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6.04.26 오후 5:00
장소: 잠실 한강 공원
참석인원: 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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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제목: 내가 사는 날
본문: 열왕기하 20:14-21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사람들은 지난 10년간은 많이 변했으나 앞으로 10년은 별로 안 변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내 모습, 내 삶을 거의 완성형처럼 여깁니다.
본문의 히스기야도 많은 업적을 남기고 죽을 병도 넘겼습니다.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으면 다 괜찮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사는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내가 사는 날만 붙들면 내 것만 보이려 합니다
병이 나은 후 히스기야의 첫 모습은 보물자랑이었습니다.
왜 히스기야는 왕이 되어서 자랑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랑을 하는데는 트라우마와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당시 중근동의 강자인 앗수르를 섬겼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강대국에게 붙어 유능한 왕이었지만, 몰렉 우상을 섬기며 권력을 위해 자식을 죽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식은 있어서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자신이 왕이 되어서는 앗수르 타도를 외치고, 개혁을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주변국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무너져 두려움이 임합니다.
앗수르의 공격이 유다에도 가까이 왔을 때, 히스기야는 병에 걸렸고, 기도로 병이 낫고, 해그림자도 자기를 위해 10도 물러갑니다.
하나님이 내편이라고 생각한 히스기야는 트라우마인 앗수르를 이겨보고자 바벨론과 동맹을 맺기위해 보물 자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도 앗수르와 다르지 않습니다.
악을 이기고자 악과 연합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망하고 흥하고 붙고 떨어지고가 그 사람 때문이 아니고 내가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큐티도 안하고 말씀대로 적용을 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해 주고 양육해 주는 이사야가 필요합니다.
이사야의 물음에 히스기야는 자랑스럽게 모든 것을 얘기합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상태를 다 보여줍니다.
하나님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숨었을때 물어보셨습니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고 네 입으로 네 상태를 말해보라고 하십니다.
내가 사는 날이 평안으로 가득 차면 내가 보이고 싶은 내 보물이 더 커 보입니다.
적용질문 1
누가 꼭 물어봐 주었으면 하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누가 물을까봐 두려운 질문은 무엇입니까?
내 자랑속 열등감 트라우마는 무엇입니까?
망하고 흥하고가 말씀 때문이라는 것이 100% 믿어지십니까?
2 그러나 내 것은 하나도 남지 못합니다
히스기야의 대답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소서’ 라고 합니다.
바벨론 사자의 말, 세상의 말을 먼저 듣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이 너무 기뻤던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합니다.
우리도 마음에 이미 세상 말이 가득차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잘 안들리고 들려도 아프게 들립니다.
이사야는 경고의 말씀을 전합니다.
히스기야는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는데, 주님은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처럼 자랑하면 그 자랑이 심판이 됩니다.
히스기야는 내 창고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두었던 것이라고 하십니다.
조상들이 쌓아 온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그걸 자기 것처럼 과시하는 순간 수백년의 유산이 함께 무너집니다.
믿음의 어머니가 기도해주고 할머니가 눈물로 쌓아주고 부모가 예배를 지키며 물려준 그 유산까지 다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심판이 내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 까지 이어진다고 하십니다.
아들과 딸들이 바벨론 포로의 자리, 자유와 미래가 꺾인 자리로 끌려 간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내가 사는 날만 붙든 사람의 결말입니다
내가 주인공 같다가 끝에는 다 빼앗기고 내 후손까지 끌려갑니다.
내 것이어서 남지 않는것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내것은 없습니다.
이 땅에 내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사명 때문에 주님이 잠깐 맡기신 것입니다.
적용질문 2
자랑해서 심판당한 경우가 있나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얼마나 기쁘게 고백합니까?
나는 자녀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고 있습니까?
어떤 믿음의 유산을 남기고 있습니까?
3 그러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이사야가 아주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선포했는데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다고 하면서 뒷말을 덧붙입니다.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하며 내 인생만 평안하면 선하다고 합니다.
자기 시대의 평안에 안도하는 이기적인 안도입니다.
자기 죽음 앞에서는 통곡했던 히스기야가 자손이 당할 심판 앞에서는 울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 건강, 내 집, 내 성공에는 민감합니다.
그런데 자녀의 영혼을 위해서 얼마나 웁니까?
다음 세대의 믿음을 위해서 얼마나 걱정합니까?
한국 교회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세요?
이 대목은 열왕기서를 관통하는 질문, ‘유다가 바벨론에게 왜 멸망당했나?’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답입니다.
히스기야의 실책입니다.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과 더불어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부족 문제도 해결하고, 앗수르 침공에 대비해 성의 방어력을 크게 높이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업적을 한 줄로 지나갑니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진짜 결론은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입니다.
유다 역사 중 가장 악한 왕 가운데 하나입니다.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을 모두 뒤집어 엎었습니다.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 마침표가 므낫세가 된 아이러니입니다.
이사야의 양육을 받은 히스기야지만, 끝내 자기힘으로 내가 사는 날을 꺾지 못했습니다.
양육의 한계가 아닌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구속사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연약한 히스기야를 다윗에 버금가는 성군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아무리 양육해도 말씀이 안들리는 히스기야에게 앗수르의 침공을 허락하십니다.
인생은 육이 무너지지 않으면 영이 세워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것이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사랑입니다.
‘내가 사는 날’만 붙들고 있으니까 앗수르가 쳐들어 옵니다.
1차 침공으로 보였던 보물을 다 뺏기고, 2차 침공에서 18만 5천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옵니다.
드디어 히스기야가 진짜 회개를 합니다.
병 걸렸을 때는 통곡만 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하나님 밖에 부를 이름이 없어 진정한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어 18만 5천명이 하루 사이에 송장이 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히스기야가 다시 하나님만을 일순위로 두고 바른 방향으로 남은 15년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시고, 후손이 바벨론에서 훈련받게 하시는 100% 옳으신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회개 했기때문에 성군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보다 더 연약한 우리도 택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3
이것만 아니면 괜찮아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의 구원이 성적이나 성공보다 정말 더 중요합니까?
오늘 내가 사는 날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이번 주 결단하고 적용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목장나눔
A
[자녀의 구원이 성적이나 성공보다 정말 더 중요합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학벌이 있어도 기본적인 상식이 없는 사람들을 보며,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기타]
엄마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으십니다.
친한 이웃이 교회에 다니시는데 생전에 고생을 많이하고 살만해지니 병에 걸리자 너무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저는 ‘천국가서 평안하게 되시니 좋은 것이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가족 구원을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B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가 되기 위해 이번 주 결단하고 적용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중에 일하는 곳에서 부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부당한 가운데 참고 일했는데, 해고 당할 위기 속에서 극적으로 믿는 분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기도할때 하나님께서는 18만 5천 대군도 송장으로 만드심을 믿으며, 일터와 생활 속에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내 죄만 회개하겠습니다.
C
주중에 ‘새롭게하소서’에서 시골교회 사모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월 1000을 버는 헬스트레이너였지만, 말씀과 기도로 변화되어 인생이 눈 깜빡할 사이의 찰나의 순간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사명을 따라 시골 교회에서 사모로 섬기게 된 간증이었습니다.
아직 저는 머뭇거리는 모습이지만, 큐티와 기도로 저도 결단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되길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큐티 잘 할 수 있도록
2 가족구원
3 번아웃과 무기력 해결되길
1 아침에는 잘 일어나는데 새벽큐티 바로 듣고 잘 할 수 있길
2 입다물고 잘 죽어지길
1 배우자 기도제목을 지정이 아닌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맡기며 다시 잘 작성할 수 있도록
2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며 나의 트라우마와 열등감을 잘 마주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