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4.10.13 주일예배
제목 : 인생 최고의 승리
본문 : 열왕기하 14:12~22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불쑥 찾아오는 그 패배와 그 이후 수치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함께 생각을 해보겠어요. 패한 후 15년 첫째는 패배는 하나님의 사랑에 징계입니다. 12절부터입니다. 요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간지라 이스라엘 왕 요하스가 아하시야의 손자 요하스의 아들 유다왕 아마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400주 빛을 열고 또 여호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탈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고서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아마샤는 화를 자취하여 북이스라엘을 치러 나갑니다. 북쪽의 왕 요하스가 싸움을 거절했는데도 듣지 않았어요. 자기 고집대로 일을 진행시킵니다. 그 결과는 패배였어요. 그런데 유다가 이스라엘에게 패했다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앞에서 패했다고 하네요. 12절에 유다를 패배시킨 존재가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유다가 패배당하는 일을 그냥 보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신적 수동태입니다. 유다 하나님에 의해 패배를 당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유다를 치셨다는 거예요. 징계예요. 유다의 패배는 에돔의 우상을 섬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죄 가운데 술술 풀리는 삶 살다가 망하지 말라고 말이죠. 죄에서 돌이켜 살아나라고 구원받으라고 채찍으로 징계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진짜 사랑이라는 거예요. 자녀를 사랑하시는 진짜 아버지이시기 때문이죠. 우리는 패배는 생각하기도 싫어요. 이기고 또 이기고 싶어요. 패배는 1번만 해도 질려버려요 근데 승리는 100번을 해도 질리지가 않아요. 질리지가 않아요. 승리는 나의 힘 지난주는 복수는 나의 힘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승리하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아무 문제 없는 게 바로 가장 큰 문제일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다 밑동 잘린 나무 같은데, 잎이 무성하면 그걸 모르고 지내다 그냥 다 말라버리는 거예요. 근데 내가 밑동이 짤렸다는 걸 알아야 생수를 찾잖아요. 우리 인생에서 패배는 우리가 밑동 짤린 인생이라는 걸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예요. 하나님께서 징계를 통해 우리 실체를 알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세요. 사랑의 징계예요. 따라서 패배를 당할 때 너무 힘들고 슬프고 절망이 되지만 그게 끝이 아님을 기억하셔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기에 돌이켜 살아나라고 패배의 사건으로 징계하시는 거예요. 이 사람의 결정이 무너져야 하나님의 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축복이에요. 무너져야하리 무너져야 그러니까 사람이 무너지는 것만큼 거기에 영이 세워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징계를 잘 받아들이고 아버지 하나님께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모든 패배를 만회하고도 남고도 또 남는 진정한 승리인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 인정하기 힘든 패배 사건은 무엇이에요 패배해서 지금 미운 사람은 누구예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는 나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둘째는 그 15년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죽고 살고가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어떤 그 유언을 자녀 세대들에게 남길 것인가? 이것이 너무 중요하다고 그래서 이 양육이야말로 업적이라는 대단한 단어를 2번이나 써서 강조한 일인 거예요. 그러므로 양육이 더 위대한 일인 거예요. 더 큰일인 거예요. 양육을 받는 요하스에게만 업적이라는 단어를 2번이나 썼다고 그랬잖아요. 요하스는 이렇게 갔어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오늘 하루 살고 간다 그랬잖아요. 패배자가 된 아마샤는 그 15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성경은 그저 15년을 생존했다. 살아서 숨만 쉬었다 살아 있었다고만 합니다. 특별한 일 없이 기록할 만한 변화 없이 그저 살던 모습 그대로 살았다는 뜻인 거예요. 회귀 없이 정직하기만 한 모습으로 니가 감히 하는 교만한 모습으로 살아갔을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왜 아마샤에게 15년이란 시간을 허락하셨을까요? 나중에 히스기야에게도 15년의 시간이 허락되잖아요. 15년의 허락된 시간 다 죄만 져요 히스기야도 숫자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신 시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요. 무엇을 위한 은혜예요. 아마샤는 이 15년의 시간에 자신의 회기 없는 정직을 깨닫고 자신의 복수심과 교만함을 돌아보며 회개했어야 돼요. 그런데 기다려주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지 않은 거예요. 우리도 너무 큰 패배와 실패를 겪을 때가 있죠. 지금 그런 고난을 겪는 중에 계신 분들도 있겠죠. 더 이상 살기도 싫고 살 수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어요. 그런데 오늘 이 고난을 눌리면서도 이렇게 살게 하신 것이 우연이 아니에요. 우리 오늘 세례 받으신 또 이금옥 성도님 내외 진짜 생애 최고의 권한 가운데 있는데, 이때 지금 우리들께 오셔서 온 교회가 기도해요. 최고의 선택을 하신 거예요. 할렐루야 이 말씀을 듣게 하신 이유가 있어요. 주님이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에요. 우리가 회귀하고 주님께 돌아올 때까지 주님이 기다리시는 겁니다. 아무리 큰 승리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헛된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큰 패배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어지면 패배가 아닌 거예요. 인생 최고의 승리 최후의 승리가 구원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승리하고 성공하고 합격하면 오히려 회개해야 돼요. 그래야 구원의 사건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패배하고 실패하고 떨어지며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그 패배의 시간은 나를 구원하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15년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주신 선물이니 절망하지 말고 화내지도 말고 죽지도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붙회떨감입니다. 붙으면 내게 떨어지면 감사 할렐루야 지금 겪고 계신 모든 패배 사건을 이렇게 잘 해석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질문. 내가 쌓고 싶고 쌓고 있는 업적은 무엇입니까? 그만한 열심으로 양육을 받고 있습니까? 밑동 잘린 나무 같은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쓰겠습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양육이 중요하면 이제 목장에서 다른 분의 나눔에 양육을 받지 않은 상태로 본인의 경험으로 끼어들고 자꾸 처방 아닌 처방을 하면요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목자님이 한 목원에게 양육을 받으라고 하면은 왜 목장에서 양육을 받아라 말라 하냐? 그 개인의 자유지 양육시켜서 목자 시키려고 그러냐 뭐 이런 얘기를 한다든가 또 우리 아이가 아픈 아이라 정신과 약도 먹는다고 나눔을 하면 그렇게 되게 한 아버지가 문제다 자기는 아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키워서 나만 보면 무서워서 말도 못한다 그러면요 믿음이 연약한 집사들은 아 양육 안 받아도 되는구나. 병원에는 안 가도 되는구나. 그래서 끌려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그러니까 이제 양육의 목적이 목자 되는 게 아니라 내 죄인된 삶을 깨닫고 예 삶을 이기적이었다가 이타적인 삶으로 남을 배려하는 이런 마음을 갖게 하는 훈련이라고 이렇게 설명을 늘 여러분들이 해주셔야 되는데 제가 부탁을 드리는 거예요. 이제 양육을 안 받으셨을 때는 일단은 들어보시기를 권해요. 그래야 목장이 원활하게 돌아갑니다. 오늘 양육이 너무 중요하다고 그랬죠 무엇보다 업적보다 중요한 게 양육인 거예요.돈이 문제가 딱 아니라면 지금은 과거 있었던 일을 해석하며 내 죄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100% 억울한 일은 없어요. 어떤 사건이나 내 지분이 있어요. 내 책임이 분명히 있어요. 이것을 인정하는 게 믿음입니다. 믿음만큼 내 잘못을 깨닫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기 때문이에요.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이어가시는 거예요. 다윗 때문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실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도 나아가 온 인류도 온 인류도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 인생의 모든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어요. 다윗의 후손보다 우리는 더욱 그래요. 우리가 다이도 안 가는 아니잖아요. 이 땅에 기댈 수 있는 게 많지 않을수록 더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바로 축복이죠. 잠깐 있다가 사라질 걸 의지하는 것보다 영원하신 하나님 의지하는 게 복 아닙니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겠다는 이 소망을 제외하고는 우리를 순결하게 해주는 것은 이 땅에 아무것도 없어요. 패배 사건을 해석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작은 실패와 패배 가운데 인생의 모든 소망 무너졌다고 생각하면서 못 살겠다고 외치는 한 영혼은 어디나 있습니다. 이 한사람을 죽게 인도하여 인생의 참 소망을 찾게 하는 대구 채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 대구와 광주에 왜 여기 교회를 세웠겠습니까? 우리들 교회가 세상 끝날까지 그렇게 한 영혼 살리는 사명을 계속해서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 있어도 소망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실 줄 믿습니다. 이걸 굳게 믿고 이번 1주도 살아내십시다.
적용 질문. 아마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벌인 일은 없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버린 해석이 안 되는 반역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만 소망을 줍니까 다른 곳을 찾아다닙니까?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실패가 얼마나 만났을까요? 그 모든 실패가 사랑의 징계가 되게 하셔서 지금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인생을 살게 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참으로 이 폐한 후 15년에 그 삶 동안이 회개의 기회가 되어야 하는데 주님 우리들은 인제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시켜야 될지 너무나 풍요한 이 시대에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가 양육을 받고 자녀들에게 양육을 받게 하는 이것이 우리들의 가장 큰 업적이 될 터인데 주님 시작도 못하고 있는 집들이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엘리샤가 죽을 병에 걸려서 마지막 거룩한 분노로 참으로 양육을 하고 갔다고 했는데 그런 마음으로 우리의 유언을 이 역사에서 남겨놓기를 바라 우리 부모는 부모 세대는 그렇게 주님을 사랑했노라고 우리 다음 세대 반드시 부모들의 기도를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우리 주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참으로 유언으로 남겨놓을 때 언젠가는 하나님 방문하셔서 우리 부모들의 믿음을 이제 알려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가 양육받고 양육하고 양육시키고 하는 것이 저절로 우리 자녀들의 갈 줄을 믿사옵고 이것이 가장 큰 업적으로 남게 될 줄을 믿습니다.
적용질문
1. 인정하기 힘든 패배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 패배해서 미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는 나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2. 내가 쌓고 싶고, 쌓고 있는 업적은 무엇입니까?
- 그만한 열심으로 양육을 받고 있습니까?
- 밑동 잘린 나무 같은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쓰겠습니까?
3. 아마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버린 일은 없습니까?
- 해석이 안 되는 반역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니까? 다른 것을 찾아다닙니까?
이번주는 휘문 이은나래목장과 함께 나눔을 하였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눔하고 식사 교제까지 귀한 시간으로 함께해주신 이은나래 목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