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겸손한 환경이 축복입니다. (공동 통치의 24년)
2절에 16살때였다는 것은 아버지와 공동통치를 시작한 때를 말한다. 52년 중에 공동통치한 24년동안 무슨일이 있었나?
아버지 아마샤는 정직했으나 회개하지 않았다. 에돔을 정벌하고 교만해졌다. 이스라엘왕 요아스에게 니가 감히? 하며 도전장을 던졌다. 그런데, 완전히 패배해서 예루살렘까지 점령당하는 초유의 일을 겪는다. 면목없는 죄인이 되어서 어린 아들과 공동통치를 해야하는 처지가 된다. 예루살렘에서는 무리가 반역을 일으켜 살해된다. 아사랴는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성장한다. 인생 최악의 패배와 영광을 겪은 것을 다 보았다. 아버지가 마지막 반역자 무리에게 살해되는 고통도 다 겪었다. 아버지 아마샤만 생각하면 불쌍하고 억울하다.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북이스라엘도 너무 싫고, 밉다. 아버지를 압박하고 잔소리한 유다 지도자들은 더 밉다. 게다가 아버지를 죽인 반역자들은 철천지 원수이다. 요아스 이후 유다왕들이 상처와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들이 있다. 대제사장 고모부 밑에서 평생을 눌려 살다가 심복의 반역으로 죽은 왕이있다. 상처와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찬가지의 아마샤가 있다. 이 상처와 연민이 아사랴에게까지 이어진다.
아사랴 엄마가 여홀리아였다.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웃시야는 왜 하나님을 쫓았을까. 어머니 여홀리야를 통해 믿음으로 양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웃시야를 형통하게 하셧다. 하나님을 찾는 거 말고는 길이 없다. 근데 하나님을 찾았더니 패배가 변하여 형통이 되었다. 웃시야에게 주신 형통이 얼마나 컸는지 인근 나라에까지 이름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것이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해진 결과라고 한다. 형통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데 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고, 우리 인생의 상급이다.
Q. 여러분의 환경이 비천하다고 생각? 겸손한환경이라고 생각?
Q. 그래서 남을 타하며 원망하나요? 하나님의 양육을 잘 받고 있나요?
2. 강성하니 산당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부국강병의 14년)
왕이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여전히 산당제사를 드린다.왕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니까 백성이 다 따라한다. 아사랴의 인생은 산당하고, 나병 이거 두개 밖에 없다. 진짜 산당은 기복신앙과 성공복음의 상징이다. 그러니까 공동통치할 때는 자기연민에서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고, 형통하게 되니까 산당을 또 제거하지 못한다.
산당이란 결국 내 생각, 내 주장으로 잘되기 위해 비는 것이다. 역대기를 읽어보면 제사장들을 제치고 성전에서 자기가 직접 향단에 분향하려고 한다. 마음이 너무 높아지니까 눈치볼 사람, 율법, 질서도 없어진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것 하지 말라고하면 화를 낸다. 가난하면 듣고, 부유하면 안 듣는다. 산당을 제거해야 여전한 산당 제사가 없어지는데 중요한건 제거할 수 없는게 아니라 제거하지 않는것이다. 익숙하고 평범하니까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고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상태이다. 형통하고 강성하면 여기가 좋고, 이대로가 좋사오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편한거 찾고, 높아지려고하고, 그래서 산당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게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로 산당을 제거해야 한다. 내 욕심만 채우려는 수고, 높아지려는 노력, 내가 다 가지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람들 제치는 것, 내가 옳다는 확신, 중독, 연약과 아픔 뒤에 숨어 교묘히 내 주장하는 것 이런것들이 다 산당제사이다. 산당을 내버려 두니까 백성들이 끊을 수 없다. 집에서는 가정에서 끊어야하는데 이 한 사람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겠다. 여전한 산당제사를 제거하는 것은 또 여전히 날마다의 큐티와 적용이다.
Q. 내 욕심과 교만으로 추구하는 내 산당은 무엇닌가요?
Q.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3. 하나님이 치십니다. (나병의 14년)
형통함과 강성함 가운데 교만해진 웃시야를 여호와께서 치셨다고 하신다. 내 자신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위해서 아사랴를 치는 것이다. 단순히 매로 때렸다는 것 보다는 고치기 위해 이리저리 만지고 보살피셨다는 뜻이다. 손보다는 뜻이다.
특히, 이스라엘과 유다에는 왕들이 많았다. 그 중에 하나님이 치셨다, 손보셨다고 말씀하신 왕은 아사랴가 유일하다. 그만큼 이 손보심은 특별했다. 얼마나 특별했냐면 웃시야 왕이 성전에서 제사장들한테 화낼 때 그 장소에서 바로 이마에 딱 나병이 생겨버렸다. 나아만 처럼 옷으로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주의 상징이 이마에 찍혔다. 웃시야 자신도 속히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죽는 날 까지 나병환자가 되어서 별궁에 거했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가고자 하는 이 죄를 가장 견딜 수 없어하신다. 그래서 믿음과 행위의 죄는 견줄수가 없다. 행위와 구원의 죄는 견줄수가 없다. 구원을 방해하면 안된다. 성령을 방해하면 안된다. 영적교만은 하나님을 간과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지위와 권세가 손톱만큼 있게되면 다들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게 된다. 아사랴가 제사장이 받는 인정을 받고자 한다. 자기 지위로 강성해지니까 상처를 준 제사장들이 무조건 자기 아버지 때 이 제사장들 생각하고 실력없다, 꼴보기 싫다, 다 틀렸다 이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는 때가 될 때까지 질서가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이다.
항상 내 입장만 옳아서 내 연민, 교만, 절망을 편들어 달라고 기도하는게 산당 제사이다. 언제나 위로 안해주면 웃시야처럼 화를 내고, 내가 주인공이야, 나를 위해 기도해줘, 목장도 다 나를 위해 기도해줘, 왜 뭐라고 나한테 처방질을 하는거야.
아사랴의 이름 뜻은 여호와께서 나의 도움이시라이다. 이렇게 도와주시다보니까 일순간에 교만해졌다. 웃시야왕이 26장 21절에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서 살았다고 한다. 나병보다 무서운 것은 성전에서 끊어진 것이다. 스스로 네트워크의 중심이고자 했는데 오히려 완전히 단절된다. 잠시전까지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왕궁은 아들 요담에게 맡겨야했다.
웃시야라도 그의 사적과 행한 모든일 유다왕 역대지략에 기록되게 하신다. 그리고 다윗성에 조상들과 장사되게 하시고, 아들 요담이 왕위를 이어지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웃시야를 치신 심판이다. 근데 이게 그냥 때린게 아니고, 손보신거라고 하신다. 부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만지고 보살피신 손길이다. 같은 매라도 패는 것은 손보는 것이고, 손보는 것은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수준이 높으면 아사랴 처럼 별궁에서 나병이 걸린다. 그러나 이 별궁은 우연히 생긴게 아니다. 내가 별궁에 거하게 된 일이 누구 실수로 생긴게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별궁에 거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내 안에 비워햐 할 게 너무 많았다. 욕심, 확신, 자랑을 비우라고 별궁에 거하게 하신다.
웃시야왕이 죽던 해애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았다. 웃시야가 죽기전엔 사명을 못받아, 이사야 조차도 웃시야가 죽어야 사명을 받는다. 별궁같은 상황에서 웃시야같은 내 옛자아가 죽어야 성전에 가득한 은혜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단절된 별궁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여전히 산당제사 들이는 나를 쳐서 그 악을 비워버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Q. 여호와께서 치신 사건이 있었나요?
Q. 어떤 별궁에 갇혀 있나요? 별궁 같은 상황에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공동체를 통해 채워주시는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나요?
[기도제목]
A :자격증 붙회떨감 할 수 있도록
B :큐티 하루라도 하기,혼자만의 시간 잘 보낼수 있길
C :귀티말고 기록하는 큐티할 수 있도록
D: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기
E :할수없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회개 고백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