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 나눔>20260503
본문: 열왕기하 21:1-9
제목: 듣지 아니하였고
마주앉은 친구 이야기는 잘 들린다. 많은 소리 중에서 내가 듣는 소리에 집중하는 소리다. 무언가 듣고 산다. 볼륨이 저마다 다르다. 자녀의 성적 소리는 크게 들리고 사람들의 평가도 크게 들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가? 말씀이 잘 들리는가? 마음이 다른 소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크게 듣는 소리가 나를 끌고 간다. 듣지 아니하고, 듣지 아니하면 어떻게 될까?
1.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운다. 1절, 므낫세,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 가장 오래 통치한 왕이다. 너무 악해서 히스기야 아들이라고 저자가 써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헵시바, 내가 그를 기뻐한다는 뜻이다. 이사야 62장, 회복된 백성에게 주시는 이름이기도 하다. 15년 생명을 연장받은 후 태어난 아들이다. 히스기야 통치 전성기다. 나라를 우상 천국으로 바꿨다. 병만 낫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최고의 기도는 큐티하며 물어보는 기도다. 므낫세, 요셉의 장자 이름이다. 잊게 하는 자, 요셉의 애굽에서 당한 모든 고난을 잊게 하셨다는 뜻이다. 히스기야도 아버지 아하스 시대의 악이 다 잊혀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히스기야까지 요셉의 장자 이름으로 지었다. 므낫세는 도대체 무슨 악을 행했을까? 2-3절, 모든 것을 다 갖춘 므낫세가 한 것 하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한다.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랐다고 한다. 가증스러운 일은 우리도 보기에 가증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시선이 같지 않다. 하나님과 우리가 보는 눈이 같아야 한다. 동성애도 낙태도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남자가 여자되고 싶은 것을 가증하다고 해야 하는데 인권을 부르짖으면 안 된다. 성평등이라고 하니까 모든 성을 평등하다고 하니까 동성애를 찬성하는 것이다. 교묘하게 호도하니까 시선이 다른 것이다. 차별금지법 발의, 우리도 무뎌졌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아들이 되었다. 헵시바, 이사야의 딸이라는 전승이 있다. 가장 선한 왕 밑에서 가장 악한 왕이 나왔다. 악한 아하스는 영험하신 선지자의 딸을 며느리로 데리고 왔다. 므낫세, 그의 아버지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웠다. 다시가 중요하다. 원어가 슈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만큼 강력하게 하나님을 떠나는 타락으로 슈부한 것이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신앙을 버렸다. 산당을 다시 세웠다. 아세라 목상을 다시 만들었다. 바알과 일월성신을 섬겼다.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운 것이다. 자식과 아버지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돌이키는 행위인데 하나는 선하고 하나는 악하다. 하나님께 돌이키면 생명이다. 하나님을 등지고 돌이키면 죽음이다. 슈부가 돌이키는 것 회개다. 강력한 힘으로 아합의 길로 다시 타락했다는 것이다. 믿음은 회개로 나타나는 것이다. 회개를 하지 않는 믿음은 가증할 수밖에 없다. 히스기야, 아들은 할아버지보다 더 악한 왕이 되었다. 선한 아버지 밑에서 선한 아들이 나와야 하는데 반대다.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콩 심은데 팔이 나면 안 된다. 성경은 허를 찌르고 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것이 믿는 우리가 적용해야 할 원리다. 하나님을 경외해도 악한 아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한테만 들이대면 안된다. 들은 걸로 남한테만 적용한다. 엄마가 자녀에게 주는 것이다. 언제나 적용을 나에게. 남한테 하면 안된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100% 죄의 공장장이다. 성전보다 가증한 산당이 너무 좋다. 가증한 산당을 세우는 것은 너무 쉽다. 눈에 보이고 만져 보이는 목상이 너무 믿어지는 것이다. 멀리 계신 것 같은 GOD보다 내 손안에 들어오는 GOLD가 너무 귀한 것 같다. 십도 돌려놓은 개혁도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우는 자리로 홱 돌아간다. 죄악의 태엽이다. 큐티해서 끊었던 죄, 목장에서 오픈해서 무너뜨렸던 자존심, 중독, 혈기, 음란, 비교, 욕설, 조금 부해지면 다시 쌓고 있다. 주님 말씀 듣지 않으면 산당을 다시 세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만이 므낫세를 물리칠 수 있다. 우리의 죄의 공장장이기 때문에 하루도 안 보면 쌓여 있다. 늘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므낫세는 왜 그랬을까? 세속사적으로 생각해본다. 너무 완벽한 부모, 산전수전 거쳐서 완벽한데 므낫세는 반항이 터진 것일 수도 있고 히스기야 양육의 문제일 수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인데 왜 그러는가? 구속사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므낫세는 전쟁도 끝나고 아들도 없던 중에 15년 연장 중에 태어났기에 히스기야가 애지중지했을 것이다. 부귀영화가 따라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앙 인격까지 더해서 태평한 시대를 살다 보니까 므낫세는 말씀이 들리기가 어렵다. 구속사로 입문을 못한다. 이런 므낫세를 이해해야 한다. 내 죄가 보이는 사람은 항상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구속사다. 서론 본론 결론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알면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구속사를 깨닫기가 어려운 것이다. (적용) 내가 은혜로 헐어버린 산당은 무엇입니까? 공동체에서 끊어낸 죄악은 무엇인가요? 내 죄악의 태엽은 무엇이에요? 혹시 요즘 나도 모르게 그것을 다시 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자녀들을 세속사로 판단합니까? 구속사로 기다립니까? 그 기다림이 회개로 나타납니까? (나눔)
2.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는다. 4-7절, 므낫세가 다시 세운 산당은 처음에 산에 있다. 산 위에서 시작된 우상숭배가 점점 안으로 들어온다. 성전 안에 잡신이 세워졌다. 성전 안에 아세라 목상이 세워졌다.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 성전에 두리라 하셨다. 하나님이 거룩한 이름을 성전에 두셨다. 7절, 므낫세,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다고 한다. 두었다, 세웠다가 원어로 똑같은 단어다. 장소도 성전이다. 모르고가 아니고 실수가 아니라 계산된 의도한 악행이라는 것이다. 가증한 죄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엄청난 반역이다. 예배의 자리를 이용해서 예배의 이름으로 우상을 섬긴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타락이 일어난 곳은 예루살렘이다. 성전이다. 문제투성이 성전이 아니었다. 회복하고 지켜내고 부흥케 한 성전이다. 아버지의 회개의 눈물이 서린 곳이란 말이다. 아들 므낫세가 끔찍한 반역을 저질렀다.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았다.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자리는 모든 것이 정리된 것 같이 보이는 자리다. 가장 타락하기 쉬운 자리는 귀신이 떠나가고 수리된 자리다. 더 이상 영적 싸움을 안해도 자리에서 하나님을 거역한다. 결국 성전까지 들어왔다. 6절, 마침내 자식까지 요구한다. 므낫세가 모압의 가증한 일을 따른다. 말씀을 듣지 않으니까 거기까지 넘어간다. 입시의 불. 비교의 불, 자녀들은 욕망은 불 가운데 지쳐갈 수 있다. 내 욕심은 자녀를 살리지 못한다. 내 욕심의 불은 자녀를 삼킨다. 내가 하나님 되려는 욕심이다. 우리 자녀도 미래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예배 자리를 사모해야 한다. 자녀 문제도 하나님께 맡기고 미래도 하나님께 의탁해야 하다. 내 욕심대로 만들려는 것이 악을 쌓는 것이다. 하나님 진노하신다고 하면 어떤가? 무서운가? 덤덤한가? 히스기야의 축복은 18만 5천명이 쳐들어 온 것이다. (적용) 나는 요즘 어떤 제단을 쌓고 있습니까? 돈, 시간, 노력, 관심을 제일 많이 들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를 어떤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있습니까? 내일 어떻게 될지 가장 궁금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고자 매달리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철의 여인 대처 이야기) 엄마로서는 불행한 삶, 이란성 쌍둥이, 딸, 세상 떠나는 날까지 불편한 관계로 지냈다. 아들, 전 세계 저택을 가지고 있을만큼 부자로 살았는데 엄마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히스기야도 힘들게 낳은 아들인데 얼마나 끼고 돌았겠는가?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새싹 큐티인, 다음 세대 위해 전도해야 한다.
3. 더 심한 악으로 꾐을 받는다. 7절, 하나님께서 성전에 대해 약속하신 말씀을 상기시키신다. 영원한 약속이다. 조건을 말씀하신다. 8절,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깨지지 않지만 누리려면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명령과 모든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다. 구원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를 누가 바라겠는가? 하나님이시다. 조건을 달아서라도 경고를 해서라도 매를 들어서라도 말 좀 들으라고 외치시는 것이다. 우리는 본성상 말씀 듣는 게 너무 어렵다. 9절,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시지만 이 백성이 어떻게 했는가? 듣지 않았다. 악을 행했고가 아니라 우상을 섬겼고가 아니라 듣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의 출발은, 신명기 6장 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하나님 나라 인생의 시작이다. 듣지 않았다. 뭘 듣는가? 큐티도 안되고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세상의 말을 듣는다. 므낫세의 꾐을 들었다. 그들도 므낫세와 똑같아 다 넘어간다. 히스기야가 태평과 진실의 시대를 열었더니 잘 살게 되었다. 유혹에 넘어간 사람은 욕심이 더 큰 것이다. 속은 자가 더 악한 것이다. 한 사람의 꾐에 온 백성이 넘어갔다. 악인 줄도 모르고 다 넘어가는 것이다. 악의 무서움이다. 산당을 다시 세우는 악이 성전을 더럽히는 악으로 번지고 온 백성을 물들인다.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게 된다. 요즘은 잘못만 하면 개독교로 몰아붙인다. 누구 탓인가? 믿는 우리 삶의 결론이다. 우리 탓이다. 자중지란, 70%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탓 아니겠는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데 믿는 사람끼리 한 마음이 안된다. 아모스 8장 11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말씀이 없어 기갈이 아니다. 마태복음 11장 21절,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다윗같이 대단한 사람 곁에 압살롬이 온 백성을 꾀었다. 영적 교만이 제일 무서운 것이다. 말씀이 들리려면 내가 안 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들린다고 생각하면 닫힌다. 낮은 마음으로 말씀 앞에 서야 한다. 말씀이 들리게 해주세요, 듣지 않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히스기야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갔다. 남유다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 9절까지 여호와가 절마다 8번 등장한다. 악을 행하고 있는데 므낫세를 더 사랑하시는 것 같다. 히스기야때 세 번 물러가신 하나님이 여덟 번이나 숨죽이고 돌보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다. 죽기까지 들으신 주님께 구원이 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가 방향 틀기만을 기다리신다. 들으면 성공이다. 가장 성공은 성경 보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경 읽고 기도하면 최고의 성공한 인생이라고 확증한다. 성경을 정말 열심히 보면 성공 안할 수가 없다. 최고의 성공은 성경 보는 것이다. 어렸을 때 듣는 것이 중요하다. 구속사로 성경을 읽혀야 한다. 내 죄를 보는 성경을 읽어야 한다.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 전도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해석하니까 성공한다. 말씀이 들리는 것이 축복이고 성공이다. 회개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히스기야보다 므낫세를 더 사랑하시는 것 같다. 듣고 있냐, 듣고 있다. 산당을 무너뜨려야 한다. 예배의 자리에 쌓고 있는 우상을 버려야 한다. 나 한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돌이켜 회개할 때 가정과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이다. 회개를 해야 하는데 옳고 그름밖에 모른다. (나눔) 하나님은 나의 숨소리조차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적용) 나는 누구의 말을 가장 크게 듣고 있습니까? 상처, 사연, 이웃, 친구, 부모, 자식, 배우자입니까? 말씀입니까? 내가 받고 있는 꾐은 무엇입니까? 내가 꾀하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나는 말씀이 들립니까? 듣고 있습니까? 나의 악함에도 주님이 숨죽이며 보고 계시는 것이 믿어지시나요?
(말씀 요약)
말씀을 듣지 않으면 가증한 산당을 다시 세운다. 예배의 자리에 악을 쌓는다. 더 심한 악으로 꾐을 받는다.
(목장나눔)
우리 목장은 자신에게 므낫세와 같은 모습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공 복음과 기복 신앙의 제단을 쌓고 있는 모습도 나눴습니다. 또 직장과 교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목장 식구들 모두 강건하고 평안한 한 주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T: 1. 아버지 섬망과 몸의 괴로움 감해주시고 평안 주시길
2. 간병 중 아버지의 상태나 환경의 변화에 요동하지 않고 지치지 않도록, 간병하는 가족의 건강 지켜주시길
3. 새로운 업무의 시작 일정과 환경 합당하게 인도해주시길
4. 신교제 신결혼
P: 1.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할 수 있는 맘 주시길
2. 세상적 가치관으로 그른 선택을 하지 말고 영적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로 인도해주시길
3. 건강 위해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단할 수 있길
C: 1. 하나님이 죄라고 하는 것을 죄로 여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갖길
2. 이직의 인도함 받을 수 있길
3.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길
B: 1. 에스라처럼 회개부터 할 수 있기를
2.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이 상하지 않기를
3. 하나님의 말씀 묵상할 여유를 주시길
4. 계약이 나와 생활의 압박감에서 자유할 수 있기를
5. 결혼을 못하고 있다는 자기연민에서 오는 불안을 잘 다뤄갈 수 있기를
6. 나의 죄를 직면하고 인정하고 회개하는 적용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A: 1. 매일 성경 읽기
2. 매일 기도하기
3. 매일 감사하기
4. 매일 기뻐하기
5. 안 좋은 습관이 고쳐지도록
6. 이해할 수가 없어서 너무 화가 날때도 감사해보기
7. 신결혼 믿음으로 기도하기
8. 북한을 위해 중보기도하기
9.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
K: 1. 말씀이 들리는 은혜 주시도록
2. 지원한 부서 인도해주시도록
3. 부모님 영혼구원과 육적 건강위해
4. 신교제, 신결혼위해
M: 1. 큐티하며 기복신앙과 성공 복음 제단 쌓기를 멈추고 회개하도록
2. 진로 가운데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말씀의 인도함 받아 취업하도록
3.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도록, 아버지께서 교회 정착하시며 부자간에 말씀이 들리는 은혜가 임하길
4. 아버지와 어머니, 형의 건강과 아버지의 구원, 어머니와 형의 믿음 성숙을 위해
5. 대화가 통하고 상호 보완이 되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6. 신교제를 위해 잘 준비되도록(건강, 재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