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산당 제사
2024년 11월 03일 주일 열왕기하 15:1-7
김양재 담임 목사님
붙회떨감.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한다는 구속사의 이야기이다. 근데 우리는 여전히 세속적 감사를 너무 원하기 때문에 수능을 앞두고는 떨어진다의 떨자도 듣기 싫은 것이다. 오늘 본문에 아사랴는 거꾸로 붙으면 감사한 것도 아니고 자랑을 한다. 웃시야가 세운 업적이 많음에도 산당을 제거하지 않고 나병을 치셨다는 이야기 뿐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산당 제사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산당을 제거 하려면
1. 겸손함 환경이 축복입니다. (공동 통치하던 때 24년)
1절은 아사랴가 단독 통치를 한던 때이다. 2절은 24년 전 아버지와 공동 통치하던 때이다. 52년 중 공동 통치하던 24년 동안은 아버지 아마샤는 정직했으나 회개하지 하지 않아 교만해졌다. 에돔을 정벌하게 되니 교만해져서 북이스라엘 요아스에게 도전했다가 사로잡히는 수모를 당했다. 예루살렘까지 점령당했다. 아마샤가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어 어린 아들과 공동 통치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 마지막엔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반역하여 죽음을 당했다. 아사랴는 아버지가 제일 잘 나갔을 때의 모습도 보았고, 인생 최악의 패배를 당한 것도, 반역으로 인한 죽음까지도 다 보았다. 그래서 아버지 아마샤를 생각하면 불쌍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북이스라엘도 밉고 아버지를 압박하고 계속 잔소리한 유다 지도자들도 미웠다. 게다가 아버지를 죽인 반역자들은 철천지 원수가 됐다. 이렇게 상처와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인다. 할아버지는 대제사장 고모부 밑에 평생 눌려 살다가 마지막에 심복의 반역으로 죽었다. 아버지 아마샤 또한 자신의 아버지 아하시야의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복수를 하다 역시 반역으로 죽었다. 그 상처와 연민이 아사랴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사랴는 환경이 겸손했다. 자신을 높이고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의 상처와 연민만 가득했다. 그래도 아사랴도 아버지처럼 성품으로 정직했다고 한다. 아버지 아마샤가 그래도 신결혼을 하여 그의 아들도 믿음으로 키울 수 있었다. 믿음의 양육은 고난의 때 빛을 발한다. 그래서 이름도 웃시야라고 지었다.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고 스가랴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고 한다. 왜일까? 어머니의 믿음의 양육 덕분에 겸손한 환경에서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웃시야를 형통하게 하신다. 15년을 패배한 후 숨죽여 지내니 찾을 것이 하나님밖에 없었다. 겸손한 환경이었기에 찾을 것이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패배가 형통이 되었다. 웃시야의 형통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견줄만한 정도였다. 블레셋과 암몬을 장악하고 무너진 예루살렘을 성을 재건 했다. 항구도시 엘랏을 건축하기도 했다. 이 형통이 얼마나 컸는지 웃시야의 이름이 주변에게 까지 널리 알려졌다. 형통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 것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인생의 상급이신 것이다.
적용) 여러분의 환경이 비천하다 생각하십니까, 겸손한 환경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남을 탓하며 원망합니까? 하나님의 양육을 잘 받고 있습니까?
2. 강성하니 산당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14년의 부국강병의 시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엄청난 업적도 7절에 요약했는데, 아사랴의 업적도 7절에 요약이 되었다. 그러니 아사랴의 인생은 산당 제사와 나병 걸린 것 2개 뿐이다. 형통하게 되었는데 산당을 제거하지 않는 것이다. 그 전에는 아버지 때문에 숨죽이고, 대신들의 말도 들어야 하니 자신의 연민으로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러다가 산당이 너무 익숙해지고 평범해지지 못해 악이 악인줄 모르고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유다에 성군에 속하는 왕들이 아무도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거할 필요를 못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똑같은 워딩이 그 왕들 밑에 다 붙은 것이다. 왕이 제거하지 않았기에 백성들도 똑같이 산당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다. 왕이 문제다. 산당이란 내 욕심과 기복으로 드리는 것이다. 웃시야가 강성해 지니까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했다고 한다. 강성해지니 제사장들을 제치고 산당에 본인이 직접 분향을 드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강성해지니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 질서도 율법도 없는 것이다. 본인이 하나님 자리에 간 것이다. 게다가 웃시야의 칼 끝이 제사장에게 향했다. 제사장 귀족 지도자들이 결국 할아버지 아버지를 그렇게 괴롭혔고, 반역해서 죽였다는 것이다. 상처와 연민으로 한이 쌓인 웃시야는 그들을 향해 이를 가늗 것이다. 이렇게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참 어렵다. 힘이 없을 때 숨죽이고 있다가 강성해지니 칼을 드는 것이다. 할아버지 요아스와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형통하고 강성하니 잘못을 모르는 것이다. 지위를 갖추면 그 사람의 말을 다 들어야 하는 게 윗 사람이다. 그래서 윗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형통이 강성으로 이어져 양심도 이겨버린 것이다. 이게 인간의 본 모습이다. 그런 웃시야의 모습을 보고 제사장 아사랴와 용맹한 제사장 80명이 항의했다. 여기의 아사랴는 위에 아사랴와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웃시야가 화를 낸다. 웃시야는 집단으로 몰려와 항의 하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죽었기 때문이다. 웃시야를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불쌍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구속사다. 죄가 죄인줄 모르는 것에 끝은 귀가 막히는 것이다. 듣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제일 옳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것을 못하게 하면 화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버럭 아사랴가(웃시야)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산당을 제거하는 사람이 없다.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제거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형통하고 강성하면 이곳이 좋사오니 하는 것이다. 산당 제거는 적용이다. 날마다 하는 큐티로 날마다 하나씩 적용하는 것이다.
적용) 내 욕심과 교만으로 추구하는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무엇을 하겠습니까?
3. 하나님이 치십니다. (나병의 14년)
형통함과 강성함 가운데 교만해진 요시아를 하나님께서 치셨다. 웃시야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위해서 치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나를 치실 수 있는 것이다. 치신다는 것은 고치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보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님이 치셨다는 것은 웃시야 밖에 없다. 그만큼 특별한 것이다. 웃시야가 버럭 화를 내는 그 때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나아만처럼 숨길 수 있는 곳도 아닌 이마에 나병이 낙인처럼 생긴 것이다. 그래서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했다. 예배 한번 드린 거 거지고 뭘 나병까지 주셔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웃시야를 나아만보다, 게하시보다 더 크게 치셨다. 웃시야의 모든 업적보다 산당에서 예배드리다 나병에 걸렸다 밖에 없다.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정직하게 살았는데도 나병환자가 되었다는 게 더 두렵고 떨리지 않는가? 그냥 죽었으면 훨씬 좋았을 건데 나병 환자가 되어 별궁에서 살고 그냥 죽지도 못하는 혹독한 벌을 받았다. 왜 이렇게 아사랴를 세게 대하실까? 이 세상에 가장 큰 교망이 영적 교만이다. 북이스라엘은 반역은 했으나, 영적 교만이 무엇인지 모른다. 웃시야는 자기가 봐도 자기가 완전 무결하니 영적 교만이 들어가는 것이다. 왕권이 계속 엎치락 뒤치락 하는 북이스라엘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겠는가? 그러니 이제는 대제사장도 필요 없어진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그래도 전쟁 때마다 엘리사를 찾았었다. 그런데 웃시야는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제사장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적 교만을 가장 참을수 없어 하신다. 그래서 세게 치신 것이다. 영적 교만은 하나님께서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웃시야는 자신의 상처와 연민으로 제사장들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건을 놓고 보면, 너네가 예배드리는 것 보단 내가 더 낫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반대 입장에서도 제사장들을 죽인 사람의 아들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이다. 그래서 내 손에 피를 묻히며 복수를 하면 안되는 것이다. 내 입장만 생각하며 내 말이 맞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내 모습만 보며 내 죄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 웃시야에게 나병보다 무서운 것은 성전에서 끊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성전은 모든 생활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거기서 끊어지면 다른 관계도 다 끊어지는 나병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다. 자신이 네트워크가 되고자 했는데,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잠시 전까지 자신이 주인이었던 왕궁은 아들 요람에게 맡겨야 했다. 산당도 갈 수 없게 되니 돈과 권력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별궁으로 분리되어 죽은 것이다. 이 별궁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으로 우리가 지금 별궁에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별궁에 거하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남유다의 인물로 예수씨를 이어 가려면 내 안을 비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비우고 확신을 비우고 자랑을 비우라고 별궁에 거하게 하신 것이다. 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이다. 웃시야는 도우심에 힘입어 빌딩 꼭대기로 쑥 올랐다. 근데 형통과 강성함으로 자기를 높이니까 한순간에 저주받은 자리로 지하 10층 바닥으로 그냥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망한 인생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별궁이 있다.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러나 시기마다 별궁에 거하게 하시는 것이 최고의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적용) 여호와께서 치신 사건이 있습니까? 어떤 별궁에 갇혀 있습니까? 별궁 같은 상황에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공동체를 통해 채워주시는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습니까?
나눔
Q. 한주동안 어떻게 지냈어?
A
부모님의 우상이 나였던 것 같다. 이번 뿐 아니라 부모님이 나를 시집보낼 준비가 안돼셨던 것 같다. 약먹고 요즘 살만 하니까 큐티가 안된다. 입찰 시즌이라 큐티를 해야하는데 큐티가 잘안된다.
B
최근에 학교에서 사람들이 다가올 때, 방어 기재가 생겨 좀 거리를 두게 된다. 내 기준이 아닌 사람과 친해지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이 정죄가 된다.
C
일하고 집에 있었다. 별일은 없었다. 불신교제는 끊어졌다. 아빠가 회사 사람 아들 소개 받으라고 하는데, 교회도 안 다니고 지금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 그냥 밥만 먹고 오려고 한다.
Q. 내 욕심과 교만으로 추구하는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무엇을 하겠습니까?
A
남자친구가 산당인 것 같다. 하나님보다 남자친구를 더 좋아하는 정도라 작은 부분 하나하나가 납득이 안되고 힘들었던 것같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날 위해 수고하는 것같다. 남자친구의 뭐가 그리 좋은가?하면 돈은 내가 벌면되고, 나를 내조해줄 인물로서는 남자친구가 상황적으로 적합하니까. 아버지를 통해 전도가 되었고 그 과정 중에 내 지분은 없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다. 나를 통해 전도되게 하나님께서 허락했으면 그것도 그냥 나의 트로피 중에 하나로 전락했을 것 같다. 나를 잘 따라와 주고 내 기대에 부응해 주려고 하는 모습이 내 우상인 것 같다. 외적인 것도 맘에 들고 하니까.. 신앙 적으로도 내가 남자친구 한테 뭐 하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됐다. 이제 남자친구의 눈치를 좀 보기 시작 했다. 그리고 기도해주세요..혼전순결 잘 지킬 수 있게... 남자친구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
B
나는 내가 산당인 것 같다.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스크래치를 내거나, 자존심이 건들여 졌을 때 삐뚤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열등감있는, 못난 모습들을 보여주는 게 힘이 든다. 외적인 부분을 중시하는데 자신감이 안 생기니까 다이어트에 좀 신경을 쓰고, 타인한테도 이 잣대를 세운다. 자존감이 바닥인 것 같다.
(내가 어떤걸 좋아하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도!)
남을 맞춰 주게 되는데 에너지가 없으면 아예 안 만나게되고, 내가 맞춰 주는 게 당연시 돼서 한 번 삐끗하면 관계가 너무 힘들다.
(결국에는 하나님께 주권이 있는 것... 만 서른 살 전에 하지 않았던 것은 평생 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 전에 너를 표현하고 하는 걸 연습을 해보는 게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듯! 나 스스로 자존감 높이려고 하면 자존심만 세지니까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 같아~)
Q. 어떤 별궁에 갇혀 있습니까? 별궁 같은 상황에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D
하나님과 단절된 별궁에 있는 것 같다. 가장 큰 교만이 영적 교만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활 예배, 아침에 큐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겠다.
기도제목
A
1.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2. 회사 입찰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B
1.열등감과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2.이번엔 회피하지말고 양육 받도록
C
1. 생활큐티하면서 몸 조리 마음조리 잘 할 수 있도록
2. 예수 믿는자이니만큼 성공과 기복이 아닌 거룩을 삶의 목적으로 두고 살아갈 수 있도록
3. 언니의 영국생활에 기름부어주시길
D
1. 생활예배 회복
2. 교만의 산당을 제거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3. 공동체에 잘 묻고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