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30기도하는 성전
누가복음19:45-20:8
김성철 장로님
김성철 장로입니다. 이 자리에 선 저를 보고 여러분들이 놀라시는 것보다 저는 더 놀 라고 놀라다가 정신 차려보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제가 어떤 설명이 필요 없 이 제가 이 자리에 왜 서 있는지 오늘 큐티 본문 누가복음 20장 2절을 통해 먼저 Telling하고 가겠습니다.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정말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이 한 말을 장로가 된 제가 묵상하고 이 자리에서 나누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의 권위로 저뿐 아니라 이곳에 한 분 한 분이 앉아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늘 말씀 45절에 나오는 이미 성전에서 내쫓 기는 것이 마땅한 자, 46절에 나오는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 곳을 강도의 소굴 로 만들었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2007년 10월 14일 반드시 이혼하리라 굳세게 마음먹은 채로 당시 5살이던 아들과 아내와 함께 저 오른쪽 뒤편에 앉아 있 었고, 저희 가족 주변으로는 그 전날 목장에서 처음 만났던 목장 식구들이 혹시라도 제가 중간에 나가버릴까 걱정하며 에워싸고 포진해서 앉아 계셨다는 것을 나중에 들 었습니다. 오직 이혼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 한 번만 주일예배에 가준다는 약속을 하며 아내와 장모님에게 쓴 이혼서약서에 도장을 받고 왔던 그날 이후에도 끊임없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제가 2025년 주일예배의 자리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서 있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권위이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자격 없는 제가 감히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저를 어떻게 가르치시며, 여기까지 오게 하셨는지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때마다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 우리 가정과 교회, 기도하는 성 전이 되어야 하는 저 자신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음에 회개가 되었고 지금도 역시온전히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쫓아내야 하는 강도가 제 안에 있음을 보 게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 각자의 사연과 역할로 혼자 앉아 계시거나, 가족이 같이 앉아 있어도 다른 마음으로 위태롭게 계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도 예수님의 권위가 없이 내 힘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은 단 한 분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이 시간이 되어 가정과 목장과 일터, 내가 속한 그곳에서 나 한 사람 이 예수님의 권위를 받고 그곳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로 결단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예전의 저처럼 이 시간에도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죽이려 고 꾀하는 마음으로 앉아서 저를 노려보고 계시거나, 아예 오늘 담임 목사님도 안 계시니 자체 방학을 하신 분이 반드시 있을텐데, 바로 그분들이 저처럼 이 자리에서 간증을 하고, 예수님의 권위를 받게 되실 그날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지금 이 말에 절대 아멘을 하지 않고 절대로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에게 는 예수님의 권위가 임할 수 없다며 믿지 않기로 작정한 그분 자신이 꼭 기도하는 성전이 되기로 결단하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가 성전이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기도 하는 집이 될 가정과 목장, 교회와 나라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성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내 속의 강도를 내쫓아야 합니다. (45-46절)
45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45절 46절입니다.
성전이 예수님의 내 집,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당 시 성전 제사 제도는 유대 종교지도자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부패로 인해 오염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이 나오는 병행 구절 마태복음 21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여기서 보면 알 수 있듯 성전에 돈 바꾸는 사람들, 비둘기 파는 사람들처럼 나의 유익을 구하며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오는 백성들에게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 화폐를 성전세로 내는 것이 우상숭배이니 로마 화폐를 성전 화폐로 바꾸어 내야 한다며 투명하게 계산하지 않고 부당한 이득을 취해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성전에 올 때 멀리서부터재물을 가져와야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성전 앞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던 제물이었던 비둘기를 몇십 배로 팔면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을 통칭해 예배하는 백성이 아니라 장사하는 자들이라고 내쫓으십니다. 이렇게 교회에 각자의 유익을 감춘 채 기도하는 집, 주님의 집에 나의 유익, 나의 복을 구하며 기복으로 오는 발걸음이 강도의 발걸음이며, 하나님의 자녀 보다 세상의 자녀로 키우며 주의 일꾼이 아닌 돈과 성공의 일꾼으로 가족들을 부 추기는 것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장사하는 네가 아니냐고 물으십니다.
저는 문자적으로 이곳에서 병원 홍보를 한 것도 아니고, 물건을 판 것도 아니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승승장구의 정점에서 거식증에 알코올 중독의 아내를 만나 외도까지 정점을 찍어준 가해자 때문에 피해자로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절대 장사하는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이혼당하지 않으려고 당시 제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던 것처럼 끈질기게 제게 붙어서 이혼하지 않으려는 아내가 본문에 장사하는 자들처럼 저를 사기 위해 공동체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전문의 시험도 전국 1등이었고, 개업도 하자마자 폭발적으로 환자가 오며 실패를 몰랐던 제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결혼 직후부터 끊임없이 깨닫 게 해준 아내가 거식증이라는 것을 신혼 초에 알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도 시키 고, 유명한 정신과 선후배의 인맥을 동원해 치료를 했는데 기적처럼 아들을 낳으 니 이제 내가 원하는 집의 모양을 갖출까?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낳 고 나서 술에 취한 채로 병원 일, 집안일을 하며 술을 감추기 시작하는 아내로 인 해 형사처럼 술을 찾아내 아내 머리에 붓고, 집 안에 술병을 던지며 온 집안에는 악취가 진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술을 덜 마시고, 표정이 밝아진 아내를 보며 다시 소망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남자들을 만 나며 세상의 기쁨에 취한 것이었음을 아내의 핸드폰 문자를 통해 발견한 순간, 이 제야 내쫓을 구실이 생겼다는 후련함에 오히려 이제 나만의 집을 새롭게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그렇다면 제가 원했던 집은 어떤 집이었을까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은 벌어올 테니 아들 공부는 알아서 아내가 확실히 지켜서 내가 못다 이룬 꿈과 복 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능력이 탁월해도 담당 교수에게 논문을 빼앗길 뻔 하는 억울한 사건을 겪으며 이런 곳이라면 남지 않겠다고 스스로 박차고 나왔지만 못 다 이룬 대학 교수로서의 업적을 아들이 대신 이어가도록 밀어주며 세상에 복수 하고 싶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개업의로서의 삶을 끝내는 것이 소원이 되어 그동안 가보지 못한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며 살 수 있도록 재테크를 공부하며 돈을 불리 고, 자녀를 성공시키는 정보력으로 세상에 발 빠른 아내를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집이 어떤 집일까요? 바로 오늘 말씀의 강도의 소굴입니다. 그러니 강도의 소굴을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시기 위해 아픈 아내를 주셨는데, 아내가 알코올 중 독이 되어 끊임없이 자살 시도를 하는데도 제가 교회에 오지 않으니 외도의 정점 까지 찍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아내를 내쫓을 기회로만 여기며 오히려 이 혼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에 왔으니 그 또한 제 속의 강도였습니다. 첫 예배에서 어떤 중독자라 해도 친엄마보다 더 좋은 엄마는 없다는 목사님 말 씀을 들으며 어린 아들을 위해 이혼은 안 되겠구나 생각했고, 아프다 하여 버린 다면 개돼지와 다를 게 무엇이냐는 말씀이 저의 심장에 박혀 이혼을 접었지만, 그다음은 아내의 병 낫는 것이 목적이 되어 교회를 이용하는 두 번째 강도로 이어졌습니다.
전혀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던 제게 내가 쉬어야 할 시간,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 하고 목장과 예배, 게다가 양육까지 받아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은 그저 거식증과 알코올 중독에 외도까지 하며 귀신 들린 것 같은 아내 안의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딱 그때까지만 참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악물고 견디는 시간이었습니다. 양육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야기하고, 예배 때마다 삶 의 목적을 이야기하셔도, 그래서 저 혈루증 안에 혈루는 언제 마르고! 저 속에 귀신은 언제 나와서 병이 낫는 거냐?! 이를 갈며 어쩌다 너를 만나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을까?! 억울함으로 울었습니다. 어떤 간증에도 은혜를 받기보다 내가 왜 편히 쉬고 누려야 할 이 시간에 여기서 저런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 나? 저런 죄 안 짓고 열심히 살아온 내가 저렇게 아픈 아내를 만나 여기에 앉아 있으니 상 중에 최고상을 주셔야 되는 것 아니냐?! 외쳤습니다. 그 모든 주장은 결국 강도의 소굴을 만들지 못해 억울했던 장사하는 자의 논리와 주장이었으니 내쫓으셔야 마땅한 것은 바로 제 속의 강도들이었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내 속의 강도는 무엇입니까?
2. 날마다 귀를 기울여 가르치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47-48절)
47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47절, 48절입니다.
강도의 소굴이 되었던 성전에 들어가셔서 직접 부패함을 내쫓으신 예수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내내 치유와 기적과 이적을 모두 복음 전하기 위해 사용하시며 십자가 죽음으로 나아 가는 그 순간까지 가르치심을 이어가셨고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에 의해 자신들의 악이 드러나는 것이 불쾌하고, 기득권을 빼앗긴다 생각하며 어떻게든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는 대제사장들과 서기 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담임 목사님도 목숨을 걸고 사부님 구원을 위해 기도하셨기에 사부님이 천국을 가신 이후의 삶은 덤으로 얻은 시간이라고 하시며 매너리즘에 빠질 수 없이 매일 구원을 위해 가르치시고, 복음을 위해 어디든 달려가시는데, 요즘은 그런 목사님 의 가르치심을 들으며 옳고 그름의 잣대와 세상의 가치관으로 알아듣지 못해 비 판하고 공격하며 죽이려고 꾀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저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에 가득 차 듣기를 거부했지만 목장을 통해, 공동체 지체 들을 통해, 수요 예배, 주일 예배를 통해 날마다 구속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한 지도자들처럼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 리며 당시 목자님에게 악을 고래고래 쓰고, 교회를 박차고 나가 모든 지체들을 차단하고, 스팸 처리했습니다. 내 뜻대로 마음대로 살 수 없으니 그저 떠날 명분이 필요했고, 지도자들처럼 가룟 유다처럼 말씀도, 공동체도, 예수님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사단의 생각에 가득 차서 어떤 설득의 말도 들리지 않았고, 분명 위로도 받고, 찔림도 있었던 그동안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기 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고 더 굳세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던 때보 다 더 아내를 핍박했고, 아내가 사랑하는 교회와 공동체를 조롱하고 비판하며 이래도 네가 그 교회를 다니는지 보자~ 하며 다시 강도로 무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도, 7살 아들도 48절의 백성들처럼 귀를 기울여 공동체 이야기와 말 씀을 들으며 점점 더 하나가 되어 가니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 졌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며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죽이려고 꾀하는데, 그들과 한 편이 된 백성의 악한 지도자가 바로 저였음이 느껴져 회개가 되었습니다. 악한 지도자인 제게서 완전히 멸절될 뻔한 우리 가정의 예수 씨를 공동체와 말씀이 살려 가고 있는데, 나의 백성이 살아나고 기뻐하는 것은 보이지 않고, 내가 계획한 것 을 저들이 방해하는구나 하며 귀신 들린 엄마를 만나 내가 열어주고자 했던 세상 을 꿈꾸지 못하고, 공동체 안에 들어가 있는 아들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도, 아내도 저를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고, 항상 아빠와 같이 교회에 가고 싶다며 아빠를 존경한다며 지도자로서 인정하고 높여주 었습니다. 제가 어떤 혈기를 부려도 저희 백성들은 제가 예수를 못 만나서 그런 것을 당연히 여기고, 마음 아파하며 세상에서 수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사랑이 가득한 긍휼의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백성들이 교회에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푸른 초원 위에서 '굿샷~'을 외치며 골프를 친 다음 날, 허리디스크 파열로 응급수술을 받는 사건이 왔습니다. 철저히 건강을 스스로 체크하며 나 혼자 잘 살아볼 거라고 장담하던 제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으니 저주처럼 올 게 왔구 나. 이게 그 무서운 나를 부르시는 사건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제가 출근하고 매주 저희 집에서 목장을 하며 목장 식구들이 저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고, 거기에 더해 아내는 병원 문을 닫아서라도 제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지하 단칸방이라도 기쁘게 갈 준비가 되었다는 무서운 기도를 제 허락도 없이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응급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는 수요 예배 때 모든 성도들이 함께 이 사건이 구원의 사건이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구속사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이십니까?아니면 지도자들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뭔가 불편하고 없애버려야 할 것 같은 그 사람을 없애고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시도록 끊임없이 수고하는 그 사람과 그 환경을 죽이려고만 하십니까? 만약 내 옆에 그렇게 나를 죽이고자 하고 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지도자가 있고 가족이 있다면, 48절에서 그들이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48절 전반부입니다.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즉, 내가 귀
를 기울여 듣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혼자는 안 됩니다. 백성이 다 들어야 합니다. 뭉쳐야 합니다. 저도 만약 핍박하는 제가 무서워 아내가 공동체를 떠나 혼자 뭔가 해보려 했다면 눈도 깜빡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하나 되어 다 귀 를 기울여 들으며 기도하며 잠잠히 기다리니, 폭풍 전 고요를 느끼듯 잠시 뒤 뭔 가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없는 공동체에서 아내가 수많은 중, 고등부 아이들과 그 가정, 목장과 부서에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들의 수를 늘리고 있었고, 어린 아들이 동역자가 되어 주일이면 하루 종일 엄마 옆에 붙어 휘문고등 학교에서 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백성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의 힘이 컸기에 결국 디스크 사건이 임했을 때 제가 더 이상 우리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막을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만 듣지 마시고 공동체에 들어가시고 공동체 안에서도 또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예수를 죽이라는 나의 지 도자가 있다고 해도 그 지도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 자리를 인정해 주며, 예수님 도 끝까지 기다려 주신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저처럼 대 제사장, 서기관 같은 그 사람이.. 자기 밖에 모르는 지도자가 그저 성전에서 내쫓긴 채로 끝나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집 안으로 그 백성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들을 모으고, 연합하고, 하나 되는 기회 로 만드셔야 합니다.
[적용] 나는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인가요? 절대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며 꼬투리 잡아 죽이려고만 하는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인가요?내 옆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나는 백성을 모으고 있습니까?
3. 하늘로부터 오는 권위를 받아야 합니다. (1-2절)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우리에게 말하라
->20장 1절 2절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해 영원히 살길이 열리고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가 열리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 내용에 대해 묻고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반복해서 말합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를 내쫓 으시며, 강도의 소굴이 된 그곳을 정화하시기 위한 개혁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그 체제가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야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제사와 예배보다 물질과 욕심에 취한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성전에서 가르치 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백성들이 자신들의 타락과 부패함을 다 알게 되는 위기 감과 지금까지 쌓아온 권력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비리로 하나 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모자라 장로들까지 함께 예수님께 자격을 묻는 바탕에는 산헤드린 공회가 인정하지 않는 권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 권위는 결국 자신들에게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따지는 것입니다.
구속사적인 큐티 묵상을 통해 진정한 개혁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느냐?' 따지는 사역자님들이 목회자 세미나에 오신 분들 중에 있었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평신도가 양육을 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강대상에서 수요 예배 인도를 하느냐?'고 하실 때 저희 가정이 살아난 이야기를 합니다. 삶을 포기하려했던 아내와, 그런 아내로 힘들어 복수하는 마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던 제가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찾게 된, 깨어진 가정에서 상처로 병들 수밖 에 없었을 아들이 말씀 안에서 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세상과 구 별된 가치관으로 성장하게 된, 이곳이 아니었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늦 둥이까지 11년 터울로 주신 기적 같은 삶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역사 가 우리들교회에 장르별로, 종류별로 얼마나 풍성하게 이어지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권위와 권력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유대 기득권이 외치는 그들의 권위는 인간이 부여한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은 자신의 의지와 목표를 강제적으로 사용하기에 이기적으로 사용되기 쉽지만, 영적 권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목적으로 두기에 날 마다 죽이려는 사람들이 있어도 예수님처럼 또 찾아가고,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 을 하느냐 비난을 들어도 또 대답하며 나의 감정과 생각과 판단을 멈추기로 결정 한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어떤 환경도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내게 맡기셨다는 책임감으로 끝까지 버틸 힘을 하늘에서 공급받는 것이 영적 권위를 받은 자의 모 습입니다. 결국 사명 때문에 그 권위를 주시는 것이니, 영적 권위는 십자가 지 고 죽는 권위이고, 나의 자아를 죽여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권위입니다. 그런 권위가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런 일인데,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처럼 아무리 가까이 와서 보고 들어도 권력만 붙잡고 싶고, 하늘로부터 받는 권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십자가 지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누리고 싶은 것을 예수님의 이런 일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일은 그저 그런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저와 아내는 요즘 계속되는 자살 소식에 누구보다 안타까움이 큽니다. 수없이 반 복되는 아내의 자살 시도에 '내가 안 보이는 데서 조용히 죽으라'고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설마 아내가 정말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아무리 수면 제를 털어놓고 술에 취해 차를 몰고 나가도 또 쇼를 하는구나. 지겹다.는 생각과 이런 너를 보는 내가 훨씬 더 힘들다는 걸 내가 진짜 자살이라도 해서 보여줄까하는 복수심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비난을 들은 어느 날, 조용히 방에 들 어간 아내가 방문을 잠그고 너무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니 예전과는 다른 무서운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12층 창문으로 떨어지려는 아내를 극적으로 막은 아 찔한 순간에서야 이러다 아내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며 칠 뒤 유명한 여배우의 자살 소식에 온 국민이 놀랐고, 저희 부부는 바로 그 사건 이 우리의 사건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힘든 일이 있고, 절망의 끝에 있어도 자살은 더 이상의 기회가 없기에 듣기만 해도 아픈 단어가 자살입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저희 가정에만 행하실리가 없으니 나에게 일어날 이런 일을 기대하고 소망을 놓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 하나님 의 일-을 하는 내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권위를 받은 한 사람이라는 정체 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권위를 주시는 이유는 오직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니 죽을 권(權)도, 누군가를 죽일 권(權)도 우리에게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적용]나는 무슨 권위로 어떤 일을 하나요?빼앗기기 싫은 권력, 갖고 싶은 권력은 무엇입니까?
4. 성령의 의논을 통해 대답할 때 이르시되의 응답을 듣습니다. (3-8절)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자격을 따지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또 대답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르치시며, 가르치시니라는 단어만큼 은혜가 되는 단어는 3절에 예수님의 대답과 8절에 이르시되입니다.
영적 암흑기에는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마 치 상관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내어버려두신 때가 사사기에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유다도 택자이고, 예수님의 조상이기에 하나님께서 찾아와 다시 말씀해 주시지만 죄를 짓는 당시 침묵하셨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무섭고 두려운 시기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이 길게 이어지는 때입니다. 대제사장들이 끊임없이 죽이고자 꾀하는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4절 요한의 세례를 통해 대답하십니다. 4절입니다.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 바로 이런 대답이 성령의 지혜로 올무에 빠뜨리려는 그들을 올무에 빠지게 하는 대답입니다.
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5절 6절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인정하게 되면 요한이 선포한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믿는다는 것이 됩니다. 성령의 의논은 구원을 위해 살리고 세우는 의논인데, 예수님을 모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의논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몰아 가려다 정작 자신들이 신성모독죄를 인정하게 되는 올무에 빠지게 되었고, 그 불안함은 만일의 사단으로 두려움이 증폭됩니다.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인 정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깨달았어야 하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돌로 치며 정죄하려다 그 정죄를 자신들이 받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니 7절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하며 거짓으로 대답합니다.우리에게 말하라며 당당히 따지던 그들이 정작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요한의세례로 반문하시며,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그 메시아임을 알려주시는 질문에 나는 모른다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거짓말입니다. 이때라도솔직하게 대답하기 싫다고, 만일 이러면 어떻게 하냐고 두렵다고 나누었어야 하지 만 자기 생각으로 꽉 찬 사람들끼리 의논을 하니 예수께서 원하시는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날마다 옳고 그름으로 따질 것도 많고, 자꾸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저 역시 목자가 되어서도 목사님의 가르치심에 대해 알아듣지 못하니 날마다 넘 어가지 못하는 옳고 그름에 스스로 시험이 들어 비판을 하며 오히려 목사님이 모 르셔서 그러니 내가 가르쳐 드려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목사님께 메일 을 보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그때 목사님께 보낸 메일을 찾아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어쩌면 예전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 목자님이 계실 수도 있을 까 하는 생각에 오늘 예전 목자였을 때의 저 스스로를 고발하고 회개함으로 해석한 생각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메일 제목은 존경하는 목사님께로 그럴듯하게 가룟 유다가 입맞춤하듯 시작합니다.훼파될 뻔한 저희 가정을 살려주신 목사님께 저희 세상적 가치관이 바뀌게 되어 어 떤 감사로도 표현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기가 막혔습니다. 여전히 세상 가치관에꽉 차 있다는 증거가 메일 내용에가득한데 저 스스로 구속사의 가치관이 되었다고 생각했음에 저 자신이 부끄럽고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드린 것은 목자로서 평생 이곳에서 지내야 하니 목사님께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몇 가지 건의를 드리고자 함입니다. (여기서부터 효율적, 생산적이라는 단어만 봐도 딱 세속사임이 느껴집니다.) 내과 개업의로 평일 오후 7시, 토요일 오후 4 시까지 진료를 보고 퇴근할 때면 사람 얼굴 대하기도 싫고, 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쉬지 못하다가는 내가 빨리 죽겠구나 우울한 생각마저 듭니다. 예배 마치고 하루라도 쉬고 싶은 주일날, 인천에서 새벽 6시에 아내는 고등부 교사라 바리바리 싸 들고 1부 예배를 같이 가서, 저는 3부 마치고 목자 모임이 있으니 2부 3부까지 하루 종일 교회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영육으로 쉼이 없는 생활입니다. 대부분 주 5일째인 데 저처럼 토요일까지 지치도록 일하고, 주일에 먼 휘문까지 와서 예배드려야 하는 목자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오랫동안 목자를 하려면 매주 늦은 목자의 모임으로 힘 든 목자들의 상황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안을 제안드리고자 합 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첫째, 현재 비효율적으로 매주 하는 목자 모임과 부목자 모임을 매달 한 번씩 한다. 대신 매주 초원님께 이메일 또는 전화로 모은 상태를 보고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둘째, 그래도 굳이 매주 해야만 한다면 마을별로 돌아가며 목자 모임을 한다. 지금의 목자 모임은 인원이 너무 많아 다른 마을의 목원이야기까지 다 경청할 수 없고, 심도 있게 마을 안에 목원들을 챙길 수 있는 장점을 살려야 합니다.셋째, 1부, 2부, 3부 예배 시간 중 초원별로 시간을 정해서 그 초원에 있는 목자들이 바로 예배드리고, 목자 모임을 해서 교회에 너무 오랜 시간 있지 않도록 장소도 교회 에서 제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서 섬기는 목자들의 조정이 힘든 경우 초원 목자 모임 시간에 따라 부서 이동이 필요합니다. 등등교만의 정점을 찍으며 감히 목사님께 읽기도 부끄러운 안들을 고르시라며 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해낸 것을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부끄럽고, 제가 얼마나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이 없었는지, 성도 간의 교제를 하찮게 여기며 목자를 일하듯 했는지, 감사와 기쁨으로 진정한 안식을 맛보지 못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힘들면 제 병원이니 근무 시간을 줄이면 되는 것이고, 주일은 그저 쉬는 날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감격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생각하며 보내야 하는 주의 날인데, 이 땅과 세상이 중심이 되니 저런 말도 안 되는 메일을 감히 목사님께 보냈습니다. 결국 그 당시 제게 교회는 그저 저의 완벽주의, 강박으로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받고, 기복을 바라며 고난을 미리 없애고자 하는 불안한 마음을 기도와 말씀으로 교묘하게 채우고 있는 수준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런 저의 메일에 목사님은 아무 답도 안 하셨습니다. 오늘 8절 말씀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하듯 아직 알아듣지 못하고, 땅의 언어만 쓰는 제가 야단조차도 맞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정확히 분별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제가 초원지기가 되어 수요예배를 인도한 뒤 목사님께서 '그때 그 생각 은 지금도 같아요?' 하실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죄송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는 기억해 주시는 목사님의 관심과 양육해 주시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가르치심도 야단도 그러니 참 감사한 양육입니다. 오늘 큐티인 본문 세 번째 대지의 제목이 대답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으로 쓰여져 있지만 사실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화가 나 서 입을 닫고 상대를 무시하는 그런 침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절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은혜가 되십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말 도 안 되는 논리로 계속 따지던 자녀가 궁지에 몰리니 거기서라도 인정하면 좋겠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피할 때 '아빠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하는 그 마 음 말입니다. 내 말을 알아듣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또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마 음은 자신을 팔아넘길 가룟 유다를 향해서도 차별 없는 사랑으로 아파하며 십자 가 지신 그 마음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야단을 쳐도 가룟 유다를 향해서는 야 단조차 칠 수 없어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저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기다려 주신 사람이고, 그만큼 그분들이 불편하게 느끼 던 사람입니다. 믿음은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 하는데, 저는 상대를 긴장하게 하고, 깨어 있게 만드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지금은 제 수준이 되지 않으니 예 수께서 모두 다 대답해 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목사님께서 다른 초원을 마음 놓고 야단치시는 모습을 보면 그분이 부럽기도 하고, 나는 아직 도 목사님께서 솔직하게 야단치실 수 없는 뭔가 불편하고 연약한 초원인가? 하는 마음에 마치 엄마의 관심을 바라는 어린아이처럼 저도 야단 쳐주세요 하는 마음 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르지 아니하실 거라 말씀하시는 그 이르시되가 사랑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이르시되를 듣기 위해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에서 듣고자 하는 마음, 설득되고자 하는 자세로 듣고 솔직하게 고해야 합니다. 어떤 예상치 못한 음성과 모습으로 다가오더라도 그 이르시되의 말씀과 응답이 저와 모두의 거룩을 위함임을 알기에 주님의 침묵이 아닌 이르시되가 제 삶에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잠시는 또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가 힘들어하고, 아직 살아 있는 제 자아와 성질이 나올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저를 이기셨던 주님께서 말씀으로 저를 또 설득해 주시고, 양육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 죽이는 의논이 아닌 살리는 의논, 세상의 의논이 아닌 성령의 의논을 하는 제가 되어 그 동안 주님과 많은 분들을 근심케 했던 시간들을 갚아가야 함을 느낍니다.
[적용] 나는 누구와 어떤 의논을 하나요?나는 사랑으로 말을 아끼나요 무시함으로 침묵하나요? 주님의 이르시되를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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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배와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 인것을 알고 주일 마다 약속 잡는 것을 멈추고, 약속 잡고 싶을때, 목장에 물어 볼 겸손한 마음 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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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르되 하시는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어 큐티와 예배가 회복 되고 지금까지 지켜와 주신 모든 것들 손으로 세어 보도록
2.아버지 어머니 회피와 위선의 탈을 벗고 참 자유 한 말씀따라 영육이 회복하실 수 있도록, 돕는 손길 허락해 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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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국땅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 온것에 감사하고 적티,귀티, 큐티앞으로 나아갈 은혜 주시도록
2.주변 환경/사람 비교 하지 않고, 하나님 백성 자존감으로 회복 되도록, 사명 위해 기도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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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생이 피해 받았다는 강도 같은 마음에 말씀의 은혜를 부어 주시고, 믿고 살고 누리는 성전으로 잘 건축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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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내 안에 경건의 유익으로 장사하는 강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겸손한 환경이 최고의 환경인것에 감사하며 갈 수 있도록
2.여러 프로젝트를 진행 하는 것이 구원위해 잠시 렌탈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포도원 주인이 왔을 때 착한 종이라 칭찬 받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