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25.10.26.(주일) 사도행전 19:8-20 「말씀의 흥왕과 세력」 강승현목사님
**말씀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하나님, 매일 주시는 말씀으로 힘을 얻고 흥왕하며 세력을 얻어야 하는데 저는 여전히 눈에 보이는 환경이 좋으면 흥왕이라고 했고, 이기고 이기고 또 이기게 해 주시는 세력이 좋은 세력이라고 했던 죄인입니다. 이 시간, 주의 말씀을 전하고 함께 들을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흥왕과 세력이 무엇인지, 진정한 하나님의 세력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옵소서. 들어야 할 그 한 사람이 내가 되게 하여 주시고, 그리하여 내가 듣고 살아나는 시간 되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들 불편한 사람 앞에 서서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목회자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보통 목회자 세미나 중에 오셨던 담임목사님 한 분이 단에 올라오셔서 목세 기간에 있었던 은혜들, 그리고 또 받은 구속사에 대해서 나눠 주시는데 제가 이렇게 올라온 거는요, 담임 목사님께서 얘기해 주셨듯이 이미 10월 14일에 합동 측, 제가 소속돼 있는 노회의 임용 서류도 넘어가고, 또 위임 청빙 서류도 넘어가서 92년 된 영주시에 있는 풍기읍의 ‘풍기제일교회’에 담임목사로 서류상으로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담임목사 아닌 것 같은 담임목사로, 상당히 불편한 사람으로 올라와서 단 위에 이렇게 목세 끝나고 난 뒤에 올라와도 괜찮겠죠?^^ 네. 살짝 자랑도 한번 해봤습니다.^^
마지막 설교라고 해서 ‘앞부분에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분들은 어떻게 했을까’라고 최근에 나가신 분들의 설교를 한번 쭉 살펴봤는데 이영재 목사님께서는 빵긋빵긋 웃으시면서 본인이 처음 교회에 와서 수요일 날 첫 세미나를 들었는데, ADHD에 관련된 세미나도 듣고 또 성도들이 나눠 주는 그 이야기들로 너무 감동이 돼서 엄청 울었다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리고 손효주 목사님은 본인이 올 때부터 ‘자칼’이라는 별명으로 들어와서 담임 목사님께서 들어올 때부터 훈장 하나 달고 들어왔다고 그렇게 이야기하셨고, 손윤상 목사님은 본인이 우리들교회가 낳고 기른 ‘원주의 남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보니까 모든 것을 다 갖춰야 되는 풀(full) 소유자에서 이제 구속사 복음 하나만 있으면 되는 미니멀 라이프가 된 강승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수)
제가 우리들교회를 처음 왔을 때 한번 좀 생각해 봤는데요. 2021년 12월 제일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는데, 휘문고등학교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도 썰렁했고,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일 때였거든요. 4차 대유행일 때였는데, 성도님들도 띄엄띄엄 앉아 있어서 썰렁하기도 했고, 그때는 또 다 같이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서 참 많이 서먹하고 어색했습니다. 춥기도 하고 마스크도 썼고 ‘정말 혼자구나’라고 생각이 들었고, ‘아, 잘못 왔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벌써 4년이란 시간을 (우리들교회에 있으며) 말씀으로 함께하는 공동체가 생겼고, 흥왕하는 세력이 또 생겼습니다. 어떤 세력이 생겼느냐, 이런 세력이 생겼습니다. (사진 보여 주심) 저희 청년국 사역자들인데, 또 이렇게 간다고 “어서 와! 풍기는 처음이지“ 이렇게 현수막까지 만들어 주시고 환송을 해 주셨습니다.
바울도 이런 세력과 흥왕을 경험했는데 바울이 1차, 2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많은 나라와 도시를 다니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복음, 구속사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 여정이 순탄하지 않았어요. 핍박과 박해, 매 맞음과 죽은 것 같은 일까지 당했고 또 지난주에 말씀 봤듯이 감옥 그중에서도 하옥에까지 갇히는 고난들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바울이 직접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어요. 너무 힘들다는 말을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바울의 마음을 딱 아시고 목요일 날 이런 말씀으로 바울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9).
이 위로의 말씀만 보더라도 바울이 그간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 그 고난이 얼마나 심했는지 박해와 핍박이 얼마나 셌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고난과 핍박과 대적이 생길 때마다 놀랍게도 각 도시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 많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어려움이 많을수록 말씀은 더 흥왕했습니다.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어요. 주위의 세력들이 생겨서 합력하는 사역자와 공동체가 생겨서 예수의 세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을 보니까 이렇게 나와져 있네요. 함께 읽어볼까요?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그렇다면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어떻게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는지 함께 말씀을 살펴보며 은혜 받는 시간 가지길 바랍니다.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려면,
날마다 말씀이 있는 우리들 서원이 필요합니다(8-9절).
금요일 본문(행 18:12~23)부터 바울은요 1차, 2차에 이어서 3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3차 전도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곳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1차와 2차 때 다녔던 곳을 재방문해요. 다시 그곳에 가고, 이미 전했던 복음을 한 번 더 강화하는 그런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치며 에베소에 잠시 머물렀다가 “주의 뜻이라면 다시 돌아오겠다” 하며 갔었죠. 그리고 즉각적인 결실은 크게 맺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부부, 그리고 이 아볼로가 에베소에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어요. 이 ‘에베소’라는 도시가 참 중요한 도시인데 상업적으로, 군사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문화적으로도 요충지였어요. 게다가 그곳엔 아데미 신전이 있었는데, 이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일 정도로 큰 신전이었습니다. 또 도서관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에베소는 종교적 신비주의가 되게 흥왕했어요. 마술과 마법 같은 것들이 유행하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바울은요 이 지역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회당이었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바울은 늘 어떤 도시에 들어가면 첫 번째로 가는 곳이 회당을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설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 그랬냐면 이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을 너무 사랑하기도 했고, 또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파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에요. 동일하게 에베소에도 들어가서 처음에는 세 달 동안이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담대히’와 ‘권면하다’라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단순하게 ‘권면하되’ 이렇게 보여지지만요 원어의 뉘앙스를 보면 ‘권면하기를 힘써 계속했다’ 그런 뜻이에요. 또 ‘담대히’라는 이 단어의 시제를 보니까 미완료형이더라고요. 바울이 시간이 날 때 잠깐잠깐 회당에 들려 말씀을 전한 게 아니라 ‘석 달 동안 회당에 살다시피 하며 최선을 다해서 힘써서 계속계속 전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 결과가 참 좋으면 될 건데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9절 말씀 상반절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결론이 뭐라고 나와 있어요? “비방한다” 이렇게 나와 있네요. 여기서 “비방한다”는 말은 “말 그만해! 됐어! 됐어! 알았으니까 그만해도 돼!” 이 정도의 말이 아니에요. 욕하고 저주하고 모욕하면서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훼방을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비방했던 이유를 그 앞 부분에 보니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음이 굳어져서” 두 번째는 “순종하지 않아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음이 굳어졌다”라는 단어를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굳어졌다” 이거는 ‘딱딱하고 뻣뻣하다’라는 뜻이죠. 내가 지금 딱딱하고 뻣뻣한 것을 입으로 삼킨다고 한번 생각해 볼까요? 딱딱하고 뻣뻣한 어떤 것들을 품에 안고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느낌이 드세요?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딱딱하고 불편한 것이 입안에 들어가 있으면 말씀을 먹어야 하는데 말씀을 못 먹는 거죠. 딱딱하고 뻣뻣한 것을 내가 품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겁니다. 불편합니다.
에베소의 유대인들은 석 달 동안 복음을 들었는데도 마음이 여전히 굳어 있었어요. 자신들의 율법적인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죠. 또 그들에게는 할례 아니고는 구원의 길이 없는데 바울이 ”예수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이 율법의 모든 것을 완성하셨다“라고 하니까 얼마나 그들이 듣기가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자기네가 평생 고수하고 유지했던 율법의 것과 또 구원의 기준이 하루아침에 다 무너진다고 생각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굳은 마음은 뭐로 바로 연결됐어요?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서 쓰인 시제도 미완료 시제예요. 일시적으로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바울이 얘기할 때마다 반복하고 반복해서 그렇게 얘기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또 말씀에 순종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중요한 말인데요, 바로 날마다 말씀 듣는 공동체, 매일 큐티하는 공동체 우리들 서원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요 회당에서 3개월 말씀을 전하고 이제 떠나서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 가서 날마다 말씀을 전합니다.
9절 하반절입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9b....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여기 말하는 ‘서원’이라는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만 나오는데요. 서원, 이 ‘스콜레(σχολῇ)’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학교(school)라는 단어가 파생됐습니다. 또 이 말엔 ‘여가(餘暇)’라는 다른 뜻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가를 누리는 배움의 장소’인 거죠. 복음을 듣는 자리! 말씀을 믿고 살고 누린다는 뜻이 딱 이 ‘서원’이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우리들교회와 같은 그런 공동체가 바로 ‘두란노 서원’ 또 ‘우리들 서원’이었던 거죠.
굳어 있고 뻣뻣해서 불편했던 사람들이 매일 주시는 날마다 주시는 그 말씀 앞에 서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유연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쉼과 즐거움이 생기는 거죠.
제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정말로 놀란 것은 성도님들이 너무 환하게 웃고 있는 겁니다. 이 웃음이 가식적인 게 아니에요. 억지로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럼 또 반대로 안 웃으신 분들은 뭘까요? ‘진짜 안 웃긴다’라는 거예요. 이 웃는 분들의 여유와 유연함과 부드러움은 그 어떤 공동체에서 누려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주시는 말씀, 매일 주시는 말씀이 있었기에 그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먼저 봤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저를 소개해 주실 때 제가 그 교회에서 면접을 볼 때 그렇게 얘기했다고 했잖아요. 가장 우리들교회의 구속사의 정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를 얘기를 했다고 했잖아요. 근데 저는 처음 그렇게 여유있게 떨리는 자리에서 부드럽게 자유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이전 교회에서 두 가지 별명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강프로’였습니다. 프로라는 이 말이 ‘프로페셔널하다’라는 아마추어의 상위의 그런 뜻이면 좋았을 것을... 그게 아니라 제가 하는 일이 항상 2% 오버를 해서 했었거든요. 힘이 들어가서 그리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면서 2%로 오버해서 ‘2%로 오버하는 강승현’ 이걸 줄여서 ‘강프로’가 된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별명이 있었는데 ‘강수행’이에요. 제가 이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을 외부로 많이 따라다녔어요. 그러면서 저의 2%가 또 오버가 됐겠죠. 오버가 돼서 이렇게 저렇게 섬기고, 따라다니고 하니, 거기서 이제 ‘강수행’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자, 우리들교회에 왔습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님을 모시고 3박 4일 집회에 함께할 일이 생겼어요. 저의 이 ‘강수행’의 원래 가지고 있었던 그 마음으로 목사님을 최선을 다해서 모셨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이 최고의 평가를 해 주셨습니다. 딱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강 목사, 넌 열심히 하는데 불편해!”^^ 아~ 진짜ㅎㅎㅎ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는 이 수행을 한다는 것이 보디가드처럼. 아까 목사님이 얘기하신 대로 탁! 지켜보고 있고, ‘필요한 게 뭘까? 저 때는 저걸 준비해야지!’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일로만 이해했었던 거죠. 근데 담임목사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나눔하는 거였고, 큐티한 걸로 대화하는 거였고, 마음의 교제를 하는 것을 원하셨던 거예요. 부목사로 수행하기를 원했던 게 아니라 인격적인 친구처럼 동행하기를 원했던 겁니다. 저는 역할에만 충실했고 인격적인 동행을 놓쳤던 거죠. 그래 놓고 ‘별명이 강수행이라고! 잘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여겼습니다. 제 마음이 뻣뻣하고 딱딱했기 때문에 불편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내 잣대로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여겼던 거죠. 내 잣대로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고 여겼던 거죠. 하지만 진짜 매일 주시는 말씀에 내가 고꾸라지고 넘어지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이 두란노 서원과 같은 우리들 공동체, 우리들 서원에 들어오게 하시고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서니 조금씩 조금씩 굳었던 마음, 이 불편한 마음이 여유 있어지고 풀리게 되었어요.
올여름에 우리 7월 8월을 정말 뜨겁게 전라도 지역에서 T.T.로 섬겼잖아요. 저 역시도 제가 맡은 청년들과 함께 전라도 제일 밑에 노화도라는 섬에 가서 섬겼습니다. 그래서 첫날에 다 같이 가서 이제 짐을 풀고요. 사역 준비해야 될 것들을 막 이렇게 짐 풀면서 정리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또 뻣뻣해지는 거예요. 어떻게 뻣뻣해지냐, 멀리 전라도까지 청년들과 함께 구속사의 복음을 전하러 갔고, 내가 살아난 이야기, 내가 복음으로 자유한 모습들을 나누기 위해서 그곳까지 갔는데, 저는 또 일을 하려고 했던 겁니다. 미간의 인상을 찌푸리며 ‘이거 해야지! 넌 저거 해야지! 야 넌 왜 가만히 있어? 뭐라도 해야지!’ 이렇게 진두지휘하며 일을 하려고 했던 거죠. 그때 청년 한 명이 저에게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목사님, 목사님은 이렇게 사역이 시작되면 모드(mode) 전환을 하시는군요. 일하는 사람의 모드로 말이지요.”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말 한마디가 저를 울렸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저희랑 즐기다가 누리고 가시죠.”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 “누리다 가요”라고 하는 이 말이 저를 올렸던 거예요. ★즐기지 못하고 일만 하려고 말씀이 있으나 여전히 뻣뻣하고 불편했던 사람인 제게 우리들교회의 가장 핵심 가치죠. ‘믿고, 살고, 누리고’ 이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계신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승현아, 네가 여기에 목사로 온 것도 참 중요하지만 먼저는 나의 아들로 이 자리에서 살아난 것들을 청년들과 함께 누리고 즐기다 가면 어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그래서 우리들의 핵심 가치죠. 바로 뭐부터 찾았을까요? 큐티 책부터 펼쳤습니다. 그때 여름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사사기 말씀이에요. 사사기 13장 25절 말씀 삼손 말씀이었는데 이렇게 쓰여져 있었어요.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사역을 일로만 하려고 하니 저와 함께한 청년들의 입을 통해서 굳었던 뻣뻣했던 저를 여호와의 영이 움직여 주신 겁니다. 그 뒤로 T.T. 기간 3박 4일 동안 저부터 누리는 사람이 됐어요. 그래서 목사님과 성도들과 여러 지역 주민들에게 살아난 모습도 보이고, 청년들과 함께 간증도 하고, 또 저희의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의 수고로 섬겼죠. 그랬더니 어떻게 됐을까요? (사진) 좀 큐티에 대해서, 또 말씀에 대해서 완강했던 완강하셨던 목사님 내외가 광주 목세에 참석하셔서 같이 이렇게 목사님 말씀도 듣는 은혜까지 있었습니다.
우리들 서원 안에서 매일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드디어 자유를 얻어서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이 될 수가 있었던 겁니다.^^ 부드러운 사람이 되니 하나님께서 또 다른 사역의 길을 열어주시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됩니다.
적용 질문드리겠습니다.
Q. 날마다 말씀으로 믿고 살고 누리나요, 반대로 날마다 잔소리로 의심하고 죽이고 불안해하나요?
Q. 나는 다른 사람에게 뻣뻣하니 불편한 존재인가요, 부드러워서 다른 사람들이 같이 하고 싶은 존재인가요?
Q. 날마다의 말씀이 나를 불편하게 하나요? 예전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나를 여유롭게 하나요? 여전히 불편하다면 왜 그럴까요?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려면,
2.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에 있어야 합니다(11-12절).
두란노 서원으로 이제 자리를 옮겼어요. 자리를 옮겨서 2년 동안 날마다 말씀을 전했다고 했죠. 그러니까 어떤 결과가 있었냐?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이나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네요. 더 이어서 11절과 12절 보니까 놀라운 경험과 체험을 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아멘. 앞에서 에베소에 대한 설명을 잠깐 했듯이 이곳은 아데미 신전. 정말 불가사의할 정도로 큰 신전이 있었어요. 그래서 마술과 마법이 성행하고 유행했습니다. 그런 신비주의 문화가 아주 강했던 도시입니다. 하나님은 각 지역마다 그 문화마다 지역의 특색과 문화를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중에 아덴이라는 도시 아테네를 보면서 바울이 전도하는 걸 봤는데, 바울이 어떻게 전도했을까요? 바울은 그 아덴(아테네)에 철학이 유행하는 것을 알고 철학적인 사고와 사상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어요. 그리고 헬라 시인의 시를 사용해서 그렇게 복음까지 전파했습니다. 복음을- 구속사를- 시대의 언어로 바꾸는 거죠. 에베소에는 지금 이 신비적인 체험이 시대의 언어였어요. 그들이 가장 유행하고, 그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그런 언어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바울의 손과 그리고 그의 물건들 손수건과 앞치마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신 겁니다. 어떤 능력이요? 병도 떠나가고 악귀도 도망가는 능력을 신비적인 체험으로, 그들의 시대 언어로 말씀해 주신 거예요. 그렇다면 오늘날 시대 언어로 ‘바울의 손, 바울의 손수건, 바울의 앞치마’를 우리의 시대 언어로 바꾸면 무엇이 될까? 저는 이것이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수건은 어떤 거냐? 손수건은 우리가 지금 들고 있는 이란 손수건이 아니라 이마에 동여매서 땀이 흐르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이물질들이 있으면 닦는 그런 역할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앞치마는 뭘까요? 앞치마는 말 그대로 일을 할 때 옷과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앞에다 걸치는 그런 거죠. 이것은 사도 바울이 텐트 메이커로 자비량 선교를 할 때 낮에 항상 몸에 착용하는 것들이에요. 이런 것들이 바로 ‘목장’과 같은 거라는 겁니다. 왜일까요? 직장에서 일주일 동안 버티고 버티면서 수차례 사표를 던지고 싶어서 그 마음을 어찌할 수 없는 이 집사님들이 목장에 왔을 때 어떻게 해요? 붙어만 있으라고. 하나님께서 붙어 있을 때까지 있으라고 하신다면서 그들에게 그 집사님들에게 수고했다고 이마에 땀을 닦아주고 정말 힘들어하는 직장 생활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과 같은 목장이죠. 그리고요. 부부 관계가 무너져서 이혼 직전에 정말 눈물밖에 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벌떼같이 다 같이 모여서 기도해 주고, 그래도 가정은 지켜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그런 목장입니다. 또 중독과 폭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술, 도박, 성중독 이런 것들로 가정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려고 할 때 공동체가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어떻게 하죠? 심방하고 또 심방하고 또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는 아픔을 막아주는 앞치마와 같은 목장이 바로 우리의 목장입니다. 이 일들이 우리들이 장년들에게만 있겠습니까? 아니요. 똑같이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게도, 또 주일 학교에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수많은 자살 시도와 자해, 성적 혼란으로 힘들어하는 그 청년들에게 정신적으로 고난 가운데 있는... 아빠와 엄마로부터 받았던 놀라운... 너무나 해석되지 않는 그 힘듦 가운데 고난이 있을 때 선생님들과 또 여러 함께 있는 목장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달려가죠. 그리고 뭐라고 하죠? “일어나라! 힘내라! 괜찮다!”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붙들어주는 처방을 하고, 목자와 목원들이 매일 연락을 합니다. 오늘 또 어떻게 지냈냐고. 또 기도하고 악한 생각과 악한 영으로부터 막아주는 그런 앞치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목장입니다. 바울의 손에서 능력이 흘러가듯이 목자의 손, 목원들의 손에서 위로와 격려, 공감과 중보가 흘러가서 병이 떠나가고 또 악귀가 나가는 경험이 일어납니다. 이 목장은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최고의 현장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목자님이 초원 나눔에서 이런 것을 나누어 주셨어요. 최근에 딸과 큰 소동이 있었답니다. 아내 집사님하고 그 딸하고 마찰이 있어서 싸웠는데 이 싸움이 좀 격해졌는가 봐요. 그래서 막 집기 도구가 떨어지고 남편 집사님이 딸을 막 밀치기도 하고 이러셨어요. 근데 그 딸이 너무 화가 나서 엄마 뺨을 때렸대요. 이 친구가 좀 정신적으로도 좀 아프고 ADHD와 조울증이 조금 있어서 감정이 격해졌는가 봐요. 그러면서 이제 남편 집사님이 또 너무 화가 났죠. 그래서 이렇게 얘기도 하고 막 했는데 “나는 너보다 힘든 가정에서 태어나서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너는 뭐가 부족해서 마음대로 대학도 자퇴도 하고, 개명도 하고, 그리고 4년째 폐인처럼 살아가는지 모르겠다!”라고 이렇게 하면서 딸이 너무 극도로 흥분해서 경찰까지 부르고, 또 경찰이 와서 자기를 이제 쉼터로 분리를 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쉼터로 그렇게 따로 분리하는 사건까지 갔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 목자님이 잘해 준 것보다 못해 준 것들을 계속 이야기하고 불평불만인 딸의 모습이 딱 자기의 모습과 같았대요. 목자님이 어려서 목자님의 아버지는 폭력과 또 어머니의 외도로 목자님의 부모님이 이렇게 이혼을 하셨고 따로 또 재혼까지 하셨던 그런 가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자님이 혈기 있는 것, 그리고 그 목자님이 외도한 것들이 ‘다 부모님들이 이렇게 좋지 않은 환경 때문에 내가 이런 거다! 이게 나의 근원이다!’라고 그렇게 외쳤던 것들이 생각이 나더라는 거죠, 자기 딸의 그런 모습을 보니깐요. 아내 집사님도 너무 힘들어 하셨어요. 딸에게 뺨을 맞고 “이제 딸을 볼 힘도 용기도 생기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 아내 집사님-권찰님-이 섬기던 청소년부에 심방을 갔는데 그 심방을 받게 된 집에 부모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딸에게 얼마 전에 뺨을 맞았다고! 그러면서 이 두 분의 뺨 맞은 집사님이 서로 손수건이 돼서 닦아주고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라고 하면서 위로와 공감이 됐다라는 겁니다. 정말로 우리들교회 목장이 손수건 같은 그런 목장 아니겠습니까.
주일 학교에 또 한 ADHD가 있는 친구인데 행동이 예전과 달라져서 담당 사역자가 한번 그 집의 상황을 알아봤대요. 상황을 알아보니까 엄마가 빚을 많이 지고 집을 떠나 있는 상태고 어쩌다가 한 번씩 들어온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내와 다툼하고 뭐라도 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집안일에 다 손을 놓고 있었대요. 그런데 그럴 때 이제 초원지기 여자 목자와 또 평원의 여러 여자 집사님들이 벌떼처럼 그 여자 집사님한테 찾아간 거죠. 그래서 가정으로 돌아오라고! 집에 있으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거예요. 또 집이 너무 형편없이 관리가 안 되니까 이번에는 부부 목장, 여자 목장, 초원님들이 또 벌떼처럼 그 집에 가서 집 청소를 다 해 준 겁니다. 그러니까 쓰레기가 엄청 나왔다라는 거죠. 오랫동안 방치가 되어 있어서. 이처럼 성도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 입으로만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힘들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 가는 수고로 손수건을 가지고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그 고난의 현장에 가서 청소하고 또 위로해 주는 것이 진정한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힘을 얻어서 흥왕하고 세력이 있는 목장인 것입니다!
적용 질문드리겠습니다.
Q. 내가 목장에서 경험했던 ‘손수건과 앞치마’는 무엇인가요?
Q. 나는 뺨을 맞으면 화가 나나요, ‘이번 일이 손수건의 적용으로 쓰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나나요?
Q. 나의 손수건과 앞치마는 너무 깨끗한가요, 목원의 ‘땀과 눈물, 콧물’의 흔적들이 남아 있나요?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려면,
3.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18-20절).
18절을 보면 이렇게 나와져 있습니다. 함께 볼까요?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라고 나와 있어요.
여기서 ‘자복하다’라는 단어가 우리 얼핏 대충은 어떤 단어인 줄 알잖아요. 근데 이 원어의 뜻을 한번 보니까 ‘같이 말하다’라는 뜻이 있어요. 그리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같이 말하다’ 누구와 같이 말할까요? 하나님과 같이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같이 말한다’는 건 또 어떤 뜻일까요? ‘하나님 편에 선다’라는 겁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과 같이 말하는 그 회개가 ‘자복’인 것이죠.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도덕적 행위가 아니에요. 자복은요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은혜의 사건인데, 하나님 편에 서는 거고, 같이 말하는 겁니다. 율법적으로는 “나는 옳다!”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이제 말씀 앞에서 복음 앞에 서니까 어떻게 될까요? 자복하면서 “나는 옳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무너졌고 나 때문에 교회가 공동체가 직장이 가정이 아파합니다”라고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고백이 오늘 본문 18절에 말하고 있는 자복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드러냄의 회개’ 그렇게 이야기하죠. 숨기고 감추던 죄를 드러내는 것은요 정말 수치의 사건처럼 보여요. 나의 치부가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지고 알려지니까요. 하지만 복음적으로 보면요- 구속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그 수치를 짊어지게 하시기 위한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뭐가요? 자복이요. 회개가요. 하나님 편에 서는 자복이 그렇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드러냄의 회개’가 있어야만 나의 수치와 죄가 하나님께서 대신 짊어질 수 있는 연결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럼 반대로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내가 아직까지 수치와 죄를 드러내지 못하고 공동체 앞에서 하나님 편에서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아직 그것을 죄를 혼자 이고지고 힘들어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자복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혼자서 끙끙 앓는 것이 회개가 아니에요. 잘못했는데 감정적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게 회개가 아니에요. 목장과 공동체 앞에서 죄를 고백해야 드디어 비로소 말씀에 힘이 있어 흥왕하고 세력을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자, 그러면 더 중요한 것이 이제 나오는데요. 자복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자복의 열매, 회개의 열매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마술을’ 시작.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아멘.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 책- 불살랐다는 그 책-은요 오늘날로 치면 부적과 같은 거예요. 그리고 점술서와 같은 그런 책들입니다. 자신에게 복을 주는, 우리 가정을 지켜주는, 나의 하는 일들이 평강이 되는, 건강과 만사형통을 위한 그런 것들을 모으고 모았던, 지고 이고 살았던 것, 내가 평생을 의지했던 것들을 지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은 오만 드라크’는 얼마 정도일까요? 오늘날의 이 화폐 단위로 계산을 해보면 최소 30억에서 한 50억까지 엄청난 값입니다. 그러니까 평생에 그들의 재산과 같은 거죠. 이 값을 지불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요 그 책을 어디에서 불살랐다고 지금 나와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모든 사람 앞에서’라고 나와 있어요. 이것이 바로 값을 지불해야 되는 회개했다는 사람의 열매입니다. 회개의 고백도 드러내야 하고, 회개의 열매까지도 드러내야 하는 거죠. 왜 그럴까요? 버린다는 것은 참 안타깝고 어려운 일입니다.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진짜 죽을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불살라 없애야 하는데 만약 내가 100개 중에 1개는 남겨두고 99개만 불사른다고 하면... 내가 일부분은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들을 불살라 없앴다고 하면 나는 늘 그것을 보고 즐길 겁니다. 그리고 ‘이것 정도야 괜찮지 않을까?’라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위안을 줄 거예요. ‘이것 정도 하나 정도는 있어도 예수님 믿는 데 크게 지장이 없을걸~’ 왜? ‘나만 말 안 하면 다 끝인 거 아니냐’라고 그렇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죄의 값들, 모으고 이고 지었던 이 죄의 값들은 (어디 앞에서요?) 모든 사람들 보는 앞에서 불살라 없애서 자복의 열매로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이번 목세에 처음 참석하신 어떤 목사님께서 목장 탐방 가서 나누었던 이야기인데요. 제가 한번 읽어보고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1살 때 교회 리더로 섬기며 교회의 부흥을 경험했고, 자연스럽게 ‘나는 신학을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어서 신대원을 진학하여 부교역자 생활로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시작하면서 ‘10년 안에 교회를 건축하자’라는 비전을 품고 개척의 기회가 왔을 때 당시 유행하던 ‘셀 교회, 셀 소그룹’을 도입해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성도들이 늘어나며 교회가 부흥하는 듯했지만 어느 순간 숫자 중심의 사역이 되어버려 실적이 우선되다 보니까 교회 안에 분란이 생겼고 가정이 삐걱거렸습니다. 결국 손쓸 틈도 없이 모든 성도들이 빠져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세 가정이 이혼까지 이르게 되었고, 저는 큰 낙심이 되었습니다. 회복하려고 해도 다시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며 목회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다른 교회에 청빙 제의가 와서 지원까지 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또 둘째 딸이 뇌종양 진단을 받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막힌 듯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아내는 힘이 없이 목회하는 저를 책망하며 괴로워했고, 어느 날에는 교회 벽에 머리를 박는 자해까지 하는 극심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막힌 상황이 되고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문제일까’ 묵상하던 중에 큐티 책을 통해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이 그 말씀 나눔을 정말 좋아했고, 수많은 지금은 교인의 수는 많지는 않지만 교회 분위기가 너무 따뜻하고 밝아지고 행복합니다. 얼마 전 돌발성 난청으로 치료를 받던 중 뇌동맥류가 발견되어서 또 치료 과정을 겪는데 그 치료 과정을 통해서 몇 년 전부터 품고 있던 목회자 세미나의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최근에 교회 수련회에서 둘러앉아 삶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평소 과묵하신 한 여자 집사님 한 분이 갑자기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남편 몰래 억 단위의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했다가 실패했습니다. 남편이 알면 이혼 당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시는 거예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 후에 다른 교인들이 자신도 그렇다고.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솔직히 나누며 그날 밤은 정말 자유롭고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우리들교회에 꼭 가봐야 되겠다.’ 그래서 처음 우리들교회에 와서 강의를 듣는데 (이번 목세 때 처음 오셔서 강의를 들으셨어요) ‘나는 의인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제 태도가 얼마나 큰 문제였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내도 이런 저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와 아내의 결혼은 의인과 의인의 결혼이었기 때문에 서로 판단하고 정죄했던 것이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나눔 중에 수련회에서 어떠한 성도님이 “큰 빚을 남편 몰래 지게 되고 그것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다 잃게 되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집에 큰 일이 생기지만 그리고 어디에서 고백했어요? 혼자 끙끙 앓고 혼자서 자복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앞에서 나눴던 거예요. 왜 그럴까요? 남편보다 하나님 앞에 아뢰고,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 편에서 고백하는 것이 진짜 자복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러자 어떤 결과가 있었어요? 하나 둘씩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이런 공동체의 고백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날 밤 전 교회 수련회 나눔의 시간에 성령의 세력, 성령의 흥왕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적용 질문드리겠습니다.
Q. 나의 회개는 ‘하나님 편에서 하는 자복’입니까, ‘감정의 편에서 하는 후회’입니까?
Q. 최근에 가장 ‘큰 값’을 치르면서 얻어낸 세력과 흥왕은 무엇입니까?
Q. 아직까지 ‘이고 지고 모으면서’ 불사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값을 치르겠다고 결단하시겠습니까?
제가 작년 봄에 주일에 여기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설교를 할 때 마지막 저의 적용과 결단으로 '제가 이고 지고 모으고 있던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나누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제 신발 사이즈도 알려드리고, 옷의 수치도 알려드렸습니다. 정말 인기가 많았어요. 수많은 우리들교회의 성도님들이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해서 그렇게 나누었습니다.
한 사역자님은 저보고 “설교 시간에 당근 나눔을 그렇게 하면 어떡하냐? 개인적인 물건을 그렇게 나눔하면 되냐”라고 이야기도 하셨어요. 자, 이랬던 제가 이제는 주었으니 뭘 해야 될까요? 받아야 되겠습니다! 기브 앤 테이크를 좀 해봐야 되겠다. 특히나 지금 움찔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아마 저한테 물건 받아 가셨던 분들 같아요. 제가 택배까지 보내면서 보내드렸거든요. 뭐 다른 것을 제가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에게 기도 부탁을 드리고 성도님들의 기도의 응원을 받고 싶습니다. 가장 첫 번째는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지금처럼 날마다의 말씀으로 매일의 은혜를 누리는 사역자, 기쁨의 사역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저희 가족 모두가 잘 정착해서 저희 가족이 먼저 손으로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 그래서 한 영혼 한 사람이 주께로 인도되는 가정의 목장이 그 사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라는 새로운 직무에 제가 기도의 값을 치르고요. 또 적용하는 값을 치르고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라고 하는 이 고백을 진짜 삶으로 손수건과 앞치마 그리고 나의 것들을 오늘 말씀처럼 불살라 없애버리는 그런 고백이 있는 값을 치를 수 있게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오늘 말씀에 14절을 보니까 스게와와 일곱 아들이 바울이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고 짝퉁으로 따라 합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어떤 말씀이요? ‘너도 짝퉁을 한번 해 봐라. 한번 따라 해 봐라. 강스게와 되어 봐라.’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벌거벗으며 집을 떠나더라’라고 나와져 있습니다. 근데 결론은 말씀으로 힘을 얻어 흥왕하고 세력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꼭 기도 부탁드립니다. 스게와 같이 따라 하고 유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모든 성도님들의 세력과 힘을 얻어서 새로운 곳에 가서 잘 정착하고 그곳에서 복음 사역 잘 감당할 수 있기를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말씀의 흥왕과 세력이 있으려면 첫 번째로 날마다 말씀이 선포되는 우리들 서원과 같은 공동체 안에서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탁드리고 당부드립니다. 우리들 서원이 있는 것에 감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 이곳에 하나님이 나를 이 서원에 불러주신 것, 날마다 주시는 말씀이 살아 있는 곳에 나를 불러주셨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로 손으로 수고하여 손수건과 눈물을 닦아 주고 앞치마로 치부를 덮어주는 목장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말씀의 흥왕과 그 세력이 있으려면 하나님 편에서 값을 치르면서 자복할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의 말씀 우리의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이곳은 주님을 위한 자리
내가 기도하는 모든 땅 위에서
하나님 예배 받을 그날을 고대하네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이곳은 주님을 위한 자리
내가 기도하는 모든 땅 위에서
하나님 예배 받을 그날을 고대하네
나의 노래로 주님의 성전을 지으리
높임을 받으소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 거하신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두 손 들어 주님의 보좌를 만들고
온 맘 다해 경배하리
그룹 날개 사이에 임하신 것처럼
내 위에 임하소서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이곳은 주님을 위한 자리
내가 기도하는 모든 땅 위에서
하나님 예배 받을 그날을 고대하네
나의 노래로 주님의 성전을 지으리
높임을 받으소서
이스라엘의 찬송 중 거하신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두 손 들어 주님의 보좌를 만들고
온 맘 다해 경배하리
그룹 날개 사이에 임하신 것처럼
내 위에 임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이곳에 섰으니
이 땅을 치유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주를 높이리다
열방들아 주님을 송축할지어다
그 발 아래 입 맞추라
영원한 통치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는 위대하신 왕
열방들아 주님을 송축할지어다
그 발 아래 입 맞추라
영원한 통치자 주 예수 그리스도
그는 위대하신 왕
기도제목 우리 이 시간에 합심하여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길 바랍니다. 주여, 제가 우리들 서원에 있는 것을 더욱 감사하게 하시고, 날마다 주시는 말씀을 믿고 살고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뻣뻣하고 불편한 사람에서 부드럽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 편한 사람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여, 목장에서 입으로 하는 수고가 아니라 손이 가는 수고를 하는 목장이 되게 하여 주시고, 눈물과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과 같은 적용, 다 같이 모여서 죄인의 죄를 덮어 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앞치마와 같은 적용이 있는 목장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여, 죄를 자백하고 고백하오니 이전의 죄악들을 끊어버리게 하여 주시고 아무리 값이 비싸더라 할지라도 불사를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질기고 질긴 중독을 이제는 잘라내어 많은 사람들을 보는 앞에서 불태워 버릴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우리 다 같이 주의 이름 부르시고 함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여전히 세상의 흥왕이 좋아서 주의 사역을 일로만 하려고 했던 죄인입니다. 이런 뻣뻣하고 불편한 목사를 그래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셔서 날마다 말씀 있는 공동체 우리들 서원으로 불러주시고, 4년이란 시간 동안 담임 목사님의 매일의 말씀과 공동체가 양육해 주셔서 그 사랑과 양육을 받게 해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 이제 이렇게 살아난 이야기가 간증이 되고 복음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회개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평생을 이고 지고 살면서 이것이 나에게 평안을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 불사를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아무리 비싼 값이라 할지라도 값을 치르는 적용을 하게 하여 주시고, 결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힘 주시옵소서. 그렇게 주님 앞에 결단하고 적용하기 위해 주님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생명과 같은 것들을 구별하여 주께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으로 드린 각양의 헌금을 받아주시고, 드린 이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일터와 프로젝트와 학업 위에 주의 놀라우신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하나님께는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는 나눠줄 것만 있는 인생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려면,
1. 날마다 말씀이 있는 우리들 서원이 필요합니다(8-9절).
Q. 날마다 말씀으로 믿고 살고 누리나요, 반대로 날마다 잔소리로 의심하고 죽이고 불안해하나요?
Q. 나는 다른 사람에게 뻣뻣하니 불편한 존재인가요, 부드러워서 다른 사람들이 같이 하고 싶은 존재인가요?
Q. 날마다의 말씀이 나를 불편하게 하나요? 예전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나를 여유롭게 하나요? 여전히 불편하다면 왜 그럴까요?
2. 손이 가는 수고가 있는 목장에 있어야 합니다(11-12절).
Q. 내가 목장에서 경험했던 ‘손수건과 앞치마’는 무엇인가요?
Q. 나는 뺨을 맞으면 화가 나나요, ‘이번 일이 손수건의 적용으로 쓰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나나요?
Q. 나의 손수건과 앞치마는 너무 깨끗한가요, 목원의 ‘땀과 눈물, 콧물’의 흔적들이 남아 있나요?
3.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18-20절).
Q. 나의 회개는 ‘하나님 편에서 하는 자복’입니까, ‘감정의 편에서 하는 후회’입니까?
Q. 최근에 가장 ‘큰 값’을 치르면서 얻어낸 세력과 흥왕은 무엇입니까?
Q. 아직까지 ‘이고 지고 모으면서’ 불사르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값을 치르겠다고 결단하시겠습니까?
**** 기도
A
1.용서 할 수 없는 슬픔까지 모두 위로해 주시고 상처가 별이되어 많은 사람 살리는 약재료 되도록
2.양교는 잘하지 않고 한줄 숙제 하여 완주 할 수 있는 힘과 지혜 주시도록
B
1.동생이 신결혼 할 수 있도록 중보하고 가족들에게 참 복음 들어가서 모두 우리들 서원으로 올 수 있도록
C
1.진행하는 프로젝트 주님께 맡기고, 시작부터 끝까지 보호해 주시도록
D
1.아버지에게 새신장 새생명 허락해 주시고 모든 아픔과 슬픔 거둬가 주시도록
2.한국에 있는 동안 바울이 전한 두란노 서원의 은혜 믿고 누릴 수 있는 약속의 말씀 주시도록
E
1. 중보에 힘쓰게 해주세요
F
1.여러가지 프로젝트들의 시작도 마감도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공사와 준비 과정 가운데 도움 주시도록
G
1.귀국 할 수 있게 해주신것에 감사하고, 보내 주신곳에서 남은 것을 보며 한주 보내도록
H
1.회원 가입이 어려운데 해낼 수 있는 용기 주시고, 이력서 질문 적어오고, 큐티 제목 적도록
2.남겨주신 것들 하나씩 찾아 보고 감사함으로 하루만 살도록
I
1. 새로운 수업 커리큘럼 정해야하는데 학생위해 기도하고정하길. 지혜 주시길
2. 여전한방식으로 일상생활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