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5.(주일) 베드로전서 5:7-14 「평강이 있을지어다」
박재현 목사님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나님 오늘 베드로전서 마지막 말씀, 함께 주시는 그 메시지를 우리가 듣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 안에 진정한 평강이 임할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청소년 친구들을 섬기고 있는 박재현 목사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평강이 있을지어다”인데 제가 지금 평강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염려가 많은지, 사람은 잘 안 변하는 것 같아요. 우리 앞뒤, 옆 사람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인사해 볼게요.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다음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시죠.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제일 처음으로 했던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거예요.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니까 이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이 말이 세 번이나 반복이 되더라고요. 세 번이나 반복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가서 제자 삼아라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처럼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인 줄 믿습니다.
이게 왜 사명이냐면, 정말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이 있을 때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위해서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명을 받은 베드로는요, 20여 년간 평강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아시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베드로전서 편지를 쓰면서 제일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오늘날 인생이 두렵고 직장이 두렵고 가정이 두려워서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평강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평강이 있으려면 첫째,
1.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7절)
우리 7절 말씀 한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_벧전5:7
평강이 있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안에 있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서기 60여 년 경쯤에, 로마 네로 황제 시절 때 쓰였습니다. 네로 황제가 어떤 황제입니까? 엄청난 열등감과 허영심으로 수많은 백성을 괴롭혔던 왕이 바로 네로 황제죠. 상처가 해석이 되면 약재료가 되어 한 영혼을 살리지만 상처가 해석되지 않으면 그 약재료는 사람을 살리는 약이 아닌 한 사람의 영혼을 마르게 하는 마약이 됩니다. 네로 황제는 상처가 약재료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폭군이 되었는데, 그 핵심 타깃이 바로 비주류였던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로마 도시에 대화재가 일어났는데 이때 네로 황제는 그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려서 기독교인들의 대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로마 땅에 있던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사명을 다하고 순교하게 되죠.
이런 시대적 배경을 봤을 때 이 베드로전서의 수신자, 그리스도인들의 염려는 바로 ‘생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던 그들이었죠. 베드로는 동서남북이 다 막혀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서 그들에게 고개를 들어 길을 만드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라”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 “아멘”이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우리 삶 속에서는 주님께 잘 맡겨드리지 못합니다.
왜 맡겨드리지 못할까요? 바로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큐티가 힘든 이유는요, 내 생각이 옳다는 고정관념, 바로 잘못된 주인 의식(자기중심성, 교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 큐티 말씀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내 죄를 고백하는 ‘보이스’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교훈의 말씀, ‘사운드’로 들리기 때문에 말씀과 내 삶이 일치하지 못하고 함께 가지 못하는 이원론적인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카페가 장사가 안 되면 누가 가장 염려하는 줄 아십니까? 아르바이트생이 염려를 할까요? ‘오늘 너무 장사가 안 되네……’ (하면서 말이죠.) 아닙니다. 장사가 안 되면 아르바이트생에게는 휴가입니다. 그러면 누가 염려할까요? 바로 카페 사장이죠! 주인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동산으로 염려하는 이유는 그 부동산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요, 이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나그네 인생’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주시는 자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자도 여호와시리라.” 사명을 위해서 이 땅에 왔다가 사명을 다하고 가는 인생이 바로 우리의 인생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명을 따라서 왔다가 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내가 주인이 되기 때문에 염려가 큰 것이죠.
특히 자녀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내 자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가 커집니다. 한 소아과 선생님의 칼럼을 봤는데요.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오늘날 자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20년 전보다 너무나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어린이 전문 병원 생겼죠. 그리고 유모차, 카시트 그리고 겨울에 추우니까 놀이터에서 놀지 말라고 실내 키즈카페까지 만들어졌어요. 아이들을 보호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저도 6살 된 딸과 가끔 키즈카페를 가는데요. 너무나도 재미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딸보다 더 재미있고 적극적으로 놀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환경이 주어졌는데도 참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의 육아 난이도가 20년 전보다 10배는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요? 바로 무한한 정보 때문이라고 합니다. SNS, 맘카페, 여러 가지 기사를 통해 올라온 글들이 부모님들의 심리를 조급하게 만들고, 그 조급함이 염려를 만들어 빈틈이 없는 강박 부모를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염려’의 원어는요 헬라어로 ‘메림나’라는 단어인데요. 이 ‘메림나’엔 ‘여러 조각이 나뉘어지다’라는 뜻이 있어요. 즉, 염려는 내 마음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진 상태를 의미한다는 거죠. 무한한 정보로 인하여서 내가 지금 집을 사야 하는지 아니면 집을 팔아야 하는지, 자녀를 영어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아니면 유학을 보내야 하는지 이러한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 상태가 ‘메림나’, ‘염려’라는 거죠.
자녀를 위해 수많은 정보를 듣고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했지만, 정작 그 자녀는 완벽한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조각처럼 나뉘어져서 아프고 병든 자녀로 자라는 역설적인 상황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께 염려를 다 맡기라’는 이 메시지는요, 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진 마음을 한 가지 마음으로 맞추라는 메시지입니다. 시대적으로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매번 바뀌는 상대적인 그 세상의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이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메시지죠. 내가 다 지려고 하는 잘못된 주인의식(자기중심성, 자기 의존, 교만), 그 우상을 물리치려면 내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그 인식을 날마다 큐티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해야 합니다. 큐티 할 때 모든 염려가 떠나가고 참된 평안이 찾아올 줄 믿습니다.
저 또한 굉장히 염려가 많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불안하고 염려가 되고 손에 땀이 나네요. 늘 조급하고 불안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제 안에 있습니다. 제가 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방문했거든요. 은행에 방문했는데 신용 점수를 검색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몇 년 만에 신용 점수를 조회했는데 신용 점수가 천 점이 만점이지 않습니까? 제가 몇 점이 나왔는지 아십니까? 천 점 만점에 천 점이 나오더라고요.^^;; ‘이런 점수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확인해 보니까 5년 동안 제가 카드 연체를 단 한 번도 안 했습니다. 제 사전에 ‘카드 연체’는 없습니다. 신용 점수가 천 점인데 제가 누굴 신뢰하겠습니까? 빈틈이 없습니다. 참 아내가 숨 막히겠죠? 네, 아내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오히려 한번 깊이 묵상해 봤어요. ‘왜 이렇게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이런 완벽주의 성향이 되었을까?’ 사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정말 매일같이 부부 싸움을 하셨어요. 알코올중독이 심했던 아버지는 술만 먹고 새벽에 들어오시면 집안이 전쟁터가 되었는데요,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 부모님이 부부 싸움하면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이혼하자!”, “갈라서자!”였습니다. 실제로 부모님은 우리가 있는 집에서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도 했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제 가슴이 요동쳤던 것 같아요. 자기 전에 이불 속에서 항상 생각했죠. ‘정말 부모님이 이혼하시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부모님의 마음이 나뉘어지니까 자녀인 제 마음도 똑같이 나뉘어지면서 염려가 가득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물론 주님께서 보호하여 주시고 지켜주셔서 부모님이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부부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또 부모님이 너무 싸우시니까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두 분의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데 나의 인생을 부모님께 맡길 수 있을까?’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니 제가 부모님에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청소년기 때부터 살기 위해서 늘 스스로 개척했습니다. 생존 본능이죠. 작게는 친구들과 놀러 가는 부분에 있어서도 밤에 나가는데도 부모님께 허락을 받지 않았어요. 부모님에게 맞고 혼나더라도 저는 허락받지 않고 그냥 나갔습니다. 답답하니까 분노심이죠, 복수심이죠. 그리고 크게는 대학 진학, 진로 문제도, 심지어 결혼까지 부모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통보했어요. “이 여자와 결혼할 거야!”라고. 제가 개척하고 결정한 거에 대해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쭉 나아가니까 어느 순간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혼자 결정하다 보니까 참 놀라운 것이 저도 모르게 제 신앙관이 왜곡되더라고요. 말씀을 통해서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제가 다 결정해 놓고 하나님께 통보하는 왜곡된 신앙관이 저에게 생겨버리더라고요.
이런 거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내가 하는 결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 하면서 ’하나님, 이렇게 준비하였으니 이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하는 겁니다. 성경에서 한 인물이 떠오르죠. 사무엘이 오지 않으니 자기 마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사울과 같은 모습이 저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모습을 그린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생긴 부모님을 향한 무시가 하나님을 향한 무시로 변질된 저의 교만하고 완악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욱더 주님께 맡겨드리지 못하고 제가 지려고 하다 보니 염려가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염려가 누구에게 흘러갔을까요? 자연스럽게 아내와 두 자녀에게 흘러가더라고요. 딸이 거의 매일 밤 자기 전에 무섭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 달라고 해요. 딸이 6살인데 손톱을 뜯더라고요. 당연히 어린 나이에 무서울 수 있고 손톱을 뜯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런데 이 자녀의 불안이 제 문제라고 생각되더라고요. 제가 청소년기 때 밤마다 두렵고 불안해서 잠을 못 잔 기억이 있는데 제가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두려움과 불안함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결국 원가정에서 받은 그 상처가 해석되지 않으니 네로 황제처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마르게 하는 폭군이 되어버린 저의 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에게 불안이 대물림되는 여로보암의 죄악입니다. 여로보암의 죄악은 내 때에 끊어내야 합니다.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하는데 부장님이 저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목사님, 편안한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목사님 불안해 보여요.” 이거를 꼬아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부장님의 그 메시지가 정말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결국 내가 불안하니 가정에서도 가족들이 불안해하고, 사역 현장에서도 교사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결국 저의 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그런 죄인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께 맡겨드려야지. 저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드려야지.’ 하면서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요. 그런데 맡겨드리려고 해도 잘 맡겨드려지지가 않더라고요. 왜 맡겨드리지가 않냐면, 이 맡겨드리는 것조차도 저의 노력과 저의 성품으로 맡기려고 하더라고요. ‘주님께 맡겨야지!’ ‘고쳐 봐야지!’ ‘내가 안 되는 거 한번 해봐야지!’ 이런 성품으로 하려고 하니까 안 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 평강은 나의 노력과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야지만 평강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제자들을 찾아가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시는 줄 아십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이 언제 성령을 받은 줄 아십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불 같은 고난이 그들 앞에 찾아와서 마가 다락방에 모여요. 그 마가 다락방에서 주님을 찾으며 주님께 울부짖으며 부르짖습니다. 그때 성령 세례가 임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언제 성령을 받을 수 있냐면, 불 같은 고난으로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져서 주님께 목 놓아 부르짖을 때 그 때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결국 여로보암의 죄악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주님께 부르짖는 그때입니다. 그때 성령님이 임하시는 거죠. 성령을 받으면 영안이 열려 그때 보이게 됩니다.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자녀의 인생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그 약속, 그 약속을 붙들기 때문에 우리 마음 가운데 염려가 아니라 평강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석 같은 자녀로 인해서 아주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계시는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성품으로 내 자녀를 양육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내 자녀를 양육합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눈물로 나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드릴 때 주님께서는 나와 내 자녀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돌봐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Q.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Q. 성품으로 살아가나요, 성령으로 살아가나요?
Q. 나의 기도 생활은 어떠하신가요?
평강이 있으려면 둘째
2.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8-9절)
8절과 9절 말씀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아멘_벧전5:8-9
주님께 나의 염려를 맡겨드렸으면 이제 우리의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됩니다. 사실 이 메시지는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에게 했던 말씀이에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잠에 들죠. 깨어 있지 못한 그 밤에 예수님이 로마 장병들에게 잡혀가시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언제요?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었던 그 밤에 베드로의 아픈 상처와 수치의 순간이었죠. 베드로는요. 이 수치의 순간을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핍박받는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위해 이 수치를 약재료로 사용하며 이야기합니다. “근신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나처럼 마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가 깨어 있어야 되는 이유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오늘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요. 오늘날 그 마귀의 타깃이 다음 세대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요즘 다음 세대들은 정말 겁이 없습니다. ‘왜 겁이 없을까?’ 생각해 보니까 가정에서 적절한 좌절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다 지켜주고, 다 보호해 주니까, 다 해결해 주니까, 겁이 없습니다. 더욱이나 학교 현장에서는 교권이 무너졌습니다. 인권을 앞세우는 수많은 제도와 법들로 인해서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이 뭐라고만 하면 핸드폰을 꺼냅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찍죠. 평등을 앞세워서요,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와의 질서,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간의 질서가 다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겁이 없습니다. 겁이 없다 보니 요즘 청소년 아이들의 범죄 수위가 굉장히 높습니다. 특히 성범죄가 급증합니다. 몰래카메라 촬영이든지 그런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어요. 다른 범죄보다 왜 성범죄가 급증하였을까요? 바로 미디어에서 인간의 본능인 쾌락주의를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쾌락주의 철학’이라는 책을 보면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 따위는 없다. 본능이 향하는 대로 행동해라.’ 저는 이 책의 문구가 오늘날 이 시대의 타락한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악의 평범성이 만연한 음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죠.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청소년 자살률은 전 세계 1위입니다. 지난주에 한 청소년 아이가 밤에 카톡이 왔습니다. “목사님, 저 지금 죽도록 힘들어요. 버티고 싶은데 버틸 수가 없어요.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한 친구는 “목사님, 계속해서 환청이 들려요. 저보고 소리로 비웃어요. 기도해 주세요.” 또 지난주에 한 친구는 “저 지금 한강 다리 앞에 서 있어요. 살려주세요.” 여러분 이런 얘기가 다른 얘기가 아니라 우리들교회 청소년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이런 일들이 매 주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연약하고 힘이 없는 귀한 청소년 아이들을 삼키려고 합니다. 이렇게 우는 사자에 노출되어 있는 이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이 바로 9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앞부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9a.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_벧전5:9a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대적하는 것입니다. ‘굳건하게 하다’는 흔들리지 않은 반석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거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뭉치는 것입니다. 아주 가느다란 줄이 하나만 있으면 쉽게 끊어지지만 이 줄이 수백 개, 수천 개, 수만 개 있으면요. 거대한 대교도 버티게 하는 와이어 로프가 됩니다. 절대 끊어지지 않죠. 혼자 있으면 흔들리지만, 혼자 있으면 끊어지지만, 뭉쳐 있으면 바위처럼 단단해져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사자의 사냥 습성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면 무리를 이탈한 동물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거예요. 우는 사자인 마귀에게 공격을 안 당하는 비결이 무엇이냐면 바로 무리해서 이탈하지 않는 것이죠. 공동체에 잘 붙어가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는 방패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주에 있을 청소년 수련회 이 큐티 페스티벌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게 준 최고의 선물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면 겨울방학, 여름방학 1년에 두 번씩 교회 학교에서 진행하는 큐페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저도 중학교 2학년 때 겨울 수련회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기도하는 그 밤, 밤새도록 기도하는 그 밤에 예수님께서 정말 찾아와 주시더라고요. 그때 소명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중학교 2학년 중고등부 수련회였는데요.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소명을 받고 난 다음에 자기 소개하는 그 시간에 제가 선생님들과 형님들과 누님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꿈은 커서 목사가 될 거예요.”라고 외쳤어요. 그때 선생님들과 형님들이 막 박수를 쳐주더라고요. “그래 재현아 너가 목사가 되라.” 하면서 이렇게 박수 쳐주더라고요.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제가 진짜 목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여러분 말 조심하셔야 됩니다. ^^ 이번 청소년 겨울 큐페 접수 신청을 받았는데요. 여러분 고등부 큐페만 800명이 신청했습니다. 중등부 큐페는 900명이 신청했습니다. 이번 큐페 1,700명이 참석합니다. 저는요 이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거라고 믿어요. 우리 선생님들이 한 영혼, 한 영혼 붙잡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 보내주시더라고요.
참 신기한 게 뭐냐면 우리들교회 교육 부서는요. 주일 출석률보다 큐페 참석률이 더 높아요. 주일 출석률이 100이라면 큐페 참석률은 110이에요. 감사하죠. 감사하면서도 씁쓸해요. 그 10%는 어디에 있는 걸까? 장년 예배를 참석하는 거겠죠? 일반적이지 않아요. 보통 일반 교회들은 80% 이상만 수련회에 참석해도 많이 갔다 이야기하는데 우리들교회는 110%가 참여합니다. 이건 성령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돌봐주신다는 증거인 줄 믿습니다. 이 아이들은 큐페에 가면 뭐 하는 줄 아십니까? 일단 낮에는 아이들을 놀 수 있게 해줘요. 아이들은 큐페가 노는 건 줄 알고 재밌게 놉니다. 다 놀고 난 다음에 이제 저녁 집회를 하는데 여러분 청소년 큐페 저녁 집회를 몇 시간하는지 아십니까? 다섯 시간 넘게 합니다. 미디어 중독, 유튜브 중독으로 5분도 집중 못하는 게 요즘 청소년 아이들이잖아요. 그 아이들을요. 5시간 동안 강당에 가두어 놓습니다. 이 말씀의 우리에서 절대 이탈하지 못하게 합니다. 학부모님들 오해하지 마십시오. 화장실만 가게 해줍니다. 딱 그 정도 해줘요. 집회가 한 세 시간쯤 되면 아이들이 소리쳐요. “언제 끝나요? 야식 주세요!” 막 소리칩니다. 그런데 집회가 5시간이 넘어가면 아이들이 소리치지 않고 고백합니다. “죄송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저 예수님 만날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집회를 5시간 동안 하는 이유입니다. 아이들이 순한 양이 되어 버려요. 이것이 바로 성령의 감금이죠.^^;; “너희들이 만날 때까지 기도한다!” 제가 논산 훈련소 조교 출신이라서 체력 하나는 맛깔납니다. 기도회를 3시간 인도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뭉친다고 해서 사탄이 떠나는 건 아닙니다. 뭉치는 건요. 마라톤 대회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마라톤 대회 요새 유행인 거 아시죠? BTS 콘서트만 해도 수만 명이 뭉치잖아요. 맞죠? 그런데 여러분 이 뭉침이 믿음을 굳건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요. 바로 이거예요. 사탄을 대적하는 최고의 무기 회개와 죄 고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씀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회복의 시작은 철저한 자기 오픈! 죄 고백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회개하는 자를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회개할 때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죄 고백하는 자를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큐페 마지막 날 밤에는요. 기도회 시간에 꼭 하는 마지막 순서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회개와 죄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요. 이것은 영상으로 여러분들에게 한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청소년부 큐티 페스티벌 영상]
(여학생) 저희 엄마랑 언니는 아빠에 대한 증오가 좀 있으세요. 전에 아빠한테 당한 게 있었어서. 근데 저는 그거를 막 모른 채로 아빠를 진짜 진짜 사랑하면서 사랑받으면서 자랐거든요. 엄마랑 갈등이 일어나는 게 싫어서 엄마 따라서 아빠를 무시하는 게 어릴 때부터 습관이 돼서 이제 막 계속 무시하고 미워하니까 너무 죄송한 거예요. 근데 저희 아빠가 중등부 교사신데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서 나왔어요. 아빠 너무너무 사랑해. (목사님) 아빠 어딨어요? 우리 딸한테 대답을 해줘야죠. 다시 고백을 해줘야죠. 딸이 고백을 했으니까. (아버지) 사실 제가 이혼하고 재혼한 가정이에요. 그래서 우리 나연이는 재혼해서 태어난 딸이고요. 중간에 껴 가지고 눈치 많이 보고 많이 불안해하고 그래서 저는 미안한 거밖에 없고. (목사님) 사랑해 고마워 해야죠. (아버지) 사랑해. 고마워.
(남학생) 저희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혈기가 많으셨어요. 그래서 어느 날 맞다가 갑자기 정신을 깨어 보니까 응급실에 있고 머리에는 피가 나 있고. 그때 이후로는 아빠가 막 무섭고 오늘 말씀을 딱 들으니까 아빠가 저한테 용서를 구해야 되는 게 아니라 제가 아빠한테 용서를 구해야 된다는 걸 알았고. (목사님) 아빠 누군지 얘기해도 돼. (남학생) 네 상관없어요. (목사님) 아빠는 김정태 목사님이에요. (목사님) 소환시켜야 되겠는데 빨리 오라고 어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지금 예 전화 한번 해보겠습니다. (남학생) 그동안 짜증 내서 미안해. 진짜 미안해.
아이들이 제일 은혜 받는 시간이에요. ‘나만 고난 당하고 나만 상처받는 줄 알았는데 우리 친구들도 나와 동일한 고난을 당하고 있구나. 아! 목사님 아들이라고 다른 게 없구나.’ 그 영상에 나왔던 그 아들이 선택이라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이제 벌써 청년이 되었는데 이제는 본인의 약재료를 들고 청소년 수련회 스텝으로 참여를 합니다. 이게 그래서 이번에 청소년 수련회 때 청년 스태프들이 150명이 참석을 해요. 다 이런 고난을 겪었던 친구들이 청소년 큐페를 경험하고 이제 자신의 약재료를 나누러 떠나는 거죠. 이게 참 구속사 인생 아니겠습니까?
9절 말씀 뒤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더라고요. 9절 말씀 뒷부분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9b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_벧전5:9b
서로의 동일한 고난. 죄 고백을 보면서 서로의 믿음이 단단해진다는 거예요. 혼자가 아닌 함께 모여 근신하고 깨어 있을 때 내 안에 있는 우울의 영이 떠나가고, 음란의 영이 떠나가고, 자살의 영이 떠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꼭 기도해 주세요. 이번 큐페 때 우리 청소년 아이들 자살의 영, 우울의 영이 떠나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듯이 혼자가 아닌 목장에 모여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죄 고백과 동일한 고난을 잘 나눌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목장을 지켜주시고 우리의 가정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Q. 나는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까? 졸고 있습니까?
Q. 무리에서 이탈하려고 목장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까?
Q. 나의 고난이 한 영혼을 살리는 약재료가 된 적은 된 적이 있습니까?
평강이 있으려면 셋째,
3. 다음 세대를 세워야 합니다.(13-14절)
우리 13절 말씀 한목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_벧전5:13
아멘.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를 문안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바벨론’은요. ‘로마’를 상징해요. 바벨론은 남유다를 무너뜨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힘과 악을 상징하는 제국이죠. 바벨론이 무너진 후 500년이 지난 다음에 로마라는 또 다른 힘과 악을 상징하는 제국이 등장하여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론의 중심, 로마의 중심, 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 땅에서도 항상 교회를 세워주십니다. 아무리 힘든 환경 속에서도 주님 품으로 달려갈 수 있는 도피성이 있다는 거죠. 악하고 음란한 이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운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의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한 사람이 등장해요. 그 이름이 누구냐면 바로 ‘마가’입니다. 마가를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합니다. ‘내 아들 마가’ 실제로 마가는 베드로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아들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바로 영적인 후사인 거죠.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표현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평강을 위해서만 살아간 것이 아니라 교회와 나라의 평강을 위해서 영적 후사를 낳는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워 간 것이죠.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낳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낳고, 베드로가 마가를 낳았듯이, 우리도 영적인 후사를 낳아 교회와 나라의 평강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백 년 뒤에 우리들교회 이 본당 예배당이 어떤 모습일 거라고 생각이 되어 지십니까? 우리가 한 달 동안 요나서와 나훔서의 큐티를 하였습니다. 그 큐티를 하면서 느낀 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그 니느웨 땅에 회개 운동이 일어났지만 불과 10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나훔서가 쓰여진 그때 보니까 그 니느웨 땅이 다시 타락하기까지는 10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3세대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2천년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럽 교회가 오늘날 어떤 모습입니까? 오락 시설로 숙박 시설로 관광지로 변한 게 변한 곳이 바로 유럽 교회의 현 주소입니다. 이 니느웨 땅을 보면서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키우지 않으면 한국 교회의 미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나라의 평강을 위해 우리는 믿음의 아들 마가를 반드시 낳아야 합니다. 저희 청소년부는 이제 청소년 심방을 가정 심방으로 많이 다닙니다. 가정 심방을 가보면 학부모님들의 걱정과 염려가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저희 심방팀은요. 항상 이 마지막 심방하는 그 시간에 부모님에게 처방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청소년부 교사로 헌신하세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학부모님은 딱 처방을 들어 받았으니 어떻게 처방대로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너무나도 가기 싫지만 어떻게든 적용하려고 발걸음을 청소년부 예배실로 옮깁니다. 그래서 주일날 그 청소년부 예배실 딱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청소년 아이들을 보면서 학부모님은 놀라운 진리를 하나 깨닫습니다. ‘아! 내 자녀는 지극히 정상이었구나! 다 그놈이 그놈이구나!’ 그 순간 불안과 염려가 잠잠해지며 마음속에 평강이 드는 거예요. 이게 뭐죠? 동일한 고난을 함께 나누는 거죠. 그때부터 정말 주님께 내 자녀를 온전히 맡겨드리고 나는 영적 후사를 위해 믿음의 마가를 낳는 교사의 직분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리고요. 여러분, 자녀에게 쏠렸던 큰 염려가 이제 자녀에게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와 똑같은 동일한 고난을 가치고 있는 그 청소년 아이에게 내 마음과 나의 그 사명이 쏠리는 그 순간 정말 평강이 임하는 우리 청소년부 교사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청소년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요. 내가 정말 문제 부모였음을 고백하게 되는 거죠. 지금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는 교사분들 대부분이 그렇게 해서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믿음의 아들이었던 마가가요. 베드로 옆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베드로의 그 사역을 보면서 그걸 바탕으로 쓴 글이 하나 있습니다. 쓴 책이 하나가 있죠. 그 책이 무엇이냐면 바로 4일 뒤에 우리가 함께 큐티를 시작하는 마가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다음 세대가 된 거죠. 자녀는 부모님의 사명을 위해서 사는지 아니면 행복과 야망을 위해서 사는지 다 보고 따라 큽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자취를 보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자녀는 마가복음과 같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것입니다. 자녀에게 염려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평강을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입니다.
베드로전서 마지막 말씀.
14b.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_벧전5:14b
예수님 안에 거하여 평강이 충만한 인생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Q. 목장에서 내가 세워야 할 마가는 누구인가요?
Q. 교회와 나라를 위해 교육 부서 교사로 헌신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평강이 있으려면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겨드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돌봐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함께 모여 회개와 죄 고백으로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세대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아들 마가를 낳을 때 우리 자녀가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평강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다 맡기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기도제목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나아갑시다. 내 안에 놓지 못하는 욕심과 잘못된 주인의식으로 인해 염려와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씨름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내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드립시다. 내 성품으로 맡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맡깁시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성령 하나님 불 같은 고난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짖으며 나아가오니 주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자녀를 돌봐주시옵소서. 항상 깨어서 근신할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은혜를 나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이번 주에 있을 청소년 큐페를 통해서 죽음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그 한 영혼을 기억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주여 한 번 부르짖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 “이혼하자, 갈라 서자”라는 말을 듣고 늘 불안하고 염려가 큰 청소년 시기를 보냈지만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주님의 은혜로 이곳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를 성품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성령으로 양육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그 신실한 약속을 붙들며 나아가오니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자녀를 돌봐주시옵소서. 귀한 예물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이 예물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데 쓰여지는 귀한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주 목요일부터 고등부, 중등부 청소년부 수련회가 4박 5일 동안 진행됩니다. 성령 하나님, 수련회장에 성령의 바람이 가득 불어와 회개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고, 죄 고백이 일어나게 하여 주셔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참된 평안을 누리는 우리 다음 세대 청소년 아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수련회를 방해하는 마귀 사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떠나갈지어다! 떠나갈지어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이 땅의 다음 세대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믿음의 아들딸들이 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교회를 지켜주시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적용질문
평강이 있으려면,
1.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7절)
Q.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Q. 성품으로 살아가나요, 성령으로 살아가나요?
Q. 나의 기도 생활은 어떠하신가요?
2.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8-9절)
Q. 나는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까? 졸고 있습니까?
Q. 무리에서 이탈하려고 목장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까?
Q. 나의 고난이 한 영혼을 살리는 약재료가 된 적은 된 적이 있습니까?
3. 다음 세대를 세워야 합니다.(13-14절)
Q. 목장에서 내가 세워야 할 마가는 누구인가요?
Q. 교회와 나라를 위해 교육 부서 교사로 헌신하시겠습니까?
*** 기도제목
A:지켜주신것에 감사하고 매일 큐티하기
B:옳은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도록
C:식사기도 이외에도 상시로 기도 하며 처소를 잘 지키도록
D:힘을빼고 이해와 사랑과 용서는 주님께 맡기도록
E:모든 염려는 주께 맡기고 큐티로 하루만 살도록
F:잠깐 당하는 고난인 줄 알고 하루만 말씀에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