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3 패한 후 15년
열왕기하 14:12-22
지난주에 2024년 노벨문학상을 한국이 받아서 놀랐죠? 그런데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도 아주 이렇게 놀랍습니다.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턴 교수가 그 주인공인데요. 이들의 인공신경망 연구가 오늘날 인공지능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고 해요. 여러분, 1997년에 있었던 역사적인 대결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체스의 황제로 불리던 카스 팔로프와 IBM 인공지능 딥 블루가 대결을 했는데 첫 판은 카스 팔로프가 이겼어요. 그런데 둘째판에서 딥 블루에게 졌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4판에서 그대로 다 무너졌다고 합니다. 인간지능에게 패한 최초의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받게 됐어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카스 팔로프가 얼마나 이 패배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경기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딥 블루의 프로그래밍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2016년 카스 팔로프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당시의 패배를 인정했어요. 더 나아가 그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협력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카스 팔로프의 이야기는 우리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이고 성숙임을 알려주는 게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아마샤도 화를 자취하여 큰 패배를 당합니다. 그런데 그는 패배 후 15년을 더 살았어요. 그런데 그 15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보내야만 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불쑥 찾아오는 패배와 그 이후 수치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함께 생각을 해 보겠어요.
1.패배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입니다.
1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1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14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 12절부터 14절이에요.
아마샤는 화를 자취하여 북이스라엘을 치러 나갑니다. 북쪽의 왕 요아스가 싸움을 거절했는데도 듣지 않았어요. 자기 고집대로 일을 진행시킵니다. 그 결과는 패배였어요. 그런데 유다가 이스라엘한테 패했다고 하지 않고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라고 하네요. 유다를 패배시킨 존재가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유다가 패배당하는 일을 그냥 보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신적수동태입니다. 유다가 하나님에 의해 패배를 당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유다를 치셨다는 거예요. 징계예요.유다의 패배는 에돔의 우상을 섬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스라엘은 유다의 30만 군대가 스스로 무너지듯 패하여 도망가는 것을 보고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일으킨 아마샤를 사로잡았어요. 유다 병사들은 다 집으로 도망갔는데 왕은 체포되고 말죠. 왜죠? 전쟁의 책임이 아마샤에게 있기 때문이에요. 열왕기 기자는 아먀샤를 구지 예후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이라고 소개해요. 아마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자나요. 할아버지 아하시야는 예후에게 처형이 되었고 아버지 요아스는 신복에게 살해가 되었어요. 그런데 고조할아버지인 여호사밧이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집 딸인 아달랴와 불신결혼 시킨 결과였다고 성경은 계속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아마샤가 체포되는 이 장면에서 이 장면에서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체포 역시 아마샤 및 이 집을 오염시킨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뜻입니다. 요아스왕은 아마샤를 사로잡는데서 멈추지 않아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을 무너뜨리는데 특히 에브라임 문을 제일 먼저 부숩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남이지만 장자처럼 취급을 받았어요. 그래서 북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중심 지파였어요. 그래서 예루살렘 북쪽 성벽에서 제일 큰 문도 에브라임 문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이 에브라임 문응ㄹ 헐어버린 것은 유다를 향한 확실한 메세지가 되었을 거예요. '유다 너희들은 우리들에게 안 돼. 우리가 바로 에브라임이야. 우리가 요셉의 후손이야. 너희는 이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어. 너희는 너희가 만든 이 문처럼 부셔져야해.' 유다 백성에게는 엄청난 수치였을 것이에요. 여러분들 한국 교회가 이렇게 요새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우리에게 안 돼. 금송아지에게는 안 돼.' 그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모퉁이 문까지 성벽을 400규빗, 약 183 미터를 부셔버립니다. 더 나아가 요아스는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의 모든 재물을 탈취하고 포로까지 잡아갑니다. 그야말로 완전히 점령하고 속국처럼 속국같이 만들어버려요.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는 아람에게 패하고 모든 성물과 금을 조공으로 바쳤자나요. 또 그 후에 노력해서 곳간을 채웠을텐데요. 에돔을 정복하고 가져온 것들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모든 것을 다시 다 뺏긴 거예요. 결과적으로 남유다는 껍데기만 남았어요. 요즘에 정말 믿는 사람들이 다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아요.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되었어요. 군대도 성벽도 사람도 돈도 다 잃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요아스가 마음만 먹었다면 아마샤도 죽었을텐데요. 아마샤는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될 처지가 되었어요. 여러분들 지금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분들 계십니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패배를 단순히 북이스라엘에게 당한 것으로만 본다면 원망과 증오만 남아 살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사건 제일 처음에 분명히 알려주셨자나요. 이 패배는 하나님에 의한 사건이라고, 신적수동태라고 알려주셨어요. 사람에게 당한 억울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100% 옳으신 하나님에게 당한 가장 합당한 징계라는 겁니다. 사랑으로 주신 징계예요. 사실 우상 숭배를 기준으로 보면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훨씬 심하자나요. 말할 필요도 없죠. 북이스라엘은 영토 남단과 북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두고 거기다가 경배하고, 제사도 자기 맘대로 다 바꿨고, 엘리야, 엘리사 같은 최고의 선지자들이 사역을 해도 꿈쩍도 안 하는 게 북이스라엘이에요. 금송아지가 있자나요. 그래도 남유다는 산당은 내버려두었지만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자나요. 제사장들도 있고요. 율법도 알고 지키려고 하던 사람들도 있었어요.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보다 유다를 훨씬 엄하게 다루세요. 왜 입니까? 예수의 씨가 북이스라엘이 아닌 남유다에 있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여러분들이 깨달아져야 돼요. 구속사의 계보가 에브라임, 즉 요셉이 아니라 유다에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과 기대가 북이스라엘보다 남유다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더 작은 죄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유다의 죄를, 다윗의 후손들의 죄를 더 심각하게 보고 다루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싹 다 뺏기게 하시는 심판으로 징계하세요. 죄 가운데 술술 풀리는 삶을 살다가 망하지 말라고 말이죠. 죄에서 돌이켜 살아나라고, 구원 받으라고 채찍으로 징계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진짜 사랑이라는 거예요. 자녀를 사랑하시는 진짜 아버지시기 때문이죠. 우리는 패배는 생각하기도 싫어요. 이기고 또 이기고 싶어요. 패배는 한 번만 해도 질려 버려요. 그런데 승리는 백 번을 해도 질리지가 않아요. 승리는 나의 힘. 지난주는 복수는 나의 힘. 그러나 내가 원하는대로 뭐든지 승리하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게 바로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다 밑동 잘린 나무 같은데 잎이 무성하면 그걸 모르고 지내다 그냥 다 말라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밑동이 잘렸다는 걸 알아야 생수를 찾자나요. 우리 인생에서의 패배는 우리가 밑동 잘린 인생이라는 걸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예요.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해 우리 실체를 알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세요. 사랑의 징계예요. 따라서 패배를 당할 때 너무 힘들고 슬프고 절망이 되지만 그게 끝이 아님을 기억하셔야 돼요. 엊그제 우리 큐티 본문 예레미야 18장에서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다가 농로에서 그 진흙이 터지면 토기장이 마음대로 다른 그릇을 만든다 그랬자나요. 그렇지만 버린다는 얘기가 없자나요. 터질 때마다 다른 그릇으로 만들어가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기에 돌이켜 살아나라고 패배의 사건으로 징계하시는 거예요. 이 사람의 결정이 무너져야 하나님의 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축복이에요. 무너져야 하리. 그러니까 사람이 무너지는 거 만큼 거기 영이 세워지는 거예요. 징계를 잘 받아들이고 아버지 하나님께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모든 패배를 만회하고도 남고도 또 남는 진정한 승리인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인정하기 힘든 패배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패배해서 미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는 나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2.15년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15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의 왕 아마샤와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6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7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간을 생존하였더라 18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 여러분 15절, 16절은 요아스의 일생을 정리하는 문구인데요. 똑같은 구절이 이미 13장 12절, 13절에 똑같은 걸 2번 지금 반복헸어요. 12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3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자리에 앉으니라 그래서 요아스에게만 특별히 2번이나 사용된 단어가 있어요. 이런 기가막힌 성경 구절이 이런 게 있어요. 똑같은 구절이 이게 15절, 16절이13장 12절, 13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요. 그래서 여기 업적이라는 단어가 2번 들어갔는데 위대한 일, 큰 일이죠. 열왕기하에 나오는 남, 북의 많은 왕들 중에서 이 업적이라는 단어는 딱 5명에게만 쓰였는데요. 남유다에서 히스기야에게 딱 한 번 쓰였고, 나머지 4명이 북이스라엘 왕인데 예후 왕조의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예요. 그런데 오직 요아스에게만 이 단어가 2번이 쓰였다는 거예요. 물론 이것이 요아스가 이룬 정치적인, 군사적인 업적이 많았다는 뜻은 아니죠. 왜냐하면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왕은 이제 후에 나올 여로보암 2세 거든요. 그러면 왜 요아스에게 이렇게 2번 반복해서 기록했을까요? 문맥으로 보면 아마샤의 생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인데요. 자,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와 남유다의 아마샤가 싸워서 요아스가 이기고 아마샤가 졌자나요. 형제간 싸움에서 우상단지 섬기던 북이스라엘이 이겼다고요. 그런데 요아스는 여기 업적이 있었다고 강조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나라 남유다의 아마샤는 업적은 커녕 사적이라는 말도 안 쓰였어요. 그런데 업적이 많은 요아스가 먼저 죽어버렸어요. 그런데 업적이 없는 아마샤는 그 뒤로도 15년을 더 생존했어요. 이 15년의 생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요아스의 죽음이 다시 기록된 거예요. 그럼 우리는 이제 THINK를 해봐야 되자나요. 생각나는 게 있죠. 왜 이렇게 업적이 요아스에게 2번이나 반복이 됐을까? 바로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양육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해요. 예후 왕조 왕들 중에서 요아스만 엘리사가 활을 잡으라 잡으라, 쏴라, 집으라 등 집중 양육을 받는 특권을 받았자나요. 기억하시죠? 엄청난 축복입니다. 요아스가 그 양육대로 회개하여 돌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전쟁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과 또 죽일 수 있었던 아마샤를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도 다 엘리사에게 양육을 받은 흔적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죽을 병에 걸려서 요아스를 양육했는데 거룩한 분노로 양육하고 죽어버렸자나요, 그렇죠? 요아스가 달라지지도 않았어, 네. 엘리사의 유언이기도 하자나요. 그래서 지금 한국이 죽을 병에 걸리고, 또 우리도 죽을 병에 걸리고 그랬는데 마지막 우리가 엘리사가 되어서 거룩한 분노를 한 번 표출해야 되는 거예요, 이거는 어떤 한 집단의 일이 아니고. 그래서 지금 아무도 말을 안 듣자나요, 인권이 왕노릇하니까. 그래도 우리 부모 세대들은 '너희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다. 말씀대로 살려고 했다.' 그래서 이 거룩한 분노로 우리가 한 번 나가야 되고, 이것이 유언으로 남겨져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치는 1도 없고, 내가 20년을 기도한 걸 여러분들은 아세요. 그래서 너무 제가 계속 요즘에 눈물로 기도를 했어요, 이 생각을 하면 너무 마음이 미어져서. 그러므로 그 양육을 받고 주님 뜻대로 해도 또 요아스는 빨리 죽고 아마샤는 오래 살아남았어요. 죽고 살고가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어떤 유언을 자녀 세대들에게 남길 것인가, 이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그래서 이 양육이야말로 업적이라는 대단한 단어를 2번이나 써서 강조한 일인 거예요. 그러므로 양육이 더 위대한 일이고 더 큰 일인 거예요. 양육을 받은 요아스에게만 업적이라는 단어를 2번이나 썼다고 그랬자나요, 그렇죠? 요아스는 이렇게 갔어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오늘 하루 살고 간다고 그랬자나요.
패배자가 된 아마샤는 그 15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성경은 그저 생존했다. 살아서 숨만 쉬었다. 살아있었다고만 합니다. 특별한 일 없이, 기록할만한 변화 없이 그저 살던 모습 그대로 살았다는 뜻인 거예요. 회개 없이 정직하기만 한 모습으로 '네가 감히!'하는 교만한 모습으로 살아갔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아마샤에게 15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을까요? 나중에 히스기야에게도 15년의 시간이 허락되자나요. 15년의 허락된 시간 다 죄만 지어요, 히스기야도. 숫자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하신 시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무엇을 위한 은혜예요? 아마샤는 이 15년의 시간에 자신의 회개 없는 정직을 깨닫고 자신의 복수심과 교만함을 돌아보며 회개했어야 돼요. 그런데 기다려주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지 않은 거예요. 우리도 너무 큰 패배와 실패를 겪을 때가 있죠. 지금 그런 고난을 겪는 중에 계신 분들도 있겠죠. 더 이상 살기도 싫고, 살 수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어요. 그런데 오늘 이 고난에 눌리면서도 이렇게 살게 하신 것이 우연이 아니예요. 우리 오늘 세례 받으신, 또 이금옥 성도님 내외. 진짜 생애 최고의 고난 가운데 있는데 이때 지금 우리들교회에 오셔서 온 교회가 기도해요. 최고의 선택을 하신 거예요. 할렐루야. 이 말씀을 듣게 하신 이유가 있어요. 주님이 이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에요.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때까지 주님이 기다리시는 겁니다. 아무리 큰 승리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헛된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패배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어지면 패배가 아닌 거예요. 인생 최고의 승리, 최후의 승리가 구원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승리하고, 성공하고, 합격하면 오히려 회개해야 돼요. 그래야 구원의 사건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패배하고, 실패하고, 떨어지면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그 패배의 시간은 나를 구원하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15년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주신 선물이니 절망하지 말고, 화내지고 말고, 죽지도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불회떨감이에요. 부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 할렐루야. 지금 겪고 계신 모든 패배의 사건을 이렇게 잘 해석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내가 쌓고 싶고 쌓고 있는 업적은 무엇입니까? 그만한 열심으로 양육을 받고 있습니까? 밑동 잘린 나무 같은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쓰겠습니까?
3.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19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0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21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를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그 때에 그의 나이가 십육 세라 22 아마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더라
-> 아마샤의 최후예요. 아버지 요아스처럼 반역에 의해 죽었는데 요아스는 신복 몇 명이 와서 죽였는데 아마샤는 무리가 반역을 했어요, 한 둘이 아니고. 어제까지 자기 백성이었던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다 성난 무리가 되었어요. 신복이든 무리든 정말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못 됩니다. 그래서 요새, 자기를 구원해 줄 방공호 같은 도시 라기스로 도망해요. 그러나 요새도 죽음을 막을 수 없었죠. 아마샤가 피해야 할 곳, 돌아가야 할 곳은 라기스 요새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죠.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어야 하는데 엉뚱한 요새만 찾아다니다가 끝났어요. 그런데 이 반역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닙니다. 아마샤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못된 무리가 일으킨 게 아니예요. 역대하 25장 27절에서는 아마샤의 책임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하나님께서 패배의 사건으로 징계하시고 그 후 15년을 회개할 수 있는 시간으로 주셨어요. 그러나 아마샤는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어요. 회개하지 않았어요. 그 완악함에 대한 심판으로 반란이 일어난 거예요. 이 세상에서 100% 억울한 일은 없어요. 어떤 사건이나 내 지분이 있어요. 내 책임이 분명히 있어요. 이것을 인정하는 게 믿음입니다. 믿은 만큼 내 잘못을 깨닫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깨닫는 만큼 인생의 소망을 내가 아니라, 세상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두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죽은 아마샤에게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나요. 무리가 아마샤를 반역해서 죽였자나요. 그런데 말이죠 그 시체를 예루살렘에 실어와서 조상들과 함께 다윗성에 장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왕의 묘실에 묻었다는 것인데, 그리고 그 아들 아사랴를 왕으로 삼았어요. 이 아사랴가 바로 웃시야왕인데, 웃시야왕이 죽던 해애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자나요. 그런데 아마샤가 죽었을 때 아사랴가 16살이었어요. 스스로 정권을 장악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반역한 무리가 마음만 먹으면 아사랴도 몰아내고 왕조를 새로 새울 수 있었자나요. 그 요아스도 6살이었는데 고모부가 왕을 할 수 있었자나요. 그런데 무리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왜 그랬을까? 그들이 착해서요? 의리가 있어서요? 아니죠.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기 때문이에요.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이어가시는 거예요. 다윗 때문이 아니예요? 예수님이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16살에 왕이 된 아사랴도 하나님이 왕으로 든든하게 서게 하시는 거에요. 그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다고 하는데요. 이 엘랏은 유다 남쪽 시내 반도 동쪽 끝에 있는 항구 도시였어요. 솔로몬 때 이 항구를 확보하여 아라비아와 아프리카 나라들과 무역을 할 수 있었는데요. 이 항구에 가려면 에돔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호람 때 유다로부터 독립했다고 그랬자나요. 그래서 그 뒤로 그 항구를 쓸 수가 없었는데 아마샤가 에돔을 정벌해서 다시 길이 열렸고 이게 그 아들 아사랴가 항구를 다시 건축한 것이죠. 그러니까 이 사건은 결국 다윗 왕조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된 거예요. 아마샤나 아사랴가 뛰어나서 한 일이 아니고, 그들이 한계가 있고 온전하지 못하고 다윗과 같이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가시기 때문에 그들을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서 다윗 왕조도 유다도 이스라엘 민족 전체도 나아가 온 인류도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 인생의 모든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어요. 다윗의 후손보다 우리는 더욱 그래요. 우리가 다윗 왕가는 아니자나요. 이 땅에 기댈 수 있는 게 많지 않을수록 더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바로 축복이죠. 잠깐 있다가 사라질 걸 의지하는 것보다 영원하신 하나님 의지하는 게 복 아닙니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겠다는 이 소망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순결하게 해주는 것은 이 땅에 아무것도 없어요. 남유다의 역사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예요.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사람이 주인공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반역한 여로보암이 주인공이고 존경하고 경외하는 지도자 동지인 거예요. 유다는 신복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무리가 반역을 일으켜도 왕은 그 죽인 왕의 아들로 세워졌어요. 하나님은 요아스의 악을 또 다른 악한 신복들의 율법주의로 다루셨어요. 그런데 그 신복들이 앞으로 그들과 그들 자식에게 닥치게 할 일을 몰랐겠어요? 그러나 그들이 죽인 왕의 아들인 아마샤가 왕이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인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사람을 주인공으로 읽으니까 읽어도 읽어도 성경이 깨달아지지를 않으니까 저를 이제 비난을 하는 거죠. 그런데 드디어 주님이 이 세상과 내 인생의 주인공이구나 깨닫게 되는 날이, 훅 들어오는 날이 있어요. 그때까지 우리가 기다려줘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열왕기는 진짜 왕이신 하나님의 이야기인 거예요. 그러니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지겨운 지역 감정이 있자나요. 유다는 유다밖에 모르고, 저 북이스라엘은 자기네들 에브라임밖에 몰라요. 그런데 둘 다 다 문제가 결국은 진짜 왕이신 예수, 예수 왕으로 가게 하기 위한 것인데, 그래도 그 연약한 유다를 하나님은 택하신 거죠. 그러니까 죄 많은 유다는 입을 다물고 늘 그냥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큐티를 하면 내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으면 거기서 예수가 오는 결정을 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예요. 이기고 지는 게 아니예요. 그래서 이 왕들의 이야기가 아니죠, 열왕기가. 진짜 왕이신 하나님의 이야기인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남유다에서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해도 이어지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택자의 경우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이 지켜가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 말씀으로 듣는 자는 주님이 지켜가고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 들은만큼만 지키셔요. 오늘 아마샤처럼 반역을 당하든 아사랴처럼 망망대해 위에 뚝 떨어뜨려진 암담한 상황에 있든 우리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거예요.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약속대로 우리를 건져내실 줄 믿습니다. 특별히 오늘 대구에서 함께 예배 드리는데 대구 채플이 이 지역이 하나님의 소망을 전하는 교회로 우뚝 세워지길 바라요.우리 교회 부흥이 아니예요. 사람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무너진 가정을 중수해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또 대구가 잘난 곳이자나요. 정말 다윗 왕조같은 곳이에요. 그러니까 그 그늘도 짙어요. 패배의 사건을 해석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작은 실패와 패배 가운데 인생의 모든 소망 무너졌다고 생각하면서 '못 살겠다.'고 외치는 한 영혼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 한 사람을 주께 인도하여 인생의 참 소망을 찾게 하는 대구 채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대구와 광주에 왜 여기 교회를 세웠겠습니까? 그런데 맨날 대구, 광주하니까 광주에서는 '왜 광주, 대구 안 하고 대구, 광주 하냐? 여호와는 광대하신데.' 뭐 이러면서 그러더라고요. 제가 광주 가서는 또 광주 대구로 하겠어요. 휘문, 판교, 대구, 이제 곧 광주까지 우리들교회가 세상 끝날까지 그렇게 한 영혼 살리는 사명을 계속해서 이어 가기를 바랍니다. 어떤 환경에 있어도 소망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실 줄 믿습니다. 이걸 굳게 믿고 이번 한 주도 살아내십시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아마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버린 일은 없습니까? 해석이 안 되는 반역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니까, 다른 것을 찾아다닙니까?
기도제목
희연
1. 하나님의 사람으로써 날마다 섬기는 말씀 잘 순종할 수 있는 믿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 이식신장 뿐만 아니라 몸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회복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3. 엄마의 구원과 건강을 위해
4. 언니 가정에 평안과 은총과 가족들 모두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켜주소서
5. 언니와 형부의 비행하는데 동행하여 어려움이 없게 해주소서
6. 우리 목장에 목자 언니 포함하여 주님 안에서 늘 승리하며 원하는 기도들이 응답받고 모두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은헤받길
7. 여러 패배의 사건 중에서 저를 찾아오셔서 깨어주시고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고 새 생명을 주셔서 부활하게 해주셔서 다시 살게 해주신 주님께 영광 올리며 감사드리며 은혜로운 삶 되게 하옵소서
예선
1. 날마다 주시는 말씀을 진짜 왕이신 하나님의 이야기로 잘 읽어내려갈 수 있는 은혜 주시길
2. 직장에서 입 다무는 적용하도록
3. 맡은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일정이 당겨져서 알맞은 사람을 배정하기가 어려워졌는데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작은 실패와 패배의 사건 가운데 여전히 사람을 의지하는 나의 모습을 잘 보고 가도록
4. 가정에서 경계를 잘 지키도록
5. 양교 계속 참석하여 은혜와 위로 받도록
은우
1. 15년의 패배가 주님의 찐 사랑인 것을 알고,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주님의 영광가운데 하루만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