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8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예레미야34:1-7
손윤상목사님
우리들교회가 낳고 기른 원주의 남자 손윤상 목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고별 설교가아닙니다. (이제 사임하냐고 묻는 분들도 계셔 가지고) 원주 개척 기도 모임이 이제 시작되어서 함께 기도를 모으고자 제가 이렇게 오늘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 설교를 한다고 이렇게 묵상 본문을 보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라고 하시면서 망해도확실히 망할 것이다 이렇게 본문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겁니다. 히스기야면 좋겠는데, 시드기야인 겁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개척 기도 모임이 시작되는데 히스기야면 좋겠는데.. 시드기야입니다. 이게 개척을 말리시는 말씀인지 ... 그래도 어제까지의 본문은 번성하리라였지 않습니까? 번성하리라였는데 반드시 불타고 무너져야 하리라는 말씀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가만가만 묵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개척을 위해서 계획하고 준비하기보다 먼저 무너뜨리고,불살라야 할 것이 있구나.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지 않으면 건설하고 심을수 없기 때문에 딱 맞는 본문을 주셨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우리는 이 잘 된다라는 말에 너무나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요. 저도 번성하리라까지는 너무 좋았거든요. 잘 된다라는 말은 너무나 좋아하지만 망한다라는 말은 너무나 싫어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심판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말씀을 다루고 있는것을 보게 돼요. 망한다라는 말을 듣지 않으면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있는 것일 수 있다. 우리가 망할 때 '와 할렐루야! 붙회떨감! 하나님이 하셨어요!'라고 하는 이 구속사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인생의 목적인 거룩을 놓치고, 기복과성공으로 야망으로 돌아가기가 쉽습니다.어떤 목사님은 이제 목회자 세미나에 등록하시고 나서부터 한 번 오시고 계속 목회자 세미나에 오시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목회자 세미나에서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가 기복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오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끊임없이 계속해서 구속사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에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자신에게 절망해야 합니다.
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무너지고 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가 않습니다. 1절 말씀 보시면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벨론이 남유다 예루살렘을 칠 때에 1차, 2차 침공과는 다르게 느부갓네살 왕,모든 군대,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을 동원해서 예루살렘을 함락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제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바벨론이 정복에진심입니다. 빠르고 확실하게 정복하려고 하고 있어요. 우리도 이렇게 바벨론이쳐들어오는 것과 같이 우리의 상황과, 환경이, 사람이 내 편이 아닌 원수가 되는순간들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나 하나 망하게 하는데 진심인 것같이 이렇게 여겨질 때가 있어요. 박수 받고 막 잘 된다라고 할 때가 있는데, 추
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얘기하듯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의지할 것이 없고, 일어날 힘이 없는 때가 우리 가운데 있는 거죠. 오늘 여기 예배 가운데 그러한 분이 오셨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고 하고 있어요. 담임 목사님 화요일 큐티 노트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의말씀이 임하면 살길이 열립니다. 사방이 가로막힌 환경이라도 말씀이 깨달아지면숨을 쉴 수가 있어요!'라고 이렇게 하셨어요. 기가 막힌 환경에도 말씀이 임하는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힘들 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사람을 우리가 찾지만, 말씀을 전해주는 그 한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살길이 있는 것입니다.저희 집도 이제 바벨론 군대가 오듯이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집에 가니까 빚쟁이들이 돈 내놓으라고 이렇게 앉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환경 속에 마치 도망치듯이 울산으로 단칸방에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저희 어머니, 누나, 제가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화장실이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게 되었어요. 한 번도 그런 곳에 살아본 적이 없는데 그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던져졌을 때 친척들이 재정도, 필요한 것도이렇게 도와주곤 했지만 살길이 거기에 있지 않더라고요. 그때 이제 빛도 들어오지 않는 우리 집에 이렇게 방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전도해 주신 집사님이 계십니다, 여자 집사님이셨는데. 거기에 이제 살 길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 집사님이 여자 목사님이 되셨습니다.시드기야도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살길이 있습니다.
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3 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그 말씀이 무엇이냐면 2절부터 3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이렇게 보라고 하시면서 이제 눈을 돌이켜서 보라고 하십니다. 파멸하고 달려오는 이 바벨론-이 느부갓네살 왕, 모든 군대,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을 하나님이보내셨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파멸하는 데 진심인 것은 바벨론이 아니라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세운 왕이었어요. 여호야긴이 3개월 만에 폐위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면서 요시야의 넷째아들인 이 시드기야를 느부갓네살 왕이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시드기야가 바벨론에게 이제 과하게 바쳐야 될 조공 때문에 바벨론을 이제 배신하고 애굽과 손을잡게 되죠. 이로 인해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하고자 이렇게 침공을한 것입니다.그렇다면 이제 시드기야의 마음이 좀 어땠을까요? 시드기야의 마음에 아...내가애굽하고 손 잡지 말걸. 그냥 달라는 거 다 줄걸 하고 이런 생각을 했지 않겠습니까? 내가 왜 이렇게 선택을 해가지고 이런 어려움이 나한테 찾아왔을까? 하지않았겠어요. 그런데 이제 손 잡은 애굽은 왜 안 도와주나?라고 하면서 후회와원망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사건을 만나면 내가이때 이거 안 했더라면, 내가 왜 그 사람을 그때 만나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식의 후회와 원망을 하다가 어떻게 내가 이걸 만회해 볼까?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렇게 이제 고민을 하다가 괜찮아질 거야 이제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지나서 이제 망각해 버리고 다시 그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을 우리가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너의 결정과 선택에 후회 말고! 만회하려고 하지 말고! 막연하게 기대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보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이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라고 하시는 것이죠. 하나님 없이 나와 타인의문제로만 이렇게 보는 사람은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를 할 수가 없고 그래서 해결이 되지가 않는 것입니다. 계속 쳇바퀴 돌듯이 그 문제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이제 시선을 자신에게서, 쳐들어온 바벨론의 군대의 위협에서돌이켜 모든 일을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왜 이 일을 행하셨나? 시드기야가 생각하도록 하신 거죠.우리들교회에서 이런 사건이 온 사람들을 만나면 100% 옳으신 하나님께서 왜우리 가운데 이러한 일을 주셨는지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렇게 처방을 하잖아요.우리가 시드기야에게 처방을 한다면 어떻게 처방을 할 수 있을까요?첫째로 '야~ 택자네요!'라고 할 겁니다. '택자는 하나님이 가만히 안 두십니다.'라고 할 것 같아요. '침 삼킬 동안도 하나님이 가만히 두지를 않습니다. 택자를 놓아주지를 않습니다!'라고 할 것 같아요. 우리는 늘 '넘어가 주세요. 이번 한번만 눈 감아주세요!'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눈을 감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은 똑똑히 보고 계시다는 거예요. '택자니까-하나님이 너한테 관심이 있으니까-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라고 우리 분명히 처방을 할 것 같습니다.그러면 우리가 두 번째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늘 이렇게 목장에서 듣잖아요. 두 번째 처방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씀이 들리는 시간을 주셨네요!'이렇게 한다는 겁니다. 시드기야는 지금 자기 절망이 없이 자아가 펄펄 살아 있습니다. 자아가 살아 있으면 자아가 펄펄 살아 있으면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자기 절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사건을 주신 것이죠.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눈을 보지 않으면, 그의 입을 마주 대하지 않으면 결코 절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다라는것입니다.
생각해 보시면 하나님께서 시드기야에게 무척 많이 상황으로도, 말씀으로도 이렇게 찾아오셨습니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이 죽었어요. 자기 형제들이 죽었습니다.애굽에 의해서, 바벨론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이런 죽는 사건이 왔는데도 말씀을듣지를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바벨론이 침공했을 때 예레미야가 다섯 번이나 중요한 주제를 갖고 찾아와서 말씀을 전합니다. '항복하고 말씀을 들으라' 항복하고말씀을 들으라고 다섯 번이나 이야기를 하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예레미야를 오히려 가두어 버리죠. 말씀대로 이제 성이 무너졌어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이 무너졌는데 그때도 항복을 하지 않습니다. 45km 떨어진 평지까지 도망을 가서 결국 잡혀서 자신의 아들이 죽고, 바벨론 왕의 눈앞에서 입앞에 서는 철저한패배와 수치를 경험하고 나서야- 자기 절망을 경험하고 나서야- 말씀이 들리기때문에 이렇게 바벨론이 수고를 해주는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그만큼 질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이제 좀 생각을 해보면 '야, 시드기야는 너무 질기고, 질기다. 웬만하면 무력함을 고백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가지고 히스기야처럼 하나님 살려달라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달라고 이렇게 할것 같은데 왜 이렇게 교만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도 그와 같이 우리 자아가 펄펄 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질기고 질긴 자기 절망이 없는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아가 처리된 곳이 십자가라고하지 않습니까? 십자가가 아니면 자아가 처리될 수 없을 만큼 질기고 질긴 것이우리 자신이라는 것이에요. 시드기야와 같이 우리도 그렇게 질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왕의 눈과 입을 보는 자기 절망의 사건이 없이는 이 십자가가 보이지 않고 말씀이 들리지가 않는 것입니다.기대하는 것이 조금만이라도 있으면, 내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조금만이라도 있으면... 금세 돌아서는 것이 우리 육신이지 않습니까? 자아가 그냥 살아나요 그냥살아나서 펄펄 뜁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 듣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눈에 보는대로 이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조금만 이제 칭찬받고 인정받으면 ... 어느 순간 교만해져 가지고 하나님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정말로 필요한것은 자기 절망이라는 것이에요. 자기 절망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제가 목회자로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볼 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보면 부지고, 능력 있고, 자기 확신에 가득한 사람을 이렇게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아닌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절망을 경험한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더라고요.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 사람, 십자가밖에 없는 사람,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이 붙들어서 쓰시는 것을 보게 되는 거죠. 저도 이렇게 목회자로 이제 사역을 하는데 그런 분과 일하는 게 편하더라고요. 부자고, 능력 있고, 자기 확신 가득한 사람보다자기 절망을 경험한 사람,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하고 일하는 게 편한데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더 그러시겠습니까?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드기야처럼 바벨론 왕의 눈과 입을 대하는 사건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구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나는 절망밖에는 말할 것이 없는 자구나!라는 그런 고백을 하면서 십자가를 붙들고 가도록하는 그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이제 사역자님들의 이제 설교를 들으면 자녀들 때문에 힘든 목사님들이너무 많이 계시지 않습니까? 저도 살짝 그곳에 이제 편승하려고 했습니다. 저희이제 딸이 이제 너무 수고를 해줘가지고 거기에 이제 편승하는 듯했어요. 아, 내힘으로 이제 딸을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중학교 1학년 된 딸이 이제 학교를 가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이제 무력하게 있으니까 .... 말로도 안 되고, 때려도 안 되고, 좋은 것을 주고 달래도 안 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좀 자기 절망이있었어요.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없구나 하면서 기도하게 되고, 애통하게 되고,말씀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그런데 이제 중2가 되니까 하나님이 갑자기 제가 이제 실력이 없어서 그런지 이제 반을 너무나 잘 만난 거예요. 학교 친구들이 이제 다 친한 친구들이 다 된 겁니다. 어느 날 한 번은 저한테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아빠, 나 인싸 됐어!' 이렇게 하면서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학교 가는 게 이제 좋은 겁니다. 아침에 일찍일어나서 막 얼굴에 붓기 빼고 학교 가는데 ... 이제 한 번씩 뭐 말도 안 듣고,욕하고, 손가락 욕도 하고... 막 그런 말하는 거, 공부 잘 못하는 거, 그런데 이거는 이제 우리 사역자님들의 자녀 고난에 비하면 ... 우리 성도님들의 자녀 고난에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제가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양육 시간에 이제 담임 목사님에게 '목사님, 자녀 고난을 ... 이제 다른 목사님들설교 들으니까 저는 비교할 것이 없습니다. 명함도 못 내밀겠습니다. 수준이 안되서 딸의 수고가 멈췄습니다.' 라고 했더니 우리 담임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고난이 없어서 어떡하니 ...' 라고 하시면서 '진짜 고난이 있어야 말씀들리는 것도 다르고, 말씀 전하는 것도 다르다'라고 하면서 '고난이 없어서 어떡하니...' 라고 하시는데. 제 마음에 늘 고난만 있을 수 있습니까? 라는 생각이들면서 제 마음에 고난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없더라고요. 다른 것에 대한 열등감은 있는데.. 목사님, 고난이 없습니다라고 얘기는 하지만 제 마음 가운데 고난이 없는 것에 대한 아픔과 열등감이 없는 것을 봤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편한날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때 담임 목사님 말씀이 제 마음 가운데 들리기 시작했어요. 말씀 묵상하면서'고난이 없어서 어떡하겠니?' 하는 말씀이 '십자가 안 붙들고 어떻게 사역하겠니?' 하는 말씀으로 제 마음 가운데 다가왔습니다.개척하려면 내 마음에 맞는 사람들, 건물, 갖추어진 프로그램이 아니라 제게 절망하게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구나! 절망하게 하는 환경을 주셔야하는구나! 그래서 십자가 붙들지 않으면 내게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지도 않고, 구속사의 말씀을 붙들지도 않고, 사람들의 마음과 아픔을 체휼해 주고, 공감해 주지도 못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말과 사람들이 하는 그 모든 수고 앞에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자아가펄펄 살아서 사적으로 시간을 쓰려고 하고, 조금도 포기하고 희생하지 않으려고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인정받을까만 생각하고, 남 탓하고 사람들을 갈라치기밖에 할 수 없는 인생인데... 정말 내 인생에 필요한 것은 '주님, 늘 바벨론 왕의 눈과 입 앞에 설 수 있도록 사람과 환경을 보내주십시오. 그래서 십자가 앞에 잘 매달려 있을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적용]내 자아가 무너져 말씀이 들린 사건은 무엇입니까?지금 내게 허락하신 바벨론 왕은 누구입니까?바벨론 왕의 눈과 입 앞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까?
2.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4 그러나 유다의 시드기야 왕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5a 평안히 죽을 것이며 ...
-> 우리 4절부터 5절의 말씀 보시겠습니다.
바벨론으로 가게 되는 것이 자기 절망을 경험하는 것뿐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이제 침체와 침륜에 빠지게 될 뿐인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너가 잡혀가는 이 절망의 사건이 끝이 아니다. 그러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라고 하시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라고 하시는 거죠.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왜냐하면 심판이 아니라 평안이고 축복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칼이라는 것은 심판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칼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여호야김이 그렇게 심판을 받았죠. 그런데 이제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라고 할 때 이 평안이라는 단어는 샬롬입니다. 샬롬. 이 샬롬이라는말은 하나님의 최대의 축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평안=샬롬=하나님의 최대의 축복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러나라고 하면서 심판받지 않고 평안히 죽을 것이다라는 것은 최대의 축복을 받고 죽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우리가 생각해 보면 시드기야가 외적으로 보면 최대의 축복을 받지 않은 것 같이보입니다. 자녀가 자기 눈앞에서 죽었습니다. 자녀들이 다 죽었어요. 그리고 눈이뽑히고, 왕복이 찢기고, 죄수의 복장을 하고, 손에 결박을 당한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옥에 죽는 날까지 갇혀 있었더라고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왜최대의 축복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을 해보면, 그 눈이 뽑히고, 묶이고, 갇힌그 환경의 자리가 말씀이 응한 자리이고, 하나님의 크심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고, 자기의 완악함의 죗값을 회개하면서 치를 수 있는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최대의 축복을 받은 것이고, 평안히 살고, 평안히 죽는 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시드기야를 만나가지고 인터뷰를 한다면 '어떤 날이 인생 최고의 봄날이었습니까?'라고 물으면 시드기야가 '제 인생의 봄날은 왕궁에 있을 때 봄날이었습니다'라고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왕궁에서는 지옥을 살았습니다. 늘 쫓기듯이.. 두려워하면서, 걱정하면서, 염려하면서, 사로잡힌 환경 가운데 어쩔 줄몰라 정말 발만 동동 구르다가 이렇게 잠이 드는 인생이었습니다. 잠도 잘 자지못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제 인생의 봄날은 하나님의 말씀이 응한감옥의 자리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도 내게 해주셨던 그 말씀! 그 말씀 붙들고 자기 죄를 보고 회개하는 그곳이 가장 봄날이고, 평안이었다'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 인생의 봄날이 언제 오셨어요? 고난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 말씀이 깨달아지고, 말씀이 응한 그 자리에서 회개가 일어나기 시작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맛보았지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걱정하고, 근심하고, '어떻게 살래?' 하는데 정말 살아내게 하는 평안이 내게 있는 것을 다 경험하셨지 않습니까?제가 평원 사역을 하면 장례를 많이 다닙니다. 장례를 갈수록 느끼는 것이 인생이 다 별 인생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요. 공평하게 사람들이 다 죽는 것입니다. 땅에서 모두가 사람들이 다 허리가 휘어지도록 수고를 하면서 사는데 남는 것은 신앙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인생 최대의 복이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땅에서 걱정 없이 살면서 너무나 무료해 가지고 소파에 앉아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시간을 보내고,사고 싶은 거 가격표도 안 보고 사면서, 냉장고에 음식을 즐비하게 쌓아두면서,그런데도 이제 좋은 것만 먹어가지고 살도 안 찝니다. 이제 식스팩에 용모도 잘생겼으면 하면서 용모도 가꾸는데... 그런데 그 인생이 좋아 보이지만 영생 앞에 짧은 시간이라는 거예요. 다 밑동 잘린 나무라는 겁니다. 밑동 잘린 나무에 거름 주고 물 주고 하는 행위밖에는 안 된다라는 겁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칼에 맞아 죽는 것입니다. 칼에 맞아 죽는 인생과 같은 것이에요. 여기에 진짜 평안이 있다고 오늘 말씀을 보면 4절, 5절에 세 번이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고 하고 계십니다.
5 ...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조상들 곧 선왕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네게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5절 말씀 보시면 이렇게 합니다.
여러분, 분향하는 것은 왕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왕으로서 정식 절차를 밟아서 장사를 지냈다는 뜻이기도 하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시드기야가 이제 말년에 존경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죽었고, 존경을 받았다는 겁니다. 특별히 그를 위해서 애통했다는 것은 함께 포로로 잡혀 온 이들이 시드기야의 말씀, 시드기야가 말씀 앞에 회개하는 그것을 보면서 죄의 값을 치르는 것을보면서 백성들도 동일하게 죄를 보면서 애통하는 일이 있었다는 겁니다.시드기야가 이제 존경받고 백성들이 회개하는 놀라운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드기야가 왕복을 벗고 죄수의 복장을 했을 때 회개가 일어나는 그때에 정말 시드기야가 존경받았고, 인정을 받고, 백성들을 온전하게 이끌었다는 것을 보게 돼요.경외함이 그 심령에 철필로 새겨지고 다스릴 때 그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됐다라는 것입니다.제가 우리들교회에서 배운 것은 별 인생이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자기 삶에주어진 자리에서 회개하고 말씀 붙들고 가는 것이 자신에게도 평안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변화시키는 능력이라는 것을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평안을 누리는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이냐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편안해지는 것. 편안한 사람이사람을 변화시키더라고요, 평안을 맛보기 때문에.제가 오늘 이렇게 주일 설교를 하지만 우리들교회에 온 지 4개월 됐을 때 첫 설교를-주일 설교를- 했었어요. 참 선대함을 받은 거죠. 4개월 만에 이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제가 무디에서 문디가 된 사건을 4개월 때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장 예배 드리러 갈 때 (제가 그때 이제 목원이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목장들어가면 이제 목자님부터 해서 목원 분들이 다 이렇게 박수쳐줄 줄 알았어요.'목사님, 말씀 잘 들었어요~~'라고 저한테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는데 칭찬이 아니라 '목사님, 회개가 없다'라고 하면서 핀잔을 들었어요. 그러면서 나눔을 이제시작하는데 제가 나눔을 하는데 제가 제 자신을 봐도 재미도 없고, 어색하고, 목장에서 목장 나눔하는 게 편하지가 않는 겁니다. 내가 목사인데... 하는 마음이있는 거죠. 그냥 똑같이 목원의 복장을 하고 앉아 있어야 되는데. 내가 목사인데... 하면서 뭔가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마음이 들고, 내가 먼저 더 잘
깨달아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니까 편안하지가 못한 것입니다. One of them이 되어야 하는데... 잘 하려고만 하는 욕심만 앞서다 보니까 늘 불편하고어색한 거예요. 그래서 한 분이 이제 너무 답답해가지고 '목사님! 자기 죄를 못보는데 어떻게 사람을 살리겠습니까!' 하시면서 '목사님! 음란죄 없습니까?!'라고저를 팍 찔렀어요. '목사님! 음란죄 없습니까?!' 탁 찌르는데 제가 그때 뭐라고대답했냐면 '예, 저희 아내가 제 첫 여자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우리들교회에 와가지고 말씀 듣고 주어진 환경에서 목사라고 하는 옷을 벗고 죄인들의 공동체에서 함께 죄수의 복을 입고,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나누는 것. 물론 이렇게 분별해서 나누어야 하지만 제가 별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니까 요즘 이제 제법 편해졌다라는 말을듣고 있습니다.그런데 참 놀랍게도 예전에 '목사님! 음란죄 없습니까?!' 했던 분을 제가 평원으로 탐방 가서 만났어요. 예전에는 목장에서 목원으로 만났는데. 그분에게 이제 처음 나왔던 말이 무엇이냐면 '목자님, 죄송해요. 그때 제가 음란죄 없냐고 했을 때저희 아내가 첫 여자라고 얘기를 했지만 사실 저는 야동에 음란함이 가득한 목사라고. 음란함이 마음속에 가득하고 드글드글해서 이 음란한 사람이 맞다고...' 이렇게 말을 하면서 '제가 첫 여자라고 얘기했던 그것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 죄송하다고 ... 우리들교회에서 양육받으니까 정말 이 수치스러운 것들이 나누어지는것이 너무나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아내가 마지막 여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나누고 갈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가 '왜 이것밖에 안 됩니까?! 목사님!'이라고 얘기하면 '왜 그러셨어요?' 이렇게 하면 마음이 좀 상하기도 하겠지만 그게 아니고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죄송하다고.. 맞다고.. 그런데 모르시는 게 하나 있는데 저는 더 실망할 것밖에없는 사람이라고 기도해 달라고' 하는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에서 개척을 하면 이런 고민이 생기는 거예요. 공고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겠지?라는 생각이 좀 더 품위를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왕복을 찢었지만 계속해서 왕복을 찾아 입으려고 하는.. 베 옷을입지 못하고 죄인들의 공동체에 함께 거하려고 하지 않는 교만함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자기 죄를 보며 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배웠기에 포로들과 함께 자기 죄 보며 나누며 사람 살리는 인생으로 허락하신 환경에 잘 매여 있어서 안목의 정욕이 뽑히고, 그래서 사람 살리는 인생으로 날마다 큐티하고 주신 환경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회개하며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적용]내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최대의 축복임이 믿어지시나요?평안을 누리는 편한 사람입니까? 불편한 사람입니까?내 죄와 수치를 목장에서 편안하게 나누고 계십니까?
3. 멸망 중에도 구원받을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6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니라7 그 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으니 곧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6절의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시드기야 왕에게 말을 했습니다. 주신 말씀을 모두 전할 때 그는 시드기야 왕에게 담대하게 선포했다. 가르쳤다라고 하지 않고 아뢰었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뢰다는 것의 원어의 의미는 안내하다, 신부에게 구혼하듯 애절하게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우리가 생각해 보면 예레미야가 모든 말씀을 전하는 것도 참 많이 힘들 것입니다.완악하고, 말씀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고, 조롱하고, 희롱하고, 오히려 예레미야를옥에 가두게 하는 그런 고난을 주는 사람 앞에서 모든 말씀을 전하는 것도 이제힘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 중에도 아뢰기는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이됩니다. 시드기야 왕을 구원하도록 어떠한 완악함에도 어떤 모멸감과 수치에도 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확신에 찼지만 그렇다고 무례하지 않게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칼날 위에 물방울과 같이 '호~호~' 불어가면서 모든말씀을 예레미야가 전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7 그 때에 바벨론의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읍들을 쳤으니 곧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그가 그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7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바벨론 군대가 이제 모든 성읍을 치고 곧 라기스와 아세가를 치고 있습니다. 이제남은 성읍이 예루살렘과 두 성읍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문헌을 보면 패배를 하면 그 성에서 봉화를 올리는 것 같이 연기를 올렸다고 합니다. 점령당했다라는 표시를 보여서 알렸다고 합니다. 이제 두 성읍도 연기가 올라오면서 패배했습니다. 점령당했습니다 하는 것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모든군대들이 에워쌀 것이라고... 말씀대로 이제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사람들은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그중에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남은 자들이 있다라는 것이죠. 하나님은 심판하시지만 그래도 남은자를 두셨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아야할 영혼이 있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그렇게 말씀을 전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심판과 구원이 공존하기 때문에 모든 말씀을 아뢰며 전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기대가 없지만 하나님이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계획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가 더 애통하면서 창자가 들끓는 심정으로 모든 말씀을 전하지만 그 한 영혼을 찾기 위해서 안내하듯이, 구애하듯이 말씀을 전하면서 섬긴 것입니다.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그 입에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가면서 40년 정도 사역을 했습니다. 사역 초기에는 '어린아이라 저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제 '말씀을 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떼를 쓰기도 했지만 이제 나라가 멸망하면 예레미야의 사역도 이제 끝이 나게 됩니다. 그도 예루살렘과 함께 죽음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면서 라기스와 아세가에 연기가 올라오고 성읍들이 빼앗긴 것을 보면서 자신의 마지막도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성공하고 번성하고 많은 것을 누리려고 했다면 그 모든 말씀으로 아뢰는것으로 그렇게 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 '내 모든 말씀 다 전했다'라고 하면 됐지... 하면서 자기의 받은 말씀을 마음껏 이렇게 전하다가 이렇게 어느순간 되면 이제 등을 돌리고 돌아섰을 거예요. 그런데 사역이 끝나가는 환경과 상황 가운데서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심판 중에 찾으시는 한 영혼, 건져야 할 영혼이있기 때문에 과격하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말을 하지 않고 친절하게 안내하면서 설명하면서 애통해하면서 창자가 들끓는 심정을 갖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야 하기 때문에 친절함을 놓지 않고 전한 것입니다.원주로 개척한다라는 말씀을 제가 들었을 때 처음에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제가막 기대하고 계획한 일이 아니고 그냥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준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그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새벽 2시가 되니까 눈이떠지더라고요. 눈이 떠져서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사실은 이제 기대가 되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이루실까! 하면서 이렇게 새벽 2시가 되면서 이제 눈이 떠지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가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못하고 이제 새벽에 일어납니다. 지금 모임이 시작도 되지도 않았고,개척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부담이 너무나 됩니다. 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부담이 너무 됩니다. 원주에서, 제천에서, 홍천에서 각 강원도 지역에서 우리들교회로 오시는 분들, 라기스와 아세가가 무너지듯 여러 무너지는 사건들, 무너진 가정, 기업, 자녀들로 인해서 빚지고 환난 당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 조심조심 모든 말씀을 나누고, 때로는 창자가 끊어지듯이 애통해하고, 구애하듯, 성실히 안내하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말씀을 나누시는 담임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영혼이 살아난 분들과 함께 목회한다고 생각하니까 저는 너무 한없이 예레미야가 처음 부름받을 때 고백처럼 '아이라 말할 수 없나이다'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제가 어떻게 영혼을 섬길 수 있을까? 제가어떻게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섬기셨던 것처럼 삶으로보여주신 담임 목사님처럼 내가 쓰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손톱의 때와 같은 저인데, 목사의 자격이 없는 자인데... 이제는 두려운 마음이 들게 됩니다. 때로는 무섭고 한숨도 나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우리들교회를 생각하면 정말무력감을 느끼고 엎드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돼요. 그런데 너무나 감사한 것은 그런 선지자의 제자로 내 인생의 사표로 실물을 보면서 제가 양육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말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지만 그 목사님을 생각하면 나도모든 말씀을 전할 때 무례하고 무턱대고 함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모든말씀을 가감없이 증거하면서 무너져가는 심판 속에 찾아야 할 영혼을 생각하고,애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도 주어진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서 영혼 사랑해서 칼날 위에 물방울처럼 구애하듯 설득하며 말씀 증거하는 제가되기를 정말 기도하게 됩니다.
[적용]우리들교회를 통해 받았던 은혜들을 나누어 봅시다.심판 속에서 건져내야 할-말씀을 전해야 할-영혼이 있나요?구애하듯 가족들과 믿지 않는 영혼에게 전도하십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구속사의 말씀으로 무너진 나의 인생 가운데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우리 가운데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탓하지 않고 내가 인정받고, 칭찬받고,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지 않고,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회개하며 평안으로 살아가고, 진실로 사람 살리는 복을 우리 가운데 주셨습니다. 우리에게허락하신 구속사의 말씀을 끝까지 증거해서 주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을 구원하는 복된 증인 공동체, 말씀 공동체로 계속 세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특별히 원주에도 이런 구속사의 말씀을 전하는 도피성 교회가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내 죄 보며 말씀에 매여가는 공동체가 되어서 무너진 수많은 영혼에게 말씀으로 그 인생을 해석해 주고, 사명 감당하게 하는 사람들로 세우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그리고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한 무너진 환경과 상황 속에서 많은 목사님들이 말씀으로 해석받고 다시 사명의 자리에서 끝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은혜가 있기를바랍니다. 우리 그 마음으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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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고 싶은 예수님 흔적이 구원위한 훈장이라는 것을 알고 칭찬과 위로 하며 매일 큐티 제목 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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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오도록
이력서 정리하고 출퇴근하는 시간도 예배로 계수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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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왕 때문에 피해 받고 지속적으로 피해 받을 것 같아서 사실대로 얘기 할 수 없는 구원의 간증들 가감 없이 자세하게 나누고, 해석 할 수 있도록 큐티/목보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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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을 바꾸고 상장을 시켰는데 보상이 없는 것에 퇴사하려 하는데 퇴사도 못할 정도로 일을 했다는 것에 불쌍히 여김 받고 정리가 속히 되고 돕는 손길 보내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