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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5.(주일) 사도행전 12:18-24 「말씀이 흥왕하더라」 김성우목사님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을 구별하여 주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 우리가 사도행전 12장 말씀 앞에서 섰습니다. 주님, 이 시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듣겠나이다. 감사하여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 주 동안 기도 많이 하셨나요? 의외로 침대에서 기도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놀랐습니다. 어떤 부목자님은 샤워하면서 기도를 하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하나님과 정말 허물없이 ~ 다 벗고~ 스스럼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사도행전 12장은 제가 다른 때보다 조금 힘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 게 힘들었는데 왜 말씀을 묵상하는 게 힘들었냐면, 주인공이 헤롯이에요. 12장에 처음 시작할 때도 헤롯이 이렇게 시작하고, 오늘 본문 말씀을 쭉 읽어봐도 19절에 헤롯이 20절에 헤롯이 21절에 헤롯이 23절에 헤롯이. 헤롯 이야기만 쭉 나오는 거죠. 우리가 이렇게 큐티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12장은 사실 없어도 되는 본문입니다. 그리고 12장의 마지막 절 말씀이 흥왕하였더라와 이 헤롯이 연결이 안 돼요, 문맥적으로. 이건 그냥 빼고 11장에서 그냥 이렇게 흥왕해서 사도바울로 연결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특별히 12장에 딱 헤롯을 주셨고, 왜 추석을 앞둔 우리에게 이 본문을 주셨을까? 우리가 한번 좀 묵상해 봤으면 좋겠어요.
이 헤롯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전무후무한 박해를 받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대제사장, 산헤드린 공회원이 이렇게 박해를 했잖아요. 베드로를 잡았잖아요. 이제는 국가가 개입합니다. 국가가 개입해서 교회를 핍박하죠. 그 중심에 누가 있냐면 헤롯이 있습니다. 정말 너무 큰 핍박입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는 거죠. 12장에도 헤롯이 이렇게 주인공이 되어서 막 야고보를 먼저 칼로 죽이죠. 그리고 그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까 유대인들이 막 기뻐하잖아요. 온 나라가 기뻐합니다. 그러니 이제 베드로도 잡아 죽여야겠다 해서 베드로를 잡아서 옥에 가둬요. 나라가 개입합니다. 그때 성도들은 뭐하냐면 기도하고 있어요. 마가라고 하는 요한의 집에 모여서 이제 함께 기도하고 있는 거죠. 이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본문이 아닌가? 이 전무후무한 국가적 박해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도밖에 없구나. 근데 우리가 큐티에서 알겠지만, 이들이 이제 베드로가 잡혔으니 기도를 하잖아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도 죽었고, 그런데 이들이 베드로가 풀려날 것은 몰랐나 봐요.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베드로가 딱 오니까 뭐 천사다, 이거 말도 안 된다 이렇게 깜짝 놀라죠. 그러니까 베드로가 풀려나기를 기도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그저 기도하기를 결단하고 시작하니까 하나님께서 더 큰 응답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기도밖에 없죠.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은 이제 헤롯이 주인공이지만 사실은 말씀이 주인공입니다. 오늘 마지막은 이렇게 딱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흥왕 좀 생소한 단어인데 이 흥왕이라는 뜻이 뭐냐 하면 식물이 마치 단단한 흙을 꿰뚫고 이렇게 자라나가는, 찬란하게 이렇게 자라나가는 그러한 모습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생명이 탄생된 것이 아니라 이제 생명이 뻗어나가는, 생명력 있는 어떠한 것들이 힘을 받아서 이제는 더 크게 뻗어나가는 것이 흥왕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비록 이렇게 더 힘이 세어지고, 헤롯이 더 큰 박해를 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이 뭘 말씀하시냐?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속사와는 상관없이 뻗어나간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 말씀에 우리가 동참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상관없이 세상에는 실패한 것 같고, 망한 것 같고... 이렇지만 우리와 상관없이 뻗어나가는 이 말씀에 우리가 함께 동참해야 되는 거죠. 그게 뭐죠? 큐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오늘 본문을 좀 묵상할 텐데, 오늘은 헤롯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헤롯을 좀 묵상해 봤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참 사도행전에 왜 하필 이 헤롯을 제가 묵상해야 되는지 조금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묵상하다 보니까 아! 이 헤롯이 나구나! 이 헤롯이 나구나! 결국은 이 헤롯이 나임이 깨달아지고 이 헤롯이 내 안에 죽어져야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구나 은혜를 좀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소동이 흥왕합니다. (18절)
우리 18절 이렇게 시작하죠.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이 날이 새매 어떤 날이죠? 베드로가 이제 옥에 갇혔죠. 갇혔는데 베드로는 옥에서 그냥 자고 있습니다. 소동하지 않아요. 천사-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베드로를 깨우죠. 깨웠더니, 뭡니까? 다 풀려납니다. 다 풀려나고 천사를 따라가죠. 따라가니까, 문이 열리고, 또 열리고. 그리고 날이 샌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난리가 난 거죠. 난리가 났어요. 베드로가 사라졌으니.
헤롯을 잠깐 소개하자면 여기에 있는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헤롯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데 많이 헷갈려요. 이 헤롯이 그 헤롯인가? 제가 잠깐 설명을 하자면, amp#9312 헤롯 대왕 :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영아를 죽였던 그 헤롯. 영아 살해. 다 죽여라! 이렇게 명령했던 헤롯은 헤롯 대왕입니다. 이게 헤롯 가문의 제일 이제 우두머리예요. 헤롯 대왕.
amp#9313 헤롯 안티파스 : 그리고 예수님을 심문하고, 세례 요한의 목을 벤 또 헤롯이 등장합니다. 이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이에요. 헤롯 대왕의 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부인도 많고. 근데 그 아들 중에 한 명이 헤롯 안티파스예요.
amp#9314 헤롯 아그립바 1세 :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헤롯은 이 헤롯 안티파스의 조카뻘입니다. 한 세대 아래인 헤롯 아그립바 1세에요.
amp#9315 헤롯 아그립바 2세 : 그리고 우리가 사도바울 말씀을 들을 때 등장한 헤롯이 있는데 그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헷갈리시죠?^^ 오늘 이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베드로를 이제 잡았어요. 아까 전에도 얘기했지만 야고보를 죽이니까 막 사람들(유대인)이 좋아하니까 이 베드로까지 이제 잡은 거죠. 왜 잡았냐면 처형하려고. 무교절입니다. 무교절 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어요. 그리고 이 무교절이 끝나는 딱 그 시점에 이제 베드로를 처형하려고 옥에 가둡니다.
근데 이 옥을 제가 잠깐 설명하자면 그냥 옥이 아니에요. 옛날 로마 시대 때의 그 감옥은 어떻게 돼 있냐면 상옥, 중옥, 하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하 깊숙한 결코 나올 수 없는 옥에 베드로를 그냥 혼자 가둔 것이 아니라 옆에 사람도 세워둡니다. 옆에 군인을 세워둬서 이 옆에 있는 오른쪽 왼쪽에 있는 군인들이 같이 쇠사슬로 묶여요. 도망가지 못하게 쇠사슬로 묶고 가둔 그 앞에 문이 하나 있습니다. 쇠문 철문이 하나 있는데 그 철문 앞에 한 명이 또 지키고 있고, 또 그 철문을 지나면 또 다른 또 그 다음 문에 또 한 명이 지키고 있고. 총 4명이 이 한 사람을 지키는데, 이 4명이 한 조가 돼서 이제는 계속 바뀌는 거죠. 그러니까 결코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결코 나올 수 없어요. 아니 같이 묶어놨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그런데 이 베드로가 사라지니까 오늘 본문에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여 소동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날이 샌 거죠. 날이 새니까 이제 난리가 났습니다. 이게 적지 않은 소동이라고 나와 있는데 난리가 났죠. 그러니 헤롯이 이 사실을 알자 뭐 어떻게 합니까? 애꿎은 병사들을 이제 죽이려고 하죠. 그 당시 이제 유스타니우스법이라는 법이 있었는데, 이게 뭐냐 하면, 죄수를 지키던 병사가 사고를 치면 병사가 죄수 대신 그걸 감당하는 겁니다. 대신 죽는 거예요. 사형수 베드로가 도망을 갔으니 그 사형을 병사가 대신 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군인들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이제 소동이 일어난 거죠.
오늘 본문 18절 한번 다시 보면,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자기(군인들)가 죽게 되었고, 이 죄수가 사라졌으니 소동이 일어난 거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상상하지 못한 일이죠. 왜 상상을 못 했습니까? 헤롯이나 군인들은 믿었던 거예요. 뭘 믿었냐면 감옥을 믿은 거죠. 이건 절대 도망 못 가! 몸까지 묶어놨으니, 같이 묶여 있으니 같이 수갑을 찼으니 어떻게 빠져나갈 수가 있어? 그것도 모자라서 깊은 하옥. 하옥에 또 그것도 모자라 문도 이중이에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이 감옥은 안전해! 여기서는 절대 도망갈 수 없어! 그런데 사라져버리니 소동이 난 겁니다. 내가 굳게 믿고 지키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버린 것이죠. 그리고 이 결과로 내가 죽게 된 겁니다. 그러니 소동이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저기 있어야 되는데 알지 못하니 큰 소동이 일어난 거죠. 무엇이죠? ★내가 믿은 것이 흔들려버리니까 우리는 소동합니다. 내가 굳게 믿었던 것들이 아! 이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야! 굳게 믿었던 누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야, 이거는 내가 2중 3중으로 내가 감시했는데... 그 틈을 타고 또 바람을 피운 거예요. 굳게 믿었던 아내가 집을 나가고, 지난주에 또 저에게 또 기도 부탁을 하신 분은 아내가 그냥 나 잠깐 나가겠다 이유 없이 그냥 3개월 동안 나가버린 집도 있었고, 굳게 믿었던 친구가 배신을 하고, 절대 망하지 않을 거야. 2중으로 3중으로 4중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그 회사가 망해버리고, 그러니 우리가 어떻습니까? 소동이 우리 삶 속에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 코스피 지수에 따라서 이렇게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딱 만났는데 오늘은 밝아 그러면 코스피가 올라간 거야, 주식이 올라간 거야. 그게 요동하니까 나도 요동하는 거예요. 청년들은 평생 사랑했던 그녀가 나를 떠나가니 사랑이라고 믿었는데, 아 이건 정말 사랑이었어 했는데 그녀가 떠나가 버리니까 마음에 어떻습니까? 소동이 일어나죠. 믿었던 것들이 떠나가니 무너지니 소동을 합니다. 믿었던 사람, 믿었던 약속, 믿었던 회사가 흔들리니 소동하고, 그 소동에 ...우리 오늘 간증하신 우리 목자님도 믿었던 나의 스펙, 나의 직장 이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니까 소동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죽으려고 하죠. 그 신문 배달 아줌마가 너무 고맙네요. 새벽에 죽으려던 목자님을 만나 주셔가지고.
언젠가 제가 이렇게 버스를 탔습니다. 20대 때 버스를 탔는데 버스 손잡이를 잡았어요. 버스 손잡이를 잡으면, 이제 움직여도 좀 덜 움직이잖아요.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이렇게 타시더니, 할머니가 이게 손잡이를 잡는 게 아니라 제 팔을 잡는 겁니다. 사람이 많으니까. 그러니 어떻습니까? 제가 흔들리니까 그 할머니도 흔들리는 거죠. 저를 굳게 믿었나 봐요.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죠. 이거 나 좀 믿어봐. 이거 확실해. 근데 그게 흔들리니까 우리도 흔들립니다. 우리 많이 들었죠? 나 한번 믿어봐. 그런데 그런 것들이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다 흔들려서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줄을 믿습니다. 여기에 뭐 많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소동이 일어나고, 뭔가 사건이 일어나고, 죽을 일이 생기고 막 흔들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는 소동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문제가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없는 게 문제라고 우리 목사님께 우리가 많이 들었잖아요.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이 소동 자체를 없애려고 하죠. 그래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어떤 것들을 우리는 의지하려 합니다. 돈을 의지하려고 하고, 이 통장, 여기는! 이 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을 거야! 이 회사는 절대 망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이 소동을 우리가 없애려 합니다. 어떻게 없애나요? 명상 같은 것들도 요즘 유행하더라고요. 우리 안에 있는 그 요동치는 그 소동을 없애려고 명상도 하더라고요. 내 안에 있는 이 감정을 내가 없애버려야 된다. 실제로 또 우리는 내 문제의 근원은 결혼이야!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우리는 요동하기 싫어서 결혼도 안 해버리죠. 그런데 진짜 문제는 뭐죠? 문제가 없는 게 문제예요. 소동은 우리 삶이 꼭 필요합니다.
제 삶의 가장 큰 소동은 어머니가 집을 나가는 거였어요. 사실 저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다고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자리를 지키신다고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가 감옥 다녀오신 이후로 이 박해가 너무 쎄지니까 너무 힘드셨나 봐요. 학교 갔다가 딱 돌아오니까 있어야 할 어머니가 안 계신 거예요. 그때 이제 제 인생이 흔들리더라고요. 제 인생에 소동이 일어났고, 우리 목자님처럼 제가 이제 자살하려고도 시도도 하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안 계시고, 이제 술에 취한 아버지만 이렇게 누워 계시면서 아버지가 저를 보면서 하는 말이 너희 어머니가 바람을 피워서 내가 밤새 이제 때려서 쫓아냈다. 뭐 좋은 말로 제가 표현을 한 거죠. 그 말을 들으니까 이제 제 마음속에 이전과는 다른 강도로 이제 소동이 일어나는 겁니다. 제가 아버지는 그런 사람인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진짜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제가 사실 버틴 게 있었거든요. 이제 학교 갔다 돌아오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이런 반찬, 밥 또 어머니가 그 자리에 계시는 그걸로 인해서. 아버지는 원래 그런 분이니까, 이전에 감옥 가기 전에도 늘 그랬기 때문에 계산이 돼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이 새매 어머니가 안 계시니 어머니가 어디로 가신지 알지 못하여 내 인생이 흔들려 버린 겁니다. 근데 제가 이 이야기를 이제 뭐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제가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제 시선이 달라진 거예요. 부정적인 시선 하나님을 원망하는 그런 것도 많았지만 뭐냐 하면, 어떤 게 있었냐 하면 아! 이 땅에 소망이 없구나! 이 땅에 내가 믿을 것이 없구나. 그러면서 제 시선이 하늘을 향했습니다. 이 땅은 흔들리고 이 땅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뭐죠? 하나님 한 분. 뭐 제가 그때 이제 고3 때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아침 새벽부터 저녁까지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는데 수능 점수도 되게 잘 나왔어요. 근데 수능 점수가 잘 나왔는데, 이 땅이 다 이제 소동이 일어나고 어머니가 떠나가 버리니까 가고 싶은 대학이 없는 거예요. 수능 점수는 아깝고.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수능표를 딱 폈어요. 이제 수능이 얼마 안 남았죠. 수능표를 딱 폈는데 제가 이제 소동이 막 일어나니까, 그때 딱 한 결심이 뭐였냐면 아 신학을 하고 빨리 신학을 해서 죽어야겠다. 그때 들렸던 소식이 선교를 나가면 누가 죽여준다고 그러더라고요. 정말 그 소식이 있더라고요. 이슬람 어떤 나라에 가가지고 설교를 하면 그 설교단에서 내려오면 바로 죽인다고. 아! 이거다. 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그 천국을 가야겠다. 수능표를 딱 펴고 제일 높은 점수에 있는 신학교 이름, 그 신학교 이름도 그때 처음 들어봤습니다. 지원하고 간 거죠. 제가 이과였는데 이제 문과로 지원을 한 거예요. 다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거예요. 저는 약간 불순한 동기로 하늘을 바라봤지만 이 땅에 소동이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소동하지 않는 말씀에 집중하게 하는- 이 땅의 소동이 흥왕할수록 우리의 눈을 말씀으로 보게 하는- 말씀이 흥왕하게 하는 사건인 것이죠. 이 말씀은 어떻습니까?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결코 변하지 않는 말씀으로 옮겨야 되는 것이죠. 이 말씀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사라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소동이 흥왕할 그때가 바로 내 속의 말씀이 흥왕할 때입니다. 어떤 목사님 설교를 제가 이제 듣는데, 어떤 다른 교회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이 목사님이 이제 동화책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동화책 이야기를 보니까 뭐 야~ 이런 동화책 정도면 나도 작가를 할 수 있겠다. 나도 책을 쓸 수 있겠다. 이게 뭐냐 하면 <없다 없다 까꿍놀이>이라는 책인데, 이 동화책에 어떤 내용이냐 하면 이 호랑이가 나와 가지고 눈을 이렇게 감고 있다가 한 장을 넘기면 까꿍! 하는 거예요. 그게 끝입니다. 그 뒤에 또 넘기면 쥐가 나와 가지고 눈을 감고 있다가 또 넘기면은 까꿍! 하는 거예요. 이 정도면 우리도 작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다음에 또 뭐가 나오냐면 강아지가 나오고, 아 이런 건 나도 만들겠다. 이렇게 한번 책을 한번 제가 이제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한번 보시죠.
호랑이가 이렇게 눈을 감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다가 한 장 딱 넘기면 까꿍!
또 그다음에 강아지가 이렇게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장 또 넘기면 까꿍!
그런데 이 책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이 책을 이렇게 읽어주는데 아이들이 막 자지러질 듯이 막 웃고 막 좋아하는 겁니다. 우리가 볼 때는 뭐 이거 이게 뭔 내용이지? 이러는데, 아이들은 너무 깔깔대고 웃고 좋아하고 행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좋아합니까? 이 자기들의 경험인 거예요. 경험. 애들의 경험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죠. 애들의 경험이 뭔가 하니까, 이 아기들에게는 이 엄마가 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 아닙니다. 아기들에게 엄마는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아니라, 아기들에게 엄마는 우주 전체예요. 이 세상 전부입니다. 모든 거예요. 우주입니다. 온 세계죠. 엄마는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없다. 없다. 없다.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세계가 없어지는 거죠. 우주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오는 그 충격과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없는 거죠. 엄마가 없어졌을 때 아이들이 느끼는 그 느낌을 이 책이 그대로 반영한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까꿍! 하고 엄마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때 어떻습니까? 없어진 세계가 다시 회복되는 거예요. 이 아이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긴장과 스릴인 것이죠.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모든 것인데 그 엄마가 없다가 다시 보이는 것 같은, 자기가 했던 경험인데 그것을 어흥이가 해주고, 멍멍이가 해주고. 야, 너와 내가 똑같다! 그래서 막 좋아하고 막 박수 치고 하는 거죠.
이게 뭡니까? 온 세계가 소동하는 것 같고, 흔들리는 것 같고, 절망한 것 같고, 죽으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아침에 말씀을 딱 펼치니까 거기에 온 우주가 있는 거예요. 아침에 우리가 큐티를 하려고 말씀을 딱 펼쳤을 때 거기에 온 세계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온 세계를,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죠? 까꿍! 까꿍!하며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하루 종일 말 한마디에 소동하고, 눈빛 하나에 내가 소동하고, 요동하고, 사라진 것에, 내가 알지 못한 것에, 어디 갔는지 알지 못해서 막 소동이 났는데!! 하나님 말씀 앞에 내가 딱 꿇어 앉아서 그 말씀을 펼치니 하나님이 까꿍! 하시는 거죠. 요동하지 않는 하나님이 거기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라진 것 같은 내 인생. 소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끊어진 것 같은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거기 계시는 것이죠.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학교 갔다가 집에 와도 사라지지 않아요. 늘 내 옆에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해야 돼요. ★내 삶에 소동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말씀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 말씀을 주신 이유가 추석 명절 때 소동이 많을 것 같아요. 막 그 말 한마디에, 눈빛 하나에, 그리고 묵혀왔던 그 감정에 우리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소동이 많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편 62편 6절에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어떻습니까?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버스 손잡이처럼 흔들리지 않아요.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요동치 않고, 그곳에서 여전히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 요동치 않는 그 하나님! 우리가 말씀 앞에 서야 되는 것이죠.
적용 질문 드립니다.
Q.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 통장인가요, 남편인가요, 자녀인가요, 나 자신인가요?
Q. 내 인생에 가장 심하게 소동이 일어난 적은 언제인가요?
Q.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며 소동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소동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말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소동이 흥왕해야 말씀이 내 속에 흥왕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두 번째로 말씀이 흥왕하려면, 권력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권력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19-20절)
19절에서 20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오늘 19절, 20절 또 헤롯이~헤롯이~ 이렇게 시작하죠. 우리는 대단한 일에 소동하지 않습니다. 남편의 말 한마디, 자녀의 말 한마디. 그 말 한마디에 소동을 하죠. 저도 이제 추석 명절 때 아버지하고 이렇게 예배를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데 아버지가 예배를 다 드리고 기도를 하는데 아버지의 기도가 고향에 있는 갈매기를 위해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고향 바다의 물고기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겁니다. 또 그 기도를 들으니까 내 마음에 또 소동이 일어나는 거예요. 아들이 이렇게 힘들게 사역하는데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하시는지 막 소동이 일어나요. 아니! 아들보다 그 물고기가 더 소중하냐! 이러면서 막 소동을 제가 막 피웠던 적이 있습니다.
우린 정말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또 그 말 한마디에 소동이 일어나죠. 그런데 이때! 소동이 일어났을 때, 우리에게 권력이 있으면 내가, 헤롯이, 나에게 권력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죽여버리는 거죠. 힘이 있다면 다 잘라버리고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권력이 없는 것이 축복이에요. 헤롯은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절에 어떻습니까? 19절에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죽여버리는 것이죠. 이 권력이 뭐냐 하면 제가 이렇게 곰곰이 묵상해 봤습니다. 이 권력,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더라고요. 이 관계에 있어서 화를 낼 수 있는 사람. 이 권력자 헤롯이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제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가이사랴로 가요. 이 가이사랴는 예루살렘 북서쪽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입니다. 이제 그 첫 번째 헤롯 대왕이 로마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만든 도시인데 제가 사진을 찾아봤는데 지금 봐도 너무 멋진 도시예요. 대리석으로 쫙 깔아가지고 그래서 도시 이름이 가이사랴입니다. 이 카이사르라는 뜻이죠. 카이사르 황제를 찬양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죠. 근데 헤롯이 여기로 간 이유는 그 당시 황제가 클라디우스 황제였는데 로마의 클라디우스 황제의 생일이라는 그런 뭐 이야기도 있고, 또 영국 원정에서 돌아온 그 전쟁을 축하하기 위해서 왔다는 그런 말도 있고. 그리고 또 우리가 20절에 읽어보면 두로와 시돈의 그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제 또 갔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뭐 정확하게 왜 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데 아무튼 갔다는 거죠. 이게 뭔 말이냐면, 권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고 싶은 데를 마음대로 간다는 거예요. 추석 명절 때, 정말 우리가 권력자라면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한 부목자님을 만났습니다. 지난주에 이제 만났는데. 이 부목자님은 평생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거예요. 왜 트라우마가 있냐면, 아버지가 가족들을 다 죽이려고 가스통을 풀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때 도망 나와서 20년 동안 아버지를 피해서 도망 다녔다고 합니다. 한 번도 아버지를 못 봤다고 그래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특전사 출신인데. 그런데 20여년 만에 작년에 목장에서 그 아버지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듣고 목장에서 그 아버지를 한번 찾아봐라. 그래서 작년에 아버지를 찾아봤다고 그래요. 찾아봐서 그 아버지를 찾아가 보니까 이미 이제 거의 만신창이가 되셨고 치매에 걸리셨다. 그런데 이제 그 아버지를 뵙는 게 지금도 너무 두려운 거예요. 치매에 걸리셨는데도 그 아버지 앞에만 서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작년에는 그 아버지를 처음 뵀는데 할 말이 없어가지고 같이 간 그 자기 장남 아들, 아버지한테 이제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니까 아들한테 아버지 앞에서 너 줄넘기 해봐. 그래서 아들이 줄넘기를 했다 그러더라고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으니까. 이번에 가시냐? 하니까 이번 추석 때는 안 간다고 그러더라고요. 못 가겠다고. 아버지 앞에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너무 두렵다고. 이게 뭐죠? 이 아버지는 가해자죠. 이 아들은 피해자입니다. 근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누가 권력자냐면 피해자가 권력자예요. 아버지는 이 아들에게 올 수가 없습니다. 피해를 받은 이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갈 수가 있는 거죠. 오늘 헤롯이 권력이 있으니까 마음대로 가이사랴에 갔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권력이 있어요. 어떤 권력? 고난을 받은 권력, 상처를 받은 권력, 피해를 받은 권력.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해자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이게 권력이에요. 추석 때 우리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 부목자님에게 가서 아무 말도 안 해도 된다. 저도 저희 아버지 찾아뵈면 화가 막 일어났는데 아무 말도 안 해도 된다. 주보에 예배 모범이 있을 거다. 그거 그냥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이 부목자님이 이제 간다고 또 결단을 한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얘기했거든요. 그 아버지를 찾아서 가야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열려야 지금 기도하고 있는 집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집이 된다는 그 말에 이제 찾아간다고.
무엇이죠?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이 권력으로 우리는 찾아가야 됩니다. 가이사랴로 가야 돼요. 내가 가고 싶은-내 인기를 누리는-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갈 수 있는 것이 권력이에요. 얼마나 가기 싫었습니까? 우리는 다 해외여행 가죠. 오늘 또 이 예배 마치고 또 공항으로 가시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 나에게 가해를 준 그 사람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이 권력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서 말씀을 증거하라고. 이것이 말씀의 흥왕이죠. 권력이 흥왕할 때 우리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권세를 주셨을 때 말씀을 전해야 돼요.
그런데 이 헤롯은 어떻게 합니까?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가죠. 그리고 20절에 두로와 시돈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를 제가 좀 설명하자면 이 두로와 시돈은 이스라엘 땅은 아니에요. 이방 땅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두로와 시돈이 갑자기 등장하냐면, 이 헤롯이 이 두로와 시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이사랴에 간 부분도 있거든요. 이 두로와 시돈은 항구 도시입니다. 항구 도시. 그런데 이 두로와 시돈이 헤롯의 눈치를 봐요. 왜 눈치를 보냐면 항구 도시이기 때문에 굉장히 부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예전에 솔로몬도 성전을 지을 때 이 두로와 시돈을 통하여서 물자를 이렇게 봤습니다. 항구 도시이기 때문에 굉장히 부유하고 이 부가 어마어마한데 이 두로와 시돈의 약점이 하나 있는데 약점이 뭐냐 하면, 식량이 안 나요. 생명이 없는 거죠. 모든 게 풍부한데 식량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에 와서 사 먹어요. 그러니 헤롯의 눈치를 보는 거죠. 헤롯이 이 식량을 딱 끊었나 봅니다. 그러니 두로와 시돈이 눈치를 보면서 하는 게 뭐냐 하면 20절 후반부에 뭐냐 하면, 이 헤롯하고 가까운 이 블라스도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오늘 본문에는 왕의 침소를 맡은 자라고 나오죠. 이 블라스도를 잘 구슬려 가지고 오늘 20절 마지막에 뭐라고 나왔냐면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 복잡한 문제, 군인들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이 두로와 시돈의 식량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누구죠? 헤롯인 거예요. 이것이 권력입니다. 이 모든 문제-나에게 가해를 준 모든 사람들을 풀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피해를 받은 나예요. 헤롯의 말 한마디면 군인들이 살 수가 있어요. 헤롯의 말 한마디면 두로와 시돈이 먹고 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면 화목을 청할 수가 있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가 명절에 식구들을 만납니다. 우리가 피해자일 수도 있고, 가해자일 수도 있는데 제가 아까 뭐라고 했나요?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이다.
제가 이제 명절에 어머니를 찾아뵙는데 어머니의 정신이 온전할 때 이 명절에 어머니를 찾아뵈면 어머니는 제 눈을 잘 못 쳐다보십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를 이렇게 뵙게 되면 제가 막 화를 내요. 저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제 갈 때쯤 되면 어머니가 몰래 와서 저에게 돈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새아버지 모르게 주려고. 어머니가 그 새아버지하고 살면서도 늘 눈치를 보시더라고요. 거기에도 이제 자녀들이 있으니까. 자녀가 이제 세 명이 있는데. 몰래 이렇게 돈을 주시고. 어떻습니까? 제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권력자인 것이죠. 제가 한마디 말만 하면 됩니다. 제가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사랑해요. 한마디 말만 하면 되는데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너무 힘들어요.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 사랑해요. 이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저에게는 너무 힘든 겁니다. 저는 권력자처럼 어머니를 대하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늘 상처 속에 살았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서 피해자가 권력이 있어요. 그리고 이 사람이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권력이에요. 이 헤롯의 권세는 로마와 친해서 온 권세예요. 이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클라디우스 황제와 동기 동창이었습니다. 로마로 갔을 때 같이 학문을 배웠어요. 그러니까 이 클라디우스 황제와 친하니까 그 권세가 와서 유대 땅을 통치하게 된 거죠. 우리는 누구와 친하죠?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겁니다. 하나님과 친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권력과 권세를 주기 위해서 상처를 입게 하셨어요. 그리고 그 상처 입은 것이 권력이 되어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죠. 말씀이 흥왕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도 명절에 각자의 가이사랴로 내려가죠. 그리고 이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권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권세를 받았어요! 우리가 이미 이 말씀으로 이 삶이 해석되어졌다면! 오늘 내 삶이 말씀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이 권세라면! 이 권세를 가지고 이제는 우리가 만나야 되는 거죠. 내일, 내일모레 만나야 됩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그랬잖아요. 말 한마디로 용서할 수 있는 거예요. 두로와 시돈도 살릴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가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권세자라면 권력이 있다면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부모님, 사랑한다고. 죄송하다고. 용서한다고. 그리고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죠. 이 권세로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풀어야 됩니다. 풀어야 돼요. 정말 이 말 한마디 용서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이것이 권력이에요. 그리고 구원을 위해 가는 이 발걸음 위에 하나님이 로마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늘 권력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사람들은 화목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두로와 시돈은 화목하기를 청했다고 그러잖아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Q. 내가 용서해야 될 군인은 누구인가요?
Q. 먹고 살 문제가 급한 두로와 시돈이 내 옆에 있나요?
Q. 가족에게 받은 상처 속에 아직도 살아가고 있나요? 말씀으로 해석 받았나요?
Q.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말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Q. 내가 화목하기를 청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정말 힘들죠. 가족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우리가 이제 내일이면 다 이렇게 우리가 가족들이 모일 텐데 정말 말씀이 흥왕하는-나에게 하나님이 권력을 주셔서 말씀이 흥왕하는-이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도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로, 칭찬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21-34절)
21절에서 23절입니다.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이제 헤롯이 이 가이사랴로 내려갔죠. 두로와 시돈 사람들도 이제 쫙 있었을 겁니다. 그 앞에서 뭘 하냐면, 연설을 합니다. 헤롯이 택한 날. 그런데 헤롯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 자기가 날을 정했죠. 오늘 21절에 헤롯이 날을 택하여 또 이렇게 시작하죠. 또 헤롯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근데 이 날을 택한 날이 뭡니까? 자기가 날을 택하고.. 자기가 원하는 이 날이 자기가 죽을 날이 되는 거예요. 말씀이 없이 그저 나의 유익을 위해서 죽이고 없애고 끊어내고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택한 날이 죽을 날입니다. 이것이 말씀 없이 권력을 가진 자의 마지막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가 날을 택해야 돼요. 말씀으로 또 내 욕심을 꺾고, 또 말씀으로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고... 날을 택해야 됩니다.
날을 택한 헤롯이 뭘 하나요? 연설을 하죠. 그런데 오늘 21절에 연설을 하는데 왕복을 입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그냥 왕복을 입었다라고 하는데, 이때의 이 기록을 어떤 역사가가 역사로 기록을 했더라고요. 이 요세푸스라는 사람인데 <유대고대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유대고대사 19권 8장 2절에 보면 이 왕복을 입어 이 말을 또 다르게 이렇게 풀었었는데, 그 역사의 기록을 보면 이 아그립바 왕이 입었던 옷이 뭐냐 하면, 은빛. 은으로 이렇게 쫙~ 이 은으로 이렇게 비늘처럼 쫙~ 이렇게 은빛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저도 이제 사역을 시작할 때 옛날에 이 은갈치 양복을 입고 다녔는데 ^^은빛-이 은갈치- 이 은빛이 어떠냐면 해가 이렇게 탁 뜨면은 이 해에 비쳐가지고 이 은이 반짝반짝하는 거예요. 이 가이사랴가 어떤 동네냐면 가이사랴 뒤에 지중해가 쫙 펼쳐져 있습니다. 근데 이 헤롯이 아침에 연설을 했어요. 아침에 딱 일부러 이 날을 택한 거죠. 자기가 드러나기 위한 날. 아침에 딱 이렇게 서 가지고 지중해가 쫙 펼쳐져 있는데 해가 쫙 떠오르면 어떻습니까? 그 해의 빛에 반사되어서 은이 막 반짝반짝 거리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들이 멀리서 보니까 어떤 거죠? 오늘 말씀을 보니까 어떻게 합니까? 신이다! 와! 저건 사람이 아니다. 신이다! 너무 찬란하게 막 빛이 나니까. 군중들이 아부를 하는 거예요. 물론 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섞여 있어 가지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막 입발림 소리를 하는 걸 수도 있죠. 그런데 실제로 또 연설을 굉장히 잘했다고 합니다. 탁월한 달변가였다고 해요.
그러니 이제 군중들이 22절에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근데 23절에 또 헤롯이 이렇게 시작하죠. 헤롯이 어떻게 합니까? 이때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이렇게 이제 헤롯이 마지막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3절에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함으로 벌레를 죽었다.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이게 그렇게 큰일인가? 헤롯이 왜 죽었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다고 꼭 죽어야 되나? 이게 죽을 죄인가? 이런 의문이 들었는데 이 요세푸스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역사가이기 때문에-이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니에요.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그래서 자신이 객관적으로 본 사실을 기록하는데 이렇게 기록돼 있더라고요. 요세푸스 <고대유대사>에 이제 보니까 사람들이 신이다! 이렇게 외치니까 헤롯이 어떻게 했냐 하면, 그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그게 맞다! 내가 신이다! 이 뜻이라는 거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은 것. 환호하고 박수하고 칭찬하니 어떻습니까? 내가 맞아! 내가 그런 사람이야! 이걸 인정하는 거예요.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그 칭찬의 절정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보낸 벌레에 먹혀 죽은 거죠. 영혼이 건강하면 자신이 그 영광을 받지 않습니다. 어떤 대단한 일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병든 사람은 명예와 체면에 과하게 집착합니다. 드러내지 않아요. 나를 드러내지 않고 계속 은빛 옷을 입습니다. 은갈치 옷을 입어요. 칭찬에 집착하고, 칭찬이 흥할수록 나의 실체를 보지 못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인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의 결말이 이 헤롯의 결말인 것입니다.
이 헤롯이 어떤 존재입니까? 자기 안에 이미 벌레가 있는 거예요. 그때 벌레가 생긴 게 아닙니다. 이미 벌레가 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그 벌레를 치니 이 벌레가 죽게 만든 거죠. 내 안에 있는 이 벌레 이것을 숨기는 겁니다. 이 벌레라는 것이 그냥 끄집어내고 드러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는 거죠. 칭찬은 내 눈과 귀를 가립니다. 나를 볼 수 없게 만들어요. 레바논 속담에 너를 칭찬하는 자를 조심하라. 그는 네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말이 있었죠. 무서운 말이에요. 과도한 칭찬은 그 사람을 병들게 만들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과도한 칭찬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어디로 나아가야 된다. 말씀 앞으로! 칭찬이 흥왕할 때- 내 주변의 칭찬이 너무 과할 때-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되는! 말씀이 흥왕해야 되는 기회입니다!
칭찬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대단한 존재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다. 이게 뭐냐 하면 나르시시스트죠. 자신을 모르는 거예요. 자기의 겉모습만 보고, 어떤 일부분만 보고, 자기가 굉장히 대단한 신인 줄 압니다. 그런데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 속에 뭐가 있다? 벌레가 있는 거예요. 열등감이 있습니다. 속은 썩어 있어요.
저는 이 마지막에는 이 헤롯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이 헤롯이 이 반짝반짝 빛나는 은갈치 옷을 입었잖아요. 저는 뭘 했냐면 얼굴에 BB크림을 바르고 다녔거든요. 마치 내가 그런 사람인 양 나의 겉모습을 포장한 거죠. 그런데 이 BB크림을 바른 그 내 중심을 보면 뭐가 있냐면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르시시즘은 이 열등감에서 비롯된 거예요. 이 열등감은 권력으로 표출됩니다. 내 사람은 확실하고, 적은 확실히 죽이죠. 내 영역이 확고합니다. 저는 이 나르시시스트를 좀 생각해 보면서... 왜냐하면 담임 목사님께서 늘 저에게 너는 나르시시스트야. 너는 나르시시스트야. 그래서 이제 다른 사역자들 앞에서 제 별명이 날씨라고 그러더라구요. 나르시시스트의 줄임말 날씨라고 그러더라고요. 이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제가 묵상을 해봤는데 이것이 어떻게 생겨나느냐? 보니까 제가 심리학 박사님에게 물어봤어요. 이 나르시시스트가 어떻게 되냐? 그 심리학 박사님이 제 친구인데 제가 물어봤습니다. 야, 내가 나르시시스트야? 그러니까 맞다! 그러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저를 알던 친군데. 야, 그럼 난 어떻게 해야 되냐? 이게 어떻게 생겨났냐? 이렇게 물으니까 나르시시스트는 뭔가 성취를 했는데 그 성취에 대해서 부모님이 반응을 안 해주니까. 반응을 안 해주면 어떻게 하죠? 스스로가 자기에게 보상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아이들이 잘했을 때 아~ 그래~ 하면서 칭찬 스티커도 주고 뭔가 리액션을 주잖아요. 잘했건 못했건 뭔가 리액션을 주는데 아무 리액션이 없을 때 이 아이는 어떻게 하냐면 자기에게 스스로 보상을 합니다. 나르시시즘은 빈약한 자기 삶과 열등감이 근원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스스로 자기에게 계속 보상을 주는 거죠. 가장 중요한 대상에게서 결핍을 느낀 게 그 원인이라고 합니다. 저는 스스로 저에게 막 먹을 걸 보상을 주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보상도 어떻게 됩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취하는 거죠. 모든 영광을 자기가 취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성취한 것도 자기가 (그 영광을) 취하는 거죠.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 모습이 죽어야 돼요. 내 안에 있는 이 헤롯이 죽어야 말씀이 흥왕하는 겁니다. ★내 상처와 작별하고 이것을 드러낼 때 우리는 어떤 칭찬에도 요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헤롯은 왜 이런 열등감이 있었을까? 제가 한 번 묵상을 해 봤어요. 헤롯을 제가 잠깐 설명하자면, 헤롯의 아버지는 죽었어요.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냐면 할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도 죽이고, 아들도 죽여버려요. 할머니와 아들이 다 죽으니까 헤롯이 어떻게 됩니까? 로마로 갑니다. 이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로마로 가서 거기서 이제 칼리굴라 황제를 만나고, 이제 클라디우스 황제와 같이 학문을 배우죠. 다시 유대로 돌아왔지만 자기는 유대교가 아니에요. 다윗의 혈통이 아닙니다. 이방인이죠. 에서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누나- 이 헤롯의 누이-는 어떻게 되냐면 삼촌과 결혼을 해요. 그리고 그 삼촌과 결혼했는데 이 삼촌과 이혼을 하고 또 다른 삼촌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이 또 다른 삼촌이 누구냐 하면 이 세례 요한을 죽여버린 헤롯 안디바. 세례 요한이 그 결혼 부정하다 이렇게 하니까. 그리고 이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은 자기의 딸과 또 근친을 행합니다. 이러니 어떻습니까? 열등감이 없을 수가 없겠죠. 헤롯은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유대의 어마어마한 지금껏 이룰 수 없는 영토를 확장하고 놀라운 일들을 했어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헤롯을 바라보면... 저는 이 묵상하는데 좀 슬프더라고요. 반짝반짝한 옷을 입고 사랑받고 싶어. 나 좀 알아줘. 어느 누구도 자기에게 리액션을 해주지 않으니 그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환호를 받기를 원하는 거죠. 자기 속에 끝없는 결핍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핍이 결국 벌레가 되어서 죽게 만드는 것이죠. 복통을 일으킨 이 벌레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즉사한 게 아니에요. 5일의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5일 동안 이 복통을 앓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5일은 회개의 시간이에요. 그 대단한 베드로와 야고보 앞에서도 헤롯이 돌이키지 못한 이유는 그 은갈치 옷을 벗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은빛 옷을 벗고 내 안에 있는 이 추악함을 드러내기만 했다면, 그리고 이 끝없는 결핍을 채워주실 한 분이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알았더라면, 내가 막 또 이렇게 자랑할 때 복통이 일어났을 때 회개할 수 있었겠죠. 들었던 말씀이 있었더라면. 그런데 결국 헤롯은 그 결핍 속에 그 벌레가 그 결핍의 틈을 타서 이 헤롯을 죽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24절에 어떻습니까?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헤롯이~ 헤롯이~ 헤롯이~ 12장 처음에도 헤롯이 칼을 들어~ 헤롯~ 헤롯~ 헤롯~만 나오다가 오늘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라고 끝을 맺어요. 뜬금없이 이 문맥에는 안 맞는 구절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이걸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세속사는 이렇게 흘러가지만... 세속사는 자기를 드러내고 권력이 드러나고 죽고 죽이고 또 모든 것이 또 변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이렇게 세속사는 흘러가지만! 이 세속사와 다르게 하나님의 나라는 갈수록 흥왕해진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갈수록 흥왕해진다는 겁니다. 두 개예요. 이렇게 흥왕해진 이 나라 이 세속사는 멸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흥왕해지는데 이것이 어떻습니까? 말씀을 통하여서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해버리는 거예요. 그것이 말씀 묵상입니다. 두 개로 이렇게 가는데 이게 평행선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이게 만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말씀 묵상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나라의 흥왕이 우리 삶 속에 임해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니 말씀을 묵상해야 됩니다. 칭찬이 이렇게 많을수록 우리는 더 말씀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세요.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 망하고 실패하고 울고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전무후무한 박해가 임했을지언정!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스스로 하십니다. 뚜벅뚜벅 걸어가시면서 하나님이 하세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유일한 권세가 뭐냐 하면 말씀 묵상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흥왕하는 때인 거예요! ★내 삶이 소동이 일어날수록! 권력이 강해질수록! 칭찬이 많을수록! 우리는 어떤 때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이끌어가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우리가 추석 때도 어떻습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묵상하시고 예배드리시고 가야 될 것 같아요.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것이 말씀의 흥왕입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내가 남들 앞에 자랑하고 싶은 화려함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칭찬을 가장 좋아하나요?
Q. 추석 명절 때 가족들에게 칭찬 들을, 자랑할 은갈치 옷을 입고 가나요? 아니면 죄인의 옷을 입고 가나요?
Q. 말씀 앞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 늘 점검하며 고백하고 있나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참 우리는 소동이 일어나야 말씀을 볼 수 있는 죄인인 것 같습니다. 소동이 일어나야 우리는 소동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권력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권력, 권세, 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될 때입니다. 말씀이 흥왕해야 될 때예요. 그리고 칭찬이 나의 주변에 넘쳐난다면 다시 그 말씀 앞에 내가 벌레였구나! 내 존재를 확인해야 될 때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흥왕이 있는 이번 명절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고 함께 이 말씀 붙들고 기도하겠습니다.
♬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기도제목
우리가 우리의 가족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놓고 좀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들을 통하여서 내가 소동하지 않게 해 달라고.하나님, 소동하더라도 소동하지 않는 말씀이 내 속에 있게 해 달라고.이 말씀을 묵상하게 해 달라고.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권세를 주셨다면 이 권세를 가지고 저들에게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말씀이 흥왕하는! 추석 되게 해달라고,주님, 내 속에 벌레가 있습니다. 여전히 이것을 가리고 숨기는 것이 하나님 내 모습인데 이번에 명절에 나아가서 나의 수치를 드러내놓고 정말 이 수치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해 달라고. 그리하여 추석 명절날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는! 이전과는 다른 명절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나에게 이 하나님의 권세를 달라고. 말씀이 정말 흥왕하여 뻗어나가는 이 생명이 우리 가정 가운데 심어지게 해 달라고. 이 시간 한번 주여 한 번 부르짖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사도행전 12장에 전무후무한 박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그 박해 가운데 그 박해를 일으킨 헤롯이 나임을 깨달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오늘 말씀에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소동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가정에 소동이 있습니다. 내 삶에 소동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인 곳에 소동이 있고, 주님이 이 나라에 적지 않은 소동이 있습니다. 주님, 망할 것 같고 실패한 것 같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흥왕하여 가는지 그 말씀에 동참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말로 이제는 기도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묵상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시고, 이 말씀이 내게 권세를 주셔서 정말 하나님 아버지 이 권세로 내가 가이사랴에 나아가 화목하기를 청하는 그들에게 이 말씀을 증거할 수 있는 권세가 있는 이번 추석 명절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 정말 이 말씀 앞에 내 실체를 보고 내가 벌레 같은 존재임이, 내 깊숙이 숨어 있던 그 벌레를 내가 직시하여 이제는 하나님이 이것을 고백하고 오픈하여 칭찬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이 말씀 앞에 깨어져 이 말씀이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명절 되게 하여 주옵시고, 오랜만에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자에게 주의 권세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를 기억하여 주옵시고 소동이 있는 이 나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왕노릇하여 말씀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나님, 생명을 주님 정말로 죽이는 법들이 모두 폐해지고 생명이 이제는 뻗어나가는 이 생명이 잉태되어 자라나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더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귀한 예물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 소동 가운데에서도... 정말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인생 가운데서도 말씀으로 찾아오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예물을 드린 모든 손길에 복을 내려주옵시고 그 가정을 기억하시며 하시는 그 사업장과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주님, 기름 부어주옵시며, 이 예물이 쓰이는 곳곳마다 소동이 일어나는 한 사람이 소동치 않는 하나님, 요동치 않는 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데 아름답게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기 위해서는,
1. 소동이 흥왕합니다. (18절)
Q. 내가 굳게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 통장인가요, 남편인가요, 자녀인가요, 나 자신인가요?
Q. 내 인생에 가장 심하게 소동이 일어난 적은 언제인가요?
Q.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며 소동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2. 권력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19-20절)
Q. 내가 용서해야 될 군인은 누구인가요?
Q. 먹고 살 문제가 급한 두로와 시돈이 내 옆에 있나요?
Q. 가족에게 받은 상처 속에 아직도 살아가고 있나요? 말씀으로 해석 받았나요?
Q.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말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Q. 내가 화목하기를 청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3. 칭찬이 흥왕할 때 말씀이 흥왕해야 합니다. (21-34절)
Q. 내가 남들 앞에 자랑하고 싶은 화려함은 무엇입니까? 나는 어떤 칭찬을 가장 좋아하나요?
Q. 추석 명절 때 가족들에게 칭찬 들을, 자랑할 은갈치 옷을 입고 가나요? 아니면 죄인의 옷을 입고 가나요?
Q. 말씀 앞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 늘 점검하며 고백하고 있나요?
*** 기도제목
A
1. 일터에서 소동이 일어나도 오늘의 말씀 붙들기
B
1.나의 헤롯이 죽고 주님의 말씀이 흥황하여 생명 살리는 곳까지 나아가도록
C
1.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날마다 큐티제목쓰고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