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2025.08.24.(주일) 에베소서 4:1-6 「성령의 부르심」 이성훈목사님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 설교내용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가 세상의 부름이 아니라 성령의 부르심을 받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러분, 지난 한 주도 우리 상한 심령이 되셔서 각자의 자리를 잘 지키셨나요? 우리가 이제 에베소서 또 큐티를 시작하고 지금 묵상을 하고 있는데 편지이기 때문에 굉장히 (스마트폰 벨소리~ ) 아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이게 이 전화가 오면 안 되는 때에 전화가 와 가지고. 여보세요? ^^ 아유 죄송해요. 제가 이거 이런 실수를 제가 안 하는데^^
여러분, 자 생각해 보세요. 전화는 받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가 있는 게 아니에요. 전화는 거는 사람 마음입니다. 전화벨이 울리는 것은 전화를 거는 그 콜러(Caller, 발신자)의 마음이지 전화를 받는 그 리시버(Receiver, 수신자)의 마음이 아니에요. 영어로 부르심은 콜링(Calling, 부르심)입니다. 콜링. 성령의 부르심, 즉 성령의 콜링은요, 성령께서 콜러(Caller)이신 성령께서 결정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들을 뿐이고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그래서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서 주님을 예배하게 된 것이 과연 우리 힘과 원대로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상황 고려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 고려하지 않으시고, 성령께서 정하신 그때에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믿게 된 줄 믿습니다.
우리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강해를 하셨잖아요. 성령 시리즈로 하셨는데 사실 그때 남겨두신 단어가 별로 없어요. 워낙 많은 단어들을 다 목사님께서 다루어 주셨기 때문에 남아 있는 단어가 얼마 없는데, 이 부르심! 이 단어가 하나가 딱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오늘 <성령의 부르심>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령의 부르심은 첫 번째로
겸손한 자리로 부르십니다. (1-2절)
1절 말씀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여러분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녀였어요. 진노의 자녀. 결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에 전화기가 있었다면 우리 같은 사람 전화번호를 그 전화기에 저장조차 해놓으시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된 결과예요. 학교나 회사처럼 우리가 지원해서 선발된 것이 아닙니다. 합격한 게 아니에요. 만세 전에 성부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때가 차매 성자 예수님께서 완성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우리의 때에 우리의 그 카이로스에! 성령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해 주신 거예요. 우리에게 들을 귀를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도록 들리도록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죠. 그래서 성령님께서 들리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잖아요. 그렇죠? 성령께서 들리게 해 주셨기 때문에 이 부르심을 우리가 특별히 성령의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부르심은 진노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신 것입니다. 단순히 전화 한 통 거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 초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존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다녔어요.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 무서워서 도망 다니던 인생입니다. 진노 가운데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 성령께서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자격이 없는 줄 알면서도, 염치가 없는 줄 알면서도, 이 자리에 우리가 나와서 하나님, 저 왔습니다. 저 왔어요. 저 여기 있어요.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오게 된 줄 믿습니다.
이렇게 존귀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다 이루었다~ 이제 내 삶은 평안하다~라고 하면서 그냥 조용히 즐겁게 살면 될까요? 아닙니다.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 시작하는 첫 단어처럼 그러므로가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부르심에 걸맞는! 합당한 응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앞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는 그 방향이 있는 거예요. 목적지가 있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있다는 말씀이에요.
그러면 어떤 삶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인가?
2절 말씀 우리 또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여러분 크게 세 가지-세 덩어리-를 말하고 있어요. 모든 겸손과 온유 이게 하나고 그 다음에 오래 참음 이게 또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함 이게 또 하나예요. 이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
amp#9312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함
먼저 사랑으로-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요, 상대방의 그 연약함-부족함을- 내가 받아주는 거예요. 받아내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같이 사는 가족들을 볼 때도 말이든 행동이든 마음에 안 들 때가 너 얼마나 많습니까? 마음에 안 들 뿐만 아니라 미워서 어떻게 하고 싶을 때도 너무 많고요. 속에서 분노가 일어나고, 짜증이 날 때가 너무! 너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이렇게 꼴 보기 싫은 모습을 받아줘라! 받아줘라! 내가 당한 만큼 갚지 말라! 우리 그러니까 싸움이 되는 거잖아요, 부부간에도. 내가 한마디 들었으면 꼭 한마디 갚아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다가 싸움이 나는데 그렇게 이 에는 이 눈에는 눈 이렇게 갚지 말라는 거예요. 그게 용납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이 용납하는 것을 우리의 인격과 체면과 교양에 의지해서 그 힘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하루 이틀은 할 수 있어요. 하루 이틀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고, 몇 년이 되면 이제는 못 살겠다! 이제는 못 살겠다! 하면서 그냥 도장을 찍게 되는 것이죠. 저도 참다 참다 참다 못해서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 한 그때가 결혼하고서 7년째 딱 그 시기가 오더라고요.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다! 이제는 참지 못하겠다! 이런 때가 오는 거예요. 우리 힘으로는 이렇게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단어가 붙는데 그것이 뭐예요? 사랑 가운데서 하라 그래요. 그냥 용납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해라. 사랑으로 해라. 여러분 무슨 말이에요? 사랑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거라고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건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구원을 생각하는 거예요. 저 사람은 구원받아야 되는데//!! 그 구원을 향한 애통함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인 것이죠. 그러니까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는 말씀은요, 구원 때문에-그 사람이 구원되도록-내가 그 사람의 약점과 허물과 그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을 받아줘라 이겁니다.
⓶ 오래 참음
근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여기 본문에 있는 것처럼 오래 참음이에요.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오래 참음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때가 찰 때까지! 내가 기대하는 때가 아니라 성령께서 정하신 그 구원의 때! 그 사람에게 딱 맞는 그 카이로스의 시간이 임할 때까지 내 생각을 내려놓고 기다려주라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주셨고, 용납해 주셨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런 말하면 정말 안 되겠어요. 저도 제가 그 미국에서 그날 밤에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거 한 말에 대해서 정말 늘 생각하고 있어요. 회개하게 됩니다. 물론 이제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구원의 공동체(우리들교회)로 인도되었지만은 사실 그게 하나님의 은혜인 거죠. 제가 그렇다고 그래서 제가 그때 저질렀던 그 생각과 그 말이 용서가 되는 게 아니에요. 절대로 더 이상은 못 참아!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를 참아주신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그런 말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도 나와 똑같이 구원 받아야 될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구원의 때까지 인내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또 이 오래 참는 거 우리 힘으로 또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절대로 오래 참을 수가 없어요.
amp#9314 모든 겸손과 온유
그래서 꼭 필요한 게 있는데 이것이 뭐냐 하면 바로 온유입니다, 온유. 온유와 교만은 한 세트예요. 근데 이제 한 가지씩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온유는 다른 것이 아니에요. 내 분수를 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선을 지키는 거예요. 내 한계를 아는 거예요. 우리는 자꾸 선을 넘잖아요.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우리가 선을 자꾸 넘어요. 내 권리를 주장하고, 내 권한을 앞세우고, 내 생각을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전공인데 그렇게 하지 말고 내 한계를 지키고, 내 분수를 알고, 내 주제를 파악하는 거 이것이 이제 온유입니다. 그래서 온유하게 되면-내 주제를 파악하면-내 인생에 어떠한 멍에가 내 어깨 위에 올라가더라도 옳소이다가 나오는 것 같아요. 내 한계를 모르니까 나는 이럴 사람이 아닌데! 내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또 이 온유하기 위해서-내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꼭 알아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거 하나 알지 못하면 우리가 주제 파악할 수 없어요. 그것이 뭐예요? 내 죄를 아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 존재인지, 한마디로 내가 100%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뭐예요?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은 낮은 척하고 내가 뭐 아유 아닙니다. 다 하나님이 하셨어요. 다 여러분들 덕분이에요. 이렇게 하는 게 겸손이 아니라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100%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이거 알면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낫다는 것, 좋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요. 내가 어떤 이상한 사람보다도 더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리하면, 우리가 읽은 2절 말씀은 사실은 서로 다른 말 하는 게 아니에요. 겸손하면 온유할 수가 있는 것이고, 온유하면 오래 참을 수가 있는 것이고, 오래 참을 수 있으면 서로 용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이 제일 근본적인 거예요. ★내가 100%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제일 먼저고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오늘 본문에서 겸손 앞에다가 모든 이라는 것을 붙였어요. 모든 겸손으로 해라. 이거 너무 중요하다는 거예요. 모든 겸손으로! 네가 100%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철저히 알아야 된다! 이것이 먼저다! 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사도 바울이 살던 이 신약 시대 로마 사회에서는요. 이 겸손이라는 말은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겸손의 반대말이 뭐예요? 겸손의 반대말이 교만이잖아요. 겸손의 반대말을 우리는 교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데 여러분 교만은 나쁜 거잖아요. 그렇죠? 나쁜 것의 반대니까 겸손이 좋은 거잖아요. 너무 당연한 말이죠. 그러나 로마 시대에는 이 겸손의 반대말이 뭐였는지 아세요? 겸손의 반대말은 잘남이에요. 잘남 잘났어요. 그러니까 겸손이 무슨 뜻인 거예요? 못났다는 뜻이에요. 욕이에요, 욕. 그러니까 이 로마 사람들이 볼 때 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막 겸손해야 된다고 가르치는데 너무 웃긴 거예요. 너무 이상한 거예요. 아니 어떻게 못나게 되라고 가르치나?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저 사람들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네. 아니, 어떻게 이 세상을 잘 나게 살아야지! 훌륭하게 살아야지! 왜 저렇게 자꾸 못나게 살려고 그래? 이게 이제 당시 사람들의 시선이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조롱을 많이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조롱도 조롱이지만 사실 우리가 어떻게 내 스스로 100%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거 너무 잘 아시는 성령께서! 가장 잘 아시는 성령님께서 얘네들은 도저히 겸손할 수가 없구나! 도저히 100% 죄인이라는 걸 깨달을 수 없구나! 이걸 너무 잘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어떻게 하세요? ★우리를 겸손한 자리로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겸손한 환경에 갇히게 하시는 거예요. 오늘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이라고 다시 한 번 자신이 갇혀 있다는 거 강조하잖아요. 여러분 이상하지 않으세요? 이 옥중 서신에서 얼마나 이 말을... 잊을 만하면 또 한 번씩 써주고~ 잊을 만하면~ 저는 잊을 만 하면 학벌 좋습니다~ 잊을만 하면 박사입니다~ 잊을만 하면 헬라어 할 줄 압니다~ 저는 이러고 있는데^^ 우리 바울 선생님은 어떻게 하세요? 바울 선생님은 잊을만 하면 갇힌 자다 잊을만 하면 묶인 자다 잊을만 하면 죄인이다왜 이렇게 갇혀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할까요? 이것을 성령께서 해주셨다는 것. 내가 지금 겸손한 환경, 겸손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나를 놓아두신 분이 성령이시라는 거예요. 성령께서 나를 이 자리로 불러주셨다. 왜요? 겸손할 수 없는 나를 도우시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건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성령께서 우리를 겸손한 자리로 이끌고 가시는 것은 우리를 막 괴롭히지 못해서 막 심술꾸러기 뺑덕어미처럼 막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진짜 구원된 상한 심령 되게 하시려고 도우시는 성령님의 손길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혹시 감옥 같은 상황에 갇혀 계십니까? 여러 고난의 쇠사슬에 묶여 계십니까?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주 안에서 된 일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나를 도우시기 위해서 나를 겸손한 자리로 불러주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힘들지만... 너무 힘들죠.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고 하루빨리 풀려나고 싶어요. 그렇지만 성령께서 나를 도우시는 일이기 때문에 이 성령의 부르심에 내가 잘 갇혀서 내가 잘 매어서 잘 묶여서 최고로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진짜 성령께서 책임져 주실 거예요.
적용 질문입니다.
Q. 지금 어디에 갇혀 계신가요?
Q. 그것이 주 안에서 갇힌 겸손한 자리임이 믿어집니까?
Q. 겸손한 자리에 잘 갇혀 있기 위해서 이번 주 적용할 일은 무엇인가요?
<성령의 부르심>은 첫째로 겸손한 자리로 부르신다고 그랬어요. <세상의 부름>은요, 높은 자리로 부르는 거잖아요. 선택되는 거잖아요. 선발되는 거잖아요. 그러나 <성령의 부르심>은 겸손의 겸손한 자리로 부르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요,
하나 되도록 부르십니다. (3-4절)
우리 3절과 4절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아멘. 우리가 성령의 부르심을 받기 전 그러니까 진노의 자녀였을 때 우리 모습은 그걸 이제 성경은 옛 사람이라고 그래요. 옛 자아, 옛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옛 사람의 특징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가 뭐냐 하면 분열되는 거예요. 쪼개지는 거예요. 나뉘어지는 겁니다.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다투다가 결국에는 원수가 되어서 다 쪼개지는 거예요. 이것이 진노의 자녀일 때 우리 옛 사람의 모습이에요.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왜냐, 저마다 내가 옳다만 외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거든요. 나만 옳다고 외치니까 다 쪼개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쪼개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원수를 한 명씩은 다 달고 사는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습니다. 화평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어요. 그 결과가 에베소서 2장 15절에 나오는 한 새 사람입니다. 한 새 사람 새 사람이 되었는데 그게 하나다. 한 새 사람.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라라고 지금 우리 읽었는데 이 뜻이 무엇이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야말로 한 몸과 한 영이 온전한 한 사람을 이루는 것처럼 그렇죠? 저는 몸이 하나고 영도 하나잖아요. 이 한 사람처럼 이 교회가-여러 지체들이 모인 교회가-이 가운데는 원수들도 있고, 다시는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그 관계에 악연을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은 그들을 다 주의 화평 가운데 모으셔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처럼 만들어 주셨다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한 새 사람이에요.
지난주에 제가 아는 척하면서 라틴어 한 말씀드렸잖아요. 기억하세요. 여러분들은 정말 이 신학 박사 정도의 이제 신학 지식을 가지신 거예요. 이거는 사실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요. 이건 제가 Mdiv(신학석사) 때 배운 게 아니고요. PhD 때도 이런 걸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닙니다. 제가 이건 사실 이 출처가 또 자랑질이 나오는데^^ 이 출처가 이 아우구스티누스에 있는 거예요. 이게 뭐냐면 이게 무슨 그냥 듣보잡 신학자들이 이상하게 만들어낸 게 아니라 모든 교파, 교단을 다 초월해서 카톨릭까지 다 포함해서 신학자 중에 신학자라고 인정하는 그 아우구스티누스 선생께서 친히 성경 해석에 대해서 묵상을 하시다가 발견하신 교리가 이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 라틴어)=더 홀 크라이스트(The Whole Christ)= 온전한 그리스도라는 말이죠. 제가 이걸 이번 주에 설교할 줄도 몰랐고, 이 본문인 줄 모르고 (지난 주에) 그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 바로 그게 나온 거예요. 한 새 사람 그러니까 우리가 다 각자 흩어지고 나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화평으로 모아주셔서 한 새 사람이 되게 하셨다 어려운 말로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 라틴어)가 되게 하셨다. 더 홀 크라이스트(The Whole Christ)가 되게 하셨다.그래서 나도 그리스도고, 당신도 그리스도고, 우리 전체가 다 그리스도다. 온전한 그리스도다. 더 홀 크라이스트(The Whole Christ)다. 이런 고백을 하면서, 어떤 묵상이든, 어떠한 본문이든 나와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치 나의 본문인 것처럼 믿고 고백하고 적용하면서 살 수 있는 거예요.
우리 몸의 지체가 몸에서 분리되면 죽잖아요. 그렇죠. 아니 피부도 이 작은 피부도 떨어져 나가면 그냥 말라서 없어지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한 새 사람인 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교회에서 상처받고 교회의 문제 때문에 나는 교회는 이제 교회는 진짜 질렸어~ 교회는 답이 없어~ 나는 그냥 내 신앙은 혼자서 지킬 거야~ 이거는 사실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물론 한 사람 한 사람 부르셨지만 혼자서 부르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선 언제나 공동체적으로 부르셨고, 교회를 통해서 부르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교회에 꼭 붙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온전히 누릴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망은 둘이 아니라 하나예요. 교회에서 내가 소망하는 것, 당신이 소망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소망하는 것 딱 하나입니다. 왜냐? 우리의 영원한 소망인 구원이 하나이고, 또 그 목적지인 천국이 한 곳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정말 얼굴 붉힐 일이 많고, 싫은 사람 좋은 사람이 있고 하지만요. 우린 결국엔 다 어디서 만나게 돼요? 다 천국에서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근데 이제 우리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주님께서 천국에서는 가족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하다고.. 주님이 우리 눈높이에 맞춰서 말씀하셨지만, 천국에서 결국엔 다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정말 화평이신 주님을 따라서 우리가 화평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되는 이유가 또 하나가 있는 거예요. 천국은 하나다. 네 천국, 내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천국이 하나다. 그래서 부르심의 소망이 하나다 이겁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이 하나됨 이 연합은요, 물리적인 합체가 아니에요. 그러면 굉장히 괴물이 되겠죠? 우리가 다 물리적으로 합쳐야 된다면 그건 괴물이에요. 그렇다고 그래 가지고 또 정신적인 공감이나 정신적인 동화(同化)에 불과한 것도 아니에요. 이건 인본적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그 하나됨, 이 연합은 영적인 연합이에요. 이건 다른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에 있는 대로 평안의 매는 줄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함께 묶여 있는 거예요. 평안의 매는 줄로 우리가 함께 묶여 있는 거예요. 그러면 평안의 매는 줄이 무엇일까요? 평안이라는 밧줄, 평안이라는 묶는 줄이라는 뜻인데 이건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평안, 즉 샬롬은요,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아니에요. 아무 고통도 없이 그냥 평안한 것을 평안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샬롬(평안)은 하나님의 통치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다 질서 있게 자리를 딱 잡고 있는 거예요. 자기 자리 잘 지키는 거예요. 누구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질서를 잡고있는 것이 평안인데 그렇다면 평안의 매는 줄이 뭐예요? 바로 그리스도의 통치예요. 그리스도의 다스림이에요. 그러니까 ★평안의 매는 줄에 잘 묶여 있는 것, 잘 매어 있는 건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또 사람의 눈치 보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통치를 받으면서 산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면서 산다. 말을 바꾸면, 주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이 말씀, 이 생명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평안의 매는 줄에 잘 묶여 있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듣고 순종하는 거예요.
감옥에서 바울이 매어 있는 그 사슬은요, 단순한 구속(拘束)이 아니에요. 묶여 있는 게 아닙니다.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것은 바울이 주님의 말씀에 묶여 있다는 이 영적인 연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울에게 주님이 특별히 가시적으로 보여주시는 사건이라고 바울은 그렇게 해석을 한 거예요. 여러분 이런 해석이 없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바울이 한 일이라고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복음 전한 것밖에 없는데 지금 이렇게 감옥에 갇혀서 묶여 있잖아요. 자유를 빼앗겼잖아요.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하겠어요? 저 같았으면 살 수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잊을만하면 갇혀 있는 사람, 잊을만하면 매인 존재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해요. 왜요? 이게 너무 자랑스러운 거예요. 여기에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이것은! 성령께서 나의 영적인 상태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 영적인 상태가 뭐예요? 내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묶여 있다! 하나님의 뜻에 매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증거이기 때문에 바울은 지금 너무 그것이 감격스럽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평안의 매는 줄에 잘 매여 있어야 하는데요. 이것은 내 생각과 내 감정과 내 의지를 좀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주님의 말씀대로 적용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를 서로 다른 우리를... 서로 악연도 있을 수 있고 하여튼 여러 가지 관계에 있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영적인 연합인 거예요.
순종은 쇠사슬이 아닙니다. 단지 쇠사슬이...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나를 속박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은 나를 지켜주는 안전벨트 같은 거예요. 주님이 나를 지켜주시는 것!
이처럼 교회의 하나 됨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 성령께서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우리를 그래서 그 자리로 불러주시는 거예요. 우리를 불러주셔서 교회로 들어오게 하십니다. 주님을 믿게 하세요. 그래서 이 영적 공동체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저절로 이 하나 된! 그 일부가 되어 가는 거예요. 왜 그래요? 여기에 바로 이 교회가 말씀의 구조고 순종의 구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요, 또 문제가 있죠. 우리가 이렇게 들어와서 은혜받고, 너무 좋고, 하나가 되는 것 같고, 목장에서 위로받고, 사랑을 받고, 교회의 돌봄을 받으면서 가정이 회복되는 것 같고 너무 좋아요. 그래서 ★그냥 누리기만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 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 나에게서 점점점점점점 약해지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내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죠. 내 감정이 늘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의도한 게 아닌데도 나 스스로 이 평안의 매는 줄을 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오늘 말씀에 어떻게 하라고 하세요? 힘써 지키라. 힘써 지키라!!고 하세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 이거 선물로 주신 것인데 이거 그냥 잘 간직해라 잘 가지고 있어라 잘 누려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지키라고 말씀하시고 그것도 그냥 지키는 것이 아니라 힘써 지키라!!고 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지금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간절히 외치고 계신 거예요.
하나 되게 하신 것! 이 하나 됨을 너희들이 최선을 다해서 지켜가거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amp#9312큐티하는 거예요. 우리가 매일 분열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말씀 앞에 세워서 그 말씀으로 나의 약함과 나의 악함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amp#9313목장에서 또 나누는 것이죠. 나의 연약함, 나의 죄악들, 나의 실수들 이 모든 것들을 목장에서 솔직하게 나누면서 같이 가는 거예요. 상한 갈대요, 상한 심령인 우리 지체들과 함께 모여서 서로 깎이고 목장에서 또 가끔 이제 이렇게 다투는 일도 있잖아요. 그럴 때 그럴 때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고 아, 이게 깎으시는 거구나! 이게 나를 주님께서 지금 깎으시는 거구나!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구나! 내가 들어야 될 말씀이고, 내가 회개해야 될 사건이구나! 이렇게 해석하면서 양육을 잘 받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연합을 힘써 지키는 일입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또 amp#9314여러 봉사로 섬기시면서 교회에 여러 봉사들이 있잖아요? 여러 봉사로 섬기시면서 자꾸만 세상을 향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나가려고 하고, 흘러 떠내려가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이 봉사를 통해서 딱 묶어둬야 되는 거예요. 확실히 봉사하면요, 매이는 게 있어요. 그 시간을 지켜야 되고,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가야 되고, 내가 또 섬길 일이 있고. 그리고 amp#9315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늘 말씀하듯이 이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딱! 붙어 있는 거예요. 딱풀 성도!! 딱 붙어 있는 것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이고요.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지키는 훈련- 하나 됨을 지키는 훈련-을 우리가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곳은요, 가정이에요. 가정!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만드셨지만, 특별히 특별히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다고 성경에서 강조하는 공동체가 2개가 있어요. 이게 뭔지 아세요? 하나는 교회요, 또 하나는 가정입니다. 부부예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공동체.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 내가 옳기 때문에 더 이상 못 참겠다~ 떠나야겠다~ 여기서는 답이 안 나온다~ 하면서 늘 들썩들썩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곳이 하나님께서 나를 매어두신 자리로 생각하고, 나를 가둬두신 자리인 걸로 생각하시고. 그 자리를 잘 지키면서 매어 있고, 가정이 하나 되게 하고, 또 교회에서 하나 됨을 우리가 누릴 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그 부르심대로 우리의 인생이 정말 하나뿐인 그 소망을 향해서 달려갈 줄 믿습니다!
세상에서 자랑하는 이 부름 있잖아요? 우리가 불림을 받고 싶은 그 부름, 세상의 부름. 이것은 너무 좋고 우리를 높이는 것 같지만 우리를 돋보이게 하는 것 같지만 모두를 제치고 나를 원톱으로 세워주는 것 같지만 거기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 (세상의) 부름은 한순간에 그 버림이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성령의 부르심은 이렇게 나를 깎고, 내가 원탑이 아니라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되어서 여러 지체들과 하나를 이루어야 되는... 그 어떻게 보면 힘든 자리, 어떻게 보면 가기 싫은 자리로 불러주시지만 그 성령의 부르심에 우리의 영원한 소망인 구원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런 천국의 하나 됨이 구원의 소망이 우리의 유일한 이 인생에 유일한 소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평안의 매는 줄에 잘 매여 있습니까?
Q. 다시 말해, 내 생각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의지하며 따릅니까?
Q. 내 인생에 가장 큰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한 성도님은 자녀를 일류 대학 보내고 싶은 마음에 아주 교육에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공부도 잘해야 된다~ 그래서 이제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이러면서 막 자녀들을 이제 몰아붙이셨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너무 잘 따라주었다고 하세요. 그런데 큰딸이 사춘기가 되었어요.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제 이 엄마의 기준에 조금 못 미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거예요. 학원 가서는 맨날 잠만 자고,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밤새 게임하고. 아주 그냥 엄마의 기대와 정반대가 되어 버렸어요. 게다가 잘 나가던 남편도 갑자기 실직하게 되고, 또 그것도 모자라서 이 투자 실패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뜻대로 자기의 욕심대로 막 할 수 있는 그 환경에서 갑자기 이 겸손한 자리에 처하게 되니까 겨우겨우 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인도되셨어요.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서 가족끼리도 이렇게 나뉘고 분열되고 내가 옳으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이렇게 막 싸우던 가족이 이제 각자 목장에 속해서 서로 나누고, 또 말씀으로 양육을 받다 보니까 이제 서로의 상처와 아픔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분도 아이들을 향한 자신의 열심이 이게 엄마로서 좋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부모님에게 받았던 그 상처, 그리고 과거에 입시 실패에서 비롯된 그 열등감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이제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러니 아이들을 우상에게 바치려고 했던 자기의 죄를 알고 이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하세요. 자녀가 가는 길이 탄탄대로가 아니라 (이 탄탄대로 깔아주시려고 했는데) 탄탄대로가 아니라 이제 오솔길이어도 감사하다. (내가 손대지 않고 그냥 막 생긴 오솔길이어도 감사하다)라고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회개하시면서 또 공동체 안에서 가족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 안에서 이제 하나 되게 하시는 그 은혜를 누리니까 딸도 오솔길을 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기 은사를 찾아서 진학도 잘하고 이렇게 잘 커가고 있다고 하세요.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든지 자기 사연과 감정대로 하면, 정말 자기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갇혀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처럼 비참한 인생 없는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아도 내 사연에 갇혀 있고 내 감정에 갇혀서 살면 그거 다 누리지 못하고 진짜 지옥을 살게 되더라고요. 오직 교회 공동체에 딱 붙어서 내가 지금 삶이 어떻든지, 내가 지금 육적으로 천국 같은 삶을 살든지 지옥 같은 삶을 살든지, 내 형편이 어떻든지 오직 이 한 몸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에 딱 붙어서 지체들과 함께 거하며 말씀대로 순종할 때, 이 천국 소망이 우리가 누리는 실체가 될 줄 믿습니다.
성령의 부르심은 첫 번째 겸손한 자리로 부르시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하나 되도록 부르세요. 세 번째는
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5-6절)
5절 같이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사람이세요. 99% 하나님이시고 1% 사람이고, 또 거꾸로 99% 사람이고 1% 하나님이시고. 이런 게 아니라! 100% 하나님이시고! 100% 사람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라는 거예요. 이게 이거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거예요. 다른 거 다 믿어도 이거 안 믿으면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도 둘이 아니라 하나예요. 우리 주님이 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믿음도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 믿음이 어떠니~ 내 믿음이 어떠니~ 우리가 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양육을 위해선 당연히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 점검하고 분별하면서 가르칠 거 가르치고 또 훈계할 건 훈계하고 이렇게 해야 되겠지만 사실 우리 믿음은 다 하나다! 신앙 고백도 이제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도 하나예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에요. 한 분이신 그리스도와 합해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세례도 하나인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지금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고 있는 이 생명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다. 그러니까 이제 영적인 가족인 거예요. 우리 모두가. 내가 힘든... 분명히 목장에서 내가 힘든 사람 지금 계신 분들 계시죠? 그래서 요즘 목장 막 바꾸고 싶은 그런 분들 계실 거예요. 너무 힘든 분들 계실 텐데... 여러분 그 생명이 하나라는 거예요. 내가 싫은 사람도 생명이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지켜야 되는 거예요. 생명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게 세례가 하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고백을 사도 바울이 하는데요. 6절 같이 한목소리로 이거는 신앙 고백이니까 크게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아멘!!! 여러분 성령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그 결론이 분명히 있습니다. 근데 그 결론은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에요. 우리 자신을 향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나에게 은혜를 끼쳐준 어떤 영적인 리더를 향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 모든 인생의 그 결론은요. 하나님이신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지이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결론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인 거예요. 하나님께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인생의 끝이 거룩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밖에 안 계세요. 완전하신 완전히 절대적이신 존재예요. 그러나 이 철학에서 말하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은 홀로 있는다. 이런 철학적인 신이 아닌 것은 ... 우리가 믿는 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은-한 분이신 하나님은- 만유와 함께 계십니다. 만유의 아버지이시고, 또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구속해 가시는 만유의 아버지 우리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만유와 함께하시고, 특별히 하나님을 닮은 우리와 더 함께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함께하시는가? 바울은 이 세 가지로 세 가지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amp#9312첫째는 만유 위에 계시다고 그래요. 이건 초월성이에요. 만유 위에 계시다. 모든 것 위에 계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보이지가 않아요. 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가갈 수 없습니다. 저 멀리 계신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걸 감춰 있는 것이다 말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감춰 있는 하나님의 뜻 그게 누구예요? 성부 하나님이신 거예요. 성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춰져 있어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지금은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손 놓고 계신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손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오늘도 지금도 돌보고 계신 것이에요.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amp#9313두 번째는 만유를 통일하신다 그랬어요. 통일하신다. 만유로 하나하나를 다 목걸이 묶듯이 다 묶어서 하나 되게 하신다는 뜻이에요. 죄 때문에 산산조각 난 우리 인생, 그리고 우리의 죄 때문에 산산조각 난 이 우주를 하나로 묶고 계신 분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해 가시는 분인 바로 예수 그리스도! 나타난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구원을 완성하셨고, 산산조각 난 우리를 한 몸 그리스도로 품어주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예요. 우리 축도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이렇게 말하잖아요.
amp#9314세 번째는 만유 가운데 계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만유 안에서 구원을 적용하시고 또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효과적인 능력이에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오늘도 우리를 도와주시는 그 성령 하나님의 내주하심과 교통하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응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왜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부름은 반드시 실망할 때가 온다고 말씀드렸어요. 한순간에 버림이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지금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다고 그러더니 한순간에 저 사람은 아니야. 이건 아니야.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고 있어요. 아무리 높고 좋은 자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부름에는 소망이 없는 거예요. 잠깐! 잠깐 기쁠 뿐이지... 지나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버림이더라고요. vs. 그러나 성령의 부르심의 결론은 삼위 하나님의 함께하심인 줄 믿습니다.
그렇게 겸손의 자리로 성령님께서 부르시지만 우리가 응답할 수가 사실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그 자리에 내려갈 수 있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매어 있고, 그 환경에 갇혀 있으니까 그렇지 우리에게 자유가 있고 우리에게 힘이 있으면, 바로 도망갈 거예요. 하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자리로 성령께서 불러주셨는데,.. 아니 가족끼리도 하나가 못 되잖아요. 부부간에도 하나 되기가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저만 그런가요?^^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다 알지도 못하는 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어요? 그게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이 동반되어야 하겠느냐 이 말이죠. 목장에서 목장이 하나 되기 위해서 우리 목자님들, 부목자님들, 그리고 우리 목원님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세요. 그러나 여러분, 그 모든 수고와 고생과 그 애씀과 그 힘씀에 실망이 없는 줄 믿습니다. 왜요?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에요. 성부 하나님께서 위에서 돌봐주시고,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 모든 문제 가운데 그걸 통해서 역사해 주시고,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힘 주시고,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삶의 모든 순간에 나와 함께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Q. 믿지 못한다면-아직 잘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Q. 삼위 하나님과 함께 응답해야 할 성령의 부르심은 무엇인가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이번 T.T. 나가서 나눈 간증입니다. 너무 잘 썼더라고요. 이 친구가 청소년 큐티인 필자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제가 부탁을 드려야 될 것 같아요. 이 친구에게는 장애가 있는 누나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누나를 돌보고 챙기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그래요.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속상할 때가 많았습니다. 왜 안 그렇겠어요? 뭐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친구가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또 큐티하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힘든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대요. 이게 얼마나 놀라워요?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죠. 그래서 올 초에 우리가 룻기 큐티 했는데 이 친구가 이렇게 큐티를 했습니다. 읽어드릴게요.지금 아무리 힘들고 지칠지라도 하나님께서 룻을 보아스와 함께하게 만들어서 다윗의 증조모까지 되게 하시는 것처럼 저 역시도 누나를 섬기면서 누나의 발밑에 누워서 자는 수고를 하면 하나님이 약재료로 써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멘! 이렇게 이제 썼더라고요. 그리고 또 이 친구가 동생도 있어요. 동생도 있는데 동생과 다툼에 대해서도 이렇게 또 큐티를 했습니다. 읽어드릴게요. 요즘 동생과도 많이 싸웁니다. 큰일도 아닌데 싸우게 되고, 동생에게 미움과 시기심만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룻의 나오미를 향한 헌신과 그 보아스의 베푸는 사랑을 통해서 순종과 희생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동생에게 착하게 대해주는 주자라는 적용을 했습니다.이렇게 썼더라고요. 얼마나 박수 한 번 쳐줄까요? 중학교 1학년이에요. 중학교 1학년. 아유~ 저는 참 중학교 1학년 때 뭐 하고 있었나 몰라요. 그런데 이렇게 적용했지만은 적용은 또 적용이고요. 우리 돌아서면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 본모습이 또 나오죠. 이 친구도 그거를 또 깨달은 거예요. 적용했지만 이내 동생과 싸우면서 동생이 잘못했다! 저건 동생이 잘못한 거야! 이런 생각만 또 들었대요. (게다가 이게 또 결정적인 건데 이 친구가 공부를 잘했답니다.) 성적이 잘 나오고 칭찬을 받으니까 나는 역시 다른 사람과 다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생각인데^^ 그런 이제 착각에 빠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제 경험상 그러면 큰일 나는 거예요. 그러면 큰일 나요?) 그로 인해서 큐티보다는 성적이 먼저라는 생각이 그냥 저절로 들었다는 거예요. 공부 잘해서 칭찬받으니까. 성적을 더 올려서 더 많이 칭찬받고 싶은 그 욕심이 마음에서 올라왔다고 이제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그러던 중에 오랜만에 큐티 책을 폈대요. 그러니까 공부에 빠지니까 그렇게 잘하던 큐티 책을 손 놓은 것이죠. 큐티 방학을 한 거예요. 큐티 방학은 없습니다. 청소년 큐티인을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데 거기에 간증이 눈에 확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 간증 내용이 뭐냐면 자신이 잘나고 뛰어나다는 착각에 빠져서 하나님을 멀리했지만! 그만 대학에 떨어져서 큐티 말씀을 더 열심히 듣게 되었다는 이런 간증이었대요. 근데 이제 그 간증을 읽는 순간 이 친구가 아! 이거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구나!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거예요. 성령께서 들려주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 말씀이 와닿았다고 이렇게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결단했습니다. 그대로 또 읽어드릴게요. 이제부터는 저도 교만하지 않고 저를 낮추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누나와 동생을 잘 돌봐주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하나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박수 한 번 더 쳐주세요. 제가 이렇게 보면 우리 정말 4살 어린이부터 우리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까지 간증 원고를 이렇게 내주잖아요. 참 이게 너무 놀라운 것 같아요. 이런 공동체는 정말 없는 것 같고요. 진짜 더 홀 크라이스트(The Whole Christ)라고 불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우리 공동체 너무 대단하고 정말 존경하고요. 너무 사랑합니다. 정말 이것이 성령의 부르심에 응하는! 부르심을 듣고 거기에 응답하는 그러한 인생인 줄 믿어요!
여러분, 성령의 부르심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또 후회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어떠한 환경에 묶여 있든지 그 성령의 부르심에 잘 응답하시면서 천국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면 너무 좋겠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아까 그 전화벨 소리 기억하시고 전화벨이 울릴 때는 아! 성령의 부르심! 우리 전화가 얼마나 짜증 나는 전화가 많아요. 그렇죠? 받기 싫은 전화도 많을 텐데 전화벨 울리면 아! 이거 나를 성령이 부르셨구나!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전화 벨소리는 연출이었음)성령의 부르심은 겸손한 자리로 부르시고요. 또 하나 되도록 부르시고, 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세상의 부름은 잠시 우리를 높이는 것 같지만 바로 떨어뜨려요. 그러나 성령의 부르심은 우리를 너무 힘든 곳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지만 거기에 생명이 있고, 거기에 소망이 있고, 거기에 구원이 있고, 거기에 천국이 있는 줄 믿습니다! 성령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으로 응답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양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네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주의 부르심이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실수가 없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네
작은 나를 부르신 뜻을 나는 알 수 없지만
오직 감사와 순종으로 주의 길을 가리라
때론 내가 연약해져도 주님 날 도우시니
주의 놀라운 그 계획을 나는 믿으며 살리
날 부르신 뜻 내 생각보다 크고
날 향한 계획 나의 지혜로 측량 못하나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날 이끄심 믿네 ♬
기도제목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겸손한 자리에서 주님의 보혈로 구속하신 지체들과 함께 하나 되라고 불러주셨어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이 부르심에 도저히 응답할 수가 없어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십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삼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게 해 주시기를 또한 기도하십시다.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시기를.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시기를. 성령의 부르심이 생각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다. 나를 부르시고, 권하시고, 위로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이 머리가 기억하고, 몸이 기억하고, 이 마음이 고백할 수 있도록!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도록, 더욱더욱 의지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이 시간 함께 주여 한 번 부르시고 간절히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어릴 적부터 목사 되겠다고 서원하고 한결같이 자랐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줄 알았고, 사명 받은 줄 알았고,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을 해보니 성령의 부르심은 저를 높이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는데 저는 높은 자리에 오르기만을 바랐습니다. 저는 목사가 높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드러나는 게 없지만 누구보다도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은 저희를 겸손한 자리로 부르시고, 또 낮고 또 낮아져서 하나 되라고 부르시고, 삼위 하나님과 함께 모든 영혼을 품고 섬기는 그 사명으로 부르시는데 저는 아직도 너무 이기적이고 아직도 너무 교만해서 정말 주님의 이 사명의 자리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한 주 한 주 제가 제 자신에 대해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 주님의 부르심이 잘못된 게 아닌가? 내가 이 잘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까지 올라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정말로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할 자격도 없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그러나 오늘 성령께서 이렇게 전적인 주권으로 전적인 은혜로 저희를 불러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무도 자주 쓰는 이 은혜라는 너무도 흔한 단어가 되어서 정말 이제 감흥도 없는 단어처럼 되었는데 그 은혜로 우리를 불러주셨다고 하십니다. 주여! 주의 은혜가 다시 한 번 저희 영혼에 흘러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를 은혜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그 감격으로 그 진정한 감사로 참된 의지로 성령께서 부르신 은혜의 부르심에 저희 모두가 응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모든 우리 여름 사역에 함께하신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우리 광주 띵크 목회 세미나에 우리 삼위 하나님께서 강하게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열매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말씀 전하시는 우리 목사님 붙들어 주시고, 목세 인도하시는데 피곤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능력과 지혜로 채워 주시옵소서. 도우시는 모든 분들 강하게 붙잡아주시고 참여하시는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님들에게 말씀이 들리는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 교회의 모든 부서와 사역과 모든 목장이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어서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의 이 귀한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 기억하여 주시고 믿음의 지도자를 세워주시고, 모든 악법을 막아주시며, 생명을 지키는 법들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성령의 부르심으로 저희를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여서 신앙 고백으로 드리는 저희의 모든 헌금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도록 저희의 건강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에 아버지 주의 기름을 철철 부어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5.08.24.(주일) 에베소서 41:1-15 「성령의 부르심」 이성훈목사님
내 뜻과 상관없이 전화가 오는 것처럼 성령의 부르심(Calling)도 콜러(Caller)이신 성령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예배당에 나와서 주님을 예배하게 된 것은 우리 힘과 원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 고려하지 않으시고, 성령께서 정하신 그때에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믿게 된 줄 믿습니다.
*** 적용 질문정리
성령의 부르심은
1. 겸손한 자리로 부르십니다. (1-2절)
Q. 지금 어디에 갇혀 계신가요?
Q. 그것이 주 안에서 갇힌 겸손한 자리임이 믿어집니까?
Q. 겸손한 자리에 잘 갇혀 있기 위해서 이번 주 적용할 일은 무엇인가요?
2. 하나 되도록 부르십니다. (3-4절)
Q. 평안의 매는 줄에 잘 매여 있습니까?
Q. 다시 말해, 내 생각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의지하며 따릅니까?
Q. 내 인생에 가장 큰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3. 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5-6절)
Q. 삶의 모든 순간에 나와 함께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Q. 믿지 못한다면-아직 잘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Q. 삼위 하나님과 함께 응답해야 할 성령의 부르심은 무엇인가요?
**** 기도 제목
A.
1.남은 것에 감사하고,하루만 큐티 묵상 하며 살도록
B.
1.말씀에 매여 있는 한 주 되도록
C.
1.겸손, 온유, 사랑, 인내 하는 한 새사람 (One New Man) 따라서 하루만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