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11. 주일설교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본문 열왕기하 19:8-19
혼란한 사회에 택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를 구원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1. 반복되는 조롱과 위협 때문입니다.
(8-9절) 지난 1~7절은 랍사게로 인해 히스기야가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성전으로 들어가고 대신들도 굵은 베를 두르게 하여 회개하고 이사야에게로 보냅니다. 다 두려운 상황에 말씀으로 꾸짖음을 받고 처방을 받고자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를 거짓 영의 소문으로 칼에 죽게하리라 하시며 명확하게 말씀해주십니다.
환경만 붙잡고 울며불며 기도한다고 다 응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절대 말씀 붙잡고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성경이 없으니 이사야가 말씀 역할을 한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현실로 돌아왔는데 더 무섭습니다. 그런데 거짓 영의 소문으로 죽는다고 하는데, 앗수르의 목표는 그 일대 전체를 점령하고 애굽까지 정복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요새도시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애굽의 왕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애굽이 먼저 공격해왔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아무리 신흥 강국이어도 애굽처럼 오래된 나라와 다투기에 전쟁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현재 예루살렘 하나만 남기고 모든 성읍이 넘어갔는데 그 하나때문에 애굽에 군대를 못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10절) 먼저는 랍사게가 말로 전했으나 이번에는 편지로 보냅니다. 그러며 하나님을 사기꾼 취급하며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이렇듯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왜 불신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보게 됩니다.
(11-13절) 앗수르가 멸망시켰던 나라들을 이야기하며 네가 어떻게 구원을 얻냐고 합니다. 그 신들도 건져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합니다. 같은 조롱과 위협이 계속 되고 점점 커집니다. 피하고 도망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때에 구원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당하는 조롱과 위협의 사건은 두려워 할 일이 아니라 기도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 어떤 조롱과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까?
# 반복적으로 점점 더 심하게 당해서 절망합니까? 구원에 더욱 간절해집니까?
# 언제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2.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러야 합니다.
(14-15절) 히스기야가 수많은 글을 받을테지만 앗수르 왕의 편지가 가장 무섭고 수치스러웠을 것입니다.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당장이라도 피하고 싶지만 나무십자가 피하면 철십자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거운 편지들을 여호와 앞에 펴서 내놓습니다. 수치스럽고 불안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응답받는 기도는 내 환경을 붙잡는 것이 아닌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기에 큐티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응답인지 모릅니다.
옷을 찢었던 히스기야는 이제 말씀으로 기도합니다. 신앙이 조금 단단해졌습니다. 고쳐주리라 멸망시키지아니하리라 는 거짓선지자나 참선지자나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의 다음 말은 그러나 법에 따라 징계하신다며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택자이기 때문입니다. 죗값을 치뤄 고치시길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위로만 하는 것이 결코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징벌을 내리시고 깊이 생각하시고 창자가 들끓어 불쌍히 여기신다고 하십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는 단잠을 잔다고 합니다. 남탓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앙은 남탓을 하지 않으면 깨달아집니다. 말씀을 알고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도 시간이 필요해 하며 거짓 선지자처럼 죄만 짓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상식을 넘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상식적이어야 초월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므낫세는 뺴두고라도 왕들에게 어렴이 없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기도한 왕은 3명 뿐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해도 그렇습니다. 내 권력 내 쾌락만 알아서 그렇습니다. 기도를 받는 유일한 대상을 모르니 그렇습니다. 그러니 회개가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 왕이 왕좌에 좌정한다면 하나님은 하늘 위 천사들 사이에 좌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믿고 무릎을 꿇을 존재는 산헤립같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 뿐이라는 것입니다. 편지를 두고 귀를 기울여 들으시라고, 눈을 떠서 보시라고 간절한 기도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말도, 우리의 신음도,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무의식의 소리까지도 들으십니다. 우리의 몸짓도 행동도 보시며,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 보신다면 여러분은 평안이시겠습니까 두려우시겠습니까. 인생의 깊고 깊은 구덩이에 빠진 듯한 상황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듣고 계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를 건지시는 구원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 사람들 앞에 펼쳐 놓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사건이 있습니까? 해결을 위해 누구를 (무엇을) 찾아 방황했습니까?
# 하나님께서 귀로 들으셨고 눈으로 보셨음을 믿습니까?
# 이제 하나님 앞에 펼쳐 놓고 기도하겠습니까?
3. 영혼 구원이 목적입니다.
(17절) 히스기야는 과연 힘이 세다며 맞다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아가 강하니 직면하지 못합니다. 내가 문제 때문에 힘든 것보다 내가 나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 자리에 가봐야 압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 구덩이를 받아들이고 직시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내 믿음으로 직면하는게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힘입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18-19절) 강한 앗수르가 조롱하고 위협하는 문제를 직면하고 인정하지만, 그가 강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의 능력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약함 때문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히스기야가 모든 것을 내어놓고 기도하니 이 상황을 명확하게 볼 지혜도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잘 몰라도, 예배 듣고 목장에 가다보면 나의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보고 내가 회개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잘되는 것만 자꾸 생각합니다. 나를 깨닫고 기도해야 알찬 기도가 됩니다. 오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니 두려움이 물러가는데 말씀이 살았고 원동력이 있으니 그렇습니다. 또 영혼구원에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큐티도 내 생각을 말씀에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 요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그 기도는 왜 응답되어야 합니까? 기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 내 삶의 최고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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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 수치스럽고 분하고 두려운 것 모두 하나님께 펼쳐서 맡겨 드릴 수 있도록
- 예배와 새로운 목장의 자리 잘 지킬 수 있도록
- 남탓하지 않고 교만한 내 죄 볼 수 있도록
- 남은 양육교사 훈련 , 해외 아웃리치 모임을 통해 솔직 나눔으로 내 죄를 더욱 직면할 수 있도록
- 술,음란 안되는 것들 끊어내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도록
- 새로운 안식처 이사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B
-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내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도록
- 언니부부에게 새생명 허락해주시도록
- 우리 목장 전참 ~~~|
C
-자격증 시험 떨지 말고 잘 보도록
-매일 QT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