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7 돌이키고 살지니라에스겔 18:1-4, 23-32
요즘은 정말 한국이나 미국이나 선거가 진짜 전쟁같습니다. 실제로 한국과 미국은 이렇게 남북전쟁을 겪었죠. 미국 남북전쟁 최악의 전투는 1863년 7월에 있었던 게티스버그 전투예요. 사상자가 무려 5만 천 명이나 되었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전쟁이 가장 심했던 그 해 10월에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놀라운 선언을 하는데요. 추수감사절을 국가공휴일로 정한다는 것이었어요. 이 비참한 전쟁 중에서도 농사는 계속 되었고 수확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링컨은 이렇게 말해요. '이 위대한 일들을 인간의 지혜나 손이 이룬 게 아닙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죄 때문에 전쟁으로 진노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향한 자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 전쟁 중에 감사해야 할 남은 게 있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비와 우리의 죄, 감사와 회개, 이것을 전쟁 중에 링컨이 외친 것이에요. 그러니까 감사와 회개는 하나예요. 저는 정말 한 사람의 위정자를 허락해달라고, 악법을 막아달라고 기도했는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 멀리에서 응답이 와가지고, 우리가 트럼프를 100% 인정하지 않아도 고레스 역할처럼 그의 공약은 아주 차별화되는 것이었어요. 그는 종교의 자유를 강화하고 생명 존중 가치관을 존중해서 낙태 제한의 법 통과를 아주 강력하게 노력할 것이고, 기독교인들의 인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게 진짜인지 가까인지 고레스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썼자나요. 그런데 이제 이번에 총격까지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좀 만나시는, 진짜 지금 만나셨을지도 모르죠. 모든 목사님들이 기도를 이렇게 해드리더라고요. 하여튼 이 한사람의 위정자가 이렇게 강력하게 법을 외치니까 요새 약간 주춤한 거 같은, 그 뭔가 기류가 좀 달라진 것 같은, 그렇죠? 우리가 기도해서 그래요. 멀리 저기 들었어요.
지난주에 수능도 있었는데 우리는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하죠. 둘이 사실 다른 게 아니예요. 합격도 좋지만 최고의 가치는 구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돌이키면 살게 되는 거예요. 우리 인생이 어떻게 하면 오늘 32절처럼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의 인생의 될까요? 오늘 에스겔은 제 이야기예요, 제 간증. 수 십 년 동안 여러분 들어왔는데 또 한 사람 때문에 오늘 또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1027 그 에스겔의 6분 설교 말씀을 좀 더 풀어서 어떻게 하면 죄에서 돌이킬지 생각해보겠습니다.
1.남탓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 1절, 2절이에요.
우리가 1절에 오늘도 내게 말씀이 임하는 거는 죄에서 돌이켜 살 최고의 비결이에요. 자, 2절에 이스라엘 속담이 있다고 하세요. 신 포도를 먹은 건 아버지인데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는 아주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거예요. '잘못한 건 아버지인데 그 대가를 왜 내가 치러야 하나, 왜, 왜, 왜?' 이런다는 거예요. 큰 사건을 당했어요. 배신을 당하고, 사업이 망하고, 시험을 망치는 고난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우리 반응이 어떻습니까? '내게 왜 이런 일이?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래요? 내가 당할 일이 아니예요.' 억울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건 앞에서 우리 전공이 뭐예요? 남 탓하는 거예요. 에스겔 당시에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로 인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데요. 그러니까 백성은 이 고난의 이유가 오직 조상에게 있다고 생각을 했겠죠. 사실 맞아요. 조상 때부터 쌓인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거는 너무나 팩트기 때문에 '조상 탓이야, 부모 탓이야.' 이러면서 어떻게해요? '그러니까 우리 부모랑 의절해야 돼. 관계를 끊어버려야 돼.' 이래요. 가정에 일이 생기면 다 '아내 탓이야, 남편 탓이야.'하면서 '이혼해.' 이럽니다. 이건 절대로 해결책이 아니예요. 의절하고, 이혼하고, 버리면 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죠?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 3절, 4절이에요.
하나님은 이제 이런 속담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모든 영혼이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범죄하는 영혼은 죽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죽는 것 같은 사건에서 우리는 서로 남탓하기 바쁘지만 그건 다 우리 속담일 뿐이라는 거예요. 착각이라는 거예요. 남 탓은 다 착각이라는 거예요. 남 탓은 결국 하나님 탓으로 이어집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돌이키라고 주신 사건인데요. '나는 아무 잘못 없다.'면서 남 탓만 하면 결국 하나님께 돌이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들이받고 스스로 천국 문을 닫아버리는 거라는 거죠. 고난이라는 문제를 잘 해석해서 풀어야 살아날텐데 엉뚱하게 풀려고 하다가 다 지옥을 살게 되는 거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의 모습이에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그 영혼이에요. 죄는 과녁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우리는 벗어나든지 부족하든지 둘 중 하나인 거예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과녁을 맞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 죄를 보라고 고난이 오는 것인데 아주 그냥 자연 발생적으로 남 탓만 하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그 인생을 산다는 거예요. 오늘 마음에 탓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정말 남 탓이 멈춰지길 기도합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무슨 일로 누구를 탓하고 있습니까? 끊으려 하는 관계가 있습니까?
에스겔 18장에 그 지금 아비가 신 포도를 먹어서 아들이 내 이가 시다고 했는데 남편은 아버지가 우상이었어요. '우리나라에 아버지 같은 분이 대통령을 해야 된다.'고 하면서도 그 장로님 아버지하고 서로가 예수 얘기는 하나도 안 하는 거예요. 장로님이 아들 전도를 안 하세요. 그런데 돌아가셨는데도 존경하니까 이 장로님 산소에서 늘 기도를 안 하고 절을 합니다, 우리 남편이. 저는 이 날, 에스겔 18장 큐티를 한 날 우리 남편이 갔는데 아침에 이 큐티를 하면서 '무슨 아버지 잘못으로 남편이 이다지도 주님을 못 믿는가?'하면서 이 구절을 묵상하며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결국 이게 아버지 탓이 아니고 자기 잘못이라고 했자나요. 이 남편 의로운 사람이에요. 음란보다는 명예에 관심이 훨씬 더 있었던 것 같고 보람있게 사는 것이 목적이라고 가끔 얘기했어요. 겉으로는 신실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를 받는 의사 선생님이지만 저에게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금했기 때문에 모든 것에 자유가 없었어요. 하나부터 끝까지 모두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거기에 한 마디만 붙이면 짜증을 냈습니다. 혈압이 높았지만 음식물 조절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제 말을 금세 듣는 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 회개를 했지만 알코올은 밤마다 중독이고, 욕도 잘했고, 술 주사로 제가 매도 맞고, 그러니까 제가 이혼 생각과 자살 시도를 괜히 했겠어요? 이번에 수능이 있었지만 어떤 부목사님은 '자기가 수능 본 날 6살 연상의 교회 누나 만나러 갔다.'고 그 누나하고 결혼하고 같이 살고 있대요. 저는 그렇게 만날 교회 오빠도 없었고 저는 입시 치른 그날부터 놀아야 하는데 먹고 살아야 하는걱정 때문에 알바부터 구했어요. 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전화가 없는 아이가 저 하나더라고요. 그렇게 광야를 지나 시간을 천금같이 썼던 제가 결혼하고 겪었던 고난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이런 힘든 광야가 기다리고 있어요. 이건 정말 걸레질의 문제가 아니예요. 사실은 이거는 남편의 문제죠. 그 중에서도 걸레질의 문제가 아니고 가장 힘든 것이 탓을 하는 거예요. 겉모습은 좋았지만 안으로 보면 율법적이고 분노 조절이 안 되고, 말만 하면 탓을 하고 오해를 하고 수잔이에요. 수 없는 잔소리를 하는 거예요. 모든 일의 결국은 항상 제 탓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믿음으로가 아니고 억지로 내려놓는 이 자존심은 비굴하기가 짝이 없는 거예요. 전 남편에게는 밥만 축내는 인간이었지만 병원의 간호사나 환자에게 문제가 생길 때는 제가 이렇게 자존심을 억지로라도 내려놓는 것을 봤는지 저보고 해결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비굴한 저는 병원에 트러블 생기기를 바랄 지경이 됐어요. 왜냐하면 그때만 저를 인정해주니까, 그때만 이제 수잔이 안 되기 때문에 갑자기 그때만 그 수잔이 멈췄어요. 수잔, 수 없는 잔소리예요. 하나 만들어 냈습니다. 수잔 좀 하지 마세요. 그 탓 좀 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와중에서 저도 이 탓하기가 전염이 되어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 똑같이 남편 탓, 시댁 탓을 하며 이 결혼을 시킨 친정 부모 탓을 하며, 탓의 결론은 '나는 힘이 없으니 이혼하자, 죽자.'였죠. 여러분 가운데도 이제 자녀들이 힘들어지면 다 자녀들이 부모탓을 하자나요, 그렇죠? 참 그 말 듣기가 힘드시죠? 왜 아닌 것처럼 가만히 있어요? 내 옆에 사람이 들을까봐. 그때 저는 정말 땅끝까지 내려갔습니다.
2.공평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 23절, 24절이에요.
우리가 악인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지 않으세요. 대신 뭘 기뻐하세요? 악인인 우리가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세요. 그러면 어디에서 어디로 돌이켜야 할까요? 24절부터 27절까지 그 답이 나오는데요. 죄악에서 떠나 공의로 돌이켜야 한다고 하세요. 공의가 뭐예요? 최고의 의인데요. 이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은 돌이키지 않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 것만이 돌이키는 거예요. 아무리 의인이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예요. 예수를 믿는 것이 돌이켜 사는 것이에요. 이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공의를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뭐라고 합니까?
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 이스라엘 백성의 이런 외침이 얼마나 심했으면 29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나오는 거예요. 29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이건 곧 우리 마음에 처음부터 있던 생각인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 아니시고 공평하지 못한 분이시라면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이라면 나는 안 믿는다.' 이러는 거예요. 그런덷 예수님은 하나님이 완전하게 공의로운 분임을 아셨어요.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 100% 옳으시다.'는 것을 아셨어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우리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도 모두 용서하셨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100% 옳으시니까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니까요. 공평하시니까 말이죠. 그러니 너무너무 억울한 십자가도 내 십자가로 지시는 거죠. 이게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옳다, 내가 공평하다.'만 부르짖어요. 요새 우리가 어딜 가나 전부 자기가 옳자나요. 전문가, 경험, 지혜 그런 거 다 소용이 없어요. 그저 내 생각, 내 느낌, 내 상처가 최고의 심판관이 되었어요. 그게 인권이라고 해요.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온 나라가 전쟁통이 되었어요. 정말 큰 일이에요. 너무 큰 죄악이에요. 너무너무 슬프고 두려운 일이에요. 없는 죄도 만들고, 있는 죄도 없애고 다 '내가 옳다.'고 그래요. 서로서로가 다 내가 옳대요. 이렇게 내가 옳다만 외치면서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하시다고 불평하니까 내 사건이 해석이 안 되고, 그래서 결국 영원히 해결이 안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다고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반복, 반복해서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아니다, 나는 공평하다. 너희가 공평하지 않은 거야. 너희 길이 비뚤어진 것이야.' 하나님은 왜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실까요? 사랑 때문이에요. 계속 남 탓하고 하나님 탓해도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우리를 포기 못하세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하셔서라도 돌이키려고 하세요. 포기하지 않는 사랑,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제발 성도로서 해석 잘 하라고 강력하게 '나는 공평하다. 네가 공평하지 않은 거야.'라고 강력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제발 좀 들으라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지금 안 들려도 집에 가서 다시 들어보세요.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이 공평하십니까? 불공평하십니까? 이제는 인정해야 할 내 공평하지 못함은 무엇입니까?
내가 공평하니까 하루하루가사투를 벌이는 전투였어요. 하나님은 나에게 너무 불공평하셨는데요. 사실 겉으로 탓하는 남편이나 속으로 탓하는 저나 다를 것이 없는데요. '남편이 공평하지 않다.'고 이게 주제가야, 그냥. '남편이 불공평하다.'고 부르짖었죠. 그렇게 말하는 제가 공평하지 않다는 걸 몰랐어요. 속으로 탓하는 제 자신이 봐지지가 않았어요.
3.내 탓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 30절에서 32절이에요.
여기서 제목을 가져왔어요. 오늘 말씀의 결론이에요. 제발 불공평하다고 그러지 말고 '부모 탓이다, 남편 탓이다, 아내 탓이다, 자녀 탓이다, 사장 탓이다, 직원 탓이다, 선생 탓이다, 학생 탓이다, 여당 탓이다, 야당 탓이다 제발 좀 이러지말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알아라. 그리고 남 탓하고 불평하던 죄악에서 돌이키고 살지니라. 죽지 말고 살지니라. 죽음을 향해 가지 말고 살아날찌라. 살아나라, 제발 살아나라. 살아라.' 하나님의 지금 절절한 부탁을 우리가 지금 읽었어요.'제발 살아라.' 돌이키는 것은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인데요.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에스겔 36장 26절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부모 탓, 남 탓, 하나님 탓하는 것이 얼마나 굳은 마음이겠어요. 그러면 부드러운 마음은 굳은 마음의 반대니까 남 탓의 반대는 자기 탓이자나요, 그렇죠? 내 탓, 그러니까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은 남 탓을 내 탓으로 바꾸는 거예요. 탓이라고 하니까 나를 정죄하라는 게 아니고요. 내 안에 있는 문제를 보고 내 죄를 인정하라는 거예요. '이 고난이 내게 책임이 있다.' 이렇게 자책하라는 게 아니라 '내 고난을 통해서 내 안에 감춰져있는 죄악을 보라.' 이거예요. 그냥 우선 내 탓만 하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라는 거예요. 하늘이 열려야 돼죠. '100% 옳으신 하나님을 인정하라.' 이런 뜻이에요.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100% 죄인임을 인정하는 거죠. 그래서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이 고백을 하는 거예요. 자책하고 자기 죄를 보는 거하고 아주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바로 이것이 가장 새로운 새 마음이고, 새 영이라는 거예요. 성령을 받는 겁니다. 성령 받아서 뭐 엄청난 일하고 대단한 이익 보는 게 아니고요. 물론, 그런 엄청난 일도 하게 하시지만 중요한 거는 내 탓을 하는 거예요. 즉,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성령받은 징표입니다. 내 문제로 여기고, 그래서 거룩한 갈등을 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겁니다. 사는 길이에요.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은 이런 새 마음을 가졌습니까? 남 탁을 합니까, 내 탓을 합니까?
땅끝까지 내려간 저는 남편 때문에 이제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해서 내 탓으로 여기며 스스로 돌이키고 살게 되는 성령의 회개를 하게 되었어요. 팔을 아무리 비틀어도 깨지지 않을 제가, 아무리 비틀어도 '아야...'이래요, '아야!' 이러지 않고. 그런 제가 얼마나 교만한지 알게 되고, 이 부분은 길어서 생략합니다. 책 보세요. 회개한 후에 나를 위해 남편이 수고한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고, 그리고 이제 남편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기도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병원이 망해서라도 그가 이 좋은 예수를 알고 구원받기를 바란 것은 그가 세상적으로 별로 고생을 안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에게 안식이 없더라고요. 안식이 생기길 소망했고요. 그러면서 하루하루가 생명을 내 놓으니까 막 '이래도 생명을 내놓을래?'하는 사건들이 막 생겼어요, 성경책을 막 찢고 그냥. 그런데 그렇게 생명을 내놓고 하루하루가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18장 1절에도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3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23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30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32절에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 18장에 이렇게 말씀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이 임하니까 말씀대로 THINK를 하게 되니까 그 꿀송이처럼 단 말씀이 임하니까 그 사건보다 더 좋은 기쁨이 생겼어요. 죄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돌이킬수도 살 수도 없는데요. 그러니까 팩트만 보면 죽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문제만 생기면 그래서 이혼하고 자살을 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자나요. 그리고 다들 옆에서 부모가 되가지고 '얘, 니가 왜 그러고 사니, 어디가 못나서. 맞다, 이혼해.' 이렇게 부추기시는 거예요. 그런 말은 해 줘도 안 되고 들어도 안 되는 거예요. 어떤 경우도 살아야 되는 거예요. 반드시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탓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루하루가 말씀이 임하니까 말씀 적용으로 인한 이 간증의 날들로 지금 기억이 되는 거자나요. 그때 그걸 말씀으로 내 사건을 해석했기 때문에 지금 오늘날 여러분들한테 이걸 간증으로 지금 들려드리는 거자나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큐티 노트하고 그날의 간증을 말씀으로 써 놓으시라고요. 그러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쓰신다고요. 잘 먹고 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날 저녁에, 에스겔 18장 묵상한 그날 저녁에 이제 남편과 외식을 하기로 했는데 전화가 와서 밥을 먼저 먹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저는 토를 달지 않아요. '왜요?' 안 물어요. 그만큼 제가 제왕대접을 해요. 여자의 머리는 남편이기 때문에, 여자의 머리는 남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기도하니까 못 참을 일이 없고 모든 것이 구원의 시각을 생각되고 행동하게 되었어요. 잠시 후에 간호사가 전화를 했어요. '원장님이 퇴근하시다가 다시 들어오셔서 링거를 맏고 계시다.'고 합니다. 저는 병원으로 총알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죽을 병도 아닌데, 병원도 안 망했는데 '기도해줘.' 그래요. 저는 큰 소리로 기도하면 시끄럽다고 할까, 작은 소리로 하면 안 들릴까 이렇게 칼날 위의 물방울처럼 기도를 했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하고, 그리고 이제 12시에 대학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결과는 간동맥 파열이라는 거예요. 간암 말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우리 병원은 간기능 지정병원이에요. 대민 봉사한다고 우리 남편은 한 달에 한 번씩 간기능 검사를 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나라에 간염 보균자가 많기 때문에 수술하다가 이게 전염된다고. 우리 집에는 간으로 아픈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의 완전주의로 한 달에 한 번씩 검사를 했어요. 그러나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저는 이 병명을 가지고 남편에게 뛰어들어가서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국 가지 않으면 애들 데리고 살 자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들과 부모님 밖에 모르던 남편은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 첫 말이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왜 이렇게 울고 난리를 치냐.'고 베드로전서 3장 얘기를 하면서 '이제 보니 예수 헛 믿었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이제 완전히 제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식구들은 저를 불러내서 '철이 없고 경솔하다.'고 했어요. '왜 병명을 말해서 살 소망을 끊느냐.'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날 밤에 중환자실은 돌 지난 아이, 환갑 노인 등 수 많은 중환자들이 아무도 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모습을 저에게 그날 그 사진을 찍어두셨어요, 머릿 속으로. 구원이 악세사리가 아니죠. 그러니 이제 제가 말하니까 남편은 '용서해주세요.' 했어요. 산소호흡기, 수혈, 십자가에 달린 것처럼. 그러면서 '용서해주세요.' 했는데 저는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회개를 해보았기에 그 말이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은 이제 또 잠시 후에 의사가 오니까 '이 사람이 몸이 약하니까 밤을 새우면 안된다.'고 '내보내달라.'고 그랬어요. 그래도 제가 안 나가고 있으니까 또 시간이 지났는데 자기는 생명이 지금 경각에 이르고 있는데 '이 사람이 다리가 아플 거라.'고 '의자를 갖다주라.'고 그러는 거예요. 우리는 야곱이 얍복나루에서 씨름하듯이 영과 육의 대화를 했습니다. 저는 회개하라고 그러고 남편은 제 걱정을 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자 남편은 목사님을 찾았어요. 그래서 제가 '주일이니까 4부 예배 끝나고 이제 모시겠다.'고 했는데 30분 후에 남편은 또 '목사님 안 오시냐?' 물었어요.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저는 4부 예배 끝나기 전에 데려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성령이 주셨어요.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이라 그랬자나요. 이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이번에 나가서 설교한 것도 결국은 큐티를 했기 때문에 제가 적용한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정말 나갔어야 돼요,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런데 그때는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너무 고민을 하면서 결국은 큐티 적용이에요. 밤새 안녕이라고 목사님도 너무 놀라셨지만 목사님은 1부 예배 때문에 처음 보는 나이 어린 부목사님이 오셨어요. 이 부목사님은 살려달라고, 기적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하시지 않고 이제 너무 급하니까 '오늘 밤 천국 문 앞에 스셨어요.어떻게 들어가시겠습니까?' 그렇게 물었더니 그 처음 보는 목사님 앞에 '예수 이름으로요. 그런데 제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죄가 많아서 교회를 갈 수가 없었어요. 목사님은 제 직업을 아십니까?' 목사님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시다시피 남편은 산부인과 의사로 그 당시는 가족 계획이 국가 정책인 거예요. 그래서 다 가족 계획 지정 병원을 하고, 산부인과는. 무자식 상팔자가 표어고 아무도 죄의식 없이 잘 살아보세가 영육의 슬로건이었기 때문에 다들 가책도 없었는데 역시 장로님 아들이라 괴로웠나봐요. 남편은 목사님에게 '제가 이렇게 매를 맞았습니다. 회복시켜도 감사하고, 회복시켜주시지 않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남편은 자기는 그렇게 괴로운데 저는 늘 성경만 보고 있으니까 막 남편이 성경도 찢고 그랬죠. 그 보인 태도가 그 괴로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어요. 목사님은 '우리 중에 행위로 천국 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계란이 5개 중에 한 개가 썩어도 알고는 그것으로 만든 빵을 못 먹어요. 만 개 중에 한 개가 썩어도 알고는 그것으로 만든 빵을 못 먹어요.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가는 거예요. 이 예수님을 영접하시겠습니까?' 남편은 목사님을 따라서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주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저의 주인이었어요. 이제부터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제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연약한 인생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남편이 구원받는 순간이었어요. 평생 교회를 다녔다고 하는데 45년 만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제가 그 순간 영원히 잊지 못하죠. 그래서 우리 식구들이 구원 받고 천국 가면 자녀들이, 유가족들이 사는 태도를 보면 알아요. 진짜 구원받고 갔으면 그렇게 딴 소리들 안 해요. 구원받고 갔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34, 5년 이렇게 기쁘게 사는 거예요. 우리들교회는 저의 구원 간증 때문에 모두들 구원 때문에 애통해하시고 병상 세례, 영접 심방이 정말 많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가장 먼저 용서를 구했어요. 그리고 친정 아버지에게는 '아들 없는 집에 와서 아들 노릇 못했다.'고 또 회개했어요. 시댁 식구에게도 '미워서 비판한 것 아니.'라고 또 회개를 했어요. 그런데 이제 목사님이 가신 후에 저한테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사실 이 고백을 당신에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순서가 있자나.' 이러는 거예요. 거기서까지 순서를 따지더라고요.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그 영접하는 그 시간에 증인이 없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우리 남편이 정말 목사님을 잘 모신 거죠. 그러면서 이제 저에게 '우리 병원에 가서, 자기는 이렇게 오래 안 산다. 12시면 산소호흡기를 뺄 거니까 이제 그 병원비 가져오라.'고 하면서 그리고 이제 병원 가서 병원 생활비 주고, 병원 기름 값 주고, 그리고 이제 또 무슨 얘기를 했냐면 '옥상에 고추를 널어놨는데 가서 걷으라.'는 거예요. 지금 죽기 지금 정말 몇 시간 전인데 너무 소풍 가는 것처럼, 너무 좋은데 가는 것처럼. 저는 마지막 그 부탁을 들으러 우리 병원에 갔습니다. 할 일을 다 하고 한 시간 만에 돌아왔는데 이제 그동안 그 한 시간 동안 남편은 '나처럼 살지 말라.'고 45년 동안 하지 못한 전도를 그 시간에 했어요. 그리고 이제 제가 병원에 다녀왔더니 저를 보고 '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거예요. '큰 일은 그렇게 작은 일부터 하는 거라.'고 숨이 헐떡거리면서 세 번이나 칭찬을 해줬어요. 그리고 이제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때가 이제 명절이니까 '간호사들 휴가 다 반납시키고 사무장하고 장례 잘 치를 수 있으니까 하나도 걱정하지 말라.'고 완벽한 구원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하루가 안 되는 시간에 중환자실에서 그 7시에 목사님 오셔서 구원 받고 내가 병원에 갔다 왔는데 지금 막 일촉즉발의 시간으로 막 갔는데 그리고서 3시간 지나고 10시, 그 10시에 뇌사 상태에 들어간 거예요. 이게 얼마나 긴급한 시간입니까. 그것이 이제 다 유언이 된 거죠. 의사들이 둘러서 CPR을 하는데 그렇게 유언을 해 놓고 제 앞에서 이제 생명이 스러져 가는 모습을 제가 이렇게 본 거죠. 제가 여러분에게 드릴 말씀은 남편이 쓰러진 후에 계속 제 걱정을 하며, 제가 하라는 대로 다 했자나요. 회개하라니까 '용서해주세요.' 영접도 하고, 구원도 받고, 그리고는 이제 정말 제 걱정, 제 얘기, 장례식까지다 지시하고 갔어요. 우리 병원의 생활비, 기름 값까지, 고추 말린 것까지 걷으라고. 그냥 병명을 듣는 그 순간에 100% 저를 신뢰하고 모든 것을 저에게, 또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이보다 저를 더 사랑할 사람이 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그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난 남편의 태도를 보면서, 그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태도, 구원 받은 사람의 태도를 봤어요, 제가. '내가 개업의로 이제 밤 잠도 못 자고 밤에는 산모 받고 해외 한 번을 못 나갔으니 내가 왜 이렇게 죽어.' 그 얘기 한 번 해야 되자나요. 하나님은 그런데 저의 기도를 정말 신실하게 응답하셨고 내가 죽어도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완벽한 모델을 이렇게 보여주셨어요. 그러니까 제가 남편을 너무 모르는 거죠. 저는 이제 그때부터 그 날의 일을 하나도 안 잊어요. 저는 그런 남편과 수 없이 이혼을 생각하고 자살까지 시도를 했자나요. 얼마나 기가막힙니까. 죽을 때는 다 진심이라고 하자나요. 그런데 저의 이 사랑이 얼마나 얄팍하냐, 저는 믿는 사람이자나요. 그 사람은 소위 지금 불신자자나요. 교회도 안 나가자나요. 그래도 믿는다는 나는 맨날 자살 생각이나 하고 이혼 생각이나 하는데 그 사람은 속으로 그냥 기본적으로 그 생각이 있었으니까 저는 이제 다시 그때부터 저는 절대로 그러니까 사람 모르는 거예요. 내가 우리 남편 변하면 이 세상에 변하지 못할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정말 '이혼하지 말고 죽지 말라.'고 '이걸로 살아서 외치라.'고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한테. 제가 생명을 내놨는데 우리 남편 데려가셨으니까 저는 이걸 사명으로 감당해야 되는 거예요. 저는 이 간증 할 때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생각을 하면서 세상으로 길이 많이 열려있었지만 지금까지 참으로 날마다 정말 저에 비하면 여러분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날마다 이혼하고, 죽는다 그러고, 부모 탓하고, 아내 탓하고, 남편 탓하고 이러는 거 여러분들이. 바람 좀 피면 어떻고, 매 좀 맞으면 어때요. 제일 중요한 거는 가정을 지키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인 거예요. 제가 매도 맞았자나요. 그거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이 세상에 없어요. 1순위인 거예요. 가정을 지켰다는 것만으로 자녀들에게 최고의 예단과 혼수를 준비해주시는 거예요. 다 보여줬는데 제가 모른척 했던 것 같아요. 지나고보면 남편은 낙태가 마음의 짐이었던 것 같아요. 80년에도 삼일절에 제가 구국금식기도회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니까 가자.'고 그랬어요. 그랬는데 갔어요. 장로님 아버지가 도리어 반대를 하시고 '그런데는 왜 가냐?'고 그런데 그때 많이 모였어요. 이번에 1027을 겪어보니까 그때도 그냥 엄청나게 모였는데 대성전 문을 여는 순간 금식으로 악취가 나니까 '당장 돌아가자.'고 그래서 돌아왔어요. 그랬는데 그때 삼일절에 교회에서 부부 세미나가 있었는데 '여기라도 가자.'고 그러니까 미안한지 참석했는데요. 다 들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강가사 '서로 힘든 분들 용서하고 껴안아주라.'고 그랬더니 이 사람 눈에는 남녀가 껴안는 것만 보여. 집에 와서 노발대발 했어요. 병원 앞에 또 유명한 부흥 강사가 오셨는데 그날따라 '300만원 손 들어. 200만원 손 들어.'하니까 또 시험들었어요. 80년도에 또 여의도 복음화성회도 그때도 '죽은 사람 소원 들어달라.'고, 그러니까 저도 끊임없이 제가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그날 비도 왔는데 '선교사 헌신자 일어나라.'고 했는데 차마 못 일어났는데 '후원하고 보내는 선교사 일어나라.'고 했는데 제가 딱 일어났어요. 그런데 화를 내지 않았어요. 천국 간 그 해에는 송구영신 때 눈이 오는데 오산리 기도원에 갔었어요. 맨날 제가 얘기해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한 번만 가자.'고. 숙소가 없어요. 호텔이 뭐 있는 줄 알았나봐요. 대성전에서 자라고 또 다시 오면서 처음으로 부드럽게 '내가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여기서 못 자니까 구정 때 다시 오자.'고, 물론 그 약속 못 지켰는데. 남편이 낙태 수술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끔찍하다는 소리를 여러 번 했어요. 그러니까 술 먹고 괴로워서 저에게 모두 해댔는데 이렇게 여러 차례 기도원을 가고, 예배를 드리러 가고 했다는 사실이 악에서 돌이키고 살 택자였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행위로 날 때리고 어쩌고 저쩌고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힘든가?' 이 생각을 좀 해줘야 되는데. 그래서 저는 이제 '왜 그렇게 날마다 목사님은 그렇게 간절하냐?' 이 생각은 잊어버려질 수가 없는 거죠. 저는 저의 사랑의 넓이와 높이가 너무 얄팍해서 죽을 때까지 회개를 해도 부족함이 없고, 그래서 당연히, 당연히 제가 좋은 일 한 게 아니고 죄의 값으로 그 병원을 하나님께 드릴 수 밖에 없었어요. 왜냐, 날마다 그 생각을 했어요. '저는 낙태 간증을 하는데 이 죄는 어떻게 하나? 다들 말만하고 아무도 죄의 값을 치르지 않는데 낙태를 하지 말라고 하면 내가 뭔가를 그거를 해야 되지 않냐? 이게 그냥 구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지 않는가?' 누구는 저보고 이거를 자랑을 한다고 이래요. 내가 자랑할라고 이런 얘기하겠어요? 스스로 돌이키고 살면 어떤 사람이든지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걸 못 믿어서 자꾸 하나님 탓, 남 탓하면서 '죽는다. 이혼한다.' 여러분 이혼 안 하면 우리나라 잘 살아요. 이혼만 안 하면 잘 살아요. 이혼에서부터 모든 게 출발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를 보니까 진짜 그래요. 제 사명은 가정 중수, 말씀 묵상인데요. 저는 이사만 가도, 여행만 가도 안 하는 큐티를 남편의 시신 앞에서 했자나요. 그것이 오늘 읽은 18장이에요. 27절에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러나 '하필이면 영접한 날 데려가시는 것은 너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제 입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죠. '나는 학생의 때, 며느리 때, 아내의 때에 순종했는데 왜 나에게 이러시냐?'고 '나에게는 너무 혹독하시다.'고 '공평하지 않으시다.'고 했어요. 그러나 남편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의로운 일이지만 남편을 천국으로 데려간 것은 더 공평하다고 하신 거예요. 28절이 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죽지 아니하리라고 구원받은 거 확증해주셨자나요. 23절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의 말씀이 없다면 29절에 29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이 말씀을 어떻게 감당했겠습니까. 마지막까지 구원 받지 못하고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직전에 이렇게 스스로 헤아리고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 얼마나 기적입니까. 진짜 어떻게 돌이키고 살 수 있었을까요. 전적인 하나님의 공평하심인 거예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나님의 공평하심이에요. 한 가지 의를 행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사는 것이 사는 길이고 천국 가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남편이 천국 간 그날 큐티노트에 '남편이 구원되었다. 할렐루야!!!' 느낌표 여러 개를 썼어요. 제가 왜 이렇게 눈물로 간증을 하는가 하면 '항상 제 남편이 대신 갔다. 나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이 생각이 있는 거예요. 남편의 이 구원 간증은 1027 연합 예배에서도 쓰임을 받았어요. '한 생명이 귀하다. 한 사람이 돌이켜 살아나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증이 되었어요. 이런 모든 것들이 돌이키고 살지니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외침이 되길 바라고 특별히 다음 세대를 향한 우리의 믿음의 유언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회복되고 살아나는 구원의 역사가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기를 원합니다.
기도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