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5 주일예배 열왕기하 16:1~9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한 주 사이에 한해가 지났습니다. 25년 첫 주일입니다. 나라가 많이 어지러운데, 우리 인생 자체가 문제 투성이 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필요하고 말씀을 의지해야 하는 인생입니다. 안좋은 소식만 있는게 아닙니다. 9년만에 출생 등록자가 증가 되었다고 합니다. 날마다 기도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드린 기도는 100% 응답받을 줄 믿습니다.
기도하는 만큼 우리 자신이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주인공은 아하스 왕인데,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윗과 같지 아니한 인생입니다. 무엇일까요?
1.영적 질서를 비틉니다.
1~2절
지금까지 북 이스라엘 얘기를 했습니다. 유다의 웃시야, 요담 왕이 제위할 동안 북이스라엘에서 왕들이 제멋대로 통치할 때, 남유다의 왕이 아하스로 바뀝니다.
요담은 건축사업을 일으키고 암몬도 재정벌해 조공을 다시 받습니다. 하지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다. 자신이 죽어도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게 대비합니다. 불청객을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구원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회개로 부르시는 사랑으로 보내셨습니다. 이 불청객이 찾아온 사건을 아하스가 맞이합니다. 요담은 죽었고, 아들이 맞이합니다. 그런데 말씀이 정말 안들립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축복 입니다. 다윗의 후손이어도 안들릴 수 있습니다. 아하스가 어떻게 했나요?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 요담은 정직히 행하긴 했는데 말입니다. 요담이 건축왕 정복왕으로 성공하지만 자식 농사는 망했습니다.
남유다왕이 20명인데, 그중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은 왕은 아하스가 유일합니다. 평가가 다른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다 한결같이 악했다, 남유다는 정직히 행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정직은 구부러지지 않은 것입니다. 비틀어 지지 않은 것입니다. 진실한 것입니다. 그 반대는 계책입니다. 내 생각으로 꼬고 비틀어진 것을 말합니다. 예후가 계책을 잘 썼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남유다 왕들은 웬만하면 다 정직하다는 평을 들었는데, 아하스는 정직하지 않았다 합니다. 정직하지 않은 그는 무엇을 행했을까요?
3절
지난주 15장 37절에 유다를 치게 하십니다. 이때가 아하스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맞추십니다. 열왕기하를 읽으면서 북 이스라엘 왕들의 죄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이스라엘의 여러 왕의 길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왕들의 죄가 이제 유다에 까지 온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고 축복을 주시면 다 이렇게 금송아지를 섬깁니다. 다 삼천포로 빠지고 예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을 외치고, 금송아지를 외치니 아하스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를 드립니다. 자기 아들을 바치는 것입니다. 레위기에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암몬이 전쟁때 아들을 불태워 죽이니 다들 간담이 서늘해져 마음이 녹으니 저러면 이기겠다고 아하스가 흉내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식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할까요? 아하스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열등감이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 북이스라엘에 대한 열등감, 그래서 자신이 언제나 최고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왕의 자리로 올라가니 못할 짓이 없는 것입니다. 가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권력이 가면 이런일이 생깁니다. 내 자리를 위해 나를 위해 못할 것이 없는 사람이 아하스 입니다. 이를 구속사적으로 생각하면 자식을 달달 볶으면서 불가운대로 지나가게 하는 교육열 이것이 다 노후대비 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4절
산당을 파멸하라 했는데, 아하스는 이 말씀을 비틀어서 산당 제사를 전국적으로 부흥 시킵니다. 높은 산에 산당을 다니는 것 뿐아니라 작은 산에도, 심지어 마을마다 푸른 나무 아래 산당을 만듭니다.
제가 광주 집사님들 나눔을 읽어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분이 예전에는 수요예배, 주일예배 안나오는 것이 이해가 안되었는데, 요즘에는 산당이 집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되어서 스스로 합리화 하고 있다고, 코로나 이후 현장예배 출석이 교회마다 다 떨어졌다고 합니다. 합리화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편함이라는 산당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방종교를 이렇게 따르는 건 아하스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행위로 말할 것 같으면 남북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가장 악한왕이 다윗의 후손 아하스 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 계보에 올라갑니다. 행위로는 용서받을 자가 없습니다. 늘 하나님께 묻고 말씀을 보고 가는 것이 영적 질서 입니다. 영적 질서를 비트니 이혼, 동성애 같은 것들이 판을 칩니다. 잘 사니 이렇게 비틉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십니다. 우리는 복사본이고 하나님이 원본인데, 복사본이 원본 흉내를 내면 안됩니다. 아하스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위에 두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하사는 아버지 요담을 통해 부유한 환경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성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웃시야 때 제사드리다 나병에 걸려 별궁에 들어가고 요담은 그에 아에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왕이면 못봐줍니다. 제사장도 못봐줍니다. 이때문에 아하스는 하나님을 만나는게 몬지 볼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상처가 쌓이다 이런일이 온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른채 좋은 환경만 있으면 상처가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해결이 안된 상처처럼 무서운게 없는 것입니다. 이를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아무리 좋고 편한 환경을 만들어줘도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예배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쁜 환경이 낳습니다. 교만을 부추기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예배드리는 환경, 말씀을 묵상하는 환경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환경입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으로 키우는 토양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 다들 산당이 있습니다. 날마다 큐티를 해도 오늘의 운세가 궁금하고, 예배 마치고 달려갈 등산, 골프모임, 외식이 펼쳐져 있습니다. 제발 말씀 들으라고 하면 너무 졸려서 이거라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래도 와서 앉아 계세요 어느날 들리는 날이 올줄 믿습니다.
예수믿고 모든 것을 내가 다 청산한거 같더라도 자식 문제는 이방신을 섬겨서라도 잘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새해 내가 먼저 결단하고 지켜야 할 영적 질서는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의 가증한 일을 그대로 다 따라하며, 내 자녀를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예수님 보다 더 귀히 여기는 산당과 작은 산 위와 푸른 나무는 무엇입니까?
-새해 끊어야 할 가증한 일은 무엇입니까?
*나눔
제가 집은 쉬는 곳이라 여기며 집에오면 티비보고 쉬니까 자녀들이 따라하기 시작합니다. 부모로 본을 보여야 하니 잘 안됩니다. 이렇게 나누는게 어디입니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런 나눔을 합니다.
동서가 자기보다 10년이나 아래이고, 명절을 보내고 나면 형님 이제 어디갈까요? 했다 합니다. 동서의 아들이 공부를 너무 잘한다 합니다. 예수믿는 내 아들은 수도권 대학도 간당한데, 동서 아들은 가고 싶은데 간다고 하니 부러워지는 것입니다.
구속사 적으로 해석해야 적용점이 나옵니다. 아하스가 자녀를 불가운데로 가게 하는거랑 우리집이랑 무슨 상관이야 하면 안됩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다들 상대적인 가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2.이기지 못하고 빼앗깁니다.
5~6절
이때는 산당제사를 드릴 때입니다. 역대하 28장을 보면 이 침략사건이 유다가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기에 아람왕이 쳐들어 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하스는 엘랏(솔로몬이 확보한 항구)를 아람에게 빼앗깁니다. 이 엘랏은 웃시야 왕이 회복한 곳입니다. 엘랏은 웃시야 왕의 회복과 번영을 상징하고, 솔로몬 때의 영광을 기억하게 하는 곳인데, 50년도 안되어 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베가와 르신의 동맹은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이를 유다의 구원을 위해 불청객으로 보내셨다 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안믿는 사람을 동원해서 먼저 잘 믿는 사람을 공격한 꼴이 됩니다.
남유다는 동맹의 공격을 여러차례 받았습니다. 그러다 아하스 때에 최대 위기를 맞이합니다. 역대하에서는 힘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 잡아 아람 다메섹으로 끌고 갔다고 합니다. 이 전쟁에서 12만명이 죽고 20만명을 끌고 갑니다. 나라가 뿌리 뽑힌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르신과 베가를 능히 이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역사를 보면 오댓이라는 선지자가 형제끼리 그러면 안된다고 하여 베가가 그말을 듣고 보내주어서 완전히 멸망직전에 보내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베가가 20만명의 포로를 돌려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그때 뿐이었습니다. 모든 걸 누리며 살았지만 삶의 예배가 없으니 하나씩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삶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입니다.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돌이킵니다. 내가 그라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분수령적인 회개를 합니다. 다윗이 제멋대로 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몰 잘못했냐, 나보다 저 사람이 문제다 하며 화를 내고 선지자를 하나님을 탓했을 텐데, 주님이 100% 옳으시다고 믿고 주권을 인정했기에 수치를 당하고 회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직한 길입니다. 하나님 만이 상급이 되시는 길입니다. 다 잃고 패배한 것 같아도 온전히 승리한 사람입니다.
아하스는 이렇게 20만명을 돌려받았음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자리에 자신을 놓고 돌려보내니 자기가 이긴 줄 착각 합니다. 그렇게 결국 능히 이기지 못한 삶이 됩니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 입니다. 나라가 전쟁터 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정치, 윤리, 법으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이런 상황이 되면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진짜 이기는 사람, 빼앗기지 않고 이기는 사람은 주님 만나는 사람입니다. 불청객 같은 사건이 주님 만나는 계기가 되면 이것이 축복입니다. 계속 자기만 섬기고 자기만 사랑한다면 멸망의 길입니다. 다 빼앗기는 패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20만명을 돌려보내셨으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안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누구 편을 들고 있나요? 회개하고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에워싸인 상황에서 내가 회개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 가정이 잃어버린 예배의 자리는 무엇입니까?
-교회와 나라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돌이킴은 무엇입니까?
3.해석보다 해결을 구합니다.
7~8절
6절까지 들으니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세요 ,살려주세요 해야 하는데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가서 살려달라고 하며 뇌물을 줍니다. 앗수르 왕에게 돈을 주고 살려달라고 한 북이스라엘 왕이 누구였죠? 므나헴입니다. 남유다의 아하스는 북이스라엘 므나헴을 따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술 더떠서 립서비스 까지 합니다. 므나헴은 부자들을 강탈해서 뇌물을 바쳤는데, 아하스는 성전 곳간,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을 다 모아서 뇌물로 주는 것입니다. 정말 북이스라엘의 길로 행한거 맞습니다.
앗수르와 아람이 왜 돕겠습니까? 우리 주변의 강대국이 우리를 왜 도울까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아하스가 한 일은 망하는 지름길인데, 그것을 모르고 합니다. 나만 권세를 가지면 백성이 다 죽어도 상관 없는 것입니다.
앗수르 왕에게 이 방법이 통합니다. 앗수르 왕이 관심있는 건 아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합니다.
9절
잠시는 통합니다. 아람을 공격합니다. 르신왕을 죽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압박하던 아람이 한순간에 멸망한 것입니다. 열왕기는 여기까지 기록했는데, 역대기는 이제 앗수르가 아람을 이기니 생각이 달라집니다. 돈받고 아람을 공격해 이기니 돈을 준 남유다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뇌물로 앗수르를 살수 있을 거라는 아하스의 생각은 빗나간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자기가 이겼다고 앗수르에게 빌 붙은 것입니다. 왜 이런 결말이 왔을까요?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들을 두려워 말고 낙심하지 말라고, 이는 멸망의 사건이 아니고 구원의 사건이라고 돌이키라고 이미 이전에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택자에게 사건뿐 아니라 계속 말씀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아하스가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큐티하고 말씀을 듣는게 택자라는 엄청난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큰 위기의 사건에서 해석말 말씀을 주시면 함께 주시는 말씀이 그 유명한 메시아 탄생의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유명한 말씀이 이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해석한 말씀이 있다면 아무리 무서운 사건이라도 내 삶에 메시아가 임하시는 사건일줄 믿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죽을 때까지 문제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문제의 해결이 아닌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사건입니다. 이해할 수 없던 사건을 해석하고 용납할 수 없는 내인생을 해석하고 가치관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아하스는 5대 선지자가 해결책을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윗은 맞다고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아하스는 엉뚱한 앗수르를 찾아가 뇌물을 주고, 결국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해석하라고 오는 것이지 해결하라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결할 수준이 안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아십니다. 문제를 주면서 답을 주십니다. 말씀이 주시는 만큼만 답을 적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석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단어 하나 붙들고 가면 오늘이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펴서 제목이라고 읽으세요, 단어 하나라도 기억하려 해보세요. 날마다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우리는 말씀 묵상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건이 올때 같이 큐티할까? 하는 문화를 보여준다면 이것이 최고의 유산입니다.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해결보다 해석이 먼저임이 인정 됩니까?
-올해 날마다 큐티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편의 외도로 이혼도 재혼도 할 수있다 여겼는데, 남편이 돌아오고 나서 아들이 사춘기를 겪으니 차원이 다른 힘듬이라고, 남편의 외도로 땅끝까지 갔다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땅끝까지 가지 못했다고 날마다 남편때문에 힘들다고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 했는데, 중학교 때까지는 내가 있다고 하더니 사춘기가 오니 이제는 욕도하고 자기에게 해준게 무엇이 있냐며 엄마가 아들을 싫어하니 엄마 앞에서 아빠가 좋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고 아들이 남편과 똑같이 행동하니 내 문제를 알게 되었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공동체가 아들을 키워줬다고 공동체가 있기에 목장에서 고백을 합니다. 이것이 살길인줄 믿습니다.
기도제목
A
1. 2025 시원목장 돌이키고 살지니라의 한 사람 한 사람 될 수 있기를
2. 속히 할 것과 더디 할 것을 늘 think하고 적용 또한 잘할 수 있도록 & 가증한 일은 끊어주시기를
3. 수업 준비할 때, 수업할 때(특히 고3 수업) 지혜주시기를 & 질서(원장님)에 잘 순종하기를
4. 아빠, 엄마, 봄의 영과 육 늘 지켜주시기를
B
1. 매일 큐티하기
2.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드는 습관 들이기
C
1. 전세집 이사 계획적으로 진행될수있도록
2. 큐티 일주일에 5번 이상하기
D
1. 결혼준비로 걱정이 많은데 이 부분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을 믿고 걱정 내려놓기
2. 엄마의 눈 회복을 위해
3. 남자친구 근무지 이동 될 수 있길
E
1. 회사에 늦지 않게 아침 알람끄지않고 바로 일어나기
2. 이직준비하는데 퇴근 후 드라마 안보고 조금씩이라도 포폴 작업할 수 있도록
3. 회사 과장님 말에 내 생각 말하지 않고 네 하는 적용하도록
F
1. 거의 앉을틈 없고 하루종일 서서 근무하고 허리가 아플때가 있는데 건강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