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일시: 2025년 9월 21일
*참석인원: 목자님 외 2명
*성경말씀: 사도행전 8장 1b~8절
<그날에> - 김성우 목사님
그 날은 어떤 날인가? 스데반이 순교한 날이다. 죽음의 날 슬픔의 날 비통의 날이다. 그런데 성경은 스데반의 순교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헬라어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두개 이상 있는데 왜 스데반에게 만큼은 자니라고 표현했을까?
성경 곳곳에서도 성도의 죽음을 자니라. 잠들었다 표현한다. 왜 잔다고 표현했을까? 자는 사람은 깨어나기 때문이다. 잠든 사람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성도의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우리도 마지막 날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깨우실 것 같다. 일어나 다시 활짝 웃으며 만나는 것이 부활이다. 그 날은 죽음의 날 비통의 날 슬픔의 날이 아니라 부활이 있는 기쁨의 날이다. 죄인된 우리에게 믿는 자마다 생명을 주기 위해서이다.
1. 큰 박해가 있다.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은 앞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출발점일 뿐 종착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은 예루살렘에 주저앉아 있지 떠날 생각을 안 한다. 예루살렘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로 나아가야 한다. 예루살렘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 왔다.
큰 핍박. 감당하기 힘든 박해. 이 박해가 일어나니 머물러 있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흩어지다. 다시 움직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다시 머물러 있던 그들에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활 그 생명이 이제는 사마리아 유대땅으로 흩어져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로 흩어졌음을 의미. 이 지경이 넓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까지 나아간다. 나에게로 국한되어 있던 이 관심이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나아가야 하고 지경이 넓어져야 한다. 스데반의 그날에 부활의 기쁨이 흩어져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날마다 해줄 말이 샘솟듯 솟아난다. 박해로 인해 내 자아가 무너지니 말씀이 솟아나는 것이다.
자기 중심성이 내 죄성이다. 내가 정말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병적인 자기 집착에서 자기중심성이 시작된다. 자신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좌절되는 절박함에서 온다. 이 깨어짐에서 생명이 흩어지는 것이다. 큰 박해로 자아가 흩어져야 타자로 나아갈 수 있다. 깨뜨림은 아픔이요 슬픔이다. 나만의 세계가 깨어져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깨어지지 않으려고 꽉 붙들고 있으면 박해가 길어진다. 잘 당하고 잘 흩어지는 것이 디아스포라이다. 집에서 박해를 잘 당하고 목장으로 흩어지는 것이 디아스포라이다. 그 목장에서 부활의 기쁨이 넘쳐난다. 그런데 당한 것이 없으면 집에만 있길 원한다. 집을 오픈하기 싫어한다. 당한 것이 없으면 예루살렘에만 머물고 싶어한다. 아프리카로 아시아로도 흩어지는데 안디옥이라는 곳이 있는데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적 중심지였다. 내가 받는 박해로 교회가 세워진다.
@내가 당한 큰 박해는 무엇입니까? 그 박해로 흩어져 내 지경이 넓어졌요? 큰 박해로 그저 예루살렘에 숨어 지내고 있지는 않나요?
깨어져야 할 자기 중심성은 무엇입니까?
2. 큰 울음이 있습니다.
부활의 그날에 큰 울음이 있다. 큰 박해 뒤에 큰 울음이 있다. 스데반의 죽음을 보고 울면 안되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판결된 죄인을 위해 울면 안 되었다. 하나님께 저주 받고 버림 받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기에. 그런데 오늘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운다. 소리내어 우는 이것은 내가 저 스데반의 저 죽음에 동참하겠다는 표현이다. 이 울음은 내가 스데반의 믿음과 함께 하겠다는 고백이다. 내가 어떤 처벌 징벌을 받더라도 산헤드린공회가 그렇게 판결을 내렸더라도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경건한 사람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이렇게 인간적인 슬픔을 넘어선 울음. 상대의 아픔에 함께 하는 자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이 사람들이 흩어져서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나아가는 사람이 된다.
헨리 나우웬 - care이라는 단어는 고통의 연대. 진정으로 고통하는 자들과 연대하는 것. 나의 고통이 다른 사람들과 연대되는 것.
나를 잔멸하는 이 사람으로 인해 경건한 사람들은 울기 시작한다. 사울은 교회를 이렇게 잔멸한다.
사울은 어떤 사람인가? 스데반이 죽을 때 옆에 서서 옷을 맡은 자. 내 옆에서 내 옷을 맡은 자가 나를 잔멸한다. 나의 구원을 돕는 자이다. 이 사람의 큰 박해가 내 구원의 최고의 공로자이다. 내 아내 내 남편이 나를 잔멸해주어야 내 자아가 깨어지고 내가 가지 못했던 곳으로 흩어져서 가게 한다.
@내가 크게 통곡하며 울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수많은 간증을 함께 들으며 공감하나요? 아니면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평가하나요?
내 옆에 옷 맡은 자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3. 큰 기쁨이 있습니다.
큰 박해 큰 울음 뒤에 큰 기쁨이 있다고 한다.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흩어지면서 지경이 넓어졌다. 그 성은 어디인가? 사마리아성. 남유다 사람들이 북이스라엘에 찾아갔을 때는 그들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마지막 명령에서 사마리아에도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그런데 사도들조차 시도를 안했는데 큰 박해와 큰 울음으로 흩어지게 되니 사마리아 까지 나아간다. 이 성에 복음이 전해지니 이 사마리아성에도 큰 기쁨이 있다.
빌립도 하더라. 빌립은 사도도 아니고 집사였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빌립도 하더라. 하는 것이다. 사도들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빌립이 한다. 박해를 받아서 도망가니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았을 것이다. 낮은 마음 가난한 심령이 수천년동안 내려왔던 경계를 넘게 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넘어서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해가 되니 용서가 되고 용서가 되니 경계를 넘을 수 있게 되고 그 경계에 복음이 흘러가게 된다. 사마리아 온 성에도 그 기쁨이 가득 넘치게 된다. 유대인들이 원수처럼 여기고 가지도 않았던 곳을 빌립이 가게 하신다. 초대교회에서 전파하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빌립도 하더라 빌립이 전했다.
@아직도 내가 넘어서지 못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용서가 안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과 내가 똑같은 죄인임이 믿어지시나요?
나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나요?
<기도제목>
A.
1. 예배가 회복되고 말씀이 잘 들리고 일상생활 잘하고 가족들 목장식구들 영육간에 강건하길
2. 가족들 좋은곳으로 진로인도 기름부어주시고 앞길인도해주시길
3. 남동생이랑 저 예수님닮은 배우자 만나 신교제 신결혼
4. 홀로서기 준비 영육간에 잘채우길
5. 아빠 허리 협착증 수술안하고 낫고 뇌세포 활성화 되길
6. 남동생 직장생활 즐겁게 하고 기름부어주시고 공동체로 인도함받길
B.
1.매장을 오픈하게 해 주세요
2.회개를 한게 없다면 제 수준에 맞게 알려주세요
3.지인들의 대한 기도를 진심으로 하게 해 주세요
4.이제는 게으름,회피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5.부모님 운동할 환경을 만들어 운동하게 해 주세요
6.목장 식구들 건강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