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5년 4월 20일 (일요일)
말씀:전도서 3장 1절~11절
제목: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설교: 김양재 목사님
전도서 3장 1절~11절
1절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절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절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절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절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절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절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9절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10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을 지으셨는데요.
그 대단한 하나님의 경륜이 숨겨져 있어요.
그 하나님의 경륜을 또 하나님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은 여인의 자궁 속에 점으로 낮아져서 오셨어요.
그러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부활의 영광 영원한 생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효과적인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누구라도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오늘 부활주일 특히 부활절 전도 축제에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이 시간 중에 에 이 시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선물인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전도서 본문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10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노고는 힘들고 괴로운 일인데요.
듣기도 힘든 말이죠.
성경에서도 전도서에만 나오는 단어에요.
우리 인생의 일을 악물고 버텨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직장과 일터에서 학교와 학원에서 오가는 길 위에서 가정에서 어디나 우리가 애써 버텨야 할 어렵고 고된 일들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여기서 너무너무 탈출하고 싶어요 그래서 나를 건져 줄 수 있을 것 같은 돈과 힘과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그게 또 노고가 되고 말아요.
이러나저러나 참 수고수러운 삶이에요.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 노고가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란 말이에요.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 인게 아니고요.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인이에요.
이에 대한 심판으로 우리의 수고와 고통이 이제 끊어지지 않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남편은 놀로 다니고 방탕하게 사는게 아니라
그냥 주일에도 병원문을 열어 놓고 산모들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분은 목사님의 아이를 받아 주니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밤을 세고 산모를 받고 낮에는 외래 질료를 보았다고 합니다.
정말 눈꼿뜰수 얿이 빠쁘셨다고 합니다.
밤낮, 없이 환자를 보고 김양재 목사님은 집에서 벙어리가 되어 큐티 모임을 하고
둘 다 영육간의 노고를 심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결국, 안식일에 병원을 열어 놓았던 남편은 안식일에 데려감을 당하셨습니다.
여기서 끝이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그런데 우리의 인생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에요.
전도서를 기록한 전도자 솔로몬은 인생의 노고를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 주셨다고 합니다.
11절이에요.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우리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 노고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이 세상에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은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품이죠.
하나님의 작품이니까 망친게 없어요.
모든게 아름다워요.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때에 아름답게 하셨다고 하지 않으시고요.
어떤 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에요.
아름답다는 말은 딱 들어 맞는다라는 건데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나다운게, 나다운게 아름다운 거예요.
예술 작품은 어디에도 두워도 빛이 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예술품이 되기까지 작가는 정성껏 깎고 또 깎습니다.
그래야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작품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래요, 우리 인생의 작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깎고 또 깎으세요.
삐져나온 부분을 뽑아내고 깨뜨리고 가지치고 다듬고 닦으셔서 아름답게 빛이 나는 걸작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그래서 어디에 두어도 딱 들어맞는 아름다운 예술품이 되는 거예요.
1절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그러니까 때를 아는 것은 이렇게 모든 것에 목적이 있다는 걸 아는 거예요.
목적을 아는 것이 때를 아는 거예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죠.
그래서 그 목적은 바로 사명이에요.
2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절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절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절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절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절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절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이 모든 때를 지금 아름답게 하셨대요.
우리의 모든 의지를 지금 뛰어넘는 때라는 거에요.
이 저자가 반대되는 우리 인생 속에 긍정 부정의 14상의 28의 지금 대조에서 제시하죠.
여러분 지금 울고 있습니까?
울 때가 되어서 우는 것이에요.
웃을 때가 되어서 웃는 것이고,
고난받을 때가 되어서 받는 거예요.
왜죠?
거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요.
목적을 아는 것이 오늘 현재의 순간을 아는 것이고, 내 때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때를 아는 사람은 오늘 내 삶이 이룰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현재의 일들을 인정하기 위한 연습임을 아는 것이 목적을 이룰 때인 거예요.
공부 잘하고 성공하는 때가 목적을 이룰 때가 아니고요.
오늘 현재의 삼을 인정하는 것이 목적을 이룰 때예요.
천하 범사라고 하셨으니 어떤 상황도 목적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날 때나 사랑할 때만 좋은 때라고 하지 않으세요.
균형잡힌 시간을 가지고 모든 때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도 인정하고 날 때도 인정하면 사실 낙태도 안 되고 알락사도 안 되는 거죠.
낳든 죽든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일의 목적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목적과 사명을 모르니까 이 때를 거부해요.
고난의 때를 멀리 해 달라고 물러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근데 오늘 이 때 중에 중요한 주제가 죽음이에요.
즉 삶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생명계 생명의 시작과 끝을 언급하죠.
식물을 심을 때와 뽑을 때, 사람의 생명을 보전할 때와 취할 때, 건물을 세울 대와 헐 때,
모두 출생과 죽음의 개념을 나타낸 거예요.
울 때 슬퍼할 때와 대조되는 웃을 때와 춤출 때도 죽음과 파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지금 의미하는 거에요.
8절 마지막으로 사람의 두 가지의 기본적인 감정인 사랑과 미움을 그 궁극적 결과인 평화와
전쟁과 대조시켜 언급하는 것은 이제 결론으로 볼 때 이건 죽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에요.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제일 추한 모습이 죽을 때 모습이에요.
마지막까지 살려 달라고 예원하는 사람이 죽음의 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저자인 솔로몬이 지혜자나 우매자나 똑같이 죽고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김양재 목사님이 친정 어머니와 남편의 죽음을 겪었는데요
김양재 목사님의 어머님은 새벽 기도 가셔서 똥내 나는 몸빼바지를 입으시고 변소 청소하고
그리고 나오다가 갑자기 교통 사고로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초라하죠.
또 김양재 목사님의 나편도 암으로 하루 아침에 돌아가셨지만 장말 믿는 사람들은 참 아름답고 평화스럽게 가더라고요.
세례 요한이 소만에 목이 달려 죽었는데 평화스럽게 갔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 모습 자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하실 때가 있는데 그 모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죽는게 나쁜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 세속사밖에 모르니까
죽음이 무서워서 죽기 싫다고 추해지는 거죠.
어느 할머니가 나는 죽어야 돼 죽어야 돼 맨날 부르짖었는데 욕창이 생겨서 진통제를 먹어야 하는데 진통제 먹는 거만큼 회복이 안 좋다는 얘기를 하니까 세상에 나중에 보니까 그 많은 진통제를 하나도 안 드시고 이불 밑에 다 숨겨 놓았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때이고 행복한 때예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변화가 없는 이유는 과거의 모든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을 알게 해 주는 연습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서 내가 에벌레에서 성충이 되도록 때마다 허물을 벗도록 모든 것을 허락하신 거예요.
새가 태어나서 작은 병에 넣어서 살피고 보살펴도, 자라나면 밖으로 내보내야 되잖아요?
그런데 새는 자라고 있는데 내보내지도 않고 병도 안 깨진다면 그 얼마나 지옥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자꾸 깨어져서 먼대로 나아가야 돼는 거예요.
그지 8절까지의 모든 대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때인 거에요.
목적을 이룰 때라는 걸 아는 사람이 지혜로는 사람이고,
로마서 말씀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세월을 아기는 사람이에요.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시간을 아끼는 것은 깨어 있는 거예요.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야 돼요.
잠자는게 뭐예요?
모든 대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워야 하는데, 내 모든 때에서 그 작은 병에 같혀서 상처받고 기분 나빠하고 교만하고 쾌락을 좋아하는 것이 내 때를 인정하지 않고 잠자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지금 어떤 때를 지나고 계십니까?
지금 내 때가 목적을 이룰 때라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대 때에 처한 내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습니까?
어려서는 엄마가 안 돌봐주셔서 고아처럼 산 때도 힘들었지만 학창 시절에 이 정말 쩌들어지게 가난한 때를 또 지났죠.
그 걸레질을 하는 시집사리의 때뿐 아니라 이제 무시당한 때 매 맞았던 때 욕을 먹었던 때를 사실 다 이렇게 아름답게 하셨는데요.
그런데 이제 그 38년 동안 지금 과부의 때를 너무 오랬동안 살고 있어요.
살다가 보니까 50과 50 남자 여자 그런데 여자가 아무리 잘나고 해도 50은 51이 절 때 될 수 없는 거에요.
남편은 여자에게는 절대적인 것이었어요.
남편이 있으므로 내가 있고 사역을 해도 남편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울타리가 되고
세상적으로도 속으로는 어떻든 나편이 있어야 내가 기사가 모는 차도 타면서 의시될 텐데요.
지나고 보니 아무리 힘들고 해도 남편이 없으면 모든 것이 엄살에 지나지 않을만큼 나편은 절대적인 것이었어요.
모든 거는 그냥 남편 뒤에 숨으면 됐어요.
책임 다 남편이 지는 거예요.
지금은 김양재 목사님께서 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어떻게 왔나 싶을 만큼 남편의 죽음은 나를 조롱케 하고 무시받게 하고 사역을 할 수 없게 하는 일이었어요.
누워만 있는 남편도 30년을 누워 있어도 있어야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런 남편이 20~30대 젊은 나이에 김양재 목사님께서 30대에 하루 사이에 없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김양재 목사님은 그때에는 남편분이 김양재 목사님을 힘들게 하셨으니까
그 남편의 위치가 이지경인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구 이 때한 아름답게 하셨다고 합니다.
전기 불, 수돗물도 아끼고 집에 자동차가 있어도 김양재 목사님보고 버스 타고 다니라고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모두 때를 아름답게 하셔서 그 모든 것을 다 모았다가 이렇게 지금 사람 살리는 목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김양재 목사님께서 여러분은 그러시지 말라고 여러분의 때를 아름답게 하시라고 전하는 거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고 그래요.
그러면 그 모든 때를 어떻게 아름답게 하셨을까요?
2.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어떻게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나요?
우리는 오늘 내가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죠.
힘들다 못 살겠다가 주제가 예요.
도저히 못 살겠는데 오늘도 교회 한 번만 가보자라는 간청에 못 이겨서 오신 분들 계시지요.
너무, 너무, 잘 오셨습니다.
힘든 남편 아내 자녀 부모 이웃 직장 사업 입시 입시 입사 등 그야말로 인생의 짐작 같은 노고가 왜 내게 딱 맞는 가장 좋은 세팅일까요?
그것이 우리를 영원하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때문인데요.
나를 하나님처럼 섬기던 삶 나를 우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던 삶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고난을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끝을 맺으시는 그 일을 보며 그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채웁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이 세상은 모든 것을 쏱아부어야 할 곳이 절대 아니에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반드시 있어요.
영혼을 사모하면 그 빈 공간에 하나님을 채우고 삶을 훨씬 의미 있게 살 수 있지요.
14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하셨거든요.
14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우리는 밑동 짤린 나무인데 한님만이 영원하시니까요.
진정한 영혼의 시간에 눈을 뜬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랑과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보기에는 호란스럽고 질서가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 이걸 하나님의 질서라고 하고 그리고 이제 아름답다고까지 하시는 거에요.
왜 그럴까요?
우리는 이 세속사의 시간 안에 있고
하나님은 구속사의 이 세상 시간 밖에 계시기 때문이에요.
크로노스가 아니고 카이로스의 시간이기 때문에 시간 밖에 계신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 영혼을 사모하게 하기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갂으셨어요.
자기를 비워 우리에게 딱 들어맞게 맞추셨어요.
우리의 모든 노고와 죄고에 십자가를 직접 지셨어요.
우리가 당해야 할 형벌과 죽음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수치와 조롱 속에서 육신이 다 찍기는 고통 가운데 죽기까지 복종하셨어요.
그리고 사흘 만에 이 처참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보여 주셨어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다가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영혼이 있었음을 알려주셨어요.
영원히 사는 영생을 증명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거하는 그때를 사모하는 마음이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의 품을 이제 사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때를 주신 것이에요.
여러분 봄에는 꽃이 피죠 여름에는 잎이나요, 가을에는 열매를 맺어요,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는 것 이게 아름다운 거예요.
그런데 봄은 여름이 되고 싶어하고, 여름은 겨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에요.
심을 때 뽑을 대가 다 한정된 시간이에요.
한정된 시간 안에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거에요.
그 한정된 시간 안에 기쁨을 이루어야 해요.
항상 인생의 양극단을 볼 수 있는 균형잡힌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시간인 거에요.
영혼을 사모해야 이 세상의 때를 목적에 맞게 사명대로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힘든 상황에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셨나요?
김양재 목사님의 남편은 무의촌에 가셔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 돌보면서 살 거니까 김양재 목사님께도 피아노를 그때 그냥 가르쳐 주라고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생각 할수록 이 사람은 택자 아닌가?
김양재 목사님께서 성경을 개달으면 말씀도 안 보는 남편은 적용을 하셨다고 합니다.
선지자적인 삶은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 것도 아닌데 김양재 목사님의 부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환경에서 참 죽도록 절제하고, 죽도록 힘든 환경을 이미 살게 하셨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남편분과 정말 살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목적이 있어서 그랬기 때문에 그 힘듦 때문에 영혼을 사모하게 되고
김양재 목사님께서 목회를 이렇게 하는 것은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암편 덕분이라고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자꾸 무너지는데 김양재 목사님께서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목회를 하여도 맨 끝에 돈이 있다고 하는데 교회 돈이 아까운 줄 몰랐을 거예요.
아 김양재 목사님이 잘해서... 이런 생각을 정말로 하나라도 하였다면
그러니까 모두가 구속사의 시간에서 김양재 목사님의 지나온 때를 생각해 보면은 구원으로 연결이 디니까 아름답지 않은게 없는 거예요.
모두가 아름다운 때인 거예요.
가장 힘든 아내의 때 남편의 때가 주님을 부르는 시간이 되었지요.
즉 우리는 보이는 시간 안에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잖아요.
근데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기 때문에 한계가 없으신 영원하신 분위기에 이 영혼을 김양재 목사님의 부부가 모두 시간 차이는 있었지만 사모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 힘든 부부가 그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그래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3.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은 언제 고난이 올지 언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지를 알지 못해요.
지금이 찢을 때인지 꿰멜 때인지 몰라요.
돌을 던져 버려야 하는지? 버려야 하는지를 몰라요.
우리 바둑 기사님들이 돌을 던져야 하는지? 버려야 하는지를 몰라요.
하나님의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고 하시면서
안을 대만 아니고 앉는 일을 머릴 할 때도 아름답게 하셨대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남편분이 나를 멀리 해도 아름답게 하셨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 얘기는 남편이 나를 안아 줘도 오늘 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남편이 안아주지 않아서 그 왜 그렇죠?
남편이 안아주지 않아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근데 안아 주어서 영혼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아요.
안아주어서 영혼을 몰라 그래서 교회 나와도 항상 말씀이 안 들리는 거예요.
아버지가 딸을 너무 이뻐해서 안아 주다가 사위에게 넘겨야 할 때도 우는 거에요.
안지를 못할 대가 오는 거예요.
그 때마다 다 아름다운 것이지 내가 영원히 그럴 수는 없는 거거든요.
솔로몬을 봐도 그 허무의 밑바닥에는 가장 허무의 밑바닥이 그 자식이 아닌가
천명의 여자가 있어도 그래서 아들은 하나인 거에요.
솔로몬에게 르호보암이 없었다면 어떻게 어떻게 허무함을 알았겠습니까?
그러니 허물을 더욱 알게 해 주려고 속을 썩이는 자식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택자는 어떻게든 허무함을 알게 해 주셔요.
사마리아 여인도 남편이 다섯이 있어도 지금 있는 남편도 니 남편이 아니니까
이 허무함을 아니까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빌라도나, 부자 청년은 허무함을 몰랐기 때문에 교양 있게 떠났어요.
솔로몬은 전도서를 쓰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해알일수 엇이 수고하는 모든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라고 했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측량치 못하게 하신 거에요.
언제 죽을지 날지를 모르게 하심으로 훈련을 하시는 거에요.
기약이 없이 자식이 속을 써기니까...
남편이 안 돌아오니까, 사업이 안 되니까, 기약이 없으니까,
근데 그때를 알려고 기도받으러 다니고 그러면 안돼요.
때를 모르는 것이 하나님이 훈련하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그레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증거하고 반응하는 방법은 바로 때라는 거에요.
시간이라는 거에요.
김양재 목사님 간증
편집
적용 질문
일의 시종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오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가 얾나 동의 되십니까?
그런 간증이 있습니까?
예배, 큐티, 목장, 직장, 가정 등에서 최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없입니까?
기도 제목
A.
1.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때에 신교제를 이루워 주시기를 기도, 합니다.
2.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때는 어떤 때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 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3. Think Trip을 위해 기도하며 나갈수 있기를 중보 기도 부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