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4살아 계신 하나님
열왕기하19:1-7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셔도, 또 반드시 건지실지라 약속을 받았어도, 억울한 일 너무많죠?! 아니에요? 어떤 심리학자들은 억울함을 정의가 무너졌다고 느낄 때 생기는분노로 설명을 해요. 그러니까 이제 '나는 옳다'는 거잖아요. 이제 이런 것이 도덕적판단에서 비롯되는 분노가 억울함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억울함은 단순한 감정이아니라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건데요. 바로 여기가 문제예요. 억울함이 커질수록 회개가 안 돼요. 이 도덕적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는 나보다 옳도다 하는거는 더 억울한 일 아니겠어요? 참 말씀이 안 들려요. 다들 간증 그렇게 하잖아요.10년, 20..년 '10년 만에 이번에 영접했다.' '안 들렸다.' '졸았다.' '맨날 목사님 욕했다.' 근데 오늘 히스기야는 굉장히 억울한 상황에 있습니다. 근데 거기에 함몰되지않고요. 오히려 그 문제를 가지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살아 계신하나님만이 모든 문제의 답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장 억울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어요.
1. 회개하며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1절입니다.
지난주에 엘리야김과 셉나, 요아, 이 세 신하의 찢어진 옷과 함께 전해진 이 랍사게의 말은 히스기야의 가슴을 칼처럼 찔렀어요. 듣자마자 히스기야는 그 자리에서자신의 옷을 찢습니다. 히스기야의 신하 세 사람이 랍사게에게 KO 당한 게 슬프고 절망스러웠잖아요. 근데 히스기야 또한 물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이제 깊은 무력감을 느꼈을 거예요. 하지만 히스기야가 특히 더 많이 느꼈을 감정이 무엇일까요? 히스기야는 유다 역사상 가장 과감한 종교 개혁을 단행했는데요.국내적으로 이 산당 철폐, 누구도 못하는 산당 철폐 등 기득권층의 엄청난 반발에맞서야 했고, 국제적으로는 앗수르로부터 독립 선언을 해야 했어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개혁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셨기에 개혁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어떤 결과를 만났습니까? 그 앗수르에 의해 망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하나님만 의지하고 의뢰했는데 결국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되어 아무것도 할 수없게 되었고요. 게다가 이런 현실에 대해서 비웃고 조롱하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이제 바꿔 말하면 교회 열심히 다니고 큐티도 잘했는데 큰 문제가 생겼어요.갑자기 큰 병이 생기고, 배우자는 바람을 피우고, 자녀가 속을 썩이고, 직장을 잃고, 사업이 망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교회 다니더니 꼴 좋구나' 세상 사람들이 놀리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전쟁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쳐들어왔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이 홀리(holy) 워(War), 성전, 영적 전쟁임을 선포하고, 이 영적 전쟁에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기 위해 이제 기도해야 될것 같은데요. 그래서 이 어떤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적용하는 것이 예수믿는 사람의 방법인데요. 부부간도 마찬가지고 나라의 전쟁도 다 마찬가지인데요.다 내가 응징하려고 해요. 분하고, 억울하고,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내가전쟁을 하겠다는 표시예요. 너무너무 억울한 사건 앞에서 내가 이런 일 당할 사람이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면, 겉으로는 왕복을 찢어도 속으로는 새 왕복을 입겠다고 난리 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히스기야는 이때 관점을 바꿔서 옷을 찢었지만은 새 왕복을 찾기보다는 굵은 베를 두르고 입었어요. 그리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갔어요. 이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왕이 아니라 대신들과 똑같이 큰 슬픔과 절망과 그 억울함 속에서, 그 각종 멸시에도 왕으로서 먼저 회개했다는 뜻이에요. 응답받는 기도는 회개하는 기도예요. 그거 이상도 이하도 없어요. 오늘 너
무 억울한 사건 가운데서도 이렇게 여호와의 전, 이 자리에 나와 앉아 계신 거,주일성수하고, 공예배 자리에 나오고, 목장에 들어가고, 여러 봉사 자리에 참여하고, TT에 함께하는 것이 회개하며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순종이에요. 남편이 바람피웠으면 돌아오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은 TT를 가면 돼요. 돌아오라고.굵은 베를 둘러야지 새 왕복을 입겠다고, 내가 이혼했으니까 새 남편을 만나야되겠다.고 그거보다 먼저 이렇게 회개를 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줄 믿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통해서 내가 이미 죽어서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인생
임을 인정하면, 오히려 그것이 다시 올라올 수 있는 바닥이 되는 줄 믿습니다.
[적용] 너무 억울해서 옷을 찢고 싶은 사건이 있어요? 억울하게 만드는 말이 말만 들립니까?그래서 후회하는 일, 기대하는 일은 무엇이에요?여기서 굵은 베를 두르며 회개합니까? 화려한 새 왕복을 찾아서 방황합니까?그래서 이번 주 여호와의 전에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히스기야가요. 꼭 그 남북 전쟁의 링컨 같아요. 노예 해방을 하고자 하지만 남쪽에는 여기 예수 믿는 나라였잖아요. 남쪽에는 링컨의 정적인 더글라스라는 사람이있어서 반대는 안 하는데, 교묘하게 '아무리 노예 해방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상황에 맞춰서 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링컨이 '우리가 이 나라를건국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제일 큰 죄가 노예 제도다!'라고 했어요. 근데 이게재산권하고 연결이 되니까, 누구도 터치 못 하고 다 들고 일어났어요. 그리고 4년여의 노예 해방이 전쟁이 딱 끝나고, 5일 후 성금요일에 또 '흑인에게 국민권, 참
정권을 부여해야 된다.' 이 링컨의 연설을 듣고, 너무 분했던 남부 출신 배우 부스가 깜둥이가 시민이라고? 이 충동적인 분노로 링컨을 납치하려다가 그냥 암살을 했다는 거예요. 총으로 쐈다는 거예요. 너무 억울한 거예요. 어떻게 이 사람이그렇게 이제 비속어를 썼어요. '어떻게 깜둥이에게 시민권을 줄 수가 있냐?'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그 관행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링컨을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준비시키시고, 어려서부터 어려운 이에게 관심을 갖고 아픈 마음을 갖게 하셨어요. 그랬는데 모든 사람이 노예 제도를 반대한 링컨을 반대하고, 심지어는 자
기 당인 공화당 사람들까지 반대했어요. 그리고 4년여 동안이나 지지부진하게 같은 민족끼리 싸워서, 40만 명에 가깝게 죽어가니까 이게 얼마나 심각합니까? 끝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들었겠어요? '남도 아닌 우리 민족끼리 어떻게 자국의이익에 이렇게 위배되면서까지 전쟁을 오래 할 수 있느냐? 우리 제 살을 깎아먹는 거 아니냐?' 라고 할 때 링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로써 책임을 물으신다면 260년 동안 노예로 인해 번 돈은 다 없어져도 된다!'고 대답했어요. 누가 이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겠어요? 링컨이 히스기야처럼 회개한 거예요. '이거는 무조건 우리가 행한 죄다!!' 얘기한 거예요. '이거 갚아야 한다!'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억압받는 노예 해방을 위해서 전쟁을 4년이나 한 것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거 노예 해방 4년이나 피로 갚아야 한다. 하나님이 끝내기 전까지는 끝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어떤 거는 반대해도 내가 밀고 나가야하는 게 있고, 어떤 건 찬성해도 안 해야 되는 게 있는 거예요. 근데 한 사람의결정이 이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그 결정으로 미국이 살고 전 세계가 살았잖아요. 그렇죠? 우리도 각자 집안에 우리들교회에, 우리나라에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자기 죄를 볼 수 있는 그 한 사람을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 이 남아 있는 자들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2절이에요.
그 히스기야의 태도가 그 지도자들에게 옮겨갔어요. 이들이 자진해서 굵은 베를입은 게 아니고! 입혔단 말이죠! 저도 여러분에게 이 굵은 베를 입히고 싶어요.저의 회개가 조금이라도 상달된다면 여러분들에게 전염되기를 바래요. 제가 회개를 해도 여러분과 전혀 상관없는 회개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냈어요. 훌륭한 왕이 훌륭한 선지자를 알아봤어요. 북왕국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에 호세아와 아모스가 다 있었지만 그들이 외쳐도 왕들은 선지자들을 배척해서 멸망을 당했죠. 그런데 남왕국의 히스기야
는 지금 이사야를 찾았어요. 남왕국 역사를 볼 때에 이렇게 예의를 갖춰서 자기대신들을 이사야에게 보낸 것은 어떤 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겸손이에요. 여호사밧 왕이 불신 결혼을 시켰어도 성군으로 꼽히는 거는요. 왜냐하면요. 아합과 같이나간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와서 물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히스기야는 '불러오는 것도 감당 못 합니다.'라고 해서 찾아간 거예요. 찾아간거! 자기 믿음의 분량대로 선지자를 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히스기야의 책임자대표들이 이사야에게 가는데요.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3절이에요.
히스기야가 먼저 이사야에게 전한 말은 이날이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는거예요.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는 거예요. 이 고난의 시기에 예루살렘은 포위당하고, 애굽의 원조도 없고, 히스기야에게는 공격력도 없는데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셨다'고 인정을 했어요. 이 모든 것에서 자기와 유다의 죄를 보았어요. 사실 앗수르가 쳐들어온 거는 유다의 죄가 맞아요. 너무 오래된 우상숭배를 참다 참다 못해앗수르를 보내신 거예요. 항상 근원을 생각해 보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에요. 어제 오늘 큐티 예레미야 37장 말씀도 우리가 소를 키워서 밭을 갈아야 하는데 말
을 안 들어먹으니까 코를 뚫고 줄과 멍에를 메게 하는 거잖아요. 그래야 사명을감당하는데요. 그 감당하지 않으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온다고 했잖아요. 여러분 멀쩡한 소가 주인이 '밭 매자~' 하면은 따라갈 소가 있어요? '밭 매자!' 그러고 앞으로 가면 소가 뒤에서 쫄랑쫄랑 따라옵니까? 통통할수록 안 따라와요. 잘났을수록 안 따라와요. 성도는 이 줄이 안 매여 있으면 칼이 오는 거예요. 오늘이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고! 억울해 할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꾸짖으시고 부끄럽게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잘 당하겠다는 고백을 한 거예요. 줄에 안매여 있으면 칼이 오는 거예요. '줄이냐 vs. 칼이냐?' 택하시기 바래요. 줄이 낫잖아요? 칼은 죽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임산해도 해산할 힘이 없다는 거예요. 잘 믿어보고자 하지만 지금 아무런 힘이 없고, 산모와 아이가 다 위태하게됐다는 거예요. '주님 제가 힘이 없어요.' 이렇게 회개하셔야 돼요. 회개해야 되는데 저놈의 앗수르가 왜 쳐들어오나 내가 잘 믿어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우리엄마는 생활비를 끊나!! 이러면 안 돼요. 굳건하게 서야 하는데, 내가 가족으로서너무나 독립을 못하고 예수 믿으면서도 안 믿는 엄마의 돈을 날마다 의지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나의 세상 세력을 끊고자 하는 계획이 있는데 끊지 못하기 때문에결국 이런 일이 왔다는 거예요. 내가 오늘 수치를 당하고 나에게 책임을 물으시는데 '내가 그거 알아요.... 주님, 어쩝니까?' 히스기야는 내 죄가 내 고난보다 크다는 걸 깨달으니까 '나는 이 백성을 통치할 책임이 있는데 아무 힘이 없어요.' 이렇게 고백한 것인데요. 그런데 이렇게 고백을 할 수도 있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지만 속으로는 어깨 쫙 펴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 주님이하셨습니다!라고 입으로는 고백을 했지만은 진심의 고백은 아닐 수가 있어요. 육이 다 무너지는 고난을 통과하고서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자기 실체를 본 사람이 한 고백을 해야 되는 거예요. 내 죄가 고난보다 큰 거예요. 이 두 고백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4절이에요.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랍사게가 누구를 비방했다고 하죠? 살아 계신 하나님! 역사하신 하나님을 이렇게비방했다고 해요. 살아계 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요. 사실 상투적으로 들릴 만큼익숙한 표현이지만요. 생각보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표현이 아니에요. 사무엘상부터 역대하까지 역사서에 단 4번만 나오는데 두 번이 다윗이 골리앗을 살아 계신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사무엘상 17장에. 나머지 히스기야가 랍사게와 산헤립에 대해 말하면서 썼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은 그러니까 다윗이 두 번, 히스기야가 두 번 이 대단한 사람이 이 표현을 쓴 거예요. 살아 계신
하나님은 다른 모든 신들과 구별되는 유일하신 주님이라는 뜻이에요.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를 보시며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나를 살피시며건지시는 하나님, 나를 구속하시고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이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에요. 공통점이 있잖아요. 그죠? 블레셋 군대와 앗수르 군대라는 막강한 적군앞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어요. 사람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며 절망하고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다윗과 히스기야라는 거예요.내 생각대로 시간 속에서 보면 두렵고 절망스러운 일이지만 믿음으로 영혼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해석하면 누가 보인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인다는 거예요. 그냥 하나님도 아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보인다는 거예요. 죽음밖에는 생각할 수없는 현실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 그래서 나를 살게 하실 하나님이 믿어지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것입니다.근데 내 힘을 감추는 위선으로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진정 내 전적무능을 인정하고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것에 차이는 어디에서 드러날까요? 바로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는 데서 드러나는데요. 위선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그래서 이 사람에게 하는 것과 저 사람에게 하는 것이 달라요. 이 사람 앞에서는 겸손한 척하지만 저 사람 앞에서는 교만합니다. 하지만 전적 무능을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에 누구 앞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늘 여전한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영적 진실성은 내 능력과 성품과 교양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이 소를, 코를 뚫어야 되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그 성품으로 밭이랑을 갈 수가 없어요. 성품과 교양으로 그 밭을 갈 수가 없어요. 오히려 전적인 무능 때문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함과 간절함으로부터 나오는 거예요. 오늘의 주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응답받는 기도의비결인데요. 이렇게 하는 것은 다 간절하기 때문이고요. 자기 죄를 처절하게 보면이런 태도가 나오는 것 같아요. 전적으로 무능한 거. 그렇기 때문에 히스기야는'하나님,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죠? 제가 얼마나 힘들고 억울한지 아시겠지요?' 이렇게 주장하지 않아요. '랍사게나 산헤립 좀 죽여주세요.' 이런 기도 안 해요.'우리가 하나님의 이 남은 자라면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의 남은 자라면...' 이 태도를 잘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히스기야는 '하나님,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어요? 혹시 제 상황을 보고 계신가요?' 이렇게 겸손하게 여쭐 수밖에 없어요. 왜죠?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무능한 내 자신에 대해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한순간이라도 나를 붙드시지않으면 나는 넘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넘어지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들림당해야 되는 거죠. 우리는 넘어진다고 그랬어요. 요즘에 계속 시편에서도 나오잖아요. 그죠? 내가 흘러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알기 때문에. 이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내가 중심일 수가 없어요. 나는 one of them이 되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오늘히스기야처럼 자기와 똑같이 베를 두른 지체들과 함께 기도해요. 그들을 통해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 정체성을 왕에게서 찾지 않고 이 남아 있는 자들에게서 찾기 때문이에요. 왕은 주연 배우지만 이 남아있는 자들은 엑스트라도 못 되는 나머지 인생이에요. 자신이 나머지 인생임을알면 저절로 이 남아 있는 자들과 하나가 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절대로 나머지 인생 취급받는 것을 용납하지를 못해요!지난주에 교만의 증거가 칭찬 좋아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 주에는 겸손의 증거를 알려드리겠어요. 겸손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바로바로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거예요. 내가 남은 자 중 하나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가족조차 옳고 그름으로 무시하잖아요. 가족과 함께하는 것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본성적으로 겸손하지 않다는 거예요. 교회를 다니면서도 식구들은 수십 년안 보고, 무시하고, 용서 못 하고 분해해요. 더욱더 그래요. 남보다 더하잖아요.그렇죠? 그러니까 저도 이제 설교하고 나서 '은혜받았다'고 하지 않으면 아니 왜이 구속사를 못 깨닫지? 속상하니까 아주 칭찬 못 받아 교만한 인간이 저예요.제가 무시를 많이 받아서 겸손한 줄 알았더니 그냥 또 피해의식이더라고요. 이교만하고 겸손하지 못한 인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억울한 사건을 주시는 거예요. 환난당하고 빚지고 이런 마음이 원통한 자리까지 낮아져서, 이 낮아지
는 것이 아주 진짜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겸손해져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여러분 곁에 이 남은 자 공동체가 있어요? 그 공동체야말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통로예요.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남은 자 공동체가 되고 있습니까? 남은 자 공동체에서 지체들과 함께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환난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지체들과 하나가 되어 기도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적용]내가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요?내게는 이 남아 있는 자들 즉 남은 자 공동체가 있습니까?그들과 함께 기도해야 할 제목은 무엇이에요?
한 교수님의 칼럼을 읽었는데요. 이제 똑같은 탐험가이지만 중국의 정화는 빈손이었지만 이탈리아의 콜럼버스는 어떻게 신대륙의 항로를 발견했을까요? 둘은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다는 거죠. 두 사람 모두 시작은 해안선에서 배를 띄웠는데 중국의 정화는 해안선이 땅의 끝이라고 생각했고, 콜럼버스는 새로운 바다라는공간의 시작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중국의 정화는 해안선을왜 새로운 시작으로 보지 않았을까요? 그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라는 거예요. 근데 콜럼버스는 자신이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거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는, 우주가 지구를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을 때 과학이 하나도 발달하지 않았는데, 훗날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류가 과학 문명을 이룰 수가 있었다는 거예요. 중국(中國)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중국은 자신이 가운데 즉 중심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그런 상태에서는멀리 있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먼 곳을 탐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중국은 이미 유럽에서 많은 상인이 찾아와서 물건을 사가는 경험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동쪽을 항해해서 자신이 직접 유럽에 갈 생각을 하지는 못한것은 자신이 중심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이제 이 정화가 300척의 배와 2만 7천명의 선원을 가지고 30년 탐험을 했지만 그런 생각으로 하니까 우리는 지금 정화라는 사람을 몰라요. 그죠? 근데 콜럼버스는 세 척의 배와 90명의 선원으로 출발해서 발견한 거죠. '콜럼버스다 아니다. 또 아메리고가 발견했지!' 여러 설이 있지마는 그래도 우리 지금 인류에게는 콜럼버스라는 이름이 크게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가장 큰 이유가 콜럼버스는 망망대해 바다를 향해서 나갔고 정화는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했다는 것이에요. 이 콜럼버스는 인도, 중국, 일본으로 갈 수 있는새로운 항로를 발견하려는 목적으로 바다를 건넜는데 정화는 그저 옆에 있는 나라를 조공국으로 만들기 위해서 안전하게 해안선을 따라서 항해했다는 거예요.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한 겸손함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 같아요.살아 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첫째, 회개하며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3. 말씀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됩니다.
5 이와 같이 히스기야 왕의 신복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니
->5절입니다.
히스기야가 보낸 대표들이 이와 같이 이사야에게 나아갔다고요. 히스기야와 대표들과 이 남아 있는 자들인 모든 백성이 한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다는 거예요. 요아스는 성전을 수리하고 나서 그 신복들에게 죽임을 당했잖아요.어떤 왕은 이 신복들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굉장히 좋은 명분에 성전 수리를 40년이나 했는데 그 심복들이 죽였잖아요. 굉장히 명분이 좋은 일이잖아요. 어떤 왕은 또 신복들이 같은 마음으로 이 일을 해요. 남유다 왕 중에 악한 왕으로 꼽히는왕이 아하스, 여호람, 요아스. 그러니까 내가 일평생 너무 교회 잘 나가고 막 선교하고 그거 다 하면 뭐 하겠어요? 후세들이 악한 왕으로 꼽는데요. 왜죠? 이 자기의 성품을 숨긴 채 요아스가 자기를 살려준 정말 어마어마한 생명의 은인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선지자 그것도 불세출의 선지자를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돌로쳐서 죽였잖아요. 그죠? 그런데 히스기야가 지금 극진히 이사야를 높이고 있어요.하나님이 어전 회의에 참석한 이사야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기에 아,이게 내가 살 길이구나 하면서 이제 말씀이 꽂혀서 평강이 오고 확신이 오게 된것을 신복들에게 전하니까 신복들도 이와 같이 똑같이 이사야를 존경하면서 물으러 나갔어요. 그러니까 이 앗수르에게 북이스라엘도 멸망하고 남유다도 멸망할 건데 히스기야 때문에 안 멸망하고 나중에 딴 나라 바벨론에게 멸망하잖아요. 이제딱 멸망하기 직전인데, 한 사람이 중요해요. 나에게도 선지자에게 아뢰어 줄 이런신복이 있을까요? 내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신복이 있을까요? 이 사람은 왕이니신복이지만 우리에게는 지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오래 다녀도지체가 없다고 그러는데 그 말은 다른 사람을 지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본인이 예수 안에서 이 지체를 원하지 않을 때는 10년, 20년 교회를 가도지체가 없고 생기지도 않아요. 본인이 원해야 해요. 혼자서 내가 지체 없이 잘 먹고 잘사는 것같이 보여도 결국 마지막에 아무도 없을 수가 있어요. 세상 친구에게반역 당할 수도 있고요. 반역을 안 당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예수님도 링컨도 당했죠. 다윗도 그랬어요. 그 옆에는 계속 배반하는 사람이 있지만 끝까지 곁에 있는 지체가 다 있었어요. 예수님과 다윗과 이런 히스기야가. 이와 같이 신복이 나가니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는 거예요.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6절이에요.
이런 마음으로 응답받으러 나가니까 다들 그냥 오늘 내가 살아요? 죽어요? 이거붙어요? 떨어져요? 이게 아니고 얼마나 응답받는 기도는 하나하나 과정이 중요한지 몰라요. 과정이!!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주님은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세요. 랍사게의 말도 들으셨고 산헤립의 마음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은 그 앗수르 사람들이생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죽어 있는 우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살아계시기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보시고 들으시고 다스리십니다. 우리가 이혼하지 말라고 말씀을 전하면 결단을 하는 성도가 있고 어떤 사람은 화가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죠. 근데 하나님이 이혼하는 걸 원하시겠어요? 안 하는 걸 원하시겠어요?전쟁하는 걸 원하시겠어요? 전쟁 안 하는 걸 원하시겠어요? 주님은 이혼도 전쟁도 안 하기를 원하세요. 그렇다면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앗수르의 랍사게가 너를모욕한다고 두려워 말라!!' 그러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오늘바벨론의 멍예를 잘 지고 있으라는 거잖아요. 남편이 누군가 또 회사 사장이 그렇게 얘기를 하면은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말씀이 그러면 히스기야에게만 주는게 아니고 오늘 나한테도 그럼 두려워하지 말아야죠. 사장이 막 뭐라 그러고 아내가 뭐라 그러고 남편이 뭐라고 그러고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데 이 쉬운 것 같은 일이 너무 쉽지가 않아요. 그죠? 두려운 걸 어떻게그렇죠? 안 됐네요. 안 됐어요. 왜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말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거예요. 우린 사건 때문에 두렵지만 더 많은 경우는 말 때문에 두려워요. 이 사고치는 남편 아내가 '여~보'만 불러도 갑자기 두려워요. 사고를 칠까 봐. 또 그냥자녀가 속 썩이는 자녀가 '엄마! 아빠!!'만 해도 확 씨 걱정이 되는 거예요. 또뭐 때문에 날 부르는 거야? 난 수요일까지 확 씨가 뭔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갑자기 공부했어요. 하물며 랍사게의 말처럼 위협과 무시와 조롱의 말을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근데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이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래요.앗수르가 모욕한다고 모욕받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해요. 마찬가지로 남들이 나를욕한다고 해서 내가 악인이 되고 칭찬한다고 해서 선인이 되는 게 아닌 거예요.남들이 칭찬해도 욕하여도 넘어가지 말라는 거예요. 누가 무슨 말을 하는데 마음이 흔들리는 연약함이 있다면 이건 아프거나 미성숙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아무개 집사가 나를 칭찬한다고 내가 갑자기 좋은 사람이 되고 나를 욕한다고 내가갑자기 나쁜 사람 되는 게 아니에요. 근데 어릴수록 미숙할수록 남의 말을 듣고'어머어머어머~' 이러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목장에서 특별히 '어머어머' 하는사람들은 가만히 그냥 두고 보세요. 거기에 너무 맞장구를 치지 마세요. '어떻게그럴 수가 있어?' 아니 우리가 인생이 다 죄인인데 그럴 수가 얼마든지 있죠. 그죠? '아니 어떻게 30년 동안 도박을 할 수가 있어요?' 할 수가 있죠. 그러니까나는 어떻게 이런 얘기를 듣고 안 놀랄까요? 정말 무슨 얘기를 들어도 제가 안놀라잖아요. 그렇죠. 정말 우리 남편의 이 소천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내 죄를 봤기 때문에 어떤 얘기를 들어도 놀라지 않아요. 그러니까 또 어마어마한 나의 죄를이렇게 봤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랍사게같이 대단한 사람이 욕을하면은 살 수가 없죠. 그렇죠. 대통령이 욕을 하고 누가 욕을 하면 우리가 어떻게살 수가 있겠어요? 근데 그러지 말라고 그러세요.
7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라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7절 맨 앞에 보라라는 말이 있어요. 말 때문에 두렵고 떨릴때 봐야 할 게 있다는 거예요. 생각할 게 있다는 거예요. 뭐죠? 두려운 말을 하는그 사람 속에 하나님이 한 영을 두시겠대요.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영, 진리의영이 아니고요. 소문을 듣고 속게 하는 거짓의 영입니다. 앗수르 왕이 자기 힘 믿고 하나님 백성을 말로 위협하고 놀렸어요. 심지어 살아 계신 하나님도 우상 취급을 하면서 모욕했어요. 그런데 이제 역전된 것이죠. 앗수르 왕이 소문에 속아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거기서 칼에 죽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시는 거예요.이 대단한 앗수르라도 소문 하나 듣고 가서 살해당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풍문과 풍설이 많은데 소문을 듣고 두려워하는 자는 그 속에 악한 영이 있다는 거예요. 맨날 카더라 통신에 속아서 이러고 저러고 두렵게 하는 압박감이에요. 물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바울의 말씀도 말씀이 맞는 얘기죠. 그러나 여러분 속에는 이런 악한 영이 없기를 원합니다. 악인은 재앙에 넘어지지만, 의인은 일곱 번이라도 일어나는 거예요. 근데 히스기야와 이사야가 한 영이기 때문에 말씀 한마디에 딱 진단이 나오고 처방이 나오는 거예요. 근데 수많은목회자, 목사 사역자 또 여러분들이 있어도 들을 귀가 없으면 이런 말씀을 못 듣고 부르짖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이사야가 옆에서 이야기를 해줘도 히스기야 아들므낫세는 이사야를 톱으로 썰어 죽였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은혜받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이 나오면은 욕하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똑같은 선지자가 얘기하는데 아들은 죽였어요. 그러니당연히 쓴 처방은 내 처방으로 안 듣는데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한마디 말을 그냥딱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히스기야를 성군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목장에서 한마디에 딱 알아들으면 여러분 다 성군인 거예요. 이사야는 선지자고, 히스기야는 왕으로 각자의 역할이 다른데. 그 링컨도 무디하고 역할을 그렇게 같이 했어요. 대통령이 되자마자 주일학교에 와서 한 말씀 해달라고 했을 때 딱 그 주일학교 찾아갔어요. 그러니까 무디도 평생 링컨을 위해 기도하고 백악관도 가고. 이제그런 사람을 또 링컨도 무디를 옆에 두고 무디도 링컨에게 도움이 되고, 링컨은 '만약 이 선거에서 이긴다고 하면 나처럼 학벌도 없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신 것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하지만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건 전혀 걱정하거나 상심하실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이 고난을 당하고 떨어져 봤기때문에 능히 감당할 수가 있다!' 라고 얘기했어요.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는 오직 노예 해방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남북전쟁이 끝나자마자 5일 후에 데려가셨어요. 이 땅에서 링컨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 사명을 감당한 게 아니에요. 사명 때문에 살다가 끝나면 데려가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속에 이 부정적인 두려움의 내용이 없어지기를 기도합시다. 실제가 아닌 유창한 말에, 소문, 풍문에 흔들리지 말라는 거예요. 앗수르 왕처럼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고 강해도 소문 한마디에 죽을 수가 있는 거예요. 정치 뉴스, 경제 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식구들이 보낸 문자 하나에 칼에 찔리는 찔리는 듯할 때가 많이 있잖아요. 아내에게 문자가 와도 덜덜덜덜 떨고, 남편에게 문자가 와도 덜덜덜, 자녀... 지나서보면 사실 별일 아닌데 그 순간에는 너무 심각해서 죽을 것 같단 말이죠. 우리가이렇게 연약하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외침,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말씀만 믿어야 돼요. 듣기 싫은 비난도, 듣고 싶은 칭찬도 사람의 말은 우리 자신을 바꾸지 못해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고래를 사람이되게 하지는 못해요! 비난이 상대방의 문제를 잠깐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상대를문제없는 사람으로 바꾸지는 못합니다. 사람의 말은 능력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신실하신 말씀의 능력 때문에 우리도 이렇게 예수믿고 구원받은 거예요. 굵은 배를 두르고 죽어 있던 죄인인데 천사처럼 흰 옷을입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늘 말씀하세요. 매일같은 본문으로 온 교회를 먹이시면서 양육해 가십니다. 매일 삶의 해답이 그날 본문 말씀에 있어요! 오늘도 거짓 선지자 말을 듣지 말라고 하잖아요. '잘 된다~ 잘된다~' 위로하는 거. '바벨론에 갔던 우리 예루살렘의 성전 기구가 다 돌아올 거다. 돌아올 거다~' 그런 거 듣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말씀이들으니까 '이혼해라' 이런 말 듣고 싶은 거죠. 그런 말 해 주는 데가 또 많이 있어요. 그래서 점쟁이에게도 가고~ 점쟁이 권사한테도 가고~ 그래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이 고난을 골고루 겪지 않았으면, 코뚜레를 뚫어서 여기까지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겠습니까? 살찌고 통통한 소가 밭이랑을 갈수 있어요? 그것도 코를 뚫어야지 줄을 매야지. 그래서 진짜 좋은 일에 쓰임을 받았잖아요. 그죠? 아니면 나 혼자서 천방지축으로 뭘 할 수가 있겠어요?
[적용]최근 어떤 소문에 마음이 흔들렸습니까?어떤 비난이나 조롱의 말이 나를 두렵게 합니까?살아 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담대히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한 부목자님이 지난주에 초원님이 탐방 오셨대요. 목장 예배를 인도해 주셨는데마치 예수님이 목장에 오시면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대요. 하지만 지금도목장에는 가기가 싫어요. 목장에서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 언어로정답만 이야기하는 것이 답답해요. 그래서 목장만 가면 시계만 보고 있어요. 목자님하고는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이렇게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이싫어서 이번 부목자 모임을 통해서 옷을 찢는 마음으로 지금을 나눔을 하고 있는거예요. 이게 참 좋은 거예요. 그죠? 목자님 상처받지 마시고. 우리 그러니까 초
원님이 이렇게 처방합니다. '부목자님이 두려움이 있잖아요. 그것이 두려움으로외면해야 하는 것이 아닌 직면해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 교회에 만나는 모든사람들이 나를 돕기 위해 준비된 세팅이에요. 그래서 속 시원하게 터뜨려줘야 합니다. 부목자님 마음속에 두려움으로 위장된 마음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그것이목장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을 수 있어요. 오늘 목사님 말씀처럼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부목자님 마음 안에 목자님과 아내를정죄하는 모습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부목자님이 맞습니다. 제 모습이 목자님 모
습이 똑같이 있으니까 그 모습이 보기 싫은 것 같아요. 그 모습이 아내에게도 있으니까 보기 싫은 것 같아요.' 여러분 살아 계신 하나님은 뭐 어디 하늘 저기에서온 게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자기 거를 터뜨리고 내가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히스기야처럼 환란과 이렇게 이제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고 내가 이렇게 징계 받고 있고 이런 얘기를 터뜨리면 그냥 이사야가 두려워하지말라 그 말로 인해서 두려워하지 말라 이렇게 처방을 해 주시는 거 아니겠어요?그래서 저는 그냥 우리 목자님들은 이 정도는 드러내실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온세계가 저를 얼마나 욕을 하겠어요? 그 저를 생각하셔서 무슨 얘기도 잘 들어내시기를 바래요. 자기하고 다르면 정말 가진 욕을 다 하는 거예요. 아니 오죽하면은 이 기가 막힌 이사야 선지자를 그 므낫스의 아들이 톱으로 썰어서 죽였겠어너무 분한 거예요. 분한 거.. 일월 성신 섬기고 있는 우상 딴지 므낫세와 ... 므낫세가 나중에 회개했어요. 그래도 그러니까 우리는 별 인생이 없다 생각하고 사람을우상 삼지 말고 오늘 말씀처럼 이렇게 해석이 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래요.
말씀 맺어요.살아 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그래서 회개하며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야 돼요.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둘러야 해요. 그러니까 새 왕복을 찾으려고 옷을 찢는 게 아니고 회개를 해서 결론이 이 남아 있는 자들과 함께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중심이 아니고 이 남아 있는 자들이 중심인 거예요. 저는 그냥 살아갈수록 어떻게 이 말씀을 듣고 모였나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안 들었는데 하나도 안 들었는데이 말씀이 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기적 같아가지고 ... 30년 도박을 하고 그 사람누가 살릴 수 있겠어요? 말씀이 살리는 거잖아요. 그런 거를 다 외면하면 어떻게 돼요? 근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나라가 마약 천국이라 그러는데 도박에 담배 안피우는 사람 있어요? 그걸 누가 드러내서 이걸 터뜨려주나요? 그럼 여러분들은 막무시가 됩니까? 이 남아 있는 자들이 무시가 됩니까? 글쎄 여기는 다니기가 싫습니까? 인생이 이렇게 길지가 않은데 그러니까 오늘도 이 말씀을 믿고 여러분들의 모든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인 줄 믿습니다.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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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님의 대한 오해를 풀고 약속의 말씀 큐티에서 찾아 감사하도록
2.예수이름으로 만 천국 간다는 것 알게 되도록
3.알지 못한 미래의 두려움 대신, 하루만 큐티말씀에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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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큐티 제목적기
2.있는 그대로 이력서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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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날 주신 말씀으로 하루만 살기
2.7일 병원 가는데 잘 다녀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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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말씀듣고 해결금지, 가만히 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