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1.(주일) 마가복음 7:1-13 「말씀과 전통」 김용호 목사님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사랑의 주님, 하나님ㅉ 말씀보다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내가 세운 나의 전통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길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난주 혈루증으로 열두 해를 고통받았던 여인이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취학부에서 열두 해 동안 왕노릇 하다가 — 제가 취학부 초통령이었거든요 — 그러다가 올해부터 장년부와 새가족을 섬기게 된 김용호 목사입니다. 그래서 새가족부에 갔는데 한 집사님께서 저에게 지나가는 말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이고, 새가족반 이러다가 취학부 되는 거 아니에요?” 정답입니다.^^
지난주 명절이었는데요, 어떻게 전통 음식도 많이 드시고 전통 놀이도 많이 하고 오셨습니까? 새해 인사도 드리고 가족을 만나는 건 참 좋은 전통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취학부에도 좋은 전통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가지고 성탄절날 연극을 하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담임 목사님의 구속사의 말씀을 외워서 노래로, 또 연극으로 우리 아이들이 표현해 줍니다. 이것이 취학부의 큰 행사인데요. 이처럼 좋은 전통이 있는가 하면, 나만의 고집으로 가족을 힘들게 하는 전통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장로들의 전통을 따지며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든 생활 방식, 내 자존심, 내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위에 두고 식구들을 숨 막히게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찾아보았으면 좋겠어요.
왜 말씀보다 전통을 중요하게 여길까요?
첫째, 깨끗한 척하기 때문입니다(1-5절).
1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_막 7:1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찾아왔는데, 꼭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파견된 것처럼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권위와 인기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내 자존심, 내 가치관, 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 하나 걸리는 거 없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현미경 보듯 예수님과 제자들을 감시했습니다. 우리도 내 기득권이 위협받으면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감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하나를 발견합니다.
2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_막 7:2
드디어 바리새인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씻지 않고 먹는 ‘부정한 손’ 하나를 본 것입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 기적도 보여 주시고 천국 복음이 선포되는 이 엄청난 현장에서, 그들이 본 것은 고작 씻지 않은 부정한 손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온 목적 자체가 예수님을 책잡고 모함할 근거를 찾기 위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표적을 행하는 손이 아니라 부정한 손 하나만 보인 것입니다.
목적이 악하면 보는 눈도 악해지고, 은혜가 메마르면 눈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도 은혜는 보이지 않고 사람의 허물만 보입니다. “저 집사님 간증은 왜 저래?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어? 어떻게 저렇게 말하시냐?” 구속의 은혜는 보지 못하고 세속적인 더러움만 찾아 정죄합니다. 우리가 진짜 봐야 할 것은 남이 손을 씻었는지 안 씻었는지가 아니라, 내 속의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도 참 안타까운 것 같아요. 그런 것만 보이는 거잖아요. 행위 구원에 머물러 있으니 은혜를 모르고 구속사를 모릅니다. 제가 그랬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 그런 것만 보이더라고요. 한창 신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때 ‘사역자는 이래야 한다’는 나만의 전통을 세워서 정죄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거짓말을 참 많이 하는 거예요. 학교에서는 교회 갔다고 하고, 교회에서는 학교 갔다고 하고, 또 집에 연락하면 집에는 없고. “이 친구는 도대체 길 위에서 무엇을 하는 건가?” 그래서 제가 ‘그 거짓말을 고쳐 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거짓말하지 못하게 삼자대면까지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람을 아주 괴롭히는 사람이에요. 나만의 전통으로 아주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후배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위아래 안 가립니다. 나의 더러움은 보지 못하고 그렇게 뭐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참 저는 더 큰 죄인이고 그런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을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았는데, 죽었다 살아난 경험도 있는데 제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나를 써 주신 은혜로 감사함이 보입니다. 우리 가정이 말씀으로 어떻게 살아났는지 매주일마다 보입니다.
지난주 미취학 영상 다들 기억하십니까? 자신의 혈루의 근원이 ‘혈기'라고 고백했던 아주 예쁜 집사님이 있었는데 그 집사가 저의 사모(아내)거든요. 자신의 혈루를 고백하게 된 은혜가 보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달라져야 해요.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배우자의 문제, 자녀의 문제만 보입니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만 보이십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봐야 합니다! 아직도 날 위해 일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봐야 합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우리 가정이 왔는지, 내가 왔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취학부 헌신 예배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우리 학부모님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여전히 우리 자녀들이 참 잘 못하는 모습들, 또 부족한 모습들, 실수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지요? 하지만 오늘 하루는 말씀 가운데 거하는 우리 친구들의 모습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예배드리는 모습, 큐티하는 그 모습을 볼 때 칭찬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죠. 너무 이쁘지 않습니까 진짜?
마가는 전통을 따르는 유대인들을 이해하기 쉽게 주석을 달아 주었는데요, 그게 3절, 4절입니다. 그래서 괄호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_막 7:3-4
당시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 손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에 갔다 오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 갔다 오면 그곳에 부정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꼭 몸을 물로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리고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으로 -부정한 사람이 만질 수도 있으니까- 씻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여러분 듣기에 어떻습니까? 이게 잘못된 것입니까? 제가 결혼하고 많이 혼난 부분이 있는데 제가 손을 잘 씻지 않거든요. 그래서 많이 혼났습니다. 특히 자녀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바이러스에 약하기 때문에 손을 잘 씻어 주라고 했는데 저는 오늘도 손 씻지 않으면서 “출발할 때 씻고 왔다”라는 변명으로 그렇게 잘 지키지 않았어요. 그래도 지금은 적용을 잘하고 있습니다. 손을 잘 씻으니까 우리 가족을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데 유익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들이 옳은 말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5절입니다. 한목소리로 읽습니다.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_막 7:5
여기서 ‘묻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로토신'은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단어가 아닙니다. 죄인을 고소할 때 사용하는 단어예요. 그들이 수백 리 길인 예루살렘으로부터 오직 예수를 책잡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내 안에 은혜가 없으면 멀리서부터 지체의 허물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부라리며 달려옵니다. 오늘 내가 가족에게 묻는 질문은 살리기 위한 심방인지, 아니면 정죄하기 위한 취조인지 깊이 묵상해 봐야 합니다.
사실 모세 율법 어디에도 일반 백성이 식사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원래 손을 씻는 정결 예식은 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을 위한 규례였습니다. 짐승을 잡아 피 묻은 손을 씻으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율법학자들은 이것을 일반 백성에게도 강요하며 ’전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율법을 더 잘 지키자는 좋은 의도로 시작된 관습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희미해지고 사람들이 만든 전통이 말씀보다 더 높이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벽증처럼 행위적으로만 깨끗이 씻었어요. 겉은 깨끗할지 몰라도 정작 그 속은 자기 의가 넘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부정함을 씻는 겸손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열심히 씻었는데 너는 왜 안 씻냐?” 자기 의가 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좋은 전통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새벽 예배있는데요. 하루 시작하기 전에 예배당에 나가 말씀을 듣고 우리 가정을 위해, 또 이 나라를 위해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를 합니다. 얼마나 좋은 전통입니까? 또 제가 졸업한 신학교에도 좋은 전통이 있었는데 누굴 만나든지 몇 번을 만나든지 인사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학교가 작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만나도 서너 번씩 인사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인사를 참 잘하잖아요? 아니- 아닌가요? 예^^;
저희 집에도 좋은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료를 좀 준비해 봤는데요. 『임씨 집안의 절약 정신』. 저는 ’김씨‘인데 왜 ’임씨‘냐고 했냐면 저 정신은 저희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에요. 저희 어머니가 ’임씨‘거든요. 저의 어머니 사진은 아닙니다. 저건 그냥 AI가 만들어 준 사진이에요.
절약 정신은요, ⓵소변 한 번으로 물을 내리지 않아야 합니다. 두세 번 눠야 물을 내릴 수 있어요. 한 번 넣고 물 내리면 “왜 물값 아깝게 물을 내리냐?” 그래도 물이 너무 노라면 내릴 수 있습니다. ⓶그리고 또 화장실 쓸 땐 불을 켜지 말라고 하십니다. “문 열어 놓고 싸라. 씻을 때도 문 열어 놓고 씻어라.” 밤에만 오직 불을 켤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요즘에는 불 켜는 스위치 밑에 환풍기가 있잖아요? 그거는 테이프로 막아 놨습니다. 그건 틀지 말라고. ⓷그리고 화장지는 세 칸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두 칸은 찢어지니까 안 되니까 세 칸만 사용하라는 거예요. 네 칸은 안 됩니다. 혼나요. “휴지 왜 이렇게 많이 쓰냐?”는 거예요. ⓸그리고 수건은 한 번 사용하고 빨면 안 되는 거예요. 말려서 써야 되는 거예요. “냄새나기까지 말려서 잘 사용해라.” ⓹또 옷도 한 번 입고 빨면 안 됩니다. “네가 빠냐? 얼마나 빨래가 많은데 더 입고 빨아라.” 생각보다 옷이 한 번 안 빨아도 오래 입을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또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빨래를 하지 말라는 것이죠. 오직 세탁기는 ’탈수용‘으로만 사용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손빨래하고 계시거든요.
이렇기 때문에 제가 아내를 굉장히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도 많이 고쳐졌는데 여전히 아직 안 고쳐지는 부분이 빨래 부분이에요. 그래서 한 번 빨래를 하면 아내는 서너 벌씩 빨랫감이 나오는데 저는 속옷 한 장 나옵니다. 저는 아주 씻지 않는 손에 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저희 딸은 저를 닮아 절약 정신이 투철해요. 그래서 불이 켜져 있으면 “지구가 아프다!”며 항상 불 끄기 바쁩니다. 아끼는 건 너무 좋죠. 절약해야 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는 아끼는데 넌 왜 아끼지 않냐? 너는 누구 닮아서 그렇게 예의가 없냐? 나는 깨끗한데 너는 왜 더럽냐?” 비난하고 정죄하는 게 문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스스로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왜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며 비난하며 정죄합니다. 깨끗한 척, 잘난 척, 구속사를 다 아는 척하는 나의 위선을 봐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 오래 있었다는 것이 나의 훈장이 되어 갓 들어온 지체들을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잣대로 정죄하고 있지 않은지,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우리들교회 스타일이라고 또 다른 율법으로 공동체를 숨 막히게 하는 나의 위선적인 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랬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해야 할 말들이 있죠. 그런데 우리는 옳고 그름으로 정죄하는 게 문제입니다. 사람을 비방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깨끗이 씻어야 할 더러움입니다.
적용 질문
Q. 거룩한 척, 행복한 척, 깨끗한 척하며 ’외식‘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Q. 유독 남에게 엄격하게 들이대는 ’전통‘이나 ’율법‘이 있습니까?
Q. 요즘 내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지체들의 ’살아난 간증‘이 보입니까, 아니면 ’말투나 옷차림, 예의 없음‘이 보입니까?
Q. 남의 허물이 보일 때 그것이 나의 내가 회개해야 할 ’나의 더러움‘임을 인정하십니까?
말씀보다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두 번째 이유는,
둘째, 핑계(고르반) 대기 때문입니다(10-13절).
예수님께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 하나를 예로 보여 주셨는데요, 10절, 11절입니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_막 7:10-11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뜻하는데, 오늘날 하나님께 드려지는 ’특별 헌금‘과 같습니다. 자신의 재산 중 어떤 것을 구별해서 “고르반”이라고 선포하면 다른 목적으로 절대 사용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을 때 그것을 악용하기도 했고, 고르반을 명분 삼아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은근슬쩍 어겼습니다. 그래서 누가 달라고 하면 “이건 하나님께 드린 거야! 고르반!” 했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거룩한 핑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돌보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교회 일이 많아서 가족 돌볼 시간이 없어요” 말합니다. 이것이 ’현대판 고르반 신앙‘입니다. 내가 하기 싫은 마음을 감추려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마음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아내도 다 알아요.
당시 율법은 부모 공경을 아주 엄격하게 명령했는데 얼마나 엄격했냐면 “부모를 모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번 명절에 부모님을 공경하셨습니까? 만약 부모를 모욕했다면 다 죽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섭게 말씀하신 이유는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육신의 부모는 나를 이 땅에 오게 한 생명의 통로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를 돌보는 대리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모욕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날 힘들게 하고 못살게 굴어도 그 사건을 통해서 예수 믿게 해 주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보여 주신 예시처럼 이혼 증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여인들이 남편에게 버림받아 돌에 맞아 죽을 것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법적 보호 장치인 이혼 증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살리는 법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이혼 증서를 써 주며 합법적으로 아내를 버릴 수 있다며 자기 정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처음엔 신앙고백으로 “고르반” 했을 거예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진정성은 상실되고 남 주기 싫고 설령 그것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일지라도 드리지 않아도 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나는 가족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고르반!” 하고 “교회 다니면 됐지, 이 정도 하면 됐지” 하는 모습들이 있지 않습니까?
12절 말씀 읽습니다.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_막 7:12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한 자녀가 부모에게 화가 났다고 “고르반” 외칩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가 잘못한 거예요. 그래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 이제 부모님께 드리겠다고 한다고 해도 “안 돼!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이건 이미 하나님 거야! 부모님한테 주면 신성 모독이야!” 바리새인들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율법을 핑계로 회개를 막는 것입니다.
저도 아내와 다툴 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사과를 하면 아내가 자기 잘못을 깨닫지 않을까 봐 사과를 스스로 허락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또 상대방이 회개할 기회를 막는 것과 같아요. 내가 세운 기준과 원칙이 회개하고 돌아올 다리를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번 고민해 보세요. 나는 지금 무엇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까?
13절 읽습니다.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_막 7:13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 처분했습니다. 이것이 어쩌다 한두 번 실수한 것이 아니라 뭐라고 합니까?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한 것을 보니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저지른 죄입니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할 때가 있습니다. 운전할 때 자주 그러죠. 차 안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성경책을 놓고 운전하지만 험하게 운전하고, 불법을 행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차로까지 이어집니다. 교회 앞에 불법주차를 많이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르반 신앙‘이라는 거예요.
명절에 저에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명절 첫날 어머니 집에 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배가 많이 고파서 바로 밥을 먹었는데 그 앞에 앉으셔서 어머니가 저를 유심히 쳐다보시는 거예요. 그리고 하시는 말이 “머리 좀 잘 감으라”는 거예요. 저는 이는 잘 닦지 않아도 머리 항상 감거든요. 그날도 머리를 잘 감고 갔습니다. 그런데 머리를 잘 감으라는 거예요. 제 나이 사십인데. 조카들도 보고 있는 자리에서 머리 좀 잘 감으라고. 그래도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고 갔기 때문에 ‘아, ’고르반 신앙‘ 하지 말아야지. 이번 명절에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와야지.’ 그래서 참고 “알겠어” 하면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참고 밥 먹다가 제가 그날 체했습니다. 제자들 마음이 이해되는 거예요. 제자들도 밥 먹다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거잖아요? 분명히 체했을 거예요. 그래도 제자들은 씻지 않는 손 때문에 그런 건데 저는 먹는 것과 상관없는 머리카락 씻지 않았다고. 근데 그날은 심지어 머리도 감고 갔는데 하- 참 괴로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명절날은 항상 아내와 다툼이 있더라고요. 명절 마지막 날에 ‘울림 웬즈 데이’ 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예배드리고 있는데 아내가 연락을 했다는 것은 무슨 일이겠지요? ‘내가 또 뭘 잘못했지?’ 분명히 지난 주일날 아내의 혈루가 혈기라고 했는데 문자를 확인해 보니 ‘혈기 문자’였어요. 혈루의 근원이 멈춘 것은 아니고 삼 일간 약간 지혈됐던 거였더라고요.
제가 혈기 안 나게 하면 참 좋을 텐데 아직까지는 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것이 있는데 ‘아내가 열받으면 무조건 사과하자. 어떤 이유가 됐든 간에 사과하자.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순간 문은 잠긴다. 사과하자.’ 그리고 사과를 했는데 그날은 한 번 사과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설교할 때 아내와 다툰 얘기를 참 많이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제 설교가 그렇게 양념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제가 저번에 수요 예배 때 ‘잘못했어요’ 설교했었던 이후였기 때문에 좀 발전을 해야 되잖아요? 또 아내와 다툰 얘기를 이제 하면 덕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참았습니다. 참고 있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집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삼 일밖에 이제 주일 예배 준비할 시간이 남지 않았는데 이제 가정에 막 불화가 있으면 마음이 힘들고 짜증이 막 나잖아요? 이게 ‘고르반 신앙’이라는 거예요. 깨닫고 바로 집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제가 수요 예배 때 문틈에 대고 “잘못했어요” 고백한 이후에 어떤 한 남자 집사님께서 저에게 오시고 “목사님 왜 그러셨어요?” 그러시는 거예요. 그 뜻은 ‘남자의 자존심도 있는데!’ 그런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런 간증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려워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도 자존심을 버리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십자가인데 자존심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구원을 위해서는 그런 말을 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제가 보니까 대부분이 “미안하다”고 말할 때 구원이 더 가까운 것 같더라고요. 예수님도 날 위해 십자가 지셨는데 집에서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집에서 항상 예수님이라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집 예수님은 따로 있습니다.^^;; ‘내가 기도를 이만큼 했는데... 목장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섬겼는데...’ 하나님 핑계 그만해야 합니다.
오늘은 취학부 헌신 예배이기 때문에 특별히 우리 교사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오늘 또 취학부뿐만 아니라 교육국을 또 섬기시는 우리 선생님들 이 자리에 계실 텐데 너무 고생 많으십니다. 또 주일도 이렇게 섬겨 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그런데 오늘 말씀이 핑계 대지 말라고 하네요. 섬긴다고 가정을 덜 돌보시면 안 됩니다. 핑계 대지 않아야 해요. 또 핑계 대며 지각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교사 회의부터 꼭 가시길 바랍니다. 또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 심방도 해 주시길 바라요. 고르반 교사가 되지 않길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
Q. 내가 ‘하나님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Q. 내가 세운 전통 때문에 배우자나 자녀가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내가 세운 엄격한 잣대가 회개를 허락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십니까?
전통보다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6-9절).
보이지 않는 내 내면의 모습을 씻어야 하는 거예요. 6절 한목소리로 읽습니다.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_막 7:6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십니다. 헬라어로 이 말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라고 우리가 많이 들었잖아요? 굉장히 센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지 말라는 거예요. 사역자인 저한테는 사역자 행세 그만하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닙니까? “그러고도 우리들교회 목자야!” 오늘 깨끗한 척, 하나님 핑계 대는 우리에게 ‘외식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은 멀기 때문입니다.
오늘 손을 씻기 위해 이 예배의 자리를 찾았지만 정작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이것저것 많이 심습니다. 바리새인은 책망과 율법을 심었고, 예수님은 말씀과 생명을 심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무엇을 심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메말라 가고 자기만족과 과시, 인정중독과 세상자랑, 주식과 도박을 심으며 가꿉니다. 당연히 자기 계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심고 가꾸어야 하죠. 하지만 말씀이 기초가 돼야 하는데 사람의 전통으로 지키느라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마음이 멀어져 있으니 입술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 속은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또 입술로는 “주여! 주여!” 외치면서 정작 내 가족의 아픔은 보지 못하는 거예요.
7절 한목소리로 읽습니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_막 7:7
‘사람의 계명’은 쉽게 말해서 세상적인 가치관을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도 세상적인 가치관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의 배우자감을 찾을 때에도 “예수 믿어야지. 하지만 돈도 있어야지”, “믿음 좋아야지. 하지만 더 좋은 직장도 있어야지.” 합니다. 최근 ‘합숙 맞선’이라는 프로를 제가 보았는데 엄마와 함께 남녀가 5대 5로 맞선을 보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모든 부모가 보는 것이 똑같더라고요. ‘능력’만 봅니다. 그래서 어떤 한 남자가 자기 직업을 밝혔는데 변호사인 거예요. 와- 그랬더니 여자 쪽의 엄마들이 다 변호사한테 자녀들을 앉혀 놓는 거예요. 자기 딸하고 맞선 보라고. 그걸 보면서 ‘와- 진짜 난 다행이다. 우리 장모님 대단하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저의 경제적인 어떤 그 부분도 물어보지 않으시고 “왜 사역자가 되었냐? 사명은 뭐냐?”만 물어보셨거든요. 그리고 우리들교회에 오신 지 1년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오지 않고 계세요. 제가 아직도 하나님의 계명을 보이지 못하고 사람의 전통도 보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번 고민해 보세요.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교훈 삼아 자녀를 가르치고 있습니까? 교회에서는 “믿음만 있으면 결혼해라, 가스버너만 있으면 결혼해라” 하는데 부모님께서는 “믿음만 보면 안 된다! 그게 지혜가 아니다!” 그렇게 가르치니 자녀들이 혼란스러워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십니다. 아무리 목장을 섬기고 열심히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여도 내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그 모든 행위는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세상 방식으로 살면서 “성공하게 해 주세요, 자녀가 잘되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경배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안 되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건 머릿속으로 아는데 참 행동으로 안 되는 부분들이지요. 그래서 진짜 예배는 내 고집이 무너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돈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자존심이 생명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말씀을 보니까 내 우상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내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아무리 손을 깨끗이 씻어 봐야 더러워진 마음이 씻어질 수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회개할 때 더러워진 마음을 씻을 수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잘못된 모습들-술 담배 성실하지 못한 모습들-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짜 씻어야 할 것은 드러나지 않는 모습,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의 세상적 가치관, 고집, 나만 알고 있는 더러운 마음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먼저 씻을 때 술 담배 같은 씻어야 할 외적인 부분들도 씻겨질 줄 믿습니다.
8절, 9절 우리 한목소리로 읽습니다.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_막 7:8-9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이자 핵심입니다. 결국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잘못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라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버리다’는 것은 ‘방치하다’라는 뜻이에요. “나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지 않았어요. 예배도 드리고 큐티도 합니다.” 그게 아니에요. ‘방치했다’는 거예요. 세상 정보를 위해서 내가 말씀을 방치하고 예배를 방치하고... 그게 내가 예배와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전통을 이렇게 목숨처럼 지킬까요? 전통이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나는 이렇게 깨끗하게 살았다’라는 자부심, ‘나는 저 세리들과는 다르다’라는 우월감이 그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와서 “그거 가짜다, 외식이다” 하니까 자신들의 존재 가치가 무너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 자존심, 내 계획, 내 돈을 빼앗길까 봐 바들바들 떨며 꽉 붙잡고, “서로 사랑하라 용서해라 회개하라” 주님의 계명은 너무나 쉽게 방치합니다.
오늘 본문에 ‘전통’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오는데 ‘장로들의 전통, 너희의 전통, 사람의 전통’ 이렇게 ‘전통’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내가 만든 전통이 그만큼 많다라는 거예요. ★내 가치관, 내 자존심, 내가 세운 전통이 무너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이 내 안에 와서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내 삶에 살아 숨 쉬려면 내가 무너지고 썩어져야 합니다. 내가 움켜쥐고 있는 내 생각을 내려놔야 비로소 말씀을 붙잡을 수 있어요. ★결국 마음을 씻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전통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듣습니까? 듣질 않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양육하시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예수님 옆에 누가 서 있습니까? 제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렇게 얘기함으로써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육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도 목장에서 한 사람만 많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얘기하다가 목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한 사람만 얘기하다가 아무것도 얘기하지 못하고 왔어” 이럴 때가 있지요.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우리에게 최고의 훈련이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한테 왜 그렇게 얘기하나?’ 아니요! 곁에선 우리가 훈련되는 거예요.
이처럼 예수의 제자와 같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바리새인과 같은 내가 오늘도 들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나이지만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내 배우자를 위해 또다시 오늘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와 배우자가 “목자까지 되었는데도 똑같다”고, “그렇게 우리들교회 오래 다녔지만 변한 게 없다”고 나를 고발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양육을 위해 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비록 영광만 좋아하고 예수님 우편에 서기만을 좋아하는 제자들이지만, 또 십자가 앞에서 다 떠난 제자들이지만, 오늘도 보세요. 어부 출신으로 무식해서 손을 씻지 않고 먹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잖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너무 무식하고 진짜 아는 게 없어요. 그런데 옆에서 양육 잘 받고 있으면 진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취학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사랑하는 우리 취학부 친구들, 우리 가정에 찾아온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한번 봅시다. 지켜봅시다. 오늘 간증했던 별이네 가족도 2년 전에는 심방 자리 아빠가 오지 않았다니까요. 8년 동안 집을 나가 계시다가 오늘 이 자리 가운데서 간증을 하시잖아요. 이게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렇게 듣다 보면 보고 있기만 하다 보면 예수의 제자가 되어 있을 거예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적용 질문
Q. 절대 놓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승진, 체면, 자존심, 성공 등)
Q. 나는 지금 무엇을 저버렸습니까? 다시 지켜야 할 계명은 무엇입니까?(용서, 사랑, 인내 등)
Q. 우리 자녀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오늘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예수의 제자가 되어가고 있는지 잠시 영상을 보겠습니다.
(취학부 큐페 영상)
이처럼 우리 아이들이 공동체에 붙어있기만 해도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고난을 이야기하고 말씀으로 해석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간증했던 친구도 “예수님은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데 내가 잠 못 자는 거 이유 하나 때문에 큐페에 오기 싫었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줬잖아요. 그게 정말 예수의 제자 아닙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말씀보다 전통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입니까? 깨끗한 척하고 핑계 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러한 마음을 씻어 내는 것은 내 전통을 내려놓는 것임을 기억하며 씻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이 시간 다 같이 함께 기도합시다. 오늘 바리새인들은 전통을 지키지 않는 부정한 손만 보았다고 하는데, 오늘 나는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정죄할 것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보길 원합니다. 지체들의 살아난 간증들이 보이길 원합니다. 깨끗한 척, 거룩한 척, 행복한 척하는 나의 더러움을 보길 원합니다. 나의 고르반 신앙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을 보길 원합니다. 주님, 보지 못했던 숨은 부끄러움이 내 안에 있던 것들을 보길 원하오니! 주여,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 이 시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짜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 다 같이 주님, 내가 회개할 것을 회개하게 도와달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사랑의 주님, 마음을 씻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내 전통을 내려놓는 것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내 전통으로 정죄하며 살아왔어요. 그게 그토록 무서운 죄인 줄 몰랐습니다. 내 전통을 지키느라 말씀을 폐하는지도 몰랐어요. 이제 보길 원합니다. 내 삶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길 원하오니, 지금까지 우리 가정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보길 원합니다. 내가 살아난 것을 보길 원합니다.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보길 원하오니 주여,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오늘 말씀으로 다시 한번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공동체가 살아난 이야기가 보여짐으로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길 원합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내가 오늘 들어야 할 것을 들으므로 그렇게 잘 양육받을 때에 우리의 자녀들이 예수의 제자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배우자가 예수의 제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참고 잘 듣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해외에 계신 우리 담임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 목사님의 영육을 강건하게 해 주셔서 구속사의 말씀을 강에서부터 바다로 흘려보낼 때에 그것을 듣는 유럽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그 말씀을 듣고 큐티하기로 결단할 수 있도록 그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진짜 봐야 할 것을 보게 하여 주시고,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말씀으로 세워진 이 나라가 다시 한번 말씀으로 세워 나가는 그 역사를 우리가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 공동체에 새가족을 보내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 상급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 시간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예물을 기뻐 받아 주시고, 모든 성도님들의 사업과 학업과 프로젝트의 위에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는 인생, 또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만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왜 말씀보다 전통을 중요하게 여길까요?
1. 깨끗한 척하기 때문입니다(1-5절).
Q. 거룩한 척, 행복한 척, 깨끗한 척하며 ’외식‘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Q. 유독 남에게 엄격하게 들이대는 ’전통‘이나 ’율법‘이 있습니까?
Q. 요즘 내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지체들의 ’살아난 간증‘이 보입니까, 아니면 ’말투나 옷차림, 예의 없음‘이 보입니까?
Q. 남의 허물이 보일 때 그것이 나의 내가 회개해야 할 ’나의 더러움‘임을 인정하십니까?
2. 핑계 대기 때문입니다(10-13절).
Q. 내가 ‘하나님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Q. 내가 세운 전통 때문에 배우자나 자녀가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내가 세운 엄격한 잣대가 회개를 허락하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십니까?
* 전통보다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6-9절).
Q. 절대 놓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승진, 체면, 자존심, 성공 등)
Q. 나는 지금 무엇을 저버렸습니까? 다시 지켜야 할 계명은 무엇입니까? (용서, 사랑, 인내 등)
Q. 우리 자녀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오늘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A: 비젼에 기름 부어 주시고, 학기초여서 주말 껴서 공사가 잡혀졌는데, 주어진 처소에서 예배를 잘하고, 공사도 무사히 잘 진행 할 수 있도록.
B: 아픈 친구의 영혼과 육신이 온전히 회복되고 나의 영육위해도 기도 하도록
C: 준비 중인 작업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D: 어머니와의 일본 여행에서 지혜롭게 경계를 세우고 안전하게 다녀오기를
E: 내게 남은 것들을 세어보며 감사하고, 매일 큐티(QT) 말씀으로 자족하며 하루를 살아가기를
F: 준비 중인 프로젝트의 결과에 대해 붙회 떨감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