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5년 3월 30일 (일요일)
말씀: 누가복음 19장 45절~20장 8절
제목: 기도하는 성전
설교 김성철 장로님
오늘 왜 이 자리에 김성철 장로님께서 서 있는지 오늘 큐티 본문 누가복음 20장 2절을 통해
먼저 텔링하고 가겠습니다.
20절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정말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이 한 말을 장로가 된 김성철 장로님이 묵상을 하고
이 주일 설교 자리에서 나눔을 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의 권위로 김성철 장로님 뿐 아니라 이 곳에 한 분, 한 분, 이 앉아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김성철 장로님은 오늘 말씀 19장 45절에 나오는 이미 성전에서 내 쪽기는 것이 마땅한 자, 46절에 나오는 기도하는 곳이 마땅한 고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죄인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김성철 장로님께서 2007년 10월 14일 반드시 이혼하리라 굳세게 마음 먹은 체로 당시 다섯 살이었던 아들과 아내분 께서 휘문 성전 뒤 편에서 앉아 있었고 김성철 장로님 주변으로는 전날 목장에서 처음 만났던 목장 식구 분들이 혹시라도 김성철 장로님께서 중간에 나가 버릴까 걱정을 하시며 에워싸고 포진해서 앉아 계셨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고 합니다.
오직 이혼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 한 번만, 주일 예배 가준다는 약속을 하며 아내와 장모님에게 쓴 이혼 서약서에 도장을 받고 왔던 그날 이후에도 끊이 없이 에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던 김성철 장로님께서 2025년 주일 예배의 자리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서있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권위이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 각자가 성저이기에 오늘 말씀을 통해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기도하는 집이 될 가정과 목장 교회와 나라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성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 속의 강도를 내 쫓아야 합니다.
45절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46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성전이 예수님의 내집 기도하는 집인데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당시 성전의 제사 제도는 유대 종교자, 지도자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로 의해, 부패로 인해 오혐이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이 나오는 병행 구절 마태복음
마태복음 21장 12절
12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여기 말씀을 보시면 알 수 있듯 성전에 돈 바꾸는 사람들 비둘기 파는 사람들처럼 나의 유익을 구하며 경건을 나의 이익의 재료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오는 백성들에게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로마 화폐를 성 전세로 내는 것이 우상숭배이니 로마 화폐를 성전 화폐로 바꾸어 내야 한다며 투명하게 계산하지 않고 부당한 이득을 취해 돈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성전에 올 때 멀리서부터 재물을 가져와야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성전 앞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밭치던 재물이었던 비둘기를 몇 십배로 팔면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을 통칭해 예배하는 백성이 아니라 장사하는 자들이라고 내쫓으십니다.
이렇게 교회에 각자의 유익을 감춘 채 기도하는 집에 나의 유익 나의 복을 구하며 기복으로 오는 발걸음이 강도의 발걸음이며 하나님의 자녀보다 세상의 자녀로 키우며 주의 일꾼이 아닌 돈과 성공의 일꾼으로 가족들을 붙이는 것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고 장사하는 내가 아니냐고 물으십니다.
적용 질문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내 속의 강도는 무엇입니까?
2. 날마다 귀를 기울여 가르치심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47절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48절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강도의 소굴로 성전에 들어가셔서 직접 부패함을 내쫓으신 예수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날마다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의 기간 내내에 치유와 기적과 이적을 모두 복음 전하기 위해 사용하시며 십자가 죽음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까지 가르치심을 이어가셨고 기도를 쉬지 않고 이어 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의해 자신들의 악이 드러나는 것이 불쾌하고
기득권을 빼앗긴다 생각하며 어떻게든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는 그런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담임 목사님도 목숨을 걸고 사부님 구원을 위해 기도, 하셨기에 사부님이 천국을 가신 이후의 삶은 덤으로 얻은 시간들, 이라고, 하시며 매너리즘에 빠질 수 없이 매일 구원을 위해 가르치시고 복음을 위해 어디든 달려가시는데
요즘은 그런 목사님의 가르치심을 들으며 옳고 그름의 잣대와 세상의 가르침으로 알아듣지 못해 비판하고 공격하며 죽이려고 꾀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김성철 초원지기님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에 가득차 듣기를 거부했지만 목장을 통해 공동체 지체를 통해 수요 예배 주일 예배를 통해 날마다 '구속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꾀하여 죽이려고 하던 지도자들처럼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당시 목자님에게 악을 고래고래 쓰고 교회를 박차고 나가 모든, 지체들을 차단하고 스팸 처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김성철 장로님 뜻대로 살 수 없으니 그저 떠날 명분이 필요했고
지도자들처럼 가롯 유다,처럼 말씀도 공동체도 예수님도 죽여야 김성철 장노님께서 살수 있다는 사단의 생각에 가득차서 어떤 설득의 말도 들리지 않았고
분명 위로도 받고 찔림도 있었던 그동안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는 더 굳세게 마음을 먹았다고 합니다.
교회를 다니던 때보다 더 아내를 핍박을 하였고, 아내가 사랑하는 교회와 공동체를 조롱하고, 비판하며 이래도 아내가 교회를 다니는지를 보려고 다시 강도로 무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백성의 악한 지도자가 바로 김성철 장로님 이였음이 느껴져 회개가 되셨다고 합니다.
악한 김성철 장로님 가정을 완전히 멸절될 뻔한 가정을 예수님 씨를 공동체와 말씀이 살려가고 있는데 나의 백성이 살아나고 기뻐하는 것은 보이지 않고
내가 계획하는 것을 저들이 방해하는구나, 하며
귀신 들린 엄마를 마난 내가 열어주고자 하는 세상의 꿈꾸며, 못살고 공동체 안에 들어가 있는 아들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도 아내도 김성철 장로님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모습은 보신적은 없고
항상 아빠와 같이 교회를 가고 싶다며 아빠를 존경한다며 지도자로서 인정하고 높여 주었다고 합니다.
김성철 장로님께서 어떠한 혈기를 부려도 가족의 백성들은 김성철 장로님이 예수님을 못 만나서 그런 것을 당연히 여기고, 마음 아파하며 세상에서 수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사랑이 가득한 긍휼의 마음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성철 장로님 백성, 가족들이 교회를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 푸른 초원 위에서 굿샷을 외치며 골프를 치던 다음날 허리디스크 파열로 응급 수술을 받는 사건이 왔다고 합니다.
철저히 건강을 스스로 체크하며 김성철 장로님께서 혼자서 잘 살아볼 거라고 장담하던 김성철 장로님께서 수술대 위에 누워 있게 되니 저주처럼 옳게 왔구나
기게 그 무서운 김성철 장로님을 부르시는 '사건'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김성철 장로님께서 출근을 하고 나면 매주 김성철 장로님 집에서 목장을 하며
목장 식구분들이 김성철 장로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하였고
거기에 더하여 아내분께서는 김성철 장로님이 병원문을 닫아서라도 김성철 장로님이 교회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지하 단칸방이라도 기쁘게 갈 준비가 되었다라는 무서운 기도를 김성철 장로님 허락도 없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성철 장로님께서 응급 수술 받게 되었을 때는 수요 예배 때 모든 성도님들께서 함께 이 사건이 구원의 사건이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구속사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이십니까?
아니면 지도자들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뭔가 풀편하다고 없애버려야 할 것 같은 그 사람을 없애고 예수님이 우리집을 오시도록 끊임없이 수고하는 그 사람과 그 환경을 죽이려고만 하십니까?
만약 내 옆에 그렇게 나를 죽이고자 하고 예수님 믿기를 거부하는 지도자가 있고 가족이 있다면 48절에서 그들이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게 하는 방도를 알려 주십니다.
48절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즉 내가 귀를 기울여 듣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혼자는 안 됩니다.
백성이 다 들어야 합니다.
뭉쳐야 합니다.
김성철 장로님도 마냥 핍박하는 김성철 장로님이 무서워 아내가 동동체를 떠나 혼자 뭔가를 해보려고 했다면 눈도 깜빡 하지를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다 귀를 기울여 들으며 기도하며 잠잠히 기다리니 폭풍전 고요를 느끼듯 잠시뒤 뭔가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성철 장로님이 없는 공동체에서 아내가 수많은 중고등부 아이들과 그 가정 목장과 부서에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들의 수를 늘리고 있었고 어린 아들이 동역자가 되어 주일이면 하루 종일 휘문 고등하고 교회 예배에서 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백성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기도의 힘이 컸기 때문에 결국 디스크 사건이 임했을 때 김성철 장로님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막을 방돌를 찾지 못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씀만 듣지 마시고 공동체에 들어가시고, 공동체 안에서도 또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끈임없이 예수님을 죽이라는 나의 지도자가 있다고 해도, 그 지도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 자리르 인정해 주며 예수님도 끝까지 기다려 주신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성철 장로님같은 대제사장 서기관 같은 그 사람이 자기 밖에 모르는 지도자가 그저 성전에서 내 쫓인 채로 끝나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집 안으로 그 백성 안으로 등어올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들을 모으고 연합하고 하나되는 기회로 만드셔야 합니다.
적용 질문
나를 귀를 기울여 듣는 백성인가요? 절대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꼬투리 잡아 죽이려고만 하는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인가요?
내 옆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나는 백성을 모으고 있습니까?
3. 하늘로부터 오는 권위를 받아야 합니다.
20장 1절~2절
1절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절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해 영혼이 살길이 열리고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가 열리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 내용에 대해 묻고 궁굼해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반복해서 말합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강도의 소굴이 된 그곳을 정화하시기 위해 개혁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그 체제가 바뀌지 않고 유지되어야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사람들 이며 제사와 예배보다, 물질과 욕심에 취한 유대 지도자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백성들이 자신들의 타락과 부패함을 다 알게되는 위기감과 지금까지 싸아온 권력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비리로 하나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도 모자라 장로들까지 함께 예수님께 자격을 묻는 바탕에는 사내들인 공해가 인정하지 않는 권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 권위는 결국 자신들에게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따지는 것입니다.
구속사적인 큐티 묵상을 통해 진정한 개혁이 일어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위적인, 해석을 하느냐...???
따지는 사역자님들이 목회자 세미나에 오시는 분들, 중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자격으로 평신도가 양육을 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강대상에서 수요 예배 인도를 하느냐고 하실 때 김성철 장로님 가정이 살아난 간증을 하신다고 합니다.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아내와 그런 아내 일로 힘들어 복수하는 마음으로 자살을 생각을 했던 김성철 장로님께서 하나님을 먼너 사명을 찾게 된 이런 일
깨어질 가정에서 상처로 병들 수 밖에 없었을 아들이 말씀 안에서 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세상과 구별된 가치관으로 성장하게 된 이런 일
이 교회가 아니였다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누똥이까지 11년 간격의 기적 같은 이런 일
삶으로 드러나는 한나님의 역사가 우리들 교회 장르별로, 종류별로, 얼마나 풍성하게 있었는지를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권위와 권력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유대 기득권이 외치는 그들의 권위는 인간이 부여한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권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은 자신의 의지와 목표를 강제적으로 사용하기에 이기적으로 사용되기 쉬지만 영적 권위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목적으로 두기에 날마다 죽이려는 사람들이 있어도 예수님처럼 또 찾아가고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 비난을 들어도 또 대답하며 나의 감정과 생각과 판단을 멈추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어떤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내게 맡기셨다는 책임감으로 끝까지 버틸 힘을 하늘에서 공급받는 것이 영적 권위를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결국 '사명' 때문에 그 '권위'를 주시는 것이니 영적 권위는 십자가지고 죽는 권위이고 나의 자아를 죽여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권위입니다.
그런 권위가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런 일인데 대제사장 장로들처럼 아무리 가까이 와서 보고 들어도 권력만 붙잡고 싶고 하늘로부터 받는 권위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십자가 지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누리고 싶은 것을 예수님의 사역으로 포기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사역은 그저 그런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적용 질문
나는 무슨 권위로 어떤 일을 하나요?
빼앗기기 싫은 권력, 갖고 싶은 권력은 무엇입니까?
4. 성령의 의논을 통해 대답할 때 이르시되의 응답을 듣습니다.
3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자격을 따지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또 대잡을 하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가르치시며'
가르치시며 단어만큼 은혜가 되는 단어는 3절에 예수님의 대답과 8절에 이르시대, 입니다.
영적 암흑기에는 하나님이 등장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마치 상관을 하시지를 않은 것처럼 내버려 두시는 것처럼 두신는 때가 사사기에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유다도 택자이고 예수님의 조상이고 하나님께서 찾아와 다시 말씀해 주시지만 죄를 짓는 당시 침묵하셨을 때가 있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무섭고 두려운 시기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침묵이 길게 이어질 때입니다.
대제사장들이 끊임 없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는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4절 요한의 세례를 통해 대답하십니다.
4절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바로 이러한 대답이 성령의 지혜로 올무에 빠뜨리려는 그들을 올무에 빠지게 하는 대답입니다.
5절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6절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인정하게 되면 요한이 선포한 에수님의 신적 권위를 믿는 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의논은 살리고 세우는 의논인데
예수님을 모르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의논은 에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아가려고 하다가
정작 자신들이 신성모독죄를 인정하는게 되는 올무에 빠지게 되었고 그 불안함은 만일의 사단으로 두려움이 증폭됩니다.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깨달았어야, 하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돌로 치며 정죄하려고 하다가 그 정죄를 자신들이 받게 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7절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우리에게 말하라며 당당히 따지던 그들이 정작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요한의 세례로 반문하시며
예수님이 세례 요한이 선포했던 그 메시아임을 알려주시는 질문에 나는 모릅니다, 하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거짓말입니다.
이때라도 솔직하게 대답하기 싫다고 만일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두렵다고 이야기를 나눔을 해야 하지만 자기 생각으로 꽉찬 사람들끼리 의논을 하니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날마다 옳고 그름으로 따질 것도 많고 자꾸 걸려서 넘어가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이 은혜가 되십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계속 따지던 자녀가 거기서라도 인정하며 죽겠다던 자녀를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피할 때 아빠와는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하는 그 마음 말입니다.
내 말을 알아듣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며 또 기다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자신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를 향해서도 차별 없는 사랑으로 아파하며 십자가 지신 그 마음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야단을 쳐도 가룟 유다를 향해서는 야단조차 칠 수 없어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적용 질문
나는 누구와 어떤 의논을 하나요?
나는 사랑으로 말을 아끼나요? 무시함으로 침묵하나요?
주님의 이르시되를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김성철 장로님 간증
편집
공동체 기도 제목
A.
신교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게서 신교제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듣고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 매일 잘 들으며 가는 하루, 하루를 지내기를 기도합니다.
B.
1. 굿데이 오늘 하루를 잘 지내기를: 수영운동 잘 하고, 공동체 지체과 잘 지내며 관계를 잘 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2. 취업 이력서 제출한 결과가 잘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C.
1. 회사 동료들과 함께 일본 워크샵 여행을 다녀오며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평안히 안전한 여행을 잘 갔다, 오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