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아니하였고
본문: 열왕기하 21:1-9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
모임장소 카페 로쥬
모임인원 이진국 목자님외 2명
1 므낫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헵시바더라
2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3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5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6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8 만일 이스라엘이 나의 모든 명령과 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떠나 유리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하셨으나
9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
카페에 가면 테이블마다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음악도 나오고 그릇도 부딪치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시끄러워도 마주앉은 친구와는 얘기할 때 그 얘기를 듣잖아요. 그렇죠? 이걸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하는데요. 많은 소리 중에서도 내가 집중하는 소리를 골라 듣는다는 거예요. 예전에 우리 옆집 아이가 그렇게 아무리 테레비를 크게 틀어놔도 그 앞에서도 걔는 책을 읽는다는 거예요. 테레비 앞에서도 우린 늘 무언가를 듣고 살아요. 그런데 볼륨이 저마다 다 다르지요. 자녀의 성적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리죠. 사람들의 평가도 모기소리만 해도 들려요. 집값소리도 작지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가요? 말씀이 잘 들리십니까? 귀가 없어서 못 듣는 게 아니죠. 마음이 다른 소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크게 듣는 소리가 결국 나를 끌고 가는 소리예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데요.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 첫째로,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는데요.
1.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웁니다.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자 가장 오래 통치한 왕이에요. 그런데 그런 왕도 등장은 아주 평범합니다. 즉위 나이 통치 기간 어머니 이름이 나오는데 특이하게 아버지 이름이 빠졌어요. 물론 20장 마지막에 언급했지만, 이제 21장의 므낫세의 처음 소개는 너무 악해서 도저히 히스기야의 아들이라고 저자가 써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모친 헵시바는 내가 그를 기뻐한다는 뜻이에요.
이사야 62장에서 회복된 백성에게 주신 이름이기도 한데요. 참 좋은 이름이에요. 그러면 헵시바가 므낫세를 낳을 때가 언제였나요? 므낫세가 12살이니까 히스기야가 15년의 삶을 연장받은 후에 앗수르도 물러간 후에 태어난 아들이에요. 그러니까 히스기야 통치 전성기였어요.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온 나라를 우상천국으로 바꾸었어요. 그러니까 히스기야는 15년 더 살면서 그때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최고로 악한 왕이 되었고 보물 자랑하더니, 바벨론에 잡혀가는 빌미를 제공했죠. 그러니까 병만 낫게 해달라는 기도보다 우리의 평탄한 길은 마치 우리 본문처럼 정확한 길을 가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병만 낫게 해달라고 그러지 말고 하나님 뜻대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고 그것이 바로 큐티하면서 물어보는 기도를 말하겠죠. 그 아들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어요. 므낫세는 누구 이름이에요? 요셉의 장자 이름이에요. 무슨 뜻이죠. 잊게 하는 자예요. 요셉은 애굽에서 당한 모든 고난을 하나님이 있게 하셨다는 의미로 아들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어요. 히스기야도 앗수르에게 당한 고난을 생각하며 아버지 아하스 시대의 악이 다 잊혀지기를 바랐을 거예요. 참 우리의 본능적인 요셉 사랑은 대단해서 히스기야까지 요셉의 장자 이름으로 지었네요. 자고로 하여튼 요셉이 좋긴 해요. 그래서 히스기야가 망했지 뭐예요. 예 그런데 아니 아버지가 그렇게 종교 개혁을 하고 선한 왕으로서 지금까지도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데 므낫세는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도대체 또 무슨 악을 행했을까요? 2절에 보니까 므낫세가 여쏘와 보시게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선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의 가치관을 따라서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 왕 아합의 길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섬기며 이 모든 것을 갖춘 므낫세가 한 건요. 단 하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거예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랐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여호와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일은 우리들 보기에도 가증스러워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가증하다고 그러면 네 우리도 가증하다고 그래야 되잖아요. 성경이 가증하다고 그러면 가증하다고 해야 되죠. 사실 동성애가 그렇죠. 하나님과 우리가 보는 눈이 다르면 안 되잖아요. 이것저것 다 떠나서 동성애도 낙태도 인권도 다 좋은데 생명이 끊어지는 건 안 되잖아요. 생명이 끝나지만 앞으로 예수 믿지도 못하잖아요. 생명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건 악법 중에 악법이라는 거예요. 안 그래도 인구절벽인데 만삭의 임산부도 낙태할 수 있는 것을 권리라고 발의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남자가 여자 되고 싶은 것을 가중하다고 해야지 인간의 권리라고 인권을 부르짖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솔직히 동성애 찬성법이라고 하면 온 국민이 반대라고 알아들을 텐데 이걸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니까 다들 "차별을 금지하는 게 왜 나빠?" 다 모두가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하나도 심각하지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속에 성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게 포함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단이 말을 교묘하게 해서 선악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해야 되는 걸 죽을까? 하노라 이렇게 해서 꼬였잖아요. 말 한마디가. 저는 이제 탄핵이고 계엄이고 우리에게는 발작 버튼이 눌려진대. 이 얘기 하나 했다가 지금 얼마나 옹기물이 되게 완전히 그냥 그러니까 이게 언어 그러니까 이렇게 갖다가 쓸 수가 있어 헌법은 양성평등이잖아요. 성이 남녀 두 개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양자 하나 빼고 성평등이라고 하는 성평등 이게 인제 모든 성이 다 평등하다 그래서 이게 동성애 찬성을 하는 거예요. 동성애자들 너무 사랑하죠. 그런데 하나님이 이거를 이제 그럼 안 된다고 과중하다고 하셨으니까 이렇게 교묘하게 호도하기에 하나님과 시선이 다른 거예요.
하나님이 가증하다고 우리도 가증하다고 해야 되는데 그런데 여러분들도 이렇게 차별금지법 하도 듣다 보니까 다 무뎌졌어요. 이제 아이고 하거나 말거나 이렇게 됐어요. 맨 처음엔 엄마 그게 말이 안 되지 너무나 다 무뎌졌어요. 선한 아버지는 고통을 잊게 해줄 아들이길 기대했는데 므낫세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아들이 된 거예요. 결론은 가장 선한 왕 밑에서 가장 악한 왕이 나왔습니다. 아버지도 훌륭하시고 어머니 헵시바는 히스기야의 부인인데 아들을 어떻게 키웠길래 이런 아들이 나왔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헵시바가 이사야 선지자의 딸이라는 전승이 있어요. 그 악한 아하스가 자기 아들 히스기야에게는 또 이사야의 딸을 배필로 맞게 했다는 것이 참 재미있지 않아요?
그 전에 성군 여호사밧은 저기 저 금송아지 섬기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데리고 오더니, 이 악한 아하스는 유명한 선지자의 딸을 며느리로 데려오고 정말 저는 천국에 가서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1부는 아주 반응이 일절 없네요. 어떻게 그래요? 1부라고. 그래서 결국 한 일이 뭐예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웠다고 그러잖아요. 다시 다시가 중요해요. 여러분들 이게 오늘은 뭔지 아세요. 이게 또 유명한 슈브 동사 슈브 돌아섰다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회개가 아니라 세 번이나 해그림자로 물러가신 하나님의 사랑만큼 강력하게 하나님을 떠나는 타락으로 슈브한 거야.
아버지의 개혁에서 돌이켰어요. 오직 여호와만 의뢰하는 신앙을 버렸어요. 그 대신 북이스라엘 악의 화신이 아합의 길에 다시 섰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어렵게 철폐한 산당을 다시 세웠어요. 아세라 목상을 다시 만들고 바알과 일월성신우상을 다시 숭배했습니다.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운 거예요. 므낫세는 그냥 왕이 되자마자 여보란 듯이 다시 세웠어요. 자식과 아버지의 가치관이 너무 다른 거예요. 우리 이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지금 인제 직면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똑같이 돌아서는 행위고 돌이키는 행위잖아요. 그런데 하나는 선이고 하나는 악이에요. 그러니까 문제는 목적이고 방향인 거예요.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면 생명인데 하나님을 등지고 돌이키면 죽음이에요. 그런데 이제 등지다가도 마지막에 하나님을 향하면 그건 또 생명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이 세상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슈브가 회개잖아요. 회개만큼 강력한 것이 강력한 그 힘으로 아합의 길로 다시 타락했다는 거 거예요. 그러니까 회개하지 않는 믿음은 가증할 수밖에 없어요. 교회를 나가지만 회개하지 않는 믿음은 가증할 수밖에 참 하나님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히스기야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버지 아하스도 제일 악한 왕인데 그 때문에 본인은 최고의 성군이 되었는데 그런데 또 그 아들은 할아버지보다 더 악한 왕이 됐어. 그런데 우리는 악한 아버지 밑에서 악한 아들이 나왔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선한 아버지 밑에서 선한 아들이 나와야 되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 거꾸로예요. 그러니까 중요한 거 행위가 아니라는 거예요. 콩 심은데 콩이 나야 하는데 팥이 나면 팥이 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이 성경은 우리 허를 찌르고 있어요. 악한 데서 선이 나고 선한 데서 악이 나고 또 악한 데서 악이 나고 선한 데서 선이 나고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과 계속 다른 이걸 왜 이런가 하면은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는 거야. 행위가.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것이 믿는 우리가 적용할 원리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외해도 이런 악한 아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되고 물론 이거를 합리화하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전자동으로 인과응보격으로 저 사람이 착하니까 이렇고 저 사람 악하니까 저렇고 쉽게 이런 생각을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내 자신에게만 적용하면 돼요. 즉 문제안 없고 문제 부분만 있다는 거를 자기 자신한테만 적용해야지 남한테 절대 적용해서는 안 돼요.
그런데 우리가 큐티 하면서 워낙 들은 것이 많다 보니까 들은 걸로 전부 남의 적용만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요. 그래서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님이 있는 거 알지? 뭐 이래 가면서 자녀가 엄마한테 엄마가 또 엄마는 자녀한테 안 하죠. 그러니까 자녀에게 줄 최고의 선물은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이걸 줄 때 제일 좋아해요. 자녀들이 그 선물을 하세요. 예 부모들은 자녀에게 부모 탓이야 이거니까 이거 신앙 고백이니까. 무슨 말씀이든지 내 자신에게만 적용하세요. 왜냐하면, 뭐 나도 그렇지만 그 사람도 어떻게 바뀌고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에요. 저 사람은 안 돼 그럴 사람 없어요. 그러나 이런 설명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바로 인간의 본성 자체인 거예요.
우리는 죄의 공장이 90%도 99%도 아닌 100% 죄인이에요. 우리는 성전보다 가증한 산당이 너무 좋아요. 가증한 산당 세우는 일은 훨씬 더 자연스러워요. 죄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돼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나무 조각이라도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목상이 더 믿어지는 거예요. 멀리 계신 것 같은 것보다는 내 손 안에 들어오는 골드가 너무 귀한 것 같아. 그러니 하나님을 향해 힘겹게 겨우겨우 10도 돌려놓은 개혁도 잠깐 방심하는 순간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우는 자리로 획 돌아가는 거예요. 이게 죄악의 퇴행이에요.
가만히 두면 저절로 하나님께 가는 게 아니라 저절로 산당으로 가요. 수없이 목회자 세미나 하지만 다들 은혜 받으셨어요. 이제 큐티인을 가지고 큐티 목회를 하는 거는 정말 부자가 하늘나라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이제 끊임없이 모래에서 못 찾기 하는 거예요. 그래도 언젠가는 열매를 맺으라고 쉬운 게 아니에요. 다 은혜 받으셨지만은 그렇게 금세 왜냐하면, 이제 너무 은혜 받았는데 내가 떠나고 나면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도 10년이나 돼도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이 많잖아요.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소쩍새가 수도 없이 울고 갈라구요. 저는 계속 울어대고 갈라구요. 그래서 큐티해서 끊었던 죄 목장에서 오픈해서 무너뜨렸던 자존심 통곡하면서 회개했던 원망과 불평 다시는 안 하겠다고 했던 중독과 혈기와 음란과 소비와 비교와 욕설과 그런 거 끊을 땐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조금 부해지면 그냥 어느 순간 다시 쌓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인제 맨날 말씀 듣고 주일날 또 말씀 듣고 월요일날 수요일날 또 듣고 내가 쌓았던 걸 계속 무너뜨려야 되는데 아무것도 그런 작업을 안 하고 있으면은 어떤 목사님이 우리도 교회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쳇지피티에 물어봤더니,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갈 교회가 아니다. 이렇게 나왔대요. 그러면은 편하게 신앙생활을 다른 교회를 소개를 해 줄 거나 그렇지만 또 그렇게는 어때요. 진짜 하려면 가라. 그랬죠 진짜 싫어 쳇지피티가 약간 칭찬인지 욕인지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러면 편한 거 좋아하니까 대부분은 그 말 듣고 안 오겠네요. 이것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돌아가는 산당의 자리예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산당을 내 안에 다시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죠. 방심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어요. 늘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죠.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앞에서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안의 므낫세를 날마다 죽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내가 므낫세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성경에 나쁜 거는 늘 내가 아니고 "나는 그래도 히스기야지 므낫세는 아니야." 이딴 소리 하지 마시고 오늘 므낫세가 나왔으면 내가 므낫세인 거야. 므낫세는 대체 왜 그랬을까요? 이제 성경에는 문자적으로 이런 얘기를 안 가르쳐주죠. 침묵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찾으려고 큐티를 하는 거예요. 세속사적으로는 너무 완벽한 부모잖아요. 히스기야와 헵시바가 그러니까 부모 밑에서 눌리죠. 우리는 죄인인데 죄인이 영적인 부모 밑에서 눌리죠. 그러다가 권력 잡고 반항이 터진 것일 수도 있고 양육의 문제였을 수도 있어요. 청소년기 반항심이 권력을 만나면 일기장에 욕을 쓰는 게 아니고 산당을 다시 세우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우리는 다 상담받고 병원도 가고 그래요. 그런데 거기서 우리는 구속사적으로 하나 더 나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서 왜 그 이유를 찾아봐야 되는 거예요. 구속사적으로 자 므낫세는 전쟁도 끝나고 아들도 없던 중에 15년 연장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얼마나 애지중지했겠어요.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부귀영화와 더불어 아버지 어머니의 신앙 인격까지 더해서 태평한 시대를 살았어요. 영육간의 금수저예요. 허벅지를 꼬집어도 므낫세는 말씀이 들리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그러니 부자가 천국 못 간다는 모델이 되어서 구속사로 입문을 전혀 못하는 거예요. 구속사가 안 들리는 거예요. 이런 사람 있지 않겠어요. 우리는 이런 므낫세를 또 이해해야 되는 거예요.
왜 저러나 부자 감옥 이게 아니야. 그럴 수밖에 없는 거 인간이 100% 죄인인데 한 재벌가의 사위가 이혼하고 감옥에 갔는데 아들은 너무 반듯하게 컸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게 인제 그래도 저는 그런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 생명으로 오게 해줬잖아요. 그 아버지도 그럴 이유가 반드시 있었을 거예요. 이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있는 게 구속사를 게 내 죄를 보는 태도예요. 그런데 그냥 맨날 행위로 이 사람은 no 그 아버지는 안 만나야 돼. 관계를 끊겠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내 아버지 밑에서 내가 나왔는데 어쩌라고요. 그러니까 새아버지는 그냥 우리 엄마의 엄마가 데리고 사는 남자 이 정도로 알았다가 우리들 교회 와서 전도했대잖아요. 오늘 새벽 기도에. 천국 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속사는 끊임없이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해봐야 되는 계속 옳고 그름 그런데 그 생각 자체를 할 수 있는 게 구속사인데 그게 쉬워 보이는데 너무 안 돼요. 이걸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그렇지만 할 수 있어요. 말씀이 들리는 것은 이런 걸 의미해요.
적용질문
- 내가 은혜로 헐어버린 산당은 무엇이에요.
- 공동체에서 끊어낸 죄악은 무엇인가요?
- 내 죄악의 태엽은 뭐예요?
그냥 맨날 오뚜기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죄악의 태엽은 뭐예요?
- 혹시 요즘 나도 모르게 그것을 다시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내 자녀들을 세속사로 판단합니까? 구속사로 기다립니까? 그 기다림이 회개로 나타납니까?
2.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았습니다.
므낫세가 다시 세운 산당은 어디 있죠? 산에 있어요. 성읍 한가운데 있는 성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증한 죄악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아요. 외곽에 머물지 않아요. 저 멀리 산 위에서 시작된 우상숭배가 점점 안으로 들어왔어요. 산당이 성전 안으로 들어와 제단이 되었어요.
성전 마당에 온갖 잡신을 위한 제단으로 채워졌어요. 그러곤 마침내 성전 안에 아세라 목상이 세워졌습니다. 아버지가 찍어버렸던 그 목상을 다시 살려서 성전에 둔 거예요. 이 단락을 감싸는 두 개의 동사를 주목해야 되는데요.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의 성전에 두리라 하셨다고 하잖아요. 어디요? 예루살렘 성전이요. 하나님이 거룩한 이름을 성전에 두셨어요. 그런데 7절에 보니까 므낫세가 아세라 목상을 어떻게 했다고 해요? 몰라요? 지금 읽었잖아. 므낫세가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다고 하죠. 그러니까 두었다와 세웠다가 언어로 같은 동사예요. 똑같은 단어예요. 장소도 똑같이 성전이에요. 하나님은 거기에 자기 이름을 두셨는데 므낫세는 거기에 우상을 세웠어요.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모르고 한 행동이 아니고 실수로 한 행동도 아니라는 거예요.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된 악행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정면으로 무시하며 거스르는 가증한 죄악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므낫세의 행동은 엄청난 반역입니다. 예배 자리를 이용해서 예배 형식으로 예배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긴 것이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가장 큰 타락이 일어난 곳이 어디예요? 광야가 아니에요. 변두리 작은 동네가 아니에요. 예루살렘이에요. 그것도 성전이에요. 어떤 성전이었나요? 문제투성이 성전이 아니에요. 바로 자기 아버지가 회복했고 지켜냈고 부흥케한 성전이에요.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게 된 곳이에요. 아버지의 회개의 눈물이 서린 곳이란 말이죠. 그런데 바로 이 자리에서 므낫세가 끔찍한 반역을 저지른 거예요. 그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았어요. 신앙의 가장 위험한 자리는 고난의 광야가 아니에요. 광야에서는 오히려 부르짖고 훈련받고 양육받습니다. 정말 위험한 자리는 모든 것이 정리된 것처럼 보이는 자리예요. 가장 타락하기 쉬운 자리는 놀라운 은혜로 귀신이 떠나가고 싹 수리된 자리예요. 더 이상 영적 싸움을 안 해도 되는 그런 편안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므낫세는 그렇게 우상 숭배는 어디까지 갑니까? 처음엔 저 멀리 산만 있으면 될 것 같던 우상 점점 조여오더니, 결국 성전까지 들어오죠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6절을 보니까 마침내 자식까지 요구하는 거예요. 할아버지 아하스가 몰렉에게 자식을 바쳤어요. 그런데 아버지대를 거쳐서 므낫세가 모압의 그 가증한 일을 완전히 따라하지 말씀이 들리지가 않으니까 말씀이 안 들리니까 이렇게 교회에서 사는데 성전에서 사는데 거기까지 넘어가는 거예요. 자식을 우상의 제물로 바치는 것까지 가는 거예요. 오늘도 우리는 자식들을 불가운대로 지나게 합니다. 우리 못 먹고 못 살 때 하고 지금 비교가 안 되게 입시의 불, 비교의 불, 성공의 불, 내 한풀이의 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하지만 그게 과연 정말 자녀를 위한 것인가요? 내 욕심 채우려는 우상 아니에요? 자녀들은 그 욕망의 불 가운데서 지쳐가고 눌리고 타들어갈 수 있어요. 내 욕심의 불은 결코 자녀를 살리지 않아요. 오히려 자녀를 삼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욕심은 한쪽으로는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한쪽으로는 점치고 사술을 행하고 기복 종교를 찾게 합니다. 요새 얼마나 무당이 또 판을 치는지 믿는 사람이 또 무당까지 찾아갑니다. 뭐예요? 결국 앞날을 내 생각 내 뜻대로 만들고 싶은 것이죠. 내가 컨트롤하려고 하는, 내가 하나님 되려는 욕심이에요. 하나님 자리에 내가 있어요. 아담과 동일한 악이에요. 여러분 우리 자녀도 미래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예배의 자리입니다.
자녀 문제도 하나님께 맡기고 미래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내 욕심대로 만드려는 게 바로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는 교회를 빙자하고 교회를 다닌다고 예배를 다닌다고 하면서 다 이중생활을 하는 거죠. 욕심으로 이렇게 가증한 산당을 교회에 와서 쌓고 있는 거예요. 이런 많은 악행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무서우세요? 덤덤하세요? 아니면 아니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하나님이 나한테 진노하실 수 있어. 그러시나요? 그래서 더 화가 나시나?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기에 소망이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 새끼라고 여기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악을 행해도 남의 자식이면 진노하실 일이 없잖아요. 내 자식이니까.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진노하면 혼을 내시는 것이죠. 그러므로,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에 맞는 사건이 올 때 우리는 왜가 아니라 무조건 회개해야 돼요. 왜죠?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징계하시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돌아서라고 악을 쌓는 일을 멈추고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사랑이에요. 그러므로 히스기야 최고의 축복은 병 걸린 것도 아니고 아들 준 것도 아니고 앗수르 18만 5천 명이 쳐들어온 거예요. 그때 회개했죠. 그 입으로 환난과 징벌과 책벌의 날이라고 본인이 회개했잖아. 진심으로 회개한 것보다 더 축복은 없어요.
- 나는 요즘 어떤 제단을 쌓고 있습니까?
- 돈, 시간, 노력, 관심을 제일 많이 들이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 자녀를 어떤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있습니까?
- 내일 어떻게 될지 가장 궁금한 건 지금 뭐예요? 그것을 알고자 매달리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3. 더 심한 악으로 꾐을 받습니다.
꾀임을 꼬임 있잖아요. 꾀임을 받아요. 지금까지 보면은 므낫세가 무엇을 했는지 보여줬어요. 산당을 다시 세우고 성전에 악을 쌓았습니다. 7절 후반부부터 분위기가 달라져요 이젠 므낫세의 죄가 왜 그렇게 심각한지 알려줍니다. 끝에 충격적인 결론을 던집니다. 7절에요. 하나님께서 성전에 대해 약속하신 말씀을 상기시키죠 내가 이 성정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사절이에요. 다시 4절에 이어서 다시 강조합니다. 이거는 영원한 약속이에요. 그런데 조건을 말씀하시네요. 그러니까 영원한 약속 뒤에 따라붙는 조건은 사실 무서운 거죠. 하나님의 약속은 깨지지 않지만 그 약속을 누리려면 지켜야 될 조건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명령과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영원한 약속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물론 우리가 받는 구원은 무조건적인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잃어버릴 수는 없어요. 그러나 구원의 평안과 능력을 이 땅에서 온전히 누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말이에요. 구원받았지만 구원받지 않은 것처럼 살 수 있다는 거예요.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그러니까 매 순간이 사실 이런 선택의 기로예요. 우리가 말씀 듣고 순종하기를 하기를 누가 가장 바라겠어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죠. 그러니 이렇게 조건을 달아서라도 경고를 해서라도 혼을 내서라도 때론 매를 들어서라도 제발 말 좀 들으라고 외치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요. 본성상 말씀 듣는 게 너무 어려워요. 유다 백성도 안 듣잖아요.
예 여러 민족과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 예 그러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이 세상보다 더하다 더 심하다 이 말이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시지만 그러나 이 백성이 어떻게 했어요? 선택된 백성이 어떻게 했어요? 듣지 않았어요. 이게 충격이에요. 악을 행했고라고 하신 게 아니에요. 우상을 섬겼라고 하지도 않으셨어요. 듣지 아니하였고 듣지 아니하였고 하세요. 여러분 하나님 백성의 신앙 출발점이 어디예요?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들으라 듣고 그대로 행하라
이게 하나님 나라 인생의 시작점이야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이백성이 듣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고 오래 기다리셨지만 백성은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 결국 다른 것을 듣게 되죠. 하나님 말씀을 안 들으면 반드시 세상말을 듣게 돼 있어요. 뭘 들었어요. 므낫세의 꾀임을 들었어요. 온 백성이 므낫세의 꾐을 들었어요. 거기에 넘어갔어요. 므낫세가 설득을 잘해서 넘어갔나요? 물론 그것도 있겠죠. 그러나 그들도 므낫세와 똑같기 때문에 다 넘어간 거예요. 히스기야 때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잖아요. 앗수르 무서운 거 알아가지고, 그래서 개혁이 공감대가 형성되었어요. 그런데 히스기야가 태평과 진실의 시대를 열었더니 잘 살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온 국민이 다들 전자동으로 산당으로 꼬이는 므낫세의 꾐에 넘어갔어요. 온 국민이 넘어갔어. 유혹받은 자는 유혹한 자를 탓할 수 없어요. 둘 다 욕심의 죄는 똑같아요. 오히려 유혹에 넘어간 사람 욕심이 더 큰 거예요. 그래서 속인 자보다 속은 자가 더 악한 거예요. 타락한 우리와 너희가 만나면 악은 지극히 정상인 것처럼 자리 잡게 돼요.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악은 정말 평범한 거예요. 그것이 악의 무서움이에요. 그래서 악인 줄도 모르고 다 넘어가는 거예요. 우리가 다윗 때도 압살롬이 온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다윗을 놔두고도 온 백성이 압살롬에게 넘어갔어요.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게 바로 이 무서움이에요. 산당을 다시 세우는 악이 성전을 더럽히는 악으로 번지고 그것이 다시 온 백성을 물들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죠. 하나님이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게 되는 거예요. 어려서의 지금 우리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의 가난했던 그때는 예수가 고마웠어요. 학교도 병원도 세워주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곳곳에서 예수 믿는 것을 인정받았어요. 그리고 언제까지 내가 못 믿어서 그렇지 예수 믿는 거를 핍박 받을 날이 올 줄은 상상을 못하네. 누구 탓이겠어. 다 우리 삶의 결론일 것 같아요. 믿는 우리끼리 우리 믿는 우리끼리 자중질환이 계속 일어나니까 아무리 회개해야 된다고 얘기해도 믿는 우리가 더 듣지를 않아요. 지금 70%가 기독교를 불신한다고 그래 불교 천주교 기독교가 3등 140만 명이 줄었대. 4명 중에 1명이 교회를 떠났대 여러분 어렸을 때 특별히 20살 때까지 교회를 안 나가면 평생에 돌아올 확률이 너무 희박해. 다음 세대가 다 떠나고 있어. 우리는 진짜 정말 팔수록 손해인 새싹큐티 영유아부 교재 사질 않아. 아이들한테 읽히질 않아. 그래도 만들어내야 돼 만들어내는 데가 없어서 죽어라고 만들어내야 돼 그게 몸에 배질 않으면은 정말 돌아오게 그때 다 떠나고 다 떠나고 특별히 20대 전의 아이들이 다 떠난다잖아.
아모스 8장 11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면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말씀이 없어 기갈이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그러잖아요. 우리 주님도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게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죄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보다 더 힘든 게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거죠. 영적 교만이 제일 무서워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교만한지 몰라요. 하나님이 유일신이라 이러면서 우리 교회에서도 말씀이 제일 안 들리는 사람이 우리 사역자들이에요. 뭐가 부족해서 그러겠어요. 아니죠. 오히려 말씀이 익숙해서 그래요. 안다고 생각하니까 더 안 들려요 이게 문제예요. 여러분 말씀이 들리려면 내가 안 들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들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귀가 딱 닫혀요. 이 말 듣고 기분 나쁜 사역자가 있으면 정말 안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들리지 않는다는 낮은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야 해. 주님 제 길 좀 열어주세요. 말씀이 들리게 좀 해주세요. 그럼 주님이 반드시 들리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듣지 않는 것이 죄의 본질이에요. 아담도 듣지 않아요.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듣지 않았어요. 왕도 듣지 않았고 백성도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 히스기야의 개혁에도 개혁이 실패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이 모든 듣지 않은 가운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 달리 다윗의 후손으로 주님의 언약을 지켜가셨어요. 참사람이자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남유다에는 계셨어요. 오늘 본문에 이렇게 가증하게 악을 행하는 이야기밖에 없잖아요. 오늘 므낫세 악을 행한 이야기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 숨어 계시는 분이 계시네요. 9절까지 여호와가 거의 절마다 8번이나 등장하는 거예요. 여호와가 2절에 두 번 4절에 여호와가 두 번 5절에 한 번 6절에 한 번 7절에 한 번 9절에 한 번 너무 놀랍지 않나요? 히스기야 때는 해 그림자가 되어 세 번이나 물러가신 주님은 이 악한 므낫세를 위해서는 더욱 쉬지 않고 절마다 여덟 번이나 숨죽이고 돌보고 계시는 거예요.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셨지요. 그러니까 므낫세가 뭐가 공로가 있어 이렇게 악한 놈인데 그런데 결국은 하나님이 언약으로 지키셔서 므낫세도 이제 하나님의 택자가 되는 거죠. 마태복음에 올라가죠 그러니까 우리 행위에 있는 게 아니야. 우리 구원은 듣지 않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죽기까지 들으신 주님께 있는 거예요. 우리도 죽기까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숨죽이고 보고 듣고 기다려야 돼 우리의 방향은 죽기 전까지라도 하나님께 돌이키면 하나님은 그 마지막에 우리의 회개도 들으세요. 방향만 딱 턴하면 그래서 우리는 밤낮 찾아가야 돼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방향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늘 그 자리에 계시면서 우리가 방향만 틀기를 늘 기다리시죠.
우리가 영접할 때 믿겠다고 고개만 까딱해도 회개로 받아주시고 우리의 언어로 다 들어주세요. 그래서 오늘 보면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오늘 너는 듣고 있느냐 듣고 있다면 자꾸만 세워지는 산당을 무너뜨려야 돼. 예배의 자리에 마저 쌓고 있는 악을 악의 우상을 뽑아내야 돼. 나는 사람이 돌이켜 회개할 때 가정과 공동체가 살아나 바로 그 회개의 자리에 하나님이 영원히 자기 이름을 두실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
나는 누구의 말을 가장 크게 듣고 있습니까? 상처예요. 사연이에요. 이웃 친구 부모 자식 배우자입니까? 말씀입니까?
- 내가 받고 있는 꾐은 무엇이에요. 내가 꿰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 나는 말씀이 들립니까, 듣고 있습니까?
- 나의 악함에도 주님이 숨죽이며 보고 계시는 것이 믿어지시나요? .
목장 중보기도입니다.
같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
1. 성숙하고 실력있는 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길
2.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신교제 누리도록
3. 기도로 책 집필 할 수 있도록
4. 사업과 아이디어와 학교 강의 위에 기름부어 주시길
5. 아버지 요즘 다시 증상이 심하신데 속피 회복되시도록
6. 간호하는 어머니 힘 주시고 지치지 않으시고 목과 허리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하시도록
7. 부모님 잘 주무실 수 있도록
나
1.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저희 어머니 삼성병원5월18일(검사)받고 5월28일(결과)나오느데 검사 잘받고 좋은결과 나올수 있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3.제 동생 가족 5월14(한국 도착)5월17(베트남 도착)하는데 오고 가는길 무사히 잘 오고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4.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5.요즘 감기 때문에 많이 힘듭니다. 어제 너무 힘들어서 결국 병원 또 가서 주사 맞고 왔는데 건강 지켜 달라고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6.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 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다
1.부모님 건강회복 과 구원
2.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3.매일 큐티인도해 주세요.
4.글을 깨우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라
1. 양육 마지막 1번 남은 것까지 마무리 잘할 수 있도록
2. 오빠 손가락 다친 거 완전히 회복이 되어 일상생활 지장 없도록,
오빠 전도 할 수 있도록
3. 엄마 지금의 건강 유지하여 본인 스스로 관리가 되도록
4. 식욕이 왕성해져서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도록, 간식 줄이도록
5. 신교제, 신결혼 제게 허락해 주셔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세요
6. 항상 영적으로 깨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저의 부족한 건강, 경제력이 채워 주도록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