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설교
2025.10.12 주일예배 사도행전 14:19~28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1. 둘러선 제자들이 있습니다.
19~20절
19절을 이해하기 위해 큐티한 내용들을 집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13장 부터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됩니다. 12장을 끝으로 베드로는 사라집니다.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시작 됩니다. 어떠한 전환이 아니라, 복음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사마리아에서 이방선교로 갑니다.
14장에서 안디옥 교회가 등장 합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라 할수있는 바나바 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점점 부흥을 하니 동역자가 부족해 바울을 부릅니다. 그리고 이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께서 말씀 하십니다. 시키시는 일을 위해 바울과 바나바를 세우라 합니다. 시키시는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선교 여행이 시작됩니다. 성령의 부르심입니다. 1차에서 끝나면 안됩니다. 2차, 3차 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구브로 섬의 바보에서 총독을 전도하고, 버가로 갑니다. 버가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는데, 마가라는 요한이 돌아갑니다. 배신을 합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은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갑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의 명 설교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설교가 끝나니 영접하는 사람도 나오지만 반대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피해서 이고니온에 갑니다. 오래 있어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자가 생깁니다. 또한 반대하는 세력도 일어납니다.
반대하는 세력이 일어난다는 것은 복음이 제대로 전달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니 피해서 간 곳이 루스드라 입니다. 여기서 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과 바나바를 헤르메스와 제우스 라고 합니다. 신이다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아니다 하면서 갑니다.
오늘 본문이 이후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이 돌을 던집니다. 그리고 죽은 줄 알고 바울을 시외로 끌어 냅니다. 우리가 추석때 복음을 전했을때, 다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모습입니다.
저도 대학 때, 거지 전도 여행을 한적이 있습니다. 어느 시골 지역에 던져놓고, 돈은 가져 놓지 않고 전도만 하면서 밥은 구걸하면서 먹습니다. 이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도 많이 경험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여서 귀하게 대접하는 분도 계신가 하면 문앞에서 냉수를 뿌리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보자마자 소금을 뿌리십니다. 어떤 고을은 큰 불상이 꽉 잡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통해서 확장되고 있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도 어떤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죽어서 들어감과 동시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임합니다. 우리는 천국도 들어가고 지옥도 들어간다 생각하는데, 맞는 동시에 완벽한것은 아닙니다. CS루이스는 지옥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삶을 통해 스스로 만든 결과라고 하고, 지옥문은 안으로 잠긴다 합니다. 지옥에 간 사람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 내가 문을 잠그고 나 홀로 있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그렇기에 혼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지옥이 임하는 것입니다.
자기 선택과 집착으로 스스로 그곳에 머무는 것 입니다. 지옥은 내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오는 곳입니다. 천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들어가는 곳과 동시에 임하는 곳입니다. 도착하는 곳이자 하나님과 일치로 인해, 그 실체에 참여하게 되는 곳입니다. 단순히 들어가는 곳을 넘어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는 것이고, 이것이 점점 확장되는 것입니다.
지옥은 스스로 오는 곳이고, 천국은 안으로 확장되는 곳이라고 CS 루이스는 표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는 곳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에, 가정에 올때, 강한 반발이 임합니다. 이미 이곳에 내 나라가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라가 세워져 있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는 굉장히 강한 반발이 일어납니다. 한 나라가 멸망해야 한 나라가 세워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니 강한 반발로 유대인들이 돌을 던집니다. 내 나라 안에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아 입니다. 내 죄성, 내 자아 한 나라가 무너져야 한 나라가 세워집니다.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집니다. 영이 세워진다면 무너진 육도 다시 세워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전파 될 때, 내가 항복해야 합니다. 저야 합니다. 지지 않으면 돌을 던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극심한 반대는 바로 고난입니다. 극심한 반대가 일어나면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추석 때, 집값, 부동산 이야기 등만 합니다. 반발이 안일어 납니다. 복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화평만 있으면 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은 모든 분들에게 이미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돌로 친 사람들, 이 사람들이 바울을 미워했다 하는 표현이 없습니다.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밖에 버렸는데, 바울이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표현이 있습니다. 일어나서 다시 나를 박해한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바울이 돌을 맞았음에도, 무시 당했음에도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동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년전에 바울은 돌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돌을 던지는 사람을 응원한 사람입니다. 함께 돌을 던지는데 동조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시외로 끌려가 내침을 받았을 때는, 스스로 기독교 인들을 감옥으로 끌고 들어가고, 죽이기 까지 했습니다. 내가 살인자고 박해자인지 아는 사람, 죄인인 지 아는 사람만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런 나를 주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다. 돌을 던지는 이 상황 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한 줄 아는 사람이 툭툭 털고 일어나 복음을 다시 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재산을 다 날린 남편을 평생 원망했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이 망하기 위해 기도를 했는데, 망하면 바람은 안 피겠지 했는데, 망하고 나서도 바람을 피웠다고 합니다. 망했음에도 춤을 추면서 바람을 핀 남편을 평생 원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와서 내 죄가 보이니, 이 남편이 이해가 되었다고 합니다. 간증을 들으며 남편도 그렇게 망했을 때, 죽고 싶었겠구나 하며 이해가 되고, 살아 있어준 남편이 너무 고맙고, 그 남편에게 늘 돌을 던진 남편에게 미안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내 죄가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시다. 스데반을 죽이려고 둘러싼 그곳에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복음이 확장되는 곳에는 둘러싼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둘러싼 그들이 비록 돌을 던지는 사람이었지만 한 사람이 스데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한사람, 사도바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을 둘러싼 그들중에 제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 중에 디모데가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박해를 받는 그 현장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둘러싼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눈물을 누군가 보고 있는 것 입니다. 한 사람은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시를 좋아합니다.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안에 벼락 몇 개로 시작됩니다. 천둥, 벼락, 태풍을 통해 한 사람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바람난 남편의 집에 찾아가는데 너무 두렵다고 합니다. 남편 없는 시댁을 찾아 가는데, 복음에 문을 닫고 있는 어머니를 보는게 너무 두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함께 간 딸이 있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실패를 했어도 보고 있는 딸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바울 말고 또 누가 있나요? 스데반 을 죽이려 모든 사람이 나를 둘러싼 그 때,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 추석 때 돌을 맞고 돌아오셨나요? 화기애애 했나요? 다시는 안간다 하나요? 툭툭 털고 바울처럼 다시 들어가나요?
- 내 옆에 가족들은 나를 보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나요? 돈과 학벌과 세상 성공을 사모하나요?
2, 돌아가야 합니다.
21절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온길을 돌아갑니다. 더베에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 더베라는 도시가 1차 선교여행의 종착지입니다. 더베에서 1차 선교 여행이 끝이 납니다. 여기서 다시 시리아 안디옥으로 가야 합니다. 더베에서 바울의 고향인 다소로 가서 안디옥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 있는데, 사도 바울은 온길을 다시 돌아갑니다. 죽을 뻔한 루스드라로 가고, 나를 죽이려 한 그들이 온 이고니온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우리를 박해했던 곳으로 돌아가길 싫어 합니다. 저도 아버지와 함께 있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제 고향에 도착하면 바닷가의 습한 공기와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가 있습니다. 너무 가기 싫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아버지가 감옥갔다 오시고, 어머니가 떠나고 했을 때, 아버지가 거울을 보시면서 자기 모습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리고 칼로 자기 코를 베어버렸습니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정도로 피와 욕설이 난무하던 곳인데, 거기로 돌아가기가 너무 싫습니다. 죽이려고 했던 그곳으로 사도 바울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왜 돌아가나요?
22절
왜 돌아가나요? 자기가 복음을 전한 그곳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내용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한다는 그 말을 하기 위해 돌아갑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믿음을 굳게 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한다는데, 환란을 겪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이해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아닙니다. 조건부가 아닙니다. 들어가다는 원어의 시제를 살펴보면 아우리스트 시제라고 합니다. 한글로 무정시제 입니다. 현재, 과거, 미래, 한 시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진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의 시제를 말하면서 특정 기간을 거쳐서 이루어진 일 이라 할때, 이 시제를 씁니다. 쉽게 말하면 과거든 미래든 발생했다는 특징을 가지면 아우리스트 시제를 씁니다.
즉 들어가려면이 아니라, 반드시 들어 갈 사람으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 그리고 임할 사람 에게는 환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가 나에게 임했고, 임할 것이고, 반드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환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내 믿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죄인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돌아갔다고 합니다. 택자들은 이미 환란을 겪었습니다. 과거에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앞으로도 겪었지만 바울이 돌아감으로 믿음이 굳건해 집니다. 우리도 돌아가야 합니다.
환란을 우리의 모든 시간을 단절 시킬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돌아가나요? 기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다시 돌아가서 해석한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는 것입니다. 덮어두면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에게 반드시 일어나는 그 환란의 시간으로 반드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덮어둔 상처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못합니다. 직면해야 합니다. 이 상처를 직면하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저도 그것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제 방어기제가 회피이고, 유머입니다. 유머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게 아니라, 실없는 소리를 내뱉습니다. 너무 힘든 그 순간을 유머로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가 회피한 그곳으로 돌아가라 합니다. 직면하라 합니다.
우리가 덮어둔 그 과거의 상처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껴안아 주어야 합니다. 지금 해석한 내가 그때의 나를 껴안아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미워하면 자녀는 부모가 아닌 자기를 미워합니다. 우리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알려주나요?
23절
돌아가서 사도바울이 한 일은 장로들을 세웁니다. 장로들은 말씀을 맡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이 장로들에게 그들을 위탁했다 합니다. 우리가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로로 세움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돌아가기 시기는 고등학생때였습니다. 제 고등학교 시절은 그냥 블랭크 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고등부 사역을 하라고 하십니다. 가서 사역을하고 심방을 하니, 저와 같은 아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통해 비어진 제 고등학생 시절이 채워졌습니다. 제 아내가 소년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데, 제 아내도 너무 힘든 시기가 초등학생 시기였습니다.
내가 정말 돌아가기 싫었던 그 시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니 내 믿음이 굳건해 집니다. 환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임했는지 보이니 믿음이 굳건해 지는 것입니다.
- 나의 가장 어두운 시절이 언제인가요? 회피하고 덮어두었던 깊은 상처는 무엇입니까?
- 이 모든 사건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에게 주신 사건이 인정이 되시나요?
- 내가 돌아갈 곳은 어디입니까?
3. 보고할 교회가 있습니다.
26~28절
다시 온길을 되돌아 갑니다. 어디까지 되돌아 가냐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다시 산맥을 넘어서 버가 까지 돌아갑니다. 그리고 여기서 배를 타고 시리아 안디옥으로 나아갑니다.
안디옥이 2군데가 나옵니다. 바울은 늘 시리아 안디옥에서 출발합니다. 설교한 곳이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27절에 보면 시리아 안디옥에 도착합니다. 이 안디옥이라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어떤 곳 인가요? 바나바는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이끈 사람입니다. 그리고 니게르 라는 시몬입니다. 흑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한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사람을 구레네 시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흑인이었던 루기오 가 나옵니다. 그리고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엘입니다. 그리고 및 사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교회가 목장 같습니다. 나는 누구에 속하나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안디옥 교회에 바울이 도착해서 모라고 하나요? 27절에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것을 보고 한다고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모든 걸 한것 같은데,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이라고 보고합니다.
원어에는 하나님이 하신일을 3인칭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도 여셨다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한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셨고, 그 이유가 이방인의 믿음의 문을 열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내 삶에 일어난 모든 일이 이방인이 었던 나의 문을 열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교회에 보고 해야 합니다. 즉 목장에 간증을 해야 합니다. 내가 간증 할 수록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되는 것입니다. 나의 문을 연것 뿐 아니라, 내 옆에 이방인의 문도 열리는 것입니다.
내 나라가 망하고 하나님 나라가 열린 것을 늘 간증하고 보고해야 합니다. 보고 하면 보고 할 수 록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하나님이 하셨다 입니다. 그리고 그 상급은 바로 하나님 한 분입니다. 이미 최고의 상급을 받았고, 받을 것이고, 반드시 주시는 그 분입니다.
수많은 박해와 오래 머물며 가르친 양육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내 믿음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환란을 통해 이방인의 문을 활짝여셔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 열리지 않는 이방인의 문은 누구인가요? 보고하며 보고받을 목장이 있나요? 그 목장으로 긴 방학을 마치고 나아가고 있나요?
- 아직도 간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내가 보고할 때 하나님께서 그 문을 여실 것을 믿으시나요?
2.목장모임 장소 및 참석인원
: 베이커베이커 삼성역점 / 총 4명(목자, 부목자, 목원1,2)
3.기도제목
A.
1. 가족과 목장식구들 영혼 구원을 위해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2. 신교제와 신결혼 허락해주시도록
3. 커리어에 기름부어 주시도록
4. 등과 목 스트레칭 충분히 꾸준히 할 수 있도록
5. 가족과 예수 안에서 평안한 시간 보낼 수 있도록
B.
1.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며 말씀과 기도로 살도록
2. 가족모두가 건강하고 어려움속에서도 서로 지지할수 있도록
3.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용서와 사랑으로 대할수 있도록
C.
1. 1차시험날까지 건강과 체력 붙들어주시길
2. 최종 티오 숫자로 두려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길
3. 시험날까지 최선을 다해 공부할 수 있도록
4. 그럼에도 합격의 은혜가 있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