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4.(주일) 예레미야 49:1-6 「그 날이 이르리니」 최대규 목사님
1.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4. 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5.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
6.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 우리가 바라는 그날이 있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날이 있다고 합니다. 그날을 기대하며 기도하며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담임 목사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너무 좋으시죠? (담임 목사님이) 혹시 저를 어떻게 소개를 한마디 해 주실까 기대했는데 아무 말씀 안 하셔서 생각이 많아지는 …… 그런 설교 시간입니다. 다 우연은 없겠죠. 쳐다볼 수가 없네요.^^;
대학 입시를 앞둔 한 청년이 12월 큐티책을 보면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아! 예레미야라니 참 센스가 없네. 입시 기간에 예레미야라니……” 네, 예레미야를 큐티하는 게 쉬우신가요? 아니면 어려우신가요? 하지만 늘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 묵상하는 우리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옆 분한테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이 큐티의 여왕이십니다.” 시~작!
저는 오늘 <그 날이 이르리니>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으신가요? 생일을 기대하는 어린이, 아니면 첫 휴가를 앞둔 군인들이 그날을 굉장히 기다리겠죠? 어떤 성도님은 우리 담임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그날을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ㅎㅎㅎ 제가 말해도 웃음이 나오네요.) 반대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날도 있으신가요? 월요일 출근? 뭐 이런 거. 저는 다음 주일이 오기를 기대할까요?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까요? 여러분이 기대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날이 있다고 하는데, 그날이 ‘하나님의 때’라고 합니다.
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여러분 “보라”는 분명히 일어날 것에 대한 선언이고, “날이 이르리니”는 하나님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전체에서 심판과 회복 때 항상 이 말씀을 하시는데요. 이런 뜻이죠. “너희는 준비해라. 내가 정한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열국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듣는데, 오늘 본문은 암몬에 대한 심판 예언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어떤 날인지, 우리가 어떤 날을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그 날은 주님이 점령하시는 날입니다(1-2절).
우리 1절 한번 읽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1.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암몬은 모압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입니다. 혈연상 이스라엘과 형제 민족이죠. 근데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과 암몬은 끊임없이 적대관계였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너희 암몬 땅 좀 지나갈게”라고 요청했지만 암몬은 거절했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와의 총회에 암몬이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사사기 시대에도 사울 왕 때에도 다윗 왕 때에도 늘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함께해야 할 것 같지만 함께하기가 너무 힘든 그런 관계였죠.
여러분, 한번 지도 보시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지도)
요단강이 있죠. 사해가 있죠. 요단강 오른편 쪽에 암몬, 그 밑에 또 모압이 이렇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이 암몬을 향하여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왜 말감이 갓-요단강 동편 땅에 있는 그 지역-을 네가 점령했느냐!”라고 호통을 치시는 겁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역사 이야기를 해보면 B.C. 733년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요단 동편의 길르앗 지역이라고 하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갓 지파 사람들과 다른 지파 사람들을 포로로 다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 땅의 주인이 비자, 암몬이 그 틈을 타서 그 땅을 점령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점령했다’고 말씀하시는 그 단어가 히브리어로 “야라쉬”인데요. “야라쉬.” 그 뜻이 “상속받다, 주인이 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암몬에게 준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갓 지파에게 주신 기업인데 오히려 암몬은 주인인 척, 그것을 자기 소유인 척 행했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주신 기업이 있죠. 가정, 자녀, 사업장, 직장…… 우리가 청지기로서 잘 다스려야 하는 기업인데도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다른 이가 와서 점령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땅이다, 내 자녀다, 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요, “암몬 자손이 갓을 점령했다”고 하지 않고 (1절을 보면요) “말감이 갓을 점령했다 어찌 된 일이냐”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여러분, 왜 ‘암몬’이 아니라 ‘말감’이 점령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 말감은요 암몬이 섬기는 민족 신입니다. 우상이에요. 말감이라고도 하고 우리가 들었던 ‘몰렉’이라고도 하고 ‘밀곰’이라고도 부릅니다.
여러분 이 숭배의 가장 잔인한 점은 자녀를 불 가운데로 내던지고, 그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인신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잔인한 우상 숭배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제사를 드릴까, 그들도 사람인데 아마 욕심이 양심보다 더 컸겠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죄는 작은 죄라도 놔두면 그냥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점점 곰팡이처럼 퍼지는 특성이 있죠. 작은 욕심 하나가 점점 커져서 탐심이 그 마음에 가득 차니까 정말 무엇이 맞는지 이성적 판단도 흐려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에 물어야 하는 거예요. 묻는다는 건요, 나눈다는 건요 내 안에만 꽁꽁 숨겨져 있는 그 욕심을 밖으로 꺼내놓는 거잖아요. 여러분, 죄가 드러나면 힘을 잃는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기업에 우상이 들어와서 이런 악한 일들이 자행되고 그 땅에 더럽혀져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진노하실 만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집에 돌아갔는데 무당이 여러분 집에 굿판을 벌이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겠습니까?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황당하게 여기며 쫓지 않겠습니까? 제가 무당 얘기를 묵상해보다가 제가 전도사 시절에 무당집에 한 번 간 적이 있습니다. 무당이 저를 초대했어요. 왜냐하면 그 무당이 교회를 한 번 왔기 때문에. 그래서 가서 찬양도 좀 부르고 말씀도 얘기하는데, 갑자기 그 무당이 진지하게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귀신이 있어요?” 이러더라고요. 참 무당한테 그런 질문을 받기는 또 처음입니다. 제가 “당연히 귀신이 있죠. 하나님도 계시고 귀신도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너무 궁금해서 “뭐 신내림 받는 그런 굿 같은 거 할 텐데, 그런 거 안 하셨어요?”라고 물어보니까 “아니, 하긴 했는데 잘 모르겠던데……” 이러더라고요. 제가 참 너무 이상해서 ”아니, 그러면 점 보러 오신 분 있지 않았냐?“고 ”어떻게 점 보셨냐?“고 제가 물어봤는데 ”지금까지 딱 3명 봤는데 쌀점이라고 쌀을 뿌리며 하는 점이 있는데 저도 모르니까 쌀 대충 뿌리고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얘기했다“고. 뭐 이런 얘기를 하는 무당도 있더라고요.
어쨌든 간에 이 남의 집에 와서 그러고 있으면 여러분 화나지 않겠습니까? 지금 말감이 하나님의 기업을 점령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갑자기 어느 날 일어난 일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때보다 약 200년 전 앞서서 솔로몬이 ‘나아마’라는 암몬 여인과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예루살렘 앞산에 말감 산당을 지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어’라며 허용했던 그것이 공공연하게 진짜 숭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암몬 여인(나아마)에게서 낳은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고 그 이후에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아하스, 므낫세 이 악한 왕들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도벳’이라는 곳에서 진짜로 자녀를 불에 던지는 제사를 행하게 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이 말감, 몰렉 제사에 대해서 ”요즘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해 주신 말씀이 있어요. 여러분, 들어보세요.
”몰렉에게 자녀를 바친다는 것은 부모가 자신의 욕망과 대리 만족을 위해 자녀를 세상 성공이라는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아이가 성적은 오를지 몰라도 그 가정에서 아이의 영혼이 타 버리고 부모와의 관계가 타 버리고 신앙이 타 버리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게 바로 몰렉 숭배입니다. 우리는 찌꺼기를 세상에 주지 않습니다. 내 집안의 장자, 즉 가장 똑똑하고, 가장 예쁘고, 가장 가능성 있는 자녀를 골라서 몰렉에게 바칩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최고의 이삭을 세상에 몰렉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가 지금 행하고 있는 몰렉 제사라고 또 말씀해 주신 적이 있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그런데 당당히 남의 땅에서 주인 행세하고 있는 암몬에게 심판의 날이 임한다고 해요.
그게 2절 말씀인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절 시작!
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날에 심판이 임한답니다. 랍바는 암몬의 수도거든요. 철옹성 같은, 정말로 아무도 침범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성이 폐허가 되고 불에 탈 것이다. 참 이땅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완전한 피난처도 이 땅에 없죠. 사람도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회사도, 모든 관계도 그렇습니다. 오로지 유일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붙잡아야 되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은 잠깐의 만족과 기쁨이지, 모든 것이 멈추는 시간에 우리 손에 들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암몬한테는 심판의 날, 그날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구원의 날이 됩니다. 오늘 말씀에 뭐라고 그랬어요? “이스라엘이 다시 점령하리라”, “점령하였던 자를 다시 점령하리라” 구원의 날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땅을 다시 되찾는다고 한들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지 않으면 또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배우자, 자녀, 그토록 얻기 원하는 직장, 결혼 그것을 내가 차지한다 한들 진짜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지 않으면 다른 우상에게 또 빼앗길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암몬은 바벨론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다른 이가 또 주인 행세를 하네요. 바벨론이 주인 행세를 하고 이후에 또 페르시아가 통치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이 보이는데요, 그런데 진짜 역전이 일어납니다. 드디어 점령을 합니다. 어떻게 해요? 그 땅에 예수님이 오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유대와 더불어 요당 동편 땅을 다니시면서, 이 땅을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예수님의 그 유명한 말씀, 잃은 양 비유의 말씀도 이 요단 동편 땅에서 하셨더라고요. 거라사의 귀신 들린 자, 그 귀신도 이 요단 동편 땅에서 내쫓으셨더라고요. 예수님이 이 땅을 다스리기 시작하신 겁니다. 암몬의 우상에 의해 더럽혀지고 짓밟힌 그 땅이 고난과 수치의 모든 시간을 통과하고 나서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땅이 되더라고요. 하나님의 때에 예수님이 정말 점령하시는 날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제 얘기를 좀 한번 적용을 좀 해보면 저희 가정은 ‘점령당하고 점령하고’의 한 해였습니다. 제가 새벽 예배에도 나눈 적이 있지만 참 잊지 못하는 날이에요.
올해 4월 1일, 저희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인데 딸의 학교로부터 우리 부부가 다 오기를 바란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전화를 받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중학생 때도 딸이 자해를 하고 친구한테 “죽겠다”라는 얘기를 참 많이 했을 때 학교로부터 그런 전화를 받았던 것이 생각이 났어요. ‘또 무슨 일일까’라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상담실에서 딸이 막 울고 있더라고요. 상담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이 차분히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어머니 아버님, 따님이 어젯밤 야자시간에 친구 앞에서 평소 자신이 먹는 우울증 약 17알을 다 먹는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막 말려도 먹는 일이 있었고, 친구들에게 ‘내가 몇 월 며칠 죽겠다’는 얘기를 계속 하고 다녀서 따님이 치료를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당분간 나오지 마시고 또 학교 친구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으니 뭔가 가정에서 조치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였어요. 그 모든 분이 제가 목사인 걸 아는데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점령당한 것 같은 사건이 찾아와서 참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무슨 일이지, 내 삶에 이게 무슨 일일까?’ 이전에는 또 생각해 보지 못한 그런 일이었어요.
당장 제 마음에는 ’왜 그랬어? 왜 그런 짓을 했어? 아빠가 평소에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그랬잖아!‘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막 따져 묻고 싶은 거예요. 딸을 막 나무라고 싶은 거예요. 근데 이런 마음이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것일까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채근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상담 선생님의 권면이 있어서 일단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래서 딸이 좋아하는 이제 삼겹살집에 갔어요. “삼겹살 먹어라.” 제 속에는 ‘뭘 또 잘했다고 이렇게 먹니?’ 약간 이런 마음도 있었지만 잘 먹더라고요^^. 그래서 다 먹고 딸이 이제 기분이 좀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채근하지 않고 그냥 차분하게 물어보려고 “왜 그랬어~? 왜 그랬어~?”라고 물어봤는데 당연히 어떤 이유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이런 대답을 하는 겁니다. “그냥 내가 뭔가 버려질 것 같은 감정이 들 때, 나는 아무 생각이 안 들어. 그래서 내가 어제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학교도 못 나가게 될 줄 몰랐어.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 라고 막 울면서 얘기하는 딸을 제가 보면서 ‘아,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똑바로 정신 차리고 살라고 말한 게 우리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말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거예요. ‘본인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구나. 자기도 자기가 왜 그런지 모를 정도로 많이 힘들고 아프구나.’라는 생각이 제가 처음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딸이 진짜 정신병동이라는 곳에 가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드니까 아빠로서 마음이 너무 막 괴롭더라고요. 제 마음을 막 점령당한 것 같았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큐티 책을 폈습니다. 그런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는데 그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냥 이 상황이 너무 이해가 안 돼서 그냥 빨리 잠든 것 같아요.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 다시 큐티 책을 펴보니까 그날 큐티의 말씀의 제목이 ‘하늘의 시민권’이었습니다. 친구를 참 좋아하고 친구에게 관심받고 친구에게 집착하고 친구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 딸이, 그래서 학교에 가기를 좋아하는 우리 딸이 학교를 못 가는 - 학교에 갈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이 상태가 너무 슬프지만 그래도 ‘하늘의 시민권’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 같아서 제가 처음으로 눈물이 났어요. 그러면서 이날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딸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세상에 있어 보이는 것으로 드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실 수밖에 없는 일이었구나’라는 것이 조금 해석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정신과에 다니면서 상담도 잘 받고 제일 중요한 건 매일 가족 큐티를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근데 정신과 상담을 좀 받으니까 우리 딸이 “불안이 높은 기질로- 아주 불안이 많은 기질로- 태어났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불안이 저로부터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 딸한테 그런 얘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가족 큐티 시간에 그렇게 얘기한 것 같아요. 여러분 가족 큐티는 정말 어떤 일이 있어도 꼭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날 큐티 시간에 “아빠가 학교 다닐 때 아빠는 신체검사라는 걸 학교에서 종종 했는데 그때는 항상 팬티만 입고 다 벗고 하루종일 신체검사를 했어. 근데 아빠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있어서, 피고름이 있고, 늘 흉터가 온몸에 많은데, 그걸 친구들에게 내가 보여주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신체검사가 있다’라는 광고가 나오면 그날부터 아빠는 너무 불안해서 그날이 오지 않기를 매일매일 바랐어. ‘어떻게 하면 학교 안 갈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그런데 그걸 아빠는 속으로만 혼자서만 생각하고 아무한테도 내가 그렇다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 심지어 부모님도 나 때문에 힘드니까 부모님한테도 난 얘기 안 하고 집에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냈어. 그런데 네가 아빠를 닮았다고 하는데 집에서는 아무 일 없다고 지내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네가 너무 속상하고 힘든 일이 참 많을 것 같아. 아빠는 그때 말할 줄도 모르고 말할 수도 없었는데 너는 어떤 것도 좋으니 얘기해 주면 좋겠어.” 제가 이 얘기를 가족 큐티 시간에 처음 나눴습니다. 딸한테 제 마음을 진심으로. 그랬더니 딸도 찬찬히 생각을 해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얘기했습니다. “아, 나는 아빠 말대로 불안과 우울이 참 많은 것 같은데, 친구로부터 특히 내가 원하는 기대가 나오지 않으면 난 한없이 버려질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때는 내가 어떻게 내가 통제가 안 돼. 그런데 중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잘 지냈던 것 같은데, 그때는 큐티도 하고 신앙의 힘으로 좀 버틴 것 같은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다 깨져버리고, 나 그래서 그냥 그렇게 약을 먹은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저에게 참 나팔소리처럼 들렸어요. ‘치료도 받아야 하지만 우리 딸이 정말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구나’ 여러분 그러면서 함께 큐티를 하면서 계속 함께 치료도 받으면서 그렇게 한 8개월의 시간이 지났네요. 우상에게 점령당한 우리 딸에게 예수님이 오셨을까요? 저희 딸은 목장 가서 자기 이야기하는 것도 참 싫어했어요. 그래서 큐페에서 “너 나눔 한번 하고 와.”라고 하면 “내가 왜 해?!!” 이러면서 그것도 참 싫어했어요. 그런데 이 사건이 진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자기가 친구를 우상으로 삼아서 온 사건이라는 것이 해석이 된 저희 딸이 지난 여름 청소년 큐페에서 많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이게 예수님이 오신 일이 아니겠습니까? 맞죠? 어제는 친구를 만나고 오더니 그 친구가 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저희 딸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몇 시간 했나 봐요 저희 딸이 다 듣고 난 다음에 또 자기 약재료를 다 얘기해 줬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기뻐하며 집에 돌아갔다고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엄마 하나 살리고 왔어.”^^(박수) 예수님이 오신 것이 맞나요? 그런데 저는요. 제가 큐티 잘하고 회개해서 이렇게 예수님이 오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을 참 해 보면, 제 힘으로 예수님이 우리 딸을 점령할 수가 없겠더라고 진짜 공동체 목장 또 담임 목사님이 때마다 물어봐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이 공동체 은혜의 힘으로 예수님이 점령해 주신 거더라고 내 힘으로 한 것이 없다는 것이 인정이 되는데 그래서 우리가 목장에 붙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들 딸들이 목장에 붙어가게끔 우리가 손과 발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예수님이 점령하시기 너무 어려우니까. 공동체를 통하여서 “주님, 우리 자녀를 우리 가족을 점령해 주십시오”라고 우리가 하나님께 부탁을 하는 것이죠.
적용 질문드리겠습니다.
Q. 경계를 넘어 내 것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Q.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함부로 여기다 빼앗긴 것은 또 무엇인가요?
Q. 내 가족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Q.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서 내가 큐티하고 목장 가는 걸 알고 있나요?
(이걸 물어보세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지. )
자, 하나님의 날 ‘그 날’은 무슨 날이냐면 두 번째
2. 그 날은 의지하던 자랑이 무너지는 날입니다(3-4절).
자랑이 무너지는 날입니다. 우리 3절 4절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3. 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4. 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구체적으로 어떻게 암몬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지에 대한 내용이 쭉 나오는데요. 먼저 암몬의 수도 랍바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랍바는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과 똑같은 도시입니다. 랍바의 이름의 뜻이요 ‘대단한 자, 위대한 자’라는 뜻입니다. ‘위대한 도시’ 이름에 걸맞게 얼마나 교만했을까요? 그렇죠 제 이름이 ‘대규’입니다. 한자로 큰 대(大)에 홀 규(圭)이름의 뜻은요 ‘큰 벼슬’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이름이 교만합니까? 저희 부모님이 ‘낮아지지 말고 높아지라’고 지금도 “참 이름 잘 지었다”라고 하시면서 좋아하시는데 구속사를 전혀 모르고 지으셔서 제가 참 부끄러운 이름인데요.^^ 랍바의 이름의 뜻처럼 랍바는 정말 갖춘 것이 많아서 교만했습니다. ‘랍바’라는 도시는 해발 800m의 고지대라서 천혜의 요새라고 불리는 도시였습니다. 또 얍복강 상류에 있어서요. 물이 얼마나 잘 흘러들어오는지 골짜기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뭔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늘 과실과 열매가 가득가득한 동네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환경 때문인데, 마르지 않는 골짜기가 내 실력인 양 교만하고 자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말씀에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암몬이 점령한 갓 지파의 땅 이 길르앗의 땅은 황금의 땅이었습니다. 너무 황금의 땅이니까 그렇게 암몬이 노렸나 봐요. 유향나무가 자라는 땅인데요. 그 유향나무가 향이 너무 좋아서 화장품으로 쓰고, 그 유향나무의 수액은 소독 성분이 있어서 소독제로도 쓰였습니다. 이게 얼마나 불티나게 잘 팔리는지. 여러분 집에 향수 가지고 계시죠? 디올, 샤넬, 요즘 뭐 비싼 향수 보니까 매종 프라시스 꺼종~~ 뭐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진짜 비싼 향수들도 많이 있더라고요. 근데 여러분 그때 향수 하면 메이드 인 길르앗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의 특산품이 사과, 배 이런 게 아니라 명품 향수입니다. 얼마나 참 돈을 많이 벌었겠습니까? 또 그곳은 ‘왕의 대로’라고 하는 국제 무역로가 지나는 길이 있었습니다.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이 두 거대한 나라를 왔다 갔다 하는 상인들이 많았는데요. 그 상인들이 꼭 지나는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나는 상인들한테 통행세를 거두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게 암몬이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약탈한 땅에서 얻은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창고에 가득 채우면서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라고 교만한 게 암몬이었습니다. 그것만 자랑하니 그것만 의뢰하니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죠. 결국 하나님은 그 모든 자랑과 의뢰와 교만을 무너뜨리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도 그것만 자랑하면 수치와 조롱밖에 당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 말씀 묵상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예수를 자랑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겠죠.
오늘 본문에 그들이 당할 일을 5개의 동사로 묘사를 하는데요. 3절에 보면 ‘슬피 울지어다’ 황폐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부르짖을지어다’ 그다음에 ‘굵은 배를 감을지어다’ ‘애통할지어다’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그들이 당할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5개의 동사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특별히 근데 ‘부르짖을지어다’를 생각해 봅시다.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이 “부르짖다”라는 히브리어가 ‘차아크’인데요. ‘차아크’ 이게 ‘비명을 지르다, 도움을 요청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암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게 한다고 하실까요? 그들이 드렸던 말감 제사를 한번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 그 지역에서 또 암몬 땅에서 자녀들을 불러 태우는 제사를 드렸잖아요. 그때 여러분 북을 세게 쳤다고 합니다. 왜 제사 때 북을 그렇게 세게 쳤을까요? 그것은 살려달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비명을 듣지 않기 위해서. 그 북소리에 비명소리가 가리게 하기 위해서 북을 쳤다고 하죠. 그 북소리에 아이들의 울음도 들을 수가 없었다고 그래요. 그 북소리에 그들의 모든 부모의 귀도 가려져서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나 안 하고 싶어! 안 가고 싶어! 나 이렇게 안 살고 싶어!”라고 하는 그 비명을 외면한 채 북소리로 가리고 부모는 그 제사를 드렸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비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 계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비명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음까지도 알고 계시죠. 그 모든 신음을 기억하시는 주님께서 이 심판의 날에 “네 욕심에 귀가 가리워져 듣지 못했던 그 비명이 너희 입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네가 그렇게 악하게 행했으니 네가 당해 봐라”라고 복수하시는 걸까요? 저주를 하시는 걸까요? 그게 아닙니다.
이 5개의 동사의 묘사는 명령어로 쓰여져 있다고 그래요. 명령 어떤 명령일까요? 그것은 회개를 위한 명령입니다. 이 ‘부르짖을지어다’ 이게 단순한 고통의 비명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회개의 부르짖음이 되라고 명령하시는 겁니다. “너의 자랑이 무너지는 그것. 네가 수치를 당하는 그것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있니? 그것이 하나님께 회개의 부르짖음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한 목자님의 이야기를 좀 들려드릴 건데요. 이런 나눔을 하셨더라고요.
저는 아이들의 말을 참 많이 무시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면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서 이게 좀 좋은 말이 아니라 권면의 말이 아니라 옳은 멍멍이 소리를 늘 한다는 거예요. (설교니까 좀 이렇게 표현을 순화했어요. 멍멍이 소리 아시죠?) 며칠 전 아들과 유튜브에서 이렇게 일본 삿포로에 대한 영상을 이렇게 쭉 보는데 그러면서 아들과 언쟁이 붙었다는 거예요. 아들이 올 겨울에 일본 삿포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이제 좀 궁금하니까 유튜브에서 그런 거 막 자세히 봤겠죠. 눈이 많이 내린 삿포로인데 이 도로는 보도블록에는 눈이 하나도 없고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것을 본 거예요. 그래서 평소 이 건설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이 목자님은 좀 자신이 안다는 교만함으로 ‘염화칼슘 빨리 잘 뿌리고 눈 빨리 치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바닥에 열선을 잘 깔아놨나 봐 그러니까 이렇게 눈이 빨리 잘 채워졌지”라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그 말이 너무 우스워서 “무슨 열선이야? 빨리 영화칼슘으로 잘 치웠겠지”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지난주 목장에서 나눔을 했더니 목원들이 바로 그 나눔을 듣자마자 챗-GPT를 통해 찾아봤어요. 삿포로 지역에 열선이 있나 없나 막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삿포로 지역은 눈이 워낙 많이 와서 수십 년 전부터 바닥에 열선이 있었대요. 목원들이 “봐라! 봐라! 봐라! 이 열선있다”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당장 아들한테 사과하라”고 막 얘기한 거예요. 어떤 젊은 신혼부부 집사님은 “아들한테 목자님이 사과하지 않으면 저는 나눔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한 거예요. “당장 약속하세요!” 그렇게까지 얘기하니까 “사과하겠습니다.” 근데 또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뭐 이것까지 내가 사과까지 해야 될 일인가’라면서 막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을 불러놓고 “아들아 아빠가 너무 아빠 생각만 했어. 열선이 있는 거 맞대.” 그런 사과를 이제 했답니다. 아들도 듣다가 “뭐 사과까지 할 일은 아닌데 사과까지 하세요?” 이렇게 하면서 위로를 해줬는데 “자기가 참 이렇게 듣기를 거절하는 사람인데 목장에서 이렇게 단호하게 나서서 얘기를 해주니 약속도 하게 되고 결국 적용까지 하게 되었다. 참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다”라는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들어야 될 비명이고, 일상에서 들어야 될 회개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비명이 안 들리는 거예요. “엄마, 나 안 가고 싶어. 엄마, 나 힘들어.” 이게 안 들리고 “왜 뭐가 힘들어? 해야지!!” 그 비명이 우리가 안 들리는 거죠. 우리 안에 그 북소리가-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의 북소리가- 너무 커서. 근데 이걸 우리가 듣는 게 참 적용이고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회개를 해야 되는 것 같은데. 이 목장을 통해서 우리가 5가지의 회개를 하도록 우리 목원들이 그렇게 계속 비명을 질러줘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적용 질문드릴게요.
Q. 내가 자랑하고 있는 마르지 않는 골짜기는 무엇인가요?
Q. 세상의 북소리에 듣지 못했던 가족의 비명은 무엇인가요?
Q.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비명만 지르고 소리만 지릅니까? 아니면 회개의 적용을 하고 있나요?
아멘. 여러분 예레미야 말씀 지금 다 잘 따라오고 계시죠? 예레미야의 말씀 잘 들리고 계시죠? 예레미야의 말씀이 참 너무 힘들어요. 저도 힘들어 저도 요즘에 이 이 살에 점령당해서...^^;; 제가 양복이 100 사이즈 양복도 있고, 또 좀 찌면 105 사이즈 양복도 있고, 제가 좀 많이 쪘을 때는 115짜리 양복이 있거든요. 이거 또 110짜리는 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또 115는 너무 크고 또 105는 안 들어가니까 또 제가 또 가서 하나 샀지 않습니까?ㅎㅎㅎ 살에 또 점령당해서 그러니까 참 이게 예레미야 저도 힘들게 가고 있는데.
그런데 오늘 말씀의 세 번째 그날이 뭐가 있다고요?
3. 그 날은 그러나 긍휼을 베푸시는 날입니다(5-6절).
그러나 긍휼을 베푸시는 날이 있다고 하십니다. 5-6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5.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
6.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절에 예레미야가 이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모든 걸 동원해서 암몬이 당할 심판을 예언합니다. 얼마나 처참한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암몬이 이렇게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에 이스라엘은 듣고 좋아해야 할까요? ‘아! 그렇게 원수였던 암몬이 심판을 받는다니!!’ 하며 좋아해야 할까요? 예전에 암몬은 남유다의 멸망 소식에 “좋다”라고 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게 에스겔 25장 3절에 나오는데요.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암모는 남유다의 멸망을 “아하 좋다”라고 한 것을 하나님이 기억해 두셨죠. 그러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5절에 이 심판의 말씀을 듣고 이 지긋지긋한 관계도 정리가 되니 기뻐하는 게 당연할까요? “하나님이 내 원수를 정말 갚아주셨구나!”라고 하면서 좋아하라고 이 예언을 주신 걸까요? 그게 아니죠. 철천지원수가 된 두 형제가 서로가 망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면, 서로가 안 되는 것을 오히려 “아하 좋다” 하고 있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애가 타고 마음이 들끓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죠. 하나님의 말씀을 지지리도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도, 또 그 백성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도구로 쓰실 수밖에 없는 암몬도 모두가 다 돌이켜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진짜 진심과 본심입니다. 그런데 이걸 아는 사람이 없어요.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자녀도 내가 당한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고 자꾸 그러면 속상하죠. 그렇다고 부모가 자녀를 버리진 않잖아요. 그래도 힘들지만 사랑을 계속 주려고 하잖아요. “네가 내 마음을 몰라주니 나 더 이상 너 사랑 안 할 거야” 그러지 않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또 없어도, 하나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또 없어도... 예레미야를 통하여서 또 계속 말씀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알아듣고 또 회개하고 또 전할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암몬 입장에서는요. 망해도 할 말이 없는 죄인입니다. 암몬이 이스라엘의 형제이긴 하지만 하나님을 섬긴 적도 없고, 끝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 숭배를 계속 자행했어요. 다 망하고 끊어져도 그런 심판을 당해도 암몬은 할 말이 없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런 암몬이라도 주님께서 ‘그러나’라고 말씀하세요. 6절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겠다.”
“돌아오길 바래. 돌아오기를 내가 바란다.” 이게 아니고요. “내가 직접 나서서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까지 하실까요? 4절을 우리가 아까 읽었는데요. 4절에 암몬에 대한 심판 말씀을 하시면서 “암몬! 이스라엘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렇게 괴롭힌 암몬! 너는 저주받은 족속이야!” 하지 않고 “딸”이라고 부르세요. 딸! 하나님이 롯의 후손인 딸로 그 마음에 인정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진짜 마음이에요. 그런데 어떤 딸이라고 하세요? ‘패역한 딸’이라고 합니다. 이 패역하다는 말이요. 오늘 6절에 나오는 ‘돌아오게 하다, 돌아오다’라는 이 [슈브]라는 이 단어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4절과 6절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이런 거예요. “그렇게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고 그렇게 수고한 암만아, 네가 돌아와야 되는데...... 나를 등지고 멀리멀리 떠난 떠난 나의 딸이다.”
하나님께 등을 진 암몬의 운명이 딸의 신분을 빼앗기고 돌아오지 않으니 결국에는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돼버린 거죠. 우리의 삶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사실 다 망해도 할 말 없는 인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딸, 자녀’라고 불러주시는 본심이 있으세요? 그런데 우리가 자꾸 등 돌려 떠나려고 하니 하나님이 포로로 사로잡히게 하실 수밖에 없는 사건을 주시는 겁니다. 또 그러다가 그렇게 놔둘 수 없으니 -끌려가다 망하게 둘 수 없으니- 또 돌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와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겁니다. 어떻게요?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작은 점으로 예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완전히 망해도 할 말 없고 심판받아 다 끝나도 할 말 없는 인생인데 하나님이 직접 나를 찾아오시면서 나는 아버지라 부른 적도 없는데 먼저 자녀라 부르시면서 나를 돌아오겠다고 예수님이 그렇게 우리를 찾아 오신 거죠.
한 권찰님이 이런 나눔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자녀랑 키우는 데 너무 힘든 거예요.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여기저기 막 찾다가 이혼녀들의 인터넷 카페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고, 그곳에서 자기 딸이랑 나이가 똑같은 딸을 가진 어떤 엄마를 만났는데 얘기도 잘 통하고 이러니까 친해지게 됐다는 거예요. 이 친구가 자기를 항상 인도하는 곳이 있었는데... 이분은 평생 모범생으로 살았다는 거예요. 근데 이 친구가 자기를 인도해 준 곳이 있었으니 토요일에는 나이트를 데리고 갔다는 거예요. 자기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이혼하고 처음 나이트를 갔어요. 이 친구가 또 권하는 것이 있었으니 술을 그렇게 계속 권했대요. 토요일 밤새 술을 마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가 그다음 날 일요일날 나를 데리고 가는 곳이 있었으니 우리들교회를 데리고 갔다는 거예요. 정말 이분이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정말 육과 영으로 모두 채워준 친구였습니다.” 근데 이 권찰님이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이 들린 거예요. 그러면서 진짜 생각지도 못한 남편과 재결합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간증해 주신 분도 계신데. 자기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재결합을 하게 되는 은혜를 누렸다는 거예요.
이분이 정말 패역한 딸이잖아요. 등지고 돌아가는 토요일에는 패역한 딸인데 또 주일에는 돌아온 딸이 되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참 우리들교회를 오는 것도 내가 온 것 같지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찾아와 주신 것 같아요. 내가 목장에 들어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내가 말씀을 들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씀이 들리도록 강권적으로 찾아오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내가 암몬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도 암몬이고 우리 모두 암몬입니다. 그래서 누가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망했다는 얘기에 우리가 하하 웃을 수 있겠습니까? 나도 똑같은 암몬이니까.
적용 질문드리겠습니다.
Q.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그 자리에서 ‘그러나’라는 말씀이 들리나요?
Q. ‘그러나’가 너무 불편하게 들리나요? 은혜로 들리나요?
Q. 돌아오라는데 자꾸 도망가는 곳은 어디인가요? 그러나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예레미야가 이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선지자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는데 또 ‘그러나’ 그 앞문을 돌아오게 하겠다는 주님의 강한 마음이 예레미야에게 있었을 텐데 예레미야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돌아가게 해달라고.
저도 이 말씀을 어제 이렇게 찬찬히 보면서 참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그날이 임한 우리 청년이 다급하게 기도 요청을 했었습니다. “도박 빚은 수천만 원, 알바를 해보려다 또 사기를 당한 빚이 수천만 원 그걸 또 스스로 해결해 보려다가 알바인 줄 알고 또 그렇게 가다가 그게 문제가 되어 경찰 조사까지 받게 되어 혹 감옥까지 가게 될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두렵고 너무 앞이 캄캄합니다. 안 물어보고 시작한 것이 이렇게 심각한 사건에 휘말리게 될 줄은 또 몰랐습니다. 정말 제 애굽 같은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평소에 이렇게 기도 부탁하지 않는 친구인데 정말 이렇게 공개적으로 기도 부탁을 하는 것을 보고 돌아오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날 주님께서 점령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날 의지하던 자랑이 무너진다고도 하십니다. 그러나 무너지지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도 하십니다.
그 한 분이 계시다면 지금 당한 그날이 멸망의 날이 아니라 ‘그러나’ 은혜를 베푸시는 날이라고 하시니 그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떠오르는 분이 있다면 그 한 분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하는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 맘 속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음 속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음 속에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 내게 먼저 오사 내 맘을 만지고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없을 때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없을 때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없을 때
주님 날 먼저 안으시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내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모든 걸 덮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안아주시는
내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 부르죠♬
기도제목
우리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날이 이른다고 합니다. 주님이 점령하신다고 하십니다. 의지하던 자랑이 무너진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긍휼을 베푸며 돌아가게 하신다고 합니다.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자가, 먼저 다가올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주님이 다가오신다고 하십니다. 주님, 나에게 다가와 주시옵소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라고 이 시간 주님 한 번 부르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도 딸이 죽고 싶다는 생각에 점령당하고 불안과 우울의 마음에 점령당할 때, 제 마음도 힘들고 괴로운 마음으로 점령당했습니다. 해석도 안 되고 “주여 어찌합니까? 어찌합니까?” 이렇게 하다가 말씀을 보니 딸을 가이사에게 바칠 만한 딸로 키우고 싶어 하는 제 속의 몰렉 우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늘 시민권! 하늘의 시민권! 이것보다 귀한 것이 없고, 인생이 짧고 점으로 왔다 가는 인생 우리가 하늘 시민권을 가진 것이 다 가진 것인데 “그것보다 세상 시민권이 더 좋다” 이런 마음이 있어 주님이 딱 그날 말씀으로 그 사건으로 저에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주여, 우리 모두가 몰렉에게 자녀를 바치고 가족을 바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과 생각이 세상에 점령당하지 아니하고 주의 말씀에 점령당하는 인생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세상 것으로 자랑하면 수치 받는 일밖에 없다고 하시는데, 하나님 아버지 그 자랑이 무너질 때에 천국 복음을 우리가 들었다면 그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우리 인생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다 무너져도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돌아가게 주님이 하신다고 합니다. 주님이 멀리서 “돌아와라~ 돌아와라~”가 아니라 주님이 직접 찾아와 주셔서- 발 벗고 찾아와 주셔서- 주님이 돌아가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작은 점으로 주님이 이 땅에 친히 오셔서 돌아갈 수도 없고 쳐다볼 수도 없는 우리를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해 주셨는데, 하나님 우리가 망한 인생이었는데 그 은혜를 입은 자로서 그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주시옵시고, 하나님이 또 우리 가운데 이런 말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나 돌아가게 하겠다는 말씀이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네 앞에 있는 그 한 사람에게 네 영광을 버리고 나처럼 작은 점이 되어 그냥 다가가서 그 사람을 한 번 안아주고, 손잡아 주고, 기도해 주고,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얘기해 줄 수 없겠니?”라고 주님이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레미야가 그렇게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예레미야는 그 하나님의 본심과 진심을 알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면서 끝까지 전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 우리가 아버지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늘 영광 버리고 점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내 영광 버리고 작은 점으로 찾아가 하나님, 우리가 할 수 있는 회개의 적용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원하시는 것이라 믿사오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절대로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도 포기하지 않았사오니 우리도 포기하지 않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나라 주님이 포기하지 않았사오니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밖에 없다고 외쳤던 민족입니다. 인권이 왕 노릇하며 세상 정치가 왕 노릇하는 이때에 주여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포로로 사로잡히더라도 돌아가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세상의 법에 점령을 당하지 아니하고 주의 말씀의 가치관대로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태아생명보호법이 점령할 수 있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선교사님의 안위와 사역을 붙들어 주시고 돌아오신 담임 목사님의 모든 사역과 결정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고 오늘 마음과 육신이 아파서 이 전에 나온 모든 분들이 있다면 예수의 피 묻은 손으로 완수해 주셔서 모든 질병이 예수의 피 묻은 예수의 이름으로 나음을 입게 도와주시옵소서. 일어나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빈손으로 나오지 아니하고 주님께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나눌 것만 있는 인생이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사업과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관계와 직장과 공부,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성령의 기름을 철철 부어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