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01.(주일) 마가복음 9:2-10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김성권 목사님
모임인원 이진국 목자님외 2명
모임장소 카페 로쥬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하나님, 복된 주일에 우리의 마음을 가지고 주 앞에 나왔습니다. 아픈 자녀를 위해서 부스러기의 은혜를 구한 그 여인처럼 이 시간 오직 주 예수만의 은혜를 바라오니 우리의 영혼에 “에바다”의 은혜를 내려주시고 배불리 먹고 남는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우리의 말씀 제목은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이 되려면”인데요.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1. 초막의 영광을 버려야 합니다(2-6절).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_막 9:2-3
2절에 보면 주님께서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따로 불러서 높은 산으로 가십니다. 주님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주시죠. 여기 ‘변형되사’라는 말씀의 뜻은요,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듯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광채가 난다’는 것은요, 수차례 금속을 문지르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그것처럼 이 땅에 없는 영광의 빛으로 부활하는 것을 뜻합니다. ‘옷이 매우 희어졌다’라는 것은요, 거룩함을 뜻합니다. 주님 안에 영광과 거룩이 가득한 것을 뜻하죠. 여러분, 예수님은 영광의 본체이십니다. 거룩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변화산에서 주님의 인성과 신성이 합쳐진 모습,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에 그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한번 여기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깜짝 쇼도 아니고 왜 그러셨을까요? 바로 제자들에게 참된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아직 세상의 행복인 제자들에게 “진짜 빛난 영광을 봐라.” 그리고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요?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_막 9:4
왜 성경에 많은 인물 중에 딱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만 나왔을까요?
이들은 아주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또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들이 주님과 대화하면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실 메시아가 오직 예수뿐인 것을 증거합니다. 이 구약과 신약의 역사적인 만남! 이 너무나 중요한 순간에 한 가지 포인트 바로 오직 ‘구원자 예수’에게 초점이 맞춰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변화산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매주일 예배와 간증을 통해서 주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이혼과 바람, 또 부도로 죽을 가정이 살아나고 또 고난이 축복인 것을 봅니다. 목장 식구들도 그 삶을 약재료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죠. 그런데 종종 내 삶을 약재료가 아닌 식재료로 들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아니 그 좋은 목장에 가니까 밥이 너무 맛있어요. 그래서 좋은 밥 먹고 아내를 고발하면서 “내가 옳다” 자랑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만 해 봐도 밥맛입니다. 예. 그런데 어느 날 한 분이 목장에 탐방으로 오셨어요. 밥 먹고 자랑만 합니다. 집에 갈 때 아내에게 “아휴, 나눔이
아니라 자랑만 하네”라고 말을 했습니다. “난 그 정도는 아니지?” 했더니 저희 아내가 “어, 여보는 더 해. 나눔이 아니라 설교를 하잖아”라고 말을 합니다. 그 뒤로 입이 다물어졌습니다.
나의 옳고 그름의 율법적인 가치관을 구속사적인 가치관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시는 데 끈질기게 거부합니다. “아, 난 변화 필요 없고 너 먼저 변화되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안 변하는 우리를 변화산 으로 특별히 양육하시기 위해 따로 높은 산으로 부르십니다. 이 산은 헤르몬산 으로 추정하는데요. 해발 2,800m라고 합니다. 한라산, 백두산보다도 더 높고, 정상은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습니다. 제자들이 높은 산에 올라가면서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요? 우리에게도 이렇게 각자 각자 높은 산처럼 쳐다만 봐도 힘든 가족과 지체들이 있습니다. 여러 고난과 중독, 또 장애로 우리를 지치게 하죠. 그러면 우리 정죄와 무시로 마음에 선을 긋습니다. 때로 투명 인간 취급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힘든 그들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모세와 이 엘리야입니다. 그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의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그 시선을 다시 주님께로 맞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어머님이 장애 아들을 데리고 열심히 인생이 해석되지 않아서 절에 다녔어요. 그런데 더 공허해집니다. 마침 사랑부 교사의 전도로 교회에 오셨는데요. 장애의 고난에도 기뻐하는 버디와 또 부모님들의 약재로 간증을 드리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방황하던 시선이 장애 아들 때문에 예수님께로 초점이 맞춰진 거예요! 지금도 예배에 잘 나오십니다.
또 한 분은 이혼 후에 이제 소망이 없잖아요. 아들만 바라보는데 그 아들이 그만 자폐 판정을 받은 겁니다. 그날 엄청 우셨다고 해요. 그런데 사랑부의 돌봄을 받고 다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의 말씀과 양육으로 살아납니다. 그리고 놀이치료센터에서 만나는 어머니들에게 그렇게 많이 전도를 하신다고 합니다. 자녀의 장애가 약재료가 되어서 구원의 사명으로 나가게 된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힘든 자녀, 가족들이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는 나를 주님께 인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 인생에 걸림돌이 아니라 구원의 디딤돌입니다.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_막 9:5- 6
‘초막’은 출애굽 백성이 광야 생활할 때 사용한 처소였습니다. 베드로는 빛난 영광에만 취해서 “여기가 좋아요!” 하면서 그 영광을 내 초막에 붙잡아두려 합니다. 황홀한 감정만 따르다가 주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죽는다” 하시는데, 베드로는 “여기서 살아요!” 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썩어질 육신의 초막의 영광”만 말합니다. 완전 노답이죠. 너무 어이없는 인간 아닙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베드로가 바로 제 모습이더라고요. “변화산의 영광이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하면서 우리가 당장 성공, 물질의 초막을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술, 담배의 초막, 주식, 도박 중독의 초막을 짓습니다. “혼자가 좋사오니~” 하면서 각 방의 초막, 별거의 초막을 나중에는 은밀한 바람의 초막을 짓습니다. “아, 신교제는 싫어!” 하면서 “남자가 좋사오니, 여자가 좋사오니” 하면서 불신교제의 초막을 못 떠납니다. 가족을 위해서 노후 대책의 초막을 짓는다고 정작 주일 예배와 큐티는 뒷전입니다. 그런데 이 ‘초막의 영광’은 아무리 잘 지어도 나뭇가지와 줄기로 만든 썩어질 헛된 영광이라는 겁니다.
6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_막 9:6
왜 우리가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초막의 영광에 빠질까요?
바로 이 혈루의 근원은 두려움̇ ̇ ̇이라고 하십니다. 앞날의 걱정, 내 행복을 놓칠 것 같은 그 두려움인 거죠. 주님을 온전히 믿지 않게 오는 두려움입니다. 이 초막 신앙이 더 위험한 것은요. 마태복음에서는 “주께서 원하시면 주님을 위해서 초막을 짓겠다”고 합니다. 신앙 명분이 그럴듯하니까 다 넘어가는 거예요. “복 주시면 주님께 드릴 테니까 제발 물질의 초막 또 성공의 초막을 달라”고 합리화합니다. 자녀 우상의 초막을 달라고 부르짖죠. 고난 없는 초막의 영광을 붙잡는 욕망이 얼마나 큰지요.중에는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른다고 하십니다.
▪ 적용 질문
Q. 나를 주님께로 초점을 맞추게 하는 내 인생의 모세와 엘리야는 누구입니까?
Q. 나는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면서 세상에 어떤 초막을 짓고 싶으십니까?
Q.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를 정도로 내뱉는 ‘막말’은 무엇일까요?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의 인생이 되려면
2.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7-8절).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_막 9:7
우리가 여전히 세상 초막만 붙드니까요. 더 큰 사건이 옵니다. 구름이 덮이고, 앞이 막막한 사건이 찾아오죠. 마태는 구름 속에서 빛이 났다고 합니다(마 17:51).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고난의 구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그 빛난 음성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들려야 내 인생이, 내 삶이 해석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빛난 영광된 인생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또 보니까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합니다. 이것은요. 단순한 들음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내가 누구를 기뻐해야 할지를 명확히 보여주시는 거죠. 오직 예수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버디들이 종종 부모에게 버림받고 투명 인간 취급도 당합니다. 그러나 그 구름의 장애 고난 속에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 택한 자라고 합니다. 내가 힘들고 버리고 싶은 그 가족 자체도 주님은 내 사랑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사랑부의 한 부모님은요. “우리는 최고의 복을 받은 가정”이라고 하십니다.
지적 장애를 입은 딸이 예배를 좋아하는데 화가 나면 꼬집는다고 해요. 그러면 그걸 그대로 당합니다. 그러면서 큐티를 보며 ‘야, 오늘 당한 일은 또 무얼까?’라고 해석하며 가십니다. 또 딸이 경기를 하고 감기만 걸려도 ‘내 죄는 뭘까?’라고 서로 큐티하며 회개하고 가십니다. 그렇게 매일 큐티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그 환경이 복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고난 속에도 예수만 보이는 인생, 예수만 기쁨이 되는 인생인 줄 믿습니다.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_막 9:8
무서워하는 제자를 주님께서 손대시고 일어나라고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눈을 들어보니까 오직 예수님만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길, 장애의 길을 말씀따라 가다 보면 너무 힘들죠. 그죠? 주저앉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때 주님이 “얘야,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대책 없는 남편, 변치 않는 아내, 끝이 안 보는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비결이 바로 오직 예수를 바라보는 겁니다.
한 달 전에 구름이 덮치는 사건이 왔습니다. 밖에서 빨리 걷는데 종아리 근육이 파열이 된 거예요.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하필이면오른쪽입니다. 오른발 다치니까 운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이왕 다치려면 왼발, 왼쪽을 좀 다치시기를
1) 마태복음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축복합니다. 아멘 하시면 안 됩니다.^^ 사랑부 헌신예배를 앞두고 너무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집에 보니까요. 바퀴 달린 의자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됐다! 그래서 “얘야 나 좀 밀어라 화장실 가야겠다” “얘야 나 좀 밀어 줘. 다시 내 방에 넣어줘” “얘야 나에게 물 좀 줘” “얘야 나를 도와줘” 하면서 부르니까 아들들이 처음에 “아빠 힘들어요? 내가 도와줄게!” 합니다. 근데 이제 시간이 가니까 “동생 시켜요!” “형 시켜요. 왜 나 시켜” 막 이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둘째가 학원을 간다고 집을 나갑니다. 그러더니 첫째가 “난 도서관 가야지” 하면서 또 집을 나가게 돼요. 그리고 갑자기 안 하던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며칠 후에 아침부터 애들이 안 보입니다. 어디 갔나 봤더니 아예 새벽부터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밤늦게 돌아와요. 방학인데 말이죠. 예 너무 서운하더라고요. 자식은 배신당하기 위해 키운다는 말이 딱 진리입니다. 바쁜 일상으로 모든 것이 셧다운 되니까요. 조용히 큐티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문득 큰아들이 생각이 났어요. 사실 오늘 보여드린 이 등잔대 설교는 제가 10년 전 저희 큰아이가 경계성 지능 장애 판정을 받고 마음이 너무 힘들 때 미취학부 예배에서 했던 설교입니다. 말씀을 전하면서도 ‘그래 고난이 축복이야. 예수님도 치고 치는 십자가의 사건으로 생명의 빛을 주셨지’ 그 영광의 빛을 어렴풋이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정말 공동체의 위로로 기도로 살아났습니다. 그런 후에 아들이 이제 경계성에서 벗어났고 좋아졌습니다. ‘야! 이제 됐다’라고 했는데 계속 먹구름이 찾아옵니다. 10시가 넘으면 꼭 아들이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몸싸움이 났고 아들에게 쌍욕까지 들었습니다. “아빠만 없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저도 자식에게 욕 먹는 일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이제 큐티 할수록 내 죄가 더 크게 보입니다. 고3 아들에게 “왜 공부 안 하냐? 왜 놀기만 하냐?” 잔소리를 했는데 그 아들이 그럽니다. “왜 그러는지 알아? 내가 우울해서 살기 위해서 놀이로 버틴 거야”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꽂혀서 저를 봤습니다. 내 전통과 외식, 옳고 그름의 그 낡은 가죽 부대로 그 AD가 있는 아들이 약을 먹어도 이제 밤이 되면 효과가 떨어지는데 그거를 참지 못한 거예요. 그리고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면 이제라도 노력을 하라고 정죄와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눈물과 우울을 외면했습니다. 내 기준, 강박, 고정관념의 그 쇠사슬에서 아들을 괴롭힌 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얘야 미안하다. 아빠가 자녀의 초막 우상만 짓다가 너에게 큰 상처를 주느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큰아들이 가족 큐티 할 때 그 말을 합니다. “내가 안 되고 못하는 게 많은데, 그래서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고... 그런데 이러는 데는 뜻이 있지 않을까? 분명 하나님은 이런 나도 어떻게든 쓰시겠지. 아빠, 내가 힘드니까 공부는 잘 안 되는데 아침에 학교 가서 큐티는 꼭 해”라고 말을 합니다. 아들도 고난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나아갑니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제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다시 한 번 탄식과 눈물의 회개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먹구름의 사건에서 배우자, 자녀들, 지체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지 못하고 귀를 막으면 주의 말씀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 적용 질문
Q. 고난의 구름 사건에서 오직 예수만 바라보며 말씀에 순종하십니까?
Q. 예수 외에 다른 소리와 다른 것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Q. 내 인생의 뒷모습에서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입니까? 아니면 무엇이 보이는 인생입니까?
세 번째,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의 인생이 되려면
3. 십자가의 영광을 붙들어야 합니다(9-10절).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_막 9:9
주님께서 이제 다시 산 아래 눈물의 땅으로 내려오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경험하면 죽어가는 내 부모, 형제, 친구들을 향한 사명의 땅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그런데 왜 본 것을 이르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아직은 때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그 땅 아래에서는 십자가 없는 영광, 또 로마에서 구해줄 메시아만 찾습니다. 듣는 자의 믿음에 따라서 칼날 위의 물방울처럼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_막 9:10
제자들은 아직 변화산의 영광을 잘 몰랐습니다. 여러분 모세와 엘리야가 무슨 대화를 주님과 나눴을까요?
누가는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시고 구원하실 것을 말했습니다. 변화산 이후로 더 많은 핍박과 고난이 기다립니다. 그래서 주님은 “얘들아, 진짜 영광을 봐봐. 진짜 영광은 다른 게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하는 거야. 십자가의 길이 바로 영광의 길이란다”라고 명확하게 십자가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마음에 두고 순종했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훗날 베드로는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합니다. 야고보는 주님의 열두 제자 중 최초로 순교를 하고요. 요한은 혹독한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예수만을 붙들면서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나는 믿음이 없어요. 난 부족해요. 변화산의 영광이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가 아니라 오늘 말씀은 잘 몰라도 마음의 말씀을 담아두면 우리도 십자가를 지는 그 영광을 허락하신다고 말씀하는줄 믿습니다. 그 십자가의 영광을 따라서 나도 변화산에서 이제 갈보리 십자가의 산으로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사랑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한 버디가 말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어쩌면 좋아요 슬퍼요.” 그러면서 “할 말이 있습니다” 합니다. “뭔데?” “아이고 목사님 수고 많았어요. 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가 아니라 “목사님, 아내한테 잘 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신임 사역자가 이제 인사를 하는데 버디들이 “와!! 새로 오신 목사님이다!” 하면서 달려와서 막 안아주고 “어디서 오셨어요?” 막 그럽니다. 1분도 안 돼서 태세 전환. 역시 우리 사랑부 버디들도 우리들교회 교인답습니다. 구속사적인 가치관으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버디가 저의 아내에게 편지를 주었어요. 열어보니까 “사모님, 목사님을 잘 부탁합니다. 꼭이요.”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이 버디 때문에 내가 당신을 데리고 사는 거야.” 버디들이 이혼을 막고 남의 가정을 끝까지 지켜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부 교사들도 수고가 많습니다. 때로는 맞고 꼬집히기도 하고 머리털도 뽑힙니다. 그러면 “어차피 빠질 머리털 더 뽑아라” 하면서 머리털을 댑니다. 그렇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제 마음에 기억에 남는 한 버디가 있습니다. 그 버디는 뇌 손상으로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돼요. 그런데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버디가 제일 좋아하는 게 있대요.
그거 바로 사랑부 예배 오는 그 길을 기억하고 기뻐하면서 흥얼거린대요. 그런데 여러분 이 버디는 예배 오면 휠체어에 앉아만 있어요. 어떤 소통이 안 돼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소통은 안 됐지만 이 예배 자리를 사모하면서 이 버디가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우리 버디들 또 그 가족들이 주님을 보이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 생생한 고백을 영상으로 함께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사랑부는 사랑입니다”
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려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장애에도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버디들이 이렇게 각 가정의 모세와 엘리야가 되어서 상한 영혼 다시 일으켜서 주님께로 십자가의 영광을 보여드리며 나아가는 줄 믿습니다.
장차 우리 버디들도 천국의 변화산에서 변할 것입니다. 장애의 몸에서 거룩의 몸으로, 슬픔의 눈물에서 기쁨의 눈물로, 구원의 눈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말 못한 고백을 할 거예요. “선생님 참 고마웠다고” 그때 장애 고난의 길에서 내가 너무 힘들 때 곁에서 함께 울어줬고, 곁에서 그냥 서 있어 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다고.. 그리고 그날에 우리 목장에서 속 썩였던 지체들도, 철없던 가족들도 영광의 모습으로 변할 겁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정말 수고 많았다고.
힘든 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 믿게 해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고백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십자가 지면서 예수만 보이는 인생, 상처가 별처럼 빛나는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적용 질문
Q.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보며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Q. 내 눈에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 내 삶에 오직 예수만 보이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오직 한 가지 결단할 것은 무엇일까요?
목장 중보기도입니다.
같이 중보 기도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가
1. 실력 있는 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길
2.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신교제 누리도록
3. 기도로 책 집필 할 수 있도록
4. 사업과 아이디어와 학교 강의 위에 기름 부어 주시길
5. 아버지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되시도록
6. 간호하는 어머니 힘주시고 지치지 않으시고 목과 허리 치료 잘 받고 속히 회복하시도록
7. 부모님 잘 주무실 수 있도록
8. 누나가 배 염증 속히 회복하도록
9. 형 발목 속히 회복될 수 있도록
나
1. 저희 어머니 자궁내막암 대장암 잘 유지되게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2. 신교제 신결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제 동생 가족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4. 저희 아버지 지방에 계시는데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5. 교회와 목장 사랑부 그리고 십일조 생활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6. 요즘 직장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고 마음적으로 힘든데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다
1. 지금 양육 과제 하고 있는데 압박감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했으니 저도 쉽게 받아들이고 끝까지 10주간 잘 해낼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세요
2. 낯선 집들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는데 저를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이 있는 곳으로 주님이 이끌어 주세요.
3. 주님이 예비하신 귀한 형제님을 알아보게 하시어 신교제, 신결혼으로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
4. 내 집 마련 성공은 해서 몸은 정착해 있지만 마음은 예전에 살던 생활 습관과 생각에 가끔씩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달라진 저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나그네처럼 겉도는 저의 마음을 잡아 주셔서 꾸준히 주님의 뜻을 알고 따르게 해 주세요
5. 엄마, 오빠, 저 어느 곳에 있더라도 항상 건강하게 해 주셔서 엄마와 저는 매주 교회 예배 가게 하시어 오빠를 전도하게 해 주세요 오빠는 하는 일마다 안전하게 하시어 엄마와 살면서 아들로서 느끼는 무게감을 덜게 해 주세요
라
1. 가족들의 건강과 구원
2. 신교제, 신결혼
3. 오직 예수뿐임을 믿는 믿음주시길
4. 조카들 새학기에 학교 잘 적응하고, 좋은 친구와 선생님 만날 수 있도록
마
1. 병환중에 있는 엄마가 약 부작용으로 갑작스럽게 이전과는 너무 다른 증세로 큰 충격을 받고, 그 해결 과정중에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에게 정확한 설명, 주 보호자인 아빠를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대상포진까지 올라와 마음이 많이 아파요.
약 조정이 잘 되어서 보행과 데이케어센터 생활 잘하도록, 주 보호자인 아빠의건강, 그리고 아프면 안되는 저의 영육간의 강건을 위해 중보 부탁드립니다.
2. 믿음 없으신 아빠의 영혼 구원과 건강을 위해
3. 해외 있다가 한국 다시 돌아온 동생가족 한국 생활 잘 적응되도록 사랑하는 여자 조카들 친구들 하나 없는 새로운 학교 생활 잘 적응하길. 지금 전쟁 때문에 짐 도착이 늦어질 거 같다 하는데. 맨바닥에서 자고 있어요;; 최대한 빨리 도착하도록
4. 새롭게 진행중인 비즈니스 잘 확장되어 안정화되길, 봄 되면 시작되는 통역일 적당한 일로 잘 외부일도 시작할 수 있도록
5. 엄마일로 미루었던 개인 프로젝트 일정들 다시 잘 해나갈 수 있도록.
6.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리라 하신, 마음에 찔림을 주신 오늘 묵상처럼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믿음을 묻어놓고 근심한 죄를 회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