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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0.(주일) 사사기20:18-28 「여호와 앞에 앉아서」 이성훈목사님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24.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2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 말씀
아버지 하나님,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 헛된 방황을 멈추고, 오직 여호와 앞에 앉아서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저희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 이제 우리가 사사기 마지막 에피소드를 묵상하고 있는데요. 어제 본문까지 주인공은 타락한 레위인이었죠. 이 사람은 첩도 들이고, 또 자기가 위험에 빠지니까 이 첩을 또 이 그 불량배들에게 넘겨주기까지 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라는 동네에 살고 있던 그 불량배들에게 자기의 그 첩을 넘겨주기까지 해요. 불량배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 첩이 죽자 이 레위인은 그 첩의 시체를 12조각을 내서 전국에 보내는 엽기적인 행동까지 저지릅니다. 이 일에 선동당한 이스라엘 11 지파와 베냐민 이 한 지파 사이에 대규모 내전이 발생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일을 저지르고 나서- 이 한 사람의 레위인은 역사의 무대 밖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오늘 본문부터 이 레위인은 등장하지 않아요. 사사 시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잘 경작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했던 그러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갈수록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다가 급기야 이 동족상잔까지 범하고 맙니다. 사사기 최대의 전쟁은요, 이방인을 향한 전쟁이 아니었어요. 오늘 우리가 같이 볼 이 내전이었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 지금도 계신데도 불구하고, 내 왕 없다고! 내 왕 어디 갔냐고! 내 왕 내놓으라고! 불평, 불만, 원망하면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그 삶의 결론은 비참한 타락일 뿐이다. 이것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것은요, 오늘 우리 시대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사사기 전체의 교훈은, 이처럼 끔찍한 죄인인 우리가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이 여호와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답이 있을 때는 아닙니다. (18-21절)
18절 같이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11 지파가 지금 베냐민 지파를 치러 가기 전에 하나님께 묻는데요. 사사기 첫 장면을 떠올리게 하죠. 1장 1절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울까요?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니까 2절에서 하나님께서 유다가 올라가라 이렇게 답을 하세요. 그때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잘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여요.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19절에서 21절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전투 결과는 대참패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40만 명 중에서 22,000명이 전사해요. (이스라엘 11지파) 400,000명 대(對) 베냐민 26,700명의 싸움이니까요. 사실 이건 상대가 안 되는 것이죠. 당시에는 뭐 무기로 싸우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이 싸우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질 수도 없었구요. 져서도 안 되는 싸움이었어요. 그러니까 이 이스라엘에서 뽑고 뽑은 이 40만의 전사들이라고 했는데, 이 전사들이 얼마나 자신만만했겠냐 이 말이죠. 게다가 이들은 그냥 자기 멋대로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의 답을 받고, 그대로 또 시키는 대로 했을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이스라엘이 이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믿음이 와장창 깨져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패배를 이해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불만이 생기고 억울하고 분노가 났을 겁니다. 잘못은 베냐민 사람들이 한 거 아니에요? 기브아 사람들이 이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고, 베냐민이 지금 그 기브아 사람들을 두둔하니까 잘못은 그들이 했는데 그러니까 마땅히 심판은 그들이 받아야 되는데 싸움을 하고 보니 베냐민이 이겼다 이 말이죠.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어요? 그러나 바로 이 불평과 억울함과 이 분노가 사인이라는 거예요. 문제가 내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표시해 주는 그러한 사인입니다. 화가 나고, 억울하고, 분노하고 이것은 서로 다른 감정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그 뿌리는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무엇이냐면 나의 옳음이 틀림 취급을 받을 때입니다. ★나의 옳음이 틀린 취급을 받을 때,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는 거예요. 내가 확신했던 정답을 오답이라고 하니까 이해할 수가 없고,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브아에서 일어난 이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서 이스라엘 자손은 확실한 해결책을 세웠잖아요. 그 범인은 마땅히 처형해야 된다! 그리고 그들을 두둔하고 있는 이 베냐민 지파도 벌을 받아야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당당하게 세운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서 기브아를 공격하기로 결정을 내린 거예요. 이것이야말로 정당한 전쟁이요, 심지어 거룩한 전쟁 성전(聖戰)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 물어본 것은 바로 그 다음이라는 거예요. 전쟁하기로 자기들끼리 다 결정해 놓고서 딱 하나 하나님께 물어봅니다. 누가 선봉에 설까요? 누가 먼저 공격할까요? 이건 중요한 질문 같지만요. 전술상으로는 중요한 질문 같지만 전쟁 전체를 볼 때, 그 전략상으로 볼 때는 사실 누가 먼저 공격해도 큰 지장이 없는 사소한 문제였어요. 가령 이런 겁니다. 자녀가 이제 결혼을 자기들끼리 결정을 했어요. 결혼을 누구랑 할 것인지-결혼의 대상-과 또 결혼식을 어디에서 할 것인지, 또 결혼한 다음에 어디에서 살 것인지를 자기들끼리 다 정해놓은 다음에 부모님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우리 이 사람과 이렇게이렇게 결혼하기로 했는데 언제 할까요? 몇 날 무슨 요일에 할까요? 이거 물어보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결혼 자체요, 그 결혼에 이르는 그 과정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중요한 것은 자기들끼리 다 의논해서 결정해 놓고, 부모에게 날짜 하나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부모님한테 물어봤다! 우리는 부모님 허락 다 받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보다 근본적인 것, 보다 중요한 것을 물어봐야 했어요. 가령 이런 것이겠죠. 하나님, 저 기브아 사람들이 저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베냐민 사람들이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자기와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저렇게 저 끔찍한 범죄자들을 두둔하는데 저 베냐민 형제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더 나아가서 이렇게 질문을 해야 됐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악행이 발생되었는데 도대체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무엇을 회개해야 됩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해야 됩니까?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 여쭤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 이 근본적인 것들은 자기들끼리 다 알아서 결정해 놓고, 답을 다 정해놓고, 사소한 문제 하나 들고 하나님께 물어보는 거예요. 이건 진짜로 하나님께 묻는 게 아닙니다. 시늉만 하는 것이고, 구색만 맞추는 거예요.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앉아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물어보는 척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오히려 자기들 앞에 앉혀두려는 이런 거만한 시도입니다.
이런 거만한 시도가 성공하길 바랐겠지만 이러한 거만한 시도가 성공하면 그것이 오히려 더 문제인 거예요. 왜냐? 하나님께서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뜻이잖아요. 하나님께서 버려두셨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택자라면-, 이런 싸움은 지는 게 맞는 거예요! 패배해야만 하는 거예요! 무너져 내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정한 답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답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 않아요. 내게 이미 답이 다 있으니 가족도, 친구도, 또 이웃들도,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줘야 마땅하다! 이렇게 생각할 뿐이에요.
저는 어려서부터 여러분 아시는 대로 목사가 꿈이었고, 또 교회 바깥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때 하나님 앞에 제가 겸손하게 앉아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중요한 일은 전부 다 제 스스로 답을 정해놓고, 그저 하나님,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 도와주셔야 됩니다. 도와주세요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 하나님을 무시해서 제가 그런 게 절대로 아니에요. 하나님을 무시한 게 아닙니다. 웬만한 일은 제 스스로 다 알아서 잘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 바쁘시잖아요.^^ 여러분들의 기도 하나하나 다 들어 응답해 주시고, 여러분들을 도와주시고, 여러분들을 살려주셔야 되는데 나라도 하나님의 수고를 좀 덜어드려야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래야 내가 하나님을 좀 돕는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러분, 제가 목사를 왜 했냐면 목사를 해 드린다고 생각했다니까요. 하나님 도와드리려고. 엄청 거만한 모습인 것이죠. 그래서 학교와 전공과 심지어 사역지와 또 그 중요한 인생 최대의 과제인 이 결혼에 대해서도 제가 물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인도함을 받느라고 했지만 그때를 다시 생각해 보면 제가 겸손하게 여호와 앞에 앉아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묻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요. 제가 학교에서는 답을 좀 잘 맞췄잖아요. 언제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여러분 수학 주관식을 찍어서 맞출 수 있으세요? 그것도 정수가 아니라 답이 분수였는데 말이죠. 8분의 3. 그것도 숫자 계산해서 푸는 산술 문제가 아니라 도형 계산하는 기하 문제였는데 기하 문제를 8분의 3이라는 답을 여러분 상상이나 하실 수 있겠어요. 근데 저는 그걸 맞췄단 말이죠, 찍어서.^^ 그런데 이렇게 답을 잘 맞추다 보니 점점 제가 착각에 빠지더라고요. 내가 답을 안다. 내가 제일 잘 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곧 답이요. 길이다. 그래서 결혼도 아내를 처음 만난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그날, 저는 저 혼자 답을 정했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해야 되겠다 답이 정해졌잖아요. 그러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요? 내 답이 맞으니까. 답을 정해졌는데 또 고민하고 분별하려는 시간은 그건 시간 낭비요,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렀어요. 막 서둘렀어요. 그 3개월 남짓한 연애 기간 동안에 사실은 반대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양쪽 저희 집도 그렇고, 아내 집도 그렇고. 정말 제일 가까운 부모님들조차도 반대를 하셨단 말이죠. 그러나 저는 제 생각이 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반대 의견들을 다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두 사람이 연애하면서 우리 둘 사이에 하나님께서 그 징조-그 사인-을 주셨단 말이죠. 여러 차례의 갈등과 다툼을 통해서 징조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답이 저한테 있으니까 그러한 징조들 다 무시했습니다. 제가 마음대로 결정한 결혼이 제 뜻대로 다 술술 잘 풀렸더라면, 아내가 제가 원하는 대로 잘 움직여 줬더라면, 모든 가정의 생활이 제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더라면 저는요, 지금쯤 최대로 잘 됐을 때~ 제 기대대로 다 됐을 때~ 아! 여러분 인생은 너무 행복한 것입니다. 이렇게 떠들고 다녔을 거예요. 그러나 그 인생은 구원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그런 헛된 삶일 뿐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정말 자격도 없고, 이 거만하고 이 교만한 저를 그래도 은혜로 택해 주시고, 또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이 결혼이라는 큰 패배를 결혼을 통해서, 이 큰 패배를 당하게 하시고 또 지금까지도 그 밖의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또 사역 현장에서 크고 작은 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답이라고 여겼던 그 오답! 실제는 오답인데 제가 정답이라고 여겼던 그 저의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이 아니라! 저의 생각이 아니라! 100% 옳으신 하나님의 뜻대로 저의 가정과 또 사역도 흘러가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지금 절대로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답을 혹시 가지고 계십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앉기보다 하나님을 내 앞에 앉히려고 하고 계시지는 않아요? 하나님에 대해서 판단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그 답을 잠시 그 괄호 안에 넣어두시고요. 하나님께 물어보십시다! 큐티하시면서 말씀으로 물으시고, 또 목장에 물어보세요. 그것이 하나님을 내 앞에 앉히려는 그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앉는 순종인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내 인생의 답이 될 것 같아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Q. 예상과 달리 당했던 실패나 패배가 있으십니까? 무엇인지 한번 나눠보시고요.
Q. 그것이 이해가 안 되십니까? 아니면 이제는 이해가 잘 되십니까?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을까? 첫 번째는 답이 있을 때 아니라고 했고요. 두 번째는
힘이 있을 때도 아닙니다. (22-25절)
22절 23절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크게 패배를 했지만 곧 스스로 용기를 내어서 회복합니다.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스스로 강하게 했다, 스스로 힘을 냈다는 말씀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22,000명이 죽었지만 여전히 지금 378,000명이 남아 있는 거예요. 베냐민 지파 26,700명과 비교해도 무려 14배나 아직 많은 군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크게 졌어도 여전히 압도적인 힘이 있는 거예요. 패배를 극복할 힘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장소에 똑같은 전열을 갖춥니다. 싸울 준비를 해요. 한 번 졌지 내가 두 번은 안 진다!! 이렇게 자신감과 오기를 부리면서 그 자리에서 싸울 준비를 합니다. 이번에도 여호와 앞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 다음이에요, 그 다음. 이렇게 싸울 준비를 다 한 후에 전열을 다 갖춘 후에 여호와 앞으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날이 저물도록 울었다고 하는데요. 생각해 보면 이것은 회개의 눈물이 아니겠죠. 스스로 회복하고 극복할 힘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 앞에 앉아서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겠습니까? 이 눈물은 이해가 안 되고, 인정할 수 없는 그 패배에 대한 나의 분노와 서러움에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겁니다. 애통한 눈물이 아니라 비장한 눈물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 사람들이 비장하게 묻습니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과 싸우리이까?! 싸우리이까?! 첫 번째 질문에서 묻지 않고 그냥 스스로 결정했던 그 답을요, 싸울지 말지 하는 그 문제를 지금은 묻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이들이 만일 전쟁을 할지, 말지를 정말로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더라면, 베냐민 지파에게 그렇게 크게 패하자마자 그 자리에 가서 힘을 내서-용기를 내서-전열을 다 갖춰 놓았겠습니까? 만약 정말로 이 자기들이 정한 답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답을 구했더라면 패배한 직후 벧엘로 올라갔을 거예요. 하나님께 물어봤을 겁니다. 하지만 싸울 준비 다 해놓고 그 후에야 하나님께 다시 싸울까요? 다시 싸울까요? 이렇게 묻는 것은요.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는 계속 싸울 테니까! 다시 싸울 테니까! 계속해서 우리가 하던 대로 할 테니까 그런 줄 아세요? 통보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결정하고 의논한 대로 진행할 테니까 그냥 여기에 사인 하나 해 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이에 하나님은 이번에도 뭐라고 대답하세요? 올라가서 치라 간단하게 한마디로 답하세요. 앞서 첫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질문 수준에 딱 맞는 답을 주시는 거예요. 이건 번역을 하면 니들이 알아서 해~ 니들이 원하는 대로 해~ 한번 그렇게 해봐 이런 대답과 다를 것이 없는 것이죠. 질문 아닌 질문을 던지니까 답 아닌 답을 주시는 거예요.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24절 2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24.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이스라엘은 전사 18,000명을 다시 잃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서 예상하지도 못한- 계산에 넣지 않았던- 큰 패배를 당하고 나니까 이번에는 좀 힘이 빠졌을 것 같아요. 두 번의 전투에서 전부 4만 명이나 잃어버린 것이잖아요. 40만 중에 4만 명이 사라져버린 거예요.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 힘이 남아서 다시 도전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은 결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거기에 걸맞은 결론으로 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잘못된 길에서 절대로 스스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힘이 있을수록 힘이 남아 있을수록 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힘이 없어져야 비로소 두려움이 생기고 비로소 눈치를 보면서 내가 열심히 옳다고 여기면서 가던 길에서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힘이 빠지는 사건. 우리 힘 빠지는 거 너무 힘들잖아요. 그렇죠? 날씨 더워서 몸이 좀 몸에 힘이 빠지는 것도 너무 힘든데 우리 인생에서 평생동안 쌓아왔던 그 귀한 것들이! 내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나의 힘들이! 내가 의지하는 것들이! 쭉쭉 빠져나가는 사건을 당하면 얼마나 힘들어요?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그러한 힘 빠지는 사건도 주님 안에서는 축복인 줄 믿습니다. ★힘 빠지는 사건이 올 때 그냥 힘을 더 빼시기를 바라요. 그냥 힘을 더 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자리를 딱 잡고 앉아 계시길 바랍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내가 의지하는 세상적 힘은 무엇입니까?
Q. 실패했는데도 스스로 용기를 내어서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Q. 힘이 빠져서 어쩔 수 없이 머무르다가 오히려 누리게 된 은혜의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을까? 첫 번째는 답이 있을 때는 아니에요. 내 답이 있으면 절대로 우리는 여호와 앞에 앉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힘이 있을 때도 아니에요. 내 힘이 남아 있으면 절대로 우리는 여호와 앞에 앉지 않아요. 세 번째는
울며 회개할 때입니다. (26-28절)
울며 회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는 거예요. 26절 같이 읽겠습니다.
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자, 이스라엘 자손이 이제 세 번째로 하나님 앞에 올라가죠? 세 번째로 올라가요. 그런데 이번에는 차이가 있어요. 이 사사기의 기록자가, 모든 성경 기록자가 그렇지만 굉장히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갔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에요? 이것의 함의(含意)는 앞에 두 번은 모든 백성이 올라갔어요, 안 올라갔어요? 안 올라갔다는 뜻이죠.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동안은 일부만 올라간 거예요. 가고 싶은 사람은 가고, 가기 싫은 사람은 안 가고. 선택의 자유를 줬다는 겁니다. 여기서 딱 드러나는 것이죠. 이 실체가 드러나는 거예요. 무슨 말이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앉는 것에 있어서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다. 간절함이 없었다. 진짜로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답이 있잖아요. 그리고 힘이 있잖아요. ★답이 있고 힘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 물어봐야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그 간절함이 생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두 차례의 큰 패배를 당하면서 답이 무효 처리되고, 또 그 힘이 제거되니까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제야 멋대로 결정하던 것, 또 마음대로 준비하던 것을 멈춥니다. 멈춰요. 그러고는 모든 백성이! 거기에 있던 그 모두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패배하고 실패한 모습 그대로 올라가는 거예요. 모든 수치를...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 큰 병력 손실이 너무 아프기도 했지만 정말로 부끄러웠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수치를 그대로 안고서 전부!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러자 드디어 회개의 울음을 터뜨립니다.
앞서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릴 때는 어땠어요? 울면서 계속 하나님한테 말했어요. 울면서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올라갈까요? 다시 싸울까요? 다시 저 사람들과 우리가 전쟁을 치를까요? 울면서 계속해서 하나님한테 호소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삶이 다 무너져서 이제 부끄러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니까 그제야 내 죄가 보이는 것이고, 너무 하나님께 죄송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죄인에게까지 이 앉을 자리를 마련해 두신 그 의자를 치우지 않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렇게 회개의 눈물을 흘리니까 차이가 뭐예요? 아까는-이 비장한 눈물을 흘릴 때는-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다시 싸우러 갈 테니까 도장 찍어주세요!! 이렇게 요구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합니까? 더 이상 조르지 않아요. 그저 여호와 앞에 앉아 있습니다. 날이 새도록. 날이 저물도록 여호와 앞에 울면서 앉아 있는 거예요. 앉는다는 것은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앉는다는 것은 하던 일을 멈추는 거예요. 가던 길을 멈춰야 앉을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정해진 자리! 내가 앉고 싶은 데가 아니라 정해진 자리에 머무르는 겁니다. 내 답 주장하던 것을 멈추고, 내 힘 행사하던 것도 멈추고, 주님, 말씀하옵소서. 듣겠습니다 이렇게 주님 말씀 들으려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금식하잖아요. 왜요?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그 먹는 것도 멈춘다는 표시예요. 그것도 멈추고 내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의 처방을 기다린다는 그 표시입니다. 그러자 어떻게 됩니까? 예배가 회복되잖아요.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사기 역사가 대략 한 350년 이렇게 잡을 수 있는데요. 사사기 쭉 봐도 이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진정한 회개를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렸다는 그 기록은 여기에만 있는 거예요. 이게 진정한 예배의 유일한 장면입니다. 350년이나 되는데... 회개와 예배가 없으면요. 이렇게 사사 시대의 암흑기가 우리 삶에도 계속되는 거예요. 이스라엘 자손이 겨우겨우 무너지고, 또 무너져서 겨우겨우 진정한 예배를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드리자 이 사람들의 질문이- 하나님께 묻는 그 질문이- 바뀝니다. 27절, 28절 같이 읽습니다.
2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28.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여러분, 싸울지 말지에 대해서 답이 있을 때는 아예 묻지도 않았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또 힘이 있을 때는 어떻게 했어요? 우리 싸우겠어요! 계속 싸울 테니까 도장 찍어주세요!! 통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울면서 회개하니까 뭐라고 물어봐요?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계속 싸울까요, 아니면 멈출까요? 이 중요한 건 이 말리이까?에요. 멈출까요? 말리이까? 싸움이 답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결정에 맡기는 거예요. 내가 답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이거는 이건 싸워야 되는 거야. 이건 해야 되는 거야. 반드시 해야 되는 거야.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되는 거야.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것을 멈춰야 될 수도 있겠구나.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실 수도 있겠구나. 그 가능성도 열어놓고 모든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서도요. 이 하리이까?를 묻는 것은 그나마 조금 우리가 쉬워요. 우리는 또 여러분들은 다 말씀 묵상하는 큐티인들이시잖아요. 큐티인들은 그래도 말씀 안 보는 사람들보다는 적용에 늘 관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늘 고민을 많이 하고, 우리가 목장에서 이걸 할까요? 내가 남편에게 이걸 할까요? 아내에게 이걸 할까요? 자식에게 어떻게 할까요? 여기엔 늘 관심이 우리가 많아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사각지대가 있다는 거예요. 그림자가 어디냐면 말리이까? 내가 지금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것이 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확신을 가지고서 내가 밀어붙이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게 너무도 옳은 것이고 명분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 멈춘다는 거 우리 생각 못할 때가 많단 말이죠.
특히 저 같은 사역자는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사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 사역을 하고... 이건 너무 당연히 해야 되는 사명이라고 우리가 착각할 수가 있잖아요 (물론 사명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조차도 ★내 판단대로 내 확신대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나님, 멈춰야 될까요? 하나님, 말리이까? 이것을 물어봐야 됩니다. 이번 주에 여러분들 이 말리이까? 좀 물어보시기 바래요. 이런 기회가 또 잘 없잖아요. 말리이까?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면서 하나님 앞에 전적인 주권을 맡기고 하리이까, 말리이까?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기니 하나님께서는 이제 승리를 약속하십니다. 답을 하나님께 맡기자 하나님이 진짜 답을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이 엽기적인 사건이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기 쉬우냐면 아, 사사 시대에 이 악들이 점차적으로 더 심해지고 많아져서 결국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생기는구나! 이 암흑기의 죄악이 계속해서 쌓이다 보니까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결국 내전까지 발생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죠? 시간의 흐름상 작가가-기록자가- 그렇게 써놨어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반전이 있어요.
이때 하나님의 언약궤를 지키고 있는 그 제사장이 누구예요? 아론의 증손자인 비느하스예요. 이 비느하스는 여기서 처음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 이 민수기에도 나오고 여호수아에도 나옵니다. 이 비느하스는요, 모세를 직접 봤어요. 그리고 여호수아도 보았습니다. 무슨 뜻이에요? 이 사건은 사사기 후기가 아니라, 말기가 아니라 사사기 초반에, 초기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거예요. 사사기 전체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인데 또 가장 끔찍한 내전인데 사사 시대 말이 아니라 사사 시대 초에 이미 이러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말입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바로 앞에 우리 지금은 사사의 마지막 에피소드고요. 그 바로 앞에 에피소드가 또 있었죠? 17장, 18장에서 거기 주인공 누구였습니까? 거기도 미가 집 제사장 레위 사람이었어요. 그렇죠? 그 사람이 주인공이었어요. 이 레의 사람은 돈만 따라서 연봉 협상이나 할 줄 아는 아주 타락한 레위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18장 30절에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게 기록해놓으셨어요. 이 사람은 누구냐 하면, 이 사람은 또 모세의 증손자예요. 사사기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래서 길게 기록하고 있는 사건이지만 내용을 볼 때 차마 우리가 입에 담기도 어려운 그 타락하고 부패하고 그 엉망진창인 이 사건의 그 중심에 누가 있는 거예요? 레위 사람이 있고, 제사장이 있고, 그것도 그냥 레위 사람이 아니라 레위 사람 중에 성골인 모세의 증손자 아론의 증손자가 있다 이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인생에 예외는 없다는 거예요. 예외가 없다는 거예요. 장담할 수 있는 인생이 없습니다. 혈통이나 배경이나 조건이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11 지파의 이 40만 명이 참전하는 이 유례 없는 내전을 시작한 사람도 첩의 시체를 전국에 보낸 이 레위 사람이었어요. 위대한 장군 바락이 여러분 동원한 군대가 몇 명이었어요? 만 명이었어요. 만 명!! 그 위대한 장군 바락이 동원한 군대가 만 명이었는데, 이 레위 사람은 지금 실질적으로 몇 명을 동원한 거예요? 40만 명을 동원했다 이 말이에요.아모리나 미디안이나 블레셋 같이 아무리 강한 가난한 사람들과 전쟁할 때도 이스라엘이 이렇게 40만 명이나 동원한 적이 없습니다. 사사기에서 최대로 군대를 동원한 이 전쟁은 이방인을 향한 전쟁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벌인 이 내전이었어요.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 세상에 정말 무서운 싸움이 이 가족 싸움이고, 또 이 교회 싸움이고, 또 동족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주범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레위인 같은 모세의 증손자, 아론의 증손자와 같은 이 지도자들이라는 거예요. 정말로 우리 인생은 절망할 것밖에 없습니다. 사사 시대가 진행되면서 점점 악이 더해지는 것도 있지만 양적이든 질적이든 누구의 악이 더 크고 작으냐 이런 비교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거예요. 누구 잘못이 더 큰지 어느 시대가 더 악한지 따지는 것은요, 전부 다 행위 중심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모든 시대가 전적으로 타락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100%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인생의 답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나 하나 구원할 그 힘을 우리가 가질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무덤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그저 방황하다가 지쳐서 사라질 뿐이에요. 정말 밑동 잘린 나무처럼 이 짧은 인생.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짧은 인생! 오직 하나님 앞에 앉아서 그 앞에 거할 때 진정한 평강과 안식을 누릴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의 반대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재미있는 상상을 한번 해보세요. 사사기가 지금 이제 21장까지 있잖아요. 우리는 책이잖아요. 옛날 사람들은 이걸 두루마리로 봤단 말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가로로 쓰실 분은 가로로 쓰시고 세로로 쓰실 분은 알아서 하시되 그걸 하여튼 처음부터 끝까지 종이 한 장에 쫙 기록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리고 굉장히 길어지겠죠. 너무 기니까 반으로 한번 딱 접어보세요. 그러면 첫 처음과 마지막 끝단이 닿고 또 중간이 생기겠죠. 상상이 되시죠? 접으면 오늘 여호와 앞에 앉아서라는 구절이 있는 20장 26절과 딱 접었을 때 26절과 딱 겹쳐 지는 절이 어딘지 아세요? 그게 2장 12절이에요. 2장 12절. 근데 그게 무슨 말이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 버렸다. 그러니까 이 사사기 기록자가요. 제가 보니까 굉장히 천재적인 사람 같아요. 이런 아주 위트가 있게 구성을 잘 해놨더라고요. 여호와 앞에 앉아서의 반대말이 뭐예요? 하나님을 버리는 거예요. ★여호와 앞에 앉아서의 반대말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근데 이걸 또 이것만 가지고는 증거가 좀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딱 접었을 때 그 가운데 접히는 부분 있잖아요. 상상이 되시죠? 딱 접히는 부분이 어딘지 아세요? 10장 10절에서 16절까지의 그 단락이 딱 접히는 부분이에요. 이걸 또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 저 목사가 맞는 말 했나? 그러면서 또 이제 한글 성경 막 이렇게 접고, 영어 성경 막 접어가지고 아! 이거 아닌데 10장 10절 아니라 10장 9절이던데!! 막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는 기준이 항상 히브리 원어예요.^^ 원어고. 그것도 숫자 다 빼고 장, 절 수 다 빼고, 모음 다 빼고 자음만 가지고 이 구약시대 사람들이 썼던 그걸로 계산한 것이니까 그냥 제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아시고 네 확인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딱 접었을 때 그 중간 부분이 10장 10절에서 16절인데 여러분 집에 가서 한번 보세요. 그 부분의 내용이 무엇이냐. 거기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렸다라는 것에 대한 고백과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이 나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내용이 있어요. 그렇게 고백하고 진단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따라서 섬기던 이 이스라엘이 이제 하나님이 위협을 하시니까 거기서 이제 떠나서 그 우상을 버리고-거꾸로 이제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그렇게 이제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이 고민하시고..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고민하시면서 결국에는 또 사사 입다를 보내셔서 구원을 베푸시는 그 장면이 계속 된다는 말이죠. 무슨 말입니까? 사사기에서 우리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보여주는 핵심 메시지는 뭐냐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도저히 우리 힘으로 앉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거예요.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버리는 일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는 시늉만 해도, 하나님 앞에 앉으려는 그 시늉만 해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그 은혜의 말씀인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건짐을 받아야 하는 인생이에요. 그러지 않고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때마다 이렇게 계속해서 사사를 보내주시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사사기를 우리가 쭉 묵상을 했지만 사사기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사도 사사다운 사사가 없어요. 구원자다운 사사가 없습니다. 전부 다 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심지어 이 망가진 인생이에요. 평균치만도 못한 인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사사 같고, 저 사람이 조금 더 사사 같아서.. 우리는 그걸 늘 비교하면서 이 사람 세우면 잘될 거야! 저 사람 세우면 잘될 거야! 이렇게 비교하고 세우고 이 난리를 치잖아요. 그러나 그것 역시 끝없는 방황일 뿐입니다. 사람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 사사 이 사사도 아니고 저 사사도 아닌 그 사사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게 누구실까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사기에 딱 한 번! 딱 한 번 그 사사가 나오는데요. 그 사사. 정관사 the를 붙여서 그 사사가 나오는데 그게 사사기 11장 27절이에요. 우리 말 번역으로는 심판하시는 여호와라고 했기 때문에 그냥 모르고 쓱 지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히브리어로 읽으면 יְהוָה הַשֹּׁפֵט [야훼 하쇼페트]예요. [야훼 하쇼페트] 그 사사 여호와라고 아주 사사기에 하나님이 딱 박아두셨어요. 그러니까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이 사사는 이래서 안 되고~ 저 사사는 저래서 안 되고~ 그래서 우리 소망이 없고 하나님 앞을 계속 떠날 수밖에 없고.. 버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절망하니까 엣다!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살아야지!!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요? ★그 사사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면서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데서 방황하는 것을 그쳐야 합니다. 답을 구하려고, 힘을 얻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되는 거예요. 내 정답, 내 능력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앞에 앉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저히 우리 스스로 이 방황을 멈출 수 없다는 거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도저히 우리 힘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앉을 수 없다는 거 아시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찾아오시잖아요. 우리에게 찾아오시잖아요.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못 찾아가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가운데 앉아 계시는 줄 믿습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오늘도 함께하시는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내가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100% 인정하십니까?
Q. 지금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나의 왕좌입니까? 아니면 우상 앞입니까? 여호와 앞입니까?
한 성도님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셨는데요. 믿음보다는 무서운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억지로 다니셨다고 합니다. 결혼 후 외도로 이제 이혼 위기에 처하셨는데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엄청 화내면서 욕하실 줄 알았대요. 그런데 이제 어머니에게 들켜 가지고 어머니가 이제 혼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딱 한마디 하셨다는 겁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우리들교회로 와라. 우리들교회로 와서 이 가정이 지켜지고, 이 부부가 이혼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어머니께서 천국 가셔서 장례 예배를 드리셨어요. 자녀들 모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인데 이상하게 가족끼리 분위기가 좋지 않게 보였다는 거예요. 그날 큐티 본문이 어머니의 은 1,100개를 훔친 이 미가에 관한 말씀이었는데 장례 인도하러 간 목사님이 그 가정에 그 돈에 관한 큰 갈등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셨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이 장례 후에는 이 가족들이 서로 안 볼 수도 있겠구나 이런 걱정이 너무 들어서 하관 예배 마친 다음에 가족들에게 나눔할 시간을 충분히 오랫동안 드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족들 표정이 너무 안 좋았대요. 그래서 괜히 나눔 시켰나? 목사님이 막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암 투병 중이던 그 가족 한 분이 본인의 잘못을 형제들 앞에 고백하셨다는 거예요. 사업을 하면서 대출 때문에 그 과정에서 형제들에게 많은 상처 주었던 것. 정말 용서를 구하시면서 회개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자 다른 형제들도 그동안 섭섭했던 그 마음을 다 내려놓고 화해를 청하는 그 나눔을 이어가셨다는 거예요. 걱정 가득 시작했던 나눔이었지만 가족들 안에 오랫동안 그 쌓여왔던 그 깊은 골이 채워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독 눈물을 많이 흘리던 분이 계시더래요. 그래서 가족인 줄 알고 그분께도 나눔 부탁을 드렸더니 그런데 이제 그분이 자긴 가족이 아니라고.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지인이라고.. 그리고 심지어 이분이 교회도 안 다니던 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이 왜 그렇게 우셨냐고 묻자 이분이 대답하길 이 가족들의 나눔을 듣다 보니까 그것이 모두 다 내 얘기 같아서... 내 얘기 같아서 이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주체할 수가 없다고.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너무 대단한 것 같다고 그래서 자기도 이제 교회 나가겠다고 그 자리에서 약속을 하셨다는 거예요. 정말 놀랍죠. 박수!
천국 가신 어머니를 비롯해서 그 모든 유가족들이 힘들지만 각자 그 자리를 잘 지키시면서 말씀으로 나누고, 또 서로 회개하고, 화해한 것이 바로 이것이 여호와 앞에 앉아 있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그 한 영혼이 여호와 앞에 나오기로 결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구원의 사명 더 많이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우리에게 답이 있을 때는요. 여호와 앞에 앉을 수가 없어요. 힘이 있을 때도 그럴 수 없습니다. 오직 답이 없어지고 힘이 사라져서 울면서 회개할 때 여호와 앞에 앉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울면서 회개하는 것이 여호와 앞에 앉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내가 정답이라고 믿던 그것들이 오답이 되는 그 사건을 만나고 내가 의지하던 내 힘이 다 빠지는 고난을 당하면서... 이 육이 무너진다면 그것이 곧 축복인 거예요. 내가 스스로 왕이 되어서 내 소견대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그 모든 교만을 회개하고.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왕으로 모시는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적용질문
우리는 언제 여호와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요?
1. 답이 있을 때는 아닙니다. (18-21절)
Q. 내 인생의 답이 될 것 같아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Q. 예상과 달리 당했던 실패나 패배가 있으십니까?
Q. 그것이 이해가 안 되십니까? 아니면 이제는 이해가 잘 되십니까?
2. 힘이 있을 때도 아닙니다. (22-25절)
Q. 내가 의지하는 세상적 힘은 무엇입니까?
Q. 실패했는데도 스스로 용기를 내어서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Q. 힘이 빠져서 어쩔 수 없이 머무르다가 오히려 누리게 된 은혜의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3. 울며 회개할 때입니다. (26-28절)
Q. 내가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100% 인정하십니까?
Q. 지금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나의 왕좌입니까? 아니면 우상 앞입니까? 여호와 앞입니까?
**** 기도제목
A.
1.영적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결단하여 끊고 차단 하고 벌어진 곳에 말씀을 덧입도록
2.지켜온 인생인것 알고 감사함으로 하루만 살도록
3.양교 잘 하지 않고 있어야 할 곳에 앉아 있도록
B.
1. 목장과 말씀에 물으며 갈 수 있도록
2. 주님이 주시는 어떤 답변도 가장 선한 것으로 인도 하심을 믿고 평강 누리도록
C.
1.모세와 아론의 증손자임에도 묻지 못한 것이 진정한 회개와 겸손함이 없어서 인것임을 알고 말리이까(?)하며 물으며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