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3.(주일) 사사기6:11-16 「큰 용사여」 이성훈F목사님
여러분 혹시 사기꾼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느낌을 갖는다고 그래요. 아, 이거 내가 지금 사기 치는 거 아닌가? 내가 지금 이런 자격이 있나? 내 인생이 진짜인가? 유명한 영화배우 톰 행크스도 어떤 한 인터뷰에서 자기가 그런 적이 있노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성인의 70%나 되는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다 한다고 그래요. 지금 혹시 여러분도 와! 내가 어떻게 저렇게 훌륭한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었지? 이게 진짜인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이런 생각 다 하시죠.^^
그런데 또 이 정반대의 현상이 있다고 그래요. 이거는 사람 이름을 딴 거라서 한국말로 옮길 수가 없는데요. 더닝 크루거 이팩트(DunningampndashKruger effect)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게 있답니다. 이거는 뭐냐면 무능할수록 자기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제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예는 뭐냐면, 우리가 운전하잖아요. 근데 그 운전자의 80%에 해당하는 사람이 내 운전 실력은 평균 이상이야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80% 이상이. 그러면서 막 밟고 다니는 거죠. 저도 참 하여튼 그런데... 이게 수학적으로는 사실 말이 안 되잖아요. 80%의 사람들이 자기가 평균 이상이라고 한다는 것이.
진짜 실력자는 이렇게 자신을 부족하게 생각하고, 좀 부족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 아주 이상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드온은 사사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다루는 사사예요. 무려 100절이나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드온은 사사기에 나오는 많은 전쟁 중에서 가장 기적적인 승리의 주인공입니다. 300명을 데리고 몇 명을 격파했어요? 13만 5천 명이나 되는 그 대군을 300명으로! 엄청난 승리의 주인공이에요. 그런데 기드온은 원래부터 이렇게 대단한 용사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습니다. 오늘 기드온 같은 우리도 주님이 '큰 용사여!' 이렇게 불러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크기 때문이 아니에요. ★우리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 방식이 어떤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방식 그 첫 번째는
겁쟁이를 부르십니다. (11-12절)
11절 말씀 우리 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이 오브라라는 동네에 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아요. 이 상수리나무 아래는 어디냐 하면 오브라를 다스리는 그 요아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의 말하자면 집무실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사자가 앉았다고 합니다. 이 앉았다는 것은요. 그냥 쉬기 위해서 잠깐 걸터앉은 것이 아니에요. 이 단어는 왕이 자기의 보좌에 좌정하는 것을 말하고요. 또 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고 거주한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엇이겠어요? 하나님의 사자가 이 요아스의 집무실에 앉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곳을 이제 다시 다스리시기 시작하겠다는 거예요. 무려 7년 동안이나 이 미디안의 괴롭힘을 당하던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다시 임하기 시작했다는 그 징표입니다.
미디안의 괴롭힘은 굉장히 잔인했어요. 이들은 파종 때마다 메뚜기 떼처럼 몰려와서 있는 것을 다 쓸어가 버렸습니다. 여러분 수확 철이 아니라 파종 때예요. 씨 뿌릴 때!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곡식 훔치러 온 것이 아니라요. 농사를 못 짓게 만들어 만들려고 온 것이에요. 살 소망을 다 끊어놓기 위해서 매번 파종 때마다 와서 그 농사를 아주 씨를 말렸다는 얘기죠. 이 깊은 절망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시 부르짖었어요. 어제 본문에 나왔죠. 다시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염치없는 이 뻔뻔한 부르짖음에 다시 귀를 기울이셔서 들어주셨어요.
그때 마침 이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타작을 어디서 했어요? 정상적인 장소인 타작마당이 아니라 포도주 틀에서 했습니다. 이 포도주 틀은 땅을 넓게 판 다음에 거기에 이제 돌판으로 잘 깔아서 포도즙을 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웅덩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제일 쉽게 생각하시면 우리 공중목욕탕 가면 욕탕 있잖아요. 그 욕탕 생각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는 몸을 숨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이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지금 그 포도주 틀 안에 들어가서 몰래몰래 겨우겨우 살린 그 밀 이삭을 주워다가 껍질을 벗기고 있는 거예요. 숨어서.. 두리번거리면서... 언제 미디안 사람들이 닥칠지 몰라서. 여러분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다 큰 아저씨가 욕탕처럼 생긴 그곳에 들어가서 납작 엎드려서 잔뜩 겁에 질려서 그 밀을 까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찌질한 겁쟁이입니까? 그런데 이 겁쟁이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 나타나십니다. 12절이에요.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기드온이 깜짝 놀랐을 거예요.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뭐라 그래요? '큰 용사여!' 부릅니다. 큰 용사여! 싸우면 이기는 최강의 전사를 말하는 거예요. 그것도 우리가 원어를 보면은 이게 그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단 말이죠. 여러 큰 용사 중에 한 명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큰 용사여! 유일한 큰 용사여!' 지금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끝이 아니에요. 이 사자는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콕 집어서 '너와 함께 하신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거란 말이죠. 너희가 아니라 단수로 너예요. 아주 특별한 선택을 말합니다. 여러분, 기드온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지금 자기 모습은 자기가 알잖아요. 찌질하게 겁쟁이처럼 포도주 틀에 숨어서 그래도 먹고 살아보겠다고 지금 밀을 까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큰 용사여!' 그것도 '그 큰 용사여!' 그것도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신 그 큰 용사여!' 이렇게 부르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다 양 같아서요. 늘 지금 이 순간만 바라봅니다. 현재 내 모습, 상황, 조건 이것만 놓고서 우리가 판단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기분은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늘 두려움이 우리 안에 깔려 있어요. 우리가 멈춰지지 않는 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있잖아요.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알지 못하고, 현재는 붙잡을 수가 없단 말이죠. 계속 흘러가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불안한 존재인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세요. ★하나님은 영원 아래에서 영원 아래에서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을 한 번에 보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서론과 본론과 결론을 다 아세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구원으로 이끌어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무서운 게 너무 많죠. 저도 이 고소 공포증이 있고요. 또 이 치과 공포증도 있고요. 또 이 마누라 공포증도 있고요.^^ 그리고 또 무대 공포증이 있어요, 제가. 그래서 이 목사인데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 게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신다고 그러던데 이게 얼마나 감추고 있는지 몰라요. 굉장히 이게 두렵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 나는 무서운 게 하나도 없다 이러는 분들 계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바로 그분이 미디안 같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분인 줄 알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제일 무서운 분인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다 두려운 게 많은 겁쟁이죠. 그리고 또 그거 감추느라고, 또 감춘 거 들킬까 봐 너무 두려워요.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이런 우리를 부르십니다. '큰 용사여! 그 큰 용사여!' 작은 용사, 중간 용사 아니고 '큰 용사여!' 가장 용감하고 가장 강하고 가장 특별한 그 큰 용사라고 우리를 불러주시는 거예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러주시는 거예요. 불러주신다 늘 두려워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용감한 사람이 되겠어요? 겁이 많던 우리가 어떻게 그 겁이 한 번에 없어지겠습니까? 왜냐? 우리의 상황 자체가 그대로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말씀으로 큰 용사라고 불러주셨지만 내 옆에 무서운 사람들 그대로 같이 살고 있잖아요. 여전히 우리는 겁이 날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뭐라고 부르세요? '큰 용사여!' 불러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완전한 의를 근거로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예수 믿는 순간 갑자기 변해서 완벽한 의인이 되는 것 아니잖아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 구원을 말이죠. 우리의 행위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예수 믿는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늘 넘어져요. 언제까지 그래요? 언제까지. 천국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내 아버지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그 순간까지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늘 연약한 죄인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완전한, 여전히 죄인인 우리를 우리 주님께서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신학적으로 그걸 뭐라고 그럽니까? 칭의(稱義)라고 부르는 거예요.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거예요. 주님의 의로 우리의 불의를 덮어주시는 겁니다. 가려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 32편 1절에서 다윗은 뭐라고 고백합니까?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자신의 죄가 어떻게 된 자?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없어진 자라고 하지 않으세요! 가려진 자가- 덮어진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오직 은혜요,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전히 두려움이 많은 우리, 믿는다고 하지만 말씀을 본다고 하지만 심지어 저처럼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말씀을 전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큰 용사여! 큰 용사여! 그 큰 용사여!' 이렇게 불러주시는 이 은혜의 부르심으로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방식인 거예요. ★주님은 은혜의 부르심으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용사를 용사로 부른다면 그게 무슨 은혜겠어요? 거기에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당연한 거죠. 그러나 우리처럼 이 겁쟁이를 큰 용사라고 불러주시기 때문에 그것이 은혜고. 그것이 엄청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들은요, 겁쟁이가 아니라 큰 용사인 거예요. 당연히 뭐 여전히 우리는 겁쟁이에요. 겁쟁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 우리는 겁쟁이가 아니라 큰 용사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큰 용사!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정해 주시는 그 큰 용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으로, 아내로, 또 아들로, 딸로, 엄마로, 아빠로, 자매로, 형제로 살아가는 동안 너무 무섭고, 떨리고, 두렵지만 그러나 괜찮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두려워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한탄할 수 있지만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큰 용사여 불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르심을 믿고 어디서든 구원의 사명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Q. 요즘 제일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Q. 내가 숨어있는 나의 포도주 틀은 어디인가요?
Q. 겁 많은 나를 주님이 부르신 자리는 어디인가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있었어요. 그러나 마음속에는 상처와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폭력적이셨고, 외도까지 하셨어요. 형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병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믿음으로 가정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힘들면 이 멀쩡한 아들에게 그 화풀이를 다 하는 거예요. 우리가 화나면 고양이 걷어찬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결국 청년은 '내가 이 집에서 도저히 못 살겠다!' 하면서 교회를 나갔습니다. 교회를 뛰쳐나가 떠났어요. 근데 여러분 교회 떠나면 그 답이 뭐겠어요? 술, 담배, 음란이죠. 거기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가족들에게 복수해 주겠다고 그렇게 이를 악물고 열심히 열심히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 청년에게 공부를 해야 되겠다라는 마음을 주셨답니다. 그래서 또 공부에 몰두를 하게 된 거예요. 공부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이러한 세상의 악들로부터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고요. 어머니와 다시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은혜를 주셔서 그 아버지는 가정으로 돌아오셨고, 형도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 된 것 같은 그런 엄청난 회복이 이 가정에 주어진 거예요. 하지만 또 한 가지 큰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께서 글쎄 해외에서 여러 가정들을 꾸리고 이중, 삼중 생활한 게 드러난 거예요. 더 기가 막힌 건 이 아버지가 '나는 너희에게 하나도 미안한 게 없다' 이런 기가 막힌 말을 했다는 거예요. 청년의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움이 임했대요. 나도 나중에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나도 나중에 내 아버지처럼 저런 모습을 보이면 어떡하지...
왜곡된 상처와 죄는 우리도 모르게 대물림되는 것이 대물림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이 청년이 그렇게 마음이 찢어지고 그런 두려움 가운데 피할 곳이 없어서 이 공동체에 딱 붙어 있다 보니까 이런 인생 시험장에 한 구원자가 세워졌습니다. 말씀이 들렸어요. 그래서 청년이 큐티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언제든 다시 교회를 떠날 수 있는 나를 하나님께서 깨어 있게 하시려고 이 가나안 민족 같은 이 두려운 고난을 남겨두셨구나. 그래서 날마다 내가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아야만 하는구나. 여러분 정말 이것이 큰 용사의 고백인 줄 믿습니다. 말씀과 공동체가 이렇게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이 다른 데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새 우리 사사기 큐티 하는데 더 매일 큐티 잘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방식. 첫 번째는 겁쟁이를 부르시고요. 두 번째는
의심쟁이를 보내십니다. (13-14절)
13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이 기드온이 엄청난 은혜를 지금 받았잖아요. 엄청난 은혜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요? 놀랍게도 이 의심의 질문을 던집니다.
첫 번째 질문은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이렇게 가정법으로 시작하는 가정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가정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에요?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말 지금 내가 믿겠다, 못 믿겠다? 못 믿겠다는 거예요. 의심스럽다는 겁니다. 왜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지금 내가 이 앞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끔찍하고 괴로운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는 이 고난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 이거 틀린 거 아니냐? 의심이 생긴다는 겁니다. 우리도 너무 힘든 고난이 생기면 이런 의심 들지 않습니까?
두 번째 질문은 '조상들이 말한 그 기적, 출애굽 때 조상들이 경험했다는 그 엄청난 기적! 홍해가 갈라지고,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대적들을 물리치는 그 엄청난 기적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기적들 지금 다 어디 갔습니까? 그 기적들 지금 다 어디 갔습니까? 그 기적들이 있다면 지금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미디안에게 말도 안 되는 이 채찍질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까? 이 현실이 있는 한 그 기적이 있었다는 말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이렇게 따지는 거예요. 남의 얘기가 아니죠. 우리도 너무 힘들면 지체들의 간증 들어도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 저거 뻥이겠지~ 팔짱 끼고 듣게 되는 거예요. 그러고는 기드온은 스스로 결론을 내려버려요.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기셨다고!' 단정 지어 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엄청난 부르심을 받은 기드온이 대체 어쩌다 이렇게 의심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판단 기준이 내 생각이기 때문에요. 판단하는 기준이 내 생각이기 때문에. 내가 맞다고 여기는 것을 기준으로 딱 세워둡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내가 세워둔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의심스러운 것에 불과하게 돼버립니다. 이러한 의심은 결국 불신이 되고 맙니다. 기드온이 세운 이 기준, 그 내용이 뭘까요? 그 자기 생각이 뭐예요? 무슨 확신으로 도대체 이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이렇게 따박따박 따지면서 자기의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고난은 있을 수 없다.'
바꿔 말하면 '교회 잘 다니면 사업은 늘 번창해야 된다. 예배 잘 드리면 건강해야 된다. 큐티하면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야 된다. 목장 나가면 남편이 또 아내가 내 말 잘 들어야 된다. 예수 잘 믿으면 행복해야 된다.'
우리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기복 신앙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기복 신앙을 누가 옳다고 보증해 주었습니까? 성경을 아무리 뒤져봐도 하나님께서는 기복 신앙이 옳다는 보장을 해 주신 적이 없더라고요. 기복 신앙은 우리의 희망 사항이지 우리 신앙의 원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원리를 굳게 믿고, 그걸로 현실을 판단하고, 나를 판단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나아가서 하나님까지 판단해 버리니까 모든 걸 비판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자기 세계에 갇혀서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이 의심병 걸려서 피곤한 이 기드온을 주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자가 말했는데요.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등판하십니다. 사자의 모습으로 말하니까 기드온이 무시를 했는지 도대체 들어먹질 않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다가 답답하셔서 이제 자기 모습을 개시하십니다. 하나님인 것을 이제 까시고 기드온을 향하여 기드온을 직접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드온아!!' '네!' '가라!!' '어디로요?'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서 구원하러 가~!!' '제가요?' '그래. 내가 너 보내는 거 아니니. 그러니까 그냥 가!!'
하나님은 기드온과 논쟁하지 않으세요. 의심에 빠진 기드온과 논쟁하지 않으십니다. 의심을 바로잡아주시기 위해서 가르치시지 않으세요. 강해하지 않으세요.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이 의심쟁이 기드온을 그 모습 그대로 놔두세요. 받아주시는 거예요. 안아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오히려 그를 보내십니다. 가라고 그러세요. 어디로 가라 그러세요? 미디안의 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그 자리! 거기로 보내세요. 자기 믿음 하나 지킬 힘 없는 지금 기드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그 엄청난 사명의 자리로 가라고 보내십니다. 이 사명을 무슨 힘으로 하라고 그러세요? 보니까, 이 너의 힘으로! 이 너의 힘으로! 여러분 기드온이 무슨 힘이 있어요? 아무 힘 없습니다. 힘이라고 하면 겁내는 힘, 의심하는 힘, 겁쟁이, 의심쟁이. 그러나 그 너의 힘으로! 네가 가진 그것으로! 아무 힘 없는 그것으로! 아무 능력이 아닌 그 너의 모습 그대로 가라는 거예요. 가서 구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요.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냐?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냐?' 기드온 할 수 있는 게 겁내는 것, 의심하는 것밖에 없는 무능한 존재이지만 그를 보내시는 것이 누구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가라는 거예요. 이 말씀을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도 의심이 너무 많죠. 저야말로 의심 대마왕이에요. 말씀도 안 믿어지고, 역사도 안 믿어지고, 지체들의 간증과 그 권면도 안 믿어질 때가 너무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의심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은 그 의심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세요. 설명하지 않으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의 짐을 지고 있더라도 주님께서 보내시는 그 사명의 자리로 가야 되는 거예요. 의심의 치료제는 사명입니다. 사명! 우리 모두 사명에 순종하여서 각자의 자리에서 구원을 위해 큰 용사로 귀하게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이것만큼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Q. 지체들의 간증을 팔짱 끼고 듣습니까, 두 손 모으고 듣습니까?
Q. 의심을 멈추고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방식. 첫 번째는 겁쟁이를 부르시고요. 두 번째는 의심쟁이를 보내세요. 굉장히 역설이에요. 그렇죠? 세 번째는
계산쟁이에게 약속하십니다. (15-16절)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시고 또 사명의 자리로 보내십니다. 그러나!! 15절 첫 시작이 그러나 잖아요. 그러나!! 기드온은 꼼짝도 하지 않아요. 주님은 계속 기드온과 함께하고 계시지만 기드온은 아직 '그러나'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님과 같은 방향을 향한다면 그리고가 나와야 되고 그래서가 나와야 되는데 기드온이 주님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러나만 나오는 거예요. 기드온은 그래서 또 질문을 하는데요.- 아멘을 하지 않고 또 질문을 하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또 생각을 해봐야 돼요. 모든 것에는 다 이면이 있잖아요. 기드온이 이렇게 지질하고, 믿지 못하고, 겁 많고, 이 질문만 하는 이 질문쟁이. 이런 연약한 모습인데 그 이면에는 뭐가 있냐면 이렇게 연약하니까 지금 하나님께 계속해서 묻고 있는 거란 말이죠. 여러분이 묻는 게 뭐예요? 묻는 게 뭐예요? Question Time[퀘스천 타임]이 뭐예요? 그게 큐티(QT)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큐티가 우리 목사님께서 맨날 그 '살려고 큐티했다'고 말씀하시는데... ★하나님 앞에 정말 자기의 연약함을 깨닫는 사람이 큐티인(QT人)인 줄 믿어요. 우리 인생의 고난은 정말 이렇게 큐티하라고, 말씀 묵상하라고 그래서 주님 만나라고 주시는 그러한 시험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까?' 기드온이 다시 질문하는데요. 그러니까 기드온의 계산으로는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이길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없어요. 아니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금 먹을 것도 하나 없는데 무기가 어디 있겠어요? 지금 밀알 까고 있는데 무기가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기드온은 자기 자신도 자격이 하나도 안 된다고 지금 호소해요. 집안도 별 볼 일 없고~ 자기는 그 별 볼 일 없는 집안 가운데서도 제일 하찮은 막내다~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다~ 지금 이렇게 호소하는 겁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기드온의 결론이 뭐예요? '그러므로 저는 갈 수 없습니다. 미디안의 손에서 적어도 저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결론인 거예요.
나가서 싸우려면-싸움을 하려면-반드시 계산을 해야 돼요. 예수님도 그러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임금이 전쟁에 나갈 때 아군과 적군을 헤아려서-계산해서-싸움에 질 것 같으면 어떻게 하라고 하셨어요? 화친하는 게 맞다. 싸우지 않고 화친하는 게 맞다. 주님도 이제 이렇게 계산해서 이길 싸움이 아니면 화친하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기드온이 사실은 그 계산 잘한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그런데! 기드온이 계산에서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빠뜨린 거! 빼먹은 게 있어요. 16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세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이번엔 반드시까지 넣어서 굳게굳게 지금 약속하세요. 너무 이제 못 알아먹으니까 하나님이 답답하셔서 '반드시 함께하겠다!!' 기드온이 계산에 넣지 않은 것 그 하나 그게 뭐예요? 하나님이예요. 하나님!! 반드시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기드온은 지금 계산해서 빼먹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기드온의 계산이 틀려버렸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혼자 다 하려 하니까 수단 헤아리고~ 상황 따지고~ 조건과 자격만 계산하다가 잘못된 답 내놓은 거예요.
우리 마음에는 계산기가 하나씩 다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래서 끊임없이 물어요. 이게 나한테 이익일까, 손해일까? 어떻게 하면 내 이익을 더 크게 할 것인가? 늘 우리는 머릿속에 계산기가 하나씩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요. 이 이성보다 감정이 반응 속도가 훨씬 빨라요.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도 감정이 늘 뒤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지혜가 많으면, 여기 지혜는 세상의 지혜예요.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지식 세상의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한다고 전도서 1장 18절 말씀합니다. 내 머리로 아무리 계산하고 또 계산해도 결국은 치우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언제? 하나님을 떠난 계산은. ★하나님을 빠뜨린 계산은 언제나 치우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 계산기는 사실은 고장 난 계산기입니다.
계산을 정말 잘하는 성도님이 계신데요. 아이 교육, 또 자기의 커리어, 이 가정도 멋지게 잘해보려고 이 머리를 많이 썼답니다. 그래서 변리사 되려고 첫째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독서실에 다니던 중에 글쎄 그 갓난아이 팔 한쪽이 빠지는 사고가 났대요. 지금처럼 아주 엄청나게 더운 한여름이었는데 그래서 친정아버지가 그 아이를 업고서 엄마한테 이제 빨리 데려가야 되니까 독서실로 막 업고서 가셨어요. 땀 뻘뻘 흘리시면서. 그런데 마침 그날따라 이분이 독서실에서 일찍 집으로 퇴근을 하신 것이죠. 길이 엇갈려 버렸어요. 남편도 업무 때문에 바로 올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퇴근하고 갈게~' 이랬답니다. 이 똑똑한 분이 그러면 그냥 바로 병원 데려가면 될 텐데.. 너무 당황스럽고 두려운 나머지 어쩔 줄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한참 뒤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왜 이제 왔냐고!! 이렇게 늦게 오면 이거 덧나서 큰일 난다고!! 아주 혼을 내시더래요. 이렇게 계산 잘하는 똑똑한 분도 이 사건 하나 생기면 계산기가 작동을 멈춰버리는 거예요. 상황이 통제가 안 됩니다. 하여튼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첫째를 키웠는데 아 근데 글쎄 이 첫째가 또 지금은 공부를 굉장히 잘한다는 거예요. 자,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첫째가 공부를 너무 잘하니까 둘째가 있거든요. 둘째는 더 잘 키워야 되겠다라는 이 계산이 이제 막~~ 다시 계산기 꺼내서 이제 두들기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유명한 유치원 설명회를 가셨답니다. 그래서 거기서 은혜를 너무 받으신 거예요. 얼만큼? 눈물을 막 흘리실 만큼!!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좋은 것을 이제야 알았구나!! 우리 둘째는 여기서 정말 잘 교육을 시켜봐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입학을 시키려고 했는데 마침 남편분께서 브레이크를 딱 걸어주셨다는 거예요. 보통 같으면 이제 또 전쟁이 한판 났겠죠. '보내야 된다! 보내면 안 된다!' 또 막 부부 싸움이 났을 텐데 공동체에 이분이 딱 붙어 있다 보니까 남편이 이렇게 브레이크를 딱 밟아줄 때 생각이 났대요. 첫째를 키워주신 분이 고장 난 계산기 가지고 있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신데... 내가 이게 좀 뭐가 되는 것 같으니까 지금 또 내 힘으로 뭘 해보려고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여러분 우리 계산기가 이렇게 고장 났음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 아니겠습니까? 이 한계를 인정하시고, 유명한 유치원 좋은 학교 보내기보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우리 여름 큐페에 다 보내시는 우리 부모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계산으로 따지면요. 우리 주님보다 더 계산 잘할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계산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오직 사랑으로 하셨어요.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큰 용사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부활을 오늘도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는 지금도 계산기 두드리면서 이 사람과는 살 수 없다. 이런 아이 키울 수 없다. 이런 부모 밑에서는 있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이런 나라는 떠나야 된다. 부르짖고 또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이런 우리에게 약속하세요.
'큰 용사여! 큰 용사여! 사명의 자리로 다시 가거라.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할 것이다!'
여러분 오늘 이 주님의 약속에 어떻게 부응하시겠습니까?
'주님, 제가 약속 믿고서 적용하겠습니다! 주님 말씀 믿고서 큰 용사가 되겠습니다! 저와 함께해 주세요! 저를 도와주세요!'
주님께 이렇게 결단하고 약속하고 또 적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계산기를 들이대며 미루거나 피하고 있는 적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Q. 내 안에 있는 미디안 같은 죄는 무엇인가요?
Q. 이번 주 그것을 어떻게 치시겠습니까?
공동체 나눔인데요. 이분은 모태신앙이었지만 오랫동안 이 기복적인 신앙에 머물러 계셨대요. 그러다가 첫째가 희귀병 진단을 받고, 또 둘째는 자폐 중증 판정을 받으셨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대요. 희귀병은 잘 보살펴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중증 자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힘드셨다고 그래요. 어떻게 하면 이 자폐를 낫게 할까? 이 한 가지 계산으로 유명한 치료기관을 찾아서 전국을 다 다니셨다고 합니다. 좋은 학교가 있다는 소식에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인데 거기에 이사까지 가셨대요. 그런데 그곳에 이사해서 정착하고서 돌아온 것은 그 학교에서 사기당하는 것. 학교가 사기를 쳤다는 것이죠. 그리고 깊은 절망에 빠지는 일뿐이었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들 공동체로 인도되었지만 말씀은 들리지 않았고 이분의 기도는 단 한 가지였어요. '딸을 고쳐주세요! 딸을 고쳐주세요! 딸을 고쳐주세요!' 너무 절박했어요. 심지어 로또를 사는 때까지 있었다고 그래요. 치료비에 조금이라도 보태보려고.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죠. 포도주 틀 속에 들어 있는 이 진짜 이 기드온 같지 않았겠습니까? 정말 두렵고 의심이 되고 계산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계셨던 거예요. 이분이 근데 엘리트시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사실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에요. 그러니 이런 상황이 와도 저절로 그냥 자기가 뭔가를 해야 될 것 같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그 교만이 의도하지 않아도 그냥 저절로 올라오시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죄를 보라는 이 말씀이 너무 힘들었다고 그러세요. 교회 떠날 생각까지 하셨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이 두 딸의 그 고난이 끈이 되어서 말씀대로 그냥 붙어만 있었더니 드디어 목사님 설교가 들리기 시작했고, 어느덧 눈물까지 나기 시작했답니다. 주신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자기 생각 강하고, 조금만 인정받지 못하면 이 불만이 올라오는 자신의 이 교만한 죄악을 하나씩 하나씩 깨달으면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딸 고난도 해석되셨대요. 희귀병이나 자폐가 이게 저주가 아니라... 너무 저주 같았는데 이게 저주가 아니라 너무도 교만한 자신을 낮추셔서 주님 만나도록 세팅해 주신 바벨론 포로기라는 것이 해석이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해석된 것이야말로 자기 인생 최고의 은혜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공동체에 붙어만 있으니까 정말 큰 용사 되게 하신 줄 믿어요. 회개는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인데, 딸의 병 낫는 것보다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인데 하나님께서 정말 큰 은혜로 이 고백을 하게 하시네요. 그렇죠? 앞으로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우리는 기드온처럼 겁이 많고, 또 의심 많고, 계산 많은 그런 인생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오늘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세요. '큰 용사여! 큰 용사여! 큰 용사여!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하리라!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하리라!' 여러분, 이것이 은혜입니다. 연약한 우리가 큰 용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에요. 이제 가정과 교회와 또 각자 맡겨주신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구원의 사명을 크게 감당하시는 큰 용사들이! 하나님의 그 큰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 두려워 말라 너와 함께 함이니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됨이니
무서워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두려워 말라 너와 함께 함이니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됨이니
무서워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 손으로 너를 꼭 붙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함이니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두려워 말라 너와 함께 함이니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됨이니
무서워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 손으로 너를 꼭 붙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함이니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 손으로 너를 꼭 붙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함이니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하늘을 지은 창조주라
땅의 소산을 베푸는자
나는 여호와니라
나의 의로 부름 받은 자
나의 찬송을 부르는 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 손으로 너를 꼭 붙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함이니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 손으로 너를 꼭 붙잡아주리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함이니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너는 마음에 염려치 말라 ♬
기도제목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겁 많고, 의심 많고, 계산 많은 나를 큰 용사로 불러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믿게 해달라고..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주님 약속 붙잡게 해달라고.. 오늘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이 사명의 자리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우리 교회가 이 혼란한 시대에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의 사명을 계속해서 잘 감당하게 해주시기를.. 생명을 존중하고 가정을 보호하는 법은 제정되고 악법을 막아주시길 다 함께 주여 한 번 부르시고 간절히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겁쟁이, 의심쟁이요, 계산쟁이인 저희들을 이렇게 큰 용사로 불러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포도주 틀 속에 숨어 있는 기드온 같은 저희를 주님 찾아와 주시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약속해 주시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러나 저희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두려운 거 너무도 많습니다. 아버지 의심도 너무도 많습니다. 아버지, 믿음보다는 계산이 늘 앞섭니다. 아버지, 누구보다 정말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가 없는데 누구보다 제가 말씀을 들어야 되는데 제가 정말 듣지를 못합니다. 아버지.. 제가 들리지가 않습니다. 정말 포도주 틀 속으로 정말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버지..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은 또 들킬까 봐 너무 두렵습니다. 아버지, 정말로 제가 겁이 많습니다. 매 순간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되는데... 아버지, 제가 의심이 너무도 많고, 따지는 게 너무나 많고, 계산되는 게 너무도 많은 죄인입니다. 아버지. 주님, 저의 이런 모습을 회개합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숨겨서 너무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 성도님들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주님 큰 용사로 세워주셨는데 그 자리 지키는 것이 너무도 힘듭니다, 아버지. 너무도 힘듭니다. 철병거 탄 가나안 사람들만 보이고, 낙타 떼 타고 몰려오는 그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만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주님 이런 저희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버지. 오직 우리 교회 다음 세대, 주님이 믿음의 큰 용사들로 세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큐페마다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TT에 많은 열매 있게 하시며 광주 목세를 통해서 많은 교회들이 말씀으로 깨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 목사님 늘 함께하여 주시고, 인도하시는 국내외 모든 집회와 또 세계의 그 세미나에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그래서 구속사적인 이 말씀 묵상 운동이 세계의 많은 영혼들과 가정들과 교회를 살리는 구원의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기드온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나라 지키는 그 한 사람, 주님 세워 주시옵소서. 모든 악법을 막아주시고 생명을 지키는 법들이 제정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연약한 저희를 큰 용사여라고 불러주시며 이 사명 맡기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서 우리가 신앙 고백으로 드린 저희들의 모든 헌금을 주님 기쁘게 받아주시고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도록 저희들의 건강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공부와 프로젝트와 아이디어와 인간관계와 모든 목장 위에 기름을 철철 부어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1. 겁쟁이를 부르십니다. (11-12절)
Q. 요즘 제일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Q. 내가 숨어있는 나의 포도주 틀은 어디인가요?
Q. 겁 많은 나를 주님이 부르신 자리는 어디인가요?
2. 의심쟁이를 보내십니다. (13-14절)
Q. '이것만큼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Q. 지체들의 간증을 팔짱 끼고 듣습니까, 두 손 모으고 듣습니까?
Q. 의심을 멈추고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3. 계산쟁이에게 약속하십니다. (15-16절)
Q. 계산기를 들이대며 미루거나 피하고 있는 적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Q. 내 안에 있는 미디안 같은 죄는 무엇인가요?
Q. 이번 주 그것을 어떻게 치시겠습니까?
*** 기도 제목
A.계산/의심/겁쟁이를 넉넉하게 이기셔서 반드시 구원으로 갈 수 있도록 총명과 지혜의 말씀 허락해 주시도록
B. 1.부모님과 분리하여 흘려 보내고, 겁쟁이, 의심, 계산의 마음 주님께 잘 내어 드리도록
2. 연약함 위에 여호와의 영을 덮어주시고 큐티로 하루만 살기
C.주님께서 저의 삶을 불쌍히 여겨주심을 믿고큐티하며 감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