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패한 후 15년
본문: 열왕기하 14:12-22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
지난주 2024년 노벨 문학상을 한국이 받아서 노랬는데요 물리학상 수상자도 놀랍습니다. 이들의 인공신경망 연구가 인공지능연구가 가능하게 했다고 합니다. 카스팔로프의 이야기는 우리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아마샤도 화를 자취하여 큰 패배를 당합니다. 그 후 15년을 더 살았아요. 15년을 어떻게 보내야했을까요?
패한 후 15년
1. 패배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입니다
아마샤는 화를 자취하여 북 이스라엘을 치러 갑니다. 요아스가 싸움을 거절했는데도 듣지 않았어요. 자기 고집대로 일을 진행시킵니다. 그 결과는 대패했고 그런데 이스라엘 앞에서 패했다고 합니다. 그냥 보고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적 수동태라는 것입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위해 패배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고조할아버지 여호사밧이 아들 여호람을 아달랴와 불신결혼 시킨 결과였습니다. 아마샤가 체포되는 장면에서 그의 아버지를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잇ㅆ브니다.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뜻입니다. 요아스왕은 아마샤를 사로잡는 것에서 멈추지 않아요 예루살렘으로 가서 특히 에브라임문을 부숩니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에브라임 문을 헐어버린 것은 유다에 대한 너희도 부술거야!입니다. 결과적으로 남유다는 껍데기만 남게되었어요. 군대도 성벽도 사람도 돈도 다 잃었습니다. 아마샤는 살아있는 것 만으로 감지덕지해야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북이스라엘에게 당한 것으로만 본다면 원망으로 살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패배는 신적수동태 하나님께 당한 가장 합당한 징계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주신 징계라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제사도 자기 맘대로 바꾸고 엘리야 엘리사같은 최고의 선지자들이 사역을 해도 꿈쩍도 안하는 것이 북 이스라엘 입니다. 그래도 남유다는 산당을 내버려두었지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잖아요 율법도 알고 지키려고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유다를 더 험하게 다루십니다. 예수의 씨가 남유다에 있기 때문입니다. 남유다에 씨가 있다. 하나님의 관심과 기대가 남유다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심각하게 보고 다루십니다. 모든 것을 싹 다 빼앗기게 하십니다. 죄 가운데에 술술 풀리는 삶 살다가 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녀를 사랑하시는 진짜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패배는 생각하기도 싫어요. 이기고 또 이기고싶어요. 승리는 나의 힘, 복수는 나의 힘, 내가 원하는대로 풀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밑동잘린 나무입니다. 우리가 밑동잘린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패배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사랑의 징계입니다. 사람의 결정이 무너져야 하나님의 결정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무너
적용
인정하기 힘든 패배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패배해서 미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는 나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2. 15년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15절 16절은 요아스의 일생을 정리하는 구절입니다. 이것과 똑같은 구절이 13절에 나왔습니다. 요아스에게 특별히 두 번이나 사용된 단어가 있는데요 업적이라는 단어 위대한일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마샤의 생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는 것인데요. 이스라엘의 요아스와 남유다의 아마샤가 싸워서 요아스가 이기고 아마샤가 졌잖아요 북이스라엘 요아스는 업적이 있다고 강조하는데 업적은 커녕 사적이라는 말도 안써있었어요.
15년의 생존을 돋보이게 하기위해서 요아의 죽음이 돋보였어요. 업적이 어마어마해도 빨리 죽었어요. 요아스가 양육을 엘리사에게 양육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양육이야 말로 업적이라는 대단한 단어를 두 번이나 썼어요. 업적보다 양육이 더 위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아마샤에게 15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을까요? 히스기야에게도 15년의 시간이 허락되었잖아요? 그러나 죄를 지고갔어요. 숫자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은혜를 허락하신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수심과 교만함을 돌아보며 기다려주시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았어요. 우리도 실패를 겪을 때가 있죠.
주님이 이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주님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은 생명과 구원이라고 했잖아요. 구원으로 이루어지면 패배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하고 성공하고 합격하면 회개해야합니다. 패배하고 실패하면 감사해야합니다. 은혜의 15년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주신 선물이니까 화내지말고 감사해야합니다. 한마디로 붙회떨감입니다.
적용
내가 쌓고싶고 쌓고있는 업적은 무엇입니까 그만한 열심히 양육을 받고있습니까 믿동잘린 나무같은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쓰겠습니까?
3.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버지 요아스처럼 반역에 의해 죽었어요. 아마샤는 무리가 반역해서 자기 백성이었던 사람들이 성난무리가 되어있었어요. 무리든 신복이든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못됩니다. 아마샤가 피해야할 곳 도라가야할 것은 라기스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죠. 아마샤는 잘못없는데 못된 무리가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아마샤의 책임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아마샤가 돌아가서 여호봐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다고 합니다.
아마샤는 여호와게 돌아오지 않았어요. 100퍼센트 억울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마샤가 죽었을 때 아사랴는 16살입니다. 반역한 무리가 마음만 먹으면 아사랴도 몰아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무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등불을 비춰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하는 이유입니다.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때문에 그들을 살려두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어요. 다윗의 후손보다 더 그럽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는데요 이것이 축복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겠다는 이 소망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순결하게 해주는 것은 이땅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유다의 역사는 어느 누구도 사람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유다는 신복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왕은 죽인 왕의 아들로 세우셨어요. 열왕기하는 왕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왕이신 하나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택자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이 지켜가십니다. 내 말씀으로 듣는다는 주님이 보호하십니다. 주님이 지키실 줄 믿습니다.
내가 너무 연약하지만 내가 큐티말씀들은대로 적용을 하면 훗날이 적용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적용
아마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버린일은 없습니까? 해석이 안되는 반역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니까 다른 것을 찾아다닙니까?
기도제목
A
- 신교제, 신결혼
- sns활용하는데 은혜주시길
- 발목인대 꾸준히 회복되길
- 동생과 관계회복되길
- 양교 상반기 받기!
- QT하기
B
- 기도로 간증 준비할 수 있도록, 간증할때 강건한마음 주시도록
- 태욱이 주일예배 참석할 수 있도록
- 태욱이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마음을 주시길
- 다이어트 하고있는데 성실히 꾸준히 할 수 있도록
- 정신과 가는 마음 결단하기를
- 엄마의 건강과 직장 도와주시길
C
- 30일동안 최선을 다하도록
- 엄마아빠 제주도에서 건강하게 잘 있다오도록
-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 큐티하기
D
- 과제 안미루고 잘할 수 있도록
- 아빠 상사고난 해결되고, 술, 거짓말하지않도록
- 이모부랑 이모가 목회자 세미나오시는데 구속사적으로 말씀 깨달을 수 있도록
- 큐티하기
- 신교제, 신결혼
E
- 체력지켜주시길
- 술 끊을 수 있도록
- 돈관리에 지혜주시도록
- 가족들이랑 사랑이 넘치는 상황인데 다시 무너질까 두려움이 생기는데 가족들 위해서 매일 큐티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 말씀잘듣고 목장 인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