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30.(주일) 시편 60:1-12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이기성 목사님(뉴저지 가스펠미션교회)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 인도자를 따라 수산에둣에 맞춘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
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2.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나이다
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셀라)
5.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지체들 가운데 삶의 예기치 못한 고난과 환난으로 인해 길이 보이지 않는 광야나 어둠으로 덮여진 막막한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가정이나 지체가 있습니까?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짐 같을 때에 하나님께서 손을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응답해 주시는 이 하나님이 오늘 주신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서로 이렇게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큐티하셨습니까?
할렐루야 다시 한 번 재소개합니다. 저는 미국 뉴저지 가스펠미션(GMC) 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기성 목사입니다.
오늘 이 복된 주일 이곳 판교뿐만이 아니라 휘문 그리고 대구, 광주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모든 성도님들 진심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저만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우리 김양재 목사님과 우리들교회에 10년 전에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고 그 후속으로 이제 띵크 양육을 10주 받아야 하는데 그때 제가 교회를 10주 동안 비고 양육을 받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김양재 목사님과 두 부목사님께서 저희 북미주 이제 띵크 양육을 인도하시고자 오셨을 때 저한테 “한 번 목사님 이번에 띵크 양육을 받으시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제가 “목사님 10주는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아! 목사님, 이제 5주로 줄였습니다.” 그 말씀을 하셔서 저는 실상 시간도 시간이지만 저희 교회에서도 지금 양육하고 있는데 이 과제물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서 이 10주 과제물이 5주로 줄었다는 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 제가 이번에 우리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허락을 받고 이렇게 이번에 양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면서 알게 된 것인데 시간은 10주에서 5주로 줄었지만, 과제물은 여전히 10주 분량을 다 하신다는 이 소식을 듣고 약간의 좀 마음에 흔들림이 있었지만... 지금 계속해서 ... 특히 목회자들이 한 그룹이 되어서 지금 이효숙 우리 평원지기님께서 인도해 주시는데 매 주마다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시간이고, 또 함께 이렇게 말씀을 훈련받고 있는 우리 목사님들 또 선교사님도 계십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또 이번에 보니까 저희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번 띵크 양육을 받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모든 분들을 위해 - 양육을 소개해 주시는 분들과 또 특별히 특별히! 특별히! 매주 월요일마다 우리 양육받으신 분들의 점심을 이렇게 정성스레 맛있게 준비해 주시는 우리들교회 주방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큰 박수! 할렐루야! 저는요, 먹음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다시 한번 우리 수고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양육을 이제 받기 위해서 왔는데 우리 김양재 목사님과 또 여러 우리 부 목사님들 또 우리 성도님들께서 얼마나 환대를 해주시는지 제가 다시 미국 돌아가서 시차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대접을 받고 갔으니 이걸 어떻게 내가 이제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 성도님들도 잘 섬겨주십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정말 우리들교회 여러분들이 우리 목사님과 또 우리 부목사님들께서 환대해 주셔서 너무나 귀한 시간을 지내고 내일 마지막 다섯 번째 양육을 받고 이제 수요일 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저를 공항에서 이렇게 이제 배웅해 주시고자 나오신 우리 목사님 부목사님 두 분을 제가 이제 처음 뵙습니다. 이제 카톡으로 물론 연락을 몇 번 했지만 처음 직접 뵙고 그다음 인사를 잠깐 나눈 후에 이제 차를 타고 오면서 제가 두 목사님께 제가 소개를 좀 부탁드렸어요.
그랬더니 두 목사님께서 첫마디가 “나의 죄패...”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익숙하지만 아 속으로 ‘역시 대단하시다 참 훈련이 잘 돼 계시다.’ 그래서 저도 한번 해보려고요.
제 죄패는 겸손으로 포장된 교만 그리고 온실 재배해서 자란 잡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거의 모든 남편들과 또 특별히 목회자들이 늘 힘들어하는 죄패가 있는데 저도 그 죄패가 있습니다. 바로 인정 중독입니다.
오늘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 말씀은 시편 60편 말씀입니다.
“구원하소서 응답하소서”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 내가 아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임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물론 물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과 우리 각자가 생각한 이 구원의 모습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하심이 이렇게 나타나 주시옵소서”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과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시는 이 구원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께 내 기도를 응답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정말 성도님들이 지금도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그 주님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시편 60편의 표제를 보시면은요. 오늘 이 말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 인도자를 따라 수산에둣에 맞춘 노래, 다윗이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우는 중에 요압이 돌아와 에돔을 소금 골짜기에서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전쟁에 대한 내용은 사무엘하 8장 말씀과 역대 18장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요약한다면 다윗이 에돔과의 전쟁의 시작은 패배할 위기에 처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게 하시는 그 내용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고 그의 기도를 응답하신 그 내용을 기록한 것이 시편 60편 말씀입니다.
오늘 이 본문 표절에 기록된 내용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보면서 이와 연관된 몇 가지 내용을 같이 묵상기를 원하는데, 이 시편 말씀은 다윗이 무엇을 교훈하기 위하여 지은 믹담이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새벽 예배의 말씀을 전해주신 장로님께서 언급해 주셨는데, 이 전체 시편에 이 150편의 시편에 다윗이 지은 이 믹담이란 표제로 소개된 시는 6편입니다. 16편, 56편, 57편, 58편, 59편 그룹을 묵상하는 시편 60편 말씀입니다. 이 시편들의 공통적인 주제가 있습니다. 다윗이 환난 가운데 고난 가운데에 기록한 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믹담’의 원어의 뜻은 ‘마음판에 새기다’라는 뜻입니다. 삶의 위기와 환난 가운데에 그의 마음에 새겨진 그 내용을 다윗이 기록한 것이 바로 시편 60편 말씀입니다.
제가 말씀을 계속 나누기 전에 한 가지 질문으로 성도님들께 나누길 원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내 삶에 위기와 고난이 왔을 때에 내 마음에 지금 무엇을 새기고 계십니까? 고난 지난 후가 아닌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아마 여기 계 성도님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예상치 못하고 예기치 못한 환난이 그 가정 가운데 임하신 분들이 계신 줄 압니다. 바로 이때에 지금 내 마음에 무엇이 새겨지고 있는가.
우리가 최근 사도행전 말씀을 같이 묵상했습니다. 그 사도행전 말씀에 보시면, 그 믿음의 여정,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가는 그 사울의 모습 보면서 그가 잃지 않고, 빼앗기지 않고, 또 지키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실상 결국은 그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고, 지키지 못하는 이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좀 더 이 내용을 좀 더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킬 수 있는 것보다 지킬 수 없는 것이 대다수입니다. 내가 나의 물질을 지키려 하고, 내 건강을 지키려고, 내 가족을 지키려 하고, 나 자신을 지키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상실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서 4장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무엇을 지키라? “너의 마음을 지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어디서 나옵니까?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우리 지키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있어요. 내가 아무리 수고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두려움, 염려, 근심 가운데 사는 이유는 뭐냐 하면, 내가 지키고자 하지만 결국 지키지 못하는 나의 가정, 나의 자녀, 내 자신, 내 건강 내 물질, 내 신앙마저도 결국 지키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좌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지킬 수 없는 많은 것들 중에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라고 말씀하세요. 바로 “너의 마음이라.” 다 같이 “나의 마음을 지키자.” 물론 내 마음도 내가 지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잠언 말씀을 통하여 내 마음을 지키라 하시니 이것은 명령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이 뜻은 뭐냐 하면 우리의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왜 마음을 지켜야 하냐면 우리 성도들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왜 결국 우리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가?
왜 결국 내 건강과 내 신앙이 무너지고 있는가?
왜 나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을 보시면은요. 그 시작은 어디에 있냐 하면 “내 마음을 지키고 vs. 지키지 못함에 있다”는 것을 아마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아까 ‘다윗이 교훈을 위해 기록한 믹담’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믹담’이라는 뜻은 뭐예요? “마음 판에 새기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를 놓치지 마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다윗이 이 교훈의 말씀을 주시면서 이 말씀은 고난 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마음 판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 판에 쓰여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쓰여진 것은 쉽게 지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겨진 것은 쉽게 지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왜 이 고난 가운데에 그 마음 판에 무엇이 새겨짐을 우리가 경계하는가 하는 것은 뭐냐면, 한 번 새겨진 것은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새겨진 것 그래서 고난 가운데 원망, 불평, 불만, 불신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새겨졌을 때 그러한 것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늘 이 시간 내 마음 판에 무엇이 새겨지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왜 경계하는가? 만약에 부정적인 마음 부정적인 생각이 내 생각을 스친다면, 그러한 스쳐가는 생각을 우리가 사로잡지 아니하고 그 생각을 그냥 떠나가게.... 머무르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떠나가도록... 근데 우리들은 그러한 생각이 오고 갈 때마다 얼마나 하루를 살아가며.... 지금 이 시간에도 지금 성도님들 가운데 여러 생각이 지금 오고 가시죠? 그러면서 지나가는 생각은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세요. 냅 두세요. 그런데 왜 그 생각을 사로잡아 그 생각을 묵상하고 되풀이하고... 그게 결국 뭡니까? 그 생각에 마무름으로 말미암아 왜 그 생각을 그 마음에 새김을 허락하십니까?
한 가정의 간증인데 그 가정의 아내가 좀 마음이 연약하시고, 좀 비위가 약하십니다. 그런데 남편이 집을 들어올 때마다 양말을 그냥 벗어다가 그것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여기저기에... 그리고 넥타이도, 셔츠도, 바지도 벗어서 여기저기에...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서 현관 들어오면서 방까지 갈 때 보면은요. 입은 옷, 양말들이 그냥 너저분하게 바닥에 있는 거예요. 근데 이 자매님이 비위가 좀 약하기 때문에 늘 그 양말을 집어다가 빨래통에 넣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죠.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데 그 남편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도 똑같은 일을 한 대요. 그 아빠를 닮아서. 그래서 이 아내가 어떤 생각 했냐면 ‘아! 이 빨래통을 여기저기 두면 좋겠다!’ 해서 현관 앞에도 (빨래통을) 두고~ 또 응접실에도 두고~ 이제 방에도 뒀더니 더 문제라. 이유는 뭐냐 하면, 빨래통에는 빨래가 안 들어가고 여기저기에 그냥 빨래가 널려 있는 것이에요. 아무리 남편한테 내가 좀 비위가 약해서 당신이 양말 벗고 뒤집어 놓은 거를 그거를 다시 빼서 빨래통에 넣는 게 힘드니까 그것만 좀 넣어달라고 아이들한테도 마찬가지고. 근데 안 듣습니다.
하루는 너무 낙심되는 마음으로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그날 남편이 딱 들어오더니 빨래통에 양말을 벗어서 그걸 딱 빨래통에 던진 거예요. 근데 그것이 그날 하필!! 바로 빨래통에 들어갔어요! 들어갔습니다!
바로 그때! 이 아내가 그 남편에 대해 한 말! 여러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근데 그때 그를 사로잡은 생각은 뭐였냐면 “아! 당신 대단하다고! 어떻게 그 빨래통에 양말을 넣을 수 있었냐고!” 이 한마디가 그 남편에게 그다음 날 변화를 주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여전히 빨래통에 빨래를 던지지만 그 빨래통에 빨래가 들어갈 때까지! 집어다가 던지고~ 집어다가 던지고~ 그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죠.
성도님들, 이런 생각이 늘 매일마다 그 남편에 대한 아내에 대한 불만 불평, 자녀에 대한 불만 불평이 지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지혜의 말씀을 붙잡는다면 그 한마디 “우리 남편! 대단하십니다! 당신 대단하다!”고.
김양재 목사님도 예쁜 여자가 지나갈 때 그 여자를 바라보는 그 남편에게 그 아내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화내지 말고 뭐라 말해요? “당신 참 건강하다!” 이것이 가정을 살리는 길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을 가지고 제가 성도님들과 함께 이 삶의 고난과 환난의 위기가 왔을 때, 오늘 또 새로 나온 책<위기! 입니다>도 소개해 주셨는데 너무나 정말 필요하고 우리가 꼭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고난과 환난의 위기가 우리를 찾아왔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응답하심을 기회로 누리고자 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이 ‘위기’라는 이 단어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위험과 기회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 고난으로 말미암은 이 위기가 왔을 때는요.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꼭 위험의 길을 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회의 길을 주님께서 예배해 주셨습니다.
근데 왜 그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는 것은 오늘 이 본문 말씀에 기록된 이 세 가지의 진리를 우리가 마음에 새겨 살아가야 하는데 그 진리 새기지 못함에 있다라는 것이죠.
위기를 기회로 삼고자 한다면 그 마음에 무엇을 새겨야 하냐면,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주를 경외하는 자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고 구원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1-5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주님께서 찾는 자’라고 말씀하세요.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주님께서 찾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우리들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영혼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지금 나를 찾고 계신다! 왜? 나는 세상을 두려워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한 자이기 때문에! 그러한 자들을 주님께서 (다 같이) 건지시고! 구원하시고! 응답하신다!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오늘 에돔과의 전쟁에서 패배 위기를 접한 다윗이 그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1절 말씀에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다’
2절 말씀에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시고 땅이 흔들리게 하셨다.’
3절 말씀에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틀거리게 하는 포도주를 우리에게 마시게 하셨다’라고 그가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한 고난과 환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첫 번째 진리는 뭐냐 하면, 이 모든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이에요.
1절 2절 3절에 보면은요. 그 시작이 ‘주께서~ 주께서~ 주께서~’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고난은 절대 우연이 없습니다! 왜? 모든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에! 이 한 가지의 말씀만 오늘 이 시간 마음에 새긴다면,
내 인생에는 우연이 없다!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가운데 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모든 역사를 다스리고 통치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저는 저와 성도님들이 우리 가정의 모든 영역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주님께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
두 번째로 다윗이 1절 말씀을 보니까 이러한 고난을 고백하며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고 흩으시고 분노하셨다”라고 말하지만 1절의 끝부분에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거기에 한 가지 단어를 넣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 “지금”이라는 단어입니다. 지금! 언제요? 지금!
성도님들께서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거듭났다는 것이 어떤 분들은 모태신앙, 어떤 분들은 30년 40년 20년 전에, 어떤 분들은 아마도 어제, 어떤 분들이 이 시간에 아직 예수를 알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근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과거에만 역사하신 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20년 전에 30년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만일 누가 우리들에게 오늘! 지금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오늘의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께서 ‘오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영어로 ‘과거’는 past[패스트], ‘미래’는 future[퓨쳐], 그리고 ‘지금(현재)’은 present[프레젠트]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오늘 하루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present)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그 선물을 주님께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선물을 우리가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살기 원하시겠습니까?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선물로 준 하루를 무엇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심에 역사를 이루고자!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살리셨습니다”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 고난 가운데에 우리 마음에 새겨져야 할 하나님의 진리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위기, 오늘 하루의 위기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다윗이 하나님이 회복하시면 어떻게 증가하냐면, 4-5절 말씀에 보면 ‘주를 경외하는 자 주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신다.’ 이 깃발은 승리의 깃발입니다. 이 깃발을 진리를 위하여 거짓이 아닌 진리의 깃발이라고 말씀하세요. 우리가 세상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은 거짓이 난무한데 우리의 삶에 우리 가정에 거짓으로 난무한 이 세상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리를 알 때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그 진리를 승리의 깃발로 세우시겠다라고 말씀하시고,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 능력의 손으로 구원하시겠다라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믹담- 내 마음에 지금 무엇이 새겨지고 있는지- 꼭 기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교회를 분열시킨 죄인입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에 제가 속한 미국 교단 감독님이 저를 사무실로 부르셨습니다. 그때 연합감리교회가 동성애 문제로 인해서 많이 어려웠습니다. 동성애를 찬성할 것인지 아니면 반대할 것인지. 지금 우리나라가 차별금지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미 그때를 지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이제 동성애자를 안수하고, 동성애 결혼을 허락하고. 그리고 이 동성애에 대해서 이제 포용해야 한다. 우리는 이해하고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영접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동성애자가 사랑의 대상이고 구원의 대상이죠. 그러나 가정의 질서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기는 것은 이것은 바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라고 여겨져서 저희 교회도 그때 당시 ‘우리가 과연 교회를 탈퇴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 바른 복음을 위해서는 절대 여기 머물 수 없다.’는 생각에 그런 말씀을 성도님과 나누고 기도 제목을 나눴더니 아마 그것이 감독님 귀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를 이제 부르시고. 감독님은 계속 한인 이민 교회가 잘 머물러서 계속 교회 성장을 돕고자 하였는데 저는 그것이 전혀 용납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로 인해서 불림을 당하고, 불림을 당한 그날 제가 정직을 당하고 파면을 당했습니다. 그 목사 안수증도 그날 반납해야 했고, 이제 교회 건물을 출입하는 것도 당일 통제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허락된 것은 사무행정 시간이 끝난 후 아무도 교회에 없을 때에 제 사무실에 가서 짐을 정리하고 그날로 교회를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코로나 기간이었기 때문에 성도님들에게 접촉하거나 모으거나 또 연락하는 것도 모두 통제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전임 목사님께서 30년 동안 안정적으로 성장했던 이 교회에 큰 진동이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 성도님들 가운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는 위기적 상황이 오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 하나님의 교회에 화평이 있는 것이 큰 축복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미국 UMC 규정에는 각 교회 목회자를 파송하는 것, 그 목회자를 세우는 것과 그다음에 그 목회자를 정직하거나 파면하는 것은 전적인 감독님의 권한에 있습니다. 그래서 파면을 당하고 정직을 당하고 라이센스를 반납해야 했던 제가 지금 이 사건을 좀 중재하고자 그때 그 미국 UNC 안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으신 한인 선배 목사님을 찾아뵙고 제가 그 목사님께 말씀드려서 “목사님, 지금 교회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좀 감독님을 찾아뵙고 이 사건을 중재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은 “이 목사님이 죽어야지만이 교회가 삽니다.”였습니다. 바로 교회를 조용히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제자의 삶이요, 또한 주님을 섬기는 종의 삶임을 저도 알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도님들께 많이 설교했지만 막상 저보고 죽으라 하시는 이 말씀이 너무나 섭섭하기도 했고 가장 처음 제 마음에 든 생각은 ‘왜 내가 죽어야 해?!’라는 분노였습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는가’ 만약 이 감독님께서 결정하신 사건이 나의 실수나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은 결과였다면 제 실책을 인정하고 떠날 수 있었겠지만 이것은 불의한 처사로 당한 사건이라 믿었기에 전적으로 제가 ‘속은 자’라는 이 분노가 앞섰고 정의와 공의가 실현됨을 위해 올바른 표명을 해야겠다라는 그 마음이 더 앞섰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왜 외도한 남편 앞에 내가 죽어야 합니까?
왜 나를 인정하지 않고 늘 나를 무시하는 아내 앞에 왜 내가 죽어야 합니까?
부모 된 우리가 자녀 앞에 죽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죽어야 가정에 산다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죽어야 나의 목장에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더라고요. “인간에게는 살 권리가 있다.” 예, 저 그거 믿습니다. 낙태법을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는 살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여하신 권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인간에게는 또 죽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의 혈기, 나의 분노, 나의 욕심, 나의 탐심, 나의 자존심, 그리고 제가 늘 싸우고 있는 우리 형님. 제 이름이 ‘이기성’입니다. 제 형님은 이기심. ^^ (아, 우리 성도님들은 센스가 참 그래도 어느 정도 썰렁한 조크가 될까 봐 제가 되게 두려워했는데 아재 조크라고 그러죠. 예 혹시 형님 만나셨습니까?) 저는 이것이 제일 제 삶 속에 힘든 부분이에요. 이기적인 마음을 왜 그렇게 내려놓지 못하는지, 조금만 나의 이기심을 건드리면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적용 질문드립니다.
Q. 지금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하는 무엇입니까?
Q. 가정, 목장, 직장에서 나는 죽지 않고,
오히려 내가 죽이려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Q. 내가 죽지 못함은 나의 교만입니까, 아니면 나의 두려움입니까?
삶의 고난의 위기를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응답하심의 기회로 마음에 새기려 한다면,
나를 “목욕통”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6-8절)
오늘 본문 6절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 구별하심으로 말씀하시되’ 이만큼 이 말씀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6. 하나님이 그의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투구요 유다는 나의 규이며
이 말씀에 주님께서 주신 한 가지 메시지는 나의 모든 것이 나의 소유라는 말씀이에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우리가 얼마 전 월요일 묵상한 시편 54편 말씀도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붙들고 계시다 믿으십니까? 나의 생명을 붙들고 계신 분은 우리가 아닙니다. 내가 아닙니다. 나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세요. 우리는 나의 소원은 아무것도 없이 우리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우리 청직의 직분으로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이어지는 8절 말씀에 우리가 꼭 오늘 이 시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8절에 기록합니다.
8. 모압은 나의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나의 신발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로 말미암아 외치라 하셨도다
모압은 나의 무엇이라 목욕통이라고 말씀하세요. 오늘 큐티인 본문 말씀 그 아래 짧은 주석에 보시면 그 도움말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목욕통이라는 것은 이 표현은 종속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며 모압이 이스라엘의 복속됨을 의미하는 것이라. 이 ‘종속’과 ‘복속’ 이 두 단어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저는 이 말씀을 좀 더 확대해서 적용하기 원합니다. 바로 이 ‘목욕통’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되 우리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섬기는 자로 부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당시 이 목욕통은 집으로 들어온 그 문 옆에 바로 옆에 놓여 있어서 가장 낮은 종이 그 집의 주인이나 손님들이 왔을 때 그 발을 씻겨주는 물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겸손한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 목욕통의 십자가의 적용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선배 목사님께서 저보고 “목사가 죽는 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죽기 싫었습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냐고” 하나님 앞에 항의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앞에 서서 교회의 분열과 분리의 조짐이 있었지만 그걸 저는 막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떠나겠다는 성도들을 강권적으로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사울일 때에, 스테반이 그 순교를 당할 때 돌은 던지지 않았지만, 그 돌을 던진 자들의 옷을 맡아준 그 사울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입니다.
우리 사랑 성도님들 혹시 지금 가정에 분열이 있습니까? 지금 섬기고 있는 목장 안에 분열이 있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와 나 자신에 그 마음의 분열이 있으십니까?
이런 분열이 있을 때만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당신만 잘하면 돼! 너희들만 잘하면 돼! 당신만 잘하면 내가 화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고, 너희들만 잘하면 아빠가 왜 화를 내겠니!”라 하면서 나의 배우자들과 우리의 자식들을 우리가 원망하는데,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결국 분열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내가 내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 누구도 나를 화를 만들게 할 수 없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전적인 나의 선택이에요. 결정적으로 화를 내고 내지 않음은 나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제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가 분리되고 함께 나온 성도님들이 3년 동안 힘든 광야의 여정을 지나야 했습니다. 3년 동안 여섯 번 예배 처소를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늘 잘 준비되고 안정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익숙했던 성도님들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장년들이야 날씨가 춥지 않으면 야외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었지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성도님들에게는 이것이 적지 않은 헌신과 결단을 요구했던 때였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기는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교회를 이끄시는 우리 장로님들과 또 성도님들이 제게 한 번도 불평하거나 불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날그날 주시는 큐티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접한 사건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또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게으르지 않고 지금 되돌아보면 정말 저희 교인 한 분 한 분이 하나님 앞에 목욕통으로 쓰인 축복의 시간이었다라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입으로는 “주의 종”이라고 우리가 고백을 하지만 우리는 목욕통으로 쓰임 받기는 원치 않습니다. 내 삶의 그릇이 다른 사람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는 그 물을 담은 그릇으로 심겨지길 원치 않습니다. 지금 저와 성도님들이 내가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목장 식구로서 목원으로서 내가 목욕탕이 된다는 적용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만약 우리 남편들 가운데에... 남편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한 번도 아내의 발을 씻겨준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오늘 적용하시면 좋겠습니다. 집에 가셔서 뜨듯한 물 담아다가 안에 침대 위에 앉히시고 그 앞에 무릎 꿇으시고 그 아내의 발을 씻기는 목욕통 적용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멘 하신 분 한 분도 안 계세요. ^^;; 마음으로 ‘아멘’ 하신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지금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도구로 쓰임 받기 원합니까?
Q. 나의 가족과 나의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목욕통’으로 쓰임 받는 적용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 부모님들 최근에 수능 시험이 있었는데 그 자녀들 얼마나 힘든 여정을 지났습니까? 한번 자녀들을 앉혀놓고 그 자녀들의 발을 씻겨 보세요. 그리고 기도해 주세요. 위로해 주세요. 축복해 주세요.
삶의 고난의 위기를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응답하심의 기회로 마음에 새기고자 한다면,
사람의 구원은 헛됨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결단을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9-12절)
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까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할렐루야! 사람의 구원 헛됨이라! 우리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용감하게 행하리라!
지난 3년 동안 교회 건물을 찾고 다니던 수고 끝에 작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예배 처소에 입당하게 되었습니다. 교단과 연회의 부당한 처사에 마음의 큰 갈등이 있었고, 저는 옳고 교단과 감독님은 틀렸다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또한 신뢰했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반과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나는 속은 자고, 그리고 속인 자들에 대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띵크 양육을 받으면서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일까?’ 이 질문 앞에 제 자신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서 묵상해 보니 김양재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신 ‘자신의 성품에 자신의 성품에 속은 자가 바로 나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착함으로 포장된 제 마음의 중심에 교만이 있었고, 저는 그래서 온실에 재배된 ...... 제가 초창기 때 섬겼던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항상 저를 보시면 고난도 없는 것 같고~ 환난도 없는 것 같이~ 좋은 가정에서 부유하게 태어나고~ 그리고 조기 유학까지 가서 미국에서 공부하는 저를 보면 사실 항상 그러셨어요. “이 전도사는 온실 재배라고” 저는 그것을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목회자를 보면서 격이 달리다 생각했어요. (너무 죄송합니다.) 다른 분들은 이러한 삶의 고난이 너무나 많고 그 쓴 뿌리가 너무나 많든 이러한 분들을 보다 보니까 ‘아 하나님께서 나는 참 축복해 주신 온실 재배구나’ 생각했는데 이번 띵크 양육을 받으면서 제가 그래서 아까 우리 부 목사님들께도 잠깐 나눴지만 우리 김양재 목사님께 제가 이제 거의 한 달이 넘었는데... 처음 왔을 때 제게 주일 설교를 부탁하셨다면 여전히 제 마음에 이런 분들에 대한 원망과 쓴 뿌리와 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이러한 상황에서 주의 말씀을 선포했을 것인데 ‘나는 속은 자였다. 나는 버림을 받은 자라’라고 아마 말씀을 나눴을 텐데. 이게 양육 훈련을 받다 보니 제가 무엇을 보게 됐냐 하면 제가 이 온실 재배로 자랐지만 우리 성도님들 온실 재배로 자란 그 환경 가운데도 무엇이 있더라 잡초가 있더라는 것이에요. 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잡초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믿고 의지했던 나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앞에 소개해 드린 제가 예전에 섬겼던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큰 한인 연합 교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전임 목사님께서 30년 동안 사역을 잘 하시고 교회가 잘 성장하고 이제 목사님의 은퇴 조기 은퇴를 앞두고 제가 그곳에서 부교역자로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희 담임 목사님께서 저를 세워주셨을 때 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 타 교단에서 목사 안수 받은 자가 umc 교단으로 이전하는 것, 또한 장년 사역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장년 사역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영어 목회를 해봤고 청소년 사역을 주로 해왔지 가정 사역을 해왔지 장년 사역을 한 번도 목회를, 담임 목회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저를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세우셨다. 이것은 사람의 일로는 불가능한 것임을 저는 나중에 알았습니다.
물론 한 번도 장년 사역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담임 목회자 자리에 서는 것이 처음에는 큰 두려움과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할 수 있게 했다라는 자신감.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겸손으로 포장된 나의 교만이었고, 또 온실 재배된 저의 잡초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했고, 저 자신을 믿었습니다. 성실히 열심히 사역에 임했더니 담임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신뢰를 얻고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저의 수고와 저의 성실의 대가로 허락해 주셨다라고 믿었습니다. 제 성품이 저를 속인 것이었습니다. 이번 양육을 통해서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께서 저를 알고 계셨습니다. 늘 100% 옳으신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제 마음에 새겨진 교만을 보게 하시고, 또 온실에서 자라난 탐욕과 탐심, 이러한 잡초를 가르치기 위해 이 사건을 허락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지금은 저희가 떠난 교회도 잘 성장해서 몇 주 전에 최근 몇 주 전에 창립 40주년 감사 예배를 드렸고, 저희 GMC도 이제 태생 4살이 되었는데 주님의 은혜 가운데에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민 교회 가운데에 교회 분리가 있었음에도 이 두 교회가 잘 성장하고 있는 사례는 극히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겸손으로 포장된 나의 교만과 나의 착함과 나의 열심을 의지하며 사역을 했던 저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저를 가지쳐 주시면서 이러한 긴 여정 가운데에 저를 받아주시고 또 함께 섬겨주셨던 예전 우리 교회 성도님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인내함이 부족한 종을 위해 늘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저희 GMC 우리 교육자님들, 또 우리 장로님들, 또 모든 성도님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 GMC가 이 고난의 여정을 지나면서 늘 말씀으로, 큐티인을 가지고 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의 100% 죄임을 깨닫게 고백하게 하시고, 또 사건을 해석하게 하시고, 그날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게 하시고, 적용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신 양육해 주신 우리 김양재 목사님과 우리들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성도님들 저는 이번에 우리들교회를 참여해서 이렇게 와서 예배를 드리고, 또 제가 영상 예배 현장 예배를 드리고 여러 성도님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또 목회자들과 우리 교제를 나누면서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손수건과 앞치마’라는 이 두 단어입니다. 아마 오늘 처음 우리들교회에 오신 분들에게는 이게 방언같이 들리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도 사실 이 ‘손수건 앞치마’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잘 몰랐어요. 근데 목장 예배나 이러한 것을 통해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또 서로의 아픔을 또 이렇게 보듬어 주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해 주는 그 눈물을 닦아주는 이 손수건, 그리고 또 목장 예배가 있을 때마다 그 목원 식구들을 위해서 열심히 수고하시며 섬겨주시는 그 앞치마의 섬김. 그래서 제가 이제 이 자리를 떠나면서 우리들교회 성도님들께 감히 감히 드리고자 하는 말씀이 뭐냐 하면 우리들교회에서 지금 섬기고 있는 이 손수건과 앞치마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아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지금 성도님들의 목장만이 세우는 것이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교회의 사역을 통해서 저는 열방에 많은 특히 이민 교회에 가정들이 세워지고 회복되고 또 말씀으로 살리움 받는 그러한 역사가 우리 성도님들께서 약재료로 쓰신 이 큐티인의 간증을 통해서 일어나고 또 삶의 나눔을 통해서 일어남을 믿습니다. 그러한 수고에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Q.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성도님들은 우리들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Q. 이를 위해 쓰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품고, 진정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있으십니까?
우리 기도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삶의 고난의 위기를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응답하심의 기회로 누리고자 한다면 우리 성도님들 마음에 이 세 가지의 진리가 새겨져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주를 경외하는 자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고 구원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목욕통으로 부르심, 섬김의 종의 자리로 부르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결단이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쓰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님 되시기를 마음에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다 같이 주 앞에 결단 찬양드립니다.
♬우리에게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희생과 포기와 섬김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 2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희생과 포기와 섬김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성령 안에 예배하리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 × 2
우릴 사용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