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5진창 속에서 건져주심
예레미야38:1-13
멜번새순교회김동지 목사님
여러분 불행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을 합니까? 타락한 죄인의 현장에서는 항상 타락이 있고, 범죄가 있습니다. 하 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거룩하고 아름다워야 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어두 워졌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어두워진 삶의 현장에는 항상 고통의 문제가 있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하고, 또 서로에 대하여서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고, 서로 다투고 싸 워서 죽이는 이와 같은 일들이 창세기로부터 시작이 되어진 것입니다. 질문을 해봅니다. 남유다의 불행은 어디서부터 출발하였습니까? 너무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 지 않았고, 타락한 양심에 그 마음에-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것으로부터 남유다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아니하니 그들은 어리석게 우상을 붙잡고, 우상을 섬기게 되어지니 종교적으로 음란하게 되어지고, 도덕적으로 음란 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 자리에 바알 우상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 같은 우상을 올려놓고 그들은 가증한 일을 행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 에게 예레미야는 통곡하면서 남유다의 여러 왕들에게, 또 고관들에게 그리고 유다 남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금요일 큐티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비교적 자유롭 게 백성들 가운데 출입하면서 말씀을 전했다고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어제 본문 에 예레미야는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을 싫어하였던 고관들이 예레미 야를 때리고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제 적용하였던 그 내용은 우리는 어디에 갇혀 있는가?라고 하는 부분에 대하여서 적용해서 은혜를 나누 는 날이 되어진 것입니다. 어제 결혼식을 참가하였는데요. 결혼식에 신랑 신부도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고 그러면서 간증을 하더라고요. 저런 결혼식도 있구나. 은혜롭구나 축 복의 결혼식이라고 그렇게 제가 받아들이게 되어졌습니다.
1. 머무는 자와 항복하는 자(2절)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목숨을 건지리라
-> 오늘 말씀은 내용 가운데 머무는 자와 항복하는 자에 대하여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이 말씀 가운데서 왜 하나님께서는 이 성(예루살렘 성입니다)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저와여러분들이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면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만약에 저와 여러분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다고 한다면 '이 예루살렘에서 떠나야 한다. 그리고 갈대아 사람들에게 항복해야 된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서울과 경기도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에 게 '여기를 떠나야 된다'고 한다면은 '아멘 할렐루야~ 제가 떠나겠습니다.' 쉽게 그렇게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제가 살고 있는 호주 멜번에서 떠나라고 한다면 '아멘 할렐루야 제가 가겠나이다.' 그 결 단 내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여러분 그런데 오늘 말씀 가운데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다' 그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는 거예요. 제가 살고 있는 호주나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한국이나 칼의 전쟁은 없다고 하는 겁니다. 아주 심각한 기근도 없습니다. 그리고 전염병-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 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살 만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좀 더 말씀을 묵상해 보니 눈에 보이는 현상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여러 가지 상황이 일어나 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떤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금 사단 은 오늘 이 시대 속에 저와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어떻 게 우리를 도전하고 있는가?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에 대 해서 생각해 보면 아주 영적 전쟁의 이 칼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 다고 하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어떤 기근으로 헐떡이고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하여서 또 생각을 해보니 말씀이 없는 기근이 아닌가요? 성령의 은혜가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는 기근이 아니 겠습니까? 그래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 메말라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공허함을 느끼게 되고, 아주 갈등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수많은 사 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어떤 전염병으로 시달리고 있습니까? 현대 사회는 세계적으로 전통적인 기독교를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려고 합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역차별하고 있습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상의 흐름이 지금 우리 곁에 쓰나미처 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전염병이 확산이 되듯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성 문제에 관계되는 부분이나 동성애에 관계되는 부분, 아니면은 종교 다원화 현상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가운데 신앙생활하기란 결 코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야 될 줄로 압니다.
또다시 이 부분에 대하여서 영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삶의 환경에 대하여서 생각 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밀려오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 만약에 여기를 떠나라고 했는데 떠나지 않으면 어떤 칼, 기근, 전염병 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위협받고 있는 분들이 정말 많이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재정에 대한 기근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가 족이 함께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도 부족함이 많은데 가정이 미움과 아픔으로 분 열이 되어져 있고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너무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래 서 생활 속에서 사랑의 기근은 없습니까? 마약과 같은 것이 전염되고 있지는 않 습니까? 음란으로 전염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에 말씀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가야 되 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아니 왜 예루살렘 성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반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강조하실까? 앞서 제 가 질문을 드렸다시피 만약에 서울과 경기도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 신다면 나는 어떻게 적용을 하겠습니까? 만약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자리에서 떠 나야 된다고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어떻게할 것인가? 그러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여기에서 이 어렵고 힘든 위 기적 상황을 이렇게 느끼면서 이집트를 의지할 것인가 vs. 바벨론 제국을 의지할 것인가 그들은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서 제가 묵상하면서 내가 있는 곳은 어떤 곳인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호주 멜번은 이미 동성애에 관계되는 부분이 투표를 통해 통과된 도시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를 하는 도시에 남아서 내가 떠나가야 될 것인 가? 적지 않은 고민이 있게 되어지는 거예요.교인 가운데서 대학 교수가 있습니다. 이분이 강의하시면서 여러가지 캠퍼스에 일어났던 그 일에 대해서 나누어 주었는데 교수 중에 자기가 여성인데 남성이라고 한다면은 '당신은 남성입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당신은 여성이 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다면 기분 나쁘다고 고발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교수 사회에서 퇴출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끔찍한 이와 같은 일들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간 그 자리에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모든 부분에서 이 부분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우리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호주에서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이미 어 린아이들에게 동성애에 대해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기도 할 때마다 학교를 위해서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합니다.다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왜 떠나라고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왜 바 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셨을까? 이 성에 머물면 안 된다고 왜 자꾸 강조하고 있습 니까? 예레미야는 크신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다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고 계시 는 거예요. 그러면서 '예루살렘 성에서 떠나 바벨론 제국에 항복하고, 바벨론 제 국으로 넘어가라' 이렇게 하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 바벨론 제국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분명히 이집트도 죄의 도시가 되어 지고요. 바벨론도 죄의 도시요, 우상의 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재건축하시겠다 하시는 거겠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이주해서 고난의 학교에서 철저하게 양육 받고 훈련받지 않겠니? 그래서 새롭게 되지 않겠 니?'라고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바벨론에서 진행될 고난의 학교에서 제가 70년 동안 입학을하겠습니다'라고 그렇게 고백하면서 항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구속사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이 되어버리 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제사가 사라진 곳이 되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예루살렘 청소해야 되지 않겠어요? 재건축해야 되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을 바벨론 제국으로 초대하여 고 난의 학교에서 다시 양육 받고 훈련받도록 하고 다시 돌아오도록 그렇게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 우리들교회의 장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들교회의 장점은 말 씀에 있습니다. 철저하게 말씀 중심의 설교와 큐티를 하면서 이 말씀을 읽고 묵상 하고 적용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그룹 공동체에서 탁월한 평신도 리더들 이 양육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 배드리는 곳이 부부목장이든, 여자목장이든 아니면 휘문고등학교에서 모여서 드리 는 예배든지, 판교 채플에서 드리는 예배든지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 예배는 너무 너무 살아 있는 예배요, 하나님 앞에 감동이 되는 예배라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다시 이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이 왜 바벨론에 항복해야 할까요?' 라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양육을 받아라. 훈련받아라. 인생의 목적이 행복 이 아니고 거룩이다.' (저도 전염이 됐어요.) 이렇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예루살렘에 대해서 생각할 때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성전이라고 할 때에 이 백향목으로 지어졌던 솔로몬의 성전. 그러 나 그곳은 예레미야가 선포한 것처럼 이 예루살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 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타락의 장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솔로몬의 성전을 허물어버리고 재건축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재건축 합니까? 70년 동안 여기에서 양육 훈련받고 그러고 난 다음에 돌아온 포로 후기 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짓습니다. 그 내용이 학개서에 나오는데요. 다시 돌아와서 스룹바벨 성전을 짓게 되는데 백향목이 아니고 일반 잡목으로 성전을 짓게 됩니다. 근데 이 부분에 대해서 학개 성경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학개서 2장 9절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어떤 내용일까요? 성경에 이 성전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이 성전의 나중 영광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나중 영광이 여기에 나와있어요. 그렇다면 이전 영광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이고, 이 성전- 스룹바벨의 성 전-의 나중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그것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예루살렘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재건축을 통하여 50평에서 25 평으로 바뀌면서 25평에는 예수님을 모시는 이와 같은 장소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25평에서 늘 주님을 바라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그와 같은 재건축을 지금 성 경 전체의 흐름상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초라한 자리에서 주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지만 그곳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 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예배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는 곳이다. 그런 생각을 갖 게 되어 있습니다.
[적용] 내가 떠나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내가 항복하여 선택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만약 떠날 수 없다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이곳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야 될까요?
깊이 묵상하면서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 아니라 이곳 에 내가 예배드리는 곳, 내가 앉아 있는 곳, 내가 신앙생활하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이곳이 주님이 함께하는 곳이오, 영광의 예배의 처소가 되는 이 런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 나는 어디에 던져져 있는가? (6절)
6 그들이 예레미야를 끌어다가 감옥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내렸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창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창 속에 빠졌더라
-> 두 번째 생각할 때 나는 어디에 던져져 있는가 생각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갇 혀 있을 때도 있었지만 마침내 진창뿐인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38장 6절입니다.
여기서 진창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말할 때 '엉망진창이야'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진창은 물이 많지는 않습니다. 물이 찰팍찰팍 거리며 있는데 진흙으로 돼 있는 곳을 진창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웅덩이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부부목장에 참석하고, 여자목장 탐방을 하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공동체 식 구 중에 마치 구덩이에 던져진 상황 속에 눈물로 고백하는 것을 저는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그 어려움과 아픔 가운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마치 웅덩이에 빠져버린 듯한 이와 같은 상황을 표현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만남으로 웅덩이에 빠져서 울고 있는 분, 힘겨운 하루살이가 너무 힘들어 서 몸부림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재정적 위기로 인하여 기가 막힌 엉덩이에 던져 져 있지는 않습니까? 음란의 문제, 마약의 문제, 자녀 양육의 갈등에 갇혀 있거나 어떤 상태에 빠져나오지 못한 진창 속에 빠지지는 않았습니까?여러분, 요셉도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웅덩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고백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작 은 어려움과 아픔 속에 우리의 마음이 요동을 칩니다. 내 힘으로 내 지혜로 감당 하기가 어려울 때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 니다. 그렇지만 크신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 수 없지만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고난의 학교를 통과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생각나는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 흑암 속에 헤치사' 제가 부를 테니 여러분 따라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내가 현재 빠져 있는 웅덩이는 어떤 곳입니까?웅덩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 잡고 날 인도하소서' 찬양하며 기도하며 웅덩이에서 매일매일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3. 건져내심 (9-10,13절)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 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에서 굶어 죽으리이다 하니
->세 번째 생각해야 될 것은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건져 내시는 분입니다.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에티오피아 사람인 에벳멜렉이 왕에게 요청합니다.
9절에이 말씀을 합니다. 그랬더니 왕이 에벳멜렉에게 명령합니다.
10 ....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 말씀을 듣지 않았던 이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건져내라.' 그렇게 얘기를 합 니다. 그러면서 이 시드기야는 계속해서 예레미야에게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있 느냐?' 이렇게 질문하고 있지 않습니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13절에 보니까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1) 말씀에 보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시는 분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가 막힌 웅덩이과 수렁에 빠졌을 때 예 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서 예수님의 나라로 옮 겨주시는 그와 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흑암의 권세에 사슬을 끊 어버리고 예수님의 나라로 이렇게 옮겨줘서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 이며~' 이렇게 찬양할 때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질문해 봅니다.여러분들이 경험한 밧줄은 어떤 것이었습니까?던져졌지만 건짐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묵상하면서 모세가 생각났습니다. 모세는 던져진 인생이었으나 건짐을 받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나일강에 던져졌습니다.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버렸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하신 가운데 이집트 바로의 공주가 그를 건져주게 된 것입니다. 모세의 인생 속에는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내던져진 존재다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 다. 우리 인간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어떤 시간, 어떤 공간, 어떤 사건에 던져졌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도 모르게, 여러분들도 모르게 어떤 시간 속에 어떤 장소 속에 내던져져 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 픔 속에 우리는 허우적거리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 받은 분도 있고요. 학창 시절에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한 분도 있습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늙어서 노후 보장이 되지 않아서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그런 가운데서 신앙생활하면서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면 어떻게 하나 두려울 때도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진 않았나?하는 영적 함몰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지치고 힘들어할 때 속히 하나님께서 건져주셔야 되는데 그냥 내버려두셨다고 생각될 때에 답을 찾아가기 힘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이런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지 않습니까? 모세는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명을 받았을 때가 언제였느냐? 왕자로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초라한 목동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모세는 정치학, 전술학 이런 것들 다 배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린 지 오래되어졌습니다. 과거에는 장군이었으나 지금은 지팡이를 잡은 초라한 80대 노인이 된 것입니다. 젊음이 아닌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 하나님께서 불러주셨다는 겁니다. 모세의 인생을 돌아볼 때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질문합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입니까?' 출애굽기 3장의 내용입니다. 우리도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입니까? 나 부족합니다.저 말 잘하지 못해요. 나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는 상처가 많습니다. 문제가 많아요. 하나님, 나는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부족한 데 왜 제가 그 일을 해야 되겠습니까?' 이 질문을 하나님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는 한 말씀도 안 하시고 딱 요 말씀만 딱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 말씀을 딱 해주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떠하든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든지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어지는 거예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죄송하지만 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봐야 될 줄로 압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어머니가 힘들 때 저한테 얘기를 해주는데 저를 잉태하고 난 다음에 지워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산부인과로 가셨 대요. 혹시 여자 아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낙태하지 않고 돌아왔다고.. 그렇 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낙태하셨더라면 저는 없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낙태하려고 하시는 순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셨다고 하는 것을 믿습니다. 너무 너무 아들 낳고 분하셨는지 매일 '설거지해라! 청소해라!' 어린 시절 제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늘 싸우시고 폭행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의 가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이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내가 너를 두고 떠나갔는데 너 때문에 돌아왔다'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작은 어머니께서도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니가 내 젖도 먹으면서 자랐다'고 얘기를 하면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저를 젖 먹이면서 키워준 일시적인 그때가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저 측은한 것, 저 불쌍한 것.' 그러면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정말 저에게 잘해 주었는데 언제 제일 잘해주었냐면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쒀놓고 혹시 저 아이가놀다가 팥죽 먹으러 우리 집에 오면은 먹으라고 솥뚜껑 안에 넣어 놓기도 하고 또 부엌에다가 넣어 놓기도 하셨어요. 저는 몰랐어요. 나중에 그 얘기를 듣게 됐 어요. 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저를 측은히 여기셔서 그렇게 하셨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취를 했습니다. 포항에서 대구로 올라가 서 소위 유학 공부를 하면서 출세 한번 해보겠다고 공부하다가 대학 1학년 때 연 탄가스의 취한 날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편지를 썼는데 무려 그날은 13장이나 썼 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걸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 겠어요. 제가 살짝 어떻게 된 것 같아요. 새벽 3시까지 편지를 쓴 후에 화장실에 나가다가 쓰러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깨어나게 된 거예요. 연탄가 스가 밤중에 계속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고등부 전도사로 사역할 때 학생회 부회장이었던 한 학생이 연탄가스로 인해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참 신앙생활을 잘 했던 예쁜 아이였는데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졌습니다. 하나님, 이 학생은 먼 저 데려가시고 저는 왜 살려주셨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 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제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할 때였거든요. 그런데 자취집 아주머니들이 중보기도하는 아주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분이었는데 제가 교회를 다니기 전에도 '학생은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하면서 그분들이 많이 기도해주었어요. 저는 이렇게 되어졌어요.
호주로 들어가서 사역하다가 호주 멜번에서 개척을 했어요. 1주년 감사 예배를 드 린 날 교인들이 여러 가지로 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설립 1주년 감사 예배를 드렸 는데 그곳에 많은 분들이 저를 싫어한다고 이렇게 해서 '목사님 떠나라'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그때 이런 말을 제가 들었어요. '목사님, 목사님은 한국 스타일 입니다. 한국에 가서 목회를 하십시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호주가 거부하면 나는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간다.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들은 얘기인데 그때 그분들 가운데 한 분은 '멜번 새순교회 목사님 은 정신병에 걸렸는데 그 교회 가면 안 된다' 이런 소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을 때에 제가 떠나기 전에 서울에 강남교회에 있었는데 지금 삼일교 회 송태근 목사님이셨어요. 송태근 목사님께서 제가 호주를 가야 되나, 말아야 되 느냐 결정할 때에 목사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아픈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게 얘기를 해주었어요. 산에 가서 기도하는데 이민자들의 생활에 대해서 너무 가슴 아파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나누게 되어지니 '아픈 것이 사명이다. 아픈 곳으로 선택해라. 아픈 곳으로 가라.' 그렇게 했던 그 송태 근 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셔가지고 '김 목사, 간지 3년이 되었으니까 컴백! 돌아오 라! 20여 명의 장로님들이 100% 너 돌아오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다. 돌아오라!'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아픈 쪽으로 선 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은 깨어진 교회를 위해 다시 사역을 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20년 시간이 지나가서 21주년을 올해 보내게 된 것입니다. 개 척을 하다가 아프기도 하고요. 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민자들과 더불어서 함께 아파하면서 같이 울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기까지 계속 이렇 게 된 것입니다. 2014년도 1차 목욕탕 세미나에 참석을 했습니다. 부부목장 탐방 을 했는데 거기에 오신 분 중에 제가 참석을 했습니다. 저는 기억하십니까? 고개 를 끄덕이시네요.^^ 2014년도 부부목장에 참석했는데 그날따라 암에 걸리신 분들 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한 제 기억으로 한 네 분 정도 생각이 났어요. 하 나님 왜 저를 왜 이런 목장으로 보내주셨습니까? 겁나게 이렇게 했는데요. 2년 후인 2016년도에 제 집사람이 저에게 '피곤하니까 마사지를 하자'라고 하면서 누 우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새끼발가락부터 시작해서 자근~자근~자근~자근~자 근~자근~자근~자근~ 밟아 오다가 엉덩이 밟고 난 다음에 돌아 누우라고 하는 거 예요. 돌아서 하늘을 바라보고 그러면서 배 위에 올라타가지고요. 얼마나 얼마나 누르는지 아야! 하면서 제가 그렇게 하는데 그게 이게 마사지 법이래요. 근데 그 때 핏줄 하나가 터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소변을 봤는데 엄청나게 많은 피가 쏟아 지게 됐는데 병원에 가서 조사하는 가운데 5.5cm의 암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하 나님께서 마사지 요법을 통해서 암을 발견하게 하시고, 암을 수술하게 되어졌어 요. 살아 있잖아요. 그리고 사역을 하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무엇입니까? 건져주 심이라고 하는 겁니다.
2021년도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때, 뇌혈관 터지기 직전에 있는 혈관을 찾아냈고 그리고 머리를 열게 되어졌어요. 죽을 수 있다는 사인을 하게 되어졌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수술하러 들어갔는데 담당 의사가 몇 번 바뀌더니 나중에 보니까 저를 수술하신 분이 최고의 권위자이시더라고요. 그분께서 수술을 했어요.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서 보니까 이게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쭉 이렇게 갈라가지고요. 그렇게 해서 여기에 호치케스를 찍어놨는데 그 아픔 가운데서 하나 둘 셋 넷... 헤아렸어요. 53개의 바늘이 이렇게 꽂혀 있더라고요. 근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요 앞에만 머리가 이렇게 황비홍 머리처럼 남아 있어요. 몇 가닥도 남아 있는 거예 요. 그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걸 교회에서 나누다 보니까 한 분이 그렇 게 얘기 하더라고요. '목사님, 이거(머리)를 쫙 갈라가지고 내려놨다가 그 머리카락 딱 잡고 딱 올려가지고 그리고 난 다음에 이렇게 꿰매지 않았습니까?' 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는 거예요. 저를 아는 분들이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고요. 기도 하는 가운데서 살게 되어졌어요.
[적용]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주심에 대한 간증이 있습니까? 그때가 언제였습니까?지금 웅덩이에 빠진 나를 어떻게 건져내시고 있습니까? 그리고 건져내시겠다는 것에 대해서 믿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모 든 것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모습이 보입니까? 주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이런 질문을 해봅시다. 왜 던져주셨을까? 왜 살려주셨 을까? 저는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나는 사명자이다!' 여러분 사명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건져내십니다. 예레미야를 건져냈듯이 건져내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 어떤 갇힌 상황 속에! 어떤 웅덩이 속에서도!! 우리는 절대로 실망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서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비록 갇혀 있을 때나 혹은 기가 막힐 웅덩이에 그리고 또 진흙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버려진 인생이 아닙니다! 결코 초라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 대로 여러분들을 통하여 하실 위대한 하나님의 참여하심이 분명히 있다고 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명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소명을 붙잡아야 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위대한 일들에 대해 오히려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명자에게는 다른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은혜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능력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권세밖에 없습니다. 나의 연약함 속에 하나님의 강하심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영적인 수준을 낮추면은 스스로 망하게 되어집니다. 우리 영적인 수준을 높여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함께하겠다. 네가 기가 막힌 웅덩이에 네가 빠졌다 하더라도 내가 함께하겠다! 밧줄로 너를 끌어올리겠다! 네가 사명을 감당하는 그 자리에 내가 함께 하겠다!' 아멘.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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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켜온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훈장이 자랑 되도록 매일큐티 제목 적기
2.집과 목장에 딱 붙어 있기
3.모를 때 카톡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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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모의 자존심으로 용광로를 지났지만, 머리카락하나도 사르지 않은 것을 기억하여 부모님이 심겨둔 두려움/거짓말/위선의 문을 닫고 참 위로 받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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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타향살이와 애정 결핍가운데 건져주신 것에 감사하고 하루만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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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진창에서 이미 건져주신것을 신뢰하여 묶어두신 경계를 지키고 목장에 붙어있을 힘과 약속의 말씀 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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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몸부림치지 말고 잘 끌어냄 받고 시위대의 뜰에 머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