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증인 ( 행 5 : 27 - 32 )
지난 주에 일어날 수 없던 사람이 일어났다. 그 사람이 여전히 앉아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어섰다.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더불어 주목하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잡아 일으켜주었다.일어난 이 한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떠나지 않고 함께 성전에 들어가고 자기의 삶의 터전에서 증인이 되어간다.
어떤 집사님이 지난 주 설교를 듣고 저에게 전화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저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교회를 떠나고 싶어요 목장도 어느 누구도.. 지체도.. 목사님은 어떻게 하시고 싶으신가요?
하시니 저는 물론 이 교회에서 잘 양육받으면 떠나야 할 때가 있지만 사명이 있으면 가야하지만 제가 만약 치리받고 억울해서 교회를 떠났다면 아마 아버지를 평생 원수로 여겼을 것이다. 아버지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도 찾아뵙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양육받으며 내 죄가 보이고 해석이 되니 아버지를 어머니를 교회에 모시게 됐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로 일어서서 살아나게 되니 살아난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증인이 되었다. 제가 여기서 설교자로 서있지만 한 사람의 증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체의 증인으로 서있게 하셨다.
올 초 목장 탐방을 갔다 대선때였는데 이 집사님이 장애인 아들을 홀로 키우고 사업이 쫄딱 망해서 쫓겨났다. 그런데 장애인 아들과 쫓겨나서 원룸에 사는데 열심히 일하는데 주식 투자를 하셨다. 그런데 망해야하는데 잘 되었다. 제가 봤을 때 슬쩍 물어보니 4-5배정도 벌었다고 하셨다. 이 집사님이 주식의 증인이 되셨다. 어떻게 됐냐면 아침마다 목사님 말씀, 보석상자, 극동큐티 말씀을 올리면서 그 밑에 주식 종목을 넣으셨다. 그 목장하는 사람들은 다 나이가 들어서 주식을 어떻게 할줄 몰라서 종목이 뭔지도 몰랐다. 꾸준히 열심으로 종목으로 올렸는데 올린 종목마다 대박이 났다고 한다. 부러우세요? 목장사람들은 아무도 안 하고 이 분만 열변을 토하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했다. 제가 갔을 때도 올리셨는데 저도 궁금하더라구요. 그런데 목장 식구들과 말씀하면서 대선이 끝나면 절대 주식을 하지 않겠다 적용을 하셨다.
우리는 무엇에 증인인가? 두달만에 10KG빠졌대 무슨 약이야? 어디 가야해? 이렇게 말을 한다. 요즘 남자들은 어떤 거에 관심이 있나요? 탈모이다. 거기 가면 머리가 나기 시작하더라 하면 난리가 나고 그런데에 증인이 된다. 결국은 내 경험을 얘기하며 내가 살아난 곳에서 증인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제일 무섭다. 왜냐하면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경험이 다른 사람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지난 주 설교에 앉은뱅이는 베드로가 정확하게 해석해준다. 왜 나를 주목하느냐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셨다고 한다.
나의 경험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이 앉은 뱅이가 떠나지 않고 성전문으로 나아와서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는 그저 예수님을 부인만 했는데 이런 나를 먼저 손내미셔서 살려주셨기에 여전한 방식으로 성전에서 증인이 된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1. 끌어다가 세운 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7절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 앉은뱅이가 성전에 들어간 이후 이 일이 퍼지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시기를 한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감옥에 넣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이들을 꺼내고 성전에 서서 이 일을 전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베드로가 새벽부터 성전에 서서 말씀을 전한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아 새벽부터 나와서 말씀을 전해야하는구나 해석이 됐다.
날이 밝았고 대제사장들과 의원들이 이들을 찾았는데 없어서 깜짝 놀랐다. 이들이 도망가지 않고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니 끌어오라고 한다. 그래서 경비원들이 잡아온다. 이런 사도들이 한 번 더끌려와서 법정 앞에 선 본문이 오늘 27절의 시작이다.
그런데 27절에 보면 그들을 끌어다가 로 시작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끌려온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54절에 똑같이 끌려온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도 예수를 잡아 끌고 이 끌고와 오늘 끌어다가는 똑같은 단어이다. 우리가 생각해보자. 사도행전은 누가 썼나요? 누가이다. 누가복음은 누가 썼나요? 누가가 썼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원래 한 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누가복음 22장 54절 단어와 오늘 단어를 똑같이 썼는데 베드로가 둘다 등장한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끌려가고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간다. 오늘 베드로가 끌려간 그 사람들 앞에 끌려갔듯이 예수님이 끌려갔는데 베드로가 따라간다. 나는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던 베드로가 끌려간다.그런데 거기 있던 종이 너 예수님과 무리 아냐? 하니 부인한다. 어? 그 사람 맞는데? 절대 아니야 이제는 종이 너무 화가 나서 장담하며 너 그 사람 맞잖아! 하는데 저주하면서 아니라고 하니 닭이 세번 울고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한다. 바로 그 사람들. 예수님을 끌고 갔던 그 사람 그 동족 안나스 가문 가야바 대제사장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원 그 끌고 갔던 그 사람들이 오늘 베드로를 다시 끌고 왔다. 불과 두달 전이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이 불과 두 달전이다. 두 달 이후 오늘 도망간 베드로가 끌려간다. 그러나 베드로는 더이상 부인하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서있는다. 그러면 큐티하면 알겠지만 오늘 첫번째 끌려온게 아니다. 4장에서 끌려왔고 놓임을 받았는데 또 끌려왔다. 계속 반복해서 실패해도 반복해서 하나님이 똑같은 상황을 주신다. 이것은 이곳이 나의 사명의 자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증인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무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저 이 십자가 무거워요 던져버리고 튼튼해보이는 쇠십자가를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서 나무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 그리고 던져버린다. 그러면서 이왕 질 거 장미 십자가를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가시로 더 큰 고통이 임한다. 사명의 자리를 피해선 안 된다. 이혼을 해선 안 된다. 당하더라도 하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거룩을 위한 최고의 사명지이니 증인으로서 서야한다. 계속해서 반복해서 이 환경을 주신다. 원치 않는 그곳이 내가 서있어야 할 자리가 사명지이다. 내가 원치 않아서 간 자리가 어디인가? 바로 가정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내가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이 있나요? 내가 보니까~ 저쪽 부모님은 사이가 좋아 얼굴도 예뻐 연봉도 억대야 하며 고를 수 있나요? 그런 사람이 있나요?
정말 그런 선택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는 저희 부모님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 당시 하라고 하면 안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성령에 이끌려 예수님이 광야로 이끌려갔듯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영원한 택함과 계획 안에서 나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하셨다. 제가 왜 이 가정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짧게 이야기하면 저희 아버지는 고등학교 때 감옥을 가시고 나오셔서 평생 무직으로 노숙자로 알콜중독자로 사셨고 그런 아버지의 폭행과 술주정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고3때 기숙사에서 돌아왔을 때 집을 나가셨다. 그런데 오늘 베드로는 내가 선택한 자리가 아닌 끌려온 자리에서 증인이 된다. 실패한 자리 반복해서 세우신 자리.
우리는 다 끌려와서 태어왔다. 그런데 이것이 저주가 아니라 고르고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내게 맡겨주신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아무도 감당하지 못한다. 친척들이 형제들이 다 버렸다. 그 사람을 고르고 고르고 골라서 저에게 맡기셨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맡기신 것이다. 이 힘든 아버지, 어머니, 자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인 나를 먼저 살리셨기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곳 두려워서 떠난 그곳에서 증인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 먼저 나를 살리신다. 오늘 주님 저를 살려달라고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어떤 집사님이 피투성이라도 살 수가 없어서 지옥으로 만드는 남편때문에 너무 힘든데 어떻게 아테니조 할 수 있는지, 또 어떤 분은 남편의 존재 자체가 싫어서 누워있는 것도 보기 싫어서 아테니조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독기 가득한 눈으로 봤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김성우 목사는 그 아버지를 아테니조 할 수 있었냐고 도대체 김성우 목사는 무슨 죄가 있기에 그럴 수 있었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죄인이다 끝나서는 안된다. 저 역시 아버지를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속에서 분노가 올라왔다. 얼마전 어머니를 뵐 기회가 있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새아버지가 어디 가신다고 해서 어머니를 태워달라는 요청을 받고 갔는데 어머니가 아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가자마자 현관에서 쭈그려 앉아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데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옆에 태우고 가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하는데 눈에서 눈물이 계속 나왔다. 증오인지 원망인지 그리움인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어머니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연약하다. 우린 할 수 없었다. 그 날도 제가 가기 싫었는데 아내가 같이 가자 해서 갔었다. 지금도 어머니와 아버지 뵙는게 너무 힘들었다. 늘 안간다 안간다 했지만 베드로 옆에 요한이 있듯이 아내가 있었다. 아버지 보면 화가 나서 예배 떠나려고 하는데도 아내가 제 손을 붙잡고 같이 드리게 하셨다.
하나님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 공동체를 주시고 내 옆의 한 사람을 주시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다. 우리는 혼자 할 수 없다.내가 죄인인 것도 알고 살아난 것도 알지만 안 되는 나를 또 나누고 나누고 나누며 가야한다. 그리고 반드시 신결혼을 해야한다.
정말로 우리는 옆의 공동체와 함께 내가 원치 않는 그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한다. 증인이 되려고 뭔가 하려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분은 도저히 힘들어서 일어날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앉아계시면 된다. 우리 삶 자체가 증인이다. 우리 고난의 흔적을 가지고 성전 미문 앞의 거지는 아무말도 안 한 것처럼 서있었던 것처럼 고난의 흔적을 가진 우리가 그저 살아내기만 해도 그저 존재 자체가 증인이다.
저희 아버지가 왜 이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있나? 오래된 저의 의문이었다. 그런데 아버지 소천 하실 때 아버지가 살아계시 것만으로도 증인이셨구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너무 잘 살아오셨어요.
적용
나는 무엇에 증인인가요? 주식,다이어트, 맛집, 여행지, 금테크에 증인인가요?
내가 성공한 경험, 실패한 경험은 무엇인가요?
원치 않지만 서게 된 곳은 어디인가요?
거기서 예수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시나요?
2. 내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8-30절
끌려가 서게 되니 대제사장이 묻는다. 27절 하반절에 묻되가 나온다. 우리가 존재 자체가 증인이니 사람들이 계속 묻는다. 어떻게 가정을 지키셨어요 어떻게 부모님을 섬기셨어요 자녀를 섬기셨어요 어떻게 살아나셨어요? 또 우리는 묻는다. 어떻게 살빼셨어요? 어디 피부과 다니세요? 어떻게 부자됐어요? 이렇게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증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묻는다. 그러면서 28절에 이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너희가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했다. 예수님을 이 사람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너희 가르침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표현하는가? 예루살렘에 전부 가득하게 됐는데 대제사장 그리고 그 앞에 선 사람들에게는 이 복음이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단한 베드로 요한 사도들이 서있고 성전 미문 앞의 앉은뱅이가 서서 눈앞에 있고 베드로의 설교로 하루에 3-5천명이 예수님을 믿게 됐는데도 믿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 가르침 이 사람 가득했다라는 표현은 완료형으로 가득찰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마음과 이 땅에, 성읍에 가득찼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대제사장은 믿지 않는다. 왜 믿지 않는가?
28절
이들이 믿지 않았던 이유는 이들 스스로가 이 진리를 엄금했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이 외쳐도 귀를 막았다는 것이다. 엄금했다는 말은 명령을 명령했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다. 굉장히 강하게 명령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강압적인 태도가 베드로와 사도들뿐만 아니라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향한다. 이것은 절대 말해서도 드러나서도 안된다고 하며 명령하고 명령한다. 왜 이렇게 강하게 명령하는가?
30절
베드로가 바로 얘기해준다. 너희가 나무에 달려 죽인 예수를 우리 하나님이 살리시고...그들이 실제로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이다. 대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 가문이 예수님을 이 공회에서 두 달전에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안나스와 가야바를 비롯한 동일한 사람들이 여기 서있다. 여기서 베드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못박았다는 것을 무고한 그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인정하게 되니 온 힘을 다해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틀렸다를 인정하지 못하기에 금하고 또 금하며 명령하고 또명령한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내가 죄인이 되기 때문에... 아내와 남편이 싸우는 동안 이것을 인정하면 내 잘못이 되기에 소리지르고 나가게 된다.
내 죄를 숨기기 위해 금하고 또 금한다.
저 역시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온 거리에서 욕을 하는데 어머니에 대한 입에 담기 힘든 상스러운 단어와 문자로 욕을 하셨다. 저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수치스러웠고 미웠다. 고3때 긱사에서 집에 오니 어머니는 안계시고 아버지만 있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을 말하는 순간 그것이 현실이 되고 인정하게 되고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내가 예수를 매달아 죽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저는 고등학교때 굉장히 착했고 여자와 사귄 적도 없고 공부만 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회장이었다. 학교에서는 중창단 단원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말하는 순간 제일 친한 친구에게도 교회 선생님에게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말할 한 사람이 없어서 죽고 싶다. 말할 수 없으려면 가면을 써야한다. 가면을 쓴 사람의 특징은 예수의 증인이 아닌 자기 행동의 증인으로 산다. 자기 자랑을 하며 변명을 한다.제가 얼마나 변명을 잘하는지 모른다. 뿌리 깊은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니 다른 곳에서 변명을 하게 된다. 우리들교회 처음왔을때 목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저희 가정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목사니까... 그런데 말을 해도 상관없었던게 주차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이 위치에 있으니 더 가면을 쓰게 됐다. 무시 당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나 공부 잘했다 나 잘생겼다 듣기 싫은 말만 했다. 그러니까 담임목사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치리를 주셨다. 그 입을 다물라 말금지 치리를 받았다. 저만 금하고 또 금할 뿐이지 온 예루살렘에 가득하다고 했다. 인정하고 가면을 벗어야 한다. 저는 인정하고 가면을 벗으면 사람들이 떠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뭔가 잘못을 하면 저 사람이 나를 떠날까봐 변명을 했다. 그러나 그러면 더 진절머리가 난다. 지난 주 설교때도 1부때 시계를 잘못봐서 굉장히 빨리 설교를 했는데 FD가 잘못했다며 남탓을 했다.
내가 나무에 달았다는 것은 저주이고 수치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에 정말로 자기가 살인자가 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해야할 말은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이게 안 되니 재판이 반복되고 싸우고 전쟁이 나는 것이다. 모든 분란은 인정하지 못하는 나 때문이다. 직면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자기 안의 질투 어두운 감정을 직면하는 것이 어려워서 자기의 이상적인 모습만 보려하고 포장하려 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따라서 내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렇게 배워왔고 교육받아왔고 집에서도 그렇게 커왔다. 그런데 우리의가치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증인인가에 결정된다. 남을 만족시키는 태도는 완벽해보이는 가면을 만들지만 그 속에는 억울함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다. 진정한 관계는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연기가 아니라 오해받을지라도 진짜 내 모습을 증언하는 것이다.
적용
어느 누구도 알아선 안된다며 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안전한 공동체에서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있나요?
나무에 달린 십자가가 부끄러워 숨기고 있나요?
입에도 꺼내기 싫어서 '이 이름' 이라 칭하는 수치는 무엇인가요? 자녀인가요? 부모인가요? 내 모습인가요?
3. 회개함과 죄 사함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31-32절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이 정말로 입에도 꺼내기 싫어서 이 이름이라고 얘기하는 대제사장에게 정확하게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라고 말한다. 죄를 후벼파고 지적한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였을까? 우리는 보통 죄를 지으면 그 죄인을 정죄하며 알려준다. 저도 집에서 저의 죄를 알려주는 한 사람이 있다. 있을 유 믿을 신 그 분이 성우씨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하면 저는 도망가고 싶다. 너무 감사하게도 저희 교회에도 두려워하는 한 분이 계신다. 목사님께서 부목사들 다 나가라고 하고 저만 딱 두셨다. 별 말씀도 안 하신다. 김성우 목사. 나에게 할 말 없어? 그때부터 저는 미친듯이 멘붕이 오고 두려움에 떤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섭다.
돌이켜보면 저도 그런 거 같다. 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라고 살아나라고. 저는 그러지 못했다. 저는 아버지 술마시면 어릴때는 대들지 못했지만 힘이 생기니 당신이 한 일이 뭔지 보라고 깨달으라고 하며 가시 박힌 말들을 던졌다.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당신이 이렇게 하니 아내가 나간다 나같아도 살기 싫다며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는 이야기를 했다. 저주를 퍼부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제사장에게 당신이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가 너가 나무에 달아 죽였잖아 외친다. 그저 정죄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31절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는 분을 너희가 알아라 나도 예수를 죽였고 너도 죽였고 우리 모두 죄인이다 회개함과 죄사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정확하게 안다. 주시는 것이다. 언제 주시냐 인정했을때. 회개는 과거와의 완절한 단절이다. 출애굽때 이스라엘백성은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세상의 노예로 애굽의 노예로 살았던 내 삶과의 단절 그러려면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주셔야한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죄인인 우리의 심령에 하늘문을 여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야 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죄인임을 고백할 때 인정할 때 주신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였다 로 끝나는게 아니라 회개함의 증인까지 가야한다. 회개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이다. 내가 이 죄를 끊어냈습니다 다시는 안 돌아갑니다 여기까지 가야한다. 이것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를 임금과 구주로 삼았다고 하신다. 임금이 무엇인가? 심판하는 자리이다. 이 죄, 우리가 하나님이 돌이키게 해주셨는데 또 돌아가는 그 죄를 반복하면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주로 삼으셨다. 구주는 무엇인가 이것을 내가 할 수 없기에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주님 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옵소서
내가 할 수 없기에 구해야한다.
세상에 가장 큰 권력을 가졌지만 베드로는 그 앞에서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함과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회개는 직면과 인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에 끝나면 회개가 아니다. 돌이켜서 내 행위를 바르게 해야한다. 내가 주님을 못박은 것이 인정되ㅣ고 슬퍼할 만한 행동에서 돌이킨다면 오늘 베드로는 죄사함이 있을 것이라고 성전에서 외친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우리에게도 선포한다. 인정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이킬 때 온전한 죄사함을 주신다고 하신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한다.
그리고 32절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한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나의 추악한 과거뿐만 아니라 용서함을 받아 그 십자가 사랑에 감격해서 죄를 완전히 끊어내고 돌이킨 일에도 증인이 되어야 한다. 증인은 마루투스라고 한다. 순교자라는 뜻이다. 이 시대의 순교는 혈기를 죽이는 것이다. 내 생각을 죽이고 내 혈기를 죽이는 것이 바로 증인이다. 내가 끌려간 그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한다. 혼자가 아니다. 공동체가 있다. 그래서 32절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로 마친다. 내가 이것을 고백하고 죄를 끊어낼 때 하나님이 내 수치를 가려주시고 나의 증인이 되어주신다. 어떻게 증거해주시는가 이는 죄인이 아니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언해주신다. 그렇게 성령께서 힘주시고 높여주신다.
적용
회개함과 죄사함의 증인이 되고 있나요?
내가 결코 돌아가지 말아야 할 죄는 무엇인가요?
또 넘어졌다면 다시 고백하며 순종할 때 성령께서 도우시는지 믿으시나요?
오늘 베드로는 이들에게 마지막 판결을 내리는게 아니라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도 돌이키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나고 증인이 된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한 장로님이 자기 죄를 숨기고 완벽하게 숨기고 있었는데 가장 사랑하고 자랑이었던 그 아들이 연상의 여자와 그것도 결혼을 실패한 여자와 결혼을 하려 하는 사건 앞에서 자신이 원치 않았던 환경을 마주치며 들어올 예비 며느리가 나보다 옳도다 고백하셨다고 한다. 이 사건 앞에서 이것을 고백하고 공동체 앞에 과거 유부녀와 바람 핀 사건을 고백하고 공개치리를 받으셨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죄패를 달아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은 자리까지 나아오셔서 평생 죄인으로 다시는 내가 이 죄를 지지 않겠다 증인이 되셨다. 수많은 바람 피신 분에게 간증하며 눈물로 사과하며 사명감당하며 존재 자체가 증인이 되셨다. 오늘 하루 내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셔야 한다. 그때 성령께서도 나를 증거해주신다 우리가 마지막 날 아버지 앞에 섰을 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주님 저자는 당신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증언해주신다. 우리의 눈물 삶 고백 자체가 증인이다. 끌려간 그 곳에서 살아내셔야 한다.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여 죽였다 그것을 고백하고 회개의 자리까지 나아가셔야 합니다.
기도제목
a:
1.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길수있도록
2. 큐티 할수있도록
b:
1. 양육 과제 잘 할수있도록
c:
1.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길수있도록
2. 부지런할수있도록
d:
1. 취업 이력서 잘 지원할수있도록
2. 매일 자기전에 하나님께 기도할수있도록
3. 운동 열심히 할수있도록
e:
1. 일상생활 하나님께 의지하며 잘 할수있도록
f:
1. 직장 잘 다닐수있도록
2. 큐티 할수있도럭
3. 신교제, 신결혼
g:
1. 이번주 면접 잘 볼수있도록
2. 신교제, 신결혼
h:
1. 큐티 일주일에 한번은 할수있도록
2. 이직에 대해 생각할수있도록
3. 신교제, 신결혼
i:
1. 미래 계획 잘 세울수있도록
2. 생활 예배 회복
j:
1. 연극영화과인데 오디션 잘 합격할수있도록
2. 다음년도에 학교 잘 다닐수있도록
3. 우울감 잘 회복될수있도록
k:
1. 일 시작전에 기도로 시작하기
2. 직원들에게 화 줄이기
l:
1. 가족건강
2. 큐티 잘 할수있도록
3. 직원의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울수있도록
4. 신교제, 신결혼
5. 나라가 회복될수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