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7 남겨둔 너에게
디도서 1:1-6
신승윤 목사님
오늘부터 우리가 묵상하는 디도서는 바울의 목회 서신이라고 불려요. 총 3차에 걸친 길고도 참 이례한 여정이죠. 바울의 전도 여행을 모두 마치고 참 많은 교회들과 그리고 열매들을 남겼지만 결국 우리 바울에게, 그 힘든 여정을 마친 바울에게 준비된 것은 로마에 가서 투옥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이후에 1차로 이렇게 로마 감옥에 투옥을 당한 뒤에 잠시 풀려나요. 그리고 그 다음에 잠시 나갔을 그때 오늘 우리가 함께 읽는 이 편지를 디도에게 보냅니다. 디도와 그레데 사람들에게, 성도들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약 2년 뒤에 주후 67년 경 로마에서 순교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가 디도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이 되는 것이죠. 자녀가 없었어요, 바울은. 그런데 아들이라고, 나의 참 아들이라고 디도를 칭하며 그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들이 혼자 한 섬에 남겨져 있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에 배가 파손이 되었을 때 바울 일행을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하고, 배고 고쳐주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던 그 친절했던 멜리데섬 있자나요. 그런 섬이 아니예요. 교회는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나 복음을, 자신이 전한 예수의 복음을 반대하고 그리고 미워하고, 박해하는 유대인들이 가득했고요. 무역이 활발했어요. 그 섬은 너무나도 무역이 활발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오가다 보니까 너무나도 사상이 다양한 거예요. 무엇이 옳다 이런 것도 없이 온갖 다양한 사상들이 난무를 하고, 섬 특유의 토속 신앙도 있었겠죠. 그리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자나요, 무역을 했으니까. 참 부자니까요. 그래서 안타까운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음란과 게으름에 젖어서 복음에는 무관심한 주민들이 사는 섬, 그레데 거든요. 그 그레데섬에서 이제는 아버지인 바울이 없이 신앙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며 디도가 이제 살아야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에 첫 날에 이 묵상을 하면서 이렇게 집에 들어갔어요. 들어갔는데 제 아들이 누워있더라고요. 진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거든요. 처음에는 제가 그 아이를 요렇게 안았어요. 제 손에 이렇게 쏙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언제 찰나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딱 들어갔더니 '아버지.'이러는데 저보다 큰 거예요. 비록 이렇게 크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학생이니까 제 도움이 아직까지는 필요하겠죠. 그런데 곧 저와 함께 있어야 될 그런 이유들 보다 그가 이제, 우리 아들이 떠나야 될 이유가 더 많아지는 때가 오겠죠. 여러분 우리에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노년의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도에게 남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남기며 알려주어야 하는가 2가지로 함께 살펴보고 싶습니다.
1.너와 내게 맡기신 것이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 1절과 2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왜 사도인지를 밝혀요. 바울 서신 일반적인 인사죠. 자신이 왜 사도인지를 밝히면서 독특한 표현 하나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종이거든요. 대부분 예수의 종,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의 노예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데 참 요번에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특별하게 이 디도서에서만 사용을 합니다. 지금 디도와 함께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유일신 하나님만 섬기는 유대교 사람들이 상당수 거든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아요. 안 그래도 예수님 인정 안 하는데 시작부터 예수의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진짜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신이 하려는 그 말과 자신의 사도권 모두가 무시를 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얘기를 하죠. '나는 너희가 믿는 그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을 믿으며 그 하나님의 종으로, 그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여기에 왔다.' 동시에 예수님이 보내신 사도라고 말합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거든요. 오직 복음이 들어가기 위해서 먼저는 상대의 생각과 그 가치관과 입장을 살펴주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아무리 반대 입장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니까 일단 한 발 물러서는 거예요. '어?' 이러면서 들어보려고 했겠죠. 제가 이렇게 일주일에 휴무일이 있는데, 휴무일이나 잠깐 쉬는 시간이 날 때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를 도울 때가 있어요. 제 기준으로는 아주 독특한 현상 하나가 있는데요. 일단 3-4분이 들어오시면 안 나갑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자리에 앉으신 채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이게 제가 정말 신뢰하는 전문가에 의하면 누군가 한 명 나가면 나머지가 그 분 욕을 하기 때문에 안 나가신다고 하는데, 네, 이거는 정말 전문가의 이야기고 또다른 이야기도 있겠죠. 가장 놀라운 게 있어요. 화장실을 제일 마지막에 갑니다. 누가 한 명이 일어나서 '내가 먼저 다녀올게.' 이러고 나가거든요.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게 신호인 거 같아요. '우리 이제 가자.' 이런 신호쯤 될 거 같아요. 그렇게 순서대로 다녀오시고 순차적으로 익숙하게 퇴장하세요. 정말 궁금하고 놀랍습니다.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참습니다. 제가 자주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런데 갈 때마다 자주 그 현상을 봤으니까 아마 대부분 그렇게 하시는 거겠죠. 너무너무 궁금해요. 정말 진심으로 너무너무 궁금해서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몰래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화를 한 번 들어봤는데 그때서야 이해가 좀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누구 한 명이 얘기를 꺼내요. '들었니?' 한 분이 이러시겠죠. '순이 남편 김바람씨 바람폈대.'라고 하면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분은 김바람씨의 아내 순이가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순이는 그 자리에 없어요. 그리고 '요번에 우리 아들 허약이가 참 아팠어.' 그렇게 하면 모든 분이 그 허약이의 엄마가 되었다가 결국은 주치의가 되더라고요. '이런 약이 좋다. 저런 약이 좋다.' 여러분, 지금 내 남편이 바람을 폈거든요. 지금 내 새끼가 아픈데 화장실을 어떻게 가요. 정말 진짜 못 가는 거죠, 급한 일이니까. 그런데 그러다가 '내가 요번에 아파서 죽을 먹였는데 맛있더라. 뭐랑 뭐를 넣었고 뭐랑 뭐를 넣어봤는데 맛있더라. 그런데 그 옆에 낙지집이 있더라.거기는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이 넓더라. 아니야, 그 주차장보다 여기가 넓어.'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시더라고요. 남자 분들 혹시 이것을 아셨어요? 우리가 이걸 몰라가지고 그렇게 관심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거거든요. 그냥 그렇게 막, 아내분이 막 얘기를 하면은 '아이고, 이 천하에 몹쓸 놈.' 이 정도만 하면 됩니다. 제가 이걸 지천명 다 되어가는 지금 깨닫습니다. 얘기를 듣고 아내가 얘기를 하면 '니가 거기 왜 상관인데.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냐?' 이러니까 더 힘든 거예요. 반대로 여자분들은 아세요? 우리 남자들은 대부분의 삶을, 인생을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막 돌진해야 돼요. 가야 되는데, 막 돌진해야 돼요. 그런데 옆에서 아프다고 하자나요. 힘들다고 하자나요. 거기 앉아서 '어디가 아픈데. 약 발라줄까.'하면 둘 다 죽는 거예요. 대신 총알을 맞거나 그걸 업고 튀거나 놔 두고 뛰어야 합니다. 그래서 뭐 했다고 막 자랑을 하면 드러워도 '아이고, 고맙다. 수고한다.' 해주면 남자들은 웃습니다. 이렇게 달라요. 자녀, 배우자 그리고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함을 알아요. 울이가 너무나도 잘 알아요. 그런데 먼저 그의 마음을 읽어주거나 상황을 살피는 것은 너무나도 싫을 때가 많아요. 이유는 한 가지죠. 내 기준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요. 자녀가 지금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아들과 딸이,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어떤 고민으로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지 여러분 한 번 살펴 보셨습니까? 우리 이 정도는 살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 한 마디라도 그가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들어갈 틈이 조금이라도 생겼습니다. 그 틈을 얻은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이유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이며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의 소망을 주신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나를 보내셨다고 해요. 그리고 이 진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이 있는데요. 제가 본문 그대로 읽습니다.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그리고 이어서 디도에게 말합니다. 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사랑하는 아들인 너도 나와 같은 믿음과 이 사명이 있단다.' 전도는 뭡니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거예요. 이것이 구원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인생, 우리 인생의 뚜렷하고 분명한 목적입니다. 가망이 없는 나에게 말씀을 주시고 회개하게 하신 이유, 그 이유는, 그리고 나를 살려내신 이유, 애통하게 하신 이유, 단 한가지입니다. 가서 사명 감당하라고 이 죄인을 먼저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바울도 디도를 남겨두며 참 많은 걱정이 되었을 거 같아요. 디도는 헬라인이에요. 그러면 유대인이 보기에는 이방인이죠. 거기서 무시와 천대를 받으면 안되는데 자신도 많이 죽을 뻔 했자나요.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죽이려고 하면 어쩌나 걱정되지 않았겠습니까. 저라면 참 너무 걱정을 할 거 같다 싶거든요. 그런데 저와 바울의 차이가 단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보여준 삶이 있었습니다. 부끄럽고 후회만 가득한 과거, 수치스러운 과거가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박해자요 비방자였던 지난날을 약재료로 회개의 복음, 그 은혜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을 디도가 그의 전도 여행을 동행하며 분명히 봤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련해주는 환경이나 과거의 부끄러운 일 때문에 자녀 앞에서 미안한 마음만 가지지 않았으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있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넘어질 때가 있어요. 쓰러질 때가 있어요. 결국 말씀대로 결정하고 수치의 간증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전하면서 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삶으로 말씀을 전하는 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바울은 남겨둔 아들에게 방법과 지혜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대처법, 대화술, 처신술, 사실 바울만큼 이것을 잘 설명해줄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다른 말 안 해요. 떠나온 나에게, 지금 이제 떠나간 나에게 그리고 남아있는 너에게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는 것이 우리 인생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이 많아 지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 이미 자신을 한 번 가두었던 로마로 다시 들어가 복음을 전하다가 거기서 순교합니다. 끝까지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것이죠. 갈수록 혼탁해지고 기댈 곳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다음 세대를 지켜줄 도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모로서 이 귀한 진리를 이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임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주신 말씀으로 살아내며 말씀을 전하는 그 사명을 감당해가시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묵상하며 적용해 보았으며면 좋겠습니다.
[적용] 자녀와 그 한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이 있습니까?나를 살려주신 말씀을 가지고 살려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2.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 음란과 거짓이 넘쳐나는 그레데, 그 섬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제 누구를 이 교회의 리더로 삼느냐, 너무나도 중요한 사안이죠. 그런데 바울이 생각하는 교회 일꾼의 기준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런 사람, 갈릴리 교회는 이런 사람, 그레데 교회는 이러니까 이런 사람, 그게 아니예요. 어느 교회를 세우든지, 어떤 상황에 누구를 세우든지 가장 근본이 되고 기준이 되는 딱 한 가지, 언제나 우선합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가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 그것이 바울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렇게 전개해 나가죠. 사회 생활, 이웃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은, 이렇게 하면서 그 사람의 됨됨이 보라고 합니다. 지도자를 세워야 할 때만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한 바울의 편지에서 신앙과 가정은 절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입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찾거나 연구할 필요가 우리한테는 없죠. 가정의 소중함, 가정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이 세상 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문화적으로, 또 관례적으로, 관습적으로 막 세우고 이루어 낸 많은 것들처럼 사람들에 의해서, 필요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장 먼저 맺어주신 관계입니다. 나의 선택과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이 언제나 감사와 만족만 있다면 우리는 이 가정을 '지킨다.' 그 표현을 쓰지 않겠죠. 우리들교회 핵심 가치가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입니다. 중수는 뜯어내서 고쳐내간다는 뜻이자나요. 완벽하다면 그럴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이 가정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은 100% 선하세요. 그런데 가정을 꾸려가는 우리가 100% 죄인입니다. 가정에서 실망과 배신을 당할 때가 있죠. 그럴 때 포기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낼 때 결국 뭐가 나타납니까? 나의 자랑과 교만이 꺾여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모든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기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애씀과 몸부림, 그 아이들이, 내 자녀들이, 나의 일어서 나가는, 영육의 후손들이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버티는지 이미 아이들 다 압니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거든요. 생각해보니까 저도 언제 이렇게 됐는지 아버지가 조금 더 어릴 때더라고요. 나이가 젊을 때, 아니면 저 또래 쯤 됐겠죠. 지금도 집 앞에 늘 놓여있던 흰 운동화를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다른분과 나갔다는 것을 알면서 그 운동화를 신고 전국의 기도원을 찾아다니셨어요. 왜 나갔는지, 뭘 하는지 저는 아무것도 모르죠. 하지만 딱 하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 그것을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제게 해주셨던 말이에요. '내 인생에 니 엄마는 10%, 그것도 안 되었다. 일이 40%, 공부시켜 준 부모가 30%, 니들 둘이, 누나와 네가 20%, 나머지 남는 거 엄마한테, 엄마가 10%였다. 이게 깨달아지니까 내가 미안한 것이 너무나도 많이 생각나서 그렇게 찾으러 다녔다.' 말씀하시더라고요. 비록 구속사의 말씀과 공동체가 없으셨던 아버지셨지만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가정 지켜주셔야 하기에 그렇게라도 깨닫게 하셔서 우리 가정을 지키게 해주셨음을 믿습니다. 여러분, 저는 노름, 알코올 중독, 폭력배에 밀수꾼이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감히 어떻게 이 자리에 섭니까. 어떻게요. 오직 주님의 은혜인데요. 그 은혜의 터는 가정입니다. 아버지가 그때 가정을 버리셨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었기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감히 이 자리를 빌어서 사연과 상황을 보면 도저히 인내할 수도 없고 지켜낼 수도 없는 그 가정을 끝까지 버텨내시는 우리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인내가 절대 땅에 떨어져 사라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나의 거룩과 내 뒷모습을 보며 자라는 자녀를 위해 끝까지 가정을 지켜주시기를 감히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렇게 내적으로 나와 내 가정을 지켜야 할 목적, 그 목적와 더불어서 외적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이 가치 있자나요, 하나님이 주신 이 가정의 가치를 보여야 하는 그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연합 예배로 모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죠.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적 가정의 가치관을 자녀에게 이어주기 위해서 그 자리에 나갑니다. 평등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속이는 이 법이 통과되면 정체성의 혼란과 평등과 자유라는 이름, 그것으로 속여 나도 혼란이 오고 가정 내의 질서와 각자의 역할을 깨뜨릴 그 위험이 우리의 다음 세대에 너무나도 분명히 보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다음 세대가 꾸려갈 이 성경적인 가정의 가치관을 보호하고 지켜주고자 부모와 윗세대인 우리가 오늘 그 자리에 나갑니다. 여러분 내적으로는 나의 거룩과 맺어주신 가족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외적으로 세상 가치관과 미혹에서 우리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아, 딸아 너를 위해 내가 이렇게 애쓰고 노력했다.' 이 한마디를 남길 수 있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또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님이 우리의 가정을 지키시고 악법과 속임에서 건져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묵상하며 적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용] 가정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사연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그 사건으로 내 죄를 보고 회개하는 감격을 경험하셨습니까?
기도제목
희연
1.하나님의 말씀 잘 묵상하며 은혜 나눌수 있도록
2. 11/4일 이식신장 검진 하는데 신장수치랑 bk바이러스 검사 잘 나와서 유지 잘 되게 해주시고 이식신장뿐 아니라 몸 건강도 잘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3.많이 지쳐있는 저희 엄마의 건강을 돌봐주셔서 회복되고 지켜주시고 조카들 돌보는데 힘듬이 없게 해주소서
4.언니와 형부의 비행하는데 동행하여 어려움이 없게 지켜주소서
5.언니 가정에 평안과 은혜와 건강을 지킬수 있게 하옵시고 조카들도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지켜주소서
6.형부 미국 취직 인터뷰 아무탈없이 무사히 잘 하여 통과되길 기도합니다
7.우리 목장 식구들 목자 언니 포함하여 주님 안에서 늘 승리하며 원하는 기도들이 응답 받고 은혜 받고 늘 건강하길
8.주님의 먈씀으로 순종하며 회개하며 현장 예배와 목장 섬기게 하옵소서
예선
1.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잘 나누고 가도록
2.가정과 회사에서 허락하신 자리만 잘 지키는 적용하도록
은우
1.사명 받을 디도와, 사무엘을 세워주시고, 야망의 기도가 사명의 기도가 되어 생명 낳는 삶, 목장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