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한 달 천하
열왕기하 15:8-15
조선 인조 때 이괄의 난이 있었는데요. 평안도 사령관이었던 그는 인조반정 후에 왕실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어요. 열흘만에 한양을 점령해서 반역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는데요. 하지만 그 후 20일 만에 패배해서 부하 장수에게 배신을 당해 목숨을 잃고 맙니다. 단 하룻밤 동안의 한양 생활이라고 그랬어요. 역사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삼일천하라는 말을 관용어처럼 쓰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왕좌에 잠깐 앉았다가 사라진 2명의 왕이 나오는데요. 6개월 천하였던 스가랴와 한 달 천하였던 살룸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결론은 이렇게 한 달 천하일 수 밖에 없는데요. 우리는 한 달 천하로 끝나면 안되겠어요. 매일 영원한 나라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 두 왕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 없는 인생인 한 달 천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한 달 천하로 끝나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요.
1.하나님을 반역한 죄가 있습니다.
8 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삼십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9 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0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8절부터 10절이에요.
아사랴, 웃시야 제 38년은 그 아사랴의 힘이 정점을 찍었던 해예요. 그러다 이제 나병 걸렸자나요. 바로 이때 북이스라엘에서는 그 유명한 여로보암 2세가 죽고 그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오릅니다. 북이스라엘이 이제부터 40여 년간 6명의 왕이 암살과 쿠테타와 반란으로 망해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악을 쌓고 쌓아서 이제 망한다는 거예요. 여로보암의 악한 형통인 그 기복의 끝판왕이었자나요. 그런데 여로보암이 자기 아들 이름을 스가랴로 지었어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건 한나나 다윗이나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는 아니고요. 단지 자기 업적이 영원히 남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지었을 거예요. 그런데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하신 말씀을 알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직접 말씀하셨죠. 열왕기하 10장 30절에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기억나십니까? 예후는 이 말씀을 믿었을까요? 그 자손들에게 전해주었을까요? 알려주기는 했을 것 같아요. 특히 여로보암은 자신이 예후의 3대손이자나요. 그 다음이 마지막이라는 말씀이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두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예후 왕조가 망해서 잊혀질까봐 걱정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스가랴로 지었겠죠. 여기에 여로보암의 어리석음이 있어요. 그 말대로 왕조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그때 돌이켰어야죠. 하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면서 그냥 자기는 그저 하던데로 그냥 찝집해하고 걱정만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 좋은 이름을 받은 스가랴도 오늘 말씀대로 조상의 행위대로 아버지와 똑같이 행할 뿐이에요. 자신이 예후의 4대손이고 마지막 왕이 될지도 모르자나요. 그러면 이제 정말 돌이켜 살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예요. 한 달, 두 달, 세 달 그냥 지나가요. 이 아까운 시간이 버려집니다.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 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다 할게요.' 이 기도 드리는 게 10초도 안 걸리는데요. 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이 있었는데 그 마지막 기회를 다 놓쳤어요. 악의 평범성으로 무엇을 해야 될 지도 몰라요. 제가 이거를 보면서 그 시청 앞 광장에서 살려달라고 저는 그냥 3번만 한 게 아니고 7번을 넘게 했어요. 하나님이 제 기도를 꼭 들어주실 것 같아요. 할렐루야. 이 어리석음이 여로보암과 스가랴만의 어리석음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어리석음이에요. 끊어야 하는 것도 알고, 떠나야 하는 것도 알고, 돌이켜야 하는 것도 알아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또 찝집하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다 있어요. 두려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끊느냐, 그렇게 하지 않아요. '내일부터 하지 뭐.' 이제 연말이자나요. '내년부터 하지 뭐.' 계속 미루는 거예요. 아직 시간이 있다고 믿는 거예요. 알면서 안 하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어리석음입니다. 왜 그렇죠? 아직 돈이 있고 권세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또 내가 돈을 벌 수 있다고, 돈이 목적이기 때문이에요. 드디어 스가랴에게 주어진 6개월의 시간이 끝납니다. 어떻게 끝나죠?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반역을 일으켰어요. 어제까지 신하였던 사람이 반역자로 나타납니다. 게다가 이 살룸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스가랴의 친구였다고 해요. 반역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인 거예요. 정말이지 반역은 늘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요아스도 신복에게 반역을 당했자나요. 다윗은 아들에게 반역을 당했고요. 그러니까 '네가 그럴 줄 몰랐다.' 이런 거는 믿는 우리 사전에는 없어야 될 것 같아요. 네가 그럴 줄 알아야 돼요, 우리는. '네가 그럴 줄 알았다.' 이래야 되는 거예요. '몰랐다.'가 아니고 '알았다.' 가장 가까웠던 신하였던 살룸이 반역을 일으켰는데, 이제 거기서 끝이 아닌 거예요. 살룸은 스가랴를 죽였어요, 왕을 죽였죠. 그것도 궁궐이나 침실에서 몰래 죽인 게 아니라 백성 앞에서 쳐죽였다고 합니다. 쳐죽였다. 아주 무지막지한 폭력에 의한 죽음을 말하는데요. 어디서요? 백성 앞에서 공개적으로 공개 처형을 했다는 거예요. 남북의 왕 다 합해서 이렇게 공개 처형당했다고 기록된 왕은 스가랴 말고는 없어요. 사마리아 백성이 다 보는 앞에서 이렇게 처형되어 마땅할 이유와 명분을 줄줄이 읊어대면서 마치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양 살룸은 친구 스가랴를 때려 쳐죽였습니다. 12절에도 있듯이 이 죽음은 하나님이 예후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에요. 하지만 예후 집안 입장에서 보면 너무 억울한 일이겠죠. 가장 억울한 사람은 물론 당사자인 스가랴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너무너무 화가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인식도 못했을 것 같아요. 어제까지 자기 밑에 있던 백성인데 오늘은 자기 죽음을 다 구경하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역 사건 바로 전에 스가랴의 죄에 대해 분명히 고발합니다. 조상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어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여로보암의 죄는 한마디로 우상 숭배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반역인 거예요. 그런데 이 악이 너무 평범한 일상이 되었기에 아무도 악이라고 생각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라는 것은 더욱 더 상상도 못하는 시대가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에요. 온 나라가 대대로 섬겨온 금송아지 숭배가 악이라는 것을 하나님 말씀이 아니면 누가 알려주겠습니까? 남 탓하는 게 죄악이라는 것을 말씀으로 알려주시니까 아는 것이지 우리가 어떻게 깨닫겠어요. 우리는 저절로 되는 게 남 탓인데 말이죠. 하나님 없으면 다 똑같아요. 죄의 종류가 다르다고 누구는 좀 괜찮고, 누구는 악하고가 아니예요. '도둑질은 괜찮고 살인은 악하다.'가 아니예요. 요즘 가장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 숭배는 자녀 입시가 아닐까 해요, 자녀는 좋은 학교 가서 돈 잘 벌어서 나를 봉양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끝에 돈이 있는 거죠. 이것이 금송아지인 거예요. 그러니까 입시가 너무 큰 문제고, 온 나라의 문제고 떨리는 거죠.저 때도 입시 피아노 실기 시험 치를 때, 너무 떨려서 기절해서 119에 실려간 아이도 있었어요. 전국에서 온 아이들 중에 30명을 뽑는데 얼마나 떨리겠어요. 저도 생각해보니까 너무 떨려서 제가 실수했어요. 이 몇 명 안되는 심사위원 앞에서 그렇게 떨고, 후에도 실기시험 때마다 날마다 떨었어요. 왜죠? 이기적인 목적으로 붙어야만 하자나요. 그리고 또 성적이 좋아야 학교에 남을 수 있자나요, 이겨야만 하니까. 칠 때마다 떨리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설교할 때마다 이 수 많은 사람이 이렇게 앉아있자나요.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제가 이해타산이 하나도 없자나요. 이타적인 거자나요. 준비는 최선을 다해서 하지만 막상 설교할 때는 정말 인간의 말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은사로, 어떤 정말 구원을 위해서 구원이 어떻게 거기 이기적인 마음이들어갈 수 있겠어요. 구원 때문에 하니까 저는 이제 진짜 안방에서 하는 것처럼 편하게 이렇게 전하는데, 어떤 한 영혼이 구원되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때 내가 피아노 시험 칠 때 '내가 피아노 시험 쳐서 한 영혼이 구원되어야 돼.' 이 생각은 안 했다고요. 앉으나 서나 내가 뭐 '제일 잘 해야지.' 맨날 이런 생각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1027 때 내 생애 처음인 그 수 많은 인파를 보고 개인의 기질로 보면 제가 기절해야 마땅하자나요. 안 떨렸어요. 대신 애통했어요. 종류가 다른 거예요. 이건 정말 성령이 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니 입시를 치르는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고, 개인 예배, 공예배, 큐티하고 목장에 가서 자기 얘기하는 걸 연습하고. 목장 가서 자기 얘기 연습하는 게 얼마나 아이들 나중에 면접하는데 도움되는지 아세요? 이번에 있었던 이른비 기도회에서 아이들이 정말 폭풍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 기도를 했다고 해요. 그래도 모든 것이 내 속에 좀 빠져나가지 않았겠어요? 사명을 좀 생각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시험에 임하면 예배 드린 모든 시간이 아깝지가 않게 하세요. 그리고 이제 시험 친 날 붙회떨감, 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 기도회에서 나의 시험을 해석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금송아지 숭배의 최고봉이 자녀이고 입시인데, 그런데 이런 얘기는 세상은 해 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부모라도 해 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너는 어떻게든지 이겨라. 너는 1등 해야 돼. 너는 그 학교 가서 시집 잘 가야 돼. 직장 잘 가야 돼.' 온통 이 세상 금송아지 얘기만 숭배하라고 어렸을 때부터 입시하면 정보, 이런 얘기만 합니다. 그러니 반역을 당하는 고난이 필요해요. 이 고난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거예요. 왜 이런 반역 사건을 당했는지, 내가 믿었던 친구가 왜 나를 배신 했는지,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가 왜 나를 배신 했는지,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수능이 왜 나를 배반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배반의 사건은 생각하라고 주신 일이에요.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뭐라고 해요? 하나님을 향해 반역한 나의 죄라는 거예요. 단지 사람을 향한 반역이 아니예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에요.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라는 고백은 그저 상대방에게 하는 게 아니예요.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인 거예요. '주님이 100% 옳으세요. 주님이 공평하세요.' 인정하는 거예요. 그러면 저절로 내 앞에 있는 그 힘든 상대를 향해, 또 이 사건을 향해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하게 되는 거예요. 바람 핀 남편, 바람 핀 아내에게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하게 되는 거예요. 세상은 이게 해석이 안 되자나요. 그러니까 처음에 오면 제 설교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지금 반역을 당했어요? 이유를 생각하라고 주신 사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바람 핀 남편이 옳겠어요? 그 바람 핀 남편을 보고 내가 하나님을 향해 악을 행한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예배를 소홀히 하고, 둘이서 잘 먹고 잘 사느라고 교회도 안 나가고, 십일조도 안 하고. 이런 것들을 그 힘든 남편의 사건을 통해서 깨닫게 됐기 때문에 하나님이 옳으세요. 당신이 옳은 거예요. 그래서 반역 당하는 난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라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기회예요. 하나님이 치시면 끝이자나요. 그렇게 되지 말고 돌이켜 살라고 하나님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깨우시는 거예요. 악에서 돌이켜 사는 걸 기뻐하신다고 그랬자나요. 그런데 악에서 그냥 행하고 있으면서 살아나기를 원하면 안 되는 거죠.
[적용] 떠나야 함을 알면서도 떠나지 않고 있는 습관, 관계, 일, 중독은 무엇입니까? 어떤 반역을 당하고 있습니까? 반역 당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 붙회떨감이라는 책에 나오는 외고 시험을 쳤던 중학생 간증이에요. '하나님 외고에 떨어져서 감사합니다. 늘 듣고 목사님 말씀처럼 제 인생에 새로운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을 무시했던 죄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부족함과 나태함을 제대로 인정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큐티에 매달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처럼 불합격한 친구들을 체휼하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학교에서 교만하던 모습을 버리고 낮아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려 가는 진정한 형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더 붙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게 떨어지면 이렇게 해석하는 거죠. 꼭 붙으면, 세속적으로는 붙어야만 축복이자나요? 이 얼마나 지금 붙은 아이보다 성숙합니까. 그러니까 붙으면 이런 기회를 못 받으니까 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 이해되셨어요? 고기 낚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에요. 붙거나 떨어지거나 해석을 잘 하게 되면 한 달 천하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날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2.인본적 명분의 유효기간은 한 달입니다.
11 스가랴의 남은 사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2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 자손이 사 대 동안 이스라엘 왕위에 있으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니라 13 유다 왕 웃시야 제삼십구년에 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어 한 달 동안 다스리니라
-> 자, 11절부터 13절입니다.
6개월 통치한 스가랴가 남긴 사적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유다왕 역대지략에 기록해주세요. 왜냐하면 그도 왕은 왕이었기 때문이죠.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하신 그 말씀대로 과연 4대손 스가랴가 왕이 되었고, 그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그에게서 예후 왕조가 끝났습니다. 복음은 장차 받을 환난인데, 이 복음도 복음으로 받아드려야 하자나요. 정말로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장차 받을 환난을 말씀하신 것인데 그가 듣지 않았어요. 그 후손도 듣지 않았어요. 여로보암도 걱정만 했지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스가랴도 6개월을 허무하게 보내다 죽었어요. 장차 받을 환난의 경고를 듣고 회개했다면 하나님이 살려주시지 않았겠습니까? 악인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자나요. 반드시 살려주셨을 것입니다. 마지막이라도 우리 남편처럼 그렇게 회개할 수가 있는 거예요. '이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 말은 없는 거예요. 저는 정말 이게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하는 이 말이 복음 같지만 사실 이런 말은 그야말로 희망고문인 거예요. 물론 서로 잘되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축복해야죠. 하지만 우리가 서로 주고 받는 좋은 말이 우리를 살리지 못해요. 그런데 '목사님은 왜 맨날 고난이 축복이라고 그러냐?' 그런데 우리들교회 살아나자나요, 다. 겉에서 사탕 달라고 그래서 '그래, 사탕 먹고 이빨 썩어라.' 이러지는 않자나요. 그러니까 '달라, 달라.'하니까 사탕을 주는 거죠. 잠시는 기분이 좋죠, 그렇죠? 우리를 살리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사건이 올 때 하나님을 찾도록,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를 기도하고 권면하고 설득해야 하는데요. 이것도 우리 생각대로 하면 소용이 없고요. 그러니까 무슨 상담이나 어떤 철학으로 하는 거는 상당히 제한적이에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되는 거예요. 왜죠? 우리의 모든 삶이 주님의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되기 때문이에요. 저보다 똑똑한 사람 전 세계에 널렸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어떤 책보다도, 어떤 상담보다도 그날 말씀이 나를 살리는 경험을 수 없이 하고 왔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그날 말씀이 살리고 있자나요, 맞죠? 그래서 날마다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공동체가 같은 말씀을 보는 것도 너무너무 중요해요. 말씀으로 통해야 영적으로 통하는 거예요. 아무리 성향이 맞고 이야기가 잘 통하고 그래도 말씀의 끈이 없으면 진정한 교제가 될 수가 없어요. 부부간에도 그렇게 동창도 그렇고, 그렇죠. 우리 목장에 오면 찌질한 사람 많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인간적으로 보면 싫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도움이 안 돼요. 그런 게 너무 많이 있어요. 말씀으로 잘 통해야 되는데 학벌로, 어떤 레벨로 통하는 것이 진정한 교제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살룸의 반역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지 여러분 또 생각해봐야 되자나요. 그 위대한 여로보암 대왕의 그 뒤를 이은 왕에게 반역을 일으킨 거자나요. 여로보암이 41년을 통치를 하고 다윗의 영광을 가져온 그 왕이에요. 그런데 그 뒤를 이은 왕에게 반역을 일으켰어요, 그것도 6개월만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여로보암의 업적에도 그늘이 있어요. 아모스와 호세아를 보면 부강했던 만큼 부패가 심했어요. 여로보암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자나요. 특별히 독재하는 나라의 지도자들이 문제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당연히 생겼죠. 아마도 살룸은 이 갈등을 반역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 같아요. 지도자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크게 과장해서 소문을 냈을 거예요. 그리고는 선동했을 거예요. '지금 우리 삶이 어려운 건 왕 때문이다. 왕만 끌어내리면 우리 문제는 다 해결된다.' 동조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을 거예요. 명분이 있자나요. 어떤 명분이에요? 인본적인 옳고 그름의 명분이에요. '왕은 이래야 옳은데 지금 왕은 그렇지 못하니 틀렸다. 틀린 왕 밑에서 더 이상 못 살겠다. 갈아보자.' 이 명분을 지지하는 것이 정의같고 반대하면 불의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거예요. 그래서 살룸은 백성 앞에서 스가랴를 쳐죽일 수 있었을 거예요. 백성이 보기에 살룸은 정의의 혁명가였을 거예요. 살룸이라는 이름 자체도 보복, 복수라는 뜻이에요. 있는 자에게 정의의 보복을 하고 악에 대한 복수를 하는 영웅이에요. 사람들은 스가랴는 틀리고 살룸은 맞다고 했겠죠. 그러면서 살룸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이제 새 시대가 열렸다고 열광했을 거예요. 그러나 살룸 왕조는 한 달 천하로 끝나고 만 거예요. 북이스라엘 역사상 두번째로 단명한 왕조인데요. 가장 짧은 왕조는 시므리 왕조로 7일, 일주일 천하였어요. 살룸은 그보다 길었지만 그래봐야 한 달 천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길게 이어진 예후 왕조, 한 백년 갔어요. 예후 왕조의 부패를 척결했다는 엄청난 명분을 가진 살룸이 고작 한 달 천하로 끝난 거예요. 스가랴를 처단하는 순간에 살룸이 상상이나 했겠어요? 자기가 옳고 그름의 명분을 내세워 쟁취한 권력의 유효기간이 한 달이라는 것을요. 이것도 기가 막힌 일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무리 좋은 명분도, 아무리 옳고 그름을 철저히 따져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명분도 하나님을 떠난 것이면 헛되다는 거예요. 하나님 없는 인본적 명분이라면 그 유효기간은 한 달이라는 거예요. 얼마 못 간다는 거예요. 우리가 밑동잘린 나무인데 그걸 빨리 알게 해 준 거예요. 인본적인 명분은 뭐예요? 쉽게 말하면 내가 옳다는 주장이에요. 이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명분도 많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명분을 쌓으려면 자기 편을 많이만들어야 하고, 자기 편을 많게 하려니까 인기몰이를 합니다. 온통 주제가 나밖에 없어요. 하나님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본적이에요. 우리는 이런 명분에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정치나 외교같은 공적 영역에서는 물론, 가정과 이 시장에서도, 심지어 가정에서도 서로 명분을 따지면서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아요. 어디서나 요즘 가장 강력한 명분은 인권이라고 하죠. 인간의 권리요. 말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이 인권으로 주장하는 건 결국 내 생각, 내 감정, 내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어도 내가 여자라고 생각하면 여자로 봐 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도 숙소도 여자와 같이 써야 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런 일이 우리나라도 일어났어요, 지난주도 들었는데. 그런데 그것을 소수 인권이라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외치는 거예요. 주관이 객관을 완전히 압도했어요. 그러니 온 나라가 싸움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살룸이 상징하는 가치관의 결론입니다. 서로가 자기 옳고 그름으로 보복하고 앙갚음하고 이러니까 싸움이 그치지 않아요. 그래서 유효기간이 짧을 수 밖에 없어요. 한 달 천하입니다. 우리는 명분 싸움하다가 한 달 천하로 끝나는 인생 되면 안되겠어요. 말씀 없는 내 생각, 주장하는 일을 좀 멈추시기를 바라요. 말씀만이 진정한 명분입니다. 말씀 위에 집을 세워야 한 달 천하로 끝나지 않고 백 년, 천 년, 만 년 가는 겁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왕을 죽이는데 다 박수 치고 공개 처형하자나요. 그러니까 백성들의 믿음은 믿을게 하나도 못 돼요. 맨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적용질문입니다.
[적용] 내 삶에 말씀대로 과연 그렇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여전히 내 생각대로 주장하고 있는 명분은 무엇입니까? (동성애, 성전환수술 등)
그런데 이게 그냥 누가 말을 못하자나요. 살룸이 스가랴를 죽이니까 다 죽이는데로 가자나요. 이건 원칙이 비꾸러지면 아이도 어려서부터 자기 주장을 무섭게 하는 거예요. 가정에서부터 이게 시작이 되는데, 이 목자님이 나눔한 거예요. '아들이 이혼하고 면접교섭권으로 할아버지인 저도 1년 반 만에 손주를 보게 되었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눈물이 다 나왔는데 초등학교 4학년인 손주 눈치를 보느라 모두들 숨 죽이며 손주가 하자는대로 하는데 손주는 하루종일 유튜브에 빠져 정신이 없고, 30분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숙제 상황을 얘기하는데 모두 거짓으로 엄마를 속이는 것 같았어요. 아빠가 큐티하자고 하면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기다려.'하며 짜증을 내었고 저녁 9시 40분 경에 '아빠, 사이다 가지고 와.','아들아, 사이다는 없고 다른 탄산 음료가 있는데 먹을래?', '아니, 칠성사이다 사가지고 와, 당장. 그리고 과자도 사 와.', '어떤 거 사 올까?', '그래도 과자 이름을 말하면 그걸 사 올 게. 빼빼로, 예감, 어떤 거?', '그냥 내가 좋아할 만한 거 사와.' 이렇게 몇 번을 혼자 밖에 나가서 사오는 아들을 보니 가슴이 아파서 힘들었습니다. 조금만 기분을 상하게 하면 면접교섭 거부 당할까봐, 아들을 못 볼까봐 전 며느리와 손주가 하자는 대로 하는 아들을 보면서 왜 목사님이 이혼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나 그 말씀이 새삼 생각나며 감당할 수 없는 아들의 이 고난을 보며 '주여.'가 저절로 나오는 주일이었습니다.' 바로 이거예요. 그래요. 둘이는 이혼하면 좋겠죠. 그런데 내 핏줄이자나요. 내 핏줄한테 가게 되어있어요. 내 아버지, 어머니는 정신병자라고 해도, 알코올 중독자라고 해도 치사랑, 아래 사랑이라고 하자나요. 애들을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얘가 이 두 사람들이 다 나한테 약자라는 걸 아니까 가서 마음대로 자기 주장을 무섭게 하자나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이혼을 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꾸 결손 가정으로 자라가는 거예요. 이혼이 그래서 3,4대의 저주를 가져온다고 그러자나요. 자기 마음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상처를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동성애가 나오고, 그래서 가정이 건강해야 동성애자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첫째로 여러분들은 이혼 안 하셔야 되는데 이혼하시고 싶은 분들은 여기 오면 제가 율법적으로 이혼하지 말라고 그런다고 또 그러는 거죠. 그런다고 제가 또 얘기를 안 합니까? 해야죠, 어떻게해요. 그러니 결혼도 고난으로 해석을 잘 해야지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반역의 대가는 반역입니다.
14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디르사에서부터 사마리아로 올라가서 야베스의 아들 살룸을 거기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5 살룸의 남은 사적과 그가 반역한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 14절, 15절.
가디의 아들 므나헴이 등장합니다. 그는 디르사에 주둔 중인 군대 사령관이었을 거예요. 디르사는 북이스라엘의 옛 수도예요. 사마리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군대가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어요. 므나헴은 여로보암 대왕에게 아주 충성했던 장수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 살룸의 반역을 인정할 수가 없었겠죠. 그러니까 살룸에게 복수하겠다고다짐을 했어요. 한 달 동안 복수의 칼을 갈았어요. 살룸에 반대하는 세력을 모았죠. 군대를 정비하고 작전을 짰어요. 그리고 한 달 후 드디어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로 진군합니다. 살룸은 사마리아에서 반역이 너무 쉽게 성공하니까 사마리아에서 공격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거 같아요. 사람들이 다 자기 명분을 인정하고 자기를 지지해주는 것 같으니까, 여러분 금세 거만해지는 거 있죠. 그래서 므나헴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하고 잡히고 말았어요. 한 달 전 자기가 스가랴를 쳐 죽였던 것처럼 살룸도 므나헴에게 맞아서 쳐죽습니다. 쳐죽였다, 쳐죽였다 나오네요. 이름처럼 예후에게 정의의 보복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 달 만에 그 일에 대한 보복을 자신이 당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은 이렇게 계속 처단하지만 남유다는 아무리 형편 없어도 다윗의 왕조가 내려가자나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거 일단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질서를 생각해보고. 그게 남유다하고 다른 거죠. 이처럼 반역의 대가는 반역입니다. 성경은 살룸의 인생을 10절부터 15절까지 6절로 기록했는데요. 반역으로 시작해서 반역으로 끝납니다. 우리 주님도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목적이 선해도 칼을 휘둘러 윗질서를 대적하면 반드시 반역을 당하는 거예요. 그 윗사람, 십자가는 지혜고 타이밍인 거예요. '저 사람이 못나서 죽여야 돼.'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부인보다 훌륭한 남편이에요, 그래서 '죽여야 돼.' 그래서 이혼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질서가 너무 중요한 거예요. 북이스라엘은 19명의 왕들 중에, 두 왕에 한 번씩 9번이나 정변이 일어나서, 여로보암의 시작이 반역이었자나요. 솔로몬에게 반역, 계속 반역이 일어나는 거예요. 호세아 8장 4절에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생각으로 빙자해가지고 계속 반역을 하는 거예요.
살룸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될 중요한 게 또 하나 있는데요. 모든 왕에게 여호와 보시기에는 관용어로 다 붙어있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그게 붙었는데 그 여호와 보시기에 없는 왕이 이 살룸 왕이에요.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 이런 기록이 없어요. 그보다 짧게 단 7일 왕이었던 시므리조차도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범죄했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 무슨 뜻이에요? 살룸은 유달리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았다는 거예요. 여호와 보시기에라는 말도 쓰기 아까운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만큼 인본적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스가랴를 공개 처형하기까지 한 것이죠. 그래도 그 나라의 왕인데 겉으로는 너무 의롭게 보이고 옳게 보이지만 실상 그의 삶에는 하나님을 위한 자리가 손톱만큼도 없었던 것이에요. 그러니 반역밖에 보여줄 것이 없는 인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살룸의 인생이야말로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의 기본값을 보여주는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사는 기본값, 초기값. 이것이 행위가 문제가 아니고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 반역자로 태어나서 평생 하나님 탓, 남 탓, 상황 탓을 하면서 반역하느라고 수고를 해요. 교회 안 오시는 우리들의 식구들이 그러자나요. 그러다 인생의 반역같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본 모습이에요. 예수 믿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옥은 공동묘지 같아서 입을 쩍 벌리고 기다리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 반역의 질기고 질긴 고리를 끊으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반역자로 태어나서 반역자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한 달 천하로 허무하게 끝날 뻔한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성령과 함께 지금부터 천국까지 영원무궁히 이어지는 영원한 천하를 살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할 수 있을까요? 우리 주님이 충성에 대해서도 본을 보여주셨자나요.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셨어요. 인생의 한계 안에서 끝까지 십자가를 지셨어요. 그러니 이제 여러분도 허황된 꿈 품지 마시고, 옳고 그름 따지며 명분 싸움 그치시고, 오직 오늘 내게 주신 그 자리를 잘 지키시길 바랍니다. 가장 잘 지켜야 할 자리는 어디예요? 가정이에요. 다른 여자, 다른 남자 기웃거리는 것이 전부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이에요. 남편의 책임, 아내의 책임 소홀히 하는 것도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에요. 부모의 자리도 마찬가지, 자녀의 자리도 똑같아요. 내일 일 걱정하고 염려하지 말고 오늘 하루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나를 심어두신 이 자리를 잘 지키며 구원을 위한 수고를 하는 것이 영원한 천하를 사는 비결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충성인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혹시 꾀하고 있는 반역은 없습니까?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하면서 때려 치려고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연말에 떠나지 말고 더 잘 지켜야 할 사명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기도제목
예선
1.그날 주시는 마음으로 가지치기 잘 하도록
2.이번주에 외국에서 매니저가 와서 여러 미팅들을 합니다. 최근에 여러 일들로 인해 보복,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데 감정을 빼고 사실 위주로 꼭 해야할 보고를 잘 할 수 있도록
3.같이 일하는 분과의 관계 때문에 하고 있는 큰 프로젝트를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올라옵니다. 허락하신 자리를 잘 지키고 겸손하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도록 (비자, 세금 문제 등)
은우
1.영원천하 누릴 수 있도록 말씀에 묻고 하고 싶은것에 반대로 하기
2.회사에 벌 주고 싶은 것들 내려 두고 원칙대로 하기
3.진행되는 프로젝트는 내것이 아니라 주께 영광임을 잊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