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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8.(주일) 열왕기하 25:8-17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김양재 목사님
오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25장 8절에서 17절까지 되겠습니다. 제가 봉독합니다.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11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12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13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 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14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15 시위대장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으로 만든 것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나 모두 가져갔으며16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17 그 한 기둥은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 머리가 있어 높이가 세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주님, 진노하심으로 여호와의 성전이 불탔다고 하십니다. 모든 것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달려왔는데 주님,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주여,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8년 2월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탔어요. 여러분, 서울의 관문, 600년 동안 이 관문이었던 숭례문이 5시간 만에 잿더미가 됐어요. 그것도 너무 말도 안 되는 사람의 방화로. 여러분, 이렇게 일이 이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도대체 왜 이 숭례문이 불탔을까? 어느 건물이 불탔다고, 누구 집이 무너졌다고 그걸 심판이라고 판정할 권한은 우리에게 없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이 불타요. 그런데 그 불길 속에 여호와의 성전이 있네요. 날마다 제사드리고 절기마다 백성이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던 집이에요. 그런데 시드기야 왕은 이미 끌려갔어요. 이제 남은 도성에서 성전이 불타고, 성벽이 헐리고, 백성이 끌려갑니다. 그리고 하나님 섬길 때 쓰던 그릇까지 하나씩 다 실려 나가요. 예배하던 자리도, 섬기던 자리도 다 무너지는 거예요.그런데 본문은 성전의 큰 놋 기둥과 바다와 받침을 두고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해요. 성전을 위해 만든 것들까지 다 깨져서 실려 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집이 이렇게 무너지는데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걸까요?우리가 항상 무너지는 것만 보면 해석이 안 돼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그냥 두지 않으시죠. 무너뜨리세요. 그런데 항상 그 끝이 멸망이 아니라는 거예요. 무너뜨리시는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진짜 성전을 세워 가시는 거예요. 육이 무너질 때 성전이 세워진다고 그랬잖아요. 오늘은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함께 우리가 띵크를 해보겠어요.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첫째 1.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십니다(8-12절)8절입니다. 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_왕하 25:8하나님은 유다를 단번에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바벨론 침공 1차, 2차, 3차로, 그러시고도 포위된 채로 또 19개월을 두셨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 할 때 이렇게 기다리셨다는 걸 알아야 돼요. 하루아침에 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도 이 왕은 끝까지 ‘항복하라’는 말씀을 끝내 따르지 않았어요. 이제 드디어 그 성에 바벨론 왕의 시위대장이 들어옵니다.(바벨론 침공) 1차, 2차 때는 바벨론이 그다지 잔인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3차쯤 되니까 바벨론이 ‘이번에 배반하면 아주 눈을 뽑겠다’고 약속을 했을 것 같아요. (유다 백성이) 계속 배반하는 거예요, 지금. 사람과의 약속도 이렇게 무서운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하면서 창세기 15장에 “내가 널 지킬 걸 어떻게 믿냐?” 하나님은 “(내가)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다. 이렇게 생명을 걸고 반드시 내가 이렇게 너를 지키겠다”(창 15:17) 약속을 하셨으니까 아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은 아주 무서운 언약이에요. 그러므로 바벨론은 그렇게 잔인하게 (시드기야 왕의) 눈을 뽑고도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어요. ‘네가 그렇게 믿는 성전을 내가 불사르고 무너뜨리겠다’는 거예요.그러므로 믿는 우리는요, ‘믿는 우리’는 이 땅에서 배반을 할 때나, 배반을 당할 때나 지금 오뉴월 서릿발이 무색한 것은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배반할 때도 당할 때도 그거는 저 사람이 배반한 게 아니에요.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거예요.9절입니다.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_왕하 25:99절에 맨 처음에 나오는 단어가 “여호와의 성전”이에요. 왕이 다스리던 곳, 백성이 살던 곳만 불에 탄 게 아니라 ‘여호와의 성전도 불탔다’는 걸 강조하는 거예요.예레미야는 1장부터 52장까지 (유다가) 왜 망하는지 경고하고 살길을 계속 가르쳐줬어요. 그런데 너희가 (성전에) 예배를 그렇게 드리러 가지만, 예레미야 7장 3절에는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고 그리하면 “이곳 성전에 살게 하겠다”고 했어요.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_렘 7:3 그런데 7장 4절에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예레미야가 수없이 외쳤지만, 유대인들은 성전을 부적처럼 여기고 외적인 성전만 숭배하면서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기 때문에 드디어 성전 자체가 우상이 된 거예요. 제일 무서운 우상을 섬기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성전을 불사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그런데 이걸 누가 불살라요? 바벨론 왕의 시위대장이에요. 오늘 본문에서 불사르고 헐고 끌고 가는 건 다 바벨론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손 놓고 계셔요? 이게 바벨론 왕이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배후에 있다는 거예요. 믿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배후에 있다는 걸 아셔야 돼요. 갑자기 일이 온 게 아니죠.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지었을 때 하나님이 이미 경고해 두셨어요.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_왕상 9:6-7“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을 섬기면 이렇게 거룩하게 구별하신 집이라도 던져버리겠다는 거예요.성전이 가짜라서 무너지는 게 아니고요,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집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성전 자리에, 성전에 하나님이 있어야 되는데 거기에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자녀가 있고, 돈이 있으니까 그걸 던져버리시겠다는 거예요.그러니까 교회에 왔는데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 지금 다른 신을 섬기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녀를 섬기고 남편을 섬기면은 죄의식도 없어요. 내가 바른길인 줄 알아요, 그게. 자, 10절입니다.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_왕하 25:10그 성벽이 이미 뚫렸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예 헐어버립니다. 다시는 막아설 수 없게 성벽을 헐었어요. 성벽이 없는 성전도 기가 막히고, 성전이 없는 성벽도 이제 없는 거예요. 아예 씨를 말리겠다는 바벨론이에요. 숭례문은 우리가 판정할 수 없지만 예루살렘은 달라요.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셨잖아요. 성경이 이를 해석해 줘요. 예레미야애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8.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_애 2:8“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셨대요. 참다 참다 결심하셨대요.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애가 2장 8절입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결심하셔서 여러분에게 그 일을 주셨어요. “하나님 왜 이러세요?” 그럴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어요.하나님은 결심하시고 결심하셔서 여러분에게 그 일을 허락하셨어요. 헐 자리에 줄을 치시고 무너뜨리는 손을 끝까지 거두지 아니하셨대요. 그래서 지금 나의 가족이 무너지고, 돈이 무너지고, 명예가 무너지고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셔서 결심하신 일인 거예요. 성이 무너지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11절, 12절입니다.11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12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_왕하 25:11-12끝까지 남고 남고 남았는데, 이제 드디어 이렇게 결심하시니까 항복한 자들이 생기잖아요, 그죠? 아직도 항복하지 않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 거죠. 빨리 항복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다 사로잡아 가고 항복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목숨은 건졌어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하셨잖아요, 그죠? 예레미야 38장 2절입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에게 항복하라” 이게 주된 메시지였기 때문에 그래도 마지막에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어요.그런데 이게 가난하다고 빨리 잡혀가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늦게 잡혀가는 것도 아니지만, 바벨론은 방백을 먼저 잡아갔는데 내가 잡혀간다고 안 간다고 내가 자랑할 것이 없지만, 이것이 꼭 육적으로 가난하고 부한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은 그래도 내가 그렇게 쌓아 올린 귀인들, 인재들이 맨 처음에 잡혀가잖아요. 그죠? 그래서 그 쌓아 올린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사로잡히는) 대상이 될 수가 있어요. 우리가 전쟁이 나서 제일 무서운 사람들은 갖춘(가진) 사람들이잖아요.그러니까 없는 사람과 갖춘 사람들의 기도하는 내용은 아주 달라요. 마음 자세가 달라요. 그러므로 뭐라고 그럴 게 없어요. 다 자기의 이해타산에 따라서 지금 나뉘어져서 그러는 거죠.이 사람들은 성전이 우상이잖아요. ‘나를 위해서’ 믿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전보다 무서운 우상은 이 땅에 없어요. 그래서 이걸 철저히 무너지게 하십니다. 성전의 내용물과 형식이 있다면, 이제 내용물은 가져가고 형식은 불태우는 바벨론이네요. 하나님의 각본에 의해서 하니까 가져갈 걸 가져가고 불태울 걸 불태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 사람이 억울하게 왜 저래’ 할 일이 없어요.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거예요.지금 믿는 자의 내용물이 너무 형편이 없으니까 불신자가 와서 판단을 해주는 거예요. 성전의 외적인 것이 형편없는 것이 아니고, 믿는 나의 그 내용물에 가려진 거야, 성전이. 그래서 “너 때문에 예수 안 믿어” 이렇게 얘기해 주는 말은 다 진실로 들으셔야 되는 거예요. 어쨌든 잡혀가면 예루살렘에서 살던 삶은 끝나는 거예요. 내가 바벨론에 순종한다고 그것이 내 형편을 지키는 거래가 되는 거는 아니에요.이제 그 땅에는 포도원과 밭을 맡은 가난한 사람들만이 남는데요. 그렇다고 남았다고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끌려갔다고 버림받은 것도 아니에요.우리들교회 외벽 현수막에 “겸손은 환경입니다”라고 써 붙였어요. 아주 여기 불신자들이 보면 아리송한 글이에요. 그래서 한 몇 달 동안 오며 가며 띵크하시라고. ‘저게 무슨 뜻이지?’여러분, 이 말씀은 남의 집 불난 걸 재는 잣대가 아니에요. 내 속을 비추는 거울인 거예요. 유다 사람들은 ‘여호와의 성전이 여기에 있는데, 설마~’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우리는 어때요? ‘내가 예배드린 세월이 얼만데 설마 우리 집이 무너지겠어?’ 그러면서도 식구들에게 퍼붓는 말은 그대로예요. 버리라는 욕심도 붙들고 있고, 끊으라는 거짓말도 계속합니다. 그리고 내가 주일예배 한 번 드린 걸로 그걸 다 덮는 거예요. 말씀이 찔러도 “그래도 나는 이 주차가 힘든 우리들교회 예배는 안 빠지잖아!” 대단하세요. 그것만도 진짜 박수 쳐드릴 일이에요.^^예배는 은혜로 주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예배를 내 안전의 보증서로 썼어요. 바로 이것이 ★은혜를 내 안전으로 삼은 죄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해야 돼요. “하나님, 예배로 제 불순종을 덮었어요.” 예배당 문턱을 밟았다고 내 불순종이 덮이지 않아요. 예루살렘, 내 성전의 우상을 무너뜨리신 하나님은 100% 옳으세요! 그런데 이 구약의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 죄를 못 보고 내 죄의 심각성을 몰라서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이럴 수가 있는 거예요. 적용 질문Q. 예배에 나온다는 사실로 덮어 온 내 불순종은 무엇입니까?Q. 내 불순종을 정당화하려고 내세운 신앙 이력은 무엇입니까?Q. 끌려간 사람과 남은 사람처럼, 형편만 보고 속으로 판단해 온 지체는 누구입니까?자, 1차 2차 계속 망했는데 망했는데도 우리들교회 와서 이제 목자가 되고 예배 나온다는 사실로 덮어 온 그 불순종이 아직도 똬리를 틀고 있다는 나눔이에요. 저는 직장 명퇴까지 하고 그 돈으로 분별력을 잃고 다 투자하면서 결국 이제 온 가족이 정말 지하실로 내려가는 (이분은 아주 최고의 학벌을 가지고 그 분야의 아주 전문가세요. 전문가세요.) 오늘 시드기야가 죄에서 돌이키지 않아 결국 망하고 눈이 뽑히는 장면을 보며 아 정말 제가 설교 듣기가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시드기야가 끌려가서 평안히 눈을 감은 것처럼 죽을 때는 평안히 주님께로 갈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이 생기면 또 할 것입니다. 저는 큰돈을 잃고 다시는 돈이 생겨도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 몇 년 지나다 보니 전 돈이 생기면 다시 주식을 할 사람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었어요. 사람은 바뀌지 않아요. 제가 주식을 다시 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빚을 낼 수가 없고, 그리고 이거를 목장에서 나누면서 가니까 안 하지 절대로 안 한다고 장담을 못합니다. 저는 공부도 잘하고 직장도 잘 들어갔는데 그렇게 투자하다가 완전히 망한 거예요. 전 의지력이 강한 줄 알았는데 저는 제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주인(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걸 이렇게 지난주 나눔에서 제가 읽었어요. 그러니까 이 집은 뭐가 제일 축복이에요? 돈이 없는 게 제일 축복이에요. 그러니까 돈이 왜 없냐, 돈 있으면 이룩하고 바람피우고 그거밖에 할 게 없어요. 여러분들이 굉장히 믿음이 좋지 않아요. 인생은 한 뼘이기 때문에. 자 아셨어요?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서 그래서 나의 가장 우상인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시는 거예요 나의 예루살렘 뭐예요? 그리고 이제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두 번째는 2. 섬기던 그릇까지 가져가십니다(13-15절)13절이에요.13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 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_왕하 25:13이제 성전이 불탔으면 다 끝난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 성전에 있던 기구들을 다 이제 집어 가는 거예요. 먼저 큰 것부터 두 놋 기둥은 성전 앞에 세운 두 기둥 보아스와 야긴(왕상 7:21)인데. 그리고 이제 놋 바다는 정결 예식을 할 때 쓰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이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야긴과 보아스―놋 기둥’이 있고, 놋 바다는 회개를 의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쓰임받던 것들이 지금 이제 놋 조각이 돼서 이제 실려 가는 거예요 다 깨뜨려서 그 놋을 가져가는 거예요. 이 말은 이제 하나님께 묻지도 회개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도착을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게 우상이니까 이제 묻지도 회개하지도 못하는 상황 이게 진짜 망하는 거예요. 근데 이걸 가져가는 장면에서도 성경은 잘 보세요, 그걸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바다’ 그러니까 깨져서 실려가도! ★깨져도 실려가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 이 말입니다. 이거 잘 들으셔야 돼요. 14절에요.14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_왕하 25:14가마, 부삽, 부집게, 숟가락. 이번에는 작은 것들이에요. 기둥처럼 눈에 띄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성경이 숟가락 이름까지 불러요. 이게 무슨 그릇이라고 그래요? 여기 보니까 ‘섬길 때 쓰는’ 그릇이래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손에 들고 쓰던 그릇이에요 이걸 다 가져가요. 이런 섬김이 없으면 이제 이 성전에서 무엇으로 하나님을 섬기겠어요? 성전이 있어도 섬길 그릇들이 다 없어져 버렸어요. 섬기던 자리가 통째로 없어지는 거예요. 부집게, 숟가락같이 형편없어 보이는 그 섬김이라도 없어지면 교회는 성전의 역할을 못 하는 거예요. 여러분 섬기는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 어떤 목원이 사모해서 오셨어요. 처음에는 너무 따뜻했는데 목장을 옮기고 나서는 전화도 없고 무슨 사건이 있는지 관심도 없으니까. 이 목원은 목자의 섬김이 그리운데 어떤 분은 전화해 주면 짜증이 나서 안 나간다고 그러고 어떤 분은 안 해서 또 안 나간다고 그러고. 너무 이제 조건이 까다로워요. 누구는 ‘왜 이렇게 맨날 나한테 연락하냐?’ 이래서 싫고, 누구는 ‘연락을 왜 안 하냐?’고 하고. 사람마다 거기에 맞춰서 해야 되는데 하여튼 목자님의 한마디가 사람을 죽게도 하고 살아나게 하는 것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부집게는 부목자인가요? ‘부’자가 들어가니까^^;. 부목자님들의 섬김도 대단하다는 거를 아셔야 되는데. 이 부집게는 그게 아니고 촛불 심지 잘라내는 데 쓰이는 집게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죠. 불 밝히는 촛불 심지 잘라내는 데 쓰는 거니까요. 숟가락 하나라도 하나님이 섬기라고 주신 건데 그걸 들고 섬기던 자리가 다 은혜였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나라가 없어져서 예배를 못 드리는 때가 지금 오게 되면 이 예배와 목장이 얼마나 사모되고 그리울지 생각해 보셨어요? 여러분이 아무리 직장에 가서 사장 회장 해서 성공을 해도 그 끝에는 돈이 있잖아요. 돈 벌려고 열심히 살잖아요. 근데 여기는 하나님 섬기려고 오잖아요.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비교가. 아무리 잘해도 끝이 돈인 거 하고 여기 와서 이 예배드리고 하늘나라 언어를 나누는 이거를. 여러분 지금은 몰라요. 그죠?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니에요. 15절에요.15 시위대장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으로 만든 것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나 모두 가져갔으며_왕하 25:15큰 것도 작은 것도 귀한 것도 그냥 다 가져갔어요. 13절에 나온 받침과 놋 바다에 손을 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한 150년 전에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본 제단을 본떠서 그걸 여호와의 성전에 쓱 바꿔놨잖아요. 그죠? 그 다메섹의 양식을 여호와의 성전 지성소에 갖다가 싹 십자가 대신 그걸 바꿔놨어요(왕하 16:17). 하나님 집에 있는 것을 자기 것처럼 마음대로 옮긴 거예요. 그럼 이거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 아하스가 바로 나죠. 하나님께 드린 것도 내 것처럼 딱 내 마음대로 옮겨 놓는 거예요. 드리기로 한 시간도, 드리기로 한 물질도 내가 쓰고 싶은 일이 생기면 슬그머니 내 쪽으로 돌려놓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섬기라고 맡기신 자리도 내 것처럼 여겨요. 주일에 아이들 앞에 서는 자리, 목장 식구들 밥 차려내는 자리, 집에서 식구들 돌보는 자리요 그 자리에서 내 이름을 이제 남기려고 해요 내가 얼마나 섬겼는지 셈을 해요. ‘내가 이만큼 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네’ 하며 서운해 해요. 근데 같이 섬기는 지체가 칭찬받으면 속이 뒤집혀요. ‘그래 당신이 다 해봐. 그리고 난 안 해. 그만두겠어! 그만! 스탑!’ 그 서운함으로 지체를 밀어내는 거예요. ‘우리들교회가 좀 변했군. 초심을 잃었어.’^^; 그러니까 교회도 비난이 되고 옆에 지체도 비난이 되고. 그런데 이제 남편과 사이가 좋으면요. 식구들하고 사이가 너무 좋으면 교회가 이상해요. 근데 식구들하고 남편과 또 사이가 안 좋으면 교회가 너무 기뻐요. 이런 또 이제 이런 게 있는 거예요. 그렇죠?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자리를 우리는 나를 자랑하는 자리로 써버리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 대신 나를 섬긴 거예요. ★은혜를 내 자랑으로 삼은 죄인 거예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인정하세요. “하나님 섬기는 자리에 제 이름을 남기려고 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기억을 하십시다. 우리가 섬겨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섬기는 거예요!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던 그 자리가 처음부터 은혜였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든 거를 이렇게 빼앗긴 거를 경험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게 어느 날 하루에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 이북에서 하루아침에 떠나서. 어느 날 그죠? 몇 월 며칠에 딱 나와서 서울에 내려왔잖아요. 근데 또 하루아침에 모든 걸 버리고 부산으로 피난 갔잖아요. 하루아침에 어느 날 다 버리고 제주도 피난 갔어요. 이거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성전이 무너지는 게 이런 거 아니에요? 우리가 돈이 단데 그걸 몇 번이나 다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 예배 잘 드리라고 이런 말을 순순히 들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역대하는 이를 이렇게 적어요. 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18.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_대하 36:17-18하나님이 백성을 갈대아 왕의 손에 다 넘기셨고 그 왕이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갔다고요. 하나님이 백성을 넘기셨어요. ‘하루아침에’가 아니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가 이게 중요한 거예요. 오늘 내 사건은 하나님이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기다렸다가 넘겨주신 사건이에요. 그래서 그릇 하나까지 다 실려 가는 거예요. 아무리 말씀하셔도 다른 신을 섬기는 걸 멈추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예레미야는 계속 압제받는 이제 바벨론에 가서 70년 훈련에 순종하라고 했고, 마음이 새롭게 변화 받아야 한다고. 지난주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예레미야 28장은 거짓 선지자 하나냐 얘기로 도배를 하고 있어요. 그 사람은 이렇게 예레미야가 얘기를 하니까 “우리가 믿음의 백성인데 잡혀가도 성전 기물이 2년 안에 돌아온다!”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딱 꺾으면서 “바벨론 왕의 목이 이렇게 될 것이다!” 얘기를 하니까 와 팬덤이 형성이 됐어요. 너무 근사해 보이지 않아요?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에 인기가 있어요. 예언이라는 것은 성경을 잘 깨달아 희생의 길, 십자가 잘 지게 하는 거지. 누구 망하라고. 이 세상에서 ‘저 사람은 망하고 나만 잘되고’ 그런 게 아니죠. 그러니까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씀 이런 거 자체를 멸시하고 비웃고 그러니까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욕하게 되잖아요. 그러나 그것이 자기에게 미쳐 만회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오는 거예요. 그럴 때 여러분들이 예레미야 입장이고 참 선지자라면 누구의 욕을 먹어도 괜찮아야 하는 거예요. “내가 이런 예언을 하는데 왜 못 알아들어!” 이러면서 누구를 욕하고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마지막에 하나냐가 그렇게 무시를 하니까 예레미야 28장 11절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이러잖아요. 그렇게 자기 길을 가니까 하나님이 도리어 예레미야에게 뭐라고 하시냐면, “너는 하나냐에게 가서 다시 전해라.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느냐? 내가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다. 내가 너를 보내지 않았다. 너는 거짓을 전하고 있으니 금년에 죽으리라. 가서 얘기해라.” 그랬더니 두 달 후에 죽었어요(렘 28:13-17). 그러면요, 백성이 하나냐가 틀렸다는 걸 알아야 되잖아요. 그 2년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그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절대로 이걸 인정하지 않아요. 백성들은 “우리는 안 망한다”는 거예요. 그 망할 때까지 ‘안 망한다’는 그거 붙들고 사는 거예요.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는 안 망한다.” 그러니까 이단들이 휴거한다고 날짜를 아무리 박아도 그날이 되어서 아무 일이 안 일어나도 아무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단이 안 없어지는 거예요. 예레미야 28장에서 너무 현실감 있게 이제 거짓 선지자 얘기를 해주고 있는데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한 뼘인 인생에서 그렇게 이기적으로 잘 살기를 원하는 것에 세뇌가 되어 가지고 하여튼 망한다는 ‘망’자만 들어도 싫고 입학시험 앞에서 떨어지는데 ‘떨’자만 들어도 싫어요. 그죠? “아유 왜 이렇게 재수 없이 떨어진다. 그래요.” “아유 왜 재수 없이 망한다. 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십자가를 지기 싫어하니까 내가 부러워하던 그 부러워하던 세상에게 종노릇을 하게 되는 세월에 방백이 제일 먼저 잡혀가잖아요. 그 세월이 70년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육적으로 그러니까 이 땅에서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예요. 중요한 건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있는 거 다 뺏겨도 남은 거 가지고 순종하다 보면 끌려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니고, 뺏기고 안 뺏기고의 문제가 아니고 ‘이 일은 하나님의 주권이구나’ 이러면은 순종하고 포로된 그곳에 가보니까. 마지막이라도 항복하면 천국에서 눈 뜬다고 그랬잖아요, 구원받고. 그러니까 항복하고 바벨론에 가보니까 거기 성전 기구가 다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리고 돌아올 때 70년 후에 또 다 다시 가지고 오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은 뺏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걸 아니까 확신있게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성전의 내용물과 형식이 있다면 내용물을 가져갔다가 돌려주시고, 형식은 언제나 이 땅의 것이니까 그 성전을 불태우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거. 육이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라고. 그 70년 동안 내가 그 정말 아무것도 법을 안 지키니까 그동안 황무한 이 상태에서 드리지 못한 헌금도 하게 하시고 시간도 내게 하시고. 안식년 7년에 한 번씩 못 쉰 것을 다 합해서 70년을 그 예루살렘 땅이 쉬었어요. 그러니까 사로잡혀 황무하게 하신 것이 가장 안식을 누리게 하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나면 그냥 안식을 다 이제 하시게 된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와 가지고 이래요. “내가 그 많은 돈 우리들교회에 헌금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다들 이게 주제가에요. 한 장로님은 뭐 용인에 몇 만평 캐나다에 40만 평, 종로에 천 평... 모든 재산을 합하면 막 1조 2조가 넘는 것 같아요. 그랬는데 “쫄딱 쫄딱 망했습니다.” 이래요. “아유 그 돈 있으면 헌금할 텐데...” 아유. 지금이나 잘하세요.^^ 그래서 여러분들 그 망한 돈 다 생각하면 우리나라를 다 사고도 남을 것 같아. 근데 전부 다 그래요. 있을 때 안 오죠. 있을 때 어떻게 오겠어요? 옛날 생각하시지 말아요. 지금 과부의 엽전 두 푼을 하나님은 기가 막히게 보시는 거예요. 그걸 신앙으로 받아들여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헌금을 많게 하고 적게 하고 이게 문제가 아니에요. 적용 질문Q. 은혜로 받은 섬김의 자리를 내 자랑으로 삼아, 사랑하지 못한 지체는 누구입니까?Q.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던 일 가운데, 공동체 앞에 내 죄로 내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Q. 하나님께 드린 것 가운데, 내 것처럼 내 마음대로 옮겨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Q. 하나냐의 예언이 좋으세요? 예레미야의 예언이 들리세요?뭐 말해보는건 뭐 돈 안 드니까^^. 그러니까 이제 성품으로 믿다가 정말 저런 분이 목자가 되시면 너무 좋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제 목장에서 너무 힘든 나눔들을 하니까 막 무시가 되고 판단이 되고. 그러니까 ‘도대체 이 교회는 뭐 하는 거야?’ 예. 체휼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이런 분은 너무나 목장보다 가족과 있는 것이 좋은 거예요. 가족이 너무 좋으면, 교회 오는 게 힘들고 목장 들어가는 게 힘들어요. 이런 분 있지요? 그래도 이런 분들이 목장에서 이런 나눔을 하는 거가 소망이에요. 이거는 굉장한 일이에요. 근데 이제 이분이 무시할 만한 나눔을 하나 읽어 드리겠어요. 아우. 그래서 이제 무시하는 사람과 할 만한 사람이 같이 있는 우리들교회 정말 최고예요. 이분은 그렇게 이제 그 이직으로 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가지고 이제 간 거예요. 퇴근 후에 시간이 많죠. 그래 가지고 지금 직장 상사도 아니고 이전 직장 상사와 몇 차례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직장 상사가 불륜녀와 새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내는 그 상사를 만나지 말라고. 그런데 저는 ‘아니, 그 상사의 불륜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러니까 아내 말을 들어야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데) 이제 술이 좋아 가지고 아내의 말을 무시해서 만남을 가졌고, 그때 어느 날 우연히 불륜녀의 친구가 나와서 소개팅 아닌 소개팅을 해 줬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가 죄를 짓고 있으면 같이 죄를 짓게 하고 싶은 본능이 있거든요. 친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당장 그 소개팅 받은 여자와 며칠간 연락을 했고 또 따로 만나자고 얘기했고. 그런데 그 만나자고 한 다음 날 새벽에 여자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걸음아 날 살려라’ 그래 가지고 이제 막 내 가정이 풍비박산 날 것 같아 가지고 바로 다음 날 아내에게 고백하며 “나 좀 살려달라”고 울며 회개하였고, 아내는 체면을 중요시하는 저에게 “목장과 교회에 오픈하며 진정한 회개를 해라” 그래 가지고 공동체에 오픈하며 수치를 당했다는 거예요. 또 이제 “주중에 광주 가서 저녁 수요예배 드려라” 이래 가지고 처방받고 지금 가서 드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 인생의 목적이 다음 세대 생명을 위해서 쓰임받다가 죽는 인생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이분도 술과 담배를 못 끊으면 죄짓는 자리에 갈 수밖에 없어요. 술을 끊으셔야 되는 거예요. 술과 담배의 자리에 예배와 큐티가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서 나의 가장 아끼는 예루살렘, 예루살렘 하면 ‘교회’. 이렇게 문자적으로만 생각하시면 적용이 안 되죠. 그래서 항상 거기엔 영적인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이제 아주 그냥 씨를 말리고 섬기던 그릇까지 다 가져가는 거예요.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서 세 번째는3. 잃은 은혜를 헤아리게 하십니다(16-17절)16절입니다. 다 같이 읽어 볼까요?16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_왕하 25:1613절에서 벌써 기둥과 바다와 받침을 다 가져갔잖아요. 그런데 성경이 또 말합니다. 이번에는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를 붙여서 이거 솔로몬이 만들었어요. 무엇을 위해서?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서 만들었어요. 자, 오늘 ‘여호와의 성전’이 지금 벌써 네 번째 나오고 있어요. 불탈 때도, 깨져 실려 갈 때도 성경은 끝까지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러요. 열왕기 전체로 봐도 이게 마지막입니다. 솔로몬이 성전 일을 다 마쳤을 때 성경이 쓴 말이 바로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왕상 7:51). 다 지었을 때 그 쓴 말로 기어이 열왕기는 성전 이야기를 닫습니다. 그 끝에 뭐라고 해요? “헤아릴 수 없었으니.” 놋이 얼마나 많았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고요. 그 기구를 처음 만들 때도 열왕기상 7장에 47. 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솔로몬이 다 달아보지 아니하고 두었으니 그 놋 무게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_왕상 7:47지을 때도 많아서 달아보지 못하고, 빼앗길 때도 헤아릴 수가 없는 거예요. 잃고 나니까 그만큼 나에게 많이 주셨다는 거, 그만큼 나에게 많이 주셨는데 맨날 우리 불평하잖아요. 가져가신 그 자리에서 잃은 은혜를 헤아리게 하십니다. 마지막 17절입니다.17 그 한 기둥은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 머리가 있어 높이가 세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_왕하 25:17“다 가져갔다” 하고 끝내도 될 텐데 본문은 또 멈춰 서는 거예요. 그래서 기둥 높이를 말하고, 기둥 머리를 말하고, 그 머리를 두른 그물과 석류까지 말해요. 이제는 없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다시 세워 보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헤아려 보면 무엇이 보여요? 받은 게 너무 많다는 거예요. 뭘 받았나요? 예배할 자리, 섬길 기회, 들려주신 말씀, 함께하는 지체. 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거예요. 솔로몬이 놋 기구를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들었듯이요.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들었던 것을 나를 위해 썼어요. 나를 위해 만들고, 나를 위해 썼어요. 예배는 ‘내’ 안전을 위하여, 섬김은 ‘내’ 자랑을 위하여 썼어요. 헤아려 보니까 내 죄밖에 없는 거예요. 잃고 나서야 그것이 다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전이 무너졌으니까 이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은 끝났을까요? 이 기구들을 만든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미 이런 기도를 했어요. 열왕기상 8장 47절에서 49절입니다. “백성이 사로잡혀간 땅에서라도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고 주께 돌이켜 기도하면 하늘에서 들어 달라고”(왕상 8:47-49). 여러분, 시드기야에게 평안히 죽을 길을 허락하셨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마지막이라도 이렇게 회개를 하면, ‘평안’이란 말은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고는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성전이 무너져도 회개의 길은 닫히지 않았다고요. 포로에서 돌아온 뒤 성전은 다시 지어졌어요. 그리고 훗날 예수님이 그 성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2장 19절~21절입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_요 2:19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_요 2:20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_요 2:21 그래요, 성전은 말씀하신 대로 자기 몸이에요. 그런데 유다의 죄 때문에 이 세상에 보이는 성전이 무너졌어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데 우리의 죄 때문에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어요. 성전된 그 몸을 헐린 거예요. 그리고 말씀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사셨어요.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무너진 성전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되는 거예요. 그 예수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요? 에베소서 2장 21절, 22절입니다.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_엡 2:21-22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오늘 제목이 뭐죠?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솔로몬이 그렇게 만든 기구들은 깨져서 놋으로 실려 가서 바벨론에서 허드렛 기구들도 되었을 것이고, 아주 비천하게 낮아지게 하십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살던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실 집’으로 함께 지어 가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 혼자서는 안 돼요.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그러니까 벽돌 한 장이 혼자 집이 될 수는 없어요. 서로 이어져야 집이 됩니다. 우리 삶에도 무너지는 날이 와요. 몸이 무너지고 가정이 흔들리고 평생 쌓은 것이 한순간에 실려 나갑니다. 그러면 예배하고 섬기던 자리까지 다 흔들려요. 그러면 무너진 걸 붙들고 다 울어요. 물론 우는 것도 필요하죠.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안 되고 받은 은혜를 나는 어떻게 썼는지도 말씀 앞에서 헤아려 보는 데까지 가는 거예요. 헤아려 보니까 결론은 뭐라고 그랬어요? 내 죄라고 했어요. ★내 죄를 위해 죽어 주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성경인데, 맨날 ‘죄’는 빼고 예수님의 이야기만 이렇게 그냥 추상적으로... 내 죄를 들고 날마다 예수님께로 가는 게 구속사적인 묵상이에요. 에베소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합니다. 아니, 섬겨서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까워졌으니까 섬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의 피를 모르는 사람은 남을 섬길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예수님하고 친해졌으니까 섬기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밀어냈던 그 지체에게 먼저 가는 거예요. “내가 서운해서 당신을 밀어냈어요, 미안해요.” 그리고 그 곁에서 다시 섬겨요. 이번에는 ‘내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위하여’ 섬깁니다. 아직 이 집 밖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하여 섬기는 거예요. ★예배하고 섬기던 자리까지 무너져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실 집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줄 믿습니다!적용 질문Q.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볼 때, 하나님을 섬기라고 받고도 나를 위하여 쓴 것은 무엇입니까?Q. 함께 지어져 가야 할 지체 가운데, 내가 아직 마음을 닫아 둔 지체는 누구입니까?Q.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이번 주 내가 섬기며 복음을 전할 이웃의 이름은 무엇입니까?예, 수요일 날 새가족들을 좀 데리고 오세요. 그러니까 이 결혼, 가정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다들 살아도 그냥 왜 사는지 모르니까 전도할 기회로 새가족 모시고 오는 분들만 어떻게 입장을 좀 시킬까요? 전도를 좀 하세요. 여러분 맨날 들었던 얘기니까 전도하세요. 아셨어요?성전이 망하는 이유를 예레미야는 계속 얘기를 하고 있는데, 특별히 예레미야 6장에 저 같은 얘기를 하는 거예요. “아름답고 묘한 시온의 딸”(렘 6:2, 개역한글)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그 7장에는 신앙생활하는 것이 이제 겉으로 아름답고 묘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 딸이 거짓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그렇게 부르짖는다고 아까 얘기했잖아요. 자, 한 집사님이 너무 나이스하게 사셨어요. 어느 날 남편의 외도가 드러났는데, 아름답고 묘한 시온의 딸로 살다가 보니까 금세 용서를 했어요. 그래서 이제 큐티도 하고 남편이 주일 설교도 듣게 되었어요. 그런데 절대로 공동체에 들어가서 오픈을 하지 않고 부부 둘이서만 큐티를 하고 둘이서만 나누면서 ‘큐티한다고 주일 예배 듣는다’고 아주 위로를 삼았어요. 그런데 부인이 언뜻언뜻 너무 불안한 거예요. 또 나가서 바람 피울 것 같은 거예요. 여러분 이건 진짜 용서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남편이 가자고 하는 데는 다 가는 거예요. 그게 이제 두려우니까.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그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아름답고 묘한(우아한, 개역개정) 시온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이 멸절돼야 하니까 이제 반드시 공동체 나와서 함께 지어져 가야 되는데, 그거 가지고 다른 사람 살려야 불안이 없어지고 용서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교양이 대단해서 절대로 오픈을 하지 못하고, 그리고 또 용서했다는 이야기도 죽어도 하기가 싫어요. 우아하니까요, 아름다우니까요. 그런데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용서가 안 되니까 남편을 들들 볶고 채찍질을 합니다. 그것이라도 해야 바람을 안 피울 것 같은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남자들은 바람 한 번 피워서 죄를 알 수 있는 구조가 안 돼요. 그러니까 우리들교회도 이 20년 동안 계속 장로님이 바람피운 간증을 하셨지만 그분은 재미만 봤지 고난을 당한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20년을 간증을 하라”고 그랬죠. 그래도 권찰님이 그냥 우리 장로님을 보필하는 거예요. 정말 고난을 당한 거는 권찰님 아니에요? 그러니까 구조가 이렇게 됐어요. 우리들교회에 왔기 때문에 이 구조 속에 있었으니까 결국은 장로님도 되셨는데, 바람피운 거 그 죄로 여겨지지도 않아요. 그냥 들켰을 뿐인 거예요. 근데 이제 성전은 같이 지어져 가는 건데 ‘같이’가 안 되니까. 그 ‘같이’가 되려면 맨 처음 외도를 알았을 때 교양을 내려놓고 한 6개월간은 뒤집어 엎기를 바래요. 왜냐하면 들들 볶아야 공동체라도 나오잖아요. 그래야 목장이라도 나오죠. 그런데 인간적으로 금세 용서하니까 서로가 아름답고 묘한 시온의 딸이 돼서 서로가 해결이 안 된 채로 있는 거예요. 특히 여기 ‘딸’이라고 있으니까 여자의 역할이 문자적으로 저는 크다고 보는데, 재료가 좋기 때문에요. 진짜 용서하고 불안감이 없이 살려면 이 수치를 가지고 남들에게 써야 되는 거예요. 써야 그 남편도 확실히 잡히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눈물을 흘리면서 “인생이 헛것이더라, 인간의 사랑도 헛것이더라” 그래야 진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T.T.(띵크 트립)에 가서 모든 부부들이 그렇게 간증을 하니까 이제 그게 사명으로 연결이 되는 거예요. 이게 공동체가 해 주지 둘이서 아름다워 가지고 되겠습니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예레미야가 망해 가는 유다의 상태를 보며 ‘왜 벌을 받는가’ 하며 주신 말씀이에요. 교양으로 믿으면 하나님이 멸절하시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제 망해 가는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나와서 바벨론으로 피난 가라고 지금 훈련의 시기라는 거예요. 하여튼 목자를 내려놓겠다고 하는 분들은 다 수상해요. 목자를 내려놓겠다고 하고 여자로 간 이가 한둘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래도 목장에 있으니까 결국은 또 다시 돌아왔어요. 어떤 집사님은 목자를 내려놓겠다고 하더니 보니까 만난 여자가 50명이 되더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분이 재혼을 하셨는데 그렇게 돈을 아끼더니 그래도 우리들교회 와서 목자를 했기 때문에 드디어 모든 재산을 부인 이름으로 해 줬잖아요. 그래서 그동안에 맨날 얻어먹다가 지금 뷔페를 쏜다는 거 아니에요. 아주 그냥 참아서 돈도 내 거가 됐잖아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그렇게 우리들교회 목장에 있었던 것이 어마어마하게 가정을 지키고 다 살리게 된 비결인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어요.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나의 성전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시는 거예요. 그런데 예배로 내 불순종을 덮을 수는 없어요. 섬기던 그릇까지 다 가져가셔요. 지금 섬기시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셔야 해요. 이런 은혜를 이제 그 헤아리게 하시는 거예요. 지난주의 ‘진노하심’도 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한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게 하나도 없어요. 망한 것도, 무엇도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예요. 택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후렴]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 은혜나 주저함 없이 이땅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은혜기도 제목우리의 예루살렘을 이제 무너뜨리신다고 했는데 오늘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참음이셨나 이거를 생각해야지, ‘아니 내가 예배드렸는데 왜 이런 일이 와?!’ 이게 바로 불순종이라는 거 아셔야 돼요. 여러분들이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 걸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예배가 실종되고 섬기던 자리가 없어졌어요. 모든 직분을 내려놓고 나니까 이 부집게, 또 목장에서 숟가락 놓던 일도 얼마나 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정말 우리가 돈 있고 뭐가 있으면 예배가 사모되지 않아요. 근데 다 없어지고 끌려가고, ‘바벨론 강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도다’ 하잖아요. 그런 일이 오지 않도록 지금 섬기는 자리에서 믿고 살고 누리게 해 달라고. 이 공동체가 얼마나 귀한가…. 좋아서 가는 게 아니라요. 섬기는데 우리의 순종이 거래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살아남이 있으면 섬기는데, 살아남이 없이 성품으로 섬기려니까 죽을 것 같지만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가시자고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이제 창조 질서 위배되는 이 악법은 통과되지 않아야 돼요. 생명 보호법이 제정돼야 돼요. 내일부터 목세(목회자 세미나)가 시작되는데요. 그러니까 이 일에 얼마나 여러분들의 영육 간의 헌신으로 이 묵상과 가정 중수 운동이 일어나는 데 큰 역군이 되시는 역할을 하는지 몰라요. 이런 얘기를 우리가 한국 교회가 다 듣고 가정 중수 운동이 일어나야 돼요. 내가 내 남편이 바람피우고 우리 애가 힘든데 무슨 여러분들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려면 여러분 가정이 하나가 돼야 돼요. 살아남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 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 이번 주간 목세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시고, 또 이제 인도차이나반도 5개국 지도자 대회를 위해서도 여러분들 열매가 있도록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예루살렘을 이제 무너뜨리시는데 주님 왜 무너뜨리시는지 이유를 몰랐어요. 제가 아름답고 묘한 시온의 딸로 살다가 그 성전에 내가 딱 올라가 있으니까. 주님, 저를 이제 무너뜨리기 위해서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몰라요. 전 정말 그 묘한 딸로 살다가 죽을 뻔했어요. 주님을 만난 건 정말 제 인생의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떻게 이런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참고 참고 참다가 이렇게 저의 육이 무너져서 영이 세워졌기 때문에 가정은 지킬 만한 최고의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 허드렛일도 하게 하시고 땅끝까지 내려가 보게도 하시고 매도 맞아 보게 하시고. 그렇게 바벨론에 가서 허드렛 기구로 깨어져서 그렇게 살다 보니까 가치관이 변했어요. 여러분, 여러분 지금 인생에 상상하지 못할 일이 왔습니까? 다 망했습니까?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근데 끝이 없어요. 시드기야가 그러고 갔어도 하나님은 눈을 뽑아서라도 돌아오게 하시는데 여러분들이 어떤 힘든 이 바벨론에 순종한다면 오늘부터 길이 보이실 줄 믿어요. 결국은 하나님이 다 돌려주셔요. 이것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서 이제 목장부터 가서 그 말도 안 되는 처방을 듣고 ‘저 말이 사실인가’ 여러분들이 생각하면서 갈 때 하나님은 그 모습을 가장 귀한 모습으로 보실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지어져 간다”고 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에게 아버지 하나님, 이 기쁨을 허락하여 주시고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기쁨 가운데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서 일어난 사건임을 여러분들이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고, 지금부터라도 주님께서 내가 그렇게 이 말씀이 들리면 길이 보여질 줄 믿습니다. 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주여, 오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 왔다면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이 말씀이 들리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가정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주여, 나의 모든 것을 막고 있는 이 사단의 세력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물러갈지어다! 물러갈지어다!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나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을 아버지 하나님 물리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은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세요. 시드기야를 사랑하는 거 보셨잖아요. 끝까지 나를, 칼을 물고서라도 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세요. 이 사랑에 순복하는 우리 모든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이 말씀을 깨닫고 신앙고백으로 드린 저희들의 헌금을 주님 받아 주세요. 주님, 이 땅에서 주의 일을 해야 되겠사오니 쌓을 곳이 없도록 저희들의 창고를 채워 주셔서 하나님께는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는 줄 것만 있도록 저희들의 회사와 사업과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에, 또 물질과 건강과 관계에 기름을 철철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 기도제목 -
목원 중 형제 한 분이 직장을 옮겼으나, 주말에도 일을 하게 되어 양교, 주일성수도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주일성수를 드릴 수 있도록 스케쥴이 조정되고, 양교에 대한 마음도 심어주셔서 이번 텀에 양교도 꼭 수료할 수 있기를 같이 중보합니다.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말없는 근무로 삶이 피폐해 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오히려 갈급한 마음으로 주일예배를 사수하는 형제님 될 수 있도록 기도부탁 드립니다.
저희 목장 구성원들 모두 아픈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정신과 상담을 통해, 빠르고 정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병원과 의사 선생님, 그리고 알맞은 약을 처방받아 먹을 수 있도록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시고, 섬기던 그릇까지 가져가시고, 잃은 은혜를 헤아리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저희가 모두 깨지고 으깨져서 우리의 죄악에서 벗어나고, 어려울 때 일수록 하나님을 붙드는 귀한 삶 살아가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맛있는 음식과 기도로 섬겨주신 목자님, 고맙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나눔해주신 목원님들 축복합니다.
옆에서 같이 기도해 주신 다른 목장 목자님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