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느냐 ( 왕하 14 : 1 - 11 ) 김양재목사님
여러분들의 목장 나눔을 보면 목사님 설교가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사람이 꼭 있다. 그래도 우리가 변화 되려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 우리들교회가 안 들리는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 부흥이 되겠는가? 다 뚫고 성경이 읽어지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처음부터 모르면 열왕기상 부터 듣고 그 다음 열왕기하 들으면 너무 똑똑해질거에요~ 대화도 너무 잘 될 거에요~ 다 안 들리는 사람만 있으면 도저히 교회에 안 오고 해결이 안 된다.
여러분은 스트레스 어떻게 푸나요? 스트레스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흔히 선택하는 방법은 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뭐가 있지도 않은데 냉장고 문을 계속 연다. 마구 먹는다. 이것을 정서적 폭식이라고 한다. 나쁜 기분을 풀기 위해서 폭식을 하는데 2016년 발표된 생리학 논문에 따르면 정서적 폭식을 하는 사람들은 음식 섭취 후에 죄책감, 우울감, 부정적 감정을 훨씬 더 많이 경험한다고 한다. 이런 폭식이 몸에 좋을리 없고 먹는 사람도 다 아는데 멈추지를 못한다. 나름 이유를 대면서... 정서적 폭식은 자기파괴증후군의 일환이다. 안 좋은 거 알고 멈춰야 하면서도 못 멈춘다. 술, 담배, 마약, 게임 같은 중독도 마찬가지이다. 무모한 도전 같은 실수 반복, 자해도 자기 파괴 증후군이다. 그 때는 좋지만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오늘 본문에 자취한다고 나온다. 혼자 사는 자취가 아니라 스스로 매를 버는 것이다. 사소해보이던 문제가 결국 큰 화로 이어지는데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느냐 직접 듣고도 다 멈추지 못한다. 오늘 화를 자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보자.
한결같이 뚱뚱하거나 한결같이 날씬한 사람은 괜찮다. 쪘다 빠졌다 하는 사람이 건강이 안 좋은 것이다. 제가 가게 갈 시간이 없는데 옷을 입고 사는 것은 몸무게가 안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에 다 맞춰서 몇십년전 옷도 다시 유행이 돌아오고 돌아오고...그나마 그래서 제가 이정도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다.
화를 자초하지도 자취하지도 말고 폭식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참지를 못하잖아요.
화를 자취하는 것은
1. 회개 없는 정직 때문입니다.
1-4절
다시 남유다의 무대로 돌아온다. 여기 요아스는 성전 수리했던 요아스 아들 아마샤의 이야기이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 왕을 두 아내에게 장가들게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예루살렘 사람 여호와의 기쁨이라는 뜻의 여호앗단으로 믿음있는 집안 출신이었다. 아먀샤를 믿음있는 사람으로 키웠을 것이다. 그래서 아먀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남유다 왕이 총 20명이 있었는데 그 중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는 평가를 받은 왕이 8명이다. 20명의 반도 안 되는 정직히 행한 왕도 8명 밖에 안 된다. 북이스라엘 왕은 19명인데 살롬 외에는 전부 악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직한 왕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 정직하다는 것은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살기도 참 어렵다. 최고의 신앙 전통과 환경을 갖춘 유다왕들이 이 모양이면 말 다한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기준 자체가 여로보암이다. 가장 악한 왕이 기준이다. 보면 그렇게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들에게는 정직한 길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기만 해도 칭찬을 해주려고 하는데 그렇게 한 왕이 한 명도 없었다. 그 개혁자인 예후도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떠나지 않았다. 아먀샤는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은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대로 정직하긴 했지만 다윗과 같진 않았다고 한다. 남유다 왕들의 기준은 늘 다윗이다. 이것은 택자라는 뜻이다. 북이스라엘과 비교해 남유다왕은 예수의 씨, 다윗의 씨를 의미한다. 예수 씨는 기준이 높다. 똑같은 잘못을 했는데 저 사람은 안 걸리고 왜 나만 걸리냐! 이것이다. 이것은 재수가 없는게 아니라 사랑과 기대의 표시이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준높게 봐서 사람과 사건으로 계속 양육해가신다. 이제는 나한테만 왜 이래~ 이런 말 좀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수준에 합당하군 생각하세요!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산당은 가나안 토속신앙의 유산이다. 산위에 세워두고 우상에게 복을 빌던 장소이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성전 생기기 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있어서는 안 되는 우상숭배의 장소이다. 성전이 생긴 뒤로는 제거해야 될 곳이었는데 남유다왕 대부분이 산당을 내버려뒀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만 제거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2대 성군이다. 그런데 그 둘이 얼마나 깽판 부리는지 아시죠? 히스기야도 바벨론 사자에게 내탕고를 보여줘서 잡혀갔잖아요.
가장 부유하고 강했던 솔로몬은 오히려 산당을 세웠다. 따라서 유다왕들에게 산당은 이론적으로는 있는게 비정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있는게 정상이었떤 장소이다. 너무나 익숙한 장소여서 악인 줄도 몰랐다. 악의 평범성이라고나 할까요.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평범해서 악인줄도 모르고 저지르는 악이 있다. 유다왕들에게는 이 산당이 평범속에 저질러지는 악이었다. 유다왕들에게는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갔다는 이야기는 없고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을 폐하지 못했다 라고 한다. 그래서 아먀샤 입장에서는 산당을 내버려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존경하는 아버지도, 내 조상들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어쩌겠냐~ 이정도는 봐줘야지 하면서 내가 한 것을 봐~ 내가 한 게 99가지인데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한 것 1가지 가지고 왜 뭐라고 그래~ 죄와 타협하는게 화를 자취하는 시작이다. 여러분 개성은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이고 자기 중심성은 우리의 죄성이 표현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인구가 정상적으로 많은데 반려견을 키운다면 괜찮다. 그런데 점점 자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 자리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 자리에 반려견이 있게 됐다. 먹고 살 것이 있는데 왜 결혼을 하고 왜 자식을 낳느냐 나만 바라봐 줄 상대를 찾은 것이다. 하루종일 말도 안 하고 속도 안 썩이고 그윽하게 나만 쳐다본다. 밤중에 들어가도 꼬리를 흔들고 나오고 출근할 때도 꼬랑지를 흔들며 나오니 마음이 간다. 왜 쓸데없이 자식을 낳아서 고생하냐가 산당의 대표이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참 가슴이 아프다. 그럼 이제 동물 천국이 되면 어떻게 할까? 그런데 내가 좋은걸 어떡해 애새끼 보다 개가 훨씬 더 좋은데.. 완전 개판이다. 그래서 수의사가 너무 잘 나간다고 한다.
행복을 목적으로 놓고 간다면 이것은 당연하게 생각되는 산당이다. 열왕기서 저자는 아무리 정직을 행해도 요아스에게는 없는 다윗과는 같지 않다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정직이 아니다. 그럼 더 나아가서 정직과 다윗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럼 다윗은 정직하지 않았을까?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도 하고 살인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나중에 잘났다고 인구조사도 하고 잘난 척하는 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왜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 않았을까? 다윗에게는 아무도 없는 회개가 있었다. 그래서 인간 최고의 감정이 회개이다. 여로보암 요아스 아먀샤 회개했다는 말이 어디에도 없다. 부모의 최고의 유산은 완전하고 정직한 것이 아닌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10층에 사는 사람을 정직하다고 한다. 성품으로...
그런데 다윗의 길은 지하실에 회개하면 1층으로 올라오는 사람을 말한다. 회개없이 산당예배를 드리며 정직하게 행했다는 것이 화를 자취하는 길이다. 회개가 안 되니 요아스처럼 3번 치다가 멈추는 것이다. 내가 진짜 하나님이 상급이 되어 사는게 아니기에.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니 3번하고 지치는 것이다.
우리도 반드시 해야하는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멈추는 것들이 있다.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고 이해해줘야 할 상황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이 제거해야 할 산당이라고 하시면 제거해야한다. 상처때문에 불공정한 사회때문에 시스템이 없어서, 무서운 남편, 아내때문에 먹고 살아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외쳐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수만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과 타협하여 산당 예배를 끊지 않으면 화를 자취할 수 밖에 없다. 당장 아무 일 없는 것 같아도 회개없는 정직은 화로 이어진다. 물론 이런 한계를 한번에 뛰어넘을 수 없다. 하지만 하나만이라도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작이 꼭 필요하다. 적용을 해도 회개를 위한 적용을 해야한다. 10층에 사는 사람은 지하에 사는 사람이 적용하는 것보다 너무 쉬워서 하나도 힘들지 않고 나눔을 할 때 사람들 앞에 은혜를 못끼친다. 성품으로 하니까. 아무리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가 이렇게 회개로 뭐 하나 적용하려고 시작해야한다. 여러분이 타협하며 내버려두는 산당을 깨닫고 벽돌 하나라도 뺴놓는 적용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속에서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회개의 감정이 없으니 모임이 지겹고 힘들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찾아다닌다. 사명이 없으니...맨날 10층에 사는 것만 자랑한다.
적용 나는 정직합니까? 정직하다면 남을 힘들게 하는 정직입니까, 남을 살리는 정직입니까?
정직한 것만도 어려워서 하나님이 아먀샤를 도와주신다. 정직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다 북이스라엘 왕 같다. 정치인들 중에서도 회개없이 정직한 사람들이 만나도 이해타산이 만나면 다들 배신을 한다.
요즘 sg 초원 나눔이 너무 리얼하고 대단하다.한 목자님이 나는 우리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게,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가 고등학교 선생님 하면서 촌지 안 받는다, 어느 학부모가 뭐라하면 생활기록부를 엉망으로 만들겠다 공표하고 선언한 것을 아이들이 다 듣고 알았다, 그러니 감히 대들지 못했다, 아빠, 내가 알아서 할게 이 말을 듣기 싫어했다, 아빠에게 반항한 적도 없고 아이들이 지냈을 감옥을 생각하면 너무 답답했을 것 같고 자칭 의로운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이 칠흙같이 어둠같은 삶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나에게 감정적으로 대든 적도 부딪힌 적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진노를 쌓았구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노를 폭발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되지 못했다, 말 잘 듣는게 좋은 줄 알았다라고 나누셨다. 이분이 서울대를 나와서 개척때부터 나오셨지만 편한 분이 아니셨다. 큐티도 하는데 결국 교회를 떠나셨다. 다시 오셨는데 지금은 사모님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교회를 다 떠났다, 요즘은 내가 화를 자취했다고 이런 회개의 나눔을 목장, 초원에서 하셨다. 이렇게 되기까지 너무 세월이 많이 걸렸다. 안 들릴때는 한결같이 저를 욕한다. 여러분들도 안 들리면 좀 기다려요. 설교가 안 들려도 이런 나눔들은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내 설교 어렵다고 그만 좀 욕하시고..
집을 떠나는 순간 여기 들어오는 순간 졸기 시작한다, 끝나는 순간 기뻐서 나간다는 나눔, 그래도 아내때문에 교회를 나온다라고 나누시는 분도 계시다. 그런 나눔을 해주시는게 어디에요. 우리들교회는 좋은 가정이라 다들 폭발하고 좋은 얘기만 하지 않는다. 맨날 이번주에도 얼마나 그렇게 싸움을 하는지...목장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요. 싸우니까 우리들교회이다. 건강하게 싸워야지 좋은 이야기만 하면 되겠어요? 가정도 안 싸우면 이상하다. 인간이 악한데 어떻게 안 싸우는가? 애들이 어떻게 부모 말을 잘 듣겠는가? 어려서부터 악한데. 찔리는 분 많죠?
맨날 의로워서 엄마가 그래서 되겠어? 행위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숨을 쉬고 살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죄할 일 밖에 없다. 촌지 안 받으면 안 받았지 생활기록부를 다 엉망으로 만들어놓을거야 이것을 아이들에게 말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나 훌룡하다~ 는 것밖에 안 된다. 회개가 안 되는 정직이 제일 무섭다.
화를 자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2. 복수심보다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5-6절
이 아먀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정직히 행한 왕도 없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영향으로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섰다고 한다. 아먀샤가 태어났을 때 요아스가 22살이었다. 7살에 왕이 되어 고모부의 교훈 아래서 고모부가 시켜주는 결혼도 하고 자랐지만 점점 왕이라는 현실이 크게 보였다. 요아스도 고모부 눈치 보는게 답답해서 30살이 됐을 때 자기가 명령했는데 왜 여태 성전 수리를 하지 않았냐며 고모부 여호야다를 공개적으로 혼내고 자신이 직접 성전 수리를 했다. 일이 술술 풀리니 여호야다의 교훈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래도 그렇게 교훈을 받은 왕은 모든 왕 중에 요아스밖에 없다. 그렇게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교훈을 받았다고 했잖아요.정말 되었다함이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생겨서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니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교훈의 반역자처럼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인다. 그러니까 자기 신복에게 살해된 것이다. 요아스의 아들 아먀샤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럼 아먀사는 고모부와 요아스 왕 중 누구 편을 들었겠는가?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대제사장의 모델이다. 그런데 여호야다의 아들을 아버지가 죽였다. 이 사람 훌룡한 사람이고 자기 아버지는 고모부의 아들을 죽인 사람이니 누구 편을 들었겠는가??
우리의 생각은 당연히 여호야다를 따라야하는데 아버지 인생을 생각만해도 신복에게 살해를 당했으니 가슴이 저린다. 당연히 아버지 편이다. 정직했지만 아버지 편이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게 정직한 사람의 특징이다. 아먀샤는 집권초기에 아버지를 암살한 세력에 의해 많은 간섭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뚫고 자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납작 엎드려서 국력이 쇠약해진 유다를 정직히 행함으로 왕권을 굳게 했다. 하나님은 그래도 아먀샤 편을 들어주신다. 그런데 힘이 딱 생기자마자 한 일은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복들을 죽인 것이다. 아버지 원수를 갚은 것이다.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다. 신복들이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똑같이 잔인하게 복수했다. 아버지가 39년동안 정직히 행했는데 1년동안 복수심에 불탄 것처럼 아먀샤도 똑같이 아버지가 간 길을 갔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 말씀대로 복수심을 참는게 너무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며 신명기 말씀을 기억해서 연좌제를 안 한다 하며 적용했다. 아버지만 죽였다. 법대로. 이게 여호와 앞에 정직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것을 여기에 기록해주셨다. 물론 이는 반역자들을 왕으로서 처벌한 것일 수도 있다. 완전한 정직한 정의구현이다. 옳고 그름이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하사엘에게 공격을 받으니 성물을 이방 아람에게 보냈다. 그러니 하나님을 욕되게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율법주의 신복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살해당한 것은 삶의 결론이었다. 여기까지 깨달으셔야 한다. 맨날 피해자 입장에 있으면 천년이 가도 해결이 안 된다. 영적으로 심복들이 옳도다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게 구속사이다. 정직하다고 외치며 모조리 원수 갚는 것에 골몰하는 것이 정직의 한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죽이고 죽이는 역사의 반복이고 진영논리, 지역감정이 날이 갈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이렇게라도 복수심을 참고 율법적으로 순종했어도 하나님은 또 유다, 예수씨니 불쌍히 보시고 큰 승리를 주신다.
7절
에돔은 다윗 이후에 유다의 속국이었다. 3장에서 본대로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이방 아람을 공격할 때 연합군으로 참전했다. 8장에서 유다왕 여호람 때 유다를 배반하고 독립했다. 그 이후 유다왕 누구도 에돔에게 손을 못댔다. 그런데 아먀샤가 처음으로 에돔을 공격했다. 그 동기가 에돔이 반역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누가 반역을 했죠? 아버지의 신복을 반역을 해서 아버지가 죽었다. 그러니 반역을 하면 아먀샤는 치가 떨리는 것이다. 그러게 가족을 넘어서야 하는데, 가족간의 원수 갚느라 온 나라가 전쟁이다.
아무튼 아먀샤는 에돔 정벌에 진심이었다. 여기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으나 역대하 25장에 자세히 나와있다. 아먀샤가 남유다에서 30만명을 고용하고 북이스라엘에 돈주고 10만명을 데리고 왔다. 역대하에 중요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먀샤를 찾아와서 북이스라엘 용병 10만명을 돌려보내라!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아먀샤가 은 백 달란트를 지급했는데요!35억정도 되는 금액을 지급했는데요! 난색을 표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25장 9절에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 35억 포기하고 돌려보냈다. 병력 4분의 1을 포기하고 돈도 포기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 이것이 진짜 정직이다. 에돔에 대한 아먀샤의 승리는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었다. 아먀샤의 30만 군대는 에돔 사람 1만명을 죽었다. 반석이라는 뜻의 셀라라는 성을 정복해서 욕두엘로 이름을 바꿨다. 계산으로 안 되는 결정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는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얻었다. 그런데 여기 만명을 죽인 것 가지는 좋았다. 그런데 역대하 25장 12절에 보면 또 다른 만 명을 사로잡아서 바위꼭대기에서 밀쳐서 그들의 온 몸을 부셔버리게 했다고 한다. 부셔버리겠다는 활활 타는 분노가 느껴지지 않나요? 아무리 사탄과 싸워도 믿는 사람은 항상 태도와 언어가 정상적이어야 한다. 이글이글 불타서 정도를 넘으면 안 된다. 우리가 안팎으로 복수하고 싶은 원수가 있다. 요아스를 죽인 것 같은 신복들, 에돔같은 거래처, 직장,이웃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반드시 원수를 갚아주겠다!! 그런데 여러분 최고의 복수는 용서이다. 구속사를 알아야 할 수 있다. 그냥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들교회에서 광주 대구 문제를 해결하자고 교회를 세웠다. 가정에서부터 문제가 해결되어야 나라의 문제도 해결된다. 화를 자취하지 않고 승리하려면 복수심을 참아야 하는데 이것이 삶의 결론이구나,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택자가 따라야 할 기준은 복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복수심만 따르면 화를 자취한다. 내가 이기겠어! 잘 살아서, 공부해서 이기겠어!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어! 이딴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복수하려는 마음으로는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다.
적용 반드시 갚아 주겠다며 이를 갈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감정이나 계산보다 말씀대로 해서 수지맞은 경험이 있습니까?
이번 주 꾹 참고 인내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번 주 청큐에 나온 간증입니다. 중학교 2학년의 나눔이다. 온 가족의 우상이던 아빠가 초2 때 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울며 원망했지만 그 고난으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됐다, 더 이상의 고난이 없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로 우울과 불안이 심해지고 엄마마저 아프시니 또 나를 떠날 것만 같은 불안함에 할 수 있는게 큐티밖에 없었고 우울이 회복이 됐다, 중학교 입학 후 이번에는 덩치 큰 아이에게 학폭을 당하는 고난이 찾아왔다, 그런데 아버지도 없고 아무 편도 없는 이 상황에서 날마다 묵상하고 기록한 큐티가 학폭의 피해자임을 증명하는 귀증한 증거가 되어줬다, 그 날 본문 예레미야 11장 17절 하나님은 다른 신에게 분향하는 백성에게 재앙을 선포하시고, 이렇게 말씀과 공동체에 오픈하니 살아남았다, 이 은혜를 받았음에도 12절처럼 우상이 가득해요, 성적과 인정의 우상이 절대로 저를 구원하지 못함을 알고 하나님께 가장 귀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적용으로 과제, 게임보다 큐티 먼저 하고 구체적으로 회개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 아이가 얼마나 복수심으로 들끓었겠는가? 하지만 자기가 쓴 큐티가 이 아이를 살렸다. 이렇게 큐티하는 아이보다 못한 아이들이 너무 많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못끊잖아요.
한 집사님은 교회 안 나오는 두 아들은 항상 좋은 이야기, 정직한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들교회 나오는 중학생 아들은 엄마 나 야동봐~ 솔직하게 말한다고 한다. 정직한 아들은 전혀 안 통한다고 한다. 좋고 나쁜게 옳고 그름밖에 없는 이 세상에 악밖에 없다. 자기 결정권이 다 아이들에게 있다. 청소년 큐티 간증을 좀 읽어보세요. 기가 막힙니다.
3. '네가 감히' 하는 교만을 그쳐야 합니다.
8절
에돔정벌에 성공한 아먀샤는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대면하자고 한다. 얼굴이나 보고 식사하자는게 아니라 너 옥상으로 따라와~ 전쟁하자 이것이다. 갑자기 왜 이럴까? 역대하 기록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말 듣고 10만명을 돌려보냈는데, 용벙들에게는 뒤통수를 맞는 일이 되어서 백달란트를 계약금으로 받았는데 잔액을 전리품으로 받을 예정이었는데 계약이 파기됐으니 용병들이 큰 사고를 쳤다. 국경에 있는 성읍들을 약탈하고 3000명을 죽였다 .아먀샤는 이 일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 요아스에게 대면하자고 한다. 아먀샤가 하나님의 사람 말을 들은 것이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일자리가 갑자기 끊어진 것이다.이 도전장을 받은 요아스는
9-10절
요아스는 형제 나라이니까 남유다와 싸우지말자하며 나무의 우화를 들며 대결을 거절한다. 백향목은 자신, 가시나무는 아먀샤를 비유하며 말한다. 요아스가 그래도 엘리사의 양육을 받은 사람이잖아요. 요아스는 정곡을 찌른다. 네가 에돔과 싸워 이겨서 마음이 교만해졌구나, 괜히 죽으려고 덤비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일 때문에 사표내고 이혼하지 마세요. 가만히 좀 있어요! 망한대요! 이 대답을 들은 아먀샤는 듣지 않는다. 그리고 벧세메스에서 서로 대면한다.
11절
아먀샤의 대패로 끝난다. 아먀샤는 잠시 뒤에 전쟁의 화를 전혀 알지 못하고 화를 자취한다. 아먀샤의 가장 큰 문제는 듣지 않은 것이다. 잠시 전에는 하나님의 사람 말을 잘 들었는데... 역대하 25장 20절에 보면 말씀이 분명하게 설명한다. 아먀샤가 듣지 않았으니 하나님께 말미암은 것이다, 그들이 에돔신에게 구했으므로~ 라고 나온다.
아먀샤와 유다백성이 이겼는데 에돔신을 가지고 왔다. 여기도 역대하를 보면 아먀샤가 에돔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그들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들로 세우고 경배하고 분향했다고 한다.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까?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고 자기가 이겼기에 전리품을 전시하고 보고 또 보고 자기를 높이고 기억할 산당이 있으니 각종 우상으로 채우면 더 좋다며 악이라고 생각조차 못한다. 어쩔 수 없다 하며 타협한 산당제사가 사소해보였으나 큰 문제였다. 살짝 열어놓은 산당제사의 문으로 열어놓다가 우상 문제인줄을 모른다. 우리도 요새 죄에 대한 감각이 너무 무뎌졌다. 그 결과 전체가 귀가 막히고 눈도 안 보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자기 생각에만 갇혀 함부로 생각하고 말하는 이 태도가 교만이다. 교만한 사람이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말을 안 듣는다. 아무리 좋은 말이어도 속으로는 귀를 막는다. 내 영광만 찾는다. 다른 사람 무시한다. 화를 자취하는 것이고 멸망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먀샤가 교만한 거 다 아는데 요아스가 알고 모두가 아는데 자신만 모른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다 아는데 자기만 모른다. 어떻게 교만을 그칠 수 있을까? 육이 무너지면 저절로 낮아지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런 고난은 축복일 뿐만 아니라 완악한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우리의 태생적 교만이 너무 크다. 지옥뿌리에서 올라온 교만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하여튼 세상적으로 내세울 것만 것이 손톱만큼만 있어도 네가 감히 하며 다른 사람 말을 안 듣는다. 네가 뭔데 이혼을 말리고 이러고 저러고 해! 한다. 없었을 때는 말을 듣는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의 말을 듣겠는가? 돈과 권세가 생겨도 그 돈과 권세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래서 목장에서 처방을 안 듣는다. 그럼 고난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고난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게 있건 없건 말씀을 들어야 교만이 그쳐지는데 대부분 듣기 싫으니 떠나간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듣게 되는 유뷰트, 콘텐츠들이 많다. 목보보니 와이프가 드라마를 밤새 본다고 한다. 말씀도 그렇게 습관적으로 들으시길 바래요. 자꾸 들으시면 그 중에서 한 마디 말씀이 들린다. 그리고 목장에서 지체들의 좋은 말 힘든 말 듣는게 교만한 우리 귀를 열리게 하는 비결인데 조금 힘들면 안 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들리는 것은 내 죄가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 화를 자취하는 어리석음도 그친다.
적용 옳고 그름을 따지며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습니까? 그런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까?
'네가 감히'라는 말을 내가 합니까? 내가 듣습니까?
오늘의 다윗의 길을 보여주시는 나눔이 SG에 올라왔다.
장로님은 10년이 넘게 루게릭병에 걸린 와이프를 간호하시다가 성자가 되시고 있다. 나는 서자라는 약재료가 있는데 아들이 나에게 막 대드니 며칠을 큐티하면서 내 죄를 보고 아들에게 사과하려고 했는데 사과하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아들에게 아빠는 성경 보는 사람이고 장로의 역할을 다해달라고 네가 기도를 해주지 않냐, 아빠는 서자라 아버지에게 대들 생각을 못했는데 너는 아빠에게 대드는 것을 보니 내 아들이 맞구나, 아버지 세대에는 아버지에게 대들면 안 된다가 있었지만 친자들은 아버지에게 막 대들었는데 아빠는 서자라 한 번도 못 대들었어... 그런데 네가 그렇게 대드는 것을 보고 이 새끼는 친자구나 네가 아빠에게 대들어줘서 너무 고맙다 했더니 아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후 아들이 화가 나도 삼키는 것이 보이고 대들고 싶어도 삼키는 것을 보며 내가 아들을 설득했지만 내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언어를 다듬어주셨는데 죄 고백도 자기만 하는 죄고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죄고백이 되어야 살아나는 것 같다고 나누셨다. 지난 주 20년간 주식 집사님을 보니 간증하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주식을 아직도 끊지 못하는 것은 회개가 없는 고백을 하는 것 같다, 너무 오랫동안 같이 보시니 그렇게 말씀해주셨다고 한다.
청소년부터 실버 장로님까지 말씀에 의해 정직보다 한결같이 회개가 화를 자취하지 않는다는 나눔을 계속 본다. 무시할만한 공동체가 아닌데 한결같이 무시해요. 겉으로 보기에는 찌질하다고. 그래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윗의 길을 가지 않았다고 해요.
화를 자취하는 것은 회개가 없는 정직 때문입니다. 화를 자취하지 않으려면 이기고 이기려는 복수심보다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제가 그냥 미취학 아이들이 10년전에 모든 환난이 주제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이 스승이 되어서 이 말을 다 외우게 해서 가르치게 해서 말씀을 따르게 했다. 네가 감히 라는 교만을 그쳐야 한다. 여러분들, 화를 자취하는 것은 여러분들 삶의 결론이다.
*기도제목*
소아
1. 사장님하고 얘기하게 되면 좋고싫고 감정을 떠나서 내 의도를 차분하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2. 더 추워지기 전 강아지들과 함께 살 보금자리 마련해주시길
3. 회사가 빨리 팔리길
4. 엄마가 잔소리를 덜 하시기를
유진
1. 이번 한주도 회사에서 업무 최선을 다해 잘할 수 있길
2. 가정에서의 내가 얼마나 죄인인 줄 깨닫고 가족 무시하거나 정죄하지 않길
3. 매일 큐티하기
4. 신결혼
은미
1. 들어야 할 말을 잘 듣고 회개할 수 있기를
2.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상의 악을 발견할 수 있기를
3. 교제를 위한 만남과 타이밍을 허락해주시기를
슬아
1. 목장 공동체보다 음악프로를 더 사랑하고 있는데 음악프로를 덜보고 힘들때 마다 하나님한테 의지하며 더 가까워질수 있도록
2. 일에만 집중해서 실수가 없도록
3. 급여나오면 돈 알들하게 절약해서 쓸수 있도록
(요거 두개 기도 더 해주세요)
4. 감정 조절 잘할 수 있도록
5. 우리가족 건강과 구원
6. 신교제 신결혼
우지현
1. 매일 아침 큐티 먼저 하도록
2. 운동 꾸준히 해서 건강한 몸과 마음 가질 수 있도록
3. 아빠가 부부목장 잘 나가시고 11월부터 엄마아빠 광주 채플 예배 드리실 수 있도록
4. 엄마 건강 지켜주시길
5. 오빠가 허리를 다쳤는데 치료해주시길
6. 신결혼
이지현
1. 동생이 사랑부 예배당에 들어갈 때 겁내지 않고 잘 들어갈 수 있기를
2. 내 죄를 깨달을 수 있기를
3. 예배를 우선 순위에 둘 수 있기를
4. 세상의 즐거움으로 나를 채우려고 하지 않기를
5. 아빠에게 순종하기를