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및 적용 질문]
여호와 앞에 앉아서 / 사사기 20:18-28- 이성훈 목사님 / 2025.08.10.
어제까지 주인공은 타락한 레위인이었다. 이 사람은 레위인이면서 첩도 들이고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니깐 그 첩을 기브아의 불량배들한테 넘긴다. 그래서 불량배에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 죽자 이 여인의 시체를 12조각으로 내서 전국에 보낸다. 11지파와 베냐민 지파 사이에 어마어마한 내전이 발발한다. 이 레위인은 역사의 무대에서 슬쩍 사라진다. 오늘부터 이 레위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대가 갈수록 이스라엘 백성은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동족상잔까지 간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시는 대도 내 왕 없다고 불평하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인간의 결과는 점점 더 비참한 타락일뿐이다. 사사기를 통해서 알려주신다. 아무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앉아서 그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여호와 앞에 앉아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을까요?
1. 답이 있을 때는 아닙니다.
18절. 이스라엘 11지파가 베냐민 지파를 치러가기 전에 하나님께 묻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잘 물어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떤가?
19-21절. 전투 결과는 대참패였다. 이스라엘 군대 40만명 중에 무려 2만2천명이 전사했다. 숫자로 치면 그 당시에는 좋은 무기도 없는데, 질 수도 없었고 지면 안 되는 전쟁이었다. 이스라엘 전사들이 얼마나 자신만만했겠나. 하나님께 답도 얻고 시키는 대로 그대로 했다. 그런데 지금 패배를 당해서 후퇴해야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해할 수 없다고 외쳤을 거다. 잘못은 기브아 사람들이 한 것인데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두둔한 베냐민이 잘못한 건데, 전쟁도 잘못한 사람이 패배해야 하는데 심판자 역할을 하는 자기들이 패배했으니 받아드릴 수 없는 거다. 이 불만이 싸인이다. 문제는 상황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표시다.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불평하고는 서로 다른 감정인데 잘 생각해보면 뿌리는 한가지다. 내 옳음이 틀렸다고 평가받을 때 내가 화나고 억울하고 불평하는거다. 내가 확신한 정답을 오답이라고 하니깐 인정할 수 없는거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서 기브아를 공격하기로 한 거다. 거룩한 전쟁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 물어본 것은 이런 결정 다음이다. 딱하나 물어본다. 누가 먼저 공격할까요? 중요한 질문같지만 사실은 누가 먼저 공격해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보다 중요하고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했어야 했다. 하나님 저 기브아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냐민 지파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 어떻게 하나님 백성인 우리 가운데 이렇게 끔찍한 일이 생겼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회개하면 되겠습니까? 물어봤어야 했다. 그러나 자기들이 답을 다 정해놓고 사소한 문제만 하나님께 여쭙는 거다. 하나님께 물어보는 태도가 아니다. 시늉만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앉아서 질문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자기들 앞에 앉혀놓는 거만한 선택인 거다. 이게 성공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버린 사람이란 증거 아니겠나. 택자라면 이런 거만한 싸움에서는 패배해야하는 거다. 스스로 답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 물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답을 가지고 있으니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내 답에 대해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지금 절대로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그 답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나?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앉기보다는 하나님을 여러분 앞에 앉게 하면서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지 않나? 그 답을 잠시 괄호 안에 넣고 하나님께 물어보자. 큐티하면서 목장에 물어보면서. 그게 이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으로 안다.
Q. 내 인생의 답이 될 것같아 얻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Q. 예상과 달리 당한 실패나 패배가 있습니까?
Q. 그 일이 이해가 안 됩니까? 잘 됩니까?
2. 힘이 있을 때도 아닙니다.
22-23절. 이스라엘 백성은 큰 패배를 당했지만 곧 스스로 힘을 내어 회복한다. 2만2천명 죽었지만 아직 37만8천명이 남았다. 무려 14배나 많은 군대가 내게 있는거다. 그 패배쯤은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있는 거다. 엄청난 패배를 당했음에도 다시 그곳에다가 전열을 갖춘다. 싸우겠다는 것이다. 한번 졌지 내가 두 번은 지지 않겠다란 자신감과 오기가 있는 거다.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것은 이번에도 전열 갖춰놓고 난 다음에 올라간다. 그곳에서 날이 저물도록 울었다고 하는데, 이건 회개의 눈물이 아니다. 지금 흘리는 눈물은 이해할 수 없는 패배에 대한 분노와 서러움의 눈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비장하게 묻는다. 싸우리이까? 싸우겠다는 뜻이다. 첫 번째 질문에서 싸울까요? 질문은 물어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희가 싸우는 게 맞습니까를 물어보려고 했다면 패배하자마자 전열을 갖추겠는가. 싸울 준비 다 해놓고 하나님 앞에 와서 다시 싸울까요 하는 건 그저 하나님 우리는 다시 싸울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 여기다 싸인만 하세요. 하나님 우리가 결정한 게 맞으니깐. 하나님은 이번에도 올라가서 치라라고 간단하게 답하신다. 첫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 수준에 딱 맞게 답한다. 우리가 간절히 묻는 만큼 뜻을 구하는 만큼 하나님은 거기에 맞는 답을 응답하실 줄 믿는다. 하나님이 니네 맘대로 해. 이렇게 그냥 허락하신거다. 질문 아닌 질문에 답 아닌 답을 주실 뿐이다.
24-25절. 이스라엘은 전사 1만8천명을 또다시 잃어버린다. 이번엔 힘이 빠졌을 것 같다. 두 차례다 엄청난 패배를 당했다. 십퍼센트를 그냥 날려버린 거다. 힘이 남았다고 자신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구하지 않은 악의 결론인 거다. 우리는 잘못된 것에서 스스로 돌일킬 수 없다. 힘이 좀 빠져야 그나마 두려운 게 생기고 눈치볼 게 생겨서 내가 열심히 가던 길에서 어쩔 수 없이 멈추는 거다. 비로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다. 성도에게는 힘든 고난도 축복이 될 수 있다. 힘 빠지는 사건이 올 때 더 빠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면서 몸부림쳐야할까? 그래야 할 때도 있지만 나의 육을 무너뜨리고 영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때 힘을 더 빼야겠다. 주님 앞에서만 앉아계시기를 바란다.
Q. 내가 의지하는 세상적 힘은 무엇입니까?
Q. 실패 했는데도 스스로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Q. 힘이 빠져서 어쩔 수 없이 머무르다가 오히려 누리게 된 은혜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3. 울며 회개할 때입니다.
26절. 이스라엘 자손이 세 번째로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데요. 이번에는 특이한 점이 온 이스라엘 백성 모든 백성이 올라간다. 지금까지는 일부만 올라갔다. 여기서 딱 드러나는 거다. 영적 상태가. 하나님 앞에 그들은 간절하지 않았다. 아직 답이 있으니까, 남아 있는 힘이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반드시 올라가겠다는 간절함이 없었다. 답이 무효 처리되고 힘이 제거되는 것을 보니깐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멋대로 맘대로 준비하던 것을 멈춘다. 모두가 그저 하나님 앞으로 올라온다. 패배하고 실패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올라온다. 드디어 회개의 눈물을 터트린다. 하나님 다시 싸워야하는 일 아녜요? 이기게 해주셔야하는거 아녜요? 요구하고 떼를 썼다. 이제 다 무너져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니까 그제야 내 잘못이 보이고 하나님께 죄송하고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오게 해주시고 내가 앉을 자리를 기다려주시는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울게 되는 거다. 이렇게 회개 눈물 흐르니 더 이상 조르지 않는다. 날이 새도록 다 울고 하나님 앞에 그냥 앉아있는 거다. 앉는다는 것은 가던 길을 멈추는 거다. 그리고 정해진 자리에. 정해진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앉는 거다. 내가 주장하던 일을 멈추고 내 힘 행사하던 것을 멈추고 주님 말씀 들으려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거다. 금식하잖아요? 굉장한 표현인데 우리 생명을 위해 가장 필요한 먹는 것조차 멈추겠다. 온전히 하나님 뜻을 구하고 의지하겠다는 표현이다. 이렇게 하니깐 예배가 회복되는 거다. 사사기 처음부터 끝까지 대략 350년 정도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많은 압박 압제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울면서 회개한 경우는 여기가 처음이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형식적으로 되는 것 아니다. 회개와 예배가 없으면 영적인 암흑기가 되는 거다. 이스라엘 백성이 겨우겨우 진정한 예배를 드리자 질문이 바뀐다.
27-28절. 싸울지 말지에 대해서 첫 번째 답이 있을 때는 묻지도 않았고 두 번째 자기들 힘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통보했다. 이젠 울면서 회개하니깐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말리이까가 중요하다 멈출까요다. 두 번째는 멈출까요 질문하지 않았다. 멈출 생각 없으니까. 육이 다 무너지는 참패를 당하면서 눈물로 회개하고 예배가 회복되니깐 말리이까.
우리는 할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익숙하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생각해야 할 질문은 이걸 하나님 계속하는 게 맞을까요? 물어보는 게 잘되지 않는다.
저같은 사역자는 사명이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다. 제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멈출까에 대한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말리이까 이 질문을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다 생각했다. 왜냐면 우린 전적인 죄인이기 때문에 거기에 내 야망 정욕이 딸려 가기 때문이다. 날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더라도 주님 앞에 새롭게 서서 할까요 말까요 이 질문을 계속 던져봐야 한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질문을 제대로 하자 하나님께 맡기자 하나님도 진짜 답을 주신다. 이 엽기적인 사건이 사사기 맨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사사시대 마지막에 일어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암흑기에 죄악이 계속 쌓이다 보니 엽기적인 사건도 일어나고 내전도 일어나는 구나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때 언약궤를 지키는 제사장이 비느하스다. 아론의 증손자다. 민수기에도 나온다. 여호수아의 얼굴도 본 사람이다. 그러니깐 이 사건은 사사시대 말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굉장히 초기에 일어난 일이다. 가장 끔찍한 범죄와 내전이 초반에 일어났다는 거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타락한 레위인, 18장 30절에 정체가 나온다. 이 사람이 글쎄 모세의 증손자다. 지금 이 엄청난 사사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타락의 사건 중심에 그냥 레위인도 아니고 레위인 중에 가장 성골인 모세의 증손자와 아론의 증손자가 있다. 이해되나? 무슨 말이까요. 예외가 없다는 거다. 장담할 수 있는 인생이 없다. 목사님 늘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혈통 배경 조건이 우리를 지켜줄 수 없다. 이 어마어마한 내전을 일으킨 사람, 선동한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첩의 시체를 12조각을 낸 레위인이었는데 위대한 장군 바락도 동원한 군사가 만명에 불과했다. 근데 이 레위인이 전국을 다 흔들어 놓는 거다. 한 사람의 죄를 가리기 위해서. 정말 우리 인생은 절망할 것밖에 없다. 사사시대가 진행되면서 점점 악해지는 게 있겠지만 양적이든 질적이든 비교할 게 없다. 전부다 행위 중심적인 거다. 율법적인 거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모든 시대가 타락, 모든 인간이 백퍼센트 죄인, 그래서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나 하나 구원할 힘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방황 만하다가 죽을 인생이다. 이 인생을 오직 하나님 앞에 앉아서 거할 때 안식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앉는 것에 그 반대는 무엇일까. 사사기를 여러분이 큰 종이에다가 쭉 써봐라. 그것을 절반으로 딱 접어봐라. 그랬을때 여호와 앞에 앉아서와 딱 만나는 구절이 2장 12절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중간에 접히는 부분은 어디일까. 10장 10-16절 단락이다. 이 단락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다가 두 번 반복된다. 너무 하나님을 버린 대가를 치르다 보니 후회가 되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니깐 하나님이 고민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다시 입다를 보내신다. 사사기 저자가 익살을 섞어서까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는 소망이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여호와 앞에 앉아서 살아가야하는데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거다.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고 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게 우리의 모습이라는거다. 두 번이나 써놨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는 참 기대할 게 없는거다. 하나님을 늘 버리는 존재니까. 하나님이 건져주셔야 하는데 사사를 보내신다. 제대로 된 지도자가 있나? 기대할 게 없다. 거기에 소망이 없다. 지도자로 보내주셨는데 약점 투성이다. 그러나 소망이 있다. 우리에게는 연약한 이 사사 부족한 저 사사가 아니라 유일한 그 사사가 계시는데 바로 예수님, 바로 하나님이시다. 사사기 11장 27절에 그 사사가 딱 한번 등장한다. 아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주셔서 우리들교회와도 내 인생이 망하는건 피할 수 없구나 절망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가 그 사사다 말씀하신다. 우리가 스스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셔서 길을 열어두셨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앉는건 날마다 우리가 큐티하는거다. 날마다 공예배를 지키면서 드리는거다. 날마다 목장에배 드리는거다. 삶의 자리들을 충성스럽게 지키는 그 작은 하나가 바로 여호와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우리가 도저히 끝낼수없는 방황을 주님께서 끝내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가서 그 말씀을 들으면서 순종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Q. 내가 하나님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100% 인정합니까?
Q. 지금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Q. 나의 왕좌입니까? 우상 앞입니까? 여호와 앞입니까?
말씀을 맺는다. 우리에게 답이 있을 때는 여호와 앞에 도저히 앉을 수가 없는 존재다. 우리에게 힘이 있을 때도 그렇다. 울 수밖에 없을 때 내 삶에 절망해서. 울면서 회개하는 것이 사실 그것이 여호와 앞에 앉는거다. 그래서 정답이라고 믿던 답이 오답이 되는 사건을 만나고 내가 의지하는 힘이 다 빠지는 고난을 만나면 그것이 축복인 줄 믿는다. 나의 교만을 회개하면서 오늘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유일한 왕으로 모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목장 스케치]
빵이 맛있기로 소문난 카페에서 목장했습니다~
- 구례 TT에 다녀왔어요!
- 사랑부 큐페 스텝으로 섬기고 왔어요!
- 다시 목장으로 컴백했어요!
- 가족과 좋은 시간 보내고 왔어요!
- 공부에 더 집중하고자 노력했어요!
등~ 이렇게 한주 근황을 이야기하고선 적용 질문으로 나눔 이어 갔습니다. 목장 식구 전원 참석하여 더욱 좋았답니다.
[기도제목]
◎네이비
1.여전한 방식으로 겸손하게 목장 섬기기.
2.내가 의지하는 세상적 힘을 내려놓고 내 죄보며 적용하는 하루살이 살기.
3.골반통증이 다시 있는데 물리치료 잘 받을 수 있도록
4.이번주 광복절에 부산출장 내려가는데 생색내지 않고 일하고 오기
5.양육, 양교 신청한 목장 식구들 평안하게 내죄 보는 훈련의 때 보낼 수 있도록
6.이번에 재정학교 신청할 예정인데 재정훈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노랑
1. 여호와 앞에 앉아있으라고 했는데 큐티하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까요 물어볼 수 있도록
2. 어머니 어제부터 해외여행 가셨는데 몸 건강히 안전히 다녀오실 수 있도록
3. 아버지 식사 잘 챙겨드리고, 아부지랑 편히 지낼 수 있도록
4. 얼마 남지 않은 방학 쉼을 잘 누리도록
◎주황
1. 신교제를 할 수 있도록
2. 개학 후 학생들의 입시상담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3. 동생이 교회에 자리에 언젠가라도 올 수 있기를
4. 양육교제의 시간이 허락되기를
5. 차가 하루 빨리 나와 안전히 몰고 다닐 수 있도록
6. 기도하는 습관이 들도록
◎빨강
1. 큐티하며 내 죄를 볼 수 있도록
2. 정죄와 판단보다는 반면교사로 삼고 내 죄를 회개 할 수 있도록
3. 걱정과 근심 대신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길 수 있도록
4. 계획표 대로 효과적인 방법으로 성령님 인도하실 수 있도록.
5. 하리이까가 아닌 말리이까가 될 수 있도록.
6. 어머니 체력과 센터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핑크
1. 양교를 내 힘이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잘 받을 수 있도록
2. 나의 가족과 목장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3. 회사에서 불평하거나 생색내지 않고 감사함으로 일할수 있도록
4. 우리들교회에서도 교회 생활을 같이 할 지체의 만남을 허락해주시기를
◎카키
1. 1대1 양육 잘 하도록
2. 신교제 허락하시도록
3. 캠핑장 준비 잘 되서 운영 잘 하도록
4. 매일 매일 일상 생활에 더욱 감사하도록.
◎하늘
1. 신결혼 인도해주시도록
2.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3. 큐티와 말씀 가까이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