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일설교
2025.09.21 주일예배 사도행전 8:1b-8 그날에 (김성우 목사님)
1.큰 박해가 있습니다.
1절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주저 앉아 있습니다. 설교 한번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대 제사장들 조차 굴복하니 예루살렘 성전에 안주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을 잊어버립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은 사도행전 1장 8절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예루살렘에 박해가 시작된 이유가 바로 이 사명 때문입니다. 박해는 사도행전에서 처음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 앞에 한 단어가 같이 쓰이는데, 크다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옛날 성경에는 큰 핍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박해, 핍박이 임한 것입니다. 이 박해가 임하니 머물러 있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흩어졌다고 합니다. 흩어지다는 다시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그날이 이제는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흩어지다는 단어는 어떤 뜻이냐면 농부가 씨를 뿌리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 입니다. 여기서 디아스토라 라는 단어가 파생됩니다.
농부가 씨를 흩어 뿌리니 농부 입장에서는 능동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씨앗의 입장에서는 수동적입니다. 씨가 어디에 뿌려질지 씨가 아닌 농부에 의해 결정 됩니다.
마치 예루살렘교인들이 능동적으로 흩어진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들이 흩어진 것입니다. 나에게만 머물러 있던 지경이 박해로 흩어지니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 갑니다. 나에게 있던 관심이 이제는 예루살렘 밖으로 나아 갑니다.
우리는 구원도 회개도 내 것에만 관심이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나아가야 합니다.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스데반의 그날에 부활의 기쁨이 흩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니 날마다 해줄말이 생깁니다. 내 자아가 무너지니 무너진 만큼 하나님이 내영을 세우십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윤리적인 죄인이 아니라, 끝없는 자기 중심성, 나만 생각하는 자기 중심성이 죄입니다. 자기 중심성은 병적인 집착이고, 자기가 중심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심한 자의식으로 자신이 더없이 소중한 존재여야 한다는 필요가 부인된데서 오는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자기 중심성을 깨트리십니다. 깨어지면 생명이 흩어 집니다. 퍼져 나갑니다. 말씀앞에 내가 죽는 것이 부활입니다. 큰 박해로 자아가 깨져야 나아갈 수 있습니다.
깨트림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깨고 나아야 진정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개인과 교회의 큰 박해 뒤에는 하나님이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하십니다.
깨어지지 않기 위해 내 힘으로 꽉 붙들고 있으면 박해가 길어 집니다. 잘 당하고 잘 흩어지는 것이 디아스포라 입니다. 우리는 1주일 동안 박해를 계속 당하면 목장으로 흩어집니다. 이것이 디아스포라고 그 목장에 부활의 기쁨이 넘쳐 납니다.
당한 것이 없는 사람은 집에만 머뭅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고 싶어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이 사람들이 어디로 흩어지는지 나옵니다. 안디옥으로도 흩어집니다. 이곳은 예루살렘과 더불어 사도 바울의 전략적 중심지 입니다. 내가 박는 박해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십니다.
서론의 집사님은 감당할 수 없는 박해를 통해 사명이 생깁니다. 자녀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집에 찾아가 할말이 생긴 것입니다. 내 아들도 그랬다. 이 한마디로 복음이 흘러 가는 것입니다. 사명이 생긴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알콜중독인 아버지를 가진 사람만 만나면 할말이 생기고, 마음이 갑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집을 나간 사람만 만나면 마음에 깊은 슬픔, 아픔이 올라 옵니다. 나도 그랬다. 하게 됩니다.
예수의 복음이, 생명이 내 안에서 알을 깨고 너에게로 가야 합니다. 이것이 흩어짐입니다.
-내가 당한 큰 박해는 무엇입니까? 그 박해로 흩어져 내 지경이 넓어졌나요?
-큰 박해로 그저 예루살렘에 숨어 지내고 있지는 않나요?
-깨어져야 할 자기중심성은 무엇입니까?
2. 큰 울음이 있습니다.
2절
그날에 큰 울음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크다는 말은 동일하게 헬라어로 메가스 입니다. 울음의 헬라어는 그냥 울음이 아니라, 가슴을 치고 울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이때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울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이사람은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로 울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합니다. 이것은 내가 저 스데반의 죽음에 동참하겠다는 표현입니다. 큰 울음 앞에 스데반을 장사하고 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장사하고는 함께 가져가다는 의미입니다. 스데반의 그 믿음과 함께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공회에서 스데반을 죄인이라고 했을 지언정 나도 저 사람과 같은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이 울음을 한 사람들을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적인 슬픔을 넘어선 울음입니다. 상대의 아픔을 함께 하는 자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흩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 합니다.
영어의 케어라는 단어가 돌봄이라는 뜻인데, 이는 고통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케어는 고통과 연대되었을때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진정한 고통당하는 약자들과 연대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돌봄이고, 울음입니다.
저는 오랜기간 울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있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분노가 제 감정을 고장나게 만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아버지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들교회와서 말씀을 돌아보며 내 죄가 깨달아지니 공감없이 정죄한 그것이 너무 큰 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눈물은 우리의 고장난 감정을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십니다. 우리는 수많은 간증에 같이 울어야 합니다. 저 사람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저 사람의 죄가 나도 그러 했겠다 하며 같이 울때, 사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악의 평범성의 저자는 옛날 아우슈비츠 감옥에 감금 되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아돌프 아이히만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 교수형을 당하는 그날 얼굴을 보러 갔습니다. 정말 악인처럼 생겼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얼굴을 보고 놀랬다 합니다. 너무 모범적이고 선량했다 합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분입니다. 여기에는 공감과 슬픔이 결여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저서에서는 이 끔찍한 비극은 생각하지 않음으로 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공감과 울음 없이 일만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생각없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관료적 성실성이 가장 악한 것입니다. 이 관료적 성실성이 빌라도가 예수를 못박는 거 까지 나아갑니다. 나는 그저 일을 했을 뿐이야 이 마음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이것이 울음이 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 입니다.
우리는 간증을 들으며 울어야 합니다. 이 울음은 그사람의 간증을 듣고 이해할 때, 공감할 때 나옵니다. 그리고 이 울음이 우리를 십자가로 나아가게 합니다.
3절
결국 나를 잔멸하는 사람들로 인해 울게 됩니다. 잔멸이라는 말은 멧돼지가 포도밭에 들어가 하나도 남김없이 난폭하게 짓밟는 것을 말합니다.
사울은 오랜 시간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보면 사울이 바울이 되는데, 바울이 같이 다녔던 사람중 가장 신뢰했던 사람이 누가 입니다. 그런데 이 누가는 사울의 약점을 기록합니다. 이것이 구속사인 것 같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고, 이 잔멸당한 사람들이 큰 울음을 울고 흩어집니다. 이 사울은 스데반이 죽을 때, 옷 밭은 자라고 기록합니다. 즉 내 옆에서 내 옷을 맡은 자가 나를 잔멸합니다. 옷을 맡은 자가 내 구원의 최고의 공로자 라는 것입니다.
내 남편, 아내가 나를 잔멸해줘야 내 자아가 깨어지고,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내 옆의 옷 맡은 자를 내가 끊어내서는 안됩니다. 구원을 위한 최고의 공로자 입니다.
-내가 크게 통곡하며 울었던 적은 언제입니까?
-수많은 간증을 함께 들으며 공감하나요?? 아니면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평가하나요?
-내 옆에 옷 맡은 자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3. 큰 기쁨이 있습니다.
4~8절
큰 박해, 큰 울음 뒤에 큰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 흩어집니다. 지경이 넓어집니다. 그런데 큰 기쁨이 어디에 있나요? 8절에 그 성에 있다고 합니다. 그 성은 사마리아 성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반으로 갈라집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 의해 가랄집니다. 이 분단된 북왕국의 수도가 사마리아 입니다. 분단 200여년 만에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합니다. 당시 앗수르 대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할 때, 쓴 정책이 있는데 유대인들이 자꾸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니 이방 사람들을 끌어다 살게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그러니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혼합됩니다. 섞여 버립니다. 남유다 사람들이 그래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섞였다고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아니기에 개보다 못한 존재로 무시를 합니다.
지금도 그 생각 때문에 전쟁이 일어납니다.원래 남유다에서 북이스라엘을 가려면 직선으로 가면 되는데,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하니 이를 통과하지 않으려고 둘러 갑니다. 그 땅을 밟는 것 조차 경멸합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마리아인들도 유대인들을 증오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에 보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가 나옵니다. 사마리아도 증인이 되라 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시도를 안합니다. 하지만 큰 박해와 울음으로 흩어지니 이 복음이 사마리아까지 들어갑니다.
누구에 의해서인가요? 빌립에 의해서 입니다. 사마리아 성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니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넘칩니다. 그런데 그건 빌립이나 할 수 있다 합니다. 하지만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 한 것이 아닙니다. 1절에 사도 외에라고 합니다. 사도는 흩어지지 않습니다. 핍박 받은 그들이 흩어집니다. 빌립은 평신도이고, 도망자 출신입니다.
스데반이 왜 죽었나요? 스데반의 설교를 듣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선민의식에 대해 설교를 한것입니다. 너희가 대단하다 섬기는 아브라함 그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살았었다, 우상을 섬기면 살던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선민의식을 깨트린 것입니다.
그 인생의 찌질이들도 하나님이 붙드시니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생각하는 그 모세에 대해서도 말을 합니다. 그 모세는 살인자요 도주자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듣기 싫어서 귀를 막고 돌로 치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모든 신화를 공격하니 귀를 막습니다. 스데반은 모든 초점을 사람에서 하나님을 옮기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고, 부르십니다. 빌립이라서 한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찾으시고,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6절에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빌립도 하더라 입니다. 빌립은 사도가 아니고 집사였습니다. 7집사를 세울 때, 말씀이 아니라, 행정을 하기 위해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빌립도 성령이 함께 하시니 그도 하더라 입니다.
이 빌립은 내가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나는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자기는 박해를 견디는게 아니라, 무서워 도망가는 자임을 알게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임을 아니, 사마리아의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빌립은 자기가 박해 받아 도망가니 사마리아 인들도 그들이 원해서 한게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해가 되니 용서가 되고, 용서가 되니 경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넘어선 그 경계에 복음이 흘러 갑니다. 그리고 사마리아까지 나아가 온성에도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사도들은 가지도 않는 사마리아에 하나님은 평신도를 보내십니다. 빌립이 전한 내용은 오직그리스도 한가지였습니다. 잘 살고, 잘 죽으시고, 잘 살아나신 예수님, 핍박 받으시며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이 빌립이 전한 것입니다. 빌립도 한 것입니다.
-아직도 내가 넘지 못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용서가 안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과 내가 똑같은 죄인임이 믿어지시나요?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요?
2.목장 모임 장소 및 참석인원
: 롤링삐삐 / 김진규목사님, 목자, 부목자, 목원1,2 (총 5명)
3.기도제목
A.
1. 가족과 목장식구들 영혼 구원을 위해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2. 신교제와 신결혼 허락해주시도록
3. 커리어에 기름부어 주시도록
4. 온라인 새벽기도회 회복할 수 있도록
5. 등과 목 스트레칭 충분히 꾸준히 할 수 있도록
6. 가족과 예수 안에서 평안한 시간 보낼 수 있도록
B.
1.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며 말씀과 기도로 살도록
2. 가족모두가 건강하고 어려움속에서도 서로 지지할수 있도록
3.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용서와 사랑으로 대할수 있도록
C.
1. 하나님의 신호를 받을 수 있길.
2. 가족과 내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길.
3. 신교제, 신결혼.
D.
1. 시험 날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공부 집중해서 할 수 있도록
2. 1차 시험날까지 건강과 체력 붙들어주시길
3. 목장 기도제목 중보기도 계속 할 수 있도럭
4. 말씀의 인도함이 있는 시험 준비기간이 되길
E.
1. 다음주 월요일에 있을 발표를 준비할 때 지혜와 명철읊 허락하시고, 하나님 자녀로서 당당히 발표를 잘 마치고 올 수 있도록
2. 일본 출장 오가는길 안전 가운데 잘 다녀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