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5년 3월 9일
본문: 열왕기하 18:20~27
제목: 상한 갈대
설교자: 김양재 담임목사님
1. 의심에 빠질 때 나아가 예배해야 합니다.
네가 의뢰하는 그 의뢰가 무엇이냐? 이것이 저번 주 본문 마지막이었다. 의지와 의뢰가 같다하였는데, 오늘은 8번이나 나온다. 사람들이 내가 뭘 의뢰하는지 상대방, 원수가 안다. 그래서 랍사게 말로 히스기야에게 외친다. 아버지 아하스의 악함으로 깨어있게 하시더니, 쳐들어오니 히스기야는 계속 의뢰하게 하신다. 편하면 누가 의뢰하게 하시나. 여러분이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은 아직 세상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맞으니 히스기야에게 조롱이 시작된다. 랍사게의 말이 이어진다. 누굴 믿고 덤비는거야?라고 묻는다. 애굽이 믿는 분이라 했다. 애굽이 반 앗수르 동맹의 뒷배였다. 앗수르가 애굽까지 공격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애굽이 눈치가 9단이다. 작은 나라들을 뒤에서 그렇게 조종해서 앗수르에 반대하게 해 놓고는 정작 앗수르 오니 입을 씻었다. 도와주는 게 쉽지 않다. 한미 방위조약을 이승만 대통령이 얻은 것은 전쟁으로부터 지킨 비결이다. 우크라이나를 보니 미국이 광물 협정만 하고 안전보장은 하고 싶지 않아한다. 그런데 70년동안 우리나라 전쟁이 없었다. 억지로라도 미국은 못 도와주겠다한다. 이제 애굽은 도와주겠다는 약속은 언제했나 할 정도로 애굽에 쳐박혀서 나오지 않는다. 애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라고 부른다. 뒤에서 뒷배가 되어줄 것 같다가 안 도와주는 것이 상한 갈대다. 이게 애굽의 문제가 아니라 유다의 문제다. 몸에 밴 애굽의 습성이 없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예라도 그 나라가 잘 살아서 늘 기대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었다.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유다가 애굽에 딱 달라 붙으나, 애굽은 도와줄 듯 하면서 안 도와준다. 애굽을 의뢰했던 유다가 상한 갈대이다. 밑동 잘린 나무다. 유다가 이렇게 자기 모습 못 보고 앗수르 왕 말만 들으면,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 아닌가? 라고 의심이 된다. 상한 갈대는 멀리서 보면 멋지다. 가까이 보면 아니다. 정치천재 심리천재 앗수르 왕은 22절에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의뢰한다 한다.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고 의지한지 안다. 하지만 다 아는데 하나님을 모른다. 다신론자인 그는 하나님도 히스기야를 더 이상 돕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히스기야 상황이 하나님만 경외했는데 갑자기 앗수르 쳐들어와서 망하기 직전이다. 하루 아침에 유리에서 불리고 갔다. 바로 이 상황에서 하나님도 널 돕지 않는거야 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애굽도 의심이 되는데,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의심이 되겠나. 가뜩이나 약한 믿음을 무너뜨린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나? 놀랍게도 앗수르 왕이 힌트가 된다. 네가 여호와만 예배하라 했잖아. 네가 오직 성전에서만 제사하라니 이렇게 된거야 라고 한다. 주일에 공부 안하고 합격했을텐데, 목장가는 시간에 투잡했으면 빚을 안 졌을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고난 앞에서 의심 빠뜨리고 상한 갈대 의지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염려는 자기가 교만해서 염려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나님 자리보다 더 높이 있으니 염려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불러서 함께 묶어서 불러주신 교회로 가는것이다. 날마다 산하에서 예배 드리며 용서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용서 안하는 게 특징이다. 이게 산당예배다.
[적용질문] 자꾸 의지하고 싶은 나의 애굽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의지하는 지팡이가 상한 갈대라서 슬픕니까, 내가 상한 갈대라서 슬픕니까? 주일, 수요, 목장 예배에 어떤 마음으로 나아갑니까?
2. 절망에 빠질 때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은 늘 절망하고 의심에 빠지는 것이 전공이다. 랍사게는 유다 백성에 의심에 빠뜨렸다 생각해서 조롱의 목소리를 낸다. 청하건대 플리스 라고하지만, 사실은 놀리는 것이다. 조건은 말탈 사람, 너희는 말 탈 사람을 한 명도 낼 수 없다고 조롱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서 여기를 어떻게 왔나? 라면서 랍사게는 하나님까지 조롱한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가 예수살렘을 멸하러 왔다 한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나님을 의뢰하지도 않고 사람 의지하면 남유다 너도 망한다 한다. 아하스 왕 때부터 이사야 선지자가 계속 보냈다. 설마 그러시겠어? 라고 하지만, 알고는 있었다. 여기서 늘 들어도 말을 안 들리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았지만 말은 들었다는 것이다. 설마설마한다. 진짜 앗수를 군대를 포위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셨다 하니 히스기야와 유다백성은 경악했다. 깊은 절망에 빠졌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다. 사탄은 호시탐탐 우리를 삼키려 한다. 의심만으로 부족하다. 그것은 퀘스쳔 마크다. 그래서 의심을 넘어 절망에 빠뜨린다. 절망은 마침표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 앗수르 앞에 의심을 넘어 절망 빠지는 처기가 되었다. 히스기야가 이 의뢰, 하나님을 최후의 보루처럼 믿고 있을지 모른다. 랍사게는 마지막 남은 의뢰 하나, 그것도 버리게 한다. 사탄은 의심과 절망으로 삼키려 한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한다. 아내가 그랬다. 이게 죽음이다. 의심에 빠졌다고 결국 절망에 잠긴다. 절대 들으면 안된다. 우린 자동적으로 기대하고 욕심 나오는 존재다. 문제는 그 대상이다. 하나님만을 원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다. 하나님 아닌 것들을 기대하고 탐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은 없다. 그런데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게 돈, 쾌락, 명예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생은 그저 죽음을 끝난다. 상한 갈대요 밑동 잘린 인생이다. 그런데 왜 성도에게도 절망의 사건이 올까? 왜 하나님은 절망에 빠지게 하는 조롱의 사건을 해석하게 하시나. 뜻을 돌이키게 하는 분이다. 사울 왕을 패하신 것도 계속 경고하시다 심판을 하신 것이다. 하지만 출애굽 때 그렇게 금송아지 섬겼어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살려주신다. 앗수르 군대도 그렇다. 이 때 불과 60년 전에 니느웨 때에 요나 선지자가 외쳤다. 요나가 대충 외쳤는데 느니웨의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니느웨 살려 주셨다. 하나님을 모를 뿐 아니라 대적하고, 원 위치 되어서 나타났다. 정말 깨닫고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내가 처한 형편이 아니다. 사실 그건 하나도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를 택하신 하나님이 어떠한 사실에서 붙잡고 가신다는 것이다. 늘 붙잡고 가시는 것을 알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절망의 사건 허락하신 이유는 하나님께 붙잡아 두시려는 사건이다. 그래서 절망 빠질 때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야 한다. 기도를 통해 정답인 줄 알고 살 때 돌이켜서 내 삶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우리 기도를 늘 말씀을 바탕으로 해야한다. 절망의 사건이 올 때 엎드려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죽겠다가 아니라 주여, 나 좀 살려주세요 하고 부르세요. 주님 저 나중 되었지만 먼저 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해보세요.
[적용질문] 조롱과 무시를 받는 사건이 왔습니까? 그래서 너무 화가 납니까? 너무 절망합니까? 절망의 사건 가운데 환경 앞에 엎드려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습니까? 이번 한 주 어떤 기도를 드리겠습니까?
3. 피하고 싶을 때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장관 세 사람이 랍사세의 치명적 놀림을 들고, 제발 백성은 듣지 못하게 아람 말로 해달라 한다. 상한 갈대인데 상한 갈대라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이미 죽게 될 것인데, 왜 하냐 라고 한다. 최고 엘리트의 생각이다. 히스기야 개혁의 주역들이다. 그가 원하는대로 척척 일을 해줬다. 히스기야 개혁이 가장 성공해서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을텐데, 눈 앞의 모습도 차마 보지 못한다. 말도 듣기 싫다. 내가 듣는 것은 나으나, 백성이 듣는 것은 수치스러워서 참을 수 없다. 주님은 사람이 침묵하면 돌들이 말하게 하신다. 랍사게가 할 말씀을 하게 하신다. 성 위의 사람도 모두 너희와 함께 대변 소변 먹게 된 것을 알게 하라고 한다. 다 굶어 죽을 것이라는 예고다. 경고다. 그런데 랍사게는 이 경고를 지도자만 듣고 왜 백성이 못 듣게 하느냐. 하나님이 랍사게를 통해 지도자의 잘못을 보게 하신다. 구원보다 명예가 중하다. 욕 먹는 게 너무 두려워서 다들 자살을 한다. 절대 하면 안되는 일을 해버린다. 자살은 최악이다. 지도자가 자살하면 안된다. 다 따라한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는 말씀이다. 이걸 히스기야가 말하는 게 아니라 랍사게가 딱 처방을 해준다. 우린 별 인생 없다. 벌거벗고 와서 벌거벗고 간다. 40대 되면 지식, 50대 외모, 60대 되면 외모가 평등해지고 나이가 들으면 죽으나 사나 똑같다한다. 치매가 걸리고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인가. 계속 피하려다 천국까지 피하면 되겠습니까? 직면하기 싫은 일 있을 때 지체들과 함께 나누길 바란다. 우리들교회는 구조 자체가 나눌 수 있다. 힘들고 수치스러운 것을 잘 나누세요.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나누지 말고 양육 잘 받고 지혜롭게 나누자.
[적용질문] 너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듣기 싫습니까? 피하고 싶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공동체에서 믿음으로 나누었더니 자유롭게 된 일이 있습니까?
모임 인원: 목자1, 부목자2, 목원2
모임 장소: 카페 롤링삐삐
기도제목
A
1. 사건 자체에 몰입하지 않고 의심과 절망을 넘어 말씀 앞에 나아가기를
2. 다음 주 이후 수치와 조롱이 있을지라도 잘 받아낼 수 있기를
3. 영육간 강건
4. 오전 중 큐티하기를
B
1.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깨닫는 은혜 주시기를
2. 수업이 많아져 부담스럽기도한데 체력관리 잘 하고 균형 맞추며 갈수있도록
3. 안나오는 목원 마음 열어주시길
4. 목장식구들 모두 신교제 인도해주시길
5. 전세보증금 보전되도록
6. 가족구원
C
1. 주식 손절하고 신혼집 지혜롭게 잘 구하기
2. 결혼준비 싸우지않고 상대방 이해하기
3. 누나네 가족 목장에 붙어갈 수 있길
D
1. 감기 잘낫도록
2. 예배 잘회복하고 공동체에 잘붙어가길
3. 신교제 인도해주시길
E
1. 나 중심적인 생각이 아닌 말씀 앞에 묵상하며 인도함 받을 수 있기를
2. 바로 서 갈 수 있기를
3.믿지 않는 일터, 믿지 않는 가정에서 돌파가 있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