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WITH] 2025.03.02 조동재목장 보고서
제목: 네 의뢰가 무엇이냐? | 의지하고 있는 나의 힘!!
말씀: 열왕기하 18:9-19
담당: 김양재 목사님
삼일만세 운동은 실패 아니고 성공. 성경적 관점으로 해석해야 우리나라에 주신 고난도 축복도 해석할 수 있음. 조선왕조 독재에서 갑자기 자유민주주의 들어오면 헐 하니까 일제강점을 일정기간 허락하셔서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하신 듯.
어디로 가든 형통하였던 히스기야도 힘들었는데..
우리의 진정한 의뢰는?
1: 내게 유리한 상황이 아님.
9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10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11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당한 것이 다시 나옴. 히스기야 4년때. 히스기야 관점에서 기록했다는 표시. 사마리아 함락 사건을 히스기야 관점에서 보자. 모든 사건을 믿음의 관점에서 보자. 이것이 구속사.
아버지 아하스와 다스렸는데 아빠 너무 이상해. 앗수르식 제사 드리고 굽실거리고, 자기 아들들을 불살라 바치고. 이런 조공 바치던 북이스라엘은 성이 함락되고 사람들 사로잡혀 멀리 끌려갔다고 다시 반복함. 세상에 정성껏 종노릇 하다 사장 심기 건드려서 망한 자가 한둘이 아님. 사장한테 굽실하는데 아들은 죽임. 욕함. 아버지 죽이고 싶은 아들들이 한 둘이 아니더만 히스기야는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님 백성이 왜 망하게 되었는지 생각했겠지.
12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주님 말씀 안 듣고 명령 안들은 것이 문제. 모든 문제의 답을 알았다면, 답 대로 해야해.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히스기야는 아버지 아하스가 죽자마자 강력한 종교개혁 강행. 그래서 히스기야에게는 플랜 B 없었어.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니 하나님 연합하시고 모든 개혁 성공, 어디로 가든지 형통함.
이런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할래? 예수 잘 믿고 봉사 하고 다 했더니 범사가 잘 되었다고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된 것 같다 이럴 수 있을까?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던 때, 승승장구 하던 때, 스스로 나갈 필요도 없다고 느끼던 때, 온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을 때, 모든 것에 장담하던 때, 성공의 정점에 있던 때, 다윗이 가장 역사에서 수치스러운 범죄를 저질렀어. 이름도 빛나는 다윗이 그랬어.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에 놓이면 누구라도 타락함. 장담할 자 없음. 구속사가 이것임.
세상 생각과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 구속사야. 인간이 교만한 존재니까.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 주장. 맹자: 덕과 의로 다스려라. 순자: 교화시키기 위해 법치주의로 다스려라. 기독교 사상 아니고 모두 인본주의적임. 행위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철학 같은 것. 모든 문제를 환경에서 찾는 것. 법이 틀렸다고 하고, 너는 틀리고 나는 옳다고 하는 태도. 인본주의의 끝판왕. 주님보다 내가 옳다 하는 것. 그런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런 것에 끌림. 더 개념 있어보이고 멋져보이니까. 태어날 때부터 교만하니, 조금만 내게 유리한 상황이 되면 이 상황에 의지해서 교만 교만.
히스기야도 막 형통하니 높아지잖아. 그런데 하나님이 아주 사랑하셨던 듯.
13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히스기야의 단독 통치 14년 때 말함. 최고조의 형통의 때. 그런데 이 때 앗수르가 쳐들어옴. 앗수르왕 살만 에셀, 사르곤 왕 죽고 잠시 약화되었을 때 히스기야는 이 때가 전복할 기회라고 여러 자들과 동맹 맺었어. 새 왕인 산헤립이 다시 강화사면서 유다 점령 시작함. 히스기야가 이미 점령했던 블레셋 땅들도 이때 빼앗겼을 것. 앗수르가 아니 감히 나를 배반하냐고 다시 쳐들어옴. 믿는 우리는 믿음 없는 집안 사람들에게 쳐들어 옴 받을 수 있어.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억울할 수 있어. 하나님만 의지하고 연합했는데 왜? 좀 잘 사나 했는데 왜?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됨. 이 태도는 이 유리한 대접을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주님이 이걸 다 뺏어간다고 생각하니까, 주님보다 내 환경을 더 의뢰하니까 기복이고 인본주의적인 것. 주님께 반역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은 택자를 이런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갑작 스러운 사건을 통해서 유리했던 것을 불리한 상황과 어려운 환경을 주시면서 반역의 트랙에서 멈춰 세우심. 이건 네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고, 재산을 의뢰하냐, 남편이냐, 지위냐, 이런 것들은 의뢰할 대상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임. 사건이 오지 않으면 평생 몰라. 문제가 생겼다고 낙심하지 말고, 극진하신 주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이고 특별한 사랑인 것을 알도록 해. 더 떨어지기 전에 세우시는 사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 의뢰할 대상을 잘 찾아.
적용: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내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래서 너무 우쭐해, 너무 낙심해?
하나님이 나를 교만의 낭떠러지 앞에서 멈춰 세우신 사건은 뭐야?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보지말고. 그 환경 가면 내가 더 하다. 구속사 이거야.
2: 내 힘도 아님.
14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역대하 32장에서는 앗수르가 쳐들어온다니까 히스기야는 최선을 다해 대비해. 성밖 시내도 막고, 포위공격을 어떻게 북이스라엘이 당했는지 생생히 기억하니까 더 열심히 함. 그런데 최강 군대 앗수르 앞에서 이런 것도 아무 힘이 없었음. 군사의 힘은 히스기야가 의뢰할 대상이 아니었어. 삽시간에 라기스, 예루살렘에 버금가는 도시인데 삽시간에 점령당함. 예루살렘에서 서남쪽 40 몇 키로미터. 예루살렘 방어의 마지노선인 도시였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넘어감. 위기. 바로 라기스로 사신을 보내 항복문서 전하고 내가 범죄하였다고 해. 내가 죄 말할 때 영혼없이 하면 안됨. 구체적으로 말해야 해. 그냥 산헤립이 무서우니까 너네 반하는 정책 한 것 잘못했다고 그냥 막 던져. 비굴비굴. 요구하는대로 다 바칠 테니 공격만 말고 돌아가줘 함. 그래도 형통한 시절을 보내며 모아놓은 돈이 있으니까 돈으로 막길 바람. 앗수르에 현재 1500억 가치의 돈 제시.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하게 큰 돈. 살려면 바쳐야 함. 힘껏 쥐어짜서 영끌해서 바치지.
15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16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잠시라도 의뢰했던 돈으로 안 되니, 모든 잔고 다 털어서 마련했더니 그래도 부족해. 성전 문의 금까지 다 벗김. 이 성전 문은 종교개혁의 상징인데, 믿음으로 고백했던 오픈했던 것인데, 벗김. 조금만 힘들어지면 이게 눌러와. 하나님과만 연합하고 의지하기로 했던 것이 담겨있는 문인데, 그런 성전인데 막 치장했는데, 이거 아니라고 필요없다고 위협 앞에 무엇도 안 한다고 하는 것과 같음. 오픈도, 목장도, 뭣도 안해 이것. 돈이라는 가치 앞에서 주님과 한 모든 기억, 믿음, 상징이 다 잊혀져 버리고 모든 것의 끝인 돈을 보게 됨. 교회 나가지 말고 놀러가자, 헌금 말아 이렇게 하면, 기대는 깨지라고 있다고 교회도 나가지 못하게 함.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그랬는데도 더 뺏어감. 히스기야에게 나라를 내어놓을 각오를 하라는 의지를 보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혼하자 이런식 되는 것.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님. 그래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해야함. 앗수르에 조공도 뭣도 안통함. 전적으로 앗수르 앞에 무력함. 형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도 갑작스러운 위기 사건이 찾아온 것. 어떻게 이해가 될 수 있는가? 내 능력과 노력을 다 했는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그러나 인생의 목적은 거룩이지, 행복이 아니야.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만 함. 사람의 약속을 믿고 기대하다가 스스로 뒤통수 맞고 기막혀함. 억울해서 살 수가 없음. 인본주의 사상의 끝은 죽음이고 허무. 그래서 다 죽잖아.
하나님이 만들어가시는 역사는 구속사지 세속사가 아님. 모든 역사는 구속사야. 그러나 그걸 이해하는 우리 사고가 고장났으니 내 중심으로만 보고 하나님 중심으로 보지 않아. 구원이 최고의 가치야. 인생이 구속사라고 믿는 자는 자신을 구속받아야 할 사람, 구원이 필요한 죄인, 이런 죄인을 주님이 살리셨다고 고백하는 자, 당신이 나보다 옳다고 하는 자. 누가 나 쳐들어왔다가 아니라 날 위해 죄의 수고를 한 것이라고 하는 자.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네가 구속사 이어가는 것 봐라. 인본주의적 사고는 안 된다.
성령이 임해야 구속사가 들릴 듯. 구속사는 이기적 아니라 이타적인 것. 너무 모르겠으면, 이타적인 것으로 시작해봐. 세속사는 나만 아는 것. 위기의 사건도 멸망이 아니라 구원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구속사에 있는 사람이야. 내가 의뢰하던 힘이 하나도 안 통하는 사건이 생겼다면, 나를 구속해가시는 하나님이 주신 힘이고 돌이키려고 주신 사건이라고 믿어. 우리의 진정한 의뢰는 내 지식, 학벌, 재산 인맥 인기 뭣도 아님. 모든 고난은 구속사적인 신앙고백을 받아내시려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야.
적용:
내가 아직도 의뢰하고 있는 나의 힘은?
반드시 가지고 싶은 힘은?
그 힘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가?
세상적 관행, 즉 악의 평범성 때문에 뭣도 모르고 악을 행하다가 돌이키게 해 주시는 은혜가 있어. 세속사는 억울하고 분하고 잘나고 교만한 것. 구속사는 내 삶의 결론이라 회개하는 것, 겸손한 것. 승승장구 하다 떨어지는 것은 주님이 날 구원하려는 것. 헛된 것이 없어.
3: 오직 이 의뢰, 즉 하나님 뿐임.
17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인쟈 히스기야 왕을 조롱하면서 불러서 당장 나와 꿇어 이런식으로 함. 예루살렘 모든 주민이 두려워 떨어. 한 사람만 공격하면 아무도 말 안해. 걍 떨지. 랍사게가 이거 잘 알고 히스기야만 계속 공격함. 히스기야는 세 명의 앗수르 지휘관 상대해야함. 랍사게는 앗수르왕을 대왕이라고 막 두번이나 높이면서 너네 뭐 해도 안 된다고 세상의 관점으로 막 히스기야를 무너뜨리려함.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고 말해. 말하자면 너 뭐 믿고 까불어? 이런 소리임.
랍사게가 아는 것, 이스라엘이 의뢰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는 알겠는데, 뭐든 앗수르 편인데 다른 의지하는 하난 뭐지 함. 조공 말고 식민지 되라, 입으로만 전쟁할 수 있냐고 묻는것임. 의뢰 라는 히브리 단어는 의뢰하다 의지하다 명사형. 구약에서 3번만 쓰였는데 2번이 히스기야한테 쓰임. 그런데 랍사게가 또 썼어.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어보이는 히스기야를 보면서도 뭔가 있어보이는 쟤는 뭐지 싶어서 랍사게가 의뢰라는 단어를 써서 묻는거야. 적국의 장관이 저 뭐 있어보임을 알아보고 의뢰 라는 단어를 쓴 것임. 뭔가 몰라서 의뢰 라고 물어본 것이지. 세상 사람이 물어볼 때, 뭘 의뢰하고 있는거지?
히스기야가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했다고 하는데 의지했다는 단어는 의뢰하다와도 같아. 하나님을 다른 것보다 더 의지하고 의뢰했다는 것. 그런데도 실수할 수 있어. 앗수르라는 거대 세력 앞에서 하나님 잊고 내 유리한 것을 가지고 협상하려 할 수 있어. 그런데 다 없어지면 하나님 남아.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어. 하나님만이 진정한 우리의 의뢰의 대상이야. 살 수도 없는 환난 속에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으셔. 항상 보고 계셔. 진정한 의뢰가 하나님 뿐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주신 사건이니, 구원의 사건이야. 오직 하나님 뿐이십니다 라고 의뢰가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기를.
적용:
내 의뢰 목록 다섯가지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몇 번째야?
지금 일어난 사건 통해 네 의뢰가 뭐냐고 하는 주님 질문에 뭐라고 답할래?
날 힘들게 한 사람과 사건으로 인해 내가 홀로서기 하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가 임해 그 원수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니?
[기도제목]
희동이~❤️
1. Cbs성경동화 보기
2. 하나님 사랑 깨닫기
3.목장 식구들 하나님 축복 받기
둘리~❤️
1. 불안과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2. 목장 식구들의 영적 육적 건강과 필요를 채워주시고 구원의 손길로 품어주시길
마이콜~❤️
나는 호르몬의 노예인데, 1년의 반이 힘들고 그 중 며칠은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이렇게 주일을 빠질 때가 있는데, 너무나 변명 같고 그런데 진짜 너무 힘들고, 또 일은 어떻게든 하려고 하면서 못간다가 되나 라며 죄책감이 엄청 들어요. 아무도 이해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나약한 자의 변명으로 느껴질꺼라고 믿고, 나 스스로도 인정을 못하니 말하기도 싫은 문제에요.
이번 주 부재로, 이제 말씀 듣고 정리하는데, 회개보다 왜 묘한 불편함과 눌림만 있나 했더니, 내가 눈치를 보는 건 사람의 이목이더라요. 목장, 목자의 눈치를 보고 책임감의 무게에 중심을 둔 것 같아요. 내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닌데, 때마다 불편하고 회피하길 바라요. 그런데 이걸 스스로 어디까지는 죄이고 어디까지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다 라고 나름 정하려는 것 자체가 내 유리한 상황/마음/회피능력(?) 을 이용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정말 못 움직이겠을 때나 좀 할만한 때나 스스로도 못 정한 애매한 면죄부 degree에 눌리다 연락도 안하고 주일을 넘겨버리는 것 같고.. 지속적으로 나의 안 됨을 100% 옳고그름으로 따지면서 주님께 의뢰하지 않았구나 싶어 미안해요. 차라리 못 하더라도 연락 잘 하고, 힘 주시길 중보부탁 하는게 좋겠구나 싶은거에요.
l 되건 안 되건 목장에 연락하기.
l 이런 때마다 움직여 갈 수 있는 힘 주시기를 기도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