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날짜 : 2025.3.30.(주일)
-설교본문 : 누가복음 19:45-20:8
-제목 :「기도하는 성전」
-말씀인도 : 김성철 장로님.
[기도제목.]
-콜드 브루
1. 회피가 아닌 잘 직면할 수 있도록. 본질을 보도록 인도해주셔서 심플하게 생각할 수 있길.
2. 세상에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 수치와 거절을 잘 당할 수 있도록.
3. 목장식구들의 기도제목을 날마다 중보할 수 있길.
4. 말씀을 중심으로 삼아서 하나님 앞에 바로서는 데에 집중하는 한 주 보내길.
5. 겸손한 마음으로 알맞은 진로를 인도함받기를.
6. 양육자로서 동반자의 나눔을 경청하고 제 삶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길.
-에스프레소
1. 친한 동생이 염증이 심하고 고열로 중환자실까지 갔다가 입원 중인데 그 가족의 구원의 사건이 되게 하셨는데 수고하는 그 딸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심장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해주시고, 고쳐주시고 살려주세요.
2. 부모님의 영육의 건강을 붙들어주시고 말씀묵상하며 주님만 의뢰 하시는 삶 되시길
3. 준비하는 컨텐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인도해 주세요.
4. 매일 기도의 성전을 쌓고, 시간을 귀히 여기며 쓰게 해주세요.
5. 목장 식구들이 직면의 시기에 있는데 절대 포기하지 않게 해주시고, 이르시되의 구속사로 응답받게 해주세요.
6. 어제 셋째 형부가 목세에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꼭 와서 구속사의 가치관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군에 있는 조카가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남은 세명의 동생들도 영육으로 붙들어주시길)
7. 스승님 혈액암 투병중이신데 자신을 내려놓게 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말씀의 권능이 임해 그 가정에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부부와 자녀에게 각자 찾아가주세요.)
8. 각자의 배우자를 서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열어 꼭 속히 만나게 해주세요.(우리 목장 식구들과 저 모두 신교제, 신결혼을 허락해주세요.)
9. 물질을 채워주시길 (배우와 가르치는 일 자리를 허락해주시도록) - 구별된 자로 보내주실 수 있길
-카푸치노
1.아버지가 암 투병 중이십니다 전이 없으시고 목장과 양육 생활로 은혜 받으시게 해주세요.
2. 여동생 가족의 화목이 지속되길 기도합니다.
3. 어머니 건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4. 사랑하는 형, 친구, 동생에게 총명과 건강을 주세요.
5.저의 건강을 주시옵고, 강한 의지가 사명으로 이어지게 힘을 주세요.
6.저의 반려견 랑이의 뇌전증이 없어지게 건강을 주세요. (아멘.)
-돌체 라떼
1. 내 모습이 보일때회피하지 않고 잘 직면할 수 있도록
2. 동생 하나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길
3. 무너져 있는 생활을 잘 세워갈 수 있도록
4. 호르몬의 영향을 덜 받고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5.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목장 식구들 믿음의 배우자를 허락해주시길
6. 사랑부 찬양팀 섬기는 것, 주님 뜻을 알 수 있도록
-쿨라임 피지오
1. 더 늦지 않고 배우자를 만날 수 있도록
2. 부모님 건강 (아버지는 건강한 편, 어머니는 당뇨가 있으심)
3. 동생네 구원
-허니자몽 블랙티
1. 주님의 사랑과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될수있도록 지혜와 능력 주시기를
2. 체력과 면역저하로 인한 건강의 어려움이 회복되고 해결될 수 있기를
3.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보고 탓하지 않고 나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기를
[설교 요약.]
제가 2007년 오직 이혼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 한 번만 주일예배에 가준다는 약속을 하며 왔던 그날 이후에도, 끊임없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제가, 2025년 주일예배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서 있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권위이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저를 어떻게 가르치시며, 여기까지 오게 하셨는지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때마다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하는 우리 가정과 교회, 기도하는 성전이 되어야 하는 저 자신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음에 회개가 되었고, 지금도 역시 온전히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쫓아내야 하는 강도가 제 안에 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어떤 분도 예수님의 권위가 없이 내 힘으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은 단 한 분도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성전이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내가 속한 그곳에서 나 한 사람이 예수님의 권위를 받고 그곳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기로 결단하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나와 내가 있는 곳이 기도하는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1. 내 속의 강도를 내쫓아야 합니다. (45-46절)
성전이 예수님의 내 집,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당시 성전의 제사 제도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부패로 인해 오염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이 나오는 동행 구절 마태복음 21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나의 유익을 구하며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회에, 가자의 유익을 감춘 채 기도하는 집 주님의 집에 나의 유익, 나의 복을 구하며 기복으로 오는 발걸음이 강도의 발걸음이며 하나님의 자녀보다 세상의 자녀로 키우며 주의 일꾼이 아닌 돈과 성공의 일꾼으로 가족들을 붙이는 것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장사하는 네가 아니냐고 물으십니다.
저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승승장구의 정점에서, 거식증과 알콜중독과 외도로 정점을 찍어 준 아내라는 가해자때문에 피해자로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나는) 절대 장사하는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이혼당하지 않으려고 당시 제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던 것처럼, 끈질기게 제게 붙어서 이혼하지 않으려는 아내가 본문의 장사하는 자들처럼 저를 사기 위해 공동체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이제 나만의 집을 새롭게 만들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했던 집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은 벌어올 테니, 아들 공부는 알아서 아내가 확실히 시켜서 내가 못 다 이룬 대학교수의 꿈과 세상에 복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개업의로서의 삶을 끝내는 것이 소원이 돠어, 그동안 가보지 못한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며 살 수 있도록 재테크를 공부하며 돈을 불리고 자녀를 성공시키는 정보력으로 세상에 발빠른 아내를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집이 어떤 집이었을까요? 바로 오늘 말씀의 강도의 소굴입니다. 강도의 소굴을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기 위해 아픈 아내를 주셨는데, 아내가 알콜중독이 되어 끊임없이 자살시도를 하는데도 제가 교회에 오지 않으니 외도의 정점까지 찍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아내를 내쫓을 기회로만 여기며 오히려 이혼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에 왔으니, 그 또한 제 속의 강도였습니다.
이혼을 접었지만 그 다음은 아내의 별 낫는 것이 목적이 되어 교회를 이용하는, 두 번째 강도로 이어졌습니다. 어떤 간증에도 은혜를 받기 보다, 내가 왜 편히 쉬고 누려야 할 이 시간에 여기서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저런 죄 안 짓고 열심히 살아 온 내가 저렇게 아픈 아내를 만나 여기에 앉아 있으니 상 중에 최고 상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외쳤습니다. 그 모든 주장은 강도의 소굴을 만들지 못해 억울했던 장사하는 자의 논리와 주장이었으니, 내쫓으셔야 마땅한 것은 바로 제 속의 강도들이었습니다.
Q.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내 속의 강도는 무엇입니까?
2. 날마다 귀를 기울여 가르치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47-48절)
저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이 가득차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지만, 목장을 통해 공동체 지체들을 통해, 수요예배와 주일 예배를 통해 날마다 구속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죽이려 꾀한 지도자들처럼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당시 목자님에게 악을 고래고래 쓰고 교회를 박차고 나가 모든 지체들을 차단하고 스팸처리 했습니다. 내 뜻대로 마음대로 살 수 없으니 그저 떠날 명분이 필요했고, 지도자들처럼 가룟 유다처럼 말씀도 공동체도 예수님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사탄의 생각에 가득차서 어떤 설득의 말도 들리지 않았고, 분명 위로도 받았고 찔림도 있었던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 푸른 초원 위에서 굿샷! 을 외치며 곮를 친 다음날, 허리디스크 파열로 응급수술을 받는 사건이 왔습니다. 철저히 건강을 스스로 체크하며 나 혼자 잘 살아볼 것이라도 장담하던 제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게 되니, 저주처럼 올 게 왔구나. 이게 그 무서운 나를 부르시는 사건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응급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는 수요예배 떄 모든 성도들이 함꼐, 이 사건이 구원의 사건이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구속사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이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우리집에 오시도록 끊입없이 수고하는 그 사람과 환경을 죽이려고만 하십니까. 만약 내 옆에 그렇게 나를 죽이고자 하고 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지도자가 있고 가족이 있다면, 48절에서 그들이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내가 귀를 기울여 듣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혼자는 안 됩니다. 백성이 다 들어야 합니다. 뭉처야 합니다.
제가 없는 공동체에서 아내가 수많은 중고등부 아이들과 그 가정, 목장과 부서에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들의 수를 늘리고 있었고, 어린 아들이 동역자가 되어 주일이면 하루종일 엄마 옆에 붙어 휘문고등학교에서 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백성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도의 힘이 컸기에, 디스크 사건이 임했을 때 더이상 우리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막을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만 듣지 마시고 공동체에 들어가시고 공동체 안에서도 또 공동체를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그리고 끊임없이 예수를 죽이라는 나의 지도자가 있다고 해도,그 지도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 자리를. 인정해 주며 예수님도 끝까지 기다려주신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Q. 나는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인가요? 절대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며 꼬투리 잡아 죽이려고만 하는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인가요?
Q. 내 옆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나는 백성을 모으고 있습니까?
3. 하늘로부터 오는 권위를 받아야 합니다. (20장1-2절)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해 영원히 살길이 열리고 하나님과 막힌 관계가 열리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 내용에 대해 묻고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반복해서 말합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를 내쫓으시며 강도의 소굴이 된 그곳을 정화하시기 위한 개혁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그 체제가 유지되어야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제사와 예배보다 물질과 욕심에 취한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구속사적인 큐티묵상을 통해 진정한 개혁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느냐 따지는 사역자님들이 목회자세마니에 오신 분들 중에도 있었습니다. 무슨 자격으로 평신도가 양육을 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강대상에서 수요예배 인도를 하느냐고 하실 때, 저희 가정이 살아난 이야기를 합니다.
삶을 포기하라 했던 아내와 그런 아내로 인해 힘들어 복수하는 마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던 제가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찾게 된 이런 일, 깨어진 가정에서 상처로 병들 수 밖에 없었을 아들이 말씀 안에서 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세상과 구별된 가치관으로 성장하게 된 이런 일, 이것이 아니었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늦둥이까지, 11년 터울로 주신 기적같은 이런 일. 삶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들교회 종류별로 얼마나 풍성하게 이어지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권위와 권력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유대 기득권이 외치는 그들의 권위는 인간이 부여한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은 자신의 의지와 목표를 강제적으로 사용하기에 이기적으로 사용되기 쉽지만, 영적 권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목적으로 두기에 날마다 죽이려는 사람이 있어도 예수님처럼 또 찾아가고,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 비난을 들어도 또 대답하며, 나의 감정과 생각과 판단을 멈추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어떤 환경도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내게 맡기셨다는 책임감으로 끝까지 버틸 힘을 하늘에서 공급받는 것이 영적 권위를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결국 사명. 때문에 그 권위를 주시는 것이니 영적 권위는 십자가지고 죽는 권위이고 나의 자아를 죽여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권위입니다.
Q. 나는 무슨 권위로 어떤 일을 하나요?
Q. 빼앗기기 싫은 권력, 갖고 싶은 권력은 무엇입니까?
4. 성령의 의논을 통해 대답할 때 이르시되의 응답을 듣습니다. (3-8절)
자격을 따지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또 대답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르치시며 가르치시니라는 단어만큼 은혜가 되는 단어는 3절의 예수님의 대답과 8절의 이르시되입니다. 우리에게 무섭고 두려운 시기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이 길게 이어지는 때입니다. 대제사장들이 끊임없이 죽이고자 꾀하는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4절 요한의 세례를 통해 대답하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바로 이런 대답이 성령의 지혜로 올무에 빠뜨리려는 그들을 올무에 빠지게 하는 대답입니다.
성령의 의논은 구원을 위해 살리고 세우는 의논인데 예수님을 모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의논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몰아가려다 정작 자신들이 신성모독죄를 인정하게 되는 올무에 빠지게 되었고 그 불안함을 만일의 사단으로 두려움이 증폭됩니다.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깨달았어야 하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돌로 치며 정죄하려다 그 정죄를 자신들이 받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니 7절,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하며 거짓으로 대답합니다. 이떄라도 솔직하게 대답하기 싫다고 만일 이러면 어떡하냐고 두렵다고 나누었어야 하지만, 자기 생각으로 꽉찬 사람들끼리 의논을 하니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날마다 옳고 그름으로 따질 것도 많고 자꾸 걸려서 넘어가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오늘 큐티인 본문 세 번째 대지의 제목이 대답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으로 쓰여저 있지만 사실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화가 나서 입을 닫고 상대를 무시하는 그런 침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도 제 수준이 되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모두 다 대답해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마치 엄마의 관심을 바라는 어린 아이처럼 저도 야단쳐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이르지 아니하실 거라 말씀하시는 그 이르시되가 사랑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그러니 그 이르시되를 듣기 위해 예배의 자리, 말씀의 자리에서 듣고자 하는 마음, 설득되고자 하는 자세로 듣고 솔직하게 고해야 합니다.
어떤 예상치 못한 음성과 모습으로 다가오더라도, 그 이르시되의 말씀과 응답이 저와 모두의 거룩을 위함임을 알기에, 주님의 침묵이 아닌 이르시되가 제 삶에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죽이는 의논이 아닌 살리는 의논, 세상의 의논이 아닌 성령의 의논을 하는 제가 되어 많은 분들을 근심케 했던 시간들을 갚아나가야 함을 느낍니다.
Q. 나는 누구와 어떤 의논을 하나요?
Q. 나는 사랑으로 말을 아끼나요? 무시함으로 침묵하나요?
Q. 주님의 이르시되를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