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산당 제사
열왕기하 15:1-7
김양재 목사님
1. 겸손한 환경이 축복입니다. (공동 통치하던 때 24년)
아버지 아마샤는 정직했지만 회개하지 않았다. 에돔을 통치하게 되니 교만해져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도전했다. -> 완패.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었기에 면목 없는 죄인이 되어 공동 통치를 하게 됨. 아사랴는 이 모든 걸 보고 자랐다. 아버지가 제일 잘 나갈 때도 봤고 인생 최악의 패배를 당한 것도 봤다. 마지막엔 살해당하는 고통도 겪었다. 아마샤만 생각하면 불쌍하고 억울하다. 요아스 이후 유다 왕들을 보면 상처와 연민의 모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아사랴까지 대를 이어 내려온다. 아사랴는 겸손한 환경에 있었다. 자신을 높이고 믿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요아스도 아마샤도 정직했기에 성품으로 정직함을 물려받았다. 아마샤는 신결혼도 하여 믿음 속에서 자랐다. 믿음의 양육은 고난 중에 빛을 발한다. 역대하에 아사랴의 다른 이름이 웃시야로 나온다. 26장 5절/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았다. 어머니 여골리야를 통해 믿음으로 양육 받았다.겸손할 수 밖에 없는 고난 가운데 절망하거나 다른 우상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웃시야를 형통케 하셨다. 형통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 데만 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인생의 상급이다.
- 여러분의 환경이 비천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겸손한 환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남을 탓하며 원망합니까? 하나님의 양육을 잘 받고 있습니까?
2. 강성하니 산당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15년의 부국강병 시대)
산당은 기복신앙과 성공 복음의 상징이다. 공동 통치할 때는 자기 연민 때문에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 형통하게 되니 또 제거하지 못한다.산당이 너무 익숙해져서 악인지도 몰랐다. 결국 산당이란 내 주장으로 내 생각으로 잘 되기를 비는 것이다. 웃시야가 강성해지니 제사장들을 제치고 성전에서 자기가 직접 향단에 분향하려 한다. 형통하고 강성해지면 양심도 이겨버린다. 잘못인지 모르게 되어 있다. 본인이 보기엔 당연한 일처럼 생각한다. 이게 우리의 본모습이다. 낳을 때부터 죄인이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아사랴를 향해 제사장들이 항의한다. 하지만 웃시야는 제사장들의 만류에도 듣지 않고 화를 낸다. 산당 제사를 평범한 일상으로 여기며 끊지 않았던 인생의 결론이다. 죄가 죄인 줄 모르고 반복하는 악의 끝은 귀가 막히는 것이다. 내가 제일 옳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거 하지 말라고 하면 화가 난다. 한마디로 가난하면 듣고 부유하면 안 듣는다. 산당을 제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지 않는 것이다. 익숙하고 평범하니까 내버려둔다. 영적으로 잠들어있는 것이다. 내 욕심을 채우려고, 내가 다 가지려고 하는 것도 산당이다. 나쁜 습관과 중독, 내가 옳다는 확신, 연약함과 아픔 뒤에 숨어서 교묘하게 내 주장만 하는 것도 산당이다. 여전한 산당 제사를 제거하는 적용은 여전한 방식의 매일 큐티와 적용이다. 여전히 산당 제사를 지내지만 여전히 큐티하면 이것을 막을 수 있다.
- 내 욕심과 교만으로 추구하는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3. 하나님이 치십니다. (나병의 14년)
형통함과 강성함 가운데 교만해진 웃시야를 여호와께서 치셨다. 치셨다의 히브리어로 나가 -> 만지다, 닿다. 단순히 매로 때렸다는 뜻이라기보다 고치기 위해 이리저리 만지고 보살폈다. 손보다 라는 뜻이다. 웃시야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내던 그 자리,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바로 나병에 걸려버렸다.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했다. 이 세상에서 교만 중 교만은 영적 교만이다. 북이스라엘 왕들은 그저 정권이 탐나 반역했지만 근본적으로 영적 교만이 뭔지 남유다보다 모른다. 그에 비하면 웃시야는 완전무결했다. 그러다보니 영적으로 교만해졌다. 이 땅에는 때가 될 때까지 질서가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구원의 문제인데 아사랴가 강성해지니까 구원이 아니라 선악의 문제로 몰고 갔다. 항상 내 입장만 옳기 때문에 내 입장을 위해서만 기도하고, 내 연민과 내 절망만 편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산당 제사이다. 언제나 웃시야처럼 내가 주인공인 것이다. 나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성전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스스로 중심이고자 했던 웃시야인데 거기서 완전히 단절되버린다. 그저 밑동 잘린 나무이다.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씨 때문에 다윗의 후손에게서 등불을 빼앗지 않으셨다. 웃시야도 유다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웃시야를 향한 심판이다. 이것이 그냥 때린 게 아니고 손 보신 거라 하신다. 부숴 버리는게 목적이 아니라 고쳐 쓰시려고 만지고 보살피시는 손길이다. 때마다 별궁에 거하게 하시는 것이 축복이다. 아사랴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갔다. 이 땅에서 악한 형통이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여로보암의 악한 형통보다는 아사랴의 나병과 별궁이 훨씬 형통하다.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는다. 이것이 구속사이다. 별궁 같은 상황에서 웃시야같은 내 옛 자아가 완전히 죽어야 성전에 가득한 영광을 보는 이사야의 사명이 내 삶에도 이어진다. 나를 단절되고 갇힌 별궁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여전한 산당 제사를 드리는 나를 하나님께서 손 보신다.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 여호와께서 치신 사건이 있었습니까? 어떤 별궁에 갇혀 있습니까? 별궁 같은 상황에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공동체를 통해 채워주시는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A
- 면접 보고 회사 선택하는 가운데 지혜 주시고 주일성수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회사 고르기
- 거룩한 신교제
- 쳐내야 할 산당들 잘 쳐낼 수 있도록
B
- 큐티 잊지 말고 하기
- 여자친구와 거룩한 관계 노력하기
- 양교 숙제하기
C
- 양교 수료에 힘 쓸 수 있도록
- 큐티 주1회 이상 하기
D
- 아빠 교회 잘 정착하길
- 매일큐티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E
- 아빠의 영혼구원, 부모님 건강
- 자기연민과 영적 교만무너지길
- 매일큐티, 양교 꼭 수료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