀리 섰나이다. 우리는 그냥 우리 삶을 살아갈 뿐인데, 지금 고난 중에 있는 그 형제는 멀리 있는 것처럼 외로움 속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들과 달라요. 원오브뎀이 아니에요. 여러분 근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책임자는 맞는데 책임은 없다는 말 아니에요 그렇죠 책임자는 맞는데 책임은 나한테 없다는 말 아니에요 여러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우리가 흔히 뭐라 그래요?
바보라 그러는 거예요. 따라서 저는 바보인 거예요. 논리가 정확하죠. 바보인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이제 보게 됩니다. 저는 이 심리적으로는 실존적으로는 저들과 달라 멀리멀리 제 자신을 거리 두기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또 저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목사님께서 저를 두고 하시는 그 한마디가 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거예요. 저 사람도 치리 받았으니까 지금 저기에 앉아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는 자격이 안 돼서 못 나와요.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제서야 제가 정신이 좀 드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11절이 바로 제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느니라 너도 원 오프 뎀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저부터 하나님 앞에 고백하려고 그래요. 하나님 저도 원 오브 뎀 입니다. 이게 진짜 말이 아니라 저의 마음으로 또 저의 삶으로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도 저만 지금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여러분도 한번 지금 머릿속에 생각해 보세요. 그분들의 얼굴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그러면서 이 시간 저와 함께 이 오바댜 말씀에 근거하여서 한번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하나님 저도 원 오브 뎀입니다. 저도 원 오브 뎀이에요. 뎀은 여러분 머릿속에 떠올린 그 사람 저도 그와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입으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고백하는 한 주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최근 가족이나 목장 식구의 어려움을 알고도 모른 채 한 일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 사람 곁에 가면 내가 어떤 손해를 볼 것 같았기에 그러셨어요?
나는 누구와 같은 죄인이라고 인정하기가 가장 싫으신가요?
지금 떠올린 그 사람 왜 싫은지, 나는 왜 왜 그분과 원혹됨이 싫은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그래도 내 형제입니다.
(12절) 형제가 지금 망하게 된 그 재앙의 날입니다. 그날 방관할 것이 아니며 하세요. 방관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방관은 그냥 눈만 뜨고서 쳐다보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담겨 있는 바라봄인데 여기서는 어떤 마음이냐 보면서 속으로 아이고 고소해 아이고 고소해 아이고 그 참 꼴 좋네. 아이고 잘 됐다 이렇게 하면서 바라보는 그 눈, 그 눈이 지금 여기 있는 방관이에요. 감정이 담겨 있는 거예요. 내가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내가 라이벌로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지금 재앙을 당했을 때 우리 안에서 자동적으로 발생되는 그 마음 그것이 방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뒤따라 나오는 게 뭐예요? 기뻐하지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재앙을 받으니까 호소하다라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마음의 기쁨이 생긴다는 것이죠. 내버려 두면 그러다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입을 크게 벌리는 거 입이 열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지만 다른 데 가서 막 이제 뒷담화를 까고 내가 그 사람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살더니 정말 벌 받아서 그런 거야라고 하면서 막 입으로 떠들어대는 여러분 이게 에돔의 모습이 아니죠. 저와 여러분이 정말 딱 우리의 생활에서 이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에돔 사람들은 손과 발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지만 형제의 날 그 형제의 재앙을 보면서 지금 마음과 입이 먼저 열린 거예요.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13절) 마음과 입만 가다가 이제 발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어떻게 돼요? 손에 손이 제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모든 것의 끝에는 돈이 있다고 결국에 그게 목적인 거예요. 내가 왜 싫어해요? 왜 내가 에돔에게 유다가 막 라이벌이고 너무 싫은 존재인 것처럼 왜 우리 각자에게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원오브 뎀이 되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왜 싫은 거예요? 그 사람에게서 내가 지금 취할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내 욕심 때문에 그게 싫은 거예요. 결국에는 이제 내가 그것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죠.
형제의 환난 가운데 이때다라고 하면서 내가 취하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지금 제일 무거운 말이 맨 앞에 있는 거예요.
내 백성 내 백성이 유다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 매 맞는 중입니다.
우리가 열왕기하 주일 말씀을 통해서 계속 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유다가 매 맞는 모습을 아이 버린 에돔이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쟤네 저거 저거 저 죄 지어서 망하는 거잖아 쟤네 그냥 자기들이 받을 거 받는 거잖아. 내가 저럴 줄 알았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여러분 이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에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에돔 사람들이 그렇게 비난하고 조롱하는 그 제네 이 유다 사람들이 누구예요?
바로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여전히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이죠. 여러분 우리 지난주 주일 설교에서도 봤지만 지금 성전이 불타고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그 와중에도 성전의 모든 그 도구들이 다 끌려나가는 바벨론으로 이 끌려나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성전을 뭐라고 부르셨어요?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끝까지 불러주신다니까요. 마찬가지로 자기 죄 때문에 매를 맞는 사실 벌받아도 싼 이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버림받은 백성이다.
저주받은 백성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 백성이라고 불러주시는 내 백성이라고 그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인 겁니다.
우리는 오르락내리락 해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향한 마음도 변하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도 계속해서 변합니다. 좋을 때는 너무 좋았다가 싫을 때는 너무 싫어지는 게 우리의 마음이에요.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붙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니에요.
끝까지 내 백성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인정해 주시고 유지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함 심인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너무 밉고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그 사람도 하나님의 백성인 거예요.
(14절) 멀리 섰던 사람이 이제 성 안으로 들어와서 내 거리 사거리 길목에 딱 버티고 서는 거예요. 왜요? 목숨 하나 건져보겠다고 막 도망가기 바쁜 그 유다 사람들을 막아서서 그들을 포악한 바벨론 사람들에게 끌어다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처음에 방관에서 시작을 했는데 이 방관은 결국에 가담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난 방관했다고 죄가 없는 게 아닙니다. 방관은 이 가담의 첫 걸음인 거예요. 바벨론 사람이나 지금 에돔 사람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돌아오려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어요. 내가 그때 어땠는지 난 내가 다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뭘 하겠다고 그러는 거야. 지금 이 집에서나 잘하지 이제 와서 무슨 예배를 드리겠다고 그러는 거야 이제 와서 무슨 큐티를 하겠다고 그러는 거야 이제 와서 무슨 목장을 나가겠다고 그러는 거야. 이제 와서 무슨 교회 봉사를 하겠다는 거야. 그냥 집에서나 잘해.
지금까지 니가 한 일이나 좀 회개하면서 반성하면서 그렇게 살아. 이 말 다 맞는 말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말이 주님께로 돌아가려고 정말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지금 도망치려는 그 사람을 막고 있는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돌아오는 그 기쁨보다 내가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 내 안에 쌓인 것 내 피해 의식 그리고 내가 앞으로 감당해야 될 그 귀찮음과 손해가 우리한테는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래서 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는 이 뒤집어야 되는데요.
하지 말라는 거 그냥 안 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뒤집어서 우리가 나아가는 것이 적용인데 방관하지 말라는 그냥 방관하지 말라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리로 달려가라는 방관하지 말라는 것은 달려가라는 겁니다.
또 기뻐하지 말라는 게 뭐냐 하면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거예요.
힘들어하는 그 지체가 그리고 막지 말라는 것은 길을 열어주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막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 도망가려는 그 나의 지체 나의 형제를 이끌어서 그 손을 붙잡아서 하나님의 예배의 자리로 데려다 놓으라는 것이죠. 그리고 넘기지 말라. 바벨론 사람들에게 넘기지 말라는 것은 품어주라는 거예요. 너무 싫지만 품기 힘들지만 품어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맞은편이 아니라 형제의 자리인 거예요.
맞는 말만 하는 것. 근데 이제 그 곁에 서서 다독여주겠다는 거 위로해 주겠다는 거 말씀으로 함께하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 형제의 자리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언니가 그래도 내 형제이기 때문이에요.
형제가 망하는 날 맞은편에 서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가 옳다라고 외치는 사람인 것이죠.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맞은편에 서 있게 되는 거예요.
12절에 망하는 형제의 이름은 유다라고 하나님이 명시해 두십니다. 유다 하면 우리가 떠오르는 말이 있죠. 요셉이 아니라 유다다. 한국 교회의 정말 센세이션을 일으킨 구속사적인 명제입니다.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간 것은 흠 없어 보이는 요셉이 아니라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회개의 고백을 한 유다라는 것이죠. 저는 감히 요셉 족속을 한번 대표해서 이 말씀을 생각해 봤어요. 어이가 없으신가요? 목사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하여튼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랐습니다. 채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더 심각한 건 그게 채색 옷인지도 몰랐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게 특별 대우받는다고 인식조차 못했던 것이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사고 한 번 치기는커녕 늘 봐서 상만 받아오고 칭찬만 받아오니 나는 그런 대접받고 나는 이런 사랑 받아도 마땅하다라는 그 확신이 저도 모르게 마구마구 생겼습니다.
학벌을 쌓았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저의 꿈은 위대한 신학자 위대한 목사 이것이 그냥 저의 꿈이었단 말이죠. 여러분 요셉을 대표할 자격이 이 정도면 있는 건가요?
요셉 족속은 다른 사람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내가 그러면 그런 거예요. 그런데 이런 요셉들은 요셉이 아니고 유다다라고 하면 그 말에는 아무리 직분이 있고 저처럼 목사라 하더라도 그게 아멘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왜요? 저는 사고 안 쳤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사고뭉치 유다와 저를 비교하시는 거예요?
그냥 나만 특별해야 된다는 그 생각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한번 제가 생각을 해봤어요. 요셉 족속 요셉 족속은 예수님의 계보에 자신이 못 올라갔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유다가 올라가고 내가 올라가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나는 게 아니에요. 요셉 족속들이 진짜 화가 나는 게 뭔지 아세요? 내가 유다와 비교가 되었다.
지금 웃으시는 분들이 바로 요셉 족속이신 거예요. 그냥 너무 이해가 되시니까 지금 웃으시는 거잖아요. 내가 예수님 계보에 올라가지 못한 것보다 나를 더 속상하게 하는 것은 내가 유다 같은 인간과 비교가 되었다는 그게 그냥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요셉 족속의 특징인 거예요.
그러니까 요셉이 아니고 유다다 여기 아멘이 잘 안 나오시는 분들 이분들은 애석하게도 저와 그냥 동족이신 거예요. 동족 그냥 그냥 인정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이 요셉의 그물이요. 이거는 완전히 진짜 너무 크고 단단한 그물이어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사고 좀 쳐봤다고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는 이 회개의 고백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난 좀 당해봤다고 죄 좀 져봤다고 회개의 고백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더 본질적으로는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요.
시스템상 내가 옳다라는 생각이 그냥 자리 잡혀 있어요.
이게 우리 DNA에 박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인생이 너무 힘들고 내 인생 살아서 뭐 하라는 깊은 절망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호흡을 하고 우리가 생각을 하고 있는 그 한에서는 우리는 철저하게 내 중심적이에요.
내 인생이 제일 소중합니다. 죽고 싶어 하는 그 상황 가운데서도 제가 그 상황 그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조금 알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도 내 인생이 중요한 거예요. 내 생각이 옳아요.
그러니까 억울한 거예요. 그러니까 힘든 거예요. 그러니까 죽고 싶은 것이죠. 내 생각이 옳은 데 내가 옳은데 인정을 못 받으니까. 그러니까 겉으로는 요셉이 아니신 분들도 속으로는 다 요셉이신 거예요.
요셉이신 거예요.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는 우리가 전부 다 다 요셉인 겁니다. 이런 요셉이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결혼하며 아내에게 장담했습니다.
당신은 목사 사모할 필요 없어 그냥 내 아내만 잘하면 돼라고 이렇게 막 하면서 결혼을 했는데 제가 이거 거짓말한 게 아니랍니다.
저는 진심이에요. 그런데 잘 보세요. 이게 보면 되게 멋진 말 같죠.
목사가 목사 될 사람이 결혼할 사람한테 목사 사모 할 필요 없어 내 아내만 잘하면 돼 뭔가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같지 않습니까?
저도 그래서 그 발언을 막 하면서요. 아내 될 그때 여자친구 얘기하면서 제 스스로가 너무 이제 막 뿌듯하더라고요.
내 입에서도 이런 단어가 이런 대사가 나올 수 있구나라고 했는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진짜 뜻이 뭡니까? 너는 그냥 내 말대로 하면 되잖아요.
내 아내만 잘하면 돼=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내 생각대로 따라오면 돼. 내 말대로 하면 돼라는 뜻인 것이죠.
그게 저의 옳은 말 맞는 말이었어요. 그러니 결혼 첫날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다들 지금까지 저를 칭찬했는데 결혼하는 결혼 예배 끝나자마자 아내 입에서 제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이 나오는 것이죠.
No 가 나오는 거예요. No가 나오다 보니까 그것이 점차 원망이 되고 급기야 이제 분노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결혼하고서 7년 동안 진짜 징글징글하게 싸웠던 거예요.
아내가 그렇게 힘든 요셉 같은 사람과 살면서 무너지던 날 저는 계속해서 그냥 맞은편에만 서 있던 것이죠. 내가 옳다 내가 옳다만 외치고 있었던 거예요. 오늘 본문의 애돔이 진짜로 저라는 게 인정이 되더라고요. 잘못한 건 그래서 제가 그냥 아예 이 뼛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제 잘못에 대해서는 지금도 누군가 뭐라고 하면 그냥 자꾸 이렇게 설명을 하고 싶어요.
그게 그게 아니라 이유가 있었어요. 이유가 상황이 있었다고요?
그걸 아셔야 돼요. 막 설명하고 변명하려고 그냥 저의 DNA에 뿌리내려 있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겉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드러나든지 그냥 죄가 없어 보이든지 사고를 안 치는 것 같이 보이든지 모범생으로 보이든지 이러한 요셉 족속에게는 정말로 소망이 없는 거예요.
스스로 살아갈 구원을 향해서 살아갈 그 소망이 정말 0.0001%도 없습니다.
이게 요셉 족속의 슬픔인 거예요. 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십니까?
히브리서 2장 11절에 보니까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하셨습니다.
저들은 저들과 나는 다르다 이렇게 하면서 그냥 같은 자리에 앉기도 싫어하는 저잖아요.
정말 바보 중에 바보인 것이죠. 그러나 이런 저도 주님께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대요. 떠났던 아내가 먼저 우리들 교회에 와서 감사하게도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거 인정하셔야 돼요. 저만 혼자 요셉 족속이라고 버려두고 가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러면 이제 방관하시는 거예요. 배신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다 요셉 족속이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정말 이렇게 고백을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그래서 같이 한번 또 고백을 해볼 거예요. 하나님 그래도 제 형제입니다.
그 사람 얼굴 떠올리셨죠? 같이 있기도 싫은 그 한 사람 나는 저 사람과 달라.
어쩌다 내가 저 사람과 엮이게 되었나라고 한 사람 한 사람들 다 지금 머릿속에 있으실 텐데 지금 그분을 생각하시면서 다시 한 번 말씀 앞에 하나님께 결단하는 이 각오로 그 결단으로 다시 한 번 하나님 그래도 제 형제입니다.
왜요? 우리도 그 사람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래요.
나는 누구에게 내가 그때 어땠는지 다 알아 하면서 그 사람이 돌아오는 길을 막고 있습니까?
내가 가족에게 자주 하는 맞는 말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래도 내 형제인 그 사람에게 이번 주에 건넬 말 한마디 무엇입니까?
무슨 말 한마디 건네시겠어요? 그 사람에게 그게 대부분 다 같이 사는 분이시죠 잘 하여튼 하나님이 그래도 여러분 내 형제라고 붙여주신 분이신 줄 믿고 잘 감당하시면서 가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형제의 날 할 고백 첫 번째는 나도 워오브 됨입니다.
3. 고백이 살리셨습니다
15절 말씀은 사실은 이 살리는 말씀이 아니에요.
벌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10번 나왔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다 형제의 날이에요.
형제가 고난당하는 날 재앙의 날입니다. 그런데 11번째 날이 이 15절에 나오는데요.
이 날은 형제의 날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인 거예요.
형제의 날을 멀리서 구경하던 이 에돔에게 이제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겁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어요? 내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지 니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 즉 하나님께서 홧김에 지금 하시는 말씀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실 일을 지금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 니가 행한 대로 니가 받을 거야. 이 말을 우리가 남에게 했을 때는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어요.
에돔도 딱 그랬을 겁니다. 내가 아마 라이벌인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니 너무 고소하고 시원했을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맞는 말을 그대로 지금 에돔에게 돌려주시는 겁니다.
니가 행한 대로 너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형제를 판단한 그 판단이 나의 머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제가 아내한테 했던 그 모든 맞는 말들이 저에게 돌아온다면 저는 그냥 그 순간으로 끝일 거예요.
16절입니다. 같이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이니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폭력한 것 같이 되리라.
마신 것 같이 에돔이 언제 마셨어요? 형제가 망하는 날 그 형제의 날에 에돔이 성문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성산에서 시온산에서 마셨다는 거예요.
형제의 멸망을 보면서 마신 그 술이 그대로 심판의 장이 되게 되는 겁니다.
그 잔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마시고 삼켜서 어떻게 돼요?
누구라도 심판의 잔을 피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기 지금 우리 주일마다 이렇게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도 그 심판의 잔에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냥 태어날 때부터 심판의 잔을 들고 태어나서 그거 이제 때가 돼서 마시면 그냥 그걸로 끝나는 인생이 모든 인생 아니겠습니까? 한번 주위와 주변을 둘러보세요. 자신의 모습을 한번 보세요. 그 잔이 이제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게 없어졌어요. 어떻게 일어난 일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동산에서 뭐라고 기도하셨죠?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맛이 없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 잔 이것이 바로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의 잔인 것이죠. 그런데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잔을 예수님으로부터 지나가게 하지 않으셨어요?
아들 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받으신 건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받은 게 아니에요.
주님이 행하신 대로 받은 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행한 것을 우리 주님께서 대신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 잔을 어디서 받으셨어요? 히브리서 13장 12절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 잔을 성문 밖에서 드신 거예요. 에돔 같은 우리는 형제의 날에 형제의 고난 앞에서 그냥 우리의 한 몫 챙기려고 그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데, 우리 주님은 성문 밖으로 나가서 거기서 우리가 마실 심판의 잔을 대신 드신 것입니다. 저는 행한 대로 받았다면 벌써 없어졌을 거예요. 여러분들 제가 다 말씀드린 대로 진짜로 위선자 중에 위선자고 진짜 진짜 쓰레기인 것이죠.
이게 드러나는 쓰레기는 소망이라도 있는데 저처럼 그냥 똘똘 감춰져 있는 이 겉모습으로 감춰져 있는 사람이 진짜 부패한 사람이거든요. 제가 행한 대로 받았으면 저는 정말 없어져야 될 죄인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마셔야 할 그 잔을 우리 주님께서 대신 마셔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살아난 사람은 뭘 해야 합니까? 이 형제의 날에 형제가 재앙을 당하는 그 날에 이제는 맞은편에 설 것이 아니라 내가 그냥 내 본성대로 맞은편에 설 것이 아니라 그 곁에 서야 되는 거죠.
형제 곁에 서야 되는 거예요. 그 잔을 대신 마신 주님을 아직 모르는 그 형제 곁에 그 사람이 왜 수고합니까? 그 사람이 왜 나를 힘들게 해요? 아직 자기 대신에 그 잔을 대신 마시신 주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 곁에 서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리고 사실은 한 번 더 생각하면 내가 미워하는 형제 힘들어하는 형제가 다 있잖아요.
그러면서 막 그 형제를 향해서 내가 지금 막 마음을 앓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면 그건 결국 나를 괴롭게 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 형제의 날은 내 옆에 내가 미워하는 그 형제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내가 형제인 것이죠. 내 자신이 형제인 거예요. 내가 내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미운 것입니다. 그럼 이건 그냥 현상인 거예요. 내 자신이 내 자신이 주님 앞에 서 있지 못하다는 증거예요. 그러나 오늘 주님이 그래서 뭐라고 하십니까? 우리 형제가 되어 주시는 우리를 내 자신을 주님이 형제로 부르시는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그랬어요.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죠. 내 자신이 너무 힘들죠.
여러분 사람 옆에 있는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사실 더 힘들잖아요.
요셉 같은 제 모습을 보는 게 저도 사실 더 힘들어요.
비교당하는 거 싫어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한심스럽고 정말 미워요.
제 자신이 밉습니다. 진짜 소망이 없어요. 그러나 이런 우리를 주님이 형제로 불러주신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짜 힘든 그 형제 옆에 가서 나를 형제로 불러주신 그 주님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나를 살려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내 죄를 봐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회개를 하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 이번 주에 진짜 이렇게 나눈 오늘 고백 기억하시면서 큐티 하실 때 또 되뇌이시면서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이 죽었던 그 자리 한번 돌아보시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어떤 은혜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는가 살려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한번 생각하시며 은혜를 회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하고 부탁드립니다.
적용 )
남에게 했던 맞는 말 중에 그대로 돌려받으면 가장 두려운 말은 무엇인가요?
그 잔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는데 나는 아직 누구에게 행한 대로 받아야지 하고 있습니까?
목장모임은 목자 부목자 목원 이렇게 3명이서 함께 했습니다
내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게어려운지 어떻게 해야할 지 나눴습니다
기도제목
A
-내 이웃를 정죄 험담하는 죄성에서멀어지기를
-아빠 건강회복 잘 하기를
-위드 신교제학교 사모하는마음으로 신청 넣어보게해주세요.
-풀마 다치지않고 완주 잘 하게해주세요
-지금이 고난의상황에서 잘 해석하고 해결해나가게해주세요
B
- 아버지와 남동생이 자유케되기를
- 일상에서 주께서 허락하신 기쁨을 발견하게 하시기를
- 삶의 순간 가운데 주께 여쭙는 습관을 갖도록
C
-하나님께 딱 붙어있기
-하나님이 주신 환경에서 관계를 배우고 성장할 수 있길
-가족 중 엄마, 오빠와 생활습관이 너무 달라서 짜증나고 미워죽겠는데 하나님이 좀 도와주시길
D
-행복보다 거룩을 선택하는 내가 되길
-술 끊기위해 운동 다시 시작하고 건강한 식생활로 바꿀 수 있길
-가족구원, 특히 가족과 절연한 남동생이 하나님 만날 수 있길
-10월말 행복주택 발표 가운데 은혜로 함께 하시길
-목장, 동반자, 중등부 친구들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