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일 설교
2025.01.26 주일예배 열왕기하 17:9~18 돌이켜 떠나라
뉴스에서 그린란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섬입니다. 면적의 80%가 빙하라고 합니다. 이 그린란드를 미국은 사려하고, 덴마크는 안파려고 합니다. 나사 과학자들의 조사에따르면 빙하는 수백년간 녹아서 점점 약해지다 2~3년만에 붕괴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붕괴하는 그 순간을 티핑 포인트 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순간도 이런 티핑 포인트 입니다. 조금씩 쌓이던 악이 결국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자세히 기록하셔서 보여 주십니다. 이 악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악에서 돌이켜 떠나라 합니다. 돌이켜 떠나려면
1.점차로 행하는 불의를 알아야 합니다.
9~12절
지난 주 북이스라엘이 망합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 땅 2/3를 앗수르에 빼앗깁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사로잡혀 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엄청난 사건 입니다. 수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당시에는 내일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절망의 사건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망한 사건 자체는 간단하게 한절로 말하시는데, 하나님은 그 이유는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판결문 선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듣고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길게 반복해 말씀하시니, 우리도 반복하여 들어야 합니다.
9~12절은 한 문장입니다. 문장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죄가 수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잊지 말라고 한 단어로 요약해주십니다. 불의 입니다. 하나님을 배역하는 일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의를 점차로 행했다고 합니다. 예전 개역한글에서는 가만히 행했다고 합니다. 감추고 몰래 했다 합니다. 불의한 일은 드러나지 않으면 멈출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악이라도 가만히 몰래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걷잡을 수 없습니다. 모든 중독이 그렇습니다. 저절로 점차로가 됩니다. 처음에는 바늘만 했던게, 젓가락, 방망이 점차 커져 나무처럼 되고, 바알의 목상처럼 되며 기복의 바알 기둥을 세우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처음부터 뜨거우면 안들어가는데, 차츰 뜨거워지니 삶아지는 지도 모르고 죽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사소해도 점차로 행하는대로 결론이 나는 것입니다. 처음의 바늘은 생각하지도 않고, 처음부터 기둥이었던 것 처럼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세운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행복, 업적, 인기, 권력을 세우려는 모습입니다. 바벨 탑을 높이 쌓아서 이름을 내려는 우리의 기복적인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하나님을 떠나 바벨탑을 높이 쌓는 이방인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그래서 12절 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사람처럼 산당과 목상, 온갖 우상을 세우고 또 세웁니다. 그리고 그 종이 되어 앞에서 분향하고 섬깁니다. 하나님이 이를 가만히 두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이방사람 같이 하니 문제입니다. 그래서 수없이 하지 말라고 계속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내 새끼 이스라엘이 듣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멸망의 사건이 옵니다.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건 점차로 행하는 불의에서 돌이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내가 얼마나 불의를 행하는가 직면 해야 합니다. 내가 몰래몰래 반복해서 저지르는 불의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특별히 봐야하는 불의는 몰래몰래 세우고 또 세우는 불의 입니다. 안걸리니 반복하는 죄악을 보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남탓 전쟁중입니다. 명백한 잘못이 있어도 상대방을 탓하며 회피합니다. 힘있는 자들이 한편이되어 남탓을 합니다. 고향 사람이 한편이 되어 한 목소리를 내니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남한 땅에 고향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향있는 분들이 이 조그만 땅에서 왜그러시나요? 저는 광주와 대구의 성도님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이 될줄 믿습니다.
북이스라엘 처음부터 불의를 행했을까요? 조심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걸리니 계속하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기둥이 된 것입니다. 전부 이해타산에 걸려있습니다. 그러니 한마음이 됩니다. 이제는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왔던 그길을 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걸 너무 싫어하십니다. 우상기둥을 세우고 숭배하는걸 격노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자신을 성전의 기둥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격노 하십니다. 계시록 3장 12절에 보면 이 기둥은 자신이 높아지는 기둥이 아닙니다. 성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입니다. 무엇인가요? 가정과, 교회, 나라를 세우는 기둥입니다. 결국 십자가 기둥입니다.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점차로 불의를 회개하고, 부르신 사명의 자리를 지키고 역할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기둥으로 사는 비결입니다. 살아나는 비결입니다.
-요즘 제일 부러운 이방사람 같은 일은 무엇입니까?
-어떤 바알 기둥을 세우고 싶습니까?
-오늘 인정하고 고백해야 할, 내가 점차로 행하고 있는 불의는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성전 기둥인 것을 믿습니까?
남자들은 차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전에 차가 지금차와 같더라도 할부가 있더라도 하이브리드가 아니라고 차를 팔고, 새로사며 돈을 많이 날렸습니다. 그차로 1달째 일을 하고 있는데, 공구와 자재를 싫을 수 없어서 후회하고, 큰차를 또 계약했다 합니다. 1년에 차를 3번이나 바꿨는데, 이제는 일도 없고 손해만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러 이유로 합리적이라 하며 차를 바꾼 것입니다. 문제는 돈이 받쳐주지 않습니다. 목장에 물으면 책망받을 것 같아서, 묻지도 않았다고 합합니다.이분이 목자님 입니다. 이분이 초원님 전화를 받고 큐티를 나눴는데, 적용이 처방받으면 차를 팔겠다고 합니다. 교만하고, 음란하고 사치를 좋아하는 마음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 하십니다. 목장에 붙어 있다가 점차로 불의를 행하는 자기 모습을 보신 것 입니다. 세상은 이런 회개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도 예수를 안믿으니 내가 잘못했다 하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니 또 수준에 맞게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나눔의 처방은 제발 공동체에 물어보고, 특별히 아내에게 물어보세요 입니다. 아내들은 또 남편의 수준이 안되니 남편의 수준에 맞게 얘기를 해줘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13절
악인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는 건 하나님도 내버려 두십니다. 하지만 택자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걸리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는 지체들을 보내고 또 보내십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하십니다. 몰래 행하던 불의를 아는데서 멈추면 안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유턴 입니다. 회개 입니다.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요? 돌이키는 것도 어려운데, 떠나는 건 더 어렵습니다. 몸에 안좋은 간식 하나도 끊는 것도 힘든데 그보다 더 은밀하고 짜릿한 죄악에서 떠날 수 있겠습니까? 혼자서는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명령과 율례를 지키라 합니다. 명령과 율례를 알아야 합니다. 이방사람 같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하신 명령과 율법 대로 행하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습니다.
14~16절
안들려서 듣지 않는게 아니고, 들리지만 듣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목을 곧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최고이기에 들을 필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에 힘을 빼야 고맙다, 미안하다가 되는데, 목에 깁스를 하고 있으니 굽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그들의 조상들의 목 같이 했다고 합니다. 가족신화를 말합니다. 감히 우리집안을?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역감정에 사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구한 말에도 나라가 위에서 아래 까지 다 썩어서 망해가고 있는데, 당파 싸움이 극에 달해서 결국 나라 보다는 자기 권세 지키기 위해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 먹은 것입니다. 지금 일본이 초단위로 쳐들어 오고 있는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일본에 나라를 내 준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가 우리나라의 이 이상한 상황을 불구경 하듯보며 웃고 있을 것입니다. 일본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끼리 그렇게 싸우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해도 내 권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당파싸움이 끝이 없습니다. 이건 사실 우리 인생의 한계입니다. 그러면 이를 인정하고 미안해 해야 하는데, 한계조차 응원하고 격려하는 시대에 사니 내가 몰, 내가 이런걸 어쩌라고 하며 뻔뻔해 집니다. 하나님 없는 인권우상의 끝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거부하고 멸시하며 미워합니다. 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하며 당신이나 잘 믿으라합니다.
내 자식의 한계를 못보고 무조건 무조건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위로와 칭찬해 줘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이스라엘을 참다참다 하시는데, 우리고 참다참다 객관적으로 볼때가 있어야 합니다.
허망해 진다고 합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을 쫓다가 스스로 바람처럼 수증기 처럼 허망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좀 덜 허무해 보이는 이방사람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더 허망해지고, 다른 이방사람 찾아 방황하고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버리게 됩니다. 허무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말씀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 뿐입니다. 말씀의 검만이 허망의 고리르 쳐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우리가 큐티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행위가 아닙니다. 날마다 정해진 말씀을 구속사적으로 묵상하고, 생각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적용 하는 것입니다. 큐티가 힘들까? 생각해보면 내 생각이 많은 것입니다. 듣지 않으니 믿지 않고 믿지 않으니 목이 곧은 것입니다. 이걸 깨기 위해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라고 오늘 큐티 본문에도 빈배가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이 좋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돌이켜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비안리와 로렌스 올리비에는 서로 사랑을 했는데, 비비안 리는 심각한 조현병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20년 동안이나 살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지만 로렌스 올리비에는 나중에 죽으면서 나는 비비안 리를 제일 사랑했다고 합니다. 행위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그 이상한 말을 다 듣습니다. 율법으로 할수 없습니다. 이세상 다툼과 갈등 가운데 누가 최후의 승자일까요? 북이스라엘의 왕들을 통해 세상 권력을 잡는게 승리가 아님을 봅니다. 정말 허무합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됩니다. 오늘 큐티의 시몬 베드로는 오늘 어부인데, 목수인 예수님 말에 순종합니다. 전문가가 비전문가의 말에 순종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빈배가 되지 않으면 순종이 안됩니다. 곧은 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가족 신화, 모성의 굴레, 지역감정, 진영 논리 등, 아직 떠나지 못하고 따르고 있는 한계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목은 곧습니까? 구부러졌습니까? 곧은 목이 구부러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허무한 것 중 무엇을 더 따르고 있습니까?
*목장나눔
말씀이 안들렸는데, 드디어 들렸다고 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목장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목원분은 부부싸움을 한것을 목장에서 말했는데, 목자님이 우셨다고 이에 깜짝놀랬고, 부부싸움이 잘 마무리 되었다고, 목자님이 목에 힘빼고, 말랑말랑 하게 들어주시니 목장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제 잘못이에요 어떻게 아셨죠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잘 듣는 비결입니다.
3.그러면 남은 자가 됩니다.
16~18절
하나님의 명령을 버린 인생은 자기들을 위하여 삽니다.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자 합니다. 세상 행복을 목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고 자녀를 바칠 만큼 섬깁니다. 그래도 불안하니 요행을 바라는 사술도 행합니다. 이런 우상숭배를 17절에 스스로 팔았다고 합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자기를 위해 시작한 일인데, 스스로 파는 일로 끝납니다. 행복해지려 행했는데, 오히려 종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내 멋대로 세상에 나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심히 노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속상하시면 이렇게 표현을 하실까요? 그래서 그 앞에서 제거 하십니다. 가나안 땅에서 뽑혀서 앗수르 땅으로 멀리멀리 떠나게 하십니다. 앗수르에 의해 빗자루 엮듯이 엮여서 너무도 비참하게 노예로 끌려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복을 주실 때, 이를 왜모르시겠습니까? 아시면서도 택하시고 부르시고 은사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싫다고 떠나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을 가만두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심판하시고 제거하시는 순간에도 멸망이 아닌 구원이 목적이시기에 18절 후반에 유다 지파를 남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사 입니다. 유다 지파가 왜 남은 자 되게 하시나요? 착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는 무엇인가요? 남은 것은 무엇인가요? 착하거나 나쁘거나가 아니라 말씀이 들리는 것,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고난은 예수를 만나게 하는 최고의 환경입니다.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말씀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최고의 환경입니다. 내가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라면 최고의 축복인 것입니다. 모두 남은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내 자신을 누구에게, 무엇에 팔아 넘기려고 합니까?
-나를 위해와 주를 위해가 몇대 몇입니까?
-다 제거된 심판에서 남은 자가 된 경험이 있습니까?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이 들리는 남은 자로 서있습니까?
초원님 나눔
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한국에 들어오게 했다. 가족들이 공동체에 잘 정착하니 다행이다 했는데, 주변 사람들의 자녀들이 외국에서 결혼을 하는 것을 보며 후회하기도 했다. 여전히 세상 왕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분이 자녀에게 적용을 너무 잘 보여주셔서, 최고의 결정을 하시고, 자녀들이 청소년부를 거쳐 다 목자가 되신거라 생각합니다. 목장에서 안되는 우리 모습을 나누며 가는 것이 축복이고, 남은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면 만선이 될 줄 믿습니다. 전문가가 고기를 잘 잡는게 아니고, 말씀이 들리는 자가 잘 잡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망하고 망해도 택자는 남은게 있다고 하십니다.
2.목장 장소 및 참석 인원
: 카페 로쥬 / 목자, 부목자 총 2명 참석
3.기도 제목
A.
1. 기도로 구하며 말씀의 인도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2. 공부하는 가운데 지혜를 부어주시길
3. 시험날까지 건강 붙들어주시길
4. 목장위해 중보기도 할 수 있도록
B.
1. 신교제 시작하게 되었는데 말씀안에서 교제할 수 있도록
2. 빚의 매인 환경을 잘 감당하고 작은 불의를 회개하고 지금의 빈 배의 환경을 온전히 감사할 수 있도록
3. 올해 모든 빚 상환할 수 있도록
4. 목장식구들의 구원과 교제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