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모임>20241013
본문: 패한 후 15년
제목: 열왕기하 14:12~22
아마샤도 화를 자취하고 큰 패배를 당한다. 패배후 15년을 더 살았다. 어떻게 보내야만 했을까? 수치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함꼐 생각해보겠다.
1. 패배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다. 열왕기하 14장 12~14절,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 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을 치러 나간다. 요아스가 싸움을 거절했는데도 듣지 않는다. 그 결과는 패배였다. 이스라엘 앞에서 패했다, 유다를 패배시킨 존재가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적 수동태다. 하나님이 유다를 치셨다는 뜻이다. 유다의 패배는 하나님의 징계다. 아마샤를 사로잡았다. 왕은 체포되었다. 전쟁의 책임이 왕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마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체포 역시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뜻이다. 요아스는 에브라임 문을 제일 먼저 부순다. 유다를 향한 확실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요셉의 후손이야, 이 문처럼 부서져야해, 유다 백성에게는 엄청난 수치였을 것이다. 약 183m를 부숴버렸다. 완전히 점령하고 속국처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남유다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군대도 사람도 돈도 다 잃었다. 아마샤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처지가 되었다. 이 사건 제일 처음에 분명히 알려주셨다. 이 패배는 신적 수동태라고 알려주셨다. 100% 옳으신 하나님께 당한 가장 합당한 징계라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영토 남단과 북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남유다는 율법도 알고 지키려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유다를 훨씬 엄하게 다스리신다. 구속사의 계보가 요셉이 아니라 유다에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더 작은 죄라도 다윗 후손의 죄를 훨씬 심각하게 보시고 다루신다. 죄에서 돌이켜 살아나라고 구원받으라고 채찍으로 징계하신다. 이것이 진짜 사랑이다. 이기고 또 이겨도 승리는 좋다. 패배는 한번만 당해도 질려버린다. 내가 원하는대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다. 밑동이 잘렸다는 것을 알아야 생수를 찾는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해서 우리 실체를 알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신다. 사랑의 징계다. 패배를 당할 때 그게 끝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절대로 버리시지 않는다. 돌이켜 살아나라고 패배의 사건으로 징계하신다. 무너지는 것만큼 영이 세워진다. (적용) 인정하기 힘든 패배의 사건은 무엇인가? 패배해서 가장 미운 사람은 누구인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는 나의 죄악은 무엇인가? (나눔)
2. 15년은 회개의 기회다. 열왕기하 14장 15~18절,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의 업적과 또 유다의 왕 아마샤와 싸운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사마리아에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간을 생존하였더라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5~16절은 요아스의 인생을 정리하는 문구다. 똑같인 반복해서 요아스의 죽음을 두 번이나 언급했다. 업적이라는 단어, 딱 다섯명에게만 쓰인 단어다. 4명이 북이스라엘의 왕에게 쓰였는데 이들중에서 요아스에게만 두 번이 쓰였다. 왜 두 번 반복해서 기록했을까? 아마샤의 생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아마샤는 사적이라는 말도 안 쓰였다. 아마샤는 그 뒤로 15년을 생존하고 있다. 15년의 생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요아스가 엘리사의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걸려서 마지막에 요아스를 거룩한 분노로 양육하고 죽는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이해가 안되고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업적보다 양육이 더 위대하고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15년을 살아있었다고만 한다. 살던 모습 그대로 살았다는 것이다. 교만한 모습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왜 하나님은 아마샤에게 15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을까? 은혜로 허락하신 시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마샤는 자신의 회개 없는 정직을 깨닫고 복수심과 교만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했다. 우리도 너무 큰 패배와 실패를 겪을 때가 있다. 더 이상 살기가 싫고 살수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다. 아무리 큰 승리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헛된 것이다. 아무리 큰 패배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어지면 패배가 아닌 것이다. 승리하고 합격하고 성공하면 오히려 회개해야 한다. 패배의 시간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시간이다. 한마디로 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다. (적용) 내가 쌓고 싶고 쌓고 있는 업적은 무엇인가? 그만한 열심으로 양육을 받고 있는가? 밑동 잘린 나무 같은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쓰겠는가? (나눔)
3.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열왕기하 14장 19~22절,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를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그 때에 그의 나이가 십육 세라 아마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더라, 아마샤의 최후다. 아버지 요아스처럼 반역에 의해 죽었다. 자기 백성이었던 사람들이 죽이려는 성난 무리가 되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못된다. 아마샤도 돌아가야 할 곳은 하나님이었다. 반역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역대하 25장 27절,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여호와를 돌아섰다고 한다. 15년을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아마샤는 회개하지 않았다. 완악함에 대한 심판으로 반역이 일어났다. 어떤 사건이나 내 지분이 있다. 믿음만큼 내 잘못을 깨닫는 것이다. 죽은 아마샤에게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 시체를 예루살렘으로 실어와서 왕의 묘실에 묻었다. 아들 아사랴를 왕으로 삼았다. 아사랴는 열여섯 살이었다. 스스로 정권을 장악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무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의리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오셔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것이다. 엘랏은 항구 도시였다. 이 항구에 가려면 에돔을 통과해야 하는데 항구를 쓸 수 없었다. 아마샤가 에돔을 징벌해서 다시 길이 열렸다. 아마샤나 아사랴가 뛰어나서 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기 때문에 그들을 살려두신 것이다. 온 인류도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이 땅에 기댈 수 있는게 많지 않을수록 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축복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소망외에는 우리를 순결하게 해주는 것은 이 땅에 없다. 북이스라엘은 사람이 주인공이다. 남유다는 유다지파다. 유다는 심복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왕은 왕의 아들을 세웠다. 아마샤와 아사랴가 왕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열왕기는 왕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왕이신 하나님의 이야기다. 택자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이 지켜가신다. 암담한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소망을 전하는 교회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사람은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무너진 가정을 중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배의 사건을 해석하기 너무 어렵다. 우리들교회가 세상 끝날까지 한 영혼 살리는 사명을 계속하기를 바란다. (적용) 아마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버린 일은 없는가? 해석이 안되는 반역의 사건은 무엇인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가, 다른 것을 찾아다니는가? (나눔)
(말씀 요약) 패배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다. 15년은 회개의 기회다.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목장모임)
이번 주 저희 목장은 은주 목자님 목장과 조인했습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와 같은 패배가 어떤 것인지, 밑동 잘린 나무 같은 내 인생의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지 나눴습니다. 또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가, 다른 것을 찾아 다니는가 라는 적용 질문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저희 목장과 은주 목자님 목장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도제목)
민귀: 1. 늘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었는데 하나님께 소망 둘 수 있길
2. 다시 일상 복귀했는데 중요한 일인 시간의 십일조를 우선 하기
3. 수술과 진료 시 좋은 사람이고 싶은 인정 욕구 버리기
4. 신교제 신결혼
현숙: 1. 패배의 15년 회개하고 겸비하여 주님을 더욱 사랑하도록
2. 부모님을 광주채플로 인도해주시고 엄마가 목장에 잘 정착하시도록
3. 오빠를 구원해주시고 동생을 판교채플로 인도해주시도록
4. 신교제 신결혼(좋은사람으로 잘 준비되어지고, 순적하게 인도함 받아 내년에 부부목장 가게 해주세요)
호진: 1. 큐티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지 않도록
2. 아버지, 어머니, 형의 건강과 아버지와 형의 구원, 어머니의 믿음 성숙을 위해
3.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4. 신교제를 위해 잘 준비되도록(건강, 재정 등)
상연: 1. 예배와 목장에 목마름이 생겨지길.
2. 일상업무에 있어서 항상 안전히 운행하는 습관갖길.
은주: 1. 패배했다고 생각되어 실망하고 슬퍼했는데 먼저 내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세요
2. 징계의 수치를 잘 감당하고 자존심 내려놓는 적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 하기 싫어서 미뤄두었던 일 순서를 정해서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지혜와 성실함을 주시길,
4. 형부의 마음이 조금 열리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살 수 있는 환경과 마음 주시길 기도합니다.
5. 내년 프랑스 티티에 갈 수 있는 환경을 주시고.
6. 신교제 신결혼
무성형제님: 1. 착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2.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세요.
3. 게을러지지 않게 해주세요
익준형제님: 1. 겸손한 심령주시고 교만하지 않도록 붙들어주소서
2. 어머니께서 이웃집 소개로 동네의 작은 교회 다니기 시작하셨는데 믿음이 자라나실 수 있도록.
3. 여동생 교통사고 후유증. 아버지 우울증 치유 회복을 통해 주님 만날 수 있도록
4. 퇴근 이후 자기계발에 힘 쓸 수 있도록 체력 부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