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설교
2025.12.07 주일예배 예레미야 44:15~23 하늘의 여왕 (최대규 목사님)
한 강사님이 부부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세미나 후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기 계신분에 혹시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또 할 분이 계신가요? 당황하신 강사님이 한분도 안 계시나요? 물으니까 뒤에 계신 할머니 한분이 손을 드십니다. 그렇죠 너무 좋으시죠? 했더니 그놈이 그놈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별 인생 없다는 담임목사님 말씀이 진리인 것 같습니다.
목회자 세미나에서 제가 이렇게 소개를 합니다. 밥 잘사주는예쁜 6살 누나 만나 행복할 줄 알았는데, 빚갚는 적용하는 최대규목사입니다.
요즘 5쌍중 1쌍이 연상 연하 커플이라고 합니다. 이제 교회오빠가 아니라, 교회누나 전성시대를 함께 열어가자고 합니다. 여성이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의 동역자 부부를 봐도 여성인 브리스길라를 먼저 얘기 합니다. 여성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부부목장도 권찰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성들의 선택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남유다가 망합니다. 애굽으로 가지 말라 했는데, 애굽으로 가 정착을 합니다. 아내들이 먼저 앞장서서 이방신을 섬겼다고 합니다. 이름이 아스다롯입니다. 바알의 아내라 불리는 신입니다. 번식하다는 뜻입니다. 다산, 풍요, 쾌락 의 이름으로 불려진 신입니다.
요즘 시대에 번식이라 하면 번영과 성공입니다. 그들이 하늘의 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요즘 하늘의 여왕은 무엇일까요? 남편,자녀 성공을 목적으로 둔 여인에게는 이 하늘의 여왕이 거절하기 어려운 우상이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외모와 돈이 중요합니다. 외모의 여왕, 돈의 여왕이 하늘의 여왕일까요? 자녀가 있으면 입시의 여왕을 쫓을까요? 하나님을 믿지만 마음에 만족이 없으니 자꾸 여왕을 쫓습니다.
21절에 하나님은 이를 하나도 잊지 않고 있다 하시고, 22절에는 악행이고 가증한 행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것을 끊지 못합니다. 내가 끊지 못하는 하늘의 여왕의 실체는?
1.하늘의 여왕은 듣기를 거절하게 합니다.
15~16절
예레미야 앞에 모든 백성이 큰 무리로 앞에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언급하며 여인들을 먼저 말합니다. 남자 중심의 유대 사회에서 여인들을 먼저 언급할까요? 이 여인들이 공동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질서를 말할 때,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합니다. 여자는 무엇일까요? 목이 돌아야 머리가 돕니다. 남자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라도 듣지 않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42장만 해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음을 하는데, 이제는 듣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국경이 아닌 깊은 내륙지방입니다. 그들은 국경에서 멀어질 수 록 바벨론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우상숭배의 중심지 입니다. 이곳에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합니다. 그러니 들어가기 더 쉽습니다.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이미 죄를 짓고 있으면 나도 죄를 짓기 쉽습니다.
이곳에는 우상 신전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룩소르 라는 도시입니다. 당시 남겨진 고대 유적들, 신전의 기둥들, 벽화들 지금봐도, 사진으로 만 봐도 그 위용이 어마어마 합니다.
당시 남유다 사람들이 황폐해진 남유다를 뒤로하고 화려한 이곳에 왔을 때, 점점 그들은 그들의 가치관에 녹아들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뎌질 것입니다.
저희아들이 잠실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롯데타워가 잘보이는 곳에 살고 싶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이 판교 옆에 있는 사성동이라는 곳입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는 겸손한 동네입니다. 저희 아들이 그런 동네에 살다가 롯데타워에 가보니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래서 잠실에 사는게 꿈이라고 합니다.
황폐해진 남유다보다 지금 애굽에 가니 내 자녀들이 너무 잘 살것 같아서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왜그렇게 애굽에 가지 말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내가 어디있어야 안전한가 보다 어디 있어야 말씀듣기 적합한가? 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애굽의 눈으로 예레미야를 보니 얼마나 무시가 되었을 가요? 하찮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7절
예레미야 너의 말보다 우리말을 더 믿고 살겠다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나의 판단을 더 믿고 증명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황폐한 가정,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그만 말하세요 내가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 증명할께요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때 마다 많은 예레미야를 두시지만 우리는 귀를 막고 허송세월을 보냅니다.
담임목사님도 저에게 묻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뚱뚱한 사람 설교를 들을 것이 없다고 한 권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살이 좀 쪘습니다.
제가 목자가 처음 되었을 때, 부목자님이 저에게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목사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귀를 막고 듣지 않은 저의 예레미야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은 돌아가신 장인어른입니다.
장인어른은 인생의 풍파를 맞으시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지시고, 자녀들에게는 많은 빚을 남기시고, 부엌 옆 작은 방에 계셨습니다. 식당에 가시면 고성을 지르시거나, 식당 아주머니들과 싸움을 하는 통해 가족들과 외출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보면 참 많은 무시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삶의 결론인데, 너무나 무시가 되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기에 돈이 없는 장인어른의 말을 들을 필요 없다는 완악함이 가득했습니다.
가족들이 자기 얘기를 잘 안들어주니, 저를 불러놓고 한시간씩 얘기를 하셨습니다. 본인이 책에서 본내용들을 말하셨습니다. 속으로 우리 자녀들을 힘들게 하는 아버님인데, 저렇게 말하셔서 모하나 하며 귀를 닫았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겠다 하며 귀를 막은 남유다 사람들처럼 제 마음도 그랬습니다.
못난 아버지 지만 자녀들은 아버지가 아프실때, 기도를 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님이 천국에 가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전했지만 바램과는 달리 생명인 것은 믿지 못하겠다 했습니다. 일평생 오마니를 만나는 것이 소원인데, 천국에 오마니가 없으면 그곳에 갈 필요가 없다 하셨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애통보다는 그냥 좀 믿으시지 이마저 힘들게 한다고 무시의 마음이 더 많았습니다. 무시와 회개를 계속 반복하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를 믿게 될지 몰랐는데, 어머님이 예수 믿고 천국에 계실수도 있지 않습니까? 꼭 천국에 가셔서 어머니를 한번 찾아 보세요 라고 하니 아버님 마음이 열리셔서 복음을 받아 들이셨습니다.
임종전날 가족들이 다 모임 곳에서 아버님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버님 귀에 말씀을 읽어 드리자 아버님이 반응 하셨습니다. 영접하셨습니다. 그렇게 가족들과 마지막 한마디씩 인사를 끝내시고, 30분뒤 소천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듣기 거절한 남유다의 모습이 제 모습임이 생각 났습니다. 저는 아버님 말을 듣는 척만 했습니다.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제가 사위라고 목사라고, 제 말을 진심으로 받아주시고 ,눈물 흘리시며 천국에 입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실때에 누가 예레미야 일까요?
-내가 꿈꾸는 여왕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신 예레미야는 누구인가요?
-내 말을 증명하려고 헛맹세까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말씀을 듣고 거절하는 나보다 듣고 순종하는 그가 나보다 옳도다가 인정되나요?
2.하늘의 여왕은 본래 하던 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17~18절
그들이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엉뚱한 해석을 합니다. 듣지 않으면 해석이 틀어지고, 해석을 하지 않으면 결론이 틀어지고, 결론이 틀어지면 삶이 틀어집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늘의 우상을 폐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행복을 쫓아 결혼했습니다. 당시 사례비가 적었습니다. 아내가 직장을 다니니 아내에게 기대어 살겠다며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를 내가 책임져야지 라는 마음보다 기대어 살면 편하겠다는 마음에 결혼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꿈꾸는 결혼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수입을 잘 모아서 유학도 가고, 선교도 가고, 뭘 해도 되겠다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사명보다는 제 개인적인 계획 같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빚이 있는 건 알았지만 캐도캐도 빚이 나왔습니다. 목사님 주례로 성경책에 손을 얹고 결혼했는데, 저의 기대가 무너지니 결혼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유다 사람이 하늘의 우상을 폐하면서 부터 궁핍해 졌다 생각하는 것처럼 저도 결혼을 잘못해서 내 인생이 궁핍해 졌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역도 하고, 설교도 하니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던것 같습니다. 저는 늘 거짓된 포장으로 설교를 한 시절을 보내니, 늘 진실했던 예레미야가 저에게는 버거웠습니다.
우리들교회와서도 힘들었습니다. 처음 들은 말씀이 불신결혼이었습니다. 난 교회에서 했으니 불신결혼이 아니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양육을 받고 하니 하나님이 저에게 불신결혼 한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반을 버릴 생각도 없고, 상대방이 다 맞춰주어여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엉뚱하게 제 삶을 해석했습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해석을 잘못한 것입니다. 실제는 우상숭배를 할 때, 그들이 잘 산 것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하늘의 우상을 폐한 때는 요시아 왕이 산당을 폐한 때입니다. 요시아 왕이 잘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도 하나님의 말을 어겨서 죽습니다. 하지만 남유다 사람들은 하늘의 여왕을 폐해기 때문에 죽었다 생각합니다.
기억에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게 됩니다. 한 두 사람은 그럴 수 있는데, 어떻게 집단이 기억을 왜곡하나요?
집단이 기억을 공유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델라 효과라는 말이 있는데, 만델라 대통령이 병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는 말에 만델라는 투옥하다 죽은 것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합니다. 당시 뉴스로 인해 만델라 대통령이 투옥하다 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기옥했다는 것입니다.
기억보다는 기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은혜 받은 것들이 많은데,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남유다 사람들이 그때가 좋았지 하는데, 우상숭배 하던 때밖에 기억이 안나는 것입니다. 우리 왕들이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한 기억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여러 중독들을 생각하면 참 지긋지긋 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베어져 있다는 것에 놀랍니다.
생각은 의식의 영역인데, 말은 무의식의 영역이라 합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이 내 안에 베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돌아가려는 것을 끊어내고 새롭게 돌아가려 하는것입니다. 편법을 버리고, 원칙을 지키려 하는것입니다.
저도 자녀 양육이 너무 힘듭니다. 내가 너무 혈기가 나고, 사람이 싫어질때, 내 본래 성질대로라면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갔을 그자리가 아닌 하나님께 가는 것 이것이 자녀 양육이라 생각합니다.
본래가 아니라, 이제가 되는 것 이것을 자녀들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죄를 숭배합니다. 잘 먹고 잘 살고자 온갖것을 분향합니다. 내가 원하는것을 얻고자 숭배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는 죄사함이 있고, 죄사함에는 회개가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과 거래처럼 드리면 본래 숭배하던 때로 돌아가게 되는 것 입니다.
새가족에 청년들이 많이 옵니다. 그중에는 어릴 때 교회를 잘다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음 깊은 어딘가에 언젠가 교회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들이 문득 문득 들었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모님이 돌아올 자리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청년의 간증입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늘 때렸다고, 안방에 늘 있는 이혼서류를 보았다고, 부모님과 갈등이 극에 달하며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고, 그런데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했다 생각한 본인이 남자친구에게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다고 그런 와중에 부모님이 교회 정착하면서 목자까지 되셨다고 그러면서 대학 졸업하고 취업 때가 되니 돌아왔다고 그런데, 취업이 되니 그때뿐이라고, 내가 열심히 돈 버는데 무슨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 혼전 순결을 왜지켜야 하나? 하면서 또 교회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전화 한통으로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작은 생각까지도 다 아시고, 제 삶을 계획해 가신다는 것이 믿어진다고, 하나님이 내 삶의 작은 부분까지 인도하신다는게 믿어진다고 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참 힘드시지만 자녀에게 돌아올 자리를 믿음으로 잘 준비하셨다 생각합니다.
내가 본래 가야하는 그 자리가 신앙의 자리라면 우리를 굉장히 성공한 부모인줄 믿습니다.
-자꾸 돌아가고 싶은 옛자리는 어디인가요?
-구속사가 아니라 세속사로 해석해 잘못 결론내린 것이 있나요?
-내 자녀가 돌아올 신앙의 자리는 준비되어 있나요?
3.하늘의 여왕은 교묘한 혼합주위로 포장합니다.
19절
우상숭배는 너무나 교묘합니다. 하나님과 우상숭배가 함께 할수 있다고 교묘하게 말합니다. 분향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방 사람들은 신전 창기들과 음란을 행하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이런걸 하라고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부감이 듭니다. 그런데 남유다 사람들이 말한 우상숭배의 분향은 자기 집 지붕위에서 하고, 가족 제단을 만들고 향을 피워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 멋있어 보입니다.
땅에 포도주를 붓습니다. 이렇게 비가 와서 풍족해 질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숭배의 하이라이트는 밀가루로 여신상을 만들고 나눠 먹습니다. 온가족이 한 마음으로 자기일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본질에는 하나님이 없이게 하나님의 분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너무나 교묘합니다. 19절에 보면 여인들이 남편의 허락을 받고 한다고 합니다. 이는 나무라는 예레미야 앞에서 남편이 하라고 하는것이라고 핑계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들은 율법을 가져와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이렇게 한다고 할때, 남편이나 아버지가 승인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데, 여인들은 예레미야에게 남편이나 아버지가 승인했다고 율법을 가져와서 합리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말 한마디 처럼 저 교회다녀요 하는 한마디로 우리의 모든 세상가치관에서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아요?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기복은 항상 우리 가운데 교묘하게 찾아오는 혼합주의 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온갖 우상숭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혼합주의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찾아 옵니다. 재미있으면 힐링이 되면 아무 문제 없다는 세상에 우리가 살아갑니다. 비판적인 수용이 없다면 우리는 영적인 경계선이 무너집니다. 이런것이 우리가 쫓아내야 할 혼합주의 입니다.
제가 유투브에서 법률스님 영상을 봤습니다. 한 여성이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이혼을 했습니다.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사는게 너무 힘듭니다. 제가 어디서부터 잘못했을까요? 스님이 모라 대답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스님의 첫 대답이 왜 잘못했다고 생각하세요? 라고 합니다. 한번도 못한 결혼을 두번이나 했는데, 나아보지 못한 아이를 두명이나 낳았는데 뭐가 잘못됐다는 거에요? 잘 살았다고 생각하며 사세요 라고 합니다.
첫댓글에 교회는 매일 죄를 보라하는데, 불교는 마음을 이렇게 편하게 해주니 내가 불교를 좋아한다 였습니다.
어떻게 해석이 되시나요? 회개 하라보다 잘 살았다가 듣기는 좋지만 나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이 너무나 힘들지만 그것이 나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내 신상에 팔복과 기복은 몇 프로씩 있나요?
-예배드리고 목장에 나가니 이것쯤은 괜찮겠지 하고 있는 타협은 무엇인가요?
-문화와 재미라는 이유로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2.목장모임 장소 및 참석인원
: 카페로쥬 / 총 5명 참석(목자, 부목자, 목원1,2,3)
3.기도제목
A.
1. 가족과 목장식구들 영혼 구원을 위해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2. 신교제와 신결혼 인도해주시도록
3. 커리어에 기름부어 주시도록
4. 루틴을 꾸준히 지키는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5. 가족과 예수 안에서 평안한 시간 보낼 수 있도록
6. 매일 쓰는 큐티 할 수 있도록
B.
1. 건강을 지혜롭게 관리할수 있도록
2. 관계 속에서 지혜와 인내를 주시도록
3.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도록
C.
1. 1차 합격자 발표날까지 마음 편히 기다릴 수 있도록
2. 말씀에 메인 1달을 보낼 수 있도록
3. 중보기도 다시 할 수 있도록
D.
1. 예수님의 인내심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닮아갈 수 있는 한 주가 되도록.
E.
1. 신교제, 신결혼.
2. 새로운 일 잘 풀리길.
3.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