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의 여왕 (예레미야 44:15-23)
2025.12.07 주일예배 -최대규 목사
여러 강의나 설교하기전에 이 이야기하는것을 좋아한다. 한 강사님이 부부세미나를 진행하는중에 이렇게 질문했다. 여기계신 분들 중에 결혼한다면 지금의 남편과 아내와 또 하실 분이 계시는가? 그런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당황한 강사님이 한분도 안계시냐고 다시한번 물으니 저 뒤에있던 할머니 한분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기쁜 강사는 할아버님 좋으셨죠? 하니 그놈이 그놈이여. 저도 그놈이 그놈이다. 별인생 없다라는 목사님의 어록이 진리인 것 같다.
청년부 주례할때가 종종있다. 다섯쌍중 한 쌍이 연상연하 커플이라고 한다. 이제 교회오빠 시대가 아니라 교회누나 전성시대를 함께 열어가자고 말한다. 여성이 참 중요하다. 한국교회의 부흥 뒤에는 어머니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다. 브리스길라도 아굴라보다 먼저 소개된다. 부부목장도 권찰님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여자를 돕는 베필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돕느냐에 따라 가정도 공동체도 다 달라질수 있다. 오늘 본문으 ㄴ여인들의 선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유다가 다 망했다. 예레미야 말을 무시하고 기어코 애굽으로 내려가 정착했다. 이때 아내들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좋을텐데 그들이 앞장서서 이방 여인을 섬겼다고 한다. 어떤 이방신인가? 이름이 아스다롯이다. 바알의 아내라고 불린다. 번식하다 라는 뜻을 가졌다. 이름의 뜻처럼 자녀를 많이 낳게하는 다산, 풍요, 쾌락..의 이름으로 불려진 신이었다. 요즘 시대에 번식이라고 하면 번영, 성공이겠죠. 그들이 하늘의 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요즘 하늘의 여왕은 무엇일까? 남편 성공 자녀 성공을 목적으로 둔 여인에게 있어서는 하늘의 여왕은 거절하기 어려운 우상이었을것 같다. 외모, 돈의 여왕일까? 입시의 여왕? 하나님을 믿지만 만족함이 없으니 뭔가 채워줄 우상을 계쏙 찾는다. 이정도쯤이야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 이렇게 말씀하신다.
21절
내가 하나도 이것을 잊지 않고있다,
22절
악행이고 가증한 행위라고 계속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것을 끊지 못한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 내가 끊지 못하는 하늘의 여왕의 실체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1. 하늘의 여왕은 듣기를 거절하게 합니다.
15-16절
예레미야 앞에 모든 여인 모든 남자 모든 백성이 큰 무리로 그 앞에 서있다. 그들은 언급하며 여인들을 먼저 말한다. 남자중심의 유대사회에서 왜 여인들을 먼저 언급할까? 여인들이 공동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죄의 영향력을 끼치고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하는데 그러면 여자는 무엇일까? 목이 돌아야 머리가 돈다. 남자의 방향을 결정하는건 결국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것이라 ㅇ할지라도 듣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42장만 하더라도 순종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뭐냐는 물음은 했었는데 말이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들이 어디에 살고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곧 애굽땅 바드로스에 산다고 말한다. 애굽땅 바드로스는 애굽의 국경이 아니라 애굽에서도 남쪽으로 내려와 깊은 내륙지방을 의미한다. 그들은 내륙으로 들어올수록 바벨론으로부터 안전할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안전은 커녕 우상숭배의 심장부였다. 예전부터 유대인들이 살고있었다고 한다. 동족이 이미 있으니 가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내가 속한 무리가 중요하다. 이미 그들이 죄를 범하고 있다면 덩달아 죄짓는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태배? 라는 고대도시가 있었다고 하는데 엄청 거대한 우상신전과 무덤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이집트의 룩소르 라는 지도라고 한다. 찾아보니 그때 남겨진 고대유적들, 신전의 기둥들, 거기 새겨진 벽화가 사진으로만 봐도 위용이 어마어마 하더라. 그옛날 남유다 사람들이 황폐해진 남유다를 뒤로하고 애굽으로 왔을때 그들이 본 애굽의 문화, 사람들의 삶의 모든 것을 봤을때 그들은 점점 녹아들었을 것이다. 말씀은 점점 멀어지고 그들의 영향을 받으며 영적으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제 아들은 고1이다. 어른이 되면 서울 잠실에 사는게 꿈이라고 한다. 롯데타워가 잘보이는 잠실이란다. 지금 제가 살고있는 곳은 판교 옆에있는 사송동이라고 한다. 마치 나사렛처럼 자신의 이름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동네에 살고있다. 밤이면 편의점밖에 갈데가 없다. 저희 아들이 그런 동네에 살다가 롯데타워에 가보니 눈이 휘둥그레해질만한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황폐해진 남유다로 돌아가면 살길이 막막할것 같은데 지금 내 자녀들이 애굽의 신식교육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 않았을까? 점점 귀를 막고 있다.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왜 하나님이 그렇게 애굽에 가지 말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말씀듣기에 적합할까? 라는 질문을 해야한다. 말씀듣는 구조속에 있지 않으면 그 누구도 장담할수 없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으로 예레미야를 보니 얼마나 무시가 되었을까?
17절
예레미야 너의 말보다 우리 말을 더 믿고 우리가 말한대로 살아보겠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판단을 더 믿고 그것을 증명해보이겠다고 서원하며 맹세까지 하는 것이다. 황폐한 가정,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그만좀 얘기하세요, 제가 얼마나 더 잘살수 있는지 증명해 보일게요 하면서 헛된 맹세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많은 예레미야를 두신다. 그런데 우리는 귀를 막고 허송세월 한다. 저에게도 많다. 담임목사님, 최목사는 묻지를 않아 말씀하신다. 뚱뚱한 목사에게 들을것이 없다고 하시는 권찰님이 계신다.
제가 목자가 처음 됐을때 나이 지긋하신 부목자님께서 저에게 한마디 하셨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목사가 아니다. 제가 오랫동안 귀를 막고 듣지 않겠다고 생각한 장인어른. 처음 뵀을때 연세가 70대 중반이셨다. 처가집에 가서 뵀던 모습은 여러 풍파를 맞으시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지고 자식들에게는 수억원의 빚을 물려주고 방 안에서만 살아가셨다. 자신만 누울수 있는 침대와 티비가 전부였다. 식당에 가시면 고성지르거나 아주머니들과 싸우시는 통에 가족들은 아버님과 함께 외출한지 오래였다. 참 무시가 많이 되었다. 그럴수밖에 없는 아버님의 삶이셨을 것이다. 혈혈단신으로 오랫동안 사셨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이었을 것이다. 저는 너무 무시가 되었다. 돈을 사랑하는 우상이 가득 자리잡고있어서 나에게 아무것도 해줄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장인어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완악한 마음이 있었다. 처가댁에 가면 말하시는걸 좋아하시는것 같은데 가족들은 안들어주니 사위인 저를 불러 한시간씩 말하셨다. 본인이 책에서 본 내용들을 이야기하시며 목사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하시며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아무것도 남겨줄것 없는데 저런말 하는게 뭐가 대단한가 하면서 귀를 닫았다.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제 마음도 그랬다. 고관절을 다치시며 수술도 되지않아 요양병원에 계시며 몸이 약해지셨다. 북에 계신 오마니를 보시는게 평생 소원이셨던 아버님. 자녀들은 아버님이 천국에 가길 간절히 기도하고 전했지만 진리인건 믿어도 생명인것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너희들이 말하는 천국에 오마니가 계시지 않으면 천국에 갈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 제 마음속에는 애통함보다는 그냥 좀 믿으시지. 이렇게 가족들 힘들게한 세월이 많은데 이것마저도 힘들게하시네. 애통함보다 무시의 마음이 더 많았다. 무시와 회개를 반복하면서 아버님께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교회다니는것도 이렇게 될줄 몰랐는데 혹 북한에도 교회가 있다고도 하고 예수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천국에 가셨을줄 어떻게 아시는가. 어머니가 천국에 계시면 어쩔꺼냐니 아무말도 못하셨다. 천국에 가시면 어머니를 찾아보세요. 성경적으로 맞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말에 복음을 받아들이셨다. 임종이 가까운 그날 가족들이 다 모여 목사인 사위가 말씀을 읽어드렸다. 아버님 귀에 말씀을 읽어드리니 반응을하셨다. 그리고 30분뒤 소천하셨다.
오늘 말씀에 예레미야 말을 듣기를 거절한 남유다의 모습이 제 모습같다. 저는 14년동안 아버님 말을 듣는척만 하고 무시했다. 진정으로 하나도 들어드린적이 없었다. 아버님은 제가 사위라고, 목사라고 예수믿고 천국에서 만나자는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시고 눈물 흘리며 천국에 입성하셨다. 하나님이 보실때 누가 예레미야일까?
적용
내가 꿈꾸는 여왕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신 예레미야는 누구인가요?
내 말을 증명하려고 헛맹세까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말씀을 듣고 거절하는 나보다 듣고 순종하는 그가 나보다 옳도다가 인정되나요?
2. 하늘의 여왕은 본래 하던 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17-18절
그들이 대답한다. 그런데 참 엉뚱한 해석을 한다. ㄷ이렇게 듣지 않으면 해석이 틀어지고 그러면 결론이 틀어지고 그러면 삶이 틀어진다. 그들은 ㅇ예루살렘의 멸망 원인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고 우리가 숭배했던 하늘을 끊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린다. 우리도 구속사를 어떻게 해석해왔는가? 남편이 속을썩이고 자녀가 속썩이고 사업망하고 돈이 없을때 ‘아 내 인생은 망했구나, 더이상 살길이 없구나’하고 이혼, 죽을것 외에는 결론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할때 전도사였고 사례비가 30만원 정도였다.아내 덕 보며 살면 되겠다 하고 결혼했다. 아내를 책임져야지 하는 마음보다 기대서 살면 편하겠다, 가정으로써 경제적으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결혼했다. 오해하시진 마셔라. 사랑도 했다. 이기적인 사랑이어서 문제였지. 여러분도 결혼할때 꿈꾸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안정적인 수입이 아내로부터 계속 나오니 잘 모아서 유학도 가고 선교도 가고.. 뭘 해도 되겠따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사명보다는 개인적인 계획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빚이 캐도 캐도 나오더라. 성경책에 손을 얹고 결혼했는데 그런 저의 기대가 무너지니 제 안에 결혼 괜히했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남유다 사람이 하늘 우상을 폐하면서부터 궁핍해졌다고 말하는것처럼 저도 해석이 안되니 결혼을 잘못해서 이렇게 고단해졌구나 해석했다. 그러니 삶이 괴롭고 아내를 미워하게되고 처가는 더 싫어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역하고 설교하고 찬양도 하니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냥 거짓된 포장으로 이렇게 전했다. 왜 예레미야 설교를 준비하는데 왜 마음이 이렇게 힘들까? 생각해보았다. 저는 늘 거짓된 포장으로 설교했던 시절을 보냈다보니 그런것같다. 저는 우리들교회 와서도 잘 해석하지 못했다. 첫 설교가 불신결혼이었다. 난 교회에서 결혼했으니 내 얘기가 아니라고 잘 듣지 않았다. 그런데 양육받고 제 삶을 돌이켜보니 저에게 말씀하시는것 같았다. 대규야, 니가 한 모습은 신결혼이 아니야. 주님이 저에게 말하셨다. 신결혼에 대해 알아보니 나의 반을 버리고 상대방의 반을 버리는 것이라 하는데 저는 나의 반을 버릴 생각도 없고 상대가 다 맞춰줘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제 결혼은 신결혼이 아니었다고 결론이 되었다. 저도 엉뚱하게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상숭배할때 왜 벌을 내리지 않으셨을까? 그들가운데 하나님이 오래 참으신 것이다. 그들은 그 참으심을 우상의 축복이라 잘못 해석했다. 이렇게 잘못된 결론을 내렸을때가 요시야 왕이 개혁했을때이다. 요시야 왕은 율법책을 딱 보니 너무 회개가 되고 옷을 찢고 명령을 내린다. 이 나라의 산당은 제하자고 명령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 애굽과의 므깃도 전투에 나가게된다. 애굽왕 느고랑 싸우러 나가는데 하나님이 그를 통해 말씀하신다 싸울게 아니라고. 그런데 끝까지 밀어붙여 요시야왕은 죽고 만다. 남유다사람들은 그때 그것을 상기하고 생각하면서 요시야왕이 죽은 현상은 하늘의 여왕을 폐했기 떄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기억에 의존하면 하나님의 뜻을 얼마든지 왜곡할수 있다. 없던 허위 기억도 만들어내는것 같다. 한두사람은 그럴수있지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잘못된 기억을 할까? 이것을 집단적 오기억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만델라 효과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이 2009년에 투병하고 있다고 뉴스에 나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때 만델라 대통령은 1980년대 감옥에서 투옥하다가 죽은거아냐?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사해보니 그당시 만델라가 지옥에 갇혔다, 많은 사람들이 결핵에 죽는다, 정치자들도 결핵에 죽는다 하고 보도됐다고 한다. 여기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집단적으로 잘못된 기억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것 같다. 그래서 큐티를 잘 기록해야한다.
남유다 사람들이 현실이 너무 힘드니 그때가 좋았지~ 하며 과거를 미화한다. 그런데 돌아가야할 그 자리를 생각해보니 우상숭배하는 자리밖에 없는 것이다.그때가 좋았지~ 하면 다 죄짓는 자리밖에 없다. 우리 고관들이 거리에서 성읍에서 하늘의 여왕에서 분향하고 전제드린것밖에 기억나는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모님의, 가족의, 부부의 싸움 혈기 무시 자살 담배 쇼핑 폭식 음란물 게임.. 이런것들을 생각하면 지긋지긋하고 싫을수 있따. 하지만 어느샌가 하나님 믿고있는 나도 자연스럽게 베어있다는 것을 보고 놀란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 모습이 나에게 베여있는것을 보고 놀란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ㄴ튀어나오는 말이 내 몸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악한 것을 몸으로 다 익혀간다. 신앙생활은 본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을 끊어내는 훈련이다. 예배를 몸으로 익혀나가야한다. 편법을 버리고 원칙 지키는 것을 익혀나가는 것이다.
자녀양육이 너무너무 어렵다. 잔소리를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혈기나고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고 회의감이 들고 사람이 싫어질때 내 원래 본래 성질대로라면, 과거 행했던 대로라고 한다면, 부모님이 행했던 대로라고 한다면 그 자리로 가지 않고 하나님께 가는 것, 그걸 보여주는게 자녀 양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절대로 믿지 않는 사람인데 이제는 조금 물어보게 된다.
오늘 말씀에 본래로 행하는건 다 숭배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본래는 다 세상을 숭배하고 잘먹고 잘살고자 온갖것을 분향했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한다. 예배에는 죄사함이 있다. 그런데 회개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과의 거래처럼 드리면 본래 숭배하던것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청년부 새가족들이 교회를 많이 찾아온다. 고등학교 중학교때 잘 다니다가 떠났다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한 자매가 그랬다가 부모님이 교회에 계시니 다시 돌아왔다고 말한다. 마음 깊은곳ㅇ ㅓ딘가에 내가 언젠가는 교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한다. 부모님들이 믿음의 자리로 잘 돌아오도록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한 자매 이야기다. 어린시절 아빠가 술마시고 때리고 가출하고.. 어머니는 그렇게 가출하면 자기 혼자 남겨져있었다. 이혼서류를 보며 불안한 어린시절 보냈다. 사춘기가 되고 자해하고 학교잘 안가고 우리들교회 오게되었다. 나누면서 은혜도 받고 좋았단다. 그런데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사랑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해결하고자 혼전순결도 지키지 못했다. 그와중에 부모님은 교회에 정착해 목자까지 되셨다. 취업할때가 되니 또 교회로 돌아왔다. 양교받으며 취업이 되었더니 또 그때분이었다. 안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고 코로나로 교회를 잘 못오게되니 무슨 십일조야, 하면서 또 떠났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랑어린 간절한 한통으로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와 헤어지는 계기가 되고 교회로 돌아왔다. 하나님이 어디까지 내 삶을 책임지실까 늘 궁금했는데 작은 기도하나, 생각까지도 다 아시고 제 삶을 계획해 나가신다는 것이 이제는 믿어진다고 말한다. 인과응보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 고백된다고.
어떻게 이렇게 될까? 부모님이 참 힘드셨겠지만 믿음으로 자녀에게 돌아올 자리를 잘 준비하고 계셨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이 왜 애굽에 살고싶어하지 않겠는가. 자녀가 교회로 돌아올 자리를 만들어 두었다면 우리는 굉장히 성공한 부모님인줄 믿는다.
적용
자꾸 돌아가고 싶은 옛 자리는 어디인가요?
구속사가 아니라 세속사로 해석해 잘못 결론내린 것이 있나요?
내 자녀가 돌아올 신앙의 자리는 준비되어 있나요?
3. 하늘의 여왕은 교묘한 혼합주의로 포장합니다.
19절
여인들이 이제 대놓고 큰소리로 말한다. 우상숭배는 너무나도 교묘한 것이, 하나님과 우상은 함께 있어도 괜찮다고 착각하게 한다. 여인들은 하늘의 여왕 숭배가 엄청난 배교가 아니라고, 가정에서 아주 좋은 문화로 자리잡을수 있다고 말한다. 이방사람들은 실제로 신전 안에서 창기들과 음란을 행하면서 하는 제사가 있었는데, 이런 제사를 하라고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거부감이 드니 남유다 사람들이 말했던 우상숭배의 분향과 전제는 자기 집 지붕 위에서 조그만하게 가족 제단을 만들고 향을 피워오르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그게 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너무 좋아보이지 않는가? 전제는 포도주나 독주를 땅에 쏟음으로써 하늘에서 비를 내려 땅을 적셔주길 기원하는 것이다. 많이 얻고싶으면 많이 쏟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숭배의 하이라이트는 밀가루를 잘 반죽해 여신의 모양을 만들어 빵을 구워 제단에 올리고 먹는다. 이게 예레미야 7장에 자세하게 나온다.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각자 자기의 일을 척척 해나간다. 겉모습만 보기에는 아름답고 좋아보인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님이 없는 거짓화평이다. 너무 교묘하지 않는가? 여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이 우리 남편의 허락없이 드렸겠냐고. 이것은 나무라는 예레미야 앞에서 남편이 하라고해서 하는거에요 하는 핑계대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가지고 와서 말하는 것이다. 여자들이나 아내들이나 딸이 이걸 하겠다고 서원할때 아버지가 승인해줘야만 인정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여인들은 보라고, 우리 남편이 허락해서 하는거라고, 저희는 율법을 지키는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의 한 부분만 가지고와서 합리화 하는 것이다. 저 교회 다녀요 한마디로 우리는 아무런 문제 없어요 라고 말하는것과 똑같다.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으니 문제 없어요 라고 하는 말이다. 겉으로보면 너무 신앙생활 잘하는것 같지만 그 마음 안에는 온갖 우상들이 가득하다. 오늘날의 혼합주의는 문화라는 매력적인 말로 찾아온다. 힐링이 되면, 자기개발이 되면 그것이 무엇이던간 가정을 깨뜨리는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세상에 살아가고있다. 아무런 비판적인 사고가 없다면 우리는 영적인 경계선이 다 무너져 이렇게 말하게 된다. 우리가 쫓아내야할 교묘한 혼합주의이다.
유튜브에서 법륜스님 영상을 하나 봤다. 한 여성이 이렇게 질문하더라. 사는게 힘들어 이혼했습니다. 재혼했는데 사는게 참 어렵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목장에서 우리가 듣는 이야기지 않는가? 그럴때 여러분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스님이 뭐라고 대답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들어보았다. 스님의 첫 대답은 ‘왜 잘못했다고 생각하세요?’ 였다. 나는 한번도 못해본 결혼을 두번씩이나 했는데 얼마나 잘하신겁니까. 저는 낳아보지도 못한 아이를 두명이나 낳고 길렀는데 뭐가 잘못했다는거에요? 너무 잘 사셨습니다. 잘 살았다고 생각하고 사셔요. 댓글이 궁금해 찾아보았다. 첫 댓글은 ‘교회는 매일 죄를 보라고 하는데, 죄인이라고 하는데 불교는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니 좋아한다’ 였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해석되시는가? 회개하라 보다 잘 살았다 라는 말이 듣기에는 좋을수 있지만 절대 그것이 내게 생명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예레미야의 회개하라 가 듣기 힘들수 있지만 그것이 날 살리시는 생명의 말씀임을 믿었으면 좋겠다.
적용
내 신앙에 팔복과 기복은 몇프로씩 있나요?
예배드리고 목장에 나가 니 이것쯤은 괜찮겠지 하고있는 타협은 무엇인가요?
문화와 재미라는 이유로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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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A
- 친언니 배 속에 애기가 잘 자랄 수 있도록
- 회사생활에서 인정 받으려고 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 체력 지켜주시기를
B
- 한 주 큐티 묵상하면서 취업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 취업,연애 하나님께 맡기면 의지하면서 나갈 수 있도록
- 신교제에 관해 더욱 기도할 수 있도록
C
- 신교제에 관해서 내뜻대로 하려고하지 않고 많이 묻고 갈 수 있도록
-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 큐페 모임에서 잘 나눌 수 있도록
- 친오빠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