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25.10.12.(주일) 사도행전 14:19-28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김성우목사님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하나님 아버지, 긴 명절을 끝내고 거룩한 주일을 구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 우리가 사도행전 말씀 앞에 섰습니다. 주님, 이 시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가 참 담임 목사님 통해서 미주에 흘러간 귀한 은혜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이제 등장을 해서 사도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이 끝나고 교회에 보고하는 본문입니다. 정말로 우리들교회가 이 본문과 함께 가는 교회가 아닌가 또 오늘 생각이 듭니다. 정말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긴 연휴가 끝났죠.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제 긴 명절을 끝내고 보고해야 될 목장으로 가야 되겠죠. 우리가 추석 때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선교 여행인 것 같습니다.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이죠. 가기 전에 많은 성도님들이 기도 부탁도 하고 또 제가 기도도 해드리고 하기도 했는데, 어떤 집사님은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집을 떠났는데 이혼한 그 남편의 시댁을 간다고 기도 부탁도 하시며 너무 두려우셔서 울면서 기도 부탁을 하시고, 어떤 분은 이혼을 했는데 이혼한 남편과 아들과 모여서 거기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시고, 어떤 분은 남편이 모든 걸 다 탕진하고 지금도 이제 남아 있는 것까지 빚을 써가지고 내는데 그 남편을 만나러 가는 것이 너무 두렵다고 기도 부탁도 하시고, 어떤 청년은 너무 보기 싫은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그런 또 소식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가나요? 이것이 전도이고 선교이고 하나님 나라의 일이죠.
우리가 힘든 가족들, 내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이것이 십자가의 권세입니다. 이 십자가 위에서 영원한 피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았잖아요. 그 십자가의 권세가 죄 용서함의 권세이듯이 피해를 받은, 그리고 정말 상처 입은 우리들이 이 복음을 전할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영원한 가해자인 나를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가 만나는 그 식구들을 용서해 줄 권세를, 하늘의 권세를 우리가 받은 것이죠. 그리고 이 권세를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이 끝나는 본문이에요. 정말로 이 본문을 통해서 내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고 들어가는지 우리가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첫 번째로 둘러선 제자들이 있습니다.(19-20절)
19절에서 20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19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쭉 큐티해 온 내용들을 한번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13장부터 사도 바울의 전도가 시작됩니다. 1차 선교 여행이 시작되는데 지난주 주일 본문 말씀이 12장이었죠. 12장을 끝으로 베드로는 이제 사라집니다. 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가 일어날 때 잠깐 베드로의 발언이 나오고 이제부터 사도 바울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것이 어떤 전환이 아니라 복음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의 지도자였던 베드로에서 이제는 사마리아, 사마리아에서 이방으로, 이제 이방 선교는 사도 바울이 그 배턴(baton)을 넘겨받는 것이죠.
13장에서 이제 안디옥 교회가 등장합니다. 이 안디옥 교회의 담임 목사라고 할 수 있는, 그리고 이 안디옥 교회에 말씀을 증거하는 바나바.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섬겼는데 이 안디옥 교회가 점차 부흥을 하자 (교회를 섬길 사람이) 부족한 거예요. 이때 장로들을 세우고 교사를 세우는 데 한 사람을 부릅니다. 그 사람이 누구죠? 바울이죠. 동역자가 필요해서 바울을 택해서 부릅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 큰 말씀의 사역이 일어나죠. 이 안디옥 교회 가운데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성령께서 말씀하세요. 그리고 이 ‘시키시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이제는 복음을 이방에 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13장 3절에 (안디옥 교회 사람들이) 두 사람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안수하며 보내는데 이것이 사도 바울 선교 여행의 출발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보내심’이죠.
이렇게 1차 여행이 끝나고 또 2차, 3차, 4차까지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하는데 우리도 가족들을 향해 나아갈 때 1차로 끝나선 안 돼요. 2차, 3차, 4차 가야 됩니다.
사도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을 제가 잠깐 지도로 보여드리면,
시리아 안디옥에서 출발을 합니다. 시리아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배를 타고 구브로라는 섬으로 들어갑니다. 이 구브로 섬에 처음 도착한 곳이 살라미. 살라미를 지나서 구브로 섬을 관통합니다. 이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에요. 구브로 섬을 관통해서 바보에 이릅니다. 바보라고 읽으면 안 돼요. 바보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누굴 만나죠?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을 만납니다. 그 옆에 마술사가 있죠. 마술사 엘루마. 사도 바울이 그 마술사의 눈을 멀게 함으로 이 서기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그리고 구브로 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죠. 북쪽으로 올라가서 처음 방문하게 된 도시가 버가라는 도시입니다. 이 버가라는 도시에서 굉장히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다들 기억하시나요? 모르시나요? 어떤 일이 일어나죠? 버가에서 뭐가 있네요? (제가 저희 고등부였으면 문상이라도 하나 드릴 텐데^^) 버가라는 곳에서 마가라 하는 요한이 돌아가 버립니다. 배신을 하죠. 왜냐하면 버가에서 이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큰 토로스 산맥, 저기 해안선 조금 안쪽으로부터 동에서 서로 뻗은 이곳에 (저도 가보긴 했는데) 굉장히 높은 토로스 산맥이 있습니다. 마가가 이 산맥이 너무 힘들어서, 또는 너무 무시했던 사도 바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못해서 돌아갔다는 이런 설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가가 그냥 돌아가 버려요. 그러나 바나바와 바울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이 산맥을 넘어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갑니다.
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이제 사도 바울의 굉장한 명설교가 나옵니다. 굉장히 긴 본문을 할애했습니다. 우리가 다 큐티를 했죠. 정말로 썩어짐을 당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를 합니다. 그 설교가 끝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일어나지만 동시에 이들을 반대하는 세력도 일어나죠. 이 반대하는 세력들을 피해서 간 곳이 이고니온입니다.
이고니온에서는 마치 신문 보도처럼 설교가 아니라 또 다른 시각으로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데 그 기록에 또 중요한 내용이 있죠. “오래 있어 가르쳤다”라고 합니다. 이고니온에서 오래 있어 가르치니 제자가 생기죠. 그렇게 오래 있어서 복음을 증거하니 제자가 생기는데 또 누가 있죠? 반대하는 세력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하는 세력이 일어난다는 것은 복음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거예요. 반대하는 세력만 일어나면 복음이 전달된 게 아니에요. 반대하는 세력과 함께 믿는 자들도 많아지죠. (그런데 다 반대하면 그건 반대입니다^^) 함께 이렇게 일어났는데 또 반대해서 이 이고니온에서도 이제 돌로 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니까 피해서 간 곳이 루스드라입니다.
근데 이 루스드라도 (어제 본문이었죠. 엊그제 본문 다 기억하시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께서 증언하여 기적과 이사를 베푸시는데 앉은뱅이가 일어나 버리죠. 날 때부터 일어날 수 없었던 한 사람이 일어나니 이 루스드라 성이 깜짝 놀란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하냐면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향해서 바나바를 ‘제우스(쓰스)’, 사도 바울을 ‘히메’라고 합니다. ‘히메’는 뭐냐면 우리가 좋아하는 에르메스, ‘헤르메스’입니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라고 하는 거예요. “신이다!!” 이러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아니다” 하며 이제 가는데.
오늘 본문이 어떤 본문이냐면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니 또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충동해서 바나바와 바울을 향해서 돌을 던지는데 19절에 이렇게 시작하죠.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쳐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19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본문이에요. 우리가 복음을 추석 때 전했을 때 어땠나요? 다 환영하지는 않았죠. 어떤 사람은 반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듣지 않기도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모습입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는 이제 ‘거지 전도 여행’이라는 게 있었어요. 제가 한 서너 번 정도 갔던 기억이 있는데 이 거지 전도 여행이 뭐냐 하면, 어떤 시골 지역에 그냥 툭 떨어뜨립니다. 그러면서 일주일이나 한 2주 동안 돈을 하나도 가지지 않고 전도만 하면서 밥은 어떻게 먹느냐 구걸하면서 먹는 거예요. 시골 교회 문을 두드리기도 하고, 또 복음을 전한 집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이때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도 많이 경험을 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여서 귀하게 대접하시는 분들도 계신가 하면, 갔는데 복음을 전했는데 문 앞에서 막 냉수를 뿌리시는 분도 계십니다. 냉수를 뿌리시고. 어떤 분은 기억나는데 복음을 전했는데 보자마자 소금을 뿌리시기도 하고, 어떤 고을은 큰 불상이 그 고을을 꽉 잡고 있는 곳도 있고. 어떻습니까? 복음이 전해지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반대 세력이 일어납니다. 이때 우리는 기억해야 돼요.
‘아!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통해서 확장되고 있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들어간다’라고 생각을 하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 그 십자가 앞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믿음도 어떤 조건이 아닙니다. 내가 믿어서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뭐라고 얘기합니까? ‘우리가 그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이죠! 은혜입니다! 은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은혜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약속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가 죽어서 들어감과 동시에 또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거예요. 들어감과 동시에 오는 거예요. 우리는 천국도 들어가고 지옥도 들어간다고, 내가 들어간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맞는 동시에 완벽한 건 아닙니다.
유명한 신학자 C.S. 루이스가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 [더 그레이트 디볼스])>라는 책에서 “지옥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온 결과이며 스스로 만든 현실이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굉장히 독특한 문장으로 표현을 했는데 “지옥 문은 안에서 잠긴다”라고 얘기를 해요. ‘안에서 잠긴다’라는 게 뭡니까? 내가 잠근다는 것이죠. 이 그레이트 디볼스를 읽어보면 지옥에 간 사람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람을 만나질 못해요. 지옥은 어떤 곳이냐? 내가 문을 잠그고 나 홀로 있는 것입니다. 둘러선 제자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있는 것.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 이혼하고, 관계를 끊어버리고, 목장도 끊어버리고. ‘나만 주님 믿으면 되지!’가 아니에요!! 나 홀로 있는 것. ★혼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지옥이 그냥 오는 거예요. 지옥이 임하는 겁니다. 내가 안에 들어가서 잠그는 것이죠. 자기 선택과 집착으로 스스로 그곳에 머무는 것이에요. 지옥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오는 곳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으면 오는 것이죠.
그럼 천국도 마찬가지예요. 천국도 내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시고.” 천국은 도착하는 곳이면서도 하나님과의 일치로 인해 인간이 점점 더 하나님의 말씀의 그 실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예요. 무슨 말이냐, 단순히 들어가는 곳을 넘어서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는 것이죠. 내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면 이것이 점점 점점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 ‘확장된다’는 것이 들어가는 거예요. 지옥은 스스로 오는 곳이고 천국은 안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C.S.루이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 표현이 있잖아요.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구름이 가는 건지, 달이 가는 건지, 오는 건지... 박목월 시인. (모르시나요? 다 아시죠?^^ )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는 것입니다. 통치가 임하는 거예요. 천국은 오는 겁니다. 이 땅에서 시작되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에 올 때! 내 가정에 올 때! 강한 반발이 일어나요. 왜냐하면 이미 이곳에 뭐가 있기 때문에? ★내 나라가 세워져 있기 때문에. 나의 나라가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는 굉장히 강한 반발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도 있잖아요. 문명이 충돌하고 나라와 나라가 만날 때, 전쟁이 일어나죠. 그리고 한 나라가 멸망해야 한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니 그 강한 반발로 유대인들은 돌을 던지는 것이죠. 자신들이 세웠던 나라! 그 안에 뭐가 있죠? 욕심이 있는 거죠. 이게 ‘자아’입니다. 내 욕심으로 세웠고 내가 거기서 권세를 누리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하나님 나라)가 오니 강한 반발로 돌을 던지는 거죠. ★내 죄성! 내 자아! 한 나라가 무너져야 한 나라가 세워집니다. 무엇입니까? 우리 담임 목사님이 늘 말씀하셨듯이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지는 것이죠. 그리고 영이 세워진다면 이 무너졌던 육도 다시 세워집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될 때 내가 항복해야 돼요. 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복하지 않으면 이 충돌로 돌을 던지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나라가 무너져야 되기 때문에... 환영하지 않게 돌로 치고 박해하는 이것이 뭡니까? 고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축복이에요. 극심한 반대가 일어났다면 기뻐하십시오! 내가 추석 때 갔는데, 정말 이 복음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고 반대가 일어났다면 기뻐하세요. 왜 기뻐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추석 때 집값 이야기, 금값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반발이 일어나나요? 안 일어나죠! 복음이 없기 때문에! 화기애애하면서 고스톱 치면서~ 술 마시면서~ 우리 성도님들은 그러지 않았을 거라 믿습니다. 뭐 그래도 돼요. 되기는 한데... 정말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이죠. 화평하게만 있다가 오면 되지 않습니다. 박해를 받으신 모든 분들의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돌로 침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고 있다! 이게 ‘들어간다’예요. “내가 복음을 전했는데 나를 돌로 쳐?” 이게 아니죠. 19절에서 20절을 다시 보면!
19b. ...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20a.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나를 돌로 친 사람들! ‘이 사람들을 바울이 미워했다’ 이런 표현이 없죠. 바울은 어떻습니까? 죽은 줄로 알고 질질 끌고 밖에다 버렸는데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툭툭 털고 일어나요. 그런데 툭툭 털고 일어난 그것보다 더 놀라운 표현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일어나서 어디로 갔나요? 다시 루스드라 성으로 들어갑니다. 나를 박해한 그곳, 내게 돌을 던진 그곳, 다시는 안 간다고 생각하는 그곳!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돌을 맞았음에도 말과 눈빛과 무시로... 우리 또 친척 집들 가면 얼마나 무시를 받습니까? 하나님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믿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무시를 받아요. 얼마나 무시 받습니까? 무시의 돌, 눈빛의 돌, 말의 돌을 맞고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합니다. 바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습니까? 바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한번 띵크를 해봤어요. 바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죠? 대단한 사람이라서? 아니에요! 바울이라서? 사도라서? 아니에요! 바울이 동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년 전에 바울이 어땠습니까? 돌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응원한 사람이었죠. 둘러싸서 그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스데반 선교사, 순교자 스데반 집사를 죽이려고 할 때 그 옆에 옷을 맡아 지키면서 함께 돌을 던지는 데 동조한 사람이었어요. 이것이 기억났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시외로 끌려가 내침을 당했을 때는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이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질질 끌고 가서 감옥에다 넣었죠. 살기 등등하여 그들을 감옥에 넣었을 뿐만이 아니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살인자요 내가 박해자임을 아는 사람만이 우리는 툭툭 털고 다시 들어갈 수 있는 것이죠. 내가 얼마나 얼마나 죄인인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돌을 던지는 사람을 바라보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나도 그랬다. 나도 옛날에는 훼방자요, 포악자요, 반대자요, 박해자였다. 나도 그랬다.”(딤전1:13) 그런데 이런 나를 우리 주님이 용서해 주신, 정말 이 상황, ★내게 돌을 던지는 이 상황이 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함을 아는 사람들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들이죠.
어떤 집사님이 재산을 다 날린 이 남편 집사님을 평생 원망했다고 합니다. 근데 망하기를 위해서 기도를 했는데 왜 기도를 했냐면 ‘망하면 바람은 안 피우겠지’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망하고 나서도 바람을 피시는 거예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돈이 없어도 바람을 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뭐냐? 그러니까 지루박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춤을 추는 거요. 끊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춤추시는 분들. 정말로 그렇게 망했음에도 춤을 추고 바람을 피우는 그 남편을 평생 원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내 죄가 보이니 이 남편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수억, 수십억 되는 재산을 잃어버렸을 때, ‘죽고 싶었다’라고 간증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 남편도 그 모든 사업장이 무너져 내려가고 재산을 잃어버렸을 때 죽고 싶었겠구나!’ 처음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남편이 이해가 되고 지금까지 살아있어 준 그 남편에게 너무 고맙고. 그런 남편을 향해서 늘 원망의 돌만 던졌던 자기 죄가 보이니 남편이 이제는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되니까 이제는 옆에서 남편이 화만 내도 그 남편의 모습이 너무 귀엽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 자리까지 내려가야죠. 내 죄가 보여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생각을 해봅시다. 스데반을 죽이려고 둘러싼 그 사람들 중에 그 한 사람! 스데반을 죽이려고 쭉 둘러싼 중에 그 한 사람 누가 있었죠? 사도 바울이 있었죠!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곳에는- 둘러싼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까 제가 얘기했죠. 지옥은 혼자 있는 곳이라고. (하나님 나라에는) 공동체가 있어요. 그리고 그 둘러싼 사람들 중에 한 사람! 비록 돌을 던지는 사람이었지만 그중에 한 사람이 스데반을 기억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스데반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 사도 바울에게도 임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스데반과 동일하게 돌로 침을 당하고 죽게 되었을 때 ‘둘러선 제자들이 있었다’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 둘러서 제자들 중에 누가 있었냐면 디모데가 여기에 있었던 거예요. 이 디모데가 루스드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2차 선교 여행 때는 바울이 다시 루스드라를 방문해서 디모데를 데리고 갑니다. 내가 돌에 맞고 내가 박해를 받는 그 현장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확장되고 있는 거예요. 둘러선 그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거예요!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돌을 맞는다는 것은 누군가 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저 사람은 돌을 던지지만 내 옆에 있는 한 사람 누구죠? 내 자녀, 내 가족. 이것을 보고 있는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증거 되어지고 확장 되어집니다. 나의 눈물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거예요. 한 사람은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참 시를 좋아하는데, 제가 이제 그 고등학교 때 굉장히 칠흑같이 어두울 때 썼던 시가 있어요. 그 시 제목이 ‘카오스’라는 시인데 제가 이걸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카오스가 뭐냐고 맥주 이름이냐고 이렇게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대학 때도 신춘문예를 참 많이 읽었습니다. 이제 제가 또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가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있는데 이 시가 이렇게 시작해요. 한번 띄워주시면,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뭐죠?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임하면서 한 사람이 세워진다는 것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이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한 그 시댁을 찾아가는데 너무 두렵다고 기도 부탁을 했어요. 너무 두려우신지 계속 우시더라고요. 그 시어머니가 너무 두렵고 이 피해자의 권세로 나아가야 되는데 시어머니는 여전히 이 복음에 있어서는 문을 딱 닫고 있으니 너무 두렵다는 거죠. 뭐 남편도 없고 시댁을 찾아간다는 것조차도. 이혼은 안 했나? 하여튼 남편이 집을 떠나버렸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 두려운데! 놀라운 게 뭐냐 하면 이 집사님과 함께 간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게 누구냐면 딸인 거예요! 이 집사님이 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복음을 전하고 그것이 실패했을지라도 그 옆에 누가 있죠? 딸이 보고 있는 거예요. 둘러선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이에요.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정말 벼락 몇 개가 우리 삶에 임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누가 있습니까? 스데반을 돌로 칠 때 그때 사도 바울이 그것을 지켜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사도 바울에게도 임했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돌로 치려고 둘러쌌을 때, 모든 사람이 나를 대적하는 것 같지만 누가 있습니까?
사도행전 7장 55절에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뭐죠? 우리 주님이 둘러싸 계신 것이죠. 우리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편에 서셨다! 벌떡 일어섰다!”라는 표현은 처음 나오는 표현이에요. 내가 돌로 침을 받고, 내가 정말로 복음을 전해서 환란과 박해를 받는 그때 우리 예수님이 벌떡 일어서서 우리를 보고 계신 것이죠. 둘러선 제자들, 반드시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추석 때 돌을 맞고 돌아오셨나요? 화기애애 했나요? 다시는 안 간다고 하고 있나요? 툭툭 털고 바울처럼 다시 일어나서 들어가나요?
Q. 내 옆에 가족들은 나를 보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나요? 돈과 학벌과 세상 성공을 사모하나요?
우리가 담임 목사님 설교의 간증을 많이 들었는데 우리 목사님의 어머님 이야기를 우리가 많이 들었었고 우리가 은혜를 받고 눈물을 또 많이 흘렸는데 우리 어머님이 어떻게 정말 새벽마다, 새벽 기도를 나가시고 끝나시면 교회 변소 청소를 하셨고 그 변소 청소를 하시고 집에 돌아오셔서 성도님들이 집에 오시면 늘 떡을 대접했다라는 것을 그걸 누가 보셨나요? 담임 목사님이 보셨죠!! 그리고 담임 목사님께서도 우리들 교회의 초창기 세워지기 이전에 13개의 목장을 한 주 동안 하신 거예요. 거의 매일 목장을 하시면서 식사를 대접하고 함께 말씀을 듣고 떡을 떼고. 이것이 우리들교회의 시초인 거죠. 이렇게 우리들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이 보고 있다는 것이죠. 그 한 사람을 세웁니다.
저도 저희 아버지가 소천할 때 아버지를 둘러섰어요. 둘러서면서 아버지 손을 꼭 붙잡고 있었는데 제일 많이 기억났던 것이 담임 목사님이 사부님께 복음을 전하는 거였어요. 그 둘러선 그것들을 우리가 듣고 우리가 그것을 함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죠.
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두 번째로 돌아가야 합니다.(21-23절)
21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더베까지 이른 바울과 바나바는 여기서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갑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을 맞고 피해서 이제 그 옆의 더베로 가요.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더베에 가서 다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 더베라는 도시가 1차 선교 여행의 종착지예요.
우리 지도를 한번 보여주시면,
더베 보이시죠? 이 더베에서 이제 1차 선교 여행이 끝이 납니다. 더베에서 이제 다시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야 되는데 보시면 더베에서 옆에 다소라고 보이시죠? 이 다소가 사도 바울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다소에서 조금만 더 가면 출발했던 수리아 안디옥이 보입니다. 그냥 옆에서 더베에서 다소로 가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갈 수도 있는데 사도 바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요. 이 더베에서 또 어디로 돌아갔냐면 루스드라로. 루스드라가 어떤 곳이죠? 돌을 던진 곳, 죽을 뻔한 곳 그리고 이 루스드라에서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갑니다. 이 이고니온과 안디옥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안디옥에서 그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온 거예요.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사람들을 충동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온 거예요. 자기를 박해하던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우리는 우리를 박해했던 곳. 남자들은 군대를 향하여 오줌도 안 싼다고 그러죠. 돌아가기를 싫어합니다.
저도 제가 아버지가 계셨던,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이렇게 버스를 타고 그곳에 딱 도착을 하면 제 고향 바닷가의 습한 공기가 확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특유의 냄새와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버스 터미널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이제 아버지가 행패를 부리시고 아버지가 술 취해서 욕설을 퍼부으셨던 곳이 쭉 보입니다. 너무 가기 싫었어요. 돌아가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아버지가 이제 감옥 갔다 오시고 어머니가 떠나고 이렇게 되었을 때 아버지가 이제 어느 날은 거울을 이렇게 보시면서 자기 모습이 너무 싫은 거예요. 아내도 떠나고, 모든 직장이 무너지고... 자기 모습이 너무 싫어서 거울을 보시고 칼로 자기 코를 베어버렸습니다. 피가 낭자했죠. 그래서 아버지가 이제 응급실에 가서 꿰매고 그래서 얼굴에 보면 굉장히 깊은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그 정도로 피와 욕설이 난무하던 곳에는 우리가 참 돌아가기가 싫어요. 말이 그냥 “돌을 던졌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지만 어떻습니까? 거의 죽기 직전까지... 거의 죽이려고 했던 곳이 루스드라예요. 죽이려고 했던 곳이 이고니온이고, 안디옥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요. 왜 돌아갑니까? 왜 돌아가죠? 22절에 나오죠. 22절을 함께 보시면
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왜 돌아갑니까? 자기가 복음을 전한 그곳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라” 그리고 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어떤 걸 가르칩니까? 사도 바울이 가르친 내용이 이거예요. 뭐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믿음을 굳게 하는 거예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얼핏 보면 이해가 안 돼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사실 제가 이 설교 제목을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게 제 설교 제목이었어요. 저희 아내가 이걸 보면서 “제발 제목만큼은 좀 숨 좀 쉬게 하자!^^ 그냥 환난도 아니고 많은 환난인데 우리 너무 힘들다.” 그래서 제가 이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으로 바꿔서 설교도 확 바뀌어 버렸어요. 그런데 이 바울이 돌아간 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인 거죠. 근데 우리가 얼핏 보기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이게 ‘환난을 겪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X)라고 이해를 할 수 있는데 이게 아니에요. 이 한글은 이렇게 이제 해석되죠. 마치 이것이 조건문처럼, “들어가려면! 환난이 있어야 된다!”(X) 이런 뜻이 아니라 이 ‘들어가다’라는 원어의 시제를 살펴보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생소한 시제인데 이게 어떠냐 하면 ‘아오리스트 시제’라고 합니다. ‘아오리스트 시제’ 한글로 ‘무정 시제’라고 합니다. 이게 뭐냐 하면 현재, 과거, 미래의 한 시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간 자체를 하나의 상으로 보는 것이죠. 하나의 그냥 사진으로 보는 겁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사진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의 시제를 말하면서 이것이 특정 기간을 거쳐서 이루어진 일. 이때 이 시제를 쓰죠. 조금 어렵나요? 이게 왜냐하면 라틴어에도 영어에도 한국어에도 없는 시제입니다. 고대 그리스어에만 있는 시제인데, 쉽게 말하면 과거든 미래든 ‘발생했다’는 특징을 가지면 이 아오리스트 시제를 씁니다. 그러니까 과거, 현재, 미래. 이것이 아니라 ‘들어가려면’이 아니라 ‘들어간 사람, 들어갈 사람, 반드시 들어갈 사람’ 이렇게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죠. 반드시 발생할 사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 그리고 임할 사람, 반드시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에게는 환난이 있다는 거죠. 이미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발생했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했고! 임할 것이고! 반드시 그 나라에 들어간다!” 이게 ‘들어가면’의 뜻이에요. 하나님이 택하셨고, 뜻하셨다는 것이죠. 그런 사람에게 환난이 있다고 합니다. 고난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고난은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려줘요. 이 고난을 통해서 내 믿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죄인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바울이 ‘돌아갔다’라고 이제 하잖아요. 이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갔다고 하잖아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 시작된 사람, 택한 사람들은 이미 환난을 겪었습니다. 과거에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지만 사도 바울이 다시 돌아가므로 어떻게 됩니까? 믿음이 굳건하게 되죠! 우리도 돌아가야 됩니다. 환난은 사람을 정말 죽이고, 무너뜨리고, 단절시키는... 너무 고통이죠. 우리의 모든 시간을 단절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환난이 있던 때로 다시 돌아가야 돼요. 어떻게 돌아갈 수 있습니까? 공간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기억이 있잖아요.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죠.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내 속에 더욱 확장이 됩니다. ★내가 다시 돌아가서 해석한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거예요. 그냥 덮어두면 안 됩니다. 그냥 덮어두고 “나는 모른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질 않아요. 내 환난의 시간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에게 반드시 일어나는 그 환난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야 돼요. 다시 되돌아가야 합니다. 기억을 통해서 내가 밟아왔던 시간들로 돌아가야 되는 것이죠. ★덮어둔 상처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못합니다. 직면해야 되는 것이죠. 이 직면이 굉장히 힘이 들어요. 내 상처를 다시 직면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저도 이 상처를 직면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드는데 그래서 제 방어 기제는 회피입니다. 회피. 또 제 방어 기제가 뭐냐 하면 유머예요. 너무 힘들고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유머를 합니다. 근데 그 유머가 막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그런 게 아니라 막 실없는 소리, 마음에도 없는 소리, 생각에도 없는 소리를 막 내뱉어요. 왜냐하면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죠. 정말 지옥 같았던 그 환경을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그 정말 그 시간들을 내가 직면하면 내가 살 수가 없기 때문에 회피하고 유머로 승화시켜버리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이제 조커(Joker)라는 영화가 있는데 조커가 그러잖아요. “Why so serious [와이 쏘 씨리어스]?” 이러잖아요. 맨날 이렇게 웃잖아요. 근데 그 조커도 과거를 유머로 회피해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회피했던 그곳으로 오늘 말씀은 “돌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직면하라” 직면하라. 정말로 우리가 덮어둔 그 과거의 상처 그곳에 돌아가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껴안아 주는 것이죠. 이게 아오리스트 시제-무정 시제-입니다. 하나의 장면으로. 지금의 시점이 아니라 지금 해석했던 내가 그때의 나를 껴안아주는 것이죠. 부모가 자녀를 미워하면 자녀는 부모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돌아가야 돼요. 어떻게 돌아갑니까? 오늘 23절에 그 방법을 알려줍니다. 23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돌아가서 사도 바울이 한 일이 뭐냐 하면 장로들을 세웠어요. 장로들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말씀을 맡은 사람들, 말씀을 가르친 사람들. 이 장로들을 세웠다는 것이 ‘그들이 믿는 그들의 주께 그들을 위탁했다’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돌아가는데 이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제가 생각을 해보니까 장로로 세움을 받는 거더라고요. 그럼 “내가 어떻게 장로를 세움을 받아?” 이게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는 자리로 가는 게 돌아가는 거더라고요.
제가 제일 돌아가기 싫었던 시절이 언제냐면 고등학교 시절이에요. 아버지 어머니와 그런 사건이 있었던 그런데 이것은 제가 그냥 덮어뒀습니다. 제 고등학교 시절은 그냥 빈칸이었어요. 블랭크, 비어 있는 시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작년에 이제 담임 목사님께서 저에게 어디로 가라 그랬냐면 “고등부로 가라” 이러시더라고요. 제 20년 사역 시간 동안 고등부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습니다. 피했던 것이죠. 제가 지원한 적도 없어요. 그런데 고등부를 가서 심방을 가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나하고 똑같은 아이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똑같은 과거의 아픔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 고등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내 이야기를 전하다보니까 제가 비어 있었던 그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죠.
저희 아내가 이제 소년부 교사를 한 8년째 하고 있는데 저희 아내가 제일 힘들었던 시절이 이제 소년부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이제 아버지가 집에 있는데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아버지의 머리채를 잡고 경찰서로 끌려갔던 그 현장을 아내가 목격했는데 그게 제일 큰 트라우마였다고 해요. 그리고 이제 다음 날 아버지가 경찰서로 끌려가고 간 그다음 날 학교에 딱 갔는데 모든 반 아이들이 아내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범죄자 딸이다! 범죄자 딸이다!” 이제 놀리는 거예요. 아내가 하루 종일 이 책상 위에 엎드려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 어머니가 강제 전학을 시켰다고 해요. 이 상처가 너무 커서 제가 그때 목장에서 제가 목자였는데 아내에게 “소년부 교사 섬겨라” 이러는데 막 난리를 피우는 거예요. “내가 왜 소년부 교사를 하냐고!” 막 했는데 지금 이제 9년째 하고 있습니다. 이 소년부 교사를 하며 내가 제일 고통스러웠던 내가 정말 돌아가기 싫었던 그곳에서 내 그 아이들을 바라보니 이것이 아오리스트 시제가 되어서 그 아이들을 껴안을 수 있는 것이죠. 이게 돌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돌아가니까 어떻게 됩니까? 믿음이 더 굳건해지는 것이죠. 그 환난이 해석되는 것입니다. 이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에 어떻게 임했는지 깨달아지는 거예요. 돌아가야 됩니다!
중등부에 어떤 선생님 한 분은 중학교 때 너무 왕따를 심하게 당해서 중학생 아이들이 너무 무서웠는데... 결혼을 하면서 아내가 중학교(중등부) 교사니까 자기도 따라오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너무 무섭다는 겁니다. (제가 봤을 때는 그 선생님이 더 무섭게 생겼거든요. 되게 덩치도 크고^^) 근데 자기가 중학교 때 너무 심한 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그런데 큐페에 가서 이 아이들의 삶을 들어보니 자기의 삶- 비어 있었던 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거죠. 너무 힘든 그 아이들의 그 가정을 방문하게 되니 그 눈물을 보니 이제는 이 아이들이 귀엽게 여겨진다고. 그리고 ★꽁꽁 숨겨놨던 그 피해와 상처 뒤에 숨어 있던 그 시간에 뭐가 임하게 된다는 거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이죠. 임한다는 것이 확장되는 겁니다. 내가 들어간다는 거예요. 이것이 약재료예요. 이것이 하나님이 너무 놀랍죠. 과거까지 우리 실패까지 하나님의 약재료로 쓴다는 겁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나의 가장 어두운 시절이 언제입니까? 회피하고 덮어두었던 깊은 상처는 무엇입니까?
Q. 이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에게 주신 사건임이 인정이 되십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세 번째로 보고할 교회가 있습니다. (24-28절)
26절에서 28절 우리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26.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28.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이제 다시 온 길을 이제 되돌아가죠. 되돌아가니까 24절 25절에 어디까지 되돌아가냐면
24.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25.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이 지도를 한번 보여주시면,
이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다시 산맥을 넘어서 버가. 이 버거가 아까 어떤 곳이라 그랬죠? 마가라고 하는 요한이 배신하고 떠난 것 그곳까지 돌아가죠. 그리고 버가에서 안탈리아. 앗달리아라고 기록돼 있죠. 이 이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이제 보면은 안디옥이라는 교회가 두 개가 나와요. 비시디아 안디옥, 또 하나는 수리 안디옥. 출발한 곳- 선교사로 파송되는 곳- 이 수리아 안디옥에서 늘 바울은 출발합니다. 이 수리아 안디옥. 그리고 이제 바울이 설교했던 곳이 비시디아 안디옥.
그런데 이 수리아 안디옥이라는 곳으로 오늘 27절에 보니까 26절에 보니까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제 이탈리아에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간 것이죠. 그런데 이 안디옥이라는 교회가 어떤 교회냐면 사도행전 13장 1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그러니까 이 안디옥 교회라는 곳이 교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보여주는 곳입니다. 제가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바나바 처음에 딱 등장하죠. 바나바가 어떤 사람입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모범생, 칭찬 받는.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이끌었던 그런 바나바. 그리고 그다음에 등장하는 사람이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 이 ‘니게르’라는 뜻은 흑인이라는 뜻입니다. 근데 이 ‘시므온’은 유대 이름이에요. 이 시므온이 뭐냐 하면 이 유대인으로 개종한 사람. 흑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한 것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는데 이 시므온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학자들은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 흑인이었던 이 시므온도 있었죠. 그리고 또 누가 나옵니까? ‘구레네 사람 루기오’ 마찬가지죠. 이 흑인이었던 ‘루기오’는 라틴식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등장하는 사람이 분봉 왕 헤롯의 젖 동생 마나엔. 마나엔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합니다. 이 헤롯이 세례 요한의 목을 잘랐던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그러니까 이 마나엔은 헤롯과 함께 젖을 먹었던 귀족이었던 것이죠. 왕족이었습니다. 권력가였던 것이죠. 그리고 또 누가 등장합니까? 마지막에 맨 끝에 ‘및 사울’. 이 사울은 그냥 소개도 안 해요. ‘및 사울’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죠? 박해하고 살해하고 가두고 정말로 죄인. 괄호 밖의 인물이죠. 이게 저는 이 교회의 목장 같아요. 바나바도 있고, 시므온도 있고, 루기오도 있고, 마나엔도 있고, 및 사울도 있고. 나는 누구에 속하나요? 저는 ‘ 및 사울’같은데... 죄인.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안디옥 교회에 바울이 도착해서 뭐라고 말하는지 27절에
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1차 선교 여행을 누가 했나요? 바울과 바나바가 했죠. 그런데 이들이 뭐라고 보고하나요?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라고 보고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 일을 했잖아요. 돌에 맞기도 하고, 죽을 뻔하기도 하고, 정말 열심히 대단한 설교도 하고,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그런데 “내가 했다”라고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서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라고 보고합니다. 원어에는 ‘하나님이 행하셨다’ 이 단어가 3인칭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27절에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뭐냐 하면,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일’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의 믿음의 문을 하나님이 여셨다”라고 보고를 하죠. 목숨까지 내어놓은 수고, 그 영광스러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고, 이것이 이방의 문을 열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셨다! 무엇입니까? ★내 삶에 일어난 모든 일! 내 삶의 과거, 현재, 미래에 일어났던 모든 일이 이방인이었던 나의 문을 열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이죠. 이방인 이었던 내가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지각도 변동하시고, 망하게도 하시고, 세계 경제도 흐르게 하시면서 나 한 사람의 믿음의 문을 열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교회에! 목장에 보고를 해야 되는 것이죠. 이 보고한다는 것이 뭐냐 하면 간증이에요. “하나님이 내게 이런 일을 행하셨다!” 우리는 이것을 안디옥 교회, 목장 그리고 공동체에 보고를 해야 되는 것이죠. 내가 보고를 하면 할수록 어떻게 됩니까? ★과거에 행하셨던 모든 하나님의 일 가운데에 내가 묻어놨던 모든 곳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거예요. 간증하면 간증할수록!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문을 연 것뿐만이 아니라 그 옆에 이방의 문도 하나님이 여시는 것이죠. 우리는 이것을 평생 보고해야 됩니다. ★내 나라가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이것을 보고해야 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에요. 모든 순간에 어떤 순간에도 우연은 없습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에요! 이 모든 시간들! 벼락 몇 개! 천둥 몇 개! 폭풍 몇 개! 태풍 몇 개! 이 모든 시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닿아져 있는 것이죠! 보고하면 보고할수록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하나님이 하셨다!” 그리고 이 상급이 무엇입니까? 이 복음의 상급! 이 수고의 상급을 우리는 이미 받았죠.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 하나님 한 분! 이미 최고의 상급을 받았고! 받을 것이고! 반드시 또 주시는 그분! 이미 들어갔고, 들어갈 것이고, 반드시 들어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죠. 수많은 박해와 오래 머물며 가르친 양육의 시간들을 통해서 이방인 같은 나의 믿음을 하나님이 여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간증하고 보고할 때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죠? 내 옆에 또 내 가정, 그리고 내 직장, 이 나라에도 이방의 문을 활짝 여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나의 환난을 통해서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긴 방학을 끝을 내시고, 이제 안디옥 같은 목장에 모여서 추석 때 일어났던 일들, 내 삶의 그런 일들을 우리가 보고해야 될 것 같아요.
적용 질문 드립니다.
Q. 열리지 않는 이방인의 문은 누구입니까?
Q. 보고하며 보고받을 목장이 있습니까? 그 목장으로 긴 방학을 마치고 나아가고 있습니까?
(목장에서 나가신 분들은 빨리 돌아오시길 바래요. 지옥은 혼자 있는 곳입니다.)
Q. 아직도 간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Q. 내가 보고할 때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문,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문을 여실 것을 믿으십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이미 임했어요. 이미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인 내 삶에 임했고, 임할 것이고, 반드시 들어가신다. 하나님이 결정하셨어요. 그런 사람에게는 돌에 맞는 상황에서도 둘러선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아픔과 실패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하세요. 양육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쭉 돌아보죠. 아직도 임하지 않은 나의 과거, 아직도 상처 가운데 있는 나 한 사람. 우리가 돌아가서 지금의 내가 그때 나를 껴안아줘야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이방인이었던 나의 문을 여시기 위해 내게 허락하신 사건이에요. 이것을 우리가 보고하고, 간증할 때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우리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며 말씀 가지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우리가 돌아왔던 그곳 우리가 만났던 우리의 가족들.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 그곳에 이방의 문이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문이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아픔과 상처 속에도 하나님 복음의 문이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모든 아픔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통하여 확장되어지게 해달라고! 이 시간 주여 한번 부르짖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돌로 맞는 이 사건 가운데서도 바울은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루스드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하나님, 너무나도 돌아가기 싫은 그곳으로 주님 툭툭 털고 일어나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내가 일어나 들어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통하여 확장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둘러싼 나의 가족들과 나의 직장과 나의 친척들... 주님, 이방의 문을 여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꽁꽁 묶어두었고 덮어두었던 그 상처에 직면하기를 원합니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이것을 나누고 또 고백할 때마다 그곳 가운데서도! 그 시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를 기억하셔서 참으로 이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의 가운데 다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이 나라에 뿌려졌던 그 복음의 씨앗이 확장되어져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복음이 아버지 주변으로 주변으로 확장되어지고 증거되어질 수 있도록 주님 이 나라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한 생명이 태어나기에 많은 환난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 정말로 우리나라를 통하여서 생명이 보호받고 생명이 태어나기를 원하오니 하나님 생명을 폐하는 모든 악법들이 폐하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복음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된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나라 가운데에도 확장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정말 추석 때 만났던 우리 모든 식구들 기억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돌을 맞으면서도 뿌렸던 그 모든 복음이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자라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더하여 주시옵소서. 나에게 이미 시작된 이 하나님의 나라에 감격하여 이 은혜에 감사하여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예물을 주님 받아주옵시고, 예물을 드린 손길에 복을 더하여 주옵시며, 하나님 그 가정과 사업가 하나님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주님 기름 부어주옵시고, 주님 이 귀한 예물이 흘러가는 곳곳마다 한 생명이 살아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첫 번째로 둘러선 제자들이 있습니다.(19-20절)
Q. 추석 때 돌을 맞고 돌아오셨나요? 화기애애 했나요? 다시는 안 간다고 하고 있나요? 툭툭 털고 바울처럼 다시 일어나서 들어가나요?
Q. 내 옆에 가족들은 나를 보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나요? 돈과 학벌과 세상 성공을 사모하나요?
돌아가야 합니다.(21-23절)
Q. 나의 가장 어두운 시절이 언제입니까? 회피하고 덮어두었던 깊은 상처는 무엇입니까?
Q. 이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에게 주신 사건임이 인정이 되십니까?
보고할 교회가 있습니다. (24-28절)
Q. 열리지 않는 이방인의 문은 누구입니까?
Q. 보고하며 보고받을 목장이 있습니까? 그 목장으로 긴 방학을 마치고 나아가고 있습니까?
Q. 아직도 간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Q. 내가 보고할 때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문,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문을 여실 것을 믿으십니까?
*** 기도제목
A
1.직면해야 하는 이방인의 문을 말씀으로 해석 하고, 한줄 큐티 하며 하루 만 살기
(이력서 준비 하고, 12월 전까지 3곳에 이력서 넣기)
B
1.하숙집 주인으로 부모님을 바라보고, 세상의 땅끝이 나라는 것을 알고 기도 하기
(이력서 같이 준비 하기)
C
1.툭툭털고 일어나 사명을 다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